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의 전장 (목숨이 붙어있고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한 연재는 계속됩니다.) - 08년 10월 27일 공군입대 합니다.
<콜로수스>의 모든 엔진이 칼의 명령에 따라 최대출력으로 빛을 내뿜었다. 1억 톤에 달하는 항공모함을 당장 가속시키는 데는 무리가 있었지만 약간의 시간을 희생하자 <콜로수스>는 엄청난 가속도로 곧장 호루스 함대가 밀집한 위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호루스 함대는 <콜로수스>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매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지막 함대 병력을 모아 재공격을 가하던 연방 함선들을 상대하고 있던 전함들 까지도 <콜로수스>로 화력을 집중하였기 때문이다. 복제 드론까지 화력을 합친다면 <콜로수스>가 적함대로부터 받아내고 있는 공격은 일반적인 6세대 전함은 단 일격에 파괴될 수준이었다. 푸르스름한 역장이 함수 부분에 몇 겹씩 형성되었다. 만약 이중에 단 한발만이라도 방탄막을 관통해 함체에 작렬했다간 거의 재앙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었다. 칼 어니스트의 배짱은 그만큼 상상을 초월했다. 다른 지휘관이었다면 절대로 실행하지 못했을 일을 그는 하고 있었다.
“능동 방탄막 출력 상태는!?”
“20%도 안됩니다. 4~5방 더 정통으로 받아냈다간 곧바로 함체의 외벽이 견뎌 내야할 것입니다. 반면 우리 쪽 역장은 최대 출력 상태에서도 2발도 채 견디지 못합니다!”
“한 2분 동안은 버틸 수 있다는 소리구만. 화기관제부! 각 좌표 섹터 알파 21, 34로 표준 탄두 탑재 미스트레드 발사 후 12초 후에 자동 폭발시켜! 전투 정보부! 호루스 함대로부터 오는 모든 정보들을 연방함대에게 광학전송 시키도록! 전자전부. 함선 외부 300킬로미터 반경으로 레벨 3 전파방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지속시켜!”
칼의 명령이 끝나자 전투정보실의 상황이 더욱 급해지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압박하듯 흔들리는 진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잠시 후 <콜로수스> 바로 앞에서 거대한 폭발 섬광이 일어나며 <콜로수스>를 삼켰다. 얼핏 보면 자폭한 걸로 보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15,000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글라디우스>의 이그라스에는 그렇게 보였다.
<글라디우스>의 맥 대령은 저 함선의 지휘관이 자폭을 가장해 적함대의 시선을 분산하는 계획을 잡은 줄 알았다. 이쪽에서는 당연히 함선이 보일 리 없었지만. 하지만 순간적으로 레이더 스크린에서 뭔가가 표시되었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위치는 폭발이 일어난 좌표. 맥 대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호루스 함대의 화력이 끝날 줄 모르자 저 함명미상의 전함의 안전을 염려했다. 지금 저 함선 덕에 살아남은 모든 아군함선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최고 사령부의 명령에 따라 마지막 공격을 가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 시간은 호루스 함대에게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가도 해당되었으니까. 2천척이 넘었던 연방항공우주군의 대함대는 거의 궤멸되어 이제 10분의 1에 가까운 220척 만 남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을 들자면 신형에 해당하는 6세대형 군함들이 많이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전투 정보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지휘관들은 아마 저 현상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총공격과 그 때에 맞춰 나타난 아군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탐지는 안 되는 함선과 수백 기의 전투기. 저들은 적들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16일 전에 비해 적전함의 숫자는 상당히 줄어 있었다. 몇 시간 전 X700이라는 전함 단 한척이 해낸 전과도 엄청났지만 저 함선도 만만치 않았다. 기술력으로 치면 외계 함대보다 오히려 저 탐지되지 않고 있는 함선의 기술력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적함선의 숫자가 레이더에서 하나하나씩 사라지는 것이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절로 신이 났다. 승산이 없는 줄만 알았던 이 학살극의 승패가 점점 뒤집어져 가고 있었다.
