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 키드 원작만화

<명탐정 코난>은 현재 일본에서 인기리에 연재되는 소년 탐정 만화입니다. 연재 잡지를 팔리게 해주는 일등공신이며, 단행본은 50권도 넘게 나왔고, TV 시리즈는 400편이 넘어가며, 극장판도 10편이나 만들어졌다고 하죠. 원작자 아오야마 고쇼가 도대체 언제쯤이나 끝을 낼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계속 연재해도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을 만큼 재미가 넘쳐납니다. 내용은 주로 어린이가 된 구도 신이치가 다양한 탐정/형사들과 함께 각종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게 주된 줄거리입니다.

탐정 만화에는 으레 탐정을 골탕 먹이는 도둑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역시 <코난>에도 괴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코난>에는 괴도 키드라고 불리는 쿠로바 카이토가 도둑으로 등장해 코난을 번번히 골탕 먹입니다. 괴도 키드는 (일본인들 특유의) 아르센 뤼뺑을 모델로 삼았는데, 물건을 훔친다는 예고장이나 실크 모자와 외알안경, 신출귀몰한 변장술, 여성을 매혹하는 기품 등 뤼뺑을 그대로 빼닮았죠. 탐정과 형사만 득실대는 만화라서 그런지 때때로 괴도 키드는 주인공 코난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괴도 키드에게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명탐정 코난>에 나오긴 하지만, 실상 이 도둑은 <코난>의 오리지널 캐릭터가 아닙니다. 원작자 아오야마 고쇼는 <명탐정 코난>을 그리기 몇 년 전에 <매직 카이토>라는 만화를 그렸습니다. 마술사 괴도가 등장하는 코믹 만화인데, 여기 주인공이 바로 괴도 키드입니다. 하지만 <매직 카이토>는 단행본 3권으로 미완성이 나고 말았죠. 따라서 괴도 키드는 엄연한 ‘크로스오버 캐릭터’라는 겁니다. <코난>에서 인기를 구가하지만, 원작 만화는 번듯하게 따로 있는 셈입니다.

만약 원작자가 괴도 키드를 <코난>에 등장시키자 않고 그대로 묵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괴도 키드가 지금처럼 인기를 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힘들 겁니다. 사람들은 단행본 3권짜리 도둑을 기억해주진 않았을 테니까요. 따라서 괴도 키드는 원작이 아닌 크로스오버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작이 있지만 다른 작품에 출현해서 인기를 얻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괴도 키드를 보면 프레데터가 떠오릅니다. 프레데터 역시 크로스오버를 해서 두 번째 전성기를 구사한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AvP>라는 크로스오버가 없었다면 요즘에 프레데터를 보기가 굉장히 힘들었을 겁니다. 에일리언과 싸우는 캐릭터로 남았기에 아직까지도 프레데터가 인구에 회자되는 거죠. 어찌 보면 코난의 인기에 괴도 키드가 편승했듯 에일리언의 인기에 프레데터가 물결을 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에일리언의 엄청난 유명세를 프레데터가 살짝 빌려서 오늘날의 프레데터가 다시 탄생한 거죠.

물론 괴도 키드와 달리 프레데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놀드라는 스타를 기용했고, 아카데미에 후보로 올라갔으며, 외계 사냥꾼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제시했고, 이 영화가 흥행해서 <다이하드> 같은 영화도 나올 수 있었죠. 미완성으로 끝난 <매직 카이토>에 비해서, 그리고 그 자체로도 <프레데터>는 엄청나게 성공한 영화입니다. <AvP>가 아니었어도 프레데터라는 캐릭터 자체는 사람들 뇌리에 남았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처럼 코믹스가 쏟아져 나오는 상품성을 잃어버렸을 겁니다. 그저 괜찮은 외계인 영화 정도로 그쳤겠죠.

거기다가 프레데터와 괴도 키드는 둘 다 크로스오버를 하면서 설정이 많이 변했습니다. 프레데터는 기존 영화에 비해 세계관이 엄청나게 넓어졌습니다. 하긴 에일리언을 사냥하려면 세계관이 넓어지는 것도 당연하지요. 괴도 키드는 인물상이 아예 달라져서 <매직 카이토>에 나오는 키드와 <명탐정 코난>에 나오는 키드가 서로 다른 인물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코난>에서는 키드가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지만, 원래는 개그 캐릭터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프레데터와 괴도 키드는 원작에서 얼마쯤 벗어났다는 거죠.

그리고 프레데터와 괴도 키드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만큼 <AvP>가 <코난>의 연출을 참고로 삼아도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괴도 키드는 등장 빈도수가 얼마 없지만 비중이 꽤 큰데, 프레데터도 이처럼 만드는 거죠. <AvP>는 인간, 에일리언, 프레데터 3종족이 구도를 이루다 보니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데, 프레데터의 빈도를 줄여서 구도를 보다 탄탄하게 만드는 겁니다. 빈도가 줄어도 프레데터는 개성이 강해 비중이 줄지는 않을 겁니다. 영화 <AvP>에서처럼 출현 시간만 많고 하는 일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AvP 2>에서 프레데터가 어찌 나오려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괴도 키드처럼 나타났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면 영화 구도를 망치지 않으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명탐정 코난>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