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OM : The Unknow Enemy (19)

2000년 2월 3일 (2)

  힘든 훈련을 마친 후의 샤워는 정말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게다가 그 훈련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린 뒤라면…. 그·러·나. 제 아무리 상쾌한 일도 때에 따라서는 곤욕일 수가 있는 법….

  "샤~워! 샤~워! 샤~워하세! 우~리~ 모두~~, 기분을 풀고!"

  특히, 사방에 소리가 울려대는 샤워실에서 괴상한 노래(?)를 불러대는 자가 있다면 그때는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와 둘 밖에 없는 샤워실에서 큼지막한 소리로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대는 녀석. 게다가, 그 녀석은 바로 하나 뿐인 내 파트너, 토머스였다.

  전장에서도 끊이지 않는 수다와 못말리는 술버릇 외에도, 녀석에겐 큰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분이 좋을 때마다 노래를 불러대는 것이었다. 자칭, 가수라고 떠들어대는 녀석의 노래는 대부분 자신의 자작곡(?)이었는데, 말이 자작곡이지 거의 그때그때 기분나는대로 흥얼거리는 정도 일 뿐으로, 노래 가사부터가 괴상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녀석이 엄청난 음치였다는 사실이다. 이제껏 수많은 동료들이 녀석의 노래 때문에 고개를 저었지만 오늘의 노래는 더욱 듣기 괴로웠다.

  조용히 말해도 울려대는 샤워실. 게다가 부를때마다 음정, 박자가 달라지는 노래를 몇 번이나 듣는다면 과연 버틸 수가 있을까?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전생에 뭔가 죄를 지은게 틀림없어. 내가 어쩌다 저런 스피커 남자와 파트너가 된 거지?'

  하긴, 뭐 이렇게 중얼거려봐야, 어차피 나는 평생 녀석과 떨어질 순 없는 것 같으니 이 또한 내가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런 말을 녀석에게 하면, '무슨 소리! 나처럼 유머 있고 똑똑하고 잘난 동료와 함께 라니, 세계 제일의 행운아인줄 알라고'라고 응대했겠지만….

  '하긴, 생각해 보면, 운이 좋은 지도 모르지.' 샤워기로부터 쏟아지는 물줄기를 등으로 흘리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녀석과 만나기 전, 아니 녀석과 만난 후 얼마동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때, 토머스의 노래가 그치고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라이너. 도대체 언~제까지 물벼락을 맞고 있을 셈이냐? 대체, 물하고 원수라도 진 거야 뭐야? 팅팅 부은 남자는 인기 없다고."

  토머스가 있는 옆 샤워실을 잠깐 바라보았다. 언제였던가? 분명, 중남미에서 있었던 며칠간의 게릴라 소탕전-이라기보다는 학살전-에서 돌아왔을 때, 녀석은 샤워기 밑에 앉아 옷에 흥건하게 묻은 피를 흘려보내는 내 옆에서 선 채 천연덕스럽게 괴상한 노래를 불러대면서, 말을 걸어 왔던 것이다. 당시엔 오랜 동료들조차 피하던 내게….


  "그렇게 서둘지 마라. 토머스. 어차피 지금은 휴식 시간이니까 천천히 하자고." 이렇게 말하며, 샤워기를 껐다. 사실, 천천히 하자고 라고 말하긴 했지만, 더 이상 샤워를 계속한다면, -아니, 더 이상 토머스의 노래를 계속 듣는다면- 아마도 온 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좋아~. 좋아~. 뭐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곡!" '으윽!'

  "알자스 상공에 적기 출현. 제 2 전투 분대는 출동 대기하라."

  그 순간, 갑자기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제 2 전투 분대(물론 우리 분대이다)의 출동을 알리는 메시지. 이전에는 때때로 일말의 불안을 안겨다 주었던 출동 메시지였지만, 그 순간은 그 어떤 느낌보다도 '두려운 존재'로부터 구출되었다는 안도감이 가득했다.

  나는 이때다라는 듯이 옷을 대충 걸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내 뒤를 쫓아오며 투덜거리는 토머스. 뒤돌아보며 피식 웃던 나는 모퉁이를 돌다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 미안!" 고개를 숙이며 쓰러진 상대에게 사과를 하는 순간, 냉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이 시야에 들어왔다. '얼음 공주.' 나는 문득, -최근 동료들 사이에서 불리는- 그녀의 별명을 떠올렸다. 그녀는 스베틀라냐 일리노바. 거의 전멸한 3분대로부터 우리 분대에 들어온 이래 계속 훈련에서 최상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대원이었다. 그리고, 같은 분대였으며 현재 파트너인 린 레이첼을 포함한 모든 대원에 관심을 두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기도 했다.

  내가 도와주려는 것을 무시하고 혼자 일어나는 스베틀라냐.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조심해요." 감정 없는 목소리로 짧게 내뱉고 걸어가 버리는 스베틀라냐. 순간 토머스와 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에…. 이거 참 정말 얼음장같은 아가씰세 그래. 저런 아가씨하고 같이 다니고 싶은 사람도 있을까?"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내는 토머스. 그의 얼굴에서도 잠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거 참 미안하군요. 그 얼음장같은 아가씨와 파트너라서."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짧은 검은머리의 동양인 여성이 그 곳에 서 있었다.

  "아… 이거, 린 레이첼 하사님 아니십니까? 이거 참 얼음 공주님과 함께 다니시느라고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그려." 토머스의 부활! 린과의 설전을 위한 서곡의 시작이었다.

  "뭐. 별로 대단할 건 없죠. 그쪽이야말로 파트너께 너무 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요? 그렇죠? 라이너씨?"

  "그게 무슨 말씀을, 우리 라이너야 저같이 똑·똑·하고, 유머 있고 멋진 친구를 파트너로 두어서 정~말 행운일걸요?"

  '이봐! 이봐! 갑자기 왜 내 쪽으로 주제가 바뀐 거야!'

  "무슨~ 말씀을, 왜 누구누구는 소음에 중독이 된 나머지 웬만한 소리에는 끄떡도 않는다는 소문도 돌던데요."

  '어이! 어이!'

  "아~하. 그래요? 그럼 그 누구누구라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사니~임."

  그때,

  "이봐! 라이너! 토머스! 거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출동 대기 명령을 듣지 못했나?"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함과 동시에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격납고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인물로부터 더 이상 분노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도록….

                            ★∼을 사랑하는 표도기였습니다...컴

------------------------------------------< PYODOGI >-------
profile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