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앙 - 작가 : 월광토끼(moonrabit)
글 수 20
군단
1426년 4월 28일의 날씨는, 공화군 중령 시데르 로크에 말을 빌리자면, ‘거 더럽게 지저분’했다. 아침에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자욱한 안개가 끼다가, 안개가 좀 걷히는가 싶더니 하늘을 먹구름이 뒤덮은 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장대 같은 소나기가. 렌디노어 지방 전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빨래한지 몇 달은 넘었을 판초를 입고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순찰을 돌았다. 순찰병들만 욕설을 내뱉은 건 아니었다. 병영 내 막사에서 피로한 몸을 숙면으로 회복하고 있던 장병들도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소리에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뒤이어 울린 전원 연병장 집합 나팔에는 더 험한 욕설들을 외쳤다.
"비내리는 날 아침이 낭만적이라고 한 멍청이는 대체 누굴까요?"
욕설로 가득한 아침공기 속에서 시데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100년전 바다건너 아란치오 왕국 시인 빌헬름 쏘로."
부스스한 얼굴로 베개에서 고개를 든 체스가 답했다. 시데르는 언제나 일찍 일어났고, 종종 늦잠 자던 상관을 깨워주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굳이 답을 기대한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군복을 입고 잠이 드시다니, 밤까지 뭐하셨습니까?"
"음, 글쎄..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
"….."
사실 그는 한밤중까지 혼자 검술을 연무하고 피로함에 지쳐 잠이 든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스스로를 위로하기 보단 지키는 행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몇 시지?"
"0715시입니다. 군단 병력은 이미 연병장에 집합해 있을 겁니다."
"그럼 가자고."
체스는 침대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다 구겨진 군복을 입은 채로요?"
"괜찮아. 여기 뭐 여군이라도 있나? 있다해도, 여자 꼬시려 장군된 것도 아닌데, 누더기를 걸치던 구겨진 군복을 걸치던 무슨 상관이야. RCB에서도 다들 꾀죄죄했었잖아."
군화의 신발 끈을 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이미 졸음이 걷혀 있었다.
"특전대랑 정규군은 다릅니다. 군단장으로서의 위엄이란 것도 갖추실 필요가 있습니다, 장군님."
시데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갈아입을 시간도 없지 않나?"
"휴우. 그럼 머리라도 좀 빗고 가세요."
부관은 '손'으로 머리를 다듬는 상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체스와 시데르는 우산을 쓴 채 연병장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6천여 명에 다다르는 많은 장병들이 비를 맞으며 정렬해 있었다.
"연설할 준비는 하셨습니까?"
시데르가 물었다.
"아니. 전혀."
체스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가 단상에 오르자 군단 참모들중 하나인 듯한 장교가 나서 외쳤다.
"전원 차렷-! 열중-쉬엇!! 차렷! 새로 부임오신 제 7군단 사령관님께 경례!"
"충-성!"
음성 확대기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 체스가 입을 열었다.
"쉬어."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마법의 힘을 빌어 그의 음성은 널리 퍼져나갔다. 그는 잠시 장병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눈에 불신, 불안, 의아함이 담겨있었다. ‘내가 너무 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생각했다.
"본관은, 오늘부로 공화육군 제 7군단의 군단 사령관을 맡게 된 체스 아크벨 준장이다. 제군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본관처럼, 제군들도 오늘부터 정식으로 공화육군 제 7군단에 편성된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연설을 듣던 시데르는, ‘기쁘기 그지없는 만남을 가지기에는 지저분한 날씨군.’ 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세계의 정세는 매우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 바로 옆의 아르카디아 제국은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제제를 동시에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국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최전선에 설 군단들이다. 우리 7군단도, 그 군단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과연 저들도 ‘우리’라고 생각할까.’ 체스는 잠시 쉬고 말을 이었다.
"나는 제군들에게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구르라면 구르고, 앉으라면 앉고, 뛰라면 뛴다. 그저 군인의 본분, 상관명령에 복종하는 것만 수행하면 그만이다. 마치 똥개 훈련하듯이. 그래서 육군이 ‘땅개’아닌가?"
이 대목에서 많은 고참 병사들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면, 그대들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공화국을 지키는 영웅이 될 수 있다."
