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의 전장 (목숨이 붙어있고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한 연재는 계속됩니다.) - 08년 10월 27일 공군입대 합니다.
글 수 79
그래서 낯이 익었던 건가…….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함교 내의 모든 전자기기들에 동력이 들어왔다. 그리고 수많은 상황스크린 중 하나에 비춰지는 글자들. 적어도 이곳에서 쓰이는 언어는 아니었다.
옛날부터 줄곧 의사소통에 쓰던 언어와 구조는 조금 달랐지만 자신이 이걸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이건 분명 이리시스 제국어였다. 왜 이런 곳에 제국어가…….
솔직히 이건 좀 말이 안된다. 지난 500년간 자신이 아는 한은 이들과 자신의 종족이 교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간에 말이다. 스피카에서 리플렉터 행성을 파괴되고 종전이 된 이후로 가이아인들은 그들이 직접 개발한 대리플렉터 무기로 각 항성계에 잔존해있는 리플렉터들을 청소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며 그 동안 세비어인의 함대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상황은 마찬가지. 30세기 초 쯤에 잘 살던 가이아인들은 지들끼리 전쟁을 일으키고 놀았다. 아무 이유도 없지는 않았다. 반드시. 하나 이상의 이유는 존재했다. 어떤 때는 한 항성계에 주둔중인 소장 하나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지구로 진격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베가섹터의 3개 전투함대가 역으로 공격. 어이없게 3년 이상을 전쟁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리시스국의 함대가 무응답상태로 접근중이라며 평소에 연방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미등록 독립국가 하나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전투나 전쟁 속에서도 세비어 인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말들은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다짜고짜 갑자기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도 이런 거였나. 단순히 데려온 것도 아니다. 이미 짐작은 했다. 어차피 지구에 있는 그것들도 정부의 소유물이었으니까 별다른 미련은 없었다. 한동안은 난데없이 등장한 호루스 덕분에 다시 지구에 갈 일도 없겠지.
-위이잉…….
누군가 들어온다. 처음 보는 얼굴들. 각 제어담당하사관들이었다. 도중에는 장교도 눈에 띄었다. 슬슬 이 배도 뜰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그들이 칼을 보며 경례를 했다. 나머지는 각자 맡아진 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한 장교는 칼에게 뭔가를 말했다.
“장군님이 기지에 자폭설정을 30분으로 맞춰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기지에 분포돼있는 전 인원들을 이 배에 승선하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마 20분 내로는 기지가 비워질 것입니다.”
“수고했네. 그런데 자네는 무슨 담당인가.”
“통신담당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앞으로 말할 일이 많겠군. 수고하게.”
칼이 어깨를 그에게 말하며 어깨를 툭툭 쳐주자 그는 다시 경례를 하며 자리를 향해 갔다.
희한하게 경직된 분위기. 생각보다 상황이 별로인건가? 이들이 아직 자신을 내쫓지 않는 것으로 보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쫓아낼 이유가 없던가.
각 제어패널의 화면들이 수시로 바뀐다. 함선 전체에 퍼져있는 정비병들의 활동이 점점 분주해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뜻밖에 칼은 그들에게 희소식을 들었다.
아공간엔진의 자체 추력으로 대기권을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 그들 말로는 엔진시스템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됐다고 했다.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그냥 거기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적어도 그의 명령에 위반되지는 않았다. 결국은 해결했으니 말이다.
바로 그 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지 쪽은 모두 정리됐네. 아까 전갈은 받았겠지?”
황급히 쳐다보니 자동문이 열린 채 제임스 소장이 들어왔다. 175cm 정도의 비교적 평범한 키에 아랫배가 살짝 튀어나온 불룩한 신형. 그렇게 험악하지도 착하지도 않게 생긴 생김새에 날이 선 연방제복을 멋지게 껴입고 턱 왼쪽에는 검날에 의한 상처인지 아문 채 길게 이어져있다. 나름대로 흉터이다. 흉터를 제외하곤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머리에 숱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 나이에 비해 아직 대머리는 아니었다.