미스트레드의 폭발을 엄폐물 삼아 <콜로수스>는 빠른 속도로 호루스 함대에 나아갔다. 사람의 머리로써는 결코 계산이 되지 않을 법한 방대한 양의 좌표 계산과 적함대로부터 일어날만한 모든 변수와 난수를 예상하며 <콜로수스>는 아슬아슬하게 적함대의 화력을 피해갔다.
“아까와 동일한 위치로 미스트레드 8기 발사! 자폭 설정 일치시켜! 폭발 시간에 맞게 선체 회전 시계방향으로 12도 3분. 능동 방탄막 해제!”
끼이이익!!
그의 명령이 끝나기 무섭게 함선 아래쪽에서 뭔가가 길게 함체를 긁고 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고속탄이 함체를 스치며 낸 균열 사이로 붕괴가 일어나며 뒤늦게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이것마저도 그는 이미 예상해두었다. 만약 능동 방탄막을 유지시켰다면 미스트레드의 핵폭발로 일어난 섬광 속에서 <콜로수스>의 흔적을 찾았을 것이다. 칼의 명령은 거의 시간을 지배하는 절대자를 연상시켰다.
과연 저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칼은 치밀하게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이 실행되기 무섭게 효력을 발휘했다. 칼 어니스트는 명령이 실행되는데 드는 시간들까지 모두 계산에 넣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다른 지휘관이라면 접근도 하기 전에 함선이 파괴되었을 테지만 지금 함선은 이미 적함대에게 1,200 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핵폭발로 인한 충격파를 엄폐물 삼아서 접근할 줄은 적함대나 아군함대 측에서나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던 것이다. 전투정보실에 있던 승무원들은 칼 어니스트 대령의 능력에 경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은 왜 그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령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적 함대와의 거리가 300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을 때 칼은 기다렸다는 듯이 명령했다.
“마지막 미스트레드 8발 추가 발사! 중력장 생성! 전 엔진 출력 20%로! 선체 회전 정지. 관성 항행! 모든 적 본체에 타겟팅하고 최대속사로 모든 무기 발포해! 이걸로 끝을 본다!”
미스트레드를 통한 마지막 섬광이 빛을 서서히 잃어 가자 그 섬광 속에서 <콜로수스>가 튀어나오며 엄청난 양의 무기들을 퍼부었다. 그동안 함재기들이 가하던 화력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25.4 페타 위츠 급 양자포신 앞으로 400미터는 가뿐하게 넘어갈 법한 거대한 플라즈마 폭풍이 발생했다.
수많은 양성자탄과 질량탄, 그리고 대함 미사일들이 빛줄기처럼 날아가 호루스 전함에 작렬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연방함선 입장에선 화려한 불꽃놀이와도 같았다. 제아무리 차세대 광역 레이더인 이그라스를 탑재한 군함이라고 해도 호루스 함대의 대형 내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대충 보면 아군끼리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멀리서 연방군의 공격은 계속 되고 있었다. 오폭이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었으나 칼은 이것을 전혀 염려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맞게 되면 정말 곤란해진다.
항공관제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페드릭은 갑판 밖에 있는 차폐막이 번쩍이며 스파크를 일으킬 때마다 불안함에 안절부절하지 못하였다. 함선의 급격한 운동을 차폐막이 견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관성제어장치가 따라가지 못할 수준의 기동성이라니. 이게 무슨 곡예기도 아니고….
아무리 우주공간에서 운용되는 전투기라도 자체적으로 탑재되어 있는 관성제어장치가 최대한으로 수용하는 수준은 240G까지였다. 이는 최대출력 상태의 기동에서 기수를 180도 꺾어 초광속 도약을 하지 않는 이상은 모든 상황에서 조종사를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콜로수스>같은 초대형 함선의 경우엔 관성제어장치가 더욱 탄탄하고 견고한 수준으로 탑재된다. 중량이 수천만 톤에 달하는 전함이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페드릭은 함선이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인 마냥 섬광만 번쩍이자 걱정되었는지 항공갑판스피커 전체와 이어져 있는 마이크 채널을 누른 채 소리를 질러댔다.
