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OM : The Unknown Enemy (11)

  2000년 1월 15일

  개인적으로 사격 연습을 하는 사이, 토머스와 한스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기에, 그들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대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식당 부근의 휴게실로 향한 나는, 그 곳에서 낯익은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
  “OK. 풀 하우스다. 이 판은 내가 먹었군.”
  “겍. 이번 판도 깨졌어. 어째 겨우 원페어 밖에는….”
  휴게실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트럼프를 하는 일행. 그것은 바로 토머스와 한스, 그리고 이전에 같은 부대 소속의 용병이었으며, 현재는 제 3분대에 속해 있는 찰리였다.(어찌되었든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던 계획이 다 틀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아마도 미리 식사를 마치고, 트럼프를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토머스 등은 모두 트럼프에 빠져 있어 내가 곁에 다가가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천천히 식탁 위의 판돈을 살펴보던 나는 의외의 결과에 놀라고 있었다. 평상시에 ‘도박의 프로’라 불리며 승리를 거듭하던 찰리는 엄청나게 잃은 듯 죽상을 하고 있었고, 반면 항상 잃기만 하던 토머스는 미소를 지은 채 자기 앞에 놓여진 판돈을 기분 좋은 듯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다만 한스만이 항상 그렇듯 중도(?)를 지키고 있었다.)

  “이봐. 토머스. 오늘은 웬일이야?” 내가 물어 보자, 토머스는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는 중요한 순간이니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해 보였다. 아마 자신이 이기고 있는 순간에 내가 끼여듦으로서 행운이 달아나 버릴 것을 우려한 모양이었다.

  “좋아. 플러쉬다.” 토머스가 이렇게 소리치며 카드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찰리와 한스는 또 졌다는 듯, 카드를 식탁 위에 뿌렸다. 찰리의 패는 투페어. 역시 플러쉬에 상대가 될 게 아니었다. 찰리가 항상 이야기하는 도박의 여신이 오늘은 찰리를 버린 것일까? 아니면 토머스가 갑자기 트럼프의 천재라도 되었단 말인가? 여하튼 트럼프 판은 이해할 수 없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때? 라이너. 너도 끼어 드는 것이.” 한스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트럼프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사양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열심히 했다면 분명 토머스보다도 많은 돈을 잃었을 게 틀림없으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찰리가 말하는 도박의 여신에겐 밉보인 것이 틀림없었다.

  여하튼 트럼프는 계속되었다. 사실, 서로간에 원래부터 친근하게 지내던 사이이긴 했지만, 이 세 명은 왠지 트럼프만 하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태도를 취했다. 하긴, 그렇다고 해서 격한 말을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평상시에 비해 몇 배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들의 포커 판에는 항상 왠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휴.. 이제야 나의 여신이 돌아온 모양이군.” 카드를 받아 펼쳐보던 찰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과연 찰리의 패는 어떤 것일까? 모두가 궁금해하는 사이에 트럼프 판은 시작되었다. 찰리는 단 하나만을 바꾸었을 뿐. 그리고, 그의 얼굴은 언제 나처럼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포커 판을 가득 메운 긴장감은 더욱 더 고조되어 갔다.

  그때. 스피커에서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제 3,7,9 지상 강하 분대는 전투 준비를 갖추고 준비해 주십시오. 반복합니다. 제 3,7,9 육상 강하 분대는 지금 즉시 전투 준비를 갖추고 각 게이트에 대기 중인 스카이 레인저에 탑승해 주십시오.”
  “제길. 거참 모처럼 행운이 돌아왔다 했더니.” 찰리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이 들고 있던 패를 왼쪽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16 편대에 긴급 출동의 메시지가 들어 왔는데 그 일 때문인가.
  “금방 다녀올테니, 그대로 놔두라고 내 패는 최고니까.” 마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듯이 말하며 찰리는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제 3분대는 항상 바쁘구먼. 여하튼 덕분에 꼼짝 못하고 있게 생겼네.” 토머스가 말을 꺼냈다.
  “어찌 생각하면, 용병 시절보다도 바쁜 것 같지 않아? 하긴 용병 시절보다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스가 테이블 위에 자신의 패를 엎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장비도 최신식이고, 이동도 예전처럼 구질구질한 트럭으로 할 필요는 없으니….”

