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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언의 내용에 미하엘 중장을 비롯한 중앙정보통제실에 있는 모든 장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을 멈추고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오래전 가이아인의 영원한 동맹이 옛날 그대들에게 졌었던 빚을 갚기 위해….-
  잊혀진 전쟁 이후 리플렉터와 함께 종적을 감춘 그들이다. 역사 기록을 참고하자면 이야기가 살짝 달라지긴 하지만, 어찌됐건 500년 만에 그들이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세비어인.
  그들은 인류가 우주에 진출한지 거의 400년이 지나고 나서 가장 처음 조우하게 된 종족이자 훗날 가장 강력한 우방이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노토르인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방심의 대가로 리플렉터에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세비어인도 잊혀진 전쟁 이후로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에덴. 헥셀라 레이클리 섹터로 나간 통신선 말이야. 그거 무인함선인가?”
  미하엘 중장은 혹시나 해서 에덴 소령에 물었다. 혹시나 통신선의 함급이 무인선이라면 나포되어 얼마든지 거짓된 정보를 흘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저게 호루스 원정함대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에덴 소령은 미하엘의 말에 차트를 한참을 뒤적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에…. 아닙니다. 승무원 5830명이 탑승한 만제중량 4200만 톤의 TSS-679 <천리안>급 통신선입니다. 실전배치 된지는 3년도 채 안된 최신예함입니다.”
  다행히 무인선은 아니었다. 방금 메시지를 보내온 통신선은 최신예에 해당하는 6세대 함선이었다. 답답한 침묵이 그 자리를 감쌌다. 보통 때라면 호루스 원정대가 아니라는 사실 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바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다르게 보면 이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나자 두 번째 전언이 수신되어 왔다. 스크린에 나열됐었던 글자가 위로 밀려나며 밑에서 새로운 문자들이 형성되기 시작됐다.
  -10분 내로 호루스 2차 원정함대가 이곳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 함대규모는 오파이온 급 전투함 600여 척. 일단은 저지하고 있겠음. 발로어 아웃.-
  두 번째 메시지에 모두가 전율했다. 기존의 40척도 모자라 이번엔 600척 규모라니…. 게다가 더 말도 안 되는 것은 저쪽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그들로써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5세기 전 사라졌던 우방이 이런 극히 절묘한 타이밍에 지원군을 보냈다. 게다가 이들이 관측된 지 10분도 안되어 호루스의 2차 원정대가 도착한다고 한다. 이토록 심하게 억지스러울 정도의 시나리오가 과연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도 지금 여기서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같은 시간. 지구에서 약 5500 광년 떨어진 헥셀라 레이클리 섹터에 도달한 <천리안>급 통신선 <맥스피크>호는 갑작스럽게 수신된 전언으로 인해 함선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홀로그램 스크린과 이그라스 레이더는 온통 암전된 블랭크 상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능동탐지범위만 수 광년에 달하는 이그라스에서조차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더 웃긴 건 40테라픽셀 급의 초고화질을 자랑하는 외부관측기기조차도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관제부서에서는 계속해서 방대한 양의 정보들과 전언들을 수신해내고 있었다.
  다소 과격한 초공간 도약 덕분에 하갑판에 설치되어 있던 위상레이더 대부분이 심각한 손상을 입은 탓도 있었겠지만 하여튼 간에 반경 9억 킬로미터 내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선원들 중 대부분은 말 못할 뭔가를 느꼈다. 이를테면 점프 직후 오존 냄새가 함선 전체에 풍긴다거나 기압이 높게 느껴지거나 하는 현상.
  모든 전자 기기는 정상이었다. 그리고 방탄막 출력도 모두 이상이 없었다. <맥스피크>호의 함장 리브게스트 중령은 탐지범위를 더 높이라는 말을 하며 위상레이더까지 가동시켰다. 설마 미립자인가? 거기까지 생각은 했지만 미립자의 위력을 사람이 오감만으로 감지해낼 방법은 절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현재 수신되고 있는 정보들도 어디 말인지 모를 단어들뿐이었다. 간혹 가다 수식에나 쓰일법한 모양이 참조되었지만 통신선의 AI가 그런 것까지 번역해낼 리는 없었다. 그는 오직 주위에서 탐지되는 방사능 수치만을 보며 모든 상황을 정리해 나아갔다. 외부로부터 수신되는 정보에 의하면 분명 5분 내외로 호루스의 2차 원정대가 이곳에 도약해오니 최대한 몸을 피하라고만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맥스피크>호의 상태는 보이지도 않는 누군가의 말을 무작정 듣고 피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작정 자료들을 이쪽에 보내오고 있던 것이었다. 만약 이들이 정말 5세기만에 등장한 세비어 인이라고 해도 이러한 행동엔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마치 자기들의 기술력이 훨씬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브리텐. 발신 주파수 파장을 일반 라디오 주파수로 맞춰주게.”