‘젠장, 내가 왜 이렇게 잘난 체했지? 난 저들을 전장의 영웅으로 만들 재주도, 살릴 재주도 없는데? 너무 잘난 체했으니 나를 이제 우습게보겠지. 빌어먹을!’ 연설가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비도 오는데 내 말이 길어지기를 원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잘 부탁한다."
스스로 말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어정쩡하게 말을 끝마치게 되었다. 비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계속 쏟아졌다.
연설을 마친 후, 체스는 지휘막사 안에서 자신의 부관들이 될 제 7군단 장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는 부임하기 전에 서류상으로만 인선을 했고, 그 장교들과는 자신이 직접 뽑았음에도 처음만나는 것이었다.
"저는 에아레스 라에비트 소령입니다. 지금까지 중장보병부대의 조련과 지휘를 맡았습니다."
짙은 황갈색의 머리에 앳된 인상을 지닌 장교였다. 체스는 그가 아침에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정렬시킨 장교임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병 전투에 있어서 매우 능력있다 들었네."
"하하, 과찬이십니다."
라에비트 소령은 웃는 모습도 앳되어 보였다.
"트레번 넥슈타인 대위입니다. 군단보급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보급 장교의 흔한 이미지와 달리 우락부락해 보이는 장교가 체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체스는 처음에 이 장교들을 봤을 때 혼란을 일으켰었다. 보병지휘관같은 사람이 보급과 부대재정관리의 실력자이고, 여리게 생겨 후방근무나 하면 알맞을것 같은 장교가 보병지휘에 탁월하다니.
"델로스 하크엘 소령입니다. 군단 내 마법부대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체스가 지적으로 생긴 중년 장교와 인사를 나누던중, 메조소프라노 퐁의 여린, 그러나 강한 음성이 들려왔다.
"세지릴 마이오프 중령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체스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맵시 있게 군복을 갖춰 입은 여성이 도발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체스는 당황했다.
‘이건 대체 누구지? 난 여군을 인선한 기억이 없는데?’
"제 7군단 참모장으로 발령받아 지금 도착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전혀 죄송한 표정이 아니었다.
"본관은 참모장으로 게난 쳐크올릿 중령을 선임한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귀관이 온 것이지?"
"쳐크올릿 중령님은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육군 제 7군단 참모장 자리에 지원자가 그 외엔 저밖에 없어 발령받았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 서류에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당당히, 그러면서도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보라빛 머리는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흔들렸다. 시데르는 ‘꽤 미녀인데?’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휘파람을 불고 싶었으나 자제했다. 체스는 ‘당당하고 똑똑해 보이는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서류를 건네받음과 동시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좋아, 마이오프 중령. 만나서 반갑네. 잘 부탁하지. 7군단에 온 걸 환영하네. 물론 여기 있는 모두가 새로운 사람들이지만."
여군 중령은 군단장이 내민 손에 머뭇하다 그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각하."
세지릴은 다른 참모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사령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자고. 라에비트 소령, 우리 군단의 총병력은 어느정도이지?"
"보병이 총 5617명이고, 기병 자원자는 총 3200명입니다. 마법사부대는 총 200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외 의무병, 사무병, 공병이 800명 정도 됩니다. 총합 9800명입니다."
라에비트 소령은 서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좋은 기억력이군. 하지만 수가 매우 적군. 일반적인 군단규모는 전투병만 1만 2천 명 정도 아닌가?"
체스가 군단 병력에 관한 서류와 소령의 발언을 비교하며 물었다.
"우리군단은 방금 막 신설되었으니까요."
넥슈타인 대위가 대답했다.
"병력 보충은 누가하나?"
이번엔 시데르가 물었다. 그는 다른 장교들 모두가 자신처럼 중령이거나 더 낮은 계급인걸 보고 평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제가 합니다."
라에비트 소령이 대답했다.
"좋아, 그럼 자네는 보병을 천 명 정도 더 모집하게. 우리 권한 내에서 타부대원도 빼 오도록. 지금 당장부터 시작하게."
"예, 사령관각하."
젊은 소령이 밖으로 날렵히 뛰어나가자 체스는 트레번 넥슈타인에게 몸을 돌렸다.