  출동 명령을 받은 분대들이 빠져나간 휴게실은 왠지 한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였다. 어느 덧 휴게실에는 우리 세 명만이 남아 있었다. 갑작스레 조용하게 변해 버린 휴게실에서 우리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도대체. 이 일은 언제나 끝날지…. 생각해 보면 1999년도 벌써 예전에 지나갔는데 말이야.” 휴게실의 침묵을 깨려는 듯, 한스가 큰 소리로 말을 했지만 왠지 어둠이고 침울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하긴, 1999년 7의 달에 세계가 멸망한다고 했던가? 결국 노스트라다무스는 전세계를 향해 사기 친 역사적인 거짓말쟁이가 된 셈이지.” 토머스가 평소처럼 킬킬대며 한스의 말을 이었다.
  “2000년대의 우리들은 아직 살아 있고, 우리들의 동료와 가족, 그리고 온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살아 남아, 아직도 밝은 꿈을 갖고 생활하고 있으니까….” 내 목소리는 휴게실의 무거운 분위기에 부딪쳐 더욱 어둡게 울려 퍼졌다. 그때, 토머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톤을 높이며 말을 꺼냈다.
  “가족이라.. 그러고 보니, 한스. 너 고향에 약혼자가 있다며? 그…. 헬렌이라고 했던가?”
  “헬렌이라니. 자식. 형수님의 이름을 그렇게 잊을 수 있냐? 헬렌이 아니라, 헬레나 라고.”
  “헬레나? 트로이 전쟁에 나오는 그 미인 말이야? 이름을 들으니 무척 아름답겠군.”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럼. 그럼. 머지 않아 형수님의 얼굴을 보여줄 테니, 기대하라고….”

  그렇게 얼마동안 이야기를 했을까. 오전부터 계속했던 개인 연습으로 피곤해진 나는, 판이 끝나면 결과나 알려 달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고 텅 빈 방안으로 들어서자 왠지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물결처럼 밀려 왔다.
  “가족이라….”
  고요 만이 가득한 방안을 돌아보며, 어쩌면 내게도 있었을 가족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이제 내 주변에 남은 가족들은 함께 총을 들고 싸우는, 동료들뿐이었다.
  ‘하긴, 토머스 혼자만으로도 이 조용한 방의 분위기를 간단히 깨버리겠지만….’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언젠가, 시리아에서 토머스를 처음 만난 이래, 그는 나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XCOM에도 같이 지원하였고, 이제 같은 팀의 조원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였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한스의 경우를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한스는 분대장보다도 오래된데다, 거친 성격의 피에트로와 조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그는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거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과 같이 다닌다는 것은 결코 쉬울 리가 없었을 것이다.
  ‘글쎄…. 내게는 전우가 곧 가족이겠지….’

  나는 침대에 누워 내 '가족'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토머스, 한스, 찰리, 그리고 로리스 분대장을 비롯한 지금의 ‘가족’들을….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갔을까. 문득 잠들어 버렸던 나는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토머스냐.” 내 목소리가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분명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었던 듯….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대답은 들려 오지 않았다. 나는 반쯤 잠든 상황 속에서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여하튼 잠결이라 확실치는 않았지만.) 나는 감기는 눈을 뜨려고 노력하면서 방금 들어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친숙하지만 어두운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포커 판이 깨졌다.” 토머스였다. 그의 말은 왠지 수수께끼 같은 느낌으로 머리를 때렸다. 포커 판이 깨졌다고?  왜? 찰리나 한스가 파산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나, 토머스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찰리 녀석이 자신의 패를 갖고 지옥으로 가 버렸으니까….”
  순간 잠이 달아나며, 말문이 막혔다. 찰리가 죽었다….? 설마하니.

  “자식. 끝까지 포커 판에서 지려 고는 안 하는군.” 토머스는 억지로 웃어 보이려 했지만, 평소와는 달리 그 웃는 얼굴엔 어둠이 서려 있었다. 아마 지금쯤 한스도 어딘가 에서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그래, 어떻게 된 거지.”  내 입에선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전투기가 격추시키긴 했지만, 별로 피해는 입지 않았다던가. 게다가 적기가 워낙 커서 적도 많았던 모양이지. 여하튼 그 뮤톤 놈들은 타고난 싸움꾼이고, 결국 제일 먼저 침투했던 3분대는 거의 전멸했다고 하더군."
  “그랬군. 찰리 녀석의 여신이 사라진 건가.”
  “그래, 어째 오늘은 계속 잃기만 하더니….”
  
  그 후로, 더 이상의 기억은 없었다. 아마도 우리는 어딘가 처박혀 있던 한스를 찾아내어 술잔을 기울였을 것이고, 언제나처럼  토머스의 푸념을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다음 날, 우리는 분대장으로부터, 불과 2명만 살아 남았기에 분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3분대를 대신하여, 우리 2분대가 그들의 임무(적기 요격 후의 소탕)를 맡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그만큼 업무도 늘어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3분대의 생존자를 우리 분대에 편입시킨다고 했다. (분대장으로서는 통솔해야 할 인원이 더 늘어난 것을 귀찮아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편성에 대한 브리핑을 마치고, 복도를 지나던 나는 원래 찰리의 방이었던 장소에서 직원 한 명이 그의 명찰을 떼어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오래지 않아 이 방에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명찰이 붙게 될 것이다. 문득 어제 토머스와 한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1999년에 내려온다는 공포의 대왕에 대한 예언을….

  어쩌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리고 내 동료들은 아직 살아 있었고, 외계인들과 싸울 수 있는 실력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일이라도 그 동료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지만….

                            ★~을 사랑하는 표도기였습니다...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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