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프레데터들

영화 <AvP>가 나왔을 때 <AvP>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프레데터에 너무 무게를 실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시리즈가 아니라 <프레데터 3>다’라는 비평이었죠. 사실 어찌 보면 맞는 말인 게 <AvP>에서 새로운 면을 많이 보여주는 건 프레데터 쪽입니다. 에일리언이 기존 이미지에서 거의 변화가 없는데 반해 프레데터는 무기에서부터 배경까지 수많은 점이 추가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이미 외전에서는 많이 등장한 요소지만, 공식 영화에 등장한 건 처음이었죠.

일단 이 영화에서는 프레데터가 왜 지구로 사냥을 오는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아직 어린 사냥꾼들이 성인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지구로 내려온다는 게 그 이유죠. 그 전에는 프레데터가 왜 지구로 인간 사냥을 오는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최초로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프레데터라는 크리쳐의 성격을 더욱 명확히 규정지으려는 시도죠. 그래서 프레데터가 지구에 앞선 문명을 전수했다거나 지구인들이 프레데터를 신으로 떠받드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해서 프레데터를 둘러싼 설정은 뚜렷해졌으며, 단순한 크리쳐가 아니라 하나의 종족으로 더욱 굳어지게 되었죠. (종족 이름이 안 나온 건 참 치명적인 단점입니다만)

성격만 새로워진 건 아닙니다. 우주선이나 무기, 갑옷 등 새로운 디자인도 추가되었습니다. 새 무기도 등장했으며, 기존에 있는 무기도 외관을 고쳐서 영화에 나왔죠. 각 프레데터를 자세히 보면, 갑옷, 칼, 창, 어깨포 등이 전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플라즈마 볼트 또한 시각효과가 훨씬 나아졌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번에는 아예 프레데터 부족장까지 빨간 망토를 끌고 등장했습니다. 거대한 우주선은 멋지게 등장해 지구를 배경으로 우아하게 날아다닙니다. 이 정도면 꽤나 출세했다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프레데터는 이제 인간의 편에 서서 싸웁니다. 비록 공공의 적수인 에일리언을 무찌르기 위해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간과 프레데터가 손을 잡은 것에 불과하지만, 여하튼 프레데터는 이제 우리 편(?)입니다. 일견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때려잡기만 하는 수많은 괴물들 가운데서 외계 사냥꾼을 유독 독특하게 빛내 줍니다. 사람 머리만 베어가는 우주 괴물에서 말도 통하고 교류도 할 수 있는 외계 친구로 거듭난 거죠. 프레데터가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장면은 예전에도 나왔지만, 여기서는 아예 죽음을 숭고하게 만듭니다. 주인공을 지키다 죽었으니까요.

프레데터가 이렇게 달라진 반면 에일리언은 변한 게 거의 없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서는 신종이 안 나왔습니다. 바둑판 에일리언은 프레데터를 순식간에 둘이나 죽였지만, 그건 개체 하나의 특성일 뿐 신종이라고 볼 수는 없죠.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능력을 발휘한 것도 아닙니다. 여왕이 나와서 무섭게 설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액션만 그럴 뿐 설정상 새로운 요소는 첨가하지 않았죠. 에일리언은 언제나처럼 어두운 곳에서 습격하거나 떼를 지어 나와서 총알받이로 죽어주는 역할만 했습니다. 바둑이 에일리언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아무런 생각도 없는 괴물집단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러면 프레데터에게만 무게가 실린 이유는 뭘까요. 우선 프레데터는 다른 종족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상대를 보면 무조건 물어 죽이는 에일리언과 달리 프레데터는 때때로 명예로운 사냥을 위해 목표를 놔주기도 합니다. 삼자 대립 구도인 만큼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중 하나는 인간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에일리언보다야 프레데터가 설득력이 있죠. 솔직히 프레데터가 인간과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에일리언과 인간이 우호적으로 소통했다면 꽤나 우스웠을 겁니다. 어느 정도 문명을 갖춘 종족이니 이쪽으로 인간이 다가서는 게 낫습니다.

다음으로 프레데터는 장비가 많습니다. 장비가 많다는 건 추가할 거리가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죠. 간단히 군장을 떠올려 보세요. 기실 개인화기 하나만 해도 버전이 얼마나 많습니까. 애초에 몸으로 때우기만 하는 에일리언에게는 추가해주고 싶어도 신체적 제약이 있어서 그렇게 하질 못합니다. 새로운 능력을 부여하고 싶으면 아예 새로운 종을 만들어야 할 판이니까요. (하지만 피라미드에 갇힌 줄거리로는 신종을 만들기가 쉽지 않죠) 따라서 장비빨로 승부하는 프레데터에게 매달릴 디자인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제일 중요한 건 프레데터는 그만큼 하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는 겁니다. 에일리언은 그간 시리즈를 4편이나 만들었기에 어지간히 보여줄 건 다 보여준 셈입니다. (고향 행성 같은 중요한 설정이야 진짜 비밀이니 절대로 알려주면 안 되겠죠) 반면 프레데터는 시리즈도 2편 밖에 안 되고, 그나마 1편에서는 배경을 별로 보여주지도 않았으므로 감춘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선도 기껏해야 10초 정도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굳이 고향 행성을 밝히지 않아도 이야기에 살을 붙이기가 쉽다는 뜻이죠. 어찌 보면 프레데터가 그만큼 허술한 크리쳐라는 뜻도 되니까 아쉬운 구석이긴 합니다.

여하튼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화 <AvP>에서는 프레데터에게 무게를 실었습니다. 만약 스케일이 좀 더 컸다면 에일리언에게도 무게를 실을 수 있겠지만, 피라미드에 갇혀서 빠져나가는 게 기본 줄거리니까 어쩔 수 없었겠죠. 그래서 에일리언 팬들이 보기엔 별로 만족할만한 부분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야 프레데터의 새로운 배경 설정과 새롭게 단장한 무기들을 보는 게 매우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어깨포가 별로 안 나와서 아쉬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