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의 전장 (목숨이 붙어있고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한 연재는 계속됩니다.) - 08년 10월 27일 공군입대 합니다.
호루스 원정대와의 격전이 종료된 후…. 전투가 일어난 공역 내에서 끝날 줄 모르는 구조 작업이 진행되고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군함들은 자력으로 목성 궤도까지 가야만 했다. 왜냐면 태양계에서 토성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대형 함선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목성의 위성기지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투로 연방군이 입은 피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끌어냈던 막강한 군사력이 한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전투 종료 직후 최고사령부는 호루스 함대의 궤멸이 눈으로 확인되자 즉시 지구 저궤도에 비상대기 중이던 병원선과 기술요원들로 꽉 찬 수송선을 토성으로 투입시켰다. 물론 지구에서는 초공간이동관련법 제약 때문에 한참을 벗어난 후에야 도약할 수 있어서 12시간 이상이 소모되었다.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구조 작업이 이루어진 공역은 가장 많은 함대가 위치했던 타이탄 저궤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콜로수스>나 <발키리>같은 경우 그 존재가 처음 발견되었던 시간 때만 처음 구조 작업이 이루어지고 3일이 지난 후였다. 그것도 <콜로수스>와 <발키리>의 활약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글라디우스>가 직접 접근해서 겨우 발견된 것이었다. 발견 당시 <글라디우스>의 외부관측용 초고해상도 카메라에 촬영된 <콜로수스>의 상태는 맥 대령의 예상대로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 본래 선형이 어땠는진 몰랐지만 함선은 심히 비대칭이다 싶을 정도로 한쪽이 허전했고 그것이 원래 항공갑판이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함미에 돌출되어 있는 아광속 추력기의 경우 반 이상의 스파크를 일으키며 심하게 찌그러져 있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맥 대령은 솔직히 함선이 유령선이 되어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교신채널에서 들려온 한 남자의 목소리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맥은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딘지 모르게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기운이 솟아나는 듯 한 느낌을 전해 받았다. 그는 자신을 칼 어니스트 대령이라 칭하며 ‘호의에 감사한다.’ 라고 말했다. 군함의 지휘관이라기 보단 차라리 잘나가는 유명 배우를 닮은 느낌이었다. 맥은 얼떨떨한 말투로 답하며 <콜로수스>가 자력으로 기동이 가능하게끔 최대한 도왔다.
그로부터 보름 후 3395년 4월 27일.
최고 사령부의 눈물겨운 정보통제로 이번 전투에서 연방군 병력이 입은 정확한 피해는 공식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호루스라는 종족의 존재는 거대한 해일이 되어서 태양계의 모든 사회를 휩쓸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전투 당시 함선에 있었던 승무원들의 경험담은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짧은 시간동안 거의 소설을 쓰다시피 부풀려져 전 세계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단기간 동안이었지만 물가가 미친 듯이 치솟았고 금융관련 분야는 거의 바닥을 쓸고 다녔다. 이러한 속에서 정부는 간신히 경제를 원점으로 돌리려 했으나 파장의 규모가 그냥 컸던 게 아니라 무리가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는 점이었다. 타격은 곧 군 사회에도 들이닥쳤다. 각 기지로 지급되던 모든 보급물자가 중단된 것이었다.
<글라디우스>의 맥 대령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력으로 목성의 최대 규모 위성 기지인 <제우스>에 정박할 수 있게 되자 페드릭은 휘하 장교 몇몇을 끌고 기지 전체를 구경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돌아다녔다.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현찰은 42 크릴 이었지만 이 정도면 성인 남자가 하루만큼은 양호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감자튀김의 가격은….
200 그램에 45 c
“…….”
인류 전체에게 찾아온 대재앙보다 눈앞에 있는 감자튀김의 가격에 더 큰 충격을 받은 페드릭은 입을 쩌억 벌리며 한참을 초점을 잃은 눈으로 가격표를 쳐다보았다. 오로지 감자가 들어간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함선에서 내렸건만….
연방군 최대의 군사위성 기지인 <제우스> 조차 보급물자가 끊길 줄은 페드릭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그러고 보니 원래 잠시 정착중인 승무원들로 꽉 차있어야 했을 기지 내부가 상당히 허전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몇몇 PX 병들만 보일뿐 다른 함선에서 내린 걸로 추정되는 승무원은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하선 금지령이라도 내렸나…?”
“대령님. 원래 지금 상황에선 우리가 여기 있을 하등의 이유조차 없습니다. 상황이 연방군 전체에 총동원령이 내려질 정도였으니까요. 어찌됐든 간에….”
