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폭풍 - 글 : 사이클론(Cyclon)
글 수 65
이번화는 제법 스크롤 압박이 있을겁니다.
제 생애 최초로 텍스트문서 기준으로 16KB 용량을 한방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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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 여어기 전마앙 주우이는데!!"
"음... 레미아, 말씀하실땐 입에 물고계신 아이스크림 막대 부터 빼고 하시는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명의 불청객이 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운동장 구석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벤치에 앉아서 언덕 아래 마을의 정경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마침 체육수업중이던 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이방인에게로 집중되었고 수업을 주관해야할 체육선생마저 두사람을 발견하자마자 희색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자습!"을 외친후 운동장 한쪽 구석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학생들쪽으로 걸음을 옮긴것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달려갈때와는 반대로 축 쳐진 선생의 모습을 본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댔고 잠시후에는 키득거리는 웃음까지 터져나왔다.
미나미 사코우섬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는 섬 가운데 위치한 산중턱에 세워진 작은 규모의 2층짜리 건물이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이 섬의 인구는 삼천명이 채 되지 않았고 고등학교라 해봐야 1,2,3학년 다 합해서 전교생은 90여명. 3개 학급이 전부였고 교직원이라고 해봐야 10명 안팎. 배를타고 가면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걸리는 외딴섬이 그나마 이정도 인원이라도 유지되는것이 섬 한쪽편에 자리잡은 가네다 중공업의 항공우주산업 연구소 때문으로,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40퍼센트 정도가 근무지를 옮겨다니는 연구소 직원들의 자제였다.
언뜻봐도 1미터는 거뜬히 넘을것 같은 길디 긴 검은색 머리칼이 때마침 불어온 강한 바닷바람에 휘날리자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면서 언덕 아래로 펼쳐진 마을의 정경을 바라보던 20대 여성은 시선을 마을에서 돌려 자기들끼리 편을 나눠 농구시합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얼마후, 이곳에서 일어날 엄청난 일을 알지조차 못하는 천진난만한 모습. 그녀는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레미아.. 우리.. 정말 잘하는 걸까요.. 아무리 그분의 부탁이라고는 해도.. 저런 아이들까지.."
갑자기 무거워진 그녀의 대답에,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바다를 바라보던 레미아라고 불린 초록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도 입에 물고있던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빼며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를 지웠다. 그녀는 그대로 바다를 응시하면서 귀찮다는듯이 내뱉았다.
"하아.. 몰라, 나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그러나 퉁명스러운 레미아의 대답이 여성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절대로 안될걸. 우리가 여기에 게이트를 열지 않으면 열데가 없어. 이 근방은 이쪽 세계와 우리 세계를 잇는 통로중에서도 몇 안되는 '안정 구역'이니까."
레미아는 그렇게 말한 직후, 갑자기 뒤로 홱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는 차책감과 고민에 잔뜩 휩싸인 표정을짓고 있는 흑발 여성을 노려다 보았다. 두사람의 눈이 서로의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상대방의 맑디맑은, 그러나 단호한 의지가 담긴듯한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한참동안 주시하던 흑발여성이 결국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있던 음료수 캔을 강하게 움켜 쥐었고 놀랍게도 아직 미개봉 상태로 있던 캔은 너무도 간단하게 터져나가며 내용물을 사방에 흩뿌렸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건가요.."
자신보다 외견상 나이는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보다 터무니없이 어린 여인을 가만히 응시하던 레미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언의 긍정을. 그리고, 흑발 여성은 무언의 부정을.
"이번 '일'은 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한것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저 아이들에겐 이번 '일'은 너무 가혹해요!"
더 나은 미래? 레미아가 코웃음 쳤다.
"더 나은 미래는 없어. 게이트가 열리면 조만간 여기는 전장이 될거고 지옥이 돼. 저 아이들. 그리고 저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더 나은 미래따윈 없어. 오직 지옥만이 있을뿐. 저 아이들의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저 세대의 아이들은 오히려 여기서 죽는게 더 편할지도 몰라."
레미아의 그 말 이후로, 그녀들은 한동안 말없이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해는 어느덧 기울기 시작했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하교할때까지 둘은 말없이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흑발 여성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죽어도 좋은 미래따윈 없어요."
"응?"