“예. 받았습니다.”
칼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기지를 자폭시킨다. 아까 통신담당 장교가 자신에게 전해주던 내용이 떠올랐다. 자폭시킨다면 단순히 그 기지만을 자폭시키는 걸까 아니면 지역적인 피해를 준다는 의미일까. 폭발력은 얼마나 될까. 꼭 자폭을 시켜야만 할까.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더 좋은 방법도 있을 텐데 왜 그런 방법을 택할까 말이다. 물론 적에게 정보가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칼은 그냥 생각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칼.”
“예. 장군님.”
“함선 상태는?”
제임스는 이륙이 가능하냐는 말을 빙 돌려서 말했다. 물론 전체적인 상태도 중요했지만 말이다. 칼은 천장에 달린 상황스크린 중 하나를 쳐다보며 간단하게 답했다.
“정상입니다.”
말 그대로 지금의 상태는 정상이었다. 적어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 화면 중에 온통 푸른색뿐인 함선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으니까. 제임스는 칼의 시선을 따라 상황스크린으로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것도 다른 군함이랑 전체적인 구조는 비슷하겠지?”
전투정보실에 있던 모두가 그를 쳐다본다. 이륙준비에 앞선 함내에서의 최초의 명령. 호루스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않았다면 제임스가 아닌 칼 대령이 이 함선에 대한 지휘권을 가졌을 것이다. 제임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다시 말을 이었다.
“아광속엔진 출력 60%로. 각 랜딩시스템 모두 체크하고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하라.”
건조 이후 최초로 CVX-701에 탑재된 6개의 아광속엔진이 특유의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구우우우웅...-
비록 최대치까지의 출력을 내지는 않았지만 아광속엔진 하나하나마다 내는 힘은 거의 6엑사 노르튼을 넘겼다. 기존의 5세대 함선과는 비교도 안될만한 추력. 보통의 경우라면 지표면에서 이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에서 건조를 할 것이다. 보통 2천만 톤 급 구축함같은 경우 최대추력치는 900페타 노르튼. 이도 물론 엄청난 수준의 힘에 속하긴 한다. 하지만 이륙하기엔 아직 힘이 부족했다. 추정중량만 9천만 톤을 넘어가는 함선이 뜨기엔 말이다. 하지만 엔진 사출구에서 내뿜어지는 빛이 점점 더 밝아지자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함선은 아주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웬만한 운동장 저리가라할 수준의 거대한 랜딩시스템들이 활주로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그 진동으로 인해 천장에서 수m는 될법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현재 속도 400km/h입니다.”
오퍼레이터 하나가 보고한다. 항공기였다면 벌써 이륙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주에서 운용되는 함선들은 속도가 빠르다고 이륙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었다. 지금 함선이 가속 중인 이유는 단지 이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일단 기지에서 벗어나게 되면 전체 엔진의 자체 추력으로 함선의 중력장을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
701이 나아가는 공간 앞 쪽에서 대규모의 폭음이 들려왔다. 비록 함선 내에 있는 승무원들은 듣지 못했지만 대신 근거리 스캔으로 그 상황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더 담당 사관이 다급히 외친다.
“2.1km 전방에서 레이더 전파가 단절됩니다. 아무래도 천장이 내려 앉은 것 같습니다! 주변의 각 벽체에서 불규칙 균열 감지!”
“뭐야?!”
하필이면 이럴 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시속 500km에 근접하며 가속중인 701의 앞으로 더 이상 갈 길이 없더라니! 제임스 소장의 두뇌가 재빠르게 회전한다.
“충돌까지 12초!”
12초……. 순식간이다. 어떻게 됐든지 간에 말이다. 대체 무슨 방법을 써야만 하는걸까. 의사결정을 하고나서 그 명령이 실현되는데까진 최고속도로만 따져봐도 3초 이상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선 당황을 하게 된다는 상황도 가정해 봤을 때 그 시간은 믿을 수 없다. 대충 어림잡아 순식간에 계산해본 결과 남은 시간은 6~9초 정도.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른다.
