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배 위에서 이러길 바라겠지만, 현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인류가 바다를 벗하고 살아온 이래, 크고 작은 해전이 많이 치르어졌습니다. 고대 세계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수많은 전사들의 무덤이었고, 또한 명예의 전장이 되어 왔지요.

  이러한 전투에서 다채로운 얘기가 흘러나오곤 하지만, 역시 낭만이 넘치는 해전은 바로 배에 탑승한 승무원들이 칼 같은 무기를 들고서 싸워나가는 전투, 바로 육박전일 것입니다.

  고대의 해전이나, 혹은 대항해시대를 무대로 한 해적 영화 등에서 클라이막스를 장식하곤 하는 해상의 육박전은 그야말로 화려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밧줄을 타고 타잔처럼 넘어가는 해적들이 있는가 하면, 돗대 위에서 혈전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그리고 마지막은 적의 대장과 주인공과의 일 대 일 결투... 위기에 몰린 주인공을 향해 웃어보이는 악당... 그러나 결국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주인공이 일발 역전으로 멋진 결말을 장식합니다.


  그러나...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는 방식의 결투가 실제 서부 시대라 불리는 시기에 한번도 벌어진 일이 없는 것처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해전에서 영화에서 보는 듯한 칼부림이 벌어진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주 적은 예외를 제외하면, 고대에도, 그리고 중세나 대항해시대에도 해전은 배와 배의 대결이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의 우리에게 있어 바다란 태평양과 대서양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사실 고대의 서양에서 바다라고 하면, 사실상 내해라고 할 수 있는 지중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지중해의 지배자는 바로 그리스인이었는데, 그들은 비교적 파도가 잔잔하고 바람이 약한 지중해의 조건에 맞추어 노를 젓는 방식의 갤리선을 개발하여 타고 다녔습니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영웅들이 등이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아르고호 역시 갤리선이었고, 그리스 시기의 갤리선은 대개 단층 구조로 되어 있었기에, 아마도 헤라클레스 역시 열심히 노를 저어야만 했겠지요.

  어찌되었든, 그리스인들은 ‘옆 도시에 갈때도 가볍게 돗을 단다’라고 불릴 정도로 항해를 생활화하고 있던 이들이었고, 그만큼 배를 잘 다루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해전은 바로 항해술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했고, 항해술을 잘 활용하는 이들이 승리하는 것이었지요.

  항해술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은 적의 함선과 가까이 붙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대개 원거리에서 활을 비롯한 장거리 무기들로 적을 노리거나, 적의 측면을 파고 들어 램으로 구멍을 내어 가라앉히곤 했지요. 더욱이, 장거리 항해를 주특기로 하는 그리스 함선에는 병사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기에 사실상의 머리수 싸움이 되는 육박전을 선호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물론, 해적과의 전투에서 육박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당시 지중해의 각지에서는 해적들이 들끓었는데, 그들과 마주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칼부림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지요. 하지만, 게임과는 달리 해적들은 절대로 전사들이 탑승한 군함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선이었고, 일반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정도로 통과시켜주었기 때문에 상선 입장에서는 조금 당한 시점에서 항복하곤 했으니까요.(이러한 경향은 비단 그리스 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그리고 시대를 가리지 않고 해적들은 상선 만을 공격했기에, 전투가 벌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해전에서 육박전이 등장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의 항해자들과는 다른 형태의 항해자가 등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리가 없이는 강을 건너는 것도 꺼려하는 육지 토박이... 로마인이 지중해에 발을 디뎠기 때문입니다.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인들이 가장 골치를 썩은 것은 상대인 카르타고의 해군이었습니다. 그리스인과는 달리 로마인 대부분은 바다를 본 일조차 없을 정도였고, 당연히 항해의 ‘항’자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들 입장에서 「바람과 노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고 적을 끌어들인 후에 측면을 파고들면서 가라앉힌다...」는 식의 해전 스타일은 불가능의 영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이겨야만 하는 법이고, 로마인들은 상대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게 생각했던 육상전을 해전에 도입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까마귀라 불리는 독특한 방식의 도구가 등장하게 되지요.

  그들의 전투는 어떤 방법으로든 적의 근처로 접근해서 갈고리 등으로 적함을 끌어들이고, 거대한 낫 모양의 까마귀를 적함에 떨어뜨리고 다리 등을 통해 병사들을 투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를 위해 5층 높이의 거대한 함선을 만들고 대량의 병사들을 탑승시켰지요.(밧줄을 타고 넘어가는 바보 같은 곡예는 영화에서나 나올 수 있는 법이지요.)
  일단 육박전이 벌어지면 로마군단을 상대할 수 있는 적은 존재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더 많은 병사로 싸우는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니까요.(다만, 이들의 전투는 영화 스타일의 육박전이 아니라, 대열을 이루어 다리를 건너 적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지극히 규범에 충실한 로마식 육전의 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후에는 난전이 벌어지겠지만, 지휘관이 적장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가능성은 그다지 없다고 하겠지요.)