"아무리 힘들어도, 어려워도, 죽고싶어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뿐이에요. 죽음이 안식이라고요? 더 편할거라고요? 저 아이들도 자기들의 꿈이있어요, 바람이 있다구요. 저 아이들은 절대로 살아야해요. 비록 자신의 꿈은 이루게 될수 없을지 모르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도요. 그러니까 전.."
"에리엘.. 너 설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작게 입을 벌린채 놀란 표정을 짓는 레미아의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에리엘'이라 불린 흑발 여성이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 여기 남습니다. 곧 아무것도 모르고 전장이 되어버릴 이 섬사람들을 지킬수 있는건 우리들뿐입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전쟁에 휘말려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따윈 만들지 않아요. 레미아가 싫다면 저 혼자라도 여기 남겠습니다. 그리고 여길 지켜보이겠어요. 전쟁을 불러올 제 행동에 대한 사죄를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저 아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결의에 찬 흑색 눈동자를 잠시 주시하던 레미아도 놀란 표정을 지우고 잠시 무표정해졌다가 오른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 역시 너 답구나.. 뭐, 그것도 좋겠지? 어차피, 그분은 우리보고 게이트를 열라고 하셨지 그 이후의 지시는 내리시지 않으셨으니까. 좋아, 나도 남지. 어쨌든 나도 좀 마음에 걸렸으니까."
그녀의 대답에 에리엘의 표정이 눈에띄게 밝아졌다.
"레미아..."
"근데..."
그러나, 희미하게 미소를 짓던 레미아의 표정이 급작스럽게 돌변하기 시작했다. 뭔가 흐뭇해보이던 미소는 점점 더 사악한 미소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의 표정에 에리엘은 뭣인가 잘못되었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
"음.. 방금 네 대사말야. 죽음 어쩌고 미래 어쩌고 주절주절 한것. 그거 천 칠백년 전에 '그 녀석'이 너 달랠때 쓴 그거 아냐?"
"아... 네."
"흐음...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설마 설마 했는데 '케이렌' 녀석이 한 말이 맞네. 너랑 그녀석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거. 근데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촐싹거리는데다가 덜렁이. 제멋대로는 기본이고 양심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랑 뻔뻔스러운 녀석이랑 네가 연인 사이라.... 흐음.."
이미 눈앞의 여성이 안중에서 없어진 레미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심결에 중얼거린 그 한마디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저녁노을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알아볼 정도로 에리엘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재빨리 양손을 들어 강하게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건...!"
"강한 부정은 오히려 강한 긍정을 뜻하지. 아니, 그것보다 빈약한 증거를 가지고 억지 결론을 도출해냈는데도 별다른 변명조차 못하고 어색한 부정만을 하는걸 보니... 오홍, 역시나. '세노베르' 녀석이 알면 좋아라 하겠는데?"
"레.. 레미아? 이제 그만 일이나 하죠? 네?"
얼굴 가득 짖궂은 미소를 띄고 있는 레미아를 바라본 에리엘은 더이상 변명할 방법이 없다는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실실거리며 웃고있는 레미아의 등을 억지로 떠다 밀면서 교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레미아는 반 강제로 떠다 밀리면서도 에리엘에게 짖궂은 농담을 계속해서 던졌다.
*
같은 시각. 민간 부두와는 정확하게 섬 반대편 해안에 자리잡은 가네다 중공업 항공우주산업 연구소 한쪽에 자리잡은 헬기착륙장을 향해 해상자위대 소속의 수송헬기 두대가 헬기 특유의 요란스러운 엔진음을 내며 내려앉고 있었다. 헬기들이 착륙하는 모습을 지상에서 바라보는 연구소 직원 복장의 60대 후반의 남자는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말했다.
"드디어 높은분께서도 납시는구만... 그리고, 역사적인 실험이 드디어 시작되는군..우리의 이름은 전 일본, 아니 전 세계에 크게 알려질거야."
비서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을 조아렸다. 헬기가 완전히 바닥에 내려앉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십여명의 경호원들이 먼저 내리며 대형을 취했고 뒤이어서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비대한몸집의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노인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연구소 관계자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3년만이군. 카와카미 박사. 아니, 카와카미 연구소장."
