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OM : The Unknow Enemy (12)

2000년 1월 21일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비추지 않는 야간. 사방은 어둠 속에 잠긴채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부딛친 갈대만이 사각거리고 있었을뿐, 깊은 정적 속에 세계는 그대로 멈추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심장의 고동 소리조차 잠겨가는 듯한 느낌 속에서, 오른손 검지에 뭔가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삑'
  짧고 강렬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기분나쁜 소리. 그리고, 갈대숲 저편을 향해 있던 내 시선은, '표적'이었던 검은 물체 위에서 붉은 램프가 켜진 것을 포착했다.
  '명중!'
  나는 마음 속으로 크게 외쳤다. 지금, 아무런 소리도, 느낌도 없는 무기는 저 멀리 '표적'에 명중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떤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표적'의 표면에는 아주 깊고도 예리한 구멍이 뚫렸으리라….
  기분 나쁠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아무런 조짐을 남기지 않는 무기. 이 것이 바로 연구팀에서 개발한 AX-1 레이저 라이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내 손에 들려진 채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렬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총성을 남기지 않고 약간의 연기조차 남기지 않는…. 마치 암살자와 같은 효과를….
  '역시 영화와는 다른 걸까….'
  갈대 숲 저편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면서, 내 머리 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XCOM에 들어오기 얼마 전, 나는 토머스 일당-토머스와 한스 그리고 그때는 찰리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과 함께 얼마전 개봉했다는 스타워즈 4편을 보았다. 용병에서만 활동하면서 친구같은 건 전혀 없었던 내게 있어 생애 최초의 극장 관람….
  비록 우리가 갔던 극장은 큰 개봉관이 아니었던 관계로 화면은 흐릿하여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우주 공간을 뚫고 사라지는 레이저 광선의 강렬한 소리, 그리고 녹색의 불길…. 그것은 처음 보았던 SF 영화의 인상과 더불어,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레이저 광선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어렴풋한 기억을 남겨 주었다.
  그러나, 며칠 전 시연 때도 느낀 점이었지만,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이 것은, 어떠한 소리나 빛도 남기지 않았다. 만일, 방아쇠를 당길 때 귀 아래쪽에 대고 있는 이어폰(이 것은 XCOM 대원에게 제공되는 컴링크의 일부이다.)으로부터 소리가 들려 오지 않았다면, 내가 발사한 것인지 조차 알 수 없었으리라.
  그렇다. 분명 이 것은 기분 나쁠 정도로 아무런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소리도, 냄새도 없이 날아오는 화살과 같다고 할까? 물론, 야간 중의 전투에 있어서는 이 쪽이 훨씬 좋은 것이겠지만, 어릴 때부터 총성과 화약 냄새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선, 시뮬레이터의 어색한 감각만을 더해줄 뿐이었다. 왠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장난과 같다는 느낌을….

  갈대 숲을 헤치며 전진하던 나는, 갈대 숲 너머 전방에 또 하나의 '물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목표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사실 이 정도 거리-그리고 이 정도 은폐 상태-가 가장 적합했다.
  총을 몸 오른쪽에 살며시 내려놓고 엎드린 후 목에 걸고 있던 야간 암시경을 통해, '물체'를 살펴보았다. 아마도, 녹색의 옷을 입은 인간…. 그러나,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근육질의 신체를 드러나게 해 주었고, 어두운 배경에서 간간히 비쳐 보이는 얼굴은 어두운 자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뮤톤(Muton).'
  나는 적의 정체를 확인하고, 마음 속으로 외쳐 보았다. 저 놈의 독특한 모습은 -비록 인간과 가장 흡사하게 보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이제껏 많은 동료를 해쳐왔고, 며칠 전에는 찰리의 목숨을 앗아간 놈.
  '적은 확인되었다.'
  나는 야간 암시경을 내려놓고, 조용히 총을 들어 사격 자세를 취했다. 야광 처리가 된 가늠쇠 너머로 '적'의 모습이 보였다.

  '적'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50m정도….' 조준 사격에는 더 없이 좋은, 근접 상황이었다. 오른손 집게손가락에 방아쇠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호흡을 멈추고, 방아쇠를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인가. 조금 전의 짧고, 강렬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두번째 듣게 되지만, 결코 친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소리….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조짐이 없었지만, 내 이성은 내가 레이저 라이플을 들고 있으며, 이 총이 발사되었다는 것을 소리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전장에서 멀어져갔던 이성이, 이 순간만은 내 감각의 오류를 수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눈이 가늠좌에서 떨어진 순간, 이성의 다음에 이어 내 눈이 총이 발사되었으며, 명중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적'의 머리 위에 밝혀진 작은 램프를 보면서…. 이번에도 레이저 라이플은 정확한 명중율을 보인 것이다.