  로마는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심지어 해적들을 몰아내기도 했지만, 그 후에도 항해는 다른 민족들에게 맡겨 버리고, 전투에서는 반드시 육박전으로 승부를 냈습니다. 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그들은 항해술을 활용한 해전은 사실상 회피하곤 했습니다.


  한편, 로마인들의 바다였던 지중해와는 다른 험난한 북해에서는 항해를 생업으로 삼는 이들이 세력을 넓혀나가고 있었습니다. 바이킹이라 불리는 이들은 당시로서도 보기 드문 항해술과, 뛰어난 기술력, 그리고 용맹을 갖추고 심지어 러시아까지 원정을 떠나기도 했지요.

  이들은 물론 해전을 겁내지 않았지만, 그들의 함선은 동체가 좁았고 탑승자가 적었기에-더욱이 상대가 없었기에- 바다에서 전투를 벌이는 일은 적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바이킹은 해적이 아닙니다. 그들이 바다에 나서는 것은 약탈보다는 교역이나 정착을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지역을 거점으로 주변에 대한 약탈을 하고 돌아가는 해적과는 달리, 바이킹의 항해는 새로운 지역에 그들의 거점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상인이나 정복자로서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뿔이 달린 투구나 도끼를 주로 쓴다는 평판처럼(바이킹의 투구에는 뿔이 달리지 않았으며, 그들은 주로 사용한 무기는 검과 활이었습니다.) 각종 영화나 만화가 바이킹의 이미지를 아주 엄청나게 왜곡시킨게 사실이지요.)


  북해 주변을 바이킹으로 대표되는 노르만인들이 휩쓸고 있는 동안, 지중해에서는 다시금 항해에 능숙한 해상 국가들이 발전하게 됩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같은 도시 국가를 주역으로 한 지중해의 주역들은 사실 로마의 영토에서 출발한 국가들이었지만, 본래 항구 도시 출신으로 항해에 능숙한 만큼 로마식으로 변질되지 않은, 진정한 의미의 해전을 주역으로 삼게 됩니다.

  이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노와 돛을 병행하는 갤리선을 주력으로 삼아서 활약했습니다.(KOEI의 게임 대항해시대에서 등장하는 베네치안 갤리아스는 바로, 베네치아에서 만든 갤리선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전투의 양상에 따라 육박전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항해술을 앞세운 원거리 결전이 중심이 되었지요.(더욱이, 이 시기에는 흔들리는 함선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발사할 수 있는 노의 개량이 이루어졌고, 여기에 로마 말기에 개발된 그리스의 불같은 기술로서 칼과 칼을 맞대지 않더라도 적에게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대항해시대라 불리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해전에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함포라는 기술이지요. 기존의 원거리 화기는 겨우 적함을 태워 버리는데 그쳤지만, 이 함포는 적 함에 구멍을 내거나 완전히 날려 버릴 수 있었기에 해상전은 더욱더 먼거리에서 펼쳐지게 됩니다.

  대항해시대, 카리브해를 무대로 하고 있는 수많은 해적 영화에서는 배 위에서의 싸움을 클라이막스로 장식하곤 하지만, 과거에도 그렇듯이 해적들의 본거지였던 카리브해에서도 배 위에서 칼부림을 벌이는 일은 사실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도적과 마찬가지로, 해적들 역시 비즈니스 차원에서 항상 지나친 모험은 삼갔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힌 카리브 해에서는 그만큼 조심해야 했기에, 군함이나 국가 소속의 수송단은 가능하면 노리지 않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물론, 국가의 명령으로 이런 수송 함대를 노리는 사례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노리는 것은 대개 자위 능력도 거의 없는 상선에 지나지 않았고, 이 경우 약간의 위협 만으로 그들이 노리는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기에 칼부림은 커녕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사례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다른 시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어떤 해적도 영화에서 흔히 보는 해적 깃발을 달고 있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깃발을 달았다면 군함에게는 훌륭한 표적이... 그리고 상선에게는 도망치라는 신호가 되었겠지요. 검은 바탕에 해골 모양을 하고 있는 「졸리 로저」라는 이름의 깃발은 사실 낭만적인 해적 얘기를 일반에게 알리면서, 해적에 대해서 잘못된 상식을 각인시키는데 기여한 소설가들에 의해 창작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항해시대의 종주국 답지 않게 항해 수준이 뒤져 있었던 스페인 해군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역사의 첫발을 내딛은 그들이지만, 사실 그들은 왕립 항해 학교를 갖추고 뛰어난 항해사의 양성에 힘쓰던 포르투갈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사실, 스페인과 관련된 거의 모든 항해상의 업적은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은 이탈리아 인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전투함이라기보다는 대형의 수송함(궤짝?)이라 할 수 있었던 갈레온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공성전에나 쓸 법 한 무거운 캐논포를 주로 탑재한 스페인 함대는 「무적 함대」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사실 해전에서 내세울 만한 것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육군이었고 해군은 단지 돈 벌이를 위한 수송 부대에 지나지 않았기에 그들의 실상은 고대 로마군과 다름이 없었지요.