'카와카미'라 불린 연구소 직원복장의 60대 남자가 눈앞에 서 있는 비대한 몸집의 노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리대신 각하의 임기 내에 완성할수 있었던것을 무한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끌끌끌. 성대가 노화된 노인의 입에서 힘겨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연구소 건물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미 10년이 자났네. 만일 내 임기내에 완성되지 않았다면, 정부가 이런 외딴섬에 수천억 엔을 부어서 이 연구소를 설립한것 자체가 의미 없지 않나. 미국도, 러시아도 아직 연구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들었네. 멍청한 조센징 놈들은 아예 '그것'이 자기네 땅에 묻혀 있는줄도 모르더군. 끌끌. 이번 연구성과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성공한거야. 자네의 노고에 감사하고 있어. 이로써 우리 일본이 이계로 가는 첫번째 발판을 마련한거네. 클클클."
"자, 그러면 어서 가시죠. 각하께서 도착하시는대로 두번째 실험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카와카미의 말을 들으며 노인인 다시 한번 클클거리는 예의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천천히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두께만 1미터가 넘는 거대한 철문을 3개나 통과한뒤, 미로같이 짜여진 꼬불꼬불한 복도를 걸어나가자 그 끝에는 엘리베이터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컸고 카와카미와 그의 비서, '총리'라고 불린 노인과 그의 수행원과 경호원 5명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지하 3층까지 내려가서 멈추었고, 문이 여리자 그들앞에 펼쳐진것은 거대한 지하 공터와 그 공터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지름 10미터정도의 거대한 금속제 링이었다.
"클클... '스타게이트'랑 모양이 비슷한것 같군."
총리의 말에 카와카미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스타게이트'는 그저 영화일뿐이죠. 저건 실물입니다. 아, 드디어 시작하는군요. 이 역사적인 광경. 꼭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하 공터에는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직원이 읆는 나지막한 카운트만이 울려퍼졌다.
-제 3번 동력파이프, 정상접속. 전력공급 이상 없음.
지하공터를 비추던 형광등의 불빛이 꺼지고, 대신 붉은색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노인은 힘들게 걸음을 옮기며 통제실 안으로 들어갔고 통제실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거대한 금속 링을 바라보았다.
-'천국의 문' 기동 시작. 게이트 생성까지 앞으로 3분30초. 보안군은 게이트 앞으로.
그에 맞추어 자위대의 제식소총인 89식 자동소총과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20여명의 보안군이 금속 링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열을 갖춘 그들은 곧 무릎쏴 자세로 게이트를 겨냥했다.
"보안군은 왜..?"
총리가 자신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지자 카와카미는 곧바로 대답 대신 통제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브리핑 자료를 들고오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총리는 말없이 그 책자를 받아서 펼쳤고 페이지를 몇장 넘기자 그의 눈이 커졌다.
"이...이게 뭔가?"
"우리가 '엘프'로 명명한 이계생명체입니다. 보시다시피 외관은 사진에서 확인하실수 있듯 길고 뾰족한 귀를 제외하면 인간 여성과 외형이나 체형이 거의 동일합니다만 이상하게도 이들에겐 성기 자체가 없는것뿐 아니라 남,녀의 구별 자체가 아예 없는듯 합니다."
-상황 알파 발동. 게이트 발동시작. 완전 개방까지는 앞으로 2분10초.
통제실 직원의 알림에 맞추어 잠시 숨을 가다듬고 탁자에 놓인 생수병을 들어 잠시 목을 축인 카와카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또한 이들은 생긴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포악하며 육식을 즐기는듯이 보였습니다. 1개월 전에 실행했던 지난 1차 게이트 실험때 약 4개체가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건너왔으며 이들은 건너오자마자 무방비상태의 우리 연구소 직원 1명을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서 자신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뒤늦게 출동안 보안군 역시 놀랍도록 민첩한 이들의 움직임에 3명이나 사망했습니다. 반격에 나선 보안군의 사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총탄을 맞고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듯 계속해서 공격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엘프 2개체가 게이트를 다시 건너가 자신들의 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상황 베타 발동. 게이트 발동 진척률 35%. 완전개방까지 앞으로 1분 5초.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됐나?"
"하나는 집중사격으로 사살했고 나머지 하나는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다리부위에 집중사격을 가하여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하여 쓰러트린후 전기톱으로 양 팔까지 절단시켜서 지금은 특수 연구실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녀석이라서요."
