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흔의 전장 (목숨이 붙어있고 생활환경이 보장되는 한 연재는 계속됩니다.) - 08년 10월 27일 공군입대 합니다.
글 수 79
"함대 구조활동 중지하고 전투배치 시켜. 이번엔 우리 쪽에서 쓸어보자고. 이들의 당한 것의 거의 배로는 갚아줘야 예의겠지?"
페드릭을 쳐다보며 말하는 그의 분위기가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인천함은 때 맞춰 인컴브릿지드의 승무원들을 전송한 것 같았다. 비행갑판 하나와 상부갑판 42개 구역이 승무원들로 북적였다. 이대로 전투에 임했다간 인천함의 관성제어장치가 한 곳에 몰린 하중을 버티지 못해 약간의 손상으로도 함선 내부의 승무원들 전체가 피떡이 되어버릴 것이다. 관성제어장치의 손상이란 함선 내의 모든 생명체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반 순항 상태에서 고속 기동시의 급격한 방향변환에서까지 관성제어장치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곳은 없다. 대기권 내에서 기체가 겪는 중력은 평균 2~3 G 아무리 많아봐야 10 G 안팎이기 때문에 잘 훈련된 조종사라면 관성제어장치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공기마찰이나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에서는 얘기가 틀려진다. 전투 시에는 1km 이상의 함선들이 초속 수십, 수백 km로 가속하며 회피를 위해 말도 안될 정도로 선회하거나 회전한다.
이 속도에서 함내의 자체중력이나 관성제어장치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된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말이다. 관성제어장치가 손상된 상황에서 함선이 우현으로 1' 만 선회해도 문제는 심각해진다. 밥을 먹고 있던 도중 옆에 있던 내벽이 시속 100만 km로 다가오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그 대상은 의식할 틈도 없이 자신의 몸이 파괴되는 것을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이 함선이 앞서 말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함선의 센서가 감지한 것은 분명 리플렉터가 시간을 벌기 위해 꾸민 함정일게 분명했다. 리플렉터들은 가이아인의 함대로부터 위협을 감지하고 모성침공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다. 어느 인류의 모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 상 가이아인의 태양계가 목적일 것이다. 여기서 가이아인의 모성까지 거리는 약 250광년 정도.
그들 방식의 도약 기술이라면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일 것이다. 리플렉터가 호루스라는 생명체들에 의해 얻은 도약기술은 각 인류의 도약 방법처럼 일개 함선 또는 함대가 직접 초공간 항행을 하는 것과는 달리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의 공간을 이어버리고 숫자의 제약 없이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시공간 역학자라면 더 자세히 설명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그저 최전방에서 총질하는 류의 타입이라서 알지 못했다. 지금 저 황인 장군은 함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직 초공간 진입시의 중력을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1세대? 아니... 2세대 정도 앞선 기술일 것이다. 저 위장중력이 없어진다면 세리니언 태양계나 가이아 태양계중 하나는 초토화가 된 상태일 것이다.
"전 함대 구조작업 완료하는 즉시 전투배치 시키게. 초공간 진입로에 공뢰 조준시키고 진입 순간에 모두 박살내버리자고."
"준장님."
페드릭은 한참 전투배치 명령을 하고 있던 윤천일 준장에게 말했다.
"무... 무슨 일인가?"
"타국 장교로서 의견이 있는데 말입니다. 꼭 좀 들어줬으면 합니다."
페드릭은 그에게 타국의 장교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며 말했다. 만약 자국의 함장이라면 맘놓고 말했을 텐데 다른 사람이다 보니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뜻밖에도 윤천일 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만 하면 들어줄 생각도 없진 않네. 말해보게."