"넥슈타인 대령, 보급품 상황은 어떤가?"
"현재 병력의 1달치 A-샌드와 1만 자루의 장검, 8천정의 에너지 라이플, 그리고 에너지캡슐이 1천상자 정도입니다. 여분의 군복은 5천벌 정도로 많이 모자랍니다. 그외 생필품은 충분히 구비해 두었습니다. 야영장비는 모두 충분한 상태입니다. 단지... 기병용 흉갑이 거의 없을 뿐, 괜찮습니다."
A-샌드란 것은 야전 식량을 말하는 것으로, 채소와 고기분말을 섞어 빻아 만든 빵이였다. 트레번의 보고를 들은 체스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기병용 흉갑의 보급을 서두르게.“
"하지만, 에너지 탄 몇방이면 기병 흉갑은 별 쓸모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군단은 보병위주가 아닙니까?"
"아니, 기병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중요하지. 흉갑이 필요해."
트레번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군에 갑옷을 제공하는 폭스아머사(Fox Armor Company)에서는 기병 흉갑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데요?"
"자네가 유능한 보급 장교라면, 그런 것쯤은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네. 어떻게든 구해놓도록."
순간 여러가지 사고가 군단 보급장교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졌다. ‘시중에 기병흉갑을 파는 곳이 어디가 있지? 아니, 디펜스패컬티사에서 대량의 흉갑을 재고 처리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육군 방어구 규정에 맞는 디자인일까?’
"그리고, 우리 군단의 재정 규모는 어느 정도이지?"
군단장의 뒤이은 질문에 트레번의 생각은 끊겼다.
"현재 군단금고에 1만타렌정도가 입금되어있습니다."
1타렌은 20골덴의 가치를 지니는 고급화폐였다. 그렇기에, 1만 타렌이란 20만 골덴이라는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이었다.
"큰 돈이군."
"휘-우"
시데르가 휘파람을 불었다.
"육군 재정부에서 의외로 인심을 후하게 썼더군요."
"그러면, 그 돈을 가지고, 얼른 가죽갑옷을 구비해오게."
"예, 장군님."
거구의 몸이 흔들거리며 뛰어나가는 것을 본 군단장은, 이번에는 마법사에게 질문했다.
"델로스 하크엘 소령, 우리 군단 마법사들의 수준은 어느정도 되나?"
"전원 전투마법 B클래스 이상은 됩니다."
"자네의 수준은?"
"A클래스입니다."
"좋아, 그러면 내일 마법대대의 전투능력을 테스트하겠으니, 오늘부터 훈련을 시키도록."
체스는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리고 서류를 보고 결재하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데르 자네는 언제나 그랬듯이, 기병대를 총괄해야겠지."
"물론이지요! 그럼 여기 기병들의 승마실력을 확인하러 가보겠습니다."
나간 후, 체스는 다른 참모들에게도 지시를 내렸고, 마지막으로 신임 참모장 세지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세지릴이 먼저 말했다.
"제 인사기록사항을 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저는 어떤 임무를 맡아도 다 수행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장군님, 저는 어떤 일을 수행하면 되지요?"
체스는 그녀의 언동에서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중령 자네는 군단이동이나, 전술구상, 전투중 부대 운용 등 모든 면에서 나를 보좌하면 되네. 의견이 있으면 제시하고, 다른 참모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아무튼, 할 일이 많겠지. 지금 당장은, 1군 사령부에 가서 소속 군단에 제 7군단을 정식으로 기제하고, 군단창설 인준은 이미 완료된 사항이니 확인만하고 오게."
"예, 사령관 각하."
그녀는 경례 후 몸을 돌려 지휘막사를 빠져나갔다. 체스는 잠시 후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세지릴 마이오프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만났다면 얼굴 잊어버릴 일은 없을 텐데.’
체스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 일을 계속했다.
공화군 제 1 야전군 소속 제 7군단은 1426년 4월 28일, 비가 오는 가운데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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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매운탕이 매우매우 맛있었습니다.
민어 전도 맛있었고.