총리가 의혹가득한 눈초리로 카와카미를 바라보았다.
"팔다리를 전부 잘랐는데도 위험하다니..?"
"그게.. 말입니다. 절단 직후부터 엘프의 신체 절단부위에서 급속한 세포분열과정이 일어나더니 잘렸던 신체부위가 재생되는것을 확인했기때문입니다. 1차실험으로부터 7일이 지났을때 엘프의 팔다리는 완벽하게 재생되었습니다."
"그런 말도 안돼는..!!"
-게이트 개방 완료. 코드 레드 발동. 전 보안군은 경계를 늦추지 말라.
*
"이봐, 히라이 왜 또 기다린거냐?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랬잖아. 벌써 어두워졌어."
짐짓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의 피가 섞여있다는 증거인 밝은 금발머리를 등허리께까지 자연스럽게 기른 순진한 인상의 소녀가 배시시 웃었다.
"으응. 어차피 나도 학생회 일 때문에 일곱시에 학교를 나왔으니까... 와타루 혼자 청소하는걸 봐버렸는걸. 같이 가주는게 와타루쪽에서도 더 좋지 않아?"
"전혀."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학생주임인 타카요시의 집중관리를 받고있는 와타루는 늘 그렇듯 오늘도 역시 말도안돼는 학생주임의 꼬투리 잡기에 걸려들어 방과후에도 무려 네시간이나 붙잡혀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녹초가 되어 교문을 나섰고 300개가 넘는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그를 반기는것은 자신의 12년지기 소꿉친구.
지금 시간은 벌써 오후 여덟시. 하늘은 점점 어둠에 물들어가고 있었고 가로등 역시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시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고만 있는 히라이를 바라보던 와타루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긴, 너 혼자 보내는것도 찜찜하긴 마찬가지구나. 날도 어두워지는데 어디서 또 넘어질라."
그 말 한마디에 히라이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아앗. 너무해!"
"됐으니까 이만 가볼까?"
둘은 천천히 학교로 오르는 계단 앞에 난 차도를 따라 마을 방향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학교는 마을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정도 속도로 걸어간다면 30분은 족히 걸릴것이고 그동안은 응석받이(?)인 자신의 소꿉친구를 상대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와타루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쩌다 이런 녀석하고 이웃이 됐는지.."
"응?"
그의 혼잣말에 세걸음 정도 뒤쳐져 걷던 히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타루를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생각만 하려던 것을 무심코 입밖에 내버린 와타루가 당황하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에엑?"
갑자기 멍청하게 커진 그의 눈동자를 본 히라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와타루? 왜그래?"
그러나 이미 반쯤 얼이 빠진 와타루는 멍청하게 히라이의 뒤를 가르킬뿐 제대로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뒤를 돌아본 히라이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눈부신 금발을 엉덩이께까지 자연스럽게 내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엄청난 미인이 히라이의 바로 뒤에서 묘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의 양쪽 귀는 인간이라고 볼수 없을정도로 길고 뾰족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던 와타루가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았다.
"엘....프? 데라타니 말이 진짜였던거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얼굴에 튄 붉은색의 비릿한 액체. 그리고 앞에 있는 소꿉친구의 배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온 피묻은 손. 그리고 히라이의 배에 손을 박은채로 잔혹한 웃음을 짓고있는 엘프.
"어.... 어라......?"
힘없는 히라이의 의문 가득섞인 말. 그리고 그 직후 그녀의 입을 통해 피분수가 솟구쳤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개구리처럼 파르르 떨기시작하는 소꿉친구의 목덜미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져다 대는 엘프의 얼굴. 그와 동시에 와타루는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끊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새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쇠파이프는 와타루의 손에 들어가 그대로 무기가 되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있는 힘껏 히라이의 목을 물어뜯으려던 엘프의 머리통을 내려치자 엘프는 결코 인간이 낼수있는 소리가 아닌 괴상하면서도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히라이의 몸에 박고 있던 오른손을 빼며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뒤로 펄쩍 뛰어 수풀속으로 사라졌다. 엘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와타루는 미친듯이 히라이에게 달려들었다.
"야!! 히라이! 안돼! 죽지 마!!"
