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스러운 연계, 치밀한 움직임은 그들의 생존력을 극대화시키는데 큰 영향으로 작용했다. 특수대 출신의 그는 동료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함선의 중심부로 다가갔다. 이 함선에 오기 전에 그가 받은 명령은 함선을 탈취하는 것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말살시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브리핑조차 없이 왔으나 그는 그동안 별다른 저항을 겪어보지 못했다. 사령부에서는 이 생명체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를 했던 것이다. 교전을 예상하고 완전무장한 상태로 왔으나 어쩌다 살아남은 지성 생명체들은 정신 속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여서 가만히 내버려둬도 알아서 목숨을 끊어버렸다.
  옆에 있던 부하 중 한명이 이 함선의 전투정보실로 추측되는 곳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거기나 여기나 다를 것도 없겠지. 체열감지스캔에서 나오는 개체는 딸랑 3개다. 사방에서 체열이 감지되긴 했지만 이 스캔은 내벽에 붙어서 식어가는 피와 생명체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성능이 구리지는 않았다.
  시시하다.
  함선에 난입한지 5분도 안되어서 임무 종료라니. 그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아까처럼 다시 대기상태로 돌아가 있어야 한다는 것에 관해서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저 전투정보실에서 통제력만 장악하면 자신의 소대가 맡은 임무는 끝이니까 말이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바로 함선의 전투정보실을 향해 나아갔다. 왠지 전투정보실에 가까워질수록 뭔가가 머리를 콕콕 찌르는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그는 단순 피로라고 치부해버리며 애써 무시했다. 무장 상태를 재점검한다.
  특수부대용으로 설계된 신뢰도와 정숙성이 뛰어난 ‘클리티오스’라는 무기는 정상. 몸 전체를 재래식 무기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탄성 갑옷 역시 아무 이상 없다. 그는 허리춤에서 탄창 하나를 더 꺼내며 ‘클리티오스’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2~30초 정도를 걸어가자 그는 완벽한 사격자세를 갖추며 자신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도 있었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부하들의 의도를 눈치 채고는 그는 곧바로 부하들에게 전투정보실에 난입하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30명가량의 부하들이 자세를 갖추며 전투정보실로 난입하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총성이 울렸다.
  쒜엑!
  아주 가까운 곳에서 ‘클리티오스’의 발사음이 들리고 그의 눈앞에서 전투정보실로 난입하려던 부하가 맥이 끊긴 인형마냥 그대로 엎어졌다. 부하가 쓰러지자 가장 놀란 것은 자신이었다.
  부들부들….
  “아아아…!”
  의지와는 반대로 그가 들고 있는 소총의 총구가 부하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순간적으로 주위에 있던 그의 부하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멋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또 다른 부하를 향했다. 어서 피하라고 말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체가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총성. 뒤이어 실 끊긴 인형마냥 맥없이 쓰러지는 부하.
  이건…!
  자신의 부하들도 자신과 마찬가지인 상태인 것 같았다. 마치 몸 전체가 뭔가에 억눌린 듯 꼼짝도 하지 않는 이 느낌. 이게 바로 염력이라는 것인가. 호루스 인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존재가 이 곳 어딘가에 있다. 자신들의 신과 버금가는 힘을 지닌 존재가 말이다.
  정신 간섭.
  이거 하나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심판의 전쟁 중에 일어났던 나크샤 대전투에서 패배한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사실 이 전투 이후 1주일 후 심판의 전쟁은 호루스의 완벽한 패배로 끝을 맺었다.