...쪼까 비쌌지만
1426년 4월 28일의 날씨는, 공화군 중령 시데르 로크에 말을 빌리자면, ‘거 더럽게 지저분’했다. 아침에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자욱한 안개가 끼다가, 안개가 좀 걷히는가 싶더니 하늘을 먹구름이 뒤덮은 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장대 같은 소나기가. 렌디노어 지방 전역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빨래한지 몇 달은 넘었을 판초를 입고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순찰을 돌았다. 순찰병들만 욕설을 내뱉은 건 아니었다. 병영 내 막사에서 피로한 몸을 숙면으로 회복하고 있던 장병들도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소리에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뒤이어 울린 전원 연병장 집합 나팔에는 더 험한 욕설들을 외쳤다.
"비내리는 날 아침이 낭만적이라고 한 멍청이는 대체 누굴까요?"
욕설로 가득한 아침공기 속에서 시데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100년전 바다건너 아란치오 왕국 시인 빌헬름 쏘로."
부스스한 얼굴로 베개에서 고개를 든 체스가 답했다. 시데르는 언제나 일찍 일어났고, 종종 늦잠 자던 상관을 깨워주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굳이 답을 기대한건 아닙니다만. 그리고, 군복을 입고 잠이 드시다니, 밤까지 뭐하셨습니까?"
"음, 글쎄..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
"….."
사실 그는 한밤중까지 혼자 검술을 연무하고 피로함에 지쳐 잠이 든 것이었다. 그것은, 아마 스스로를 위로하기 보단 지키는 행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몇 시지?"
"0715시입니다. 군단 병력은 이미 연병장에 집합해 있을 겁니다."
"그럼 가자고."
체스는 침대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다 구겨진 군복을 입은 채로요?"
"괜찮아. 여기 뭐 여군이라도 있나? 있다해도, 여자 꼬시려 장군된 것도 아닌데, 누더기를 걸치던 구겨진 군복을 걸치던 무슨 상관이야. RCB에서도 다들 꾀죄죄했었잖아."
군화의 신발 끈을 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이미 졸음이 걷혀 있었다.
"특전대랑 정규군은 다릅니다. 군단장으로서의 위엄이란 것도 갖추실 필요가 있습니다, 장군님."
시데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갈아입을 시간도 없지 않나?"
"휴우. 그럼 머리라도 좀 빗고 가세요."
부관은 '손'으로 머리를 다듬는 상관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체스와 시데르는 우산을 쓴 채 연병장으로 향했을 때는 이미 6천여 명에 다다르는 많은 장병들이 비를 맞으며 정렬해 있었다.
"연설할 준비는 하셨습니까?"
시데르가 물었다.
"아니. 전혀."
체스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가 단상에 오르자 군단 참모들중 하나인 듯한 장교가 나서 외쳤다.
"전원 차렷-! 열중-쉬엇!! 차렷! 새로 부임오신 제 7군단 사령관님께 경례!"
"충-성!"
음성 확대기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 체스가 입을 열었다.
"쉬어."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마법의 힘을 빌어 그의 음성은 널리 퍼져나갔다. 그는 잠시 장병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눈에 불신, 불안, 의아함이 담겨있었다. ‘내가 너무 젊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생각했다.
"본관은, 오늘부로 공화육군 제 7군단의 군단 사령관을 맡게 된 체스 아크벨 준장이다. 제군들을 만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본관처럼, 제군들도 오늘부터 정식으로 공화육군 제 7군단에 편성된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연설을 듣던 시데르는, ‘기쁘기 그지없는 만남을 가지기에는 지저분한 날씨군.’ 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세계의 정세는 매우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다. 바로 옆의 아르카디아 제국은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제제를 동시에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국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최전선에 설 군단들이다. 우리 7군단도, 그 군단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과연 저들도 ‘우리’라고 생각할까.’ 체스는 잠시 쉬고 말을 이었다.
"나는 제군들에게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저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구르라면 구르고, 앉으라면 앉고, 뛰라면 뛴다. 그저 군인의 본분, 상관명령에 복종하는 것만 수행하면 그만이다. 마치 똥개 훈련하듯이. 그래서 육군이 ‘땅개’아닌가?"
이 대목에서 많은 고참 병사들이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면, 그대들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공화국을 지키는 영웅이 될 수 있다."
