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진


    전란의 시대에는 국경의 위치가 끊임없이 바뀐다. 그렇기에 국경지대라는 곳에 일일이 국경선이 그려져 있거나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국가의 세력권을 확인 할 수 있는 작은 표식이 무언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트레비아 공화국의 서방 한계선을 표시하는 것이, 바로 황무지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두잔 요새였다.

트레비아 공화국은 아르카디아 제국과 두 방면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북쪽 아피아 직로를 가로지르는 국경과, 적색 산맥 남쪽으로 네이룬 공화국을 사이에 둔 국경이 그것이었다. 북쪽 국경은 아피아 직로를 양분하고 있었는데, 아피아 직로는 트레비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렌디노어 지방과 제국의 주요 상업도시 나투르시와 직결되는 통로로써 평화로운 시절에 이 도로를 통한 상업이 융성했었다고 한다. 그런 아피아 직로와 국경을 동시에 수비하는 두잔 요새의 역할은 중대했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에서 상업이란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두잔 요새 수비대에게 있어 당장은 상업 경비의 임무보다, 국경수비의 임무가 훨씬 중요했다. 에너지탄이 비 오듯 쏟아지고, 온갖 욕설과 고함, 그리고 칼 부딪는 소리가 난무하는 지금은 특히.

“끓는 기름을 부어! 파성추의 접근을 허용하지 마라!”

“끓는 기름이 떨어져 갑니다! 남은 비축분도 더 이상 없습니다!”

“제기랄, 그럼 식용유라도 들이부어! 뭐라도 좋으니까 더 이상 적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해!”

요새 수비대장 새뮈엘 로라이어스 소령은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성벽을 넘어온 적병 하나를 베어 넘겼다. 피가 튀어올라 수비대장의 얼굴을 적셨지만, 그것을 닦아낼 여유도 없었다. 그의 옆의 벽으로 또 하나의 사다리가 걸쳐진 것이다. 총안에 깊숙이 박혀 들어가는 사다리의 고정 쐐기를 보며 소령이 외쳤다.

“제기랄! 잭슨! 미겔! 전투망치 들고 빨리 튀어와! 사다리를 떨어뜨려야 해!”

도르래로 식용유 통을 들어 올리던 두 병사가 식용유를 팽개치고 달려왔다. 소령은 망치로 사다리와 쐐기의 연결을 끊으려 했다. 같이 사다리를 두들기던 미겔 상병이 요새의 망루를 바라보곤 외쳤다.

“대장! 저놈들이 방마장치 (마법공격에 대비한 방어막 생성기) 쪽에 공격을..”

“뭐라고?”

보고를 잘 듣지 못한 소령이 돌아봤을 때는 이미 그 불쌍한 병사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에너지탄이 목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소령에게 있어 그 병사의 전사를 애도할 여유는 없었다. 죽은 자를 흘낏 바라보고는 결국 남은 병사와 함께 다시 작업을 재개하여 고정기를 떼어냈다. 그 즈음에는 어느덧 적병 하나가 사다리를 통해 벽을 넘어오는 중이었다. 소령은 사다리를 밀어내었지만 이미 올라온 적병 하나가 잭슨 일병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은 막지 못했다.

“끄아아아악!”

잭슨 일병이 가슴에서 피를 뿌림과 동시에 적병도 소령의 단칼에 쓰러졌고, 소령은 의무병을 불렀다.
북쪽 성벽에서는 더 많은 적군이 침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남은 수비대원들이 식용유를 붓고 나서 화염병을 던지고 있었지만, 적들은 너무 많았다. 온몸이 불길에 휩싸여 발버둥치는 동료를 뒤로하며 수많은 병사들이 사다리를 기어 올랐다.

“빌어먹을...    북측 성벽 방어를 더 보강해! 정문에도 바리게이트를 더 쳐!”

로라이어스 소령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많은 병사들이 겁먹은 시선으로 그들의 지휘관과 적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뭐해? 쏴갈겨! 어서! 괜찮아! 딱 이틀만 더 막으면 돼! 딱 이틀이면 원군이 와서 저 개자식들을 모두 쓸어버릴 거라구! 그 때까지 버티자! 공화국을 위해!”

수비대장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총 한방이라도 더 갈기기 위해 총안으로 달려갔다.

병사들을 고무시키려 했지만 그 스스로도 자신의 말에 희망을 품지 못했다.

‘고작 600명의 병력으로 언제까지 저 많은 적을 막으란 말이지? 에라이 망할, 구원군이 오기는 오려나 모르겠네!’