  그래서 그들의 해군 전술은 최대한 가까이 붙어서 캐논포로 적함을 무력화시킨 후, 갈고리로 적함을 끌어들인 후 육군에 의해서 결판을 내는... 다시 말해 로마의 까마귀 스타일로 귀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술이야 어떻든, 스페인 함대는 무적 함대를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은 항상 선단을 대규모로 구성했으며, 그런 선단을 공격할 사략선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적 함대」는 이제껏 한번도 싸운 일이 없고, 사실상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무적으로 불릴 뿐인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것都求?

  네델란드-영국 함대는 바로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활용했습니다. 오랜 경험과 역사를 통해서 능숙한 항해술을 자랑하고 있던 이들 함대는,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궤짝에 지나지 않았던 갈레온이 아니라, 작고 기동성이 높은 프리깃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위력이 강한 대신 무섭고 사거리가 짧은 캐논포가 아니라, 가볍지만 사거리가 높은 캘버린 포를 주력으로 갖추고 있었지요. 더욱이 이들은 항해가 무엇인지, 그리고 해전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실전 부대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름 뿐인 「무적함대」와 네델란스-영국 함대가 부딪쳤을 때, 스페인의 명성은 사실상 종지부를 고하게 되고, 해상의 주역은 이들 북해 국가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무적 함대가 종말을 고한 이후, 해전에서 칼부림을 벌이려는 이들은 아예 사라져 버렸지요. 해군에게 있어 칼은 장식으로 전락해 버렸고, 함포와 소총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해전의 역사는 새롭게 칠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육상 국가였던 로마와 스페인을 제외하면, 역사상 육군식 함대가 구축된 일은 없었기에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해야 겠지요.


  사실, 수군(해군)의 전통이 길고, 바다에 익숙할수록 해전은 인간대 인간의 육박전이 아닌 항해술을 응용한 배와 배의 대결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배가 인간과는 달리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육상의 병사들과는 달리 바다 위의 배는 바람이나 바다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서 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뜻대로 전후진조차 안 되는 상태에서 바다를 잘 알고, 항해술에 능숙한 쪽이 유리하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바다에 익숙해지는 것은 한 두 세대로 끝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휘관과 선원 모두가 바다를 잘 알고, 여기에 함선들도 그들이 다니는 바다에 친숙해야 하기에(더욱이, 해군을 중시하는 관습도 필요하기 때문에) 아주 오랜 전통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지요.

  때문에, 오랜 기간 육전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라들은 해전에 나서기 어려우며, 이에 대한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함대 위에서의 육박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차선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바다 위에서 육전을 적용시켰을 뿐이고, 물 위의 특성은 하나도 살리지 못한 것이니까요. 더욱이, 두 척이 부딪쳐서 대결을 벌이는 육박전에선, 양쪽 모두 함선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자칫 두 척 다 항해 불능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해전에 익숙한 군대들은 최대한 피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도저히 해전에 자신이 없었던 로마나, 스페인...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육군 만이 강했던 군대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했을 따름입니다.

  동양의 중국과 일본 역시 해전에서 육박전을 벌이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이는 중국과 일본 역시 수군(해군)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원이라는 넓은 땅을 놓고, 대개 북방의 기병과 남방의 보병(혹은 궁병)들이 맞서 싸우는 일이 많았던 중국에선, 수전을 벌일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방의 오,월 지역이 아니면 헤엄조차 못 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중국에서 배를 쇠사슬로 묶어 버린다는 고육지계가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굳이 계략을 쓸 것도 없이, 그들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적벽 외에도 중국에선 배를 쇠사슬로 묶어서 안정시키는 사례가 많이 등장합니다.) 명나라 때에 이르면 아프리카로 원정을 보내기도 했다는 중국이지만, 그 긴 역사 속에서 수전이 등장한 것은 정말로 손꼽을 정도이지요.