처음에 이들을 봤을 때는 표정이 모두 비윤리적인 모습이어서 상당히 오해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단 상당히 겸손했다. 페드릭은 그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생각중인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감지한 것에서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을 것이며 리플렉터가 시간을 끌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것과 호루스에 대한 존재의 정체, 기술력, 리플렉터의 목적 등 아까 리플렉터로부터 얻은 지식에 대한 것은 모두 말이다. 처음에는 대부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페드릭의 말이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을 뛰어넘자 사람들은 이따금씩 상당히 경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함이나 다른 함선에서 쓰고 있는 대 리플렉터 탄이라면 충분히 스피카의 리플렉터들을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플렉터들이 당신들의 무기에 대항할 방어책을 찾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리플렉터 블록 코팅의 반사력을 역이용해서 폭발시키는 특수탄을 개발하다니... 이제 더 이상 리플렉터라는 호칭이 무의미해지겠군요. 그리고 지금 센서가 발견한 것은 리플렉터가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 만들어 논 미끼에 불과합니다. 위장중력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는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을 테고, 일단은 이 함선의 면적간 관성 제어 한계 하중 때문에 자칫 방어막이라도 소멸되면 봉변당할 위험이 있으니 저희 함대 함선으로 사람들을 전송시켰으면 합니다. 아까 그것들을 해킹 했다지만 아직 지식을 아직 제대로 끄집어낼 줄을 몰라서 정확히 어디로 침공하는 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최대 2시간 정도 남은 것 같고요."
페드릭은 침공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 단어가 가이아인에게 해당되는 건지 자신의 종족에게 해당되는 건지는 당최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둘 중 하나가 무엇이든 결과는 최악이 된다. 모성의 파괴. 이것은 약 40년 전(세비어인 기준) 노토르인의 멸망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노토르인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모성과 10 수 광년 내에 고루 분포해 있었다. 당시 과학기술과 신체적 요건이 극한을 달리던 그들은 항성간 밀집 방어체계를 구축해 번영해왔다. 항성간 밀집 방어체계란 아공간 통신의 시간적 제약을 없애 각 항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아내며 30분 이내로 전 함대가 각 항성 계에 도달해 신속하게 적의 침입으로부터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항성의 밀집도가 높은 구상성단이나 산개성단 같은 구역에서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 당시 7세대 차원기술을 보유한 노토르인들은 각 항성계에 행성을 공전하는 워프게이트를 설치했다. 이 워프게이트는 앞에서 보면 알파벳 O의 모습을 한 얇은 도넛형태의 거대한 우주선이며 대부분은 무인 중심 설계라 사람이 탈 필요가 없었다. 세비어인의 초공간 도약과는 달리 이 워프게이트는 더욱더 안정화된 좌표와 강화된 출력을 유지시켜 일반적인 초공간도약 속도보다 약 50배나 빨랐다. 이는 항성간 무역거래나 군 보급물자 운송 등의 시간제약을 거의 무효화시키고 워프망에 속한 항성의 함대가 낭비병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군대를 만들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장점이 리플렉터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걷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 당시 노토르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리플렉터와 조우하자 문명인이 원시인을 만난 것처럼 마냥 채취하고 실험했다. 문제는 실험하려 생포했던 리플렉터가 그 군함을 먹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노토르인은 이 때까지도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군함 내의 승조원 같은 경우에도 단순한 기계적 고장이라 여겼고 리플렉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군함은 네빌리아츠 급 구축함인 파사이론 호였다. 감염 당한 파사이론은 노토르인의 항성간 밀집 방어체계를 역이용하여 주변 항성계 8곳에서 주둔중인 수많은 우주군 함대를 격파, 감염시켰다. 파사이론 사고 후 딱 30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 노토르인은 세비어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세비어의 함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워프게이트 마저도 리플렉터에게 넘어갈까 우려한 노토르 인들은 모든 워프게이트를 자폭설정하고 수백 척의 수송선을 이용해 피난을 시키려 하지만 때마침 워프게이트를 통해 진입한 감염된 군함들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노토르인이 비상시에 쓰이는 발신위성에 남겼던 기록에 의하면 단 2분 동안 720 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학살 이후 행성에 남아있던 방위군은 3 시간 동안 격렬한 전투를 치렀으나 수적 열세에 의해 결국은 자폭을 택했다. 아마 노토르인이 초기에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리플렉터가 멸망당했을 것이다.