지시를 내리며 뛰어가는 수비대장의 가슴속엔 이미 ‘패배’라는 단어가 떠올라 있었다.





7월 초순이 되어 무료한, 동시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7군단에게  ‘나투르 방면을 경계, 군단을 두잔 인근으로 이동시켜 적극적 방어에 임하라’ 라는 지령이 내려온건 7월 4일의 일이였다. 체스가 지시해놓은 바대로, 이미 준비가 끝마쳐진 제 7군단 병력 9천 8백여명은 주둔지 프리디아를 떠나 남동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적 최소 1개 군단급 병력이 나투르 방면을 6월 30일에 출발, 아피아 직로를 따라 서진중. 목표는 렌디노어 방면으로 짐작. 제 7군단은 직로에 위치한 두잔 요새를 지원하라’

또 다른, 더 급박한 지령이 도착한 것은 군단이 이동을 시작한지 겨우 하루만의 일이었다. 이후 제 7군단은 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해 랜디노어시에 도착했고, 다시 랜디노어를 지나 더욱 동쪽으로 달렸다.

“전군 정지! 30분간 휴식을 취한다! 물 섭취를 허가한다!”

대열의 앞부분에서는 바쁘게 지시사항이 목청껏 외쳐졌고, 대열의 후미에는 수정구를 통해 지시가 전달되었다. 일사불란하게 행군을 정지하기가 무섭게 장병들은 수통의 마개를 따 정해진 양만큼의 수분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모두가 지쳐있었지만 허가된 양 이상의 물을 마시는 자는 없었다. 이러한 것은 이미 지난 석달간의 훈련에서 수없이 얻어 터져가며 습득한 습관 이었다.

“......쯧.”

그러나 선두 대열에서 말을 달리던 시데르는 비어버린 수통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부하들의 시선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했다.

“.....쯧..쯧.”

술 생각이 간절했다. 긴장해서일까, 몰래, 조금씩, 아주 가끔 마시던 정도의 술을, 지금은 병째 나발을 불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군님 사물함에 숨겨둔 위스키 몇 병도 가져오는 건데’

원래 장거리 행군시에는 기병들도 하마하여 말을 이끌고 직접 뛴다. 전투에 돌입하게 될 때를 대비해 말의 체력을 아끼려는 것이다. 그러나 시데르와 그의 직속 기병대대는 제 7군단의 최선두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선두의 기마대라는 것은 적을 처음 발견할 때, 또는 적 선발대와의 교전에 대비한 것으로, 최초의 교전 책임이 이들에 있는 것이다. 주력이 도착해 접전이 시작되면 선두에서 달리던 부대는 뒤로 빠져 휴식을 취하며 예비 병력으로 운용 된다.

‘잘들 하고 있군, 모두.’

시데르는 자신 직속의 제 1기병대대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전신이 땀에 젖어있었지만 아직 지친 것 같지는 않았다. 훈련의 성과가 빛을 발하는 것일까. 그것은 군마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웬만한 타 부대의 기병군마라면 지금쯤은 이미 탈진해 다리를 후들거릴 것이다. 그러나 7군단의 말들은 아직 멀쩡해 보였다. 이는 또한 좋은 편자를 박아서이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서 시데르는 군단의 보급책임자 넥슈타인 소령의 능력에 감탄했다.

“거 더럽게 덥군.”

시데르가 무심결에 내뱉자 몇몇 북부 출신 기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무더운 날이었다.

‘덥군’

체스는 입 밖에 내어 말하지 않았다. 먼지와 모래로 뒤덮인 그의 얼굴에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행군 시에는 장군이건 사병이건 구분 없이 모두 함께 고생을 하며 뛴다. 체스를 비롯한 군단 사령부 전원은 말을 끌고 달려왔다. 단지, 참모장의 경우는 예외였다.

“...괜찮나?”

군단장의 물음에 참모장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체스가 휴식 명령을 내린 것도 참모장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본래 7군단 같은 야전군에 여군의 배속률은 높지 않다. 단지 보급 및 후방 근무 요원으로 여군이 배치되는데, 세지릴의 경우처럼 참모장이라는 중요 직책에 임명되는 경우 또한 드물었다. 이는 그만큼 세지릴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체스 또한 참모장의 능력에 감탄하며, 어떤 의미에선 쳐키올릿 전임 참모장의 심장마비를 다행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7월 초 북부 사막 지대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말을 끌고 뛸 체력은 없었다.