  수군의 전통이 없는 것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국가의 역량이 하나로 집중될 수 없는 봉건제 아래에서는 그 관심이 외부로 향하기 어렵기 때문에, 별도로 수군을 갖출 이유가 없었으며, 꼭 필요하다면 왜구라 불리는 해적 집단을 고용하는 형태로 운용하였습니다.(임진란 초기에는 단지 수송 만을 위해서 기존의 장수들에게 그대로 지휘를 맡기지만, 우리나라 수군에게 어려움을 당함으로서 수전을 필요로 하게 됨에 따라서 임진란 후기로 갈수록 왜구의 수령을 수군 장수로 기용하는 사례가 늘어납니다. 그에 따라 일본 수군의 질도 향상되어 갔지요.)

  그러나, 그토록 수군의 전통이 없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육박전의 형태가 아닌 수전은 매우 자주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어느 정도 수군에 대한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지휘를 맡는 경우, 그 전투는 거의 대부분 항해술을 응용한 전투로 귀결되었지요.

  한편, 동양 삼국 중에서 가장 오랜 수군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 시대부터 육박전의 형태가 아닌 수군 전투를 실시했으며 수나라의 침공 당시에는 대규모 수송대를 격파하기에 이릅니다. 후삼국 시대 고려가 후백제의 후방을 교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다에서 활동한 경험이 풍부한 이들을 대거 등용한 만큼 수군이 우수했기 때문입니다.(왕건 자신이 상인 출신이기 때문에 바다의 이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그 후에도 계승되었으며, 비록 조선 시대 들어 퇴색되는 가운데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나설 것도 없이, 조선의 수군은 함포를 중시한 체계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고려 말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며, 이는 특히 판옥선이라 불리는 함선에서 극대화됩니다. 포수들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지붕을 씌웠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앞뒤에 대포를 장비하여 전, 후진시에도 포격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지요. 이러한 수군의 전통은 우리나라 수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결국, 해전이나 수전이 육박전으로 전개되는 것은, 익숙치 않은 수전을 육전화시키려는 고육지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배와 배를 부딪쳐 칼싸움을 벌이는 전투 스타일은 어디까지나 육전에 바탕을 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 방식은 그다지 효용 가치를 보이지 못했습니다.(아니, 로마의 경우도 카르타고에게는 어렵게 이길 수 있었지만, 폭풍으로 함대가 전멸하는 등 갖은 피해를 감수해야 했으며, 후일 지중해로 들어온 게르만 해적들은 사실상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수전을 육전화시킴으로서 수전의 이점을 모두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함포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둔해 빠진 대형함이 소형함의 옆에 달라붙어 육박전을 시도할 수 있었지만, 함포의 등장으로 인해 육박전을 벌일 가능성은 사실상 0(제로)가 되었다는 것이 다를 것입니다.(그 후에도 전투의 양상에 따라서 바로 옆에 붙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 소총으로 사격을 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실제 트라팔가 해전에서도 넬슨의 기함 빅토리가 프랑스의 함선과 스쳐 지나면서 총격전을 벌인 일이 있는데, 이로 인해 넬슨이 전사했지만 최종적으론 함포 전에서 앞선 영국 함대가 승리를 차지했습니다.)

  함포의 발달, 그리고 관측 기술의 등장과 더불어 교전 거리는 더욱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함미사일로 아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을 때리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지요. 때문에 육박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예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니, 2차 대전 당시의 전함은 엄청나게 튼튼해서 포탄을 수 십 발 맞아도 항해를 하곤 하지만, 맷집을 믿고 적함 근처에 돌입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수km, 수십km 밖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현대 함대전에서 적함 근처에서 싸우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 같은 일로 생각될 따름이지요.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분명히 보다 먼 거리에서의 교전이 벌어질 우주에서는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우주 함대전에서 육박전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도리어 그것이 등장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함선 위에서의 육박전이라는 것은 영화나 만화 등에서 클라이막스에 어울릴만한 멋진 장면을 제공할 수 있겠지만, 이는 해전의 특성을 버리고 육전으로 바꾸어 버림으로서, 한편으로 함대전 만이 갖고 있는 매력을 완전히 날려 버릴 테니까요.


P.S) 해적이나 해전 등에 대한 오해에는 만화 역시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원피스라는 작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며 개그 만화이기에 무엇이든 용납된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중간 중간 작가 이야기를 통해 마치 자신이 해적이나 해전 문화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 장면에선 비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 아예 말이라도 마시죠.」라고 쏘아주고 싶다고 할까요?

P.S) 이와 비교되는 작품으로는 해황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해전 만의 매력을 충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이 작품은, 고증에 신경을 쓰는 작가의 경향 만이 아니라, 그 자신의 체험(상선 학교 출신)을 결합시켜 거의 완벽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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