“모든 항공요원에게 알린다! 얼어 죽기 싫으면 지금 당장 하던 일 죄다 때려 치고 격납고 안으로 들어가! 차폐막 출력 상태가 불안정하니까 당장 뛰어!”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급했다. 이미 항공요원들은 모두 유영활동에 대비해 18시간가량 생존이 가능한 유영복을 입은 상태였다. 이 상태라면 함선 밖으로 빠져 나가더라도 언제든지 구조될 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밖의 상황은 1초에도 수십 개의 핵탄두가 폭발하고 폭발력이 없더라도 언제든지 극초음속으로 순항하고 있는 천만 개가 넘어가는 파편에 의해 뼈도 못 추릴 수 있었다. 지금 함선이 격침되든지 말든지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이 함선의 내부였다. 만약 사고가 생기더라도 그 죽음은 아주 신속하게, 자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찾아온다. 언제부턴가 불안하게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는 차폐막은 시간이 지나자 더 불규칙적으로, 그리고 간격도 전보다 더 빠르게 관측되었다. 뒤늦게 차폐막의 상태를 깨달은 항공요원들이 서둘러 도망가기 시작했다. 페드릭은 그들을 보며 닦달했다. 저 멀리서 항공갑판 한가운데에서 아래층 격납고의 입구를 향해 전력질주 하고 있는 항공요원 반이 보였다. 그들도 잘만 하면 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바로 그 때. 페드릭은 멀리서 느껴지는 작은 진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골판지가 찢겨져 나가는 작은 소리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그 소리는 음악공연 때 나오는 드럼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아주 거대한 문제가 발생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항공요원이 대피하는데 성공하자 뒤이어 전체 무선 채널에서 수만 가지 욕설과 비명이 들려왔다. 긴박한 목소리가 불규칙하게 교차하고 뒤이어 본체 방향에서 거대한 배출음들과 폭발음들이 울려 퍼져왔다. 분명 뭔가가 발생한 게 분명했다.
옆에서 불안해하는 수병을 제쳐두고 페드릭은 마이크를 붙잡자마자 칼에게 물었다. 하지만 전자계통의 일시적인 쇼크 때문인지 칼이 있는 전투정보실까지는 연결이 전혀 되지 않았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뭘 할 거 아니야!”
마이크를 내팽개치며 페드릭이 중얼거렸다. 거대한 규모의 폭발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관성제어기능이 정상이라는 것은 함의 핵심부가 박살나진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지 아까보다 함선의 기동성이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 심하게 들었다. 항공갑판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점점 빠른 속도로 지나쳐 갔으니까….
뒤늦게 데미지 제어가 되었는지 통신이 복구되자 그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칼! 무슨 일이야!?”
-좌현 항공갑판과 동체 사이에 초고속탄에 직격 당했다! 하지만 괜찮다. 갑판에 있는 항공요원들 외부활동에 대기하라고 해주게! 급소는 피했지만 직격으로 다시 맞게 되면 그땐 차폐막을 유지시킬 수 있는 출력도 공급하게 될 수 없을 거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인데 그러는 거야? 지금 여기까지 들리는 소리가 단순히 구멍 하나 뚫린 것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닐꺼라고.”
다시금 크게 흔들리는 갑판에서 페드릭은 균형을 잡으며 재차 물었다. 폭발음은 계속해서 들리고 있는데다 이건 분명 함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전해져 오는 소리였다. 페드릭의 물음에 칼은 무전기 너머로 ‘침묵’이라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1분 정도가 지나자 페드릭은 다시 말을 열었다. 그의 말은 항공관제실에 있는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좌현항공갑판과 동체의 연결고리에 초고속탄에 정통으로 한방 맞았다. 갑판 전체가 동체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갔어. 지금 간신히 피해 제어 중이긴 하지만 막상 성공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해도 한방 더 직격으로 받아내면 그땐 정말 끝이야.”