‘젠장, 내가 왜 이렇게 잘난 체했지? 난 저들을 전장의 영웅으로 만들 재주도, 살릴 재주도 없는데? 너무 잘난 체했으니 나를 이제 우습게보겠지. 빌어먹을!’ 연설가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렸다.
"비도 오는데 내 말이 길어지기를 원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잘 부탁한다."
스스로 말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어정쩡하게 말을 끝마치게 되었다. 비는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계속 쏟아졌다.
연설을 마친 후, 체스는 지휘막사 안에서 자신의 부관들이 될 제 7군단 장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는 부임하기 전에 서류상으로만 인선을 했고, 그 장교들과는 자신이 직접 뽑았음에도 처음만나는 것이었다.
"저는 에아레스 라에비트 소령입니다. 지금까지 중장보병부대의 조련과 지휘를 맡았습니다."
짙은 황갈색의 머리에 앳된 인상을 지닌 장교였다. 체스는 그가 아침에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정렬시킨 장교임을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병 전투에 있어서 매우 능력있다 들었네."
"하하, 과찬이십니다."
라에비트 소령은 웃는 모습도 앳되어 보였다.
"트레번 넥슈타인 대위입니다. 군단보급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보급 장교의 흔한 이미지와 달리 우락부락해 보이는 장교가 체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체스는 처음에 이 장교들을 봤을 때 혼란을 일으켰었다. 보병지휘관같은 사람이 보급과 부대재정관리의 실력자이고, 여리게 생겨 후방근무나 하면 알맞을것 같은 장교가 보병지휘에 탁월하다니.
"델로스 하크엘 소령입니다. 군단 내 마법부대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체스가 지적으로 생긴 중년 장교와 인사를 나누던중, 메조소프라노 퐁의 여린, 그러나 강한 음성이 들려왔다.
"세지릴 마이오프 중령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체스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맵시 있게 군복을 갖춰 입은 여성이 도발적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체스는 당황했다.
‘이건 대체 누구지? 난 여군을 인선한 기억이 없는데?’
"제 7군단 참모장으로 발령받아 지금 도착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녀는 전혀 죄송한 표정이 아니었다.
"본관은 참모장으로 게난 쳐크올릿 중령을 선임한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서 귀관이 온 것이지?"
"쳐크올릿 중령님은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육군 제 7군단 참모장 자리에 지원자가 그 외엔 저밖에 없어 발령받았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이 서류에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당당히, 그러면서도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보라빛 머리는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흔들렸다. 시데르는 ‘꽤 미녀인데?’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휘파람을 불고 싶었으나 자제했다. 체스는 ‘당당하고 똑똑해 보이는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서류를 건네받음과 동시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좋아, 마이오프 중령. 만나서 반갑네. 잘 부탁하지. 7군단에 온 걸 환영하네. 물론 여기 있는 모두가 새로운 사람들이지만."
여군 중령은 군단장이 내민 손에 머뭇하다 그 손을 맞잡아 악수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각하."
세지릴은 다른 참모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사령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해보자고. 라에비트 소령, 우리 군단의 총병력은 어느정도이지?"
"보병이 총 5617명이고, 기병 자원자는 총 3200명입니다. 마법사부대는 총 200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외 의무병, 사무병, 공병이 800명 정도 됩니다. 총합 9800명입니다."
라에비트 소령은 서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좋은 기억력이군. 하지만 수가 매우 적군. 일반적인 군단규모는 전투병만 1만 2천 명 정도 아닌가?"
체스가 군단 병력에 관한 서류와 소령의 발언을 비교하며 물었다.
"우리군단은 방금 막 신설되었으니까요."
넥슈타인 대위가 대답했다.
"병력 보충은 누가하나?"
이번엔 시데르가 물었다. 그는 다른 장교들 모두가 자신처럼 중령이거나 더 낮은 계급인걸 보고 평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제가 합니다."
라에비트 소령이 대답했다.
"좋아, 그럼 자네는 보병을 천 명 정도 더 모집하게. 우리 권한 내에서 타부대원도 빼 오도록. 지금 당장부터 시작하게."
"예, 사령관각하."
젊은 소령이 밖으로 날렵히 뛰어나가자 체스는 트레번 넥슈타인에게 몸을 돌렸다.