옆에 있던 장교 중에 하나가 당연한 듯 자신 있게 입을 열자 페드릭은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럼 칼은 왜 나한테 하선 허가를 내줬지? 그렇게 하면 원래 처벌받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대령님이 무작정 뛰쳐나간 것 아닙니까. 제임스 소장님이 기지 병원시설로 이송되고 나서 어니스트 대령님이 함선 수리와 포로 심문으로 가장 바쁜 순간에 말입니다.”
어깨의 견장에 제법 많은 훈장을 달고 있던 장교가 페드릭에게 따졌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나온 것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아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잘못 건들면 바로 격투가로 돌변할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말하는 페드릭의 표정은 그보다 더욱더 위협적이었다.
“어째 불만이 좀 많은 것 같은 표정인걸?”
계급의 압박인지. 아니면 페드릭 특유의 카리스마인지 그 장교는 차마 마땅히 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주위에 있던 동기 장교들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주머니를 털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후 목적을 달성한 페드릭은 <콜로수스>에 귀환하기 무섭게 칼에게 불려가 장시간 동안 면담에 시달려야만 했다.
같은 시각. 지구에 있는 연방군 최고 사령부에서는 보름 전 종료됐던 전투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에는 살아남은 함대의 제독들과 사단장급 이상의 장성들, 그리고 국방부장과 정보부장과 민간인 고문들이 참석해 하나같이 극히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파편 수거 작업과 생존자 구조 작업이 한참 중이지만 전체 함대에 등록된 승무원 중 생사가 확인된 승무원은 3%도 되지 않습니다. 지금 <제우스>에 정박한 군함은 62 척이고 대기 중인 군함은 총 168척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태양계에 운용 가능한 군함의 숫자가 다 합쳐서 230척이란 소리입니까?”
“지구 저궤도에 비상방어체제를 갖추고 있는 군함까지 모두 합치면 291 척입니다.”
외계인들의 추가 공격에 대한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지금. 정보부장의 말에 그들은 한동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극비리에 건조되었던 군함 2척 중 한척이 박살나고 칼 어니스트가 지휘하는 제 7세대 군함인 <콜로수스>가 반파되어 한참 수리 작업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원정함대의 추가 공격이 이어지게 되면 더 이상 태양계를 사수할 수 없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제발 이게 끝이길 바래야만 했다.
이미 이 세상은 정상이 아니다.
정보부의 미하엘 리처드 중장은 뒤늦게나마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잊혀진 전쟁 이후 세비어인이 떠난 후로 모든 게 틀어진 느낌이 들었다. 현재 연방 사회는 겉보기에는 극히 이상적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만한 지옥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경제성장률은 기존의 빈부격차를 최대한으로 벌리고 과학의 발전은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어 놓았다. 반정부군이 생겨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같은 인간이지만 연방 사회 측에서는 반정부 세력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솔직히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아마 반정부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 앉아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연방군이 만들어낸 필요악일 뿐이다.
회의는 2시간 내내 각 함대의 재배치와 새로운 방위 체제를 세우자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나갔다. 군사력을 추가해야 된다는 말들도 있었지만 회의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연방당 의원이 어이없게 말을 잘라버렸다. 개념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지금 군사력이 전멸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아예 없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이미 충분히 강력한 군함들이 살아남았고 그들의 실전 경험은 이제 전투력에도 큰 영향력을 줄 테니 쓸데없이 함선들을 건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봅니다. 게다가 인간의 과학력은 이 은하계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추가 공격에 대해 우리가 걱정할 필요는 별로 없다고 봅니다.”
“…….”
의원의 말에 일동은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저 인간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2800척에 달하던 군함 중에 꼴랑 291척이 겨우겨우 살아남은 개념인데도 저 인간은 고작 군함 건조비로 당의 예산이 삭감될까봐 말을 저렇게 해대고 있는 것이었다. 프로필에는 국제군사학 수석 뭐시기가 눈물 나게 강조되어 있었지만 말하는 투로 봐서는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 회의의 결과는 그가 원하는 대로 진행될 것이다. 회의는 이후 30분이라는 길고긴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끝났다.
막상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가는 것이다. 회의실을 나오며 몇몇 장성들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미하엘 리처드 중장도 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후 일주일간의 시간이 저 의원 덕분에 그대로 증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알티미리스 항성계에서 겨우 2광년 떨어진 헥셀라 레이클리 섹터에서 초광속 도약 때 발생되는 방사능이 대거 탐지됐다는 소식이었다. 그것은 분명 호루스의 추가 공격을 확신하는 징조였다. 그의 눈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아무래도 다른 장성들에게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내용을 본 즉시 정보부로 향했다. 보고 내용이 간소한 이유는 아직 정보가 확실하게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만약 호루스의 추가 원정 공격이게 되면 그때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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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계속.
이제부터 본래 시나리오에 없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