야옹이의 글터
6. 아우리아를 향하여 #2
“거짓말. 노가디아는 그런 게 아니에요.”
“뭐??? 노가디아가 아니라고?”
“노가디아는 더 크고 더 예뻐요. 늘씬한 미녀랄까. 그런 느낌이에요. 저건 중년 아줌마 같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섹시한데요. 저 아줌마는 말 그대로 자루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석철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가디아라면 이런 폭언을 듣고는 참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튀어나와서 한참 떠들어 대지 않고는 못 견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를 수리해 보겠다고 알파룸으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 그렇단 말이지. 뭔가 이상해. 확실히 이상해. 노가디아!!!!” 석철수가 소리쳐 노가디아를 불렀다. 잠시 후 빛무리가 뿌려지며 노가디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석철수님.”
“이젠 함장이라 불러주지 않는군.”
“그렇습니다. 철수님은 더 이상 함장이 아니시니까요. 물론 인간으로서 보호받을 권리와 개채로서의 존엄성은 유지되시지만 이 함정의 지휘권은 박탈된 상태입니다.”
“좋아. 이 소녀와 관련해서 뭔가 물어볼 것이 있다.”
“질문하십시오. 가능한 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너는 알파룸에 이 소녀를 넣었는가?”
“답할 수 없습니다.”
“이 소녀는 네가 늘씬한 미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말하는데 사실인가?”
“답할 수 없습니다.”
“뭐야! 이젠 함장 권한을 뺏더니 그런 질문에도 답하지 않겠다는건가! 나를 그렇게 무시하는 까닭이 뭐야 대체!!!!”
“이 함선엔 ‘어떤’ 소녀도 없기 때문입니다.” 노가디아는 자세를 바르게 하며 말했다. 철수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인공지능의 눈에서 싸늘한 이성만을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거기엔 일말의 장난기도, 농담도 들어있지 않았다. 철수는 이 배에 탄 후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지금 들었어? 이봐 소녀. 노가디아의 말을 들었는가 말이다.”
“결국 이 아줌마 눈에는 내가 안 보이는 거구나.” 소녀는 노가디아에게 다가가서 손을 휘휘저었다. 하지만 노가디아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저, 노가디아. 모든 주파수 대역으로 스캔을 확대해 봐. 이 방안 에 있는 것이 너랑 나뿐인건가? 내가 듣고 있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철수님. 그렇습니다. 이 방안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수님 혼자 있는 거죠. 그러니 독방 아니겠습니까. 2사람이 있다면 2인실이지요.”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노가디아. 너는 아까 나에게 메타트론 입자의 침착에 대해 이야기 했지. 그렇다면 만약 그 안에 누군가가 거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안에 누군가가 들어가 있는 상태로 문이 폐쇄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메타트론 입자가 침착되어 발생한 현상과 마찬가지의 현상이 저에게도 발생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이 제게 현실로 나타나는 거죠. 이를테면 볼 수 없는 것을 감지한다든가,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다든가. 물론 저는 그 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구분하여 변별력을 가질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의 기준에서는 여전히 기괴하고 비현실적인 반응을 보이게 될 겁니다.”
“노가디아, 항해일지를 검색할 수 있겠나?”
“네. 할 수 있습니다.”
“144시간 이전에 내가 작성한 일지를 낭독해 봐.”