  '기분 나쁠 정도로 완벽한 무기다. 친숙해 지기 어려울 정도로….'
  훈련을 마치고 샤워룸으로 향하던 중 나는 아까의 감각을 떠올리려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매우 만족한 듯 했다. 완벽한 무기라고 치켜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중 일부 사람들은 '기분나쁘다.'는 말을 중얼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지만 나 또한 그런 기분이었다. 너무도 완벽한 무기, 그러나, 아무런 조짐을 보이지 않는 공포스러운 기분…. 어째서일까? 나는 이 훈련이 SF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찍고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총은 발사되지도 않았고, 적에게 명중한 것도 아니었으며, 나중에 작업자들이 필름에 레이저 광선을 그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떤 이유인지 내게는 이 무기가 장난감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리라…. 분명 내 이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것은 매우 강력한 무기이다. 그리고, 찰리의 복수를 하고 나와 동료들의 생존을 도와줄 강력한 우군이라고….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이성은 지금까지 내 모든 것이었던 감각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투의 감각이 틀렸다. 이 것은 5살 때 전쟁터에 도착한 이래(아니, 부모님을 잃고 전쟁터에 홀로 떨어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알 수 없는 모순에 나는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라이너 하사…. 생일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나이는 25세. 키 175cm에 몸무게 63Kg. 동양인이고 가족 사항 불명. 1993년 중남미에서 용병으로 등록…."
  내 뒤편에서 누군가가 읊조리는 소리가 들여왔다. 갑작스러운 일에 놀란 표정으로 돌아본 내 시야에 검은색 뿔테 안경을 눌러쓴 금발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 안경 밑으로, 아직 채 20살도 되지 않은 듯한 어린 얼굴…. 하얀색 연구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라이플을 개발했다는 마린 파커 박사였다.
  '그녀가 무슨 일로….' 나는 잠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레이저 라이플을 개발한 사람이고, 분명 오늘 훈련에 있어 참석을 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훈련 결과를 검토 중이어야 하는게 아닌가?
  내 얼굴에 나타난 의아함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알고서도 무시한 걸까? 그녀는 손에 든 서류만을 보면서 계속 읽고 있을 뿐이었다.
  "….. 사격 능력 A+, 야외 수색 훈련 점수 A….. 그리고 오늘의 훈련 결과는 상당히 우수함."
  서류의 읽기를 마친 후, 잠시 그것을 보고 있던 마린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당하군요. 과연 로리스가 신경쓸만 해요."
  "이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리고 여긴 왜?"
  나는 별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감정 없는 목소리로 물어 보았다. 그녀는 질문을 던지는 내가 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왜냐니요? 나는 레이저 라이플의 개발자예요. 그리고, 이건 내 '작품'을 활용한 첫번째 훈련이죠. 아, 물론 X-COM대원에게 일반적으로 공개된 훈련에 제한한 경우의 일이지만…."
  '작품이라고….'
  "내가 묻는 것은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당신이 이 곳에서 내 파일이나 읽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별로. 단지 수많은 대원 앞에서 내 체면을 묵사발로 만든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과연, 그녀의 말은 브리핑을 마치고 느꼈던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의 이유를 알려 주고 있었다. 당시, -나로서는 분명 해야 할 것만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녀는 상당히 기분이 상했던 것이며, 아마도 그 일로 인해 내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모양이었다. 게다가, 로리스 분대장과 대학 동창이며, (그녀의 말에 의하면) 라이벌이기도 하다는 마린 파커양은 분대장에 필적할 정도로 직선적인 성격이었던 듯 이렇게 직접적으로 부딪쳐 온 것이었다. 당혹감 속에서 나는 씁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추가하자면 그 '인물'이 내 '작품'을 어떻게 잘 쓰나 궁금하기도 했고요."
  덧붙이듯 말하는 그녀의 음성은 왠지 전보다 훨씬 작아진 듯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어색한 감정 속에 침묵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갔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파커 박사였다.
  "좋아요. 뭐 다른 것은 그렇다고 치고…."
  그녀의 말은 길게 끌듯이 이어졌다.