지금 이 곳은 워낙 거대한 크기의 함선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비좁아 보이는 활주로 안이다. 이대로 둔다면 운이 좋다면 함체의 자체적인 운동에너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도박이다. 701에 탑재된 모든 방어막을 출력시키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 내려앉은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기 때문에 말이다. 게다가 방금 그 붕괴로 인해 지하 활주로의 전체적인 균형이 박살난게 분명하다. 뭘 해야 되는 거지…….
다시 한 번 이 함선이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방법을 초고속으로 생각해본다. 남은 시간은 어느새 7초. 701에 탑재된 부포를 쓴다. 물론 생각해 봤지만 포기했다. 필요 이상으로 강력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기 계열 같은 경우엔 한번 쏘는데 있어 승인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 그 사이 1초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한다.
순간적으로 이마에 맺히는 땀. 대체 뭐가 있지? 적어도 2초 내로는 결정해야 한다. 가장 그럴싸한 방법을 짚어보자. 그렇다면…….
“방위 식스제로! 초공간도약!”
막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제임스가 명령할 시간은 전혀 뜻밖의 인물에 의해 없어지고 말았다. 함교에 있는 모든 제어담당장교들의 분주해지는 가운데 제임스 소장은 목소리의 근원지로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충돌을 눈 앞에 둔 순간 콜로수스의 함수 바로 앞부분에서 검푸른 색의 연기가 폭발하듯 퍼지자 순식간에 소멸되듯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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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체 다시 오리지날로 복원시킨다고 해봤는데 좀 어수룩한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 -ㅂ-;;;
32화 올리기 전에 30화 수정작업 완료시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함교 내의 모든 전자기기들에 동력이 들어왔다. 그리고 수많은 상황스크린 중 하나에 비춰지는 글자들. 적어도 이곳에서 쓰이는 언어는 아니었다.
옛날부터 줄곧 의사소통에 쓰던 언어와 구조는 조금 달랐지만 자신이 이걸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이건 분명 이리시스 제국어였다. 왜 이런 곳에 제국어가…….
솔직히 이건 좀 말이 안된다. 지난 500년간 자신이 아는 한은 이들과 자신의 종족이 교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간에 말이다. 스피카에서 리플렉터 행성을 파괴되고 종전이 된 이후로 가이아인들은 그들이 직접 개발한 대리플렉터 무기로 각 항성계에 잔존해있는 리플렉터들을 청소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며 그 동안 세비어인의 함대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후로도 상황은 마찬가지. 30세기 초 쯤에 잘 살던 가이아인들은 지들끼리 전쟁을 일으키고 놀았다. 아무 이유도 없지는 않았다. 반드시. 하나 이상의 이유는 존재했다. 어떤 때는 한 항성계에 주둔중인 소장 하나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지구로 진격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베가섹터의 3개 전투함대가 역으로 공격. 어이없게 3년 이상을 전쟁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이리시스국의 함대가 무응답상태로 접근중이라며 평소에 연방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미등록 독립국가 하나와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자잘한 전투나 전쟁 속에서도 세비어 인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말들은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다짜고짜 갑자기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도 이런 거였나. 단순히 데려온 것도 아니다. 이미 짐작은 했다. 어차피 지구에 있는 그것들도 정부의 소유물이었으니까 별다른 미련은 없었다. 한동안은 난데없이 등장한 호루스 덕분에 다시 지구에 갈 일도 없겠지.
-위이잉…….
누군가 들어온다. 처음 보는 얼굴들. 각 제어담당하사관들이었다. 도중에는 장교도 눈에 띄었다. 슬슬 이 배도 뜰 준비를 하고 있는 건가.