  리프게스트 중령은 가장 간편한 방법이자 확실한 방법을 택하였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저들과 교신을 하지 못했으니 지금 직접 그들에게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도중에 부관이 그의 명령에 반대했으나 납득할만한 내용은 아니었기에 부관의 의견은 금방 묵살되어버렸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시무룩한 표정의 부관은 통신부서 쪽의 보고를 그대로 전했다.
  “연결됐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딱히 긴장되지도 않는다. 리브게스트 중령은 지극히 평범한 말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는 가이아연방항공우주군 소속 <맥스피크>호의 함장인 클레머 리브게스트 중령입니다. 만약 이 메시지에 응답할 수 있다면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족에서는 댁들께서 보내는 것들은 아주 잘 받고 있으나, 레이더와 같은 외부 기기에서는 그 어떠한 것들도 탐지해내지 못했습니다. 만약 전언의 내용과 같이 당신들이 세비어인이라면 그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나는ㅡ,”
  리브게스트 중령은 그들이 응답할 때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시간이 계속해서 지나가도 그들로부터 그 어떠한 응답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제대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정보들이 계속해서 전해져올 뿐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 답답했다. 그 어떠한 수단으로도 주위에 탐지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빈 공간에 위험수준의 방사능만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슬슬 그도 지쳐 회선을 차단하려고 지시할 때였다. 갑자기 이그라스 스크린에서 경고음이 뜨며 뭔가 이상한 조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삐익!
  대규모의 초공간 창의 방사능 탐지.
  “!!!”
  함교에선 직접 관찰할 수 없었지만 미칠 듯이 올라가는 방사능 수치가 그의 머릿속에 상상력을 길러주었다. 리브게스트 중령은 마음 한구석에서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아주 잘 꾸며진 장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것들이 단순한 떡밥에 불과하다면…?
  대함용 무장이 아주 취약한 통신선으로는 저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재도약 시간의 압박으로 인해 도주도 불가능했다. 우주전에 있어서 통신선의 존재란 조기경보기의 역할 밖에는 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모든 게 비극적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그라스에서 거의 쏟아지다시피 하는 호루스 함선들의 모습에 리브게스트 중령은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개체 수만 해도 이미 3백이 넘어가는 숫자였다. 게다가 그 전함들은 초공간에서 나오자마자 <맥스피크>호를 발견한 듯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홀로그램 스크린 한구석을 빼곡 채운 숫자라니!
  이쪽에서 저들에게 대항할만한 수단은 사실상 없었다. 통신선의 역할이니만큼 군함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들에게 눈이 되어주는 역할이니 말이다. 이제 몇 초 후면 눈뜨고 당해야만 한다. 그리고 잠시 후 그가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적함대의 선두함에서 가차 없이 포탄을 발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미사일과 포탄들이 <맥스피크>호를 향하자 리브게스트 중령은 최대한 제정신을 유지하며 회피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통신선의 특성상 둔한 함체로는 어쩔 수 없었다. 몇 발의 포탄이 함선을 타격한다는 궤도추적 컴퓨터의 전혀 유익하지 않은 계산에 그는 함내 방송으로 “충격에 대비하라.”라고 외쳤다.
  “…….”
  하지만 계산된 시간이 지나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도 함선에는 아무런 낌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그라스에서는 계속해서 적탄이 자함을 관통하고 그대로 나아가는 포탄의 궤적을 잡아냈지만 역시 아무런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말고도 모든 승무원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궁금증은 더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리고 잠시 후.
  <맥스피크>호의 이그라스가 중력감지체계로 변환되자 연이어 흘러나오는 새로운 신호들에 의해 그들은 더 이상의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전에는 단 한번도 탐지되지 않았던 3백여 개의 미약한 중력장이 마치 <맥스피크>호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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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완전 뻘글된 것 같은 기분이 머릿속에 박히는 것은 뭘까요...
다음 회에 계속됩니닷.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