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토의 레이 3연작...

  단순 명쾌한 장르인 슈팅 게임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 작품만큼 세계관이 난해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첫 번째 작품인 레이포스(Ray Force - 사전적인 의미로 의역해보면 ‘한가닥 희망의 힘’이 적절하겠다.)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주인공 소녀의 설정(이름조차 없는 F04, 크라이시스 엔딩을 통해 도나라는 소녀의 카피임이 밝혀진다고 한다.) 은 나름의 설득력과 파격적인 면이 있었고 제목에 담긴 의미에 비웃음이기라도 하듯 여타의 게임과 달리 파멸적인 결말로 끝냈기 때문이었다.(몇몇 시리즈물을 제외한 타이토의 게임 대부분이 그러했듯 이것도 그저 단편으로 끝내려던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지만 타이토 내부에서 레이포스에 대한 강한 아쉬움이 일었기 때문인지 그 후속작인 레이스톰이 만들어진다. 급속도로 향상되는 기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던 듯 레이스톰은 3D로 만들어졌고, 레이포스가 그러했듯 이 게임이 지닌 나름의 박력 있는 전투묘사는 수많은 게이머들로 하여금 손을 붙잡게 만드는데 모자람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토리상 이미 지구는 멸망했으므로 이야기는 포스 이전의 과거를 다루는데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크라이시스에 가서는 더 절망적이다. 모든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스톰에서 지구는 심하게 파괴되고 지구로부터 벗어나려던 세실리아도 큰 피해를 입게 되는데 마지막 3탄인 크라이시스는 그 이후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즉 시대 순서를 정리하자면 이렇게 된다. 스톰->크라이시스->포스) 크라이시스에선 세실리아와의 전쟁 이후 파괴된 지구를 복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슈퍼컴퓨터 콘휴먼의 폭주와 주인공 F04의 탄생에 얽힌 전말이 드러나는데 대략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F04의 원본이랄 수 있는 복제인간 소녀 도나는 컴퓨터와의 네트워크 연결을 목적으로 제조된 존재로 콘휴먼의 에러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의식을 투입함과 더불어 자신을 희생하려하지만 도리어 의식 생명체로 융합되어지고 말았다. 딸인 도나를 구하고 콘휴먼의 폭주를 막기 위해 신경학자 레슬리 맥과이어가 뒤이어 자신의 의식을 집어넣지만 그마저 실패하고 결국 콘휴먼에 융합된 딸에게 포용되어지고 만다. 그 이후 콘휴먼은 무차별적인 폭주를 시작했고 결국 포스의 시대로 넘어가서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진 것이다.

  레이포스에서의 묘사대로 인류는 지구를 잃는 대가로 콘휴먼을 제거한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한 F04, 즉 도나의 영혼은 해방되어지지 않았다. 여러 사이트에서 확인한 정보를 취합해본다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F04가 마지막 순간에 콘휴먼의 중추에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콘휴먼에 내재된 도나의 의식이 또 하나의 자신인 F04를 인식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공간이동을 시켜줬고, 그녀는 우주 공간 안에서 떠돌다가 사이보그였던 관계로 시스템 다운으로 죽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운명을 맞이한 공간과 시대가 레이스톰의 시대에 존재한 세실리아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한낱 식민지에 불과했던 세실리아가 지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F04(도나)의 유해와 기동병기를 회수해서 얻게 된 연구 성과 덕분이었던 셈이다. 레이포스, 레이스톰은 해본 관계로 크라이시스의 정품 구입을 준비 중인데 생각해보면 아쉬운 감이 많다.(특히 주인공인 도나의 존재는 그대로 잊혀지기엔 아까울 지경이다.)

  슈퍼로봇대전이 나쁘게 평하면 시리즈가 전반적으론 힘을 잃고 있는데 전형적인 메카물만을 등장시킨다는 이전의 관례를 깨고 데카맨, 강철지그 등도 등장하고 있는 경우를 고려해 레이 시리즈를 출연시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끝없는 고통의 윤희에서 벗어나려는 도나의 영혼에 의해 불가사의한 힘이 작용하여 론드벨 멤버들이 기계세기의 세계로 소환되어져 폭주를 막 시작한 콘휴먼을 저지하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를 메인 스토리 삼아 본다면 나름의 매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콘휴먼이 본격적인 폭주를 시작하게 되면 손해를 볼 입장인 기계세기 세계의 지저세력, 헬 박사 등이 개입시켜야 할 것이다. 당연히 지구의 기술력을 노리는 제제난 등도 등장해주면 좋겠고.)

  레이 시리즈는 전반적으론 기계문명에 대한 인간의 과신을 향해 던지는 암울한 편지라는 기분이 든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인류, 파괴되고 마는 모성 지구... 극단적으로 평하자면 지극히 낙관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결코 재미있게 다가갈 수 없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배경 때문에 더욱 묘한 매력을 지닌 기구한 운명의 여주인공 도나의 존재는 여러 게이머들로 하여금 이 게임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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