그들이 칼을 보며 경례를 했다. 나머지는 각자 맡아진 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한 장교는 칼에게 뭔가를 말했다.
“장군님이 기지에 자폭설정을 30분으로 맞춰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기지에 분포돼있는 전 인원들을 이 배에 승선하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아마 20분 내로는 기지가 비워질 것입니다.”
“수고했네. 그런데 자네는 무슨 담당인가.”
“통신담당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앞으로 말할 일이 많겠군. 수고하게.”
칼이 어깨를 그에게 말하며 어깨를 툭툭 쳐주자 그는 다시 경례를 하며 자리를 향해 갔다.
희한하게 경직된 분위기. 생각보다 상황이 별로인건가? 이들이 아직 자신을 내쫓지 않는 것으로 보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쫓아낼 이유가 없던가.
각 제어패널의 화면들이 수시로 바뀐다. 함선 전체에 퍼져있는 정비병들의 활동이 점점 분주해져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뜻밖에 칼은 그들에게 희소식을 들었다.
아공간엔진의 자체 추력으로 대기권을 벗어나는 게 가능하다. 그들 말로는 엔진시스템의 문제가 갑자기 해결됐다고 했다.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그냥 거기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적어도 그의 명령에 위반되지는 않았다. 결국은 해결했으니 말이다.
바로 그 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지 쪽은 모두 정리됐네. 아까 전갈은 받았겠지?”
황급히 쳐다보니 자동문이 열린 채 제임스 소장이 들어왔다. 175cm 정도의 비교적 평범한 키에 아랫배가 살짝 튀어나온 불룩한 신형. 그렇게 험악하지도 착하지도 않게 생긴 생김새에 날이 선 연방제복을 멋지게 껴입고 턱 왼쪽에는 검날에 의한 상처인지 아문 채 길게 이어져있다. 나름대로 흉터이다. 흉터를 제외하곤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머리에 숱이 별로 없어 보였지만 나이에 비해 아직 대머리는 아니었다.
“예. 받았습니다.”
칼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기지를 자폭시킨다. 아까 통신담당 장교가 자신에게 전해주던 내용이 떠올랐다. 자폭시킨다면 단순히 그 기지만을 자폭시키는 걸까 아니면 지역적인 피해를 준다는 의미일까. 폭발력은 얼마나 될까. 꼭 자폭을 시켜야만 할까.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더 좋은 방법도 있을 텐데 왜 그런 방법을 택할까 말이다. 물론 적에게 정보가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칼은 그냥 생각 속에 묻어두기로 했다.
“칼.”
“예. 장군님.”
“함선 상태는?”
제임스는 이륙이 가능하냐는 말을 빙 돌려서 말했다. 물론 전체적인 상태도 중요했지만 말이다. 칼은 천장에 달린 상황스크린 중 하나를 쳐다보며 간단하게 답했다.
“정상입니다.”
말 그대로 지금의 상태는 정상이었다. 적어도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 화면 중에 온통 푸른색뿐인 함선의 모습이 나타나 있었으니까. 제임스는 칼의 시선을 따라 상황스크린으로 옮기며 입을 열었다.
“이것도 다른 군함이랑 전체적인 구조는 비슷하겠지?”
전투정보실에 있던 모두가 그를 쳐다본다. 이륙준비에 앞선 함내에서의 최초의 명령. 호루스가 모습을 드러내지만 않았다면 제임스가 아닌 칼 대령이 이 함선에 대한 지휘권을 가졌을 것이다. 제임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다시 말을 이었다.
“아광속엔진 출력 60%로. 각 랜딩시스템 모두 체크하고 혹시 모를 충격에 대비하라.”