-…좌현 항공갑판에 있는 승무원의 숫자는 얼마나 돼? 전송빔으로 안되면 수송기 끌고 직접 구조하러 갈께. 어차피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많지 않아.-
“…….”
페드릭은 구조계획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아마도 이미 출격한 전투 편대에게 내릴 지시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페드릭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거부한다. 지금은 아니야. 네가 직접 구조하러 가는 일 자체가 당연히 허용할 수 없는 일인데다가 만약 구조대를 편성해서 내보낸다고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 헛수고일 뿐이야.”
-야! 그렇다고….-
예상대로 불평을 터트리려는 페드릭에게 칼은 일말의 감정조차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판에 있던 승무원들이 아까 자네가 지시한 것을 들었다면 외부활동에 대비해 복장을 갖추었겠지. 게다가 찢겨져나간 좌현 항공갑판은 그 즉시 적함대의 레이더에 ‘거대한 파편’으로 인식되어서 더 이상 그들의 관심거리가 되진 못 할 거야. 이번엔 내가 장담하지.”
-…….-
채널 너머로 페드릭의 말이 없자 그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레이더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방금 좌현 항공갑판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건 그의 예상에 없었던 점이었다. 동력 출력계가 갑판이 날아간 직후로 왼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었다. 임시 대책으로 아직 살아있는 우현 항공갑판의 모든 아광속 추력기의 출력을 최하로 낮춘 상태이지만 언제 균형이 깨질지 몰랐다. 이제 적함대의 남은 전함의 숫자는 총 10척. 이그라스 레이더에는 아직 90척 정도가 잡히고 있지만 출격한 편대의 보고와 좌표 상황을 따져 본다면 10척이 확실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우연히 타이밍이 맞춰진 건지 이그라스 레이더 상에 잡히는 모든 연방군 함선들이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리플렉터 블록으로 구성된 무기가 호루스 함대를 향해 날라가는 것이 발견되긴 했지만 크게 우려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가장 중요시되는 우선순위는 역시 적함대를 저지하는 것이니까.
아마도 이전에 <발키리>가 세웠던 전과 덕분에 상황은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논리적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 전세. 압도적인 기술력이 받쳐주지 않는 한 우주전에선 단순한 게릴라 전술 만으로 수적인 우위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할 법도 하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이 인간의 사고를 가져선 안 된다.
보다 넓은 시선에서 상황을 살피고 최대한 이쪽에 유리하게끔 만드는 것. 혹시나 그게 불가능하더라도 멀리서 마지막 공격을 가하며 다가오고 있는 아군 함대의 힘이 보다 효과적으로 통하도록 이끄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언제부턴가 적함대의 모든 움직임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조건만 갖춰진다면 가장 까다로웠던 적전함의 아광속탄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현재 적함대를 향해 <콜로수스>가 정면으로 향하는 속도는 매초당 185 킬로미터. 최대출력 가속이었지만 속도가 이것밖에 되지 않는 이유는 이 함선의 중량이 웬만한 전함의 몇 배가 더 나갔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였지만 시간만 주어진다면 <콜로수스>의 이론상 최대속도는 광속의 89%였다. 물론 함선이 이 속도에 접어들면 스피드 브레이크 같은 짓은 감속 행위는 무조건 불가능해진다.
순간 통신관이 적함 한척이 격침당했다고 보고한다. 피격당한 적함을 주위에서 피해를 입히던 함재기가 육안으로 확인해 전달한 확실한 정보였다. 몇몇 장교들이 환호한다. 하지만 뒤이어 함선 전체에 퍼지는 충격파로 인해 다시 조용해진다. 이제 남은 적함은 9척.