윤천일 준장은 모성침공이란 단어에 대해 심각히 생각을 했지만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현재 지구에 거주중인 인구수만 160억 정도가 되었고 저 궤도 콜로니 위성을 더하면 180억이 되었다. 그리고 달에 있는 인구까지 합치면 22억이다. 침공하는 리플렉터 함대의 숫자가 얼마나 많기에 그러는 지는 몰랐지만 지구 궤도에서만 14번 함대와 필적하는 규모를 자랑하는 함대가 3개가 있었다. 각 함대는 지금쯤이면 대부분 대리플렉터탄으로 무장을 하고 있을 것이고 800척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리플렉터가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노토르인의 경우처럼 한순간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침공하는 적 함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아나?"
페드릭은 윤천일 준장의 질문에 심여를 기울여 생각해보았다. 스피카에 있는 리플렉터 블록의 수를 떠올리자 머릿속이 온통 0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1광년 내에 있는 모든 리플렉터 블록의 숫자는 12 .7 시(127,000,000,000,000,000,000,000,000). 상상하기도 벅찬 엄청난 단위이다. 분포도는 리플렉터 행성이 대부분이고 주위의 리플렉터 전함이나 다른 뭔가는 극소수를 차지했다. 현재 존재하는 리플렉터 전함중 15% 만이 활동중이라고 가정했을 때 숫자는...
"최하... 3만입니다."
"......"
한순간에 전투정보실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3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강력했다. 일부는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대부분은 할 말을 잃은 채 있었다. 세비어인들은 가이아인들보다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천단위도 아니고 만단위였다. 함급으로 쳐도 B 6 급의 규모의 전함이고 이것들이 모성에 접근이라도 하면 아무리 미리 대기 중이었다고 해도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페드릭은 다시 말을 이었다.
"리플렉터가 자기 행성까지 방어한다는 가정 하에 추려낸 숫자입니다. 물론 이게 틀릴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여기 있든 결론은 똑같습니다. 그냥 이대로 지켜보다간 리플렉터가 대함대를 이끌고 둘 중 하나에게 아주 끝장을 보겠죠. 우리 동족 같은 경우야 이미 리플렉터 덕에 남은 병력이 없을 테니 당신들을 노릴 겁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정도입니다. 2시간 내로 모든게 결정됩니다. 장군님이라면 뭔가 하실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
윤천일 준장은 페드릭이 갑자기 자신을 주시하자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극심한 수적 열세에 대항하기란 거의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를 뒤집으려면 아주 심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진 군 기술이나 함선 자체를 거대한 신성 폭탄으로 매워 자폭시키는 것뿐이었다. 300년 전 우주군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이의령 제독이었더라도 이 정도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진 못할 것이다. 페드릭은 전투정보실 중앙의 스크린을 둘러보며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은 리플렉터 행성을 향했다.
"행성 저궤도에 위성상태로 공전중인 리플렉터 전함의 숫자는 5 ~ 6 만 척 정도 될 겁니다. 수가 상당하긴 하지만 대부분 적도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을 겁니다. 다들 알다시피 리플렉터 행성이라고 해도 고체형 행성인 건 변함이 없죠. 극궤도는 지속적으로 나오는 자기장 때문에 리플렉터 전함의 방탄막의 강도가 약해지고 블록간의 네트워크 연결력이 느슨해져 함체의 구조강도도 약해질 겁니다. 물론 그것은 이 쪽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것들을 방해하기에는 가장 좋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배의 단위면적당 관성한계 하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벅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갔다간 한방만 맞아도 관성제어장치가 고장날 겁니다. 또 한방 추가로 맞으면 함체내 모든 생명체가 피떡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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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거 다음이면 프롤로그도 끝입니다 ㅠ
요즘 세상이 힘들어져서 올리는 속도도 늦어졌네요 ;;
페드릭을 쳐다보며 말하는 그의 분위기가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인천함은 때 맞춰 인컴브릿지드의 승무원들을 전송한 것 같았다. 비행갑판 하나와 상부갑판 42개 구역이 승무원들로 북적였다. 이대로 전투에 임했다간 인천함의 관성제어장치가 한 곳에 몰린 하중을 버티지 못해 약간의 손상으로도 함선 내부의 승무원들 전체가 피떡이 되어버릴 것이다. 관성제어장치의 손상이란 함선 내의 모든 생명체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반 순항 상태에서 고속 기동시의 급격한 방향변환에서까지 관성제어장치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 곳은 없다. 대기권 내에서 기체가 겪는 중력은 평균 2~3 G 아무리 많아봐야 10 G 안팎이기 때문에 잘 훈련된 조종사라면 관성제어장치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공기마찰이나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에서는 얘기가 틀려진다. 전투 시에는 1km 이상의 함선들이 초속 수십, 수백 km로 가속하며 회피를 위해 말도 안될 정도로 선회하거나 회전한다.