건조 이후 최초로 CVX-701에 탑재된 6개의 아광속엔진이 특유의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구우우우웅...-
비록 최대치까지의 출력을 내지는 않았지만 아광속엔진 하나하나마다 내는 힘은 거의 6엑사 노르튼을 넘겼다. 기존의 5세대 함선과는 비교도 안될만한 추력. 보통의 경우라면 지표면에서 이륙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에서 건조를 할 것이다. 보통 2천만 톤 급 구축함같은 경우 최대추력치는 900페타 노르튼. 이도 물론 엄청난 수준의 힘에 속하긴 한다. 하지만 이륙하기엔 아직 힘이 부족했다. 추정중량만 9천만 톤을 넘어가는 함선이 뜨기엔 말이다. 하지만 엔진 사출구에서 내뿜어지는 빛이 점점 더 밝아지자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함선은 아주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웬만한 운동장 저리가라할 수준의 거대한 랜딩시스템들이 활주로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그 진동으로 인해 천장에서 수m는 될법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현재 속도 400km/h입니다.”
오퍼레이터 하나가 보고한다. 항공기였다면 벌써 이륙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주에서 운용되는 함선들은 속도가 빠르다고 이륙을 할 수 있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었다. 지금 함선이 가속 중인 이유는 단지 이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일단 기지에서 벗어나게 되면 전체 엔진의 자체 추력으로 함선의 중력장을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
701이 나아가는 공간 앞 쪽에서 대규모의 폭음이 들려왔다. 비록 함선 내에 있는 승무원들은 듣지 못했지만 대신 근거리 스캔으로 그 상황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레이더 담당 사관이 다급히 외친다.
“2.1km 전방에서 레이더 전파가 단절됩니다. 아무래도 천장이 내려 앉은 것 같습니다! 주변의 각 벽체에서 불규칙 균열 감지!”
“뭐야?!”
하필이면 이럴 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시속 500km에 근접하며 가속중인 701의 앞으로 더 이상 갈 길이 없더라니! 제임스 소장의 두뇌가 재빠르게 회전한다.
“충돌까지 12초!”
12초……. 순식간이다. 어떻게 됐든지 간에 말이다. 대체 무슨 방법을 써야만 하는걸까. 의사결정을 하고나서 그 명령이 실현되는데까진 최고속도로만 따져봐도 3초 이상이 걸린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선 당황을 하게 된다는 상황도 가정해 봤을 때 그 시간은 믿을 수 없다. 대충 어림잡아 순식간에 계산해본 결과 남은 시간은 6~9초 정도.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흐른다.
지금 이 곳은 워낙 거대한 크기의 함선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비좁아 보이는 활주로 안이다. 이대로 둔다면 운이 좋다면 함체의 자체적인 운동에너지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도박이다. 701에 탑재된 모든 방어막을 출력시키더라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 내려앉은 공간이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기 때문에 말이다. 게다가 방금 그 붕괴로 인해 지하 활주로의 전체적인 균형이 박살난게 분명하다. 뭘 해야 되는 거지…….
다시 한 번 이 함선이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방법을 초고속으로 생각해본다. 남은 시간은 어느새 7초. 701에 탑재된 부포를 쓴다. 물론 생각해 봤지만 포기했다. 필요 이상으로 강력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기 계열 같은 경우엔 한번 쏘는데 있어 승인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 그 사이 1초의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한다.
순간적으로 이마에 맺히는 땀. 대체 뭐가 있지? 적어도 2초 내로는 결정해야 한다. 가장 그럴싸한 방법을 짚어보자. 그렇다면…….
“방위 식스제로! 초공간도약!”
막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제임스가 명령할 시간은 전혀 뜻밖의 인물에 의해 없어지고 말았다. 함교에 있는 모든 제어담당장교들의 분주해지는 가운데 제임스 소장은 목소리의 근원지로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충돌을 눈 앞에 둔 순간 콜로수스의 함수 바로 앞부분에서 검푸른 색의 연기가 폭발하듯 퍼지자 순식간에 소멸되듯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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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체 다시 오리지날로 복원시킨다고 해봤는데 좀 어수룩한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 -ㅂ-;;;
32화 올리기 전에 30화 수정작업 완료시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유가 뭐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