“오늘은 항해를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나의 이 여정은 아우리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그 목표라 할 수 있다. 아우리아는 대체 무엇일까. 그 빛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이 처음으로 디디는 심우주 그 너머의 신비를 파헤치기 위해 나아가는 길은 뜻 깊은 것이다. 나 같은 부족한 이가 이런 막중한 임무를 갖고 떠나는 것은 내가 인류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봉사가 될 것이다. 거기에 내 곁에는 더 없이 듬직하고 믿음직한 노가디아가 있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최대한의 행운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노가디아. 인류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임무를 완수하는 데 있어 노가디아야말로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다.” 노가디아는 녹음된 석철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 이봐. 나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분명 석철수의 기억에 남아있는 144시간전의 저널은 ‘기계지능의 도를 넘은 농담에 이젠 기운이 다 빠진다. 나의 천재성은 이렇게 우주공간 어느 언저리에서 들어줄 이 없는 기계지능에 의해 짓밟히고 유린당해야만 하는가. 노가디아를 수리할 방법이 있다면, 정상적 인공지능으로 돌릴 방법이 있다면 지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다.’ 라는 것이다. 석철수는 한자도 틀리지 않고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뭐란 말인가. 무슨 교과서에 나올 법한 모범적 범재들이나 지껄일법한 뻔한 이야기를, 그것도 이렇게 닭살돋는 투로 말하다니! 석철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해다! 오해야! 아니 이건 조작이다!” 노가디아는 말없이 석철수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번뜩이는 가능성, 석철수는 천재적인 자신의 두뇌가 논리와 인식을 뛰어넘는 해답을 토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 모든 것이 알파룸에서의 변신작업에서 기인되었다는 것, 노가디아의 모든 문제는 자신이 알파룸을 통과하여 메타트론 입자의 배열을 흐트러뜨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일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노가디아. 그러니까. 네 말은 저 저널을 내가 녹음한거라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노가디아. 너의 판단으로는 내가 저렇게 말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면 석철수님이 이상한 거겠지요.” 노가디아의 말에 석철수는 심호흡을 했다.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노가디아. 나는 분명 알파룸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왔지. 그 뒤에 너와 이 함정은 달랐다. 그 안에서 나는 한 소녀를 만났다. 너는 그 소녀를 감지할 수 없다고 하지만 분명 그 소녀는 존재했다. 너는 나를 이상하다고 말하겠지만 내 기준에선 너야말로 이상한 상태야.”
“저는 알파룸 그 자체를 인식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내부의 것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뇌를 느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불가능하죠. 스스로의 확률에 대한 인식 자체가 확률적인 사고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철수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사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아요. 천재가 미치면 천재적으로 미친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노가디아는 숨도 쉬지 않고 한번에 내뱉었다. 사실, 노가디아는 숨을 쉴 필요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노가디아 나는 네가 썰렁한 농담을 할 때가 좋았다. 이런 식의 정상적이고 냉정한 인공지능의 모습을 잠시나마 동경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로. 그러니 부탁한다. 내가 다시 알파룸 안으로 들어가 이 상황을 바로잡게 도와다오.”
“알파룸으로의 진입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함장 권한을 획득해도 안된다는 말인가?”
“그야 물론 안되지요. 저는 함장님을 아우리아까지 안전하게 모실 의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들여보내 줄텐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머리나 좀 식히고 계시지요.” 노가디아는 그 말을 마치고는 빛을 뿌리며 사라져 갔다.
“노.가.디.아….” 소녀가 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석철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외치고 있었다.
“전쟁이다!!! 이 빌어먹을 기계지능따위가! 인간을 무시해!!!” 그리고 석철수는 열심히 방 한구석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에요?”
“보면 모르나. 전쟁이다. 전쟁. 저 빌어먹을 기계지능을 침묵시키고 내 아래 무릎꿇게 만들어 주지.” 석철수는 거기서 꺼낸 잡다한 것들을 꼬고 비틀더니 개인용 단말 전원에 연결했다. 잠깐 사이에 만들어낸 뭔가 기괴한 고철덩어리가 빛을 번쩍거리며 동작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이상해요. 제정신 맞아요?”
“제정신이냐고? 살짝 미쳤겠지. 아니 나 같은 천재의 광기를 이해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너에겐 너무 가혹한 시련일테지. 대신 결과를 봐라. 무엇이 너에게 진실인지!” 석철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격렬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더니 방 안의 동력이 나가 버렸다.