이 속도에서 함내의 자체중력이나 관성제어장치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면 상황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된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말이다. 관성제어장치가 손상된 상황에서 함선이 우현으로 1' 만 선회해도 문제는 심각해진다. 밥을 먹고 있던 도중 옆에 있던 내벽이 시속 100만 km로 다가오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그 대상은 의식할 틈도 없이 자신의 몸이 파괴되는 것을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이 함선이 앞서 말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함선의 센서가 감지한 것은 분명 리플렉터가 시간을 벌기 위해 꾸민 함정일게 분명했다. 리플렉터들은 가이아인의 함대로부터 위협을 감지하고 모성침공을 시도하려 하고 있었다. 어느 인류의 모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측 상 가이아인의 태양계가 목적일 것이다. 여기서 가이아인의 모성까지 거리는 약 250광년 정도.
그들 방식의 도약 기술이라면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일 것이다. 리플렉터가 호루스라는 생명체들에 의해 얻은 도약기술은 각 인류의 도약 방법처럼 일개 함선 또는 함대가 직접 초공간 항행을 하는 것과는 달리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의 공간을 이어버리고 숫자의 제약 없이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시공간 역학자라면 더 자세히 설명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그저 최전방에서 총질하는 류의 타입이라서 알지 못했다. 지금 저 황인 장군은 함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아직 초공간 진입시의 중력을 임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1세대? 아니... 2세대 정도 앞선 기술일 것이다. 저 위장중력이 없어진다면 세리니언 태양계나 가이아 태양계중 하나는 초토화가 된 상태일 것이다.
"전 함대 구조작업 완료하는 즉시 전투배치 시키게. 초공간 진입로에 공뢰 조준시키고 진입 순간에 모두 박살내버리자고."
"준장님."
페드릭은 한참 전투배치 명령을 하고 있던 윤천일 준장에게 말했다.
"무... 무슨 일인가?"
"타국 장교로서 의견이 있는데 말입니다. 꼭 좀 들어줬으면 합니다."
페드릭은 그에게 타국의 장교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며 말했다. 만약 자국의 함장이라면 맘놓고 말했을 텐데 다른 사람이다 보니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뜻밖에도 윤천일 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할 만 하면 들어줄 생각도 없진 않네. 말해보게."
