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의 글터
5. 아우리아를 향하여.
철수는 자석에 이끌리듯 레버로 다가섰다. 그리고 소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환희와 감동에 가득찬 표정으로 레버를 잡아당겼다. 덜컹거리는 떨림과 함께 지진처럼 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흔들린다는 것은 진동한다는 말 이외의 의미는 갖지 못했다. 보통의 평범한 집이라면 이 정도의 흔들림이라면 그대로 분해되어 무너져 내렸겠지만 이 집은 베릴륨 강 복합체로 이루어진 집이었다. 여간한 포탄에 맞아도 흠집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격심한 진동은 그 안에 있던 이들을 심하게 흔들었고, 뒤이은 철수와 소녀의 비명이 집안을 가득 메웠다.
한참 지나자 진동이 서서히 사그라 들었다. 비명을 지르던 소녀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집이 무너질 뻔 했잖아!” 화가 난 소녀는 채 다 일어서기도 전에 빗자루를 마구 휘둘렀다.
“컥. 그.. 그게 아니라! 노가디아! 도와줘!!!” 커다란 빗자루에 두들겨 맞던 철수는 집 밖으로 도망치려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노… 노가디아?? 노가디아를 알아요?”
“그럼 알다마다. 내 나가면 가만 두지 않겠어.”
“노가디아는 잘못이 없어요….” 소녀가 치켜든 빗자루를 천천히 내렸다. 맞을까봐 웅크리고 있던 철수가 멍투성이가 되어 낭패한 표정으로 소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널 여기로 데려온 것이 노가디아일테지. 그렇지 않나?”
“어떻게 알았죠?” 소녀는 다소 의외라는 듯 놀라며 물었다.
“난 함장이니까. 캡틴 석. 초천재에게 그 정도 힌트라면 상황을 파악하는 건 식은 죽 먹기란다. 후.. 이제 문이 열렸을 테니 밖으로 나가지 않을래?” 철수는 피가 흐르는 부은 얼굴로 상큼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문이요? 밖?”
“그래. 원래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 알파룸이 아니었을거야. 뭔가 이유가 있어서 네가 알파룸에 들어가 있긴 했지만….”
“하지만 내 이름이 알파인걸요? 그러니까 여기는 내 방….”
“알파. 그래. 알파룸과 아주 잘 어울리지. 그럼 내 이름은 철수인데 내가 있는 집은 철수룸 이겠니? 그런 게 아니잖아. 뭔가 단순한 우연으로 생각하렴. 어쨌거나 너는 여기 있으면 안돼. 밖에 나가면 더욱 멋진 것이 있을 거란다.”
“멋진거요? 그게 뭔데요?”
“이를 테면 모험이라든가. 인류 최고의 인공지능이라든가. 공짜 기내식이라든가. 그런 거 말이지.”
“뭔가 마음에 들어요.”
“그럼 가볼까.” 철수는 정면에 드러난 하나의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변신장치가 가동되고 난 뒤에 튀어나온 통로였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이 통로는 함장실 바로 앞의 복도로 연결될 것이었다. 복도를 걸어 밖으로 나오자 예상대로 그 앞에는 함장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파룸으로 통하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철수는 노가디아를 불렀다.
“노가디아!”
그의 목소리의 울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가 우아한 빛을 뿌리며 빛무리와 함께 눈 앞에 나타났다.
“함장님, 부르셨습니까.”
“뭐지! 이 정상적인 출현은! 노가디아 정말 너란 말이냐. 이런 어두운 복도에서는 저 끝에서 툭 나타나서는 쾅 쾅쾅쾅! 하는 효과음과 함께 단계적으로 점프하듯 다가와서 공포감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담력훈련에 좋다면서 징그러운 썩소를 짓던 너는 어디로 간 거냐!” 철수는 너무도 달라진 인공지능 노가디아의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켄타로스 인기 주말 연속극 ‘레전드 오브 홈타운’에나 나올법한 조악한 내용이 아닙니까. 인간을 위해 탄생한 저 같은 인공지능이 그런 어이없는 장난을 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필요하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짓을 할거라 말씀하시다니 저라는 인공지능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 거 같습니다.” 석철수는 입을 쩍 벌리고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노가디아를 위아래로 쳐다 보았다. 분명 아까 알파룸에 들어가기 전만 해도 결코 기대할 수 없는 바람직한 인공지능의 모습이 아닌가.
“그나저나 함장님 마른 옷을 함장실에 준비해 두었으니 옷을 갈아입으시기 바랍니다.”
“으…응. 그래. 아! 노가디아. 그나저나 알파룸은 어떻게 된 거지?” 철수는 옷을 입으며 노가디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알파룸에 들어갔다 오신 건가요?”
“그래. 네가 안내해 줬잖아. 그런데 전혀 기억 못하는 거야?”
“알파룸 안엔 메타트론 입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알파룸을 개방한다면 저는 그 시간 동안은 정상적으로 기동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거기 누군가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산다는 뜻이 인간의 거주라는 개념으로 말씀하시는 건가요? 함장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메타트론 입자의 공진효과에 의해 그 안엔 사람이 있으면 안 되거든요.”