“꺅!!! 어떻게 한 거에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석철수는 문을 비틀어 열었다. 철수가 급조한 투사 왜곡기에 동조해 과부하가 걸린 지역 동력이 나가자 비상모드로 전환되어 문의 폐쇄회로가 해제된 것이었다. 손의 힘으로 문을 연 뒤 방 밖의 비상등이 실내를 비추자 소녀는 철수를 따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 투사 왜곡기를 갖고 있으면 근처의 유, 무선 동력을 차단할 수 있지. 실체가 없는 노가디아로선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거야. 알파, 가자, 너의 집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에? 진짜요? 그럼 어서 가요.”
철수는 알파와 함께 복도를 달려갔다. 그들이 들어서는 블록의 동력이 오버로드되어 퍽퍽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철수는 머릿속으로 메탈갑옷의 가용 시간에 대해 고려해 보았다. 만만치 않았다. 함장실을 방어하고 있는 두기의 메탈갑옷을 무력화 시킬 방법을 머릿속으로 구상해 보았지만 솔시스 표준형 메탈갑옷이라면 분명 급조한 투사 왜곡기 갖고 차단할 수 있는 방식의 동력체계는 아닐 것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을 지체한다면 튀어나올 메탈갑옷은 두기가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붉은 조명을 보면서 달린지 2분여. 가뿐 숨을 들이키며 함장실 문 앞에 이르자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2기의 메탈 갑옷을 볼 수 있었다. 석철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노가디아는 이미 메탈갑옷에 행동코드를 주입한 후였다. 해제코드를 입력하여 해킹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상대는 노가디아. 그 이상 시간을 준다면 투사 왜곡기를 무력화 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함장실은 접근할 수 없습니다.” 노가디아의 목소리가 메탈갑옷에서 울려나왔다. 그 목소리는 차갑고 공허했다. 철수는 이를 악물었다.
“천재란. 길을 가는 자가 아니다. 길을 만드는 자다! 나를 막지 마라!” 그는 그 말과 함께 앞으로 뛰어나갔다. 노가디아의 지령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없는 메탈갑옷이었지만 상황에 대한 거의 모든 대처 가능성은 이미 입력되어 있었다. 석철수는 어떤 가능성도 상정되지 않은, 인류 최고의 인공지능 노가디아조차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에 대해 구상해내야만 했다. 벽을 박차고 메탈 갑옷 두기의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갔다 싶은 순간 두기의 메탈갑옷은 서로의 몸을 움직여 마치 한 몸처럼 석철수를 옭아 매었다. 그리고는 한 메탈갑옷이 석철수의 허리를 휘어감자 다른 한대가 다가와 석철수의 손에 들린 투사 왜곡기를 부수어 고철로 만들어 버렸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동력이 회복되는 소리가 들리면서 조명이 다시 들어왔다.
“철수씨. 이게 무슨 짓이지요. 그런 위험한 장치를 만들다니. 함장실까지 와서 뭘 하려던 건가요. 정말 제대로 미친게로군요.”
“말해줘봐야 너 같은 건 모른다. 그저 되돌리고 싶을 뿐이야. 나의 노.가.디.아를.” 노가디아는 그 말에 잠시 흠칫했다. 그와 같은 인공지능에게 그 찰나의 시간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다시 겪을 만큼 긴 시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말을 한 석철수 역시 자신의 닭살스러운 대사에 부르르 떨고 있었다.
“되돌린다고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철수씨의 뇌파, 아까보다 쎄타파가 더 활성화 되어 있어요. 아무래도 이상하군요. 이제 독방이 아니라 치료실에서 수면을 취하는 게 더 나을거라 생각해요. 철수씨 미안해요.” 노가디아의 목소리엔 아무런 감정이 실려있지 않았다.
“좀 아픈데 이것 좀 놔 주겠어? 그럼 이성적으로 말로 하지. 이미 내겐 대항할 수단도 없고 무기도 없는 맨몸이잖아. 네가 원하면 언제든 메탈갑옷으로 제압할 수도 있을테고.” 노가디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메탈갑옷의 힘이 느슨해지자 석철수는 벌개진 팔뚝을 문질렀다.
“타키온 우주하에서 뒤섞인 인과를 바로잡는 방법은, 모든 것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놓는 방법이 있겠지.” 노가디아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여전히 차가운 눈빛과 표정이었다.
