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된 건가!?”
  국방부의 중앙정보통제실에 도착한 미하엘 리처드 중장은 휘하 헌병들의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급히 물었다. 그러자 장교 한명이 일어나며 습관적으로 그에게 경례하며 말했다.
  “헥셀라 레이클리 섹터에서 초광속 도약 때에 나오는 방사능이 대규모로 탐지되었습니다. 지금 이게 무인 탐지기로부터 온 정보라 상세한 정보는 아직 부족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규모로만 볼 때 통상적인 순양함의 출력으로 300척 이상이었습니다.”
  “그럼 호루스의 2차 원정 함대라는 말인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콜로수스>의 이그라스 기록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호루스 전함의 초공간 도약 방식과는 다른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신선 1척이 그 쪽으로 점프한 상태이니 약 15분 내로 소식이 올 것입니다.”
  미하엘 중장은 소령의 말에 전혀 안심이 되질 않았다. 300척 이상의 출력이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누구나 이게 비정상적인 것임을 당연히 여길 것이었다. 지금 연방군이 가진 기술로 군함 한척이 초광속 도약을 하기 위해선 함선 자체 중량의 3할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초광속 도약기가 필요했다. 게다가 지금 과학 수준에서는 개발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대부분의 군함들은 그것보다 훨씬 싸고 규모도 작은 초공간 도약기를 애용하고 있었다. 군함에 한해서는 적어도 그랬다.
  하지만 군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량이 적은 항공기의 경우 초광속 도약기의 탑재가 가능했다. 초광속 도약이 가능한 S 시리즈의 전폭기들이 대표적이었다. 보통 소형화 기술이 어렵다고 하지만 초광속 도약기 분야에서는 오히려 대형화 기술이 꿈만 같은 기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막상 대형화를 시킬 수 있다고 쳐도 그만한 출력을 감당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킬로미터 단위의 함선을 전부 감당할 수 있는 완충장치를 만드는데 기존 개발 비용의 수백 배가 든다는 무지막지한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걱정이 안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것도 간신히 막은 거였는데. 더 이상은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끌어 모으는 것도 불가능했다. 남은 290척의 군함들이 있었다지만 첫 원정함대의 군함이 40척이었다고 치면 극한의 전력비율로 인해 두부로 바위치기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미하엘 중장의 표정이 심히 좋게 안보였는지 소령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최고 사령부에 보고할까요?”
  “…….”
  “긍정적인 의견을 내자면 저 흔적이 호루스 원정대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뭐라고 생각하나? 호루스인들의 기술력으로 볼 때 원정대는 충분히 초광역 실시간 통신 체계를 갖추고 있었을 거라 여겨지지 않나? 우리에게도 이미 그 기술이 있는 마당에 이미 몇 세대 앞선 적들에게 없으리란 보장은 전혀 없어. 아마 원정대는 궤멸되기 전에 추가로 지원을 요청했을 지도 모른다네.”
  “아….”
  “그리고 아직은 보고하지 말게. 괜히 전군에 최상급 긴장상태를 유지시키게 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지구와 알티미리스 사이 항성계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통신선으로부터 연락이 오는 대로 바로 말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는 일단 쓸데없는 낭비는 최소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중앙정보통제실에서 거의 밤낮으로 일하는 저 장교들의 고생으로 수십 수백만의 젊은이들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200만이 넘는 전사자가 하루 만에 발생하고 말았지만….
  그 중에는 자신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실종자 명단에 올라와 있었지만 짐작으로 볼 때 아들이 타고 있던 배가 적탄에 맞아 완파되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세하게 생각하기 싫었다. 형언할 수 없는 증오심이 한동안 그의 머릿속을 한없이 찔러댔지만 그는 그로인해 이성을 잃을까 두려워 최대한 참고 또 참았다. ‘다른 전사자들의 가족들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 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는 한없이 쓰레기 축에 드는 인간일지도 몰랐다.
  그는 말없이 스크린에서 나열되어 나오는 정보들을 보며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발키리>와 마찬가지로 극비리에 건조되었던 군함인 <콜로수스>로부터 적 함대의 치명적인 약점은 알아냈지만 그건 오로지 <콜로수스>의 성능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보다 구형의 전함으로도 적전함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달 기지로 몸을 옮기게 된 그는 정해진 숙소에서 눈 좀 붙이려다 시간이 아니다 싶어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가 커서 그런지 그는 다른 사람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엉클어진 흑발에 밝은 황색을 띄는 피부. 그리고 무슨 일이 많은지 주위를 어슬렁대는 수많은 군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마른 체구. 근육이 거의 달라붙지 않은 걸로 보아 생전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몸집이었다.
  이경헌 박사는 호루스인들과의 전투가 종료되고서야 비로소 사태에 대해 실감이 났다. 영화에서나 보던 시끄러운 비상경고등이나 언론에서 나오는 수많은 정보들이 그걸 증명했다. 언론에서는 마치 위쪽의 압박으로 인해 아주 중요한 문제가 묻혀지고 있었다. 분명 지금 뭔가 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로서는 그걸 알아낼 방도가 아예 없었다. 그저 위쪽에서 다른 지시가 내려지길 묵묵히 기다릴 뿐. 간혹 가다 저 너머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산발적으로 귀에 들렸다. 그는 사실 미칠 만큼 무서웠다. 전쟁이라는 것은 다른 항성계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쇼라고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태양계에서 직접 일어난 것이었다. 아직 민간인 피해까지는 나지 않았지만 언제 피해가 발생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6일 동안 일어났던 전투의 결과는 대중에게 알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전투가 끝났다고 여겨지는 지금. 민간인 거주 구획의 상황을 굳이 표현하자면…. 카오스 그 자체였다.