처음에 이들을 봤을 때는 표정이 모두 비윤리적인 모습이어서 상당히 오해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단 상당히 겸손했다. 페드릭은 그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생각중인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 감지한 것에서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을 것이며 리플렉터가 시간을 끌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것과 호루스에 대한 존재의 정체, 기술력, 리플렉터의 목적 등 아까 리플렉터로부터 얻은 지식에 대한 것은 모두 말이다. 처음에는 대부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페드릭의 말이 논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을 뛰어넘자 사람들은 이따금씩 상당히 경악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함이나 다른 함선에서 쓰고 있는 대 리플렉터 탄이라면 충분히 스피카의 리플렉터들을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플렉터들이 당신들의 무기에 대항할 방어책을 찾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리플렉터 블록 코팅의 반사력을 역이용해서 폭발시키는 특수탄을 개발하다니... 이제 더 이상 리플렉터라는 호칭이 무의미해지겠군요. 그리고 지금 센서가 발견한 것은 리플렉터가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 만들어 논 미끼에 불과합니다. 위장중력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는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을 테고, 일단은 이 함선의 면적간 관성 제어 한계 하중 때문에 자칫 방어막이라도 소멸되면 봉변당할 위험이 있으니 저희 함대 함선으로 사람들을 전송시켰으면 합니다. 아까 그것들을 해킹 했다지만 아직 지식을 아직 제대로 끄집어낼 줄을 몰라서 정확히 어디로 침공하는 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최대 2시간 정도 남은 것 같고요."
페드릭은 침공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 단어가 가이아인에게 해당되는 건지 자신의 종족에게 해당되는 건지는 당최 생각이 나질 않았지만 둘 중 하나가 무엇이든 결과는 최악이 된다. 모성의 파괴. 이것은 약 40년 전(세비어인 기준) 노토르인의 멸망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노토르인의 식민지들은 대부분 모성과 10 수 광년 내에 고루 분포해 있었다. 당시 과학기술과 신체적 요건이 극한을 달리던 그들은 항성간 밀집 방어체계를 구축해 번영해왔다. 항성간 밀집 방어체계란 아공간 통신의 시간적 제약을 없애 각 항성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아내며 30분 이내로 전 함대가 각 항성 계에 도달해 신속하게 적의 침입으로부터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항성의 밀집도가 높은 구상성단이나 산개성단 같은 구역에서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 당시 7세대 차원기술을 보유한 노토르인들은 각 항성계에 행성을 공전하는 워프게이트를 설치했다. 이 워프게이트는 앞에서 보면 알파벳 O의 모습을 한 얇은 도넛형태의 거대한 우주선이며 대부분은 무인 중심 설계라 사람이 탈 필요가 없었다. 세비어인의 초공간 도약과는 달리 이 워프게이트는 더욱더 안정화된 좌표와 강화된 출력을 유지시켜 일반적인 초공간도약 속도보다 약 50배나 빨랐다. 이는 항성간 무역거래나 군 보급물자 운송 등의 시간제약을 거의 무효화시키고 워프망에 속한 항성의 함대가 낭비병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군대를 만들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장점이 리플렉터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걷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그 당시 노토르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리플렉터와 조우하자 문명인이 원시인을 만난 것처럼 마냥 채취하고 실험했다. 문제는 실험하려 생포했던 리플렉터가 그 군함을 먹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노토르인은 이 때까지도 위험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군함 내의 승조원 같은 경우에도 단순한 기계적 고장이라 여겼고 리플렉터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군함은 네빌리아츠 급 구축함인 파사이론 호였다. 감염 당한 파사이론은 노토르인의 항성간 밀집 방어체계를 역이용하여 주변 항성계 8곳에서 주둔중인 수많은 우주군 함대를 격파, 감염시켰다. 파사이론 사고 후 딱 30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후 노토르인은 세비어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세비어의 함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워프게이트 마저도 리플렉터에게 넘어갈까 우려한 노토르 인들은 모든 워프게이트를 자폭설정하고 수백 척의 수송선을 이용해 피난을 시키려 하지만 때마침 워프게이트를 통해 진입한 감염된 군함들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 노토르인이 비상시에 쓰이는 발신위성에 남겼던 기록에 의하면 단 2분 동안 720 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학살 이후 행성에 남아있던 방위군은 3 시간 동안 격렬한 전투를 치렀으나 수적 열세에 의해 결국은 자폭을 택했다. 아마 노토르인이 초기에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리플렉터가 멸망당했을 것이다.