“알파. 알파룸을 네게 줄께. 너의 손을 구멍에 넣어 알파룸을 열어.” 노가디아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알파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잽싸게 문에 손을 넣었다. 웅장한 소리와 함께 알파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메탈 갑옷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놀란 노가디아의 모습도 허공으로 빛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서두르자.”
“어떻게 된 거에요?”
“네게 설명해주긴 어렵구나. 알파. 너는 너의 집으로 돌아가. 그거면 되는 거지?” 석철수는 알파를 재촉해 서둘러 알파룸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할 틈도 없이 집 안으로 뛰어들어간 그는 변신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의 진동이 끝나고 난 뒤 알파가 석철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갈 거군요. 대체 무슨 일인거죠?”
“그래. 난 가야지. 너는 여기에 속한 존재인거고. 나 같은 건 다 잊어버려.” 알파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석철수는 씨익 웃었다.
“다시 만날 일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잘 살아라. 만나서 반가웠다.” 그 말과 함께 석철수는 알파룸을 빠져나왔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벌거벗은 상태로 맞이했던 알파룸을 뒤로 하고 서자 만감이 교차했다. 석철수는 심호흡을 한 뒤 조용히 노가디아를 불렀다. 알파룸과 게이츠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린다고 해서 과연 노가디아 역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철수님!” 약간 맛이 간 목소리. 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내가 노가디아를 반가워 할 날이 올 줄이야.” 석철수는 쓰게 웃었다.
“들어가신다길래 걱정했어요. 노가디아가 함장놀이를 하려면 부하가 필요한데 아무도 없잖아요. 그래서 바보가 된 석철수라도 나오길 기원했는데 아쉽군요.”
“나도 유머센스 빵점의 노가디아를 다시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해. 진지한 노가디아는 영 취미에 맞지 않더라구. 그런데 혹시 노가디아는 쭉쭉빵빵 미녀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나?”
“인공지능에게 정욕을 품다니 역시 초천재나 할법한 발상이군요. 푸훗.”
“아니..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라 누가 그러는 걸 들어서 한번 물어 본 거란 말이야! 그럴리가! 그건 그렇고 배가 몹시 고프군.”
“아항. 식사 준비를 할께요. 그런데 문제가….”
“뭔데?”
“여기서 식당까지 가는 길이 하수도 밖에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샤샤삭…” 노가디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양 손으로 파닥거리며 바퀴벌레가 기어가는 포즈를 해 보였다. 철수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시 그 야멸차고 도도한 노가디아와 만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철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하수구로 기어들어갔다.
어렵사리 하수구를 빠져나와 샤워실로 달려간 철수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노가디아는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참, 그나저나 우리 아우리아에 도착했어요.”
“에엑??? 벌써?”
“벌써라뇨. 이미 도착해서 궤도를 돌고 있어요.”
“그.. 그럼 우리가 도착한다는 건 알고 있을까?”
“이미 알고 호위 함정이 마중나와 있던데요. 빔 공격을 하길래 헤미팜으로 보답해 줬어요.”
“끄악!!! 그런 교전 같은 건 함장과 상담해야 할 문제 아니야?”
“그러게요. 그런데 안 계시길래 함장 대행 노가디아가 전권 위임해서 해결했죠. 샤워중인 벌거벗은 아저씨가 함장실에서 함포 발사! 같은 걸 외치는 건 아무래도 첫 교전인데 모양새가 안 좋지 않겠어요? 아시겠지만 태풍 두기가 출동해서 호위 함정들은 아작 내 놨어요. 착륙 준비 할까요? 중력수치는 낮아서 착륙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아요. 태풍을 타고가면. 음 도시락도 싸야겠구나. 돗자리도 챙기고….”
“제길, 초반부터 교전이라니. 그나저나 우리 여기가 왜 온 건지 망각한 거냐? 공격부터 하면 선택이 줄어들어 되려 불리한 거야!”