적함대간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적탄에 스치거나 정통으로 맞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사거리 전이 더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었지만 <콜로수스>의 납작한 함체를 이용한 접근이 훨씬 더 유리했다. <콜로수스>의 전고가 전장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측면이나 전면에서 접근하면 50킬로미터 이상 접근해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이그라스는 잘 모르겠지만 위상배열 레이더로는 관측하기 어려워진다. 함선의 납작한 선형이 별빛 속에 녹아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콜로수스>는 호루스 함대가 위치한 곳에 도달하자 거의 막무가내로 함대의 대형을 뒤집어가며 포격을 가했다. 워낙 근접한 거리라 명중률은 거의 100%. 근접방어용으로 탑재된 CIWS나 ODWS, 대공 미사일 조차 지금 만큼은 오로지 공격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회피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공격. 게다가 호루스 전함의 최대 이점을 칼은 완전히 간파한 상태였다. 본체만 찾아 조지면 나머지 ‘분신’ 역할을 하고 있는 드론들은 제 기능을 잃고 대형이 자연스럽게 무너져 내렸다.
물론 <콜로수스>가 일방적으로 적전함에 피해를 가한 것은 아니었다. 호루스 함대의 대형 속을 뒤집으면서 <콜로수스>를 지켜주고 있던 유일한 방어수단인 능동 방탄막은 제 기능을 다했고 함선 전체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외부에서 들어오고 있는 연방군 함대의 무기들도 <콜로수스>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가했다. 관통력이 뛰어난 호루스의 무기와는 반대로 연방함선들의 모든 무기들은 폭발력이 강했다. 다만 상성이 맞지 않아 호루스 전함에는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콜로수스>에게는 아니었다. 호루스 전함을 거의 스치다시피 지나가다보니 오폭도 일어나던 것이었다.
함체 곳곳 갈라지거나 찢겨진 틈에서 수시로 폭발이 일어났고 뒤이어 화재가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불이 다른 구역으로 옮겨져 갔다. 피해 제어도 더 이상은 한계였다. 허나 그럼에도 칼의 머릿속에 포기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함선이 점점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어도, 주위에 있는 승무원들의 마음속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더라도 칼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세를 억누를 것만 같은 오라를 내뿜고 있었다.
항공갑판이 통째로 떨어져 나간 이후로 <글라디우스>의 이그라스에도 보이기 시작한 <콜로수스>는 이제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어 적함대의 대형을 휘젓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더 이상 영구적으로도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함선은 아직까지도 통제 가능한 상태인 것 같았다. 한마디로 승무원들의 피해 제어 기술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승무원 피해도 엄청났을 것이다. 맥 대령은 <콜로수스>의 안전을 염려하는 눈으로 레이더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이미 이쪽에선 총공격을 감행한 상태지만 적전함을 상대로 하기엔 화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육안으로는 절대 관측할 수 없는 거리여서 자세한 상황은 레이더로만 그럴싸하게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글라디우스>의 비장의 무기였던 연방군 버전으로 개조한 리플렉터 탄도 저 외계전함을 상대로는 무용지물이었다. 포탄이 적함에 도달하기도 전에 방어막에서 저지당하고 있던 것이다. 원인을 모르는 그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무력하게 느껴지는 것도….
연방항공우주군의 거의 모든 함대 병력이 온갖 무기들을 퍼부어도 끄덕도 안하던 외계함대가 오늘 초공간에서 나온 단 2척의 전함으로 인해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 나갔다. 이미 한척은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지만 또 다른 한척의 전함은 앞서 왔던 X700이라는 모델명의 전함과 같은 길에 빠져가면서도 적함대의 숫자를 최대한 줄여 놓고 있다. 무슨 방법을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전함의 화력은 단시간 내에 적함 7~8척을 초토화를 시켜놓고 있었다. 그는 그 점에서 상당한 의문이 느껴졌다. 적함대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엄청나게 당황한 느낌이었으며 함대의 모든 화력을 저 함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군 함대 쪽에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지만….
전보다 승산이 늘어난 것에 대해선 아무런 불만이 없었지만 16일 동안 일어났던 이 전투로 인해 연방 사회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도 없이 아주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만약 지금 전투가 승리해서 장기전 양상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이건 분명 이미 진거나 다름없는 전쟁이었다.
콰아앙!
“함체 손상, 기압 손실! 상갑판 55~72번 구역과 32-5 구역에서 대규모 화재 발생입니다! 인명 피해는 사상자 32명, 실종자 95명입니다!”