윤천일 준장은 모성침공이란 단어에 대해 심각히 생각을 했지만 전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현재 지구에 거주중인 인구수만 160억 정도가 되었고 저 궤도 콜로니 위성을 더하면 180억이 되었다. 그리고 달에 있는 인구까지 합치면 22억이다. 침공하는 리플렉터 함대의 숫자가 얼마나 많기에 그러는 지는 몰랐지만 지구 궤도에서만 14번 함대와 필적하는 규모를 자랑하는 함대가 3개가 있었다. 각 함대는 지금쯤이면 대부분 대리플렉터탄으로 무장을 하고 있을 것이고 800척 정도는 거뜬히 상대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리플렉터가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노토르인의 경우처럼 한순간에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침공하는 적 함대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아나?"
페드릭은 윤천일 준장의 질문에 심여를 기울여 생각해보았다. 스피카에 있는 리플렉터 블록의 수를 떠올리자 머릿속이 온통 0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1광년 내에 있는 모든 리플렉터 블록의 숫자는 12 .7 시(127,000,000,000,000,000,000,000,000). 상상하기도 벅찬 엄청난 단위이다. 분포도는 리플렉터 행성이 대부분이고 주위의 리플렉터 전함이나 다른 뭔가는 극소수를 차지했다. 현재 존재하는 리플렉터 전함중 15% 만이 활동중이라고 가정했을 때 숫자는...
"최하... 3만입니다."
"......"
한순간에 전투정보실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3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강력했다. 일부는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대부분은 할 말을 잃은 채 있었다. 세비어인들은 가이아인들보다 거짓말을 잘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천단위도 아니고 만단위였다. 함급으로 쳐도 B 6 급의 규모의 전함이고 이것들이 모성에 접근이라도 하면 아무리 미리 대기 중이었다고 해도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페드릭은 다시 말을 이었다.
"리플렉터가 자기 행성까지 방어한다는 가정 하에 추려낸 숫자입니다. 물론 이게 틀릴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여기 있든 결론은 똑같습니다. 그냥 이대로 지켜보다간 리플렉터가 대함대를 이끌고 둘 중 하나에게 아주 끝장을 보겠죠. 우리 동족 같은 경우야 이미 리플렉터 덕에 남은 병력이 없을 테니 당신들을 노릴 겁니다. 남은 시간은 2시간 정도입니다. 2시간 내로 모든게 결정됩니다. 장군님이라면 뭔가 하실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
윤천일 준장은 페드릭이 갑자기 자신을 주시하자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극심한 수적 열세에 대항하기란 거의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를 뒤집으려면 아주 심하게 한 쪽으로 기울어진 군 기술이나 함선 자체를 거대한 신성 폭탄으로 매워 자폭시키는 것뿐이었다. 300년 전 우주군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이의령 제독이었더라도 이 정도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진 못할 것이다. 페드릭은 전투정보실 중앙의 스크린을 둘러보며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은 리플렉터 행성을 향했다.
"행성 저궤도에 위성상태로 공전중인 리플렉터 전함의 숫자는 5 ~ 6 만 척 정도 될 겁니다. 수가 상당하긴 하지만 대부분 적도를 중심으로 분포해 있을 겁니다. 다들 알다시피 리플렉터 행성이라고 해도 고체형 행성인 건 변함이 없죠. 극궤도는 지속적으로 나오는 자기장 때문에 리플렉터 전함의 방탄막의 강도가 약해지고 블록간의 네트워크 연결력이 느슨해져 함체의 구조강도도 약해질 겁니다. 물론 그것은 이 쪽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것들을 방해하기에는 가장 좋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배의 단위면적당 관성한계 하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벅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갔다간 한방만 맞아도 관성제어장치가 고장날 겁니다. 또 한방 추가로 맞으면 함체내 모든 생명체가 피떡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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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거 다음이면 프롤로그도 끝입니다 ㅠ
요즘 세상이 힘들어져서 올리는 속도도 늦어졌네요 ;;
안녕하세요
함내 대결 정도만 보다가 함대전까지...
그러다가 이젠 모성 방어전 -_-;
이거 점층 규모가... 우주적 규모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