  오시리스의 중요한 식민지 행성이었던 나크샤는 오시리스와 헬리오스인의 막강한 군사력에 힘을 잃어가던 동족이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저들이 우주군 함선에 비중을 너무 들여서 행성 방위 병력은 약할 것이다라고 추측해서 어떻게든 행성에 발만 들여놓을 수 있다면 승산이 없지는 않다고 여겨 대규모의 강습군단을 동원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 병력의 80%에 달하는 규모가 오시리스의 함대에 의해 잃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크샤에 상륙하는데 성공한 40만에 달하는 강습병력은 저궤도에서 정밀포격을 가하는 오시리스 함대를 피해 나크샤의 중요거점을 하나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강하 첫날에는 뜻밖의 기습에 미처 대응체제를 갖추지 못한 방위 병력을 손쉽게 제압하며 반경 5킬로미터 내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시설들을 점령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오시리스 함선의 건조시설은 없었지만 그들은 행성 방어체계 중 일부를 획득하고 전송시스템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수확은 오시리스의 본성인 ‘게브’의 위치와 오시리스 인들이 분포한 모든 식민지의 좌표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하 이틀째 오시리스 함선에서 내려온 몇 개 군단의 보병 병력이 섬멸을 목적으로 호루스의 강습 병력을 견제하기 시작하자 전투는 점점 공성전 개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낮에는 저궤도에서 공전중인 전함들이 외과수술적인 포격을 가했고, 밤에는 오시리스의 보병 병력이 산발적으로 점령 지역 내부로 진입해 교전을 벌였다.
  국방부에서 예상했던 것은 나름대로 적중했다. 오시리스의 보병 장비는 함선만큼 발전하지 못한 것이었다. 승산이 없다고 여겼던 사령부에서는 살아남은 병력이 보낸 정보를 토대로 오시리스인의 모성을 친다는 작전까지 구상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점이 한 가지 있었다.
  헬리오스.
  강하 후 15일째 되던 날. 나크샤의 고궤도에서 오시리스 함대의 움직임을 몰래 감시하고 있던 호루스의 통신선 <아킬로프>에서 헬리오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항공모함 몇 척이 초공간에서 빠져나와 나크샤의 저궤도에 자리를 잡았다. 보다 정밀한 궤도 폭격을 할 셈인가.
  그때까지만 해도 강습 병력의 고급 장교들은 그렇게 예상했다. 제아무리 정밀한 궤도 폭격을 하더라도 그들의 무기체계는 대기권으로 들어오게 되면 상당히 위력이 약해졌다. 물론 대기권에서 오히려 강해지는 질량탄도 있었지만 행성을 거의 영구적으로 날려먹을 만한 짓을 하는 바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건물만한 크기의 운석을 떨군다고 해도 행성에 자리를 잡은 이상 그들이 오시리스 때문에 두려워할만한 요소는 없었다. 어찌됐건 그런 상태로 계속해서 오시리스의 정보를 <아킬로프>로 전송하고 있던 그들에게 이변이 일어난 것은 헬리오스의 항공모함이 저궤도에 자리 잡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
  푸른빛을 내뿜는 항성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하늘을 뒤덮기 무섭게 시작되던 지상병력의 포격이 그날만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점령 지역으로 머리에 이상한 고글을 쓰고 간단한 차림을 한 인간 하나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날 총성은 없었다.
  40만의 병력은 그날 밤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한 순간에 모두가 말이다. 그 전에 일어났던 현상이라곤 쇠꼬챙이 수백개가 머리를 콕콕 찌르는 두통을 호소했을 뿐이었다. 일부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전투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기술요원 뿐이었다. 보름 가까이 계속되던 공방전은 그날 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종료되었고 살아남았던 극소수의 호루스인들은 오시리스 병력에게 붙잡혀 심판의 전쟁이 끝나는 때까지 정신구조가 거의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붕괴되기 직전까지 고문을 받고나서야 고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목숨도 여기서 끝인가. 그는 나크샤에 관한 기억이 떠오르자 쉽게 단념했다. 하지만 쉽게 목숨을 저버리긴 싫었다. 생명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존본능이었다. 하지만 그 생존본능도 시간이 지나자 천천히 억제되고 있었다. 자신도 모를 정도로 천천히….
  시간에 대한 인식이 점점 느려졌다. 처음에는 서서히 느려지다가 이내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움직임을 멈추며 정신이 몸과 천천히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지자 그는 놀라웠다. 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느낌. 어떤 의미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한없이 차갑기도 하고 어떤 편으로는 한없이 뜨거운 뭔가가 몸 속 전체로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뭔가가 자신의 의식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었다. 몇 백분의 1초의 시간이 지나자 그는 계속해서 밀려들어오는 그 느낌들이 극에 달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육체와 연결되었던 마지막 끈이 끊어지며 그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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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흐흐흐...
막상 써놓고 생각하길...
'전개가 이렇게 느려질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1人...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