  부우우웅….
  “응?”
  순간 휴대하고 있던 단말기에서 가느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웬일인가 하고 서둘러 홀로그램 구동 방식의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예. 이경헌입니다.”
  “아…! 박사님. 지금 숙소가 아니십니까?”
  다짜고짜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젊은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자 그는 왼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잠시 바람이나 쐬려고 나왔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 별 문제는 아니고…, 내일 지구표준시각 오후 2시 45분까지 숙소 내에 있는 모든 짐을 정리해주십시오. 위쪽으로부터 호루스에 대한 자료들이 들어왔는데 박사님의 손길이 필요하답니다. 어차피 의사불문하고 박사님을 모시고 오라는 명령이었으니 순순히 따라주신다면 굉장히 감사하겠습니다.”
  “아…, 예이. 알겠습니다요.”
  이경헌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하사관은 가볍게 경례를 붙이며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는 크게 하품을 하며 다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 온지 3주 만에 다시 짐싸는 처지였다. 대우는 그럭저럭 좋았지만 그는 그 많은 짐들을 다시 싸려고 계획을 잡다보니 골이 땡기기 시작했다.
  토성에서 있었던 전투 이후로 사회 전체에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연방군도 피해가 상당했지만 특히 민간 사회 쪽은 거의 작살이 나고 말았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500년 전 멸망시킨 줄로만 알았던 종족이 사실은 호루스라는 종족의 피조물이었고 그 창조주가 몸소 태양계에 행차하셨다.’ 라는 결론이 나버린 것이었다.
  역사학자인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분명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부쪽에서는 추가 공격 가능성에 대해 가뜩이나 모자란 함대전력을 분산시켜버렸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어째서 저 외계인들이 달랑 40척의 전함을 이끌고 태양계로 온 건가. 압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면 도발? 그것도 아니면 약탈?
  아무리 자신이 과학이나 군사 분야에 대해 가망이 없다지만 세세하게 따져 봐도 호루스 함대가 태양계에 온 것에 대해 딱히 정확하게 집어내기가 어려웠다. 대체 그들은 뭐하려고 주위의 수많은 식민행성을 냅두고 태양계로 곧장 쳐들어온 걸까. 언론에서 보면 연방군에서 남아있는 모든 전투함대를 이끌고 호루스 식민행성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허나 그의 입장에서 보면 딱 봐도 그 정보가 신뢰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 특히 전사한 사람들의 유가족들 같으면 더더욱….
  그는 숙소에 돌아오며 씁쓸한 마음을 달랬다.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며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 라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원초적인 공포가 그의 몸을 스치고 갔다. 34세기 말에 들어 놀랍도록 발전한 인간이 가진 위대한 능력조차도 저 외계인에겐 한낮 벼룩 같은 존재에 불과할 지도 몰랐다. 그동안 인간이 이룬 모든 업적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 그는 물류창고로 변해버린 숙소를 정리하는 내내 묵묵히 생각했다.

  “통신선 도착 예정 시간입니다. 일단은 아공간 통신기의 실시간 교신 범위가 초과한 관계로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3분 내로 데이터가 도착할 것 같습니다.”
  에덴 요크 소령의 말에 미하엘 중장은 각 분야별로 명령을 내렸다. 중앙정보통제실에 있는 모든 장교들은 긴장감으로 인해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3분 후에 어떠한 데이터가 오느냐에 따라 태양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연방군 최대 전투력을 자랑하는 북극성 전투함대도 이미 며칠 전에 태양계에 도착한 상태였고 다른 전투 함대들과 대형을 맞추고 있었다. 미하엘 중장은 이미 <유니버스>의 함장 알트 어니스트 제독과 이미 대화를 나눈 상태였고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해주기로 약속했다.
  만약 지금 발견한 저 흔적이 호루스의 2차 원정함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곧 인류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적 원정대의 의도는 먼 옛날 잊혀진 전쟁에서 인류가 리플렉터를 멸망시킨 것을 복수하러 온다는 이유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허나 지금까지 늦춰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미하엘 중장은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더더욱 긴장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3분의 시간이 흘렀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은 모두 회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설마 통신선이 적들에 의해 파괴된 것일까. 모두가 좌절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적들은 2차 원정대를 보낸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미하엘 중장은 애써 무표정한 얼굴로 에덴 소령을 보며 말했다.
  “에덴…. 최고 사령부에 호루스의 2차 원정함대의 움직임을 발견했다고 보고하게. 규모는 300척 이상의 대함대. 그리고 예상 도달 시간은 일주일 안으ㅡ.”
  “장군님! 통신선의 파장 주파수로 새로운 발신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바로 그때 다른 장교가 크게 외치며 미하엘 중장의 말을 잘랐다. 그는 갑작스런 상황에 어리둥절해했다.
  “……?”
  “누군가 통신선을 통해 직접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통신선은 아직 무사합니다.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언으로 추정되는 것을 발신하고 있습니다!”
  “…전언 이라고?”
  모두가 의아해했다. 통신선의 동일 파장 주파수로 보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통신선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의미였다. 만약 적이었다면 발견 즉시 통신선을 파괴했을 것이다. 미하엘 중장은 의아해하며 수신을 수락했다. 그러자 상황 스크린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홀로그램 스크린에서는 몇 마디의 짤막한 글이 뜨기 시작했다.
  -오래전 가이아인의 영원한 동맹이 옛날 그대들에게 졌었던 빚을 갚기 위해 옴. 자세한 얘기는 태양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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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 이제야 등장합니다..
역시 막장 전개인건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__)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