사실, 체스도 세지릴 처럼 말 위에서 축 늘어져 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군단은 신속히 이동해야했다. 무엇보다, 제국령에서 렌디노어까지의 길목에는 단 한 개의 요새 밖에 없었다. 제국이 네이룬 방면이 아닌 북서쪽으로 군단들을 출병시켰다는 정보는 그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단 한 개의 요새, 즉 두잔 요새로 향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두잔 요새가 함락된다면, 제국군은 파죽지세로 렌디노어까지 밀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런 치명적 사태를 막기 위해 제 7군단이 출정했다. 그들은 제국군 보다 먼저 요새에 도착해야만 했다. 이 긴급한 상황에서 체스의 훈련방침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왔음이 드러났다. 33도를 넘나드는 사막의 더위 속에서 매일같이 30마일씩 행군해도 장병들은 견뎌내었다. 각 중대의 선임하사들도 장병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소리지를 만큼 원기가 있었고, 장병들은 욕을 중얼거리며 뛸 정도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물론 체력이 바닥나 낙오할 위기에 처한 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은 예비군마 위에 얹혀져 체력을 회복했고, 좀 더 뛸 기력이 생기면 다른 이들과 교대했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나도 이해 못하겠어요. 무슨 이야기 책에 나오는 초인들 처럼 정신없이 뛰고도 팔팔했죠.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아마 다시 못할거에요.’
제 7군단 소속이었던 장병 한명이 이후 중년에 접어들어 회상한 것처럼, 병사들은 정말 초인이 된것처럼 달렸다. 그리고 체스는 그런 장병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프리디아의 주둔지에서 행군을 시작한지 10일이 지난 7월 15일 저녁. 군단 척후병이 아피아 직로 서쪽으로 이어진 평원에서 우뚝 솟아있는 건축물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또한,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연기와 그 아래 드러난 무수히 많은 인마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시점에서 체스는 군단병들을 독려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야영을 명령했다. 이 점에 대해서 보병대장보좌 휴고 위빙 상급 대위가 이의를 제기했다.

“요새가 함락될지도, 어쩌면 함락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빨리 요새에 도달해 적을 격퇴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그러나 군단장은 고개를 저었다.

“두잔 요새는 동북해안에서 하나 밖에 없는 요새다. 그렇기에 가장 견고한 요새이기도 하지. 그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현재 요새가 적의 수중에 떨어진 상태라고 한다면, 빨리 가봤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적의 공격뿐일 것이다. 물론, 나는 요새가 버티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여기서 요새 까지는 3마일 정도 거리. 적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긴 행군의 피로를 푸는 시간을 갖는 것이 군단 전투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적의 규모를 파악할 시간도 필요하지.”

“하지만, 적도 우리 군의 등장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오히려 적에게 대비할 시간만 주게되는 것이 아닐지요?”

위빙 대위의 반론에 군단장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참모들 중 그다지 눈여겨 보지 않았던 장교였는데, 당돌하게 반문하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 ‘대비’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우리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네. 지금 군단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아, 아닙니다. 잘 이해 했습니다, 군단장님.”

사실, 부하들에게 큰소리 치기는 했지만, 체스 본인도 모든 대책을 세워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정보는 필요했기에,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 몇몇의 부관만을 대동하고 제국군 병력에 대한 탐색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두잔 요새에서는 아직 초록 바탕에 붉은 올리브 잎이 그려진 공화국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단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풍경이 분위기를 암울하게 해줄 뿐이었다.

제국군 또한 새로이 당도한 공화군을 눈치채고 술렁였다. 망원경 저편에서 어느 제국군이 역시망원경을 들고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본 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곁에 서 있던 시데르는 망원경을 내리고 한마디 했다. “거 더럽게 많네.”

구체적인 작전이 세워진 것은 그날 한밤중이었다. 참모장 세지릴이 양동작전을 건의 했고, 시데르는 기병을 이용한 기만 전술을 건의했다. 라에비트는 기병지원을 받은 보병의 일점 집중 공격을 얘기했다. 결국 군단장 체스는 그 세 의견을 모두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새벽, 7월 15일이 16일로 바뀐지 3시간이 지난 무렵, 시데르의 보좌 토미 앤더슨 소령이 지휘하는 기병 2백여명과 휴고 위빙 대위가 이끄는 보병 1200명이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전장의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는 전 병력의 14%에 달하는 숫자였다. 이 이동은 제국군 또한 눈치채, 남쪽에 대한 경계를 하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두잔 요새에 대한 직접적 공세를 멈춘 채, 언제라도 3마일 떨어진 곳의 적에게 진군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 후 날이 밝아올 때까지 공화군이나 제국군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7월 16일 오전 7시 36분이 되어서 먼저 움직인 것은 제국군 쪽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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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나의 글수준의 한계가 드러날려  하는군.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