“R-2 아광속추력기 작동 불능! 주위의 보조 추력기 3개 과부하 중입니다. 1분 안까지는 이쪽에서 원격으로 제어가 가능합니다!”
“우현 항공갑판에서 피해 보고입니다. 2번 활주로에 파편이 관ㅡ.”
“포격 배치를 최대 속사 모드로 변환해! CIWS와 ODWS는 반경 50킬로미터 내에 대공화망 깔아두고 재고가 남아있는 대함 미사일은 아직 멀쩡한 적함에 조준하고 순차로 발사시켜! 동력제어부서! 가능하면 추력기로 가는 동력을 모두 능동 방탄막에 집중시켜!”
함선이 처참하게 박살나는 중에도 칼은 끊임없이 명령을 내렸다. 이미 상갑판에 배치되어 있던 양성자포 10기 중 4기가 본래 생김새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나버렸고 함체 곳곳에는 지름 30미터에서 50미터까지 다양한 크기의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콜로수스>가 호루스 함대의 대형 내부를 휘젓고 다니면서 집중적으로 받은 피해들이었다. 특히 능동 방탄막이 그대로 나가버린 상황에서 외부격벽이 초고속 탄을 막아내기란 분명 역부족이었고 스치거나 정통으로 받는 경우엔 탄두가 그대로 관통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고속 탄들이 폭발하지 않고 그대로 관통한다는 것이었다.
사방이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콜로수스>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끊임없이 적전함을 향해 빛줄기를 뿜었다. 가장 밝은 수준의 빛줄기는 주포인 2연장 양성자 포에서 뿜어낸 것이었고 그 외에 자잘한 것들은 CIWS나 ODWS 같은 방어 무기들이 뿜어낸 빛들이었다. 이제 남은 적전함은 총 3척. 4척은 미리 출격했던 여러 공격 편대가 해낸 전과였다.
모든 공대함 미사일들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조종술로 자체 무장인 기관포만을 사용해 적함의 주요부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이것은 멀리서 사거리 전을 유도하고 있는 연방 함선들의 수백 밀리미터 구경의 함포보다 훨씬 효율적인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칼은 조종사들이 활약을 해줄 것까진 계산해 넣어두지 않고 있었다. 그는 사실 편대가 함대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전투기와 전함의 전력비율은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그 당연한 듯 한 인식이 180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조종사와 기체간의 효율성은 조건만 잘 갖춰진다면 최상의 전투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적전함에게 최대한으로 접근했다. 가장 걸림돌이었던 방어막의 파장 때문에. 한 척, 한 척 씩 적전함들은 엔진과 레이더 시설, 그리고 각종 화기 제어 시설들이 집중 포격을 받으며 이빨 빠진 호랑이 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마 꾹 참고 아끼고 있던 대함 미사일이라도 있었으면 무지막지하게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 최대한 근접해서 갈기고 있는 것만큼 명중률은 확실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전함으로부터 집중되는 포격들의 빈도가 낮아져갔다. 확신컨대 적전함의 사격통제체계도 레이더가 박살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았다. 초고속 탄의 위력만큼 무기체계는 그에 비례해서 엄청나게 정교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겠지. 마침내 항공관제실에서 페드릭의 욕설 섞인 보고가 전해져 오자 전투정보실에 있던 모든 승무원들은 생사가 걸린 전투로 인해 잡힌 긴장을 겨우 풀 수 있었다. 생전 듣도 보도 못 했던 외계인들과의 첫 전투가 이제야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환호하는 승무원들은 없었다. 함선이 입은 피해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손상이 심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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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겨우겨우 막장전개 가동으로 간신히 전투는 종료시켰는데... (내 다음부터 물량전 쓰나봐라...) 이제 다음이 또 문제군요. 영상으로 생각하면 매치가 딱딱 되는데 글로 쓰니 이건 뭐... 음음;
그럼 또 다음 회로 넘어가는 일만 남았군요~. 막장 전개는 계속 됩니다. 코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