  "내 '작품'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예?"
  시선만 그녀를 보고 있었을 뿐 사실 얼마간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오인한 듯 다시 한 번 정확히 질문을 던졌다.
  "오늘 훈련에서 레이저 라이플을 써본 소감이 어떤가 말예요."
  그녀의 질문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무어라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시연시에 보았던 엄청난 위력, 그리고 아무런 조짐도 없이 표적을 꿰뚫는 그 예리함. 병사로 치자면 마치 잘 훈련된 저격수를 보는 듯한 그 느낌…. 그러나, 그러한 느낌을 그녀에게 무어라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녀(파커 박사)는 분명 전투의 경험은 전혀 없어 보였고, 그런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하기엔 그 '느낌'은 너무도 미묘한 것이었으니까. 결국 한참을 생각한 끝에야 나는 그녀에게 대답할 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상당히 좋았습니다. 성능 면에서 만족할 수 있었고, 특히 -누가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전기의 이어폰을 통해서 발사음이 들리도록 한 것은 매우 훌륭한 발상이라 생각되는군요."
  "그래요…."
  그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일순 환해지는 듯이 느껴졌다.
  "물론, 그 것은 제 발상이죠. 사실상 총을 쏠 때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자신이 쏘았다는 것도 모를테고…."
  그녀는 들뜬 나머지 더욱 높은 톤으로 자신있게 '그 일'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던 박사는,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목소리를 죽이며 나를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 그것은 비록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마치 TV 드라마 속에서 부모에게 혼나기를 기다리는 어린애의 표정을 생각나게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귀여운 반응이랄까….
  "그렇지만, 아직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또 뭐죠? 지난번에 지적한 문제들은 모두 고쳤잖아요!"
  파커 박사는 기분이 나빠진 듯, 매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왠지 알게 모르게 재미있다는 느낌을 가지며….
  "제 생각으론…. 우선 효과음 출력은 좋았지만 그 때문에 총기와 무전기 사이에 전선을 연결한 것은 조금 귀찮은 일이더군요. 라이플을 움직일 때 조금 걸리적거리기도 했고, 숲을 지날 때는 줄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고…. 물론 총기를 내려놓고 관측하는 일은 더욱 불편하고."
  "그리고요."
  이렇게 추궁하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퉁명스럽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변화를 아예 무시하기로 생각한 나는 말을 이어갔다
  "다음으로 총기의 색깔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광택 페인트를 쓴 것을 좋았지만 여전히 밝은 색조 더군요. 느낌은 좋지 않더라도 어두운 색의 페인트를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세번째로 이건 '느낌'에 대한 것인데…."
  나는 잠시 말을 멈추며 곁눈질로 그녀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역시, 더욱 불만에 가득 차 가는 표정…. 순간 나는 이후에 훨씬 좋지 않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왠지 그녀의 태도가 재미있었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 그렇다면 끝까지 말해 버리기로 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의 '느낌'이 일반 총기와 너무 다릅니다. 조금씩 압력이 주어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마치 전기 스위치는 다루는 듯한 느낌. 그리고 너무 부드럽더군요. 물론 방아쇠에 손을 넣고 이동하는 멍청인 없겠지만 자칫하면 아군에게 총을 쏘는 오발 사고가 많이 발생할지도…. 조금 더 뻑뻑해도 발사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끝으로 적에게 발각될 수도 있겠지만 스위치로 켤 수 있는 레이저 조준기를 장착한다면 더욱 좋을 겁니다. 레이저 라이플은 도대체 어디에 맞았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운 무기이니까요."
  내가 말을 마쳤을 때 마린 파커 박사의 얼굴은 다시금 '그때'처럼 굳어져 있었다.
  "조….좋아요. 다시 한 번 참고하도록 하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굳어져 있었고, (당연하겠지만) 화가 난 듯 했다. 그리고, 그녀는 뒤로 돌아서 연구실 쪽으로 향해 힘주어서 걷기 시작했다. 사실 브리핑 이후 그녀를 놀리는 듯한 이런 일에 알 수 없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나였지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뭔가를 말해 주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 강력하고 유용한 화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박사님께 고마워 할 겁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
  그녀가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가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녀의 걸음이 가벼워진 듯이 보였다.
  지극히 직접적인 반응. 어쩌면 내가 바로 이런 반응에 재미를 붙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앞으로 그녀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기분이 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을 사랑하는 표도기였습니다...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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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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