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1권을 읽었습니다. 군 제대 했을 무렵 읽은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로 시작해 '로마인'시리즈를 읽은 지 어언 2년이 넘었군요.
  아직 군인정신이 투철했던 그 무렵 때로는 나나미 여사의 제국주의 사관에 동조하기도 하고 카이사르에 대한 깊은 존경심으로 관련된 문헌은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는 카이사르의 말대로, 많은 사료의 보고 싶고 알고 싶은 부분만 흡수했죠. 하지만 사회생활과 학교생활을 통해 이것 저것 들추어 보면서 다른 시각을 알게되자 그토록 감명깊게 읽은 책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더군요. 역시 우물안 개구리에 머물면 안되겠어요.

  나나미 여사의 문체는 흡입력이 강합니다. 2천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일을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박력있게 묘사합니다.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자마대전에서는 로마 백인대의 일원으로, 아수스 회전에서는 선두에서 돌격하는 카이사르의 백인대장으로 감정이입이 되죠.
  또한 고대 로마의 제도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이해가 잘 되죠. 이렇게 풀어 쓴 사서가 처음은 아닙니다만 아직 제도사라는 것이 딱딱한 용어의 주워섬김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만 하죠.
그리고 전문사서들이 배제한 전설 -당시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을- 을 다루되 나름대로의 평을 통해 신비성을 배제시킵니다. 신비감이 없어지면 더 이상 전설이 될 수 없겠지만 톨키엔이 그렇듯 쉽게 친해지지 않는 익숙함과 심비감을 조화시키는 재주는 나나미 여사같은 개인 연구자에게서나 가능할 듯.

하지만...

  사관의 주관이 크게 개입되었다는 점에서 로마인 이야기는 객관적 사서로는 낙제입니다. 이는 단순히 행간에 들어나는 "내 견해는..."때문만이 아닙니다.
  예를들어, 자마의 대전에서 나는 로마군단의 군단병이 될 수는 있어도 한니발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 용병이 될 수는 없습니다. 폼페이우스의 부관이 될 수는 있어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카이사르의 백인대장이 될 수는 있어도 폼페이우스의 기병대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나나미 여사의 역사서술, 생동감은 있지만 그것은 승자의 생동감입니다. 패자의 모습은 생동감이 없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편이고 패자의 사료는 풍부하지 못하다는 면에서 어쩔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나미여사의 역저는 기존 사료의 종합, 보다 생동감 있는 종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진정 나나미 여사가 탁월한 연구자라면 기존에 소외된 이런 마이너들의 목소리를 살렸어야 하지 않을는지. 수십년간 이탈리아에서 연구했다면 반드시 불가능한 일 만은 아닐텐데요.
  단지, 기존 우리 독서계에 말랑말랑한 교양서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 가치 이상의 큰 평가를 받는것은 아닐지.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생으로 일본이 제국주의 광기에 휘말렸을때, 그리고 종전 후 미국의 적극적 간섭을 받은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더 이상 광기는 없었지만 아직 영향력이 살아 숨쉬는 시기에 학창생활을 보냈습니다. 대일본제국, 대동아 공영권, 대륙 진출 등이 아직 익숙한 시기에 가치관이 정립되었겠죠. (일본은 맥아더의 관대한 조치로 전후 큰 변혁을 겪지 않았습니다. 군국주의 관료들도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죠. 역사 왜곡은 종전 이후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여사의 저서에 일관되게 흐르는 군국주의, 마키아벨리즘 그리고 전사에 대한 그녀의 깊은 관심과 성과는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한때 열강이었던 국가의 국민으로 여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로마의 제국주의, 베네치아의 비잔틴제국 정복, 마키아벨리와 체자레 보르지아를 변호합니다. 지배민과 피지배민의 사관 차이랄까요. 세계사 편력에서 인도의 네루는 마키아벨리즘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합니다.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를 보자. 그는 15,16세기에 흔히 있던 정치꾼에 불과하지만 군주론을 펴내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을 보면 당시의 왕이나 정치꾼의 속세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군주론에서-----(중략)-----말했다.
정말 기가 막히게 교활하다. 악한일수록 선량한 군주라니! 그 시대의 군주의 정신 상태가 이런 것이었다면 분쟁이 그칠 새가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겠지. 구태여 이런 옛날로 거슬러 가지 않아도 오늘날의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마케아벨리가 주장한 군주의 모습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지 않느냐. 덕망으로 위장한 그들 속에는 탐욕과 잔학성, 그리고 정직이 아닌 비위가 있으며 문명이라는 장갑속에는 야수의 손톱이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네루가 역사가가 아닌 정치가, 그것도 식민지 치하의 정치가라는 면에서 그의 강한 주장 역시 주관이 강합니다. 동시에 반드시 옳다고 볼 수는 없죠.
  하지만 네루는 주관이 뚜렷해야 할 정치가였고 식민지로서 갖은 고통을 당한 인도인으로 마키아벨리즘에 관대하다면 국가와 국민에 대한 배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키아벨리즘은 악덕이라는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어도 나쁠것 없습니다. 피해자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나오미 여사의 편향적 시각은 어떻습니까? 가해자이니까 당연한 건가요? 가해자라면 잘못을 뉘우치는 것과 잘못을 정당화 시키는 것 중 어느쪽이 당연합니까?
  나오미 여사는 자신의 국가, 사회적 가치관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틀을 깨지 못한 인물이죠. 탁월한 역사가는 될 수 있으되 위대한 역사가는 되지 못할 겁니다.

  뭐 비판을 좀 했습니다만 로마인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흠뻑 빠져서 내가 황제가 되기도, 집정관이 되기도, 시민이 되기도, 군인이 되기도 합니다. 생동감 있는 문체는 충분한 이입을 보장하며 부드러운 서술은 숙독을 보장합니다.
  현대인이 답게 현대문화 속의 로마라는 코드를 다양하게 제시합니다. 여사의 깊은 관심과 박학을 잘 보여줍니다. 소설, 영화는 물론 만화(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 율리우스 카이사르편)까지 다루며 깊은 식견을 드러내기도, 사실을 따져 비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평을 깐깐함이 아닌 유쾌함으로 표현하는것은 대중사가인 역시 나나미 여사만의 미덕이 아닐는지.
  11권도 예외가 아닙니다. 게다가 책이 최근에 나와서인지 고전인 로마제국의 멸망 뿐 아니라 신작인 글라디에이터까지 언급됩니다. 물론 여사다운 유쾌한 비평도 보장합니다.
  11권은 종말의 시작인 군인황제의 도래까지를 다루니 12권은 본격적인 로마제국 몰락사가 될 것 같습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시리지를 접을지, 동로마제국으로 할지 신성로마제국으로 할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화룡정점을 할 듯 싶습니다. 대략 13, 14권일 될 것 같습니다.

  재미와 교양이라는 면에서 로마인 이야기는 분명 양서입니다. 다만 책 속에서 일본인 나나미를 읽을때는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한국인은 이정도 저작을 남기지 못했고 서양 저작은 딱딱하다는 점에서 그 쓴맛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록 명저는 못 될지라고 양서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니까요.

로마인 이야기 11권이 내게 남긴 말. 장점이건 단점이건 나나미 여사는 역시 나나미 여사었습니다.

P.S : 저도 빨리 돈 벌어 책 사고 싶군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책 내용이 머리에 오래 남아 있지 않네요.

We shall know no f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