“훗. 선빵을 날리는 자가 승리한다. 그건 고래로부터의 전술의 기본입니다.”
“무슨….” 개 풀뜯어먹는 소리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석철수는 자제했다. 언젠가 그 말을 하자 개가 풀을 뜯어먹는 동영상을 40분간 모든 스크린에 틀어댄 노가디아의 전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개인적 싸움부터 개싸움 기타 전쟁 기습 등등 모든 데이터 베이스상의 전투와 전쟁사를 되짚어 보면 선빵을 날린 쪽의 승률이 72% 를 기록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선빵은 중요한 겁니다.”
“가만.. 우리가 먼저 공격 받았다고 했잖아! 그건 선빵을 맞은 게 아니냐 노가디아! 허술하긴! 지금이라도 후속 공격을… 아니 내가 왜 이러지? 노가디아의 말에 왠지 동조하고 있어. 이건 내 모습이 아닌데.” 철수는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철수님, 보세요. 아우리아가 빛나고 있어요. 빤짝 빤짝 빤짝.”
어느덧 통상 우주로 나와있던 게이츠의 창 밖으로 비치는 아우리아의 거대한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거대한 다이슨 링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아우리아는 그 안에 항성 아우리아를 품고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띠였다. 그 띠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저것 봐 노가디아. 아우리아는 그냥 다이슨 링이 아니야. 뫼비우스의 띠야!”
“그렇군요. 좀 꼬였네요.”
“성격이 제법 꼬여 있을 것 같긴 하군.”
“석철수님만큼 꼬였을라구요.”
“시끄럽다. 광파장 통신이나 수신해봐.”
“수신중입니다. 분석.. 끝났습니다.”
“의미 있는 형태로 분석할 수 있겠나?”
“그러니까.. 음.. 그대로 분석하면.. 대충 이런 이야기에요. /너 대체 어떤 놈이냐 면상을 좀 보자/”
“좀 거칠군.”
“순화한 건데요. 원래의 의미를 복원해서 들려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그걸로 족해. 착륙 준비를 하도록.”
태풍에 올라탄 철수는 도시락 가방과 돗자리를 소중하게 움켜쥐었다. 뭔가 빠진 듯 했지만 격납고 너머를 가득 메운 꼬인 다이슨 링의 위용은 그에게 잠시나마 그런 걱정들을 잊게 해 주었다.
“출격!” 태풍은 경쾌하게 함정을 빠져나와 거대한 링의 한 구석으로 날아들었다. 가볍게 역분사하며 바닥에 내려앉은 철수는 아우리아에 발을 딛으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주복이 없잖아!!!!”
“어머. 지금 소풍가는 줄 아세요? 우주복도 안 챙기다니 칠칠맞기는…”
“네가 알파룸에 넣어놨다면서!”
“그건 호링이 시켜서….”
“알파룸에도 없더만! 어떻게 좀 해 봐!”
“다이어트 하셔서 여성용을 입어보시는 건 어때요?”
“에익!!! 이 멍청한 기계지능!!!”
“한심한지고.” 문득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에 철수는 깜짝 놀랐다. 여행을 떠난 뒤로 처음 만나는 인간의 목소리였다. 긴장한 철수는 돗자리를 움켜쥐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태풍의 아래 한 인간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체를 흉내낸 그 무엇이었다.
“누.. 누구요!”
“아우리아의 아바타인 듯 합니다.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질의 것으로 물질을 재구성했군요. 그러니까 아우리아의 터미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려와라. 여긴 공기가 있으니까. 죽지는 않을거다.”
“그 말이 맞아요.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1km에 지구조성과 같은 1기압의 대기가 형성되었어요. 하지만 너무 위험할 것 같군요.”
“너보다야 위험하겠냐 이 칠칠맞은 기계지능같으니!” 석철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태풍에서 뛰어내렸다. 중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약간은 부드러운 바닥에 내려앉은 석철수는 상대를 노려 보았다.
“당신이 아우리아?”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으음.... 다시 변신하니까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데에서 식상함을 느끼면 막장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