"넥슈타인 대령, 보급품 상황은 어떤가?"
"현재 병력의 1달치 A-샌드와 1만 자루의 장검, 8천정의 에너지 라이플, 그리고 에너지캡슐이 1천상자 정도입니다. 여분의 군복은 5천벌 정도로 많이 모자랍니다. 그외 생필품은 충분히 구비해 두었습니다. 야영장비는 모두 충분한 상태입니다. 단지... 기병용 흉갑이 거의 없을 뿐, 괜찮습니다."
A-샌드란 것은 야전 식량을 말하는 것으로, 채소와 고기분말을 섞어 빻아 만든 빵이였다. 트레번의 보고를 들은 체스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기병용 흉갑의 보급을 서두르게.“
"하지만, 에너지 탄 몇방이면 기병 흉갑은 별 쓸모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군단은 보병위주가 아닙니까?"
"아니, 기병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중요하지. 흉갑이 필요해."
트레번은 당황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군에 갑옷을 제공하는 폭스아머사(Fox Armor Company)에서는 기병 흉갑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데요?"
"자네가 유능한 보급 장교라면, 그런 것쯤은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네. 어떻게든 구해놓도록."
순간 여러가지 사고가 군단 보급장교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졌다. ‘시중에 기병흉갑을 파는 곳이 어디가 있지? 아니, 디펜스패컬티사에서 대량의 흉갑을 재고 처리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육군 방어구 규정에 맞는 디자인일까?’
"그리고, 우리 군단의 재정 규모는 어느 정도이지?"
군단장의 뒤이은 질문에 트레번의 생각은 끊겼다.
"현재 군단금고에 1만타렌정도가 입금되어있습니다."
1타렌은 20골덴의 가치를 지니는 고급화폐였다. 그렇기에, 1만 타렌이란 20만 골덴이라는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이었다.
"큰 돈이군."
"휘-우"
시데르가 휘파람을 불었다.
"육군 재정부에서 의외로 인심을 후하게 썼더군요."
"그러면, 그 돈을 가지고, 얼른 가죽갑옷을 구비해오게."
"예, 장군님."
거구의 몸이 흔들거리며 뛰어나가는 것을 본 군단장은, 이번에는 마법사에게 질문했다.
"델로스 하크엘 소령, 우리 군단 마법사들의 수준은 어느정도 되나?"
"전원 전투마법 B클래스 이상은 됩니다."
"자네의 수준은?"
"A클래스입니다."
"좋아, 그러면 내일 마법대대의 전투능력을 테스트하겠으니, 오늘부터 훈련을 시키도록."
체스는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리고 서류를 보고 결재하며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시데르 자네는 언제나 그랬듯이, 기병대를 총괄해야겠지."
"물론이지요! 그럼 여기 기병들의 승마실력을 확인하러 가보겠습니다."
나간 후, 체스는 다른 참모들에게도 지시를 내렸고, 마지막으로 신임 참모장 세지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세지릴이 먼저 말했다.
"제 인사기록사항을 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저는 어떤 임무를 맡아도 다 수행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장군님, 저는 어떤 일을 수행하면 되지요?"
체스는 그녀의 언동에서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중령 자네는 군단이동이나, 전술구상, 전투중 부대 운용 등 모든 면에서 나를 보좌하면 되네. 의견이 있으면 제시하고, 다른 참모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아무튼, 할 일이 많겠지. 지금 당장은, 1군 사령부에 가서 소속 군단에 제 7군단을 정식으로 기제하고, 군단창설 인준은 이미 완료된 사항이니 확인만하고 오게."
"예, 사령관 각하."
그녀는 경례 후 몸을 돌려 지휘막사를 빠져나갔다. 체스는 잠시 후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세지릴 마이오프라…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만났다면 얼굴 잊어버릴 일은 없을 텐데.’
체스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 일을 계속했다.
공화군 제 1 야전군 소속 제 7군단은 1426년 4월 28일, 비가 오는 가운데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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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매운탕이 매우매우 맛있었습니다.
민어 전도 맛있었고.
...쪼까 비쌌지만
안녕하십니까, 월광토끼입니다. 공상과학물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이곳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