“아니, 만약 거기 사람이 들어가 있다면 어떻게 될지 한번 추론해 보겠어?” 철수는 상황을 단정지어 이야기했다.
“음. 만약 그렇다면 저는 정상적 판단기능을 상실합니다. 이 함정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치명적인 위험이 미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제가 갖고 있는 최상위 알파 명령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알파룸은 그래서 밀폐되어 있는 거구요. 특히 타키온 항행중에는 안전상의 이유로 절대로 개방해선 안 됩니다.”
“왜 그런거지?”
“말로 설명드리긴 어렵겠지만 타키온 항행중엔 메타트론 입자가 활성화되어 인간에게 결합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으음. 상상하기 싫다는 말의 관용구가 현실적으로 발생가능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후… 물론, 노가디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 하지만 여기 있는 이 소녀라든가 혹시나 존재할 후세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너의 말은 인간의 언어로 다시 표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싶구나. 대체 그런 걸 인간의 ‘언어’ 라고 할 수 있겠니?”
“그럼 보편타당한 고등교육을 이수한 솔시스인이 이해하는데 무리없는 단어로 변환해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조낸 꼬이는 겁니다.”
“조낸 꼬인다라. 뭔가 상당히 고어틱한 표현이군. 조낸이란 말이라든가 꼬인다는 말은 20세기 문학작품에서나 찾아볼법한 고루한 표현이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전달에는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 꼬인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 거지?”
“그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공존하는 거죠. 이를테면 살아있으며 죽어있는 슐라이만의 햄스터라든가. 그 두개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겁니다. 살아있는 시체, 딱딱한 설사, 녹아있는 고체, 같은 것입니다.”
“노가디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체이상(一體二相)의 상태가 가능해진다고 말하는 것인가?”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요. 확률의 영역이 확장되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을 접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슐라이만의 개인적 영역확율 가능성이 확장되어 비상식의 영역이 현실을 침범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면, 미친다는 거로군.”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광증이라는 것이 비정상이라든가 제정신이 아닌 사고의 오류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 개인의 상황에서는 그 모든 것이 제시가능한 가능성으로 펼쳐진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위험한 곳에 나를 보낸 거란 말인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나!” 석철수는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함장님, 방금 쓰신 표현은 이해하기 어렵군요. 함장님, 함장님의 신체 징후가 이상수치를 향해 변동하고 있습니다. 함장님의 뇌파를 스캔중입니다. 뇌내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지휘권을 박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노가디아. 지금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가!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 오매하고 무지한 기계지능같으니 감히 너 같은 것이 나의 천재성을 가늠하려 들다니. 너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천재성을 판단하기에 너 같은 기계지능의 그릇은 불가항력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지! 가련한 것! 당장 집어치우지 못할까!”
“함장님, 아무래도 더 이상은 함장으로 대우해드리기 어려울 것 같군요. 함장실은 폐쇄하겠습니다. 독방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노가디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를 감금하겠다고? 미친 것 아니냐 노가디아! 나는 함장이야!”
“평소 석철수님의 정상적 발언으로 유추했을 때 지금 석철수님은 정상이 아니십니다. 정상이었다면 “잠깐. 논리적으로 접근해 보자. 내가 미쳤다는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그렇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제시 가능한 대안을 말하라 노.가.디.아.” 같은 식으로 발언하셨을 것입니다. 석철수님이 정상으로 돌아오실때까지 구금하겠습니다. 사식은 충분히 넣어드리지요.” 노가디아는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야!!!!!” 석철수의 항의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달려온 육중한 메탈갑옷 두기가 그의 양팔을 꼭 쥐고 어디론가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그는 독방에 던져졌다. 독방에서 몸을 일으킨 철수가 수지로 마감된 벽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차가운 돌벽은 아니었지만 석철수에게 그것은 돌벽이나 마찬가지였다. 함장으로 탄 이 배에서 이젠 구금된 신세라니. 아니 그보다도 석철수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저씨. 함장이라믄서요! 대체 뭐에요! 밥은 언제 줄건데!?” 방 한구석에 앉아 있는 것은 소녀였다.
“너도 잡혀 온거야? 이게 무슨 일이람.”
“아저씨만 믿다가 쫄쫄 굶겠는걸요. 나 알파룸으로 돌아갈래요.”
“아.. 안돼. 아까 이야기 못 들었어? 알파룸은 위험한 곳이야!”
“왜 그렇죠?”
“들어가면 메타트론 입자가 뇌에 침착되어 미쳐버린대.”
“거긴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우리집이 있을 뿐. 근데 그 뿌연 사람 같은 건 뭐에요?”
“노가디아지. 이 배의 인공지능이야.”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2. 레전드 오브 홈타운이 아니라 홈타운 오브 레전ㄷ....
3. 노가디아는 한번 돌아도 역시 행동이 병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