와타루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소녀를 품에 안았다. 오른쪽 등부분에 큼지막하게 뚫린 상처를 통해 붉은 액체가 용솟음치듯이 철철 흘러나와 바닥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미 동공이 풀려버린 그녀의 작은 몸뚱이는 아직 가쁜 숨을 쉬며 가느다란 생명의 실을 이어주고는 있었지만 가망이 없어보였다.
"..타..루.. 도ㅁ....쳐"
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입이 힘겹게 달싹거렸다.
"안돼!! 싫어! 널 두곤 못가!! 아니 안가!! 죽지마! 살수있......어...?"
오른쪽 등이 불에 덴듯 화끈거렸다. 와타루는 멍한 눈초리로 천천히 위를 올려다 보았다. 어느샌가 다가온 엘프가 예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미 한번 히라이의 피로 물들었던 오른손을 자신의 등에 박아넣고 있었다. 그 직후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핏물이 울컥울컷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 으.. 아아아"
등을 뚫고 오른쪽 가슴으로 관통한 엘프의 손을 따라 그의 피가 솟구쳐 나오며 무릎에 뉘여져 있던 소녀의 몸을 다시한번 붉게 물들였다. 자신의 무릎에 뉘여진채로 계속해서 핏물을 토해내는 히라이의 모습이 다시한번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 죽는건가. 아무것도 모른채로 이상한 여자에게 죽는건가... 이런건 싫어.
"아아아아아아아악!!"
와타루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내는, 발악적인 비명과 동시에 무엇인가 둥그런것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와타루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잔혹한 미소, 뾰족한 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부조리하게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그러나 그 얼굴은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방금 전까지 목 아래에 달려있던 몸통이 없어졌기 때문에.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간다. 이대로 죽는구나.... 와타루는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힘을 쥐어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머리가 달아난 엘프의 몸뚱이와 3미터는 족히 넘을듯한 거대한 창.
그리고 그 창을 든 채로 강한 바닷바람에 자신의 검은색 긴 머리칼을 맡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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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ㅁ;)//
흠냐... 원래 와타루&히라이 콤비는 엘프(라고 쓰면서 '[[fcolor=#ffff00]][[B]]델컨[[/B]][[/FONT]]'이라 읽는다) 등장용 1회성 엑스트라 캐릭터였는데 이번 장면을 쓰다보니 묘하게 정이 붙어버렸군요.
이 둘의 생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mot=23]]
제 생애 최초로 텍스트문서 기준으로 16KB 용량을 한방에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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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아! 여어기 전마앙 주우이는데!!"
"음... 레미아, 말씀하실땐 입에 물고계신 아이스크림 막대 부터 빼고 하시는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두명의 불청객이 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운동장 구석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는 벤치에 앉아서 언덕 아래 마을의 정경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마침 체육수업중이던 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이방인에게로 집중되었고 수업을 주관해야할 체육선생마저 두사람을 발견하자마자 희색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자습!"을 외친후 운동장 한쪽 구석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학생들쪽으로 걸음을 옮긴것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달려갈때와는 반대로 축 쳐진 선생의 모습을 본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댔고 잠시후에는 키득거리는 웃음까지 터져나왔다.
미나미 사코우섬에 있는 유일한 고등학교는 섬 가운데 위치한 산중턱에 세워진 작은 규모의 2층짜리 건물이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이 섬의 인구는 삼천명이 채 되지 않았고 고등학교라 해봐야 1,2,3학년 다 합해서 전교생은 90여명. 3개 학급이 전부였고 교직원이라고 해봐야 10명 안팎. 배를타고 가면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는 무려 8시간이나 걸리는 외딴섬이 그나마 이정도 인원이라도 유지되는것이 섬 한쪽편에 자리잡은 가네다 중공업의 항공우주산업 연구소 때문으로,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40퍼센트 정도가 근무지를 옮겨다니는 연구소 직원들의 자제였다.
언뜻봐도 1미터는 거뜬히 넘을것 같은 길디 긴 검은색 머리칼이 때마침 불어온 강한 바닷바람에 휘날리자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하면서 언덕 아래로 펼쳐진 마을의 정경을 바라보던 20대 여성은 시선을 마을에서 돌려 자기들끼리 편을 나눠 농구시합을 하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얼마후, 이곳에서 일어날 엄청난 일을 알지조차 못하는 천진난만한 모습. 그녀는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레미아.. 우리.. 정말 잘하는 걸까요.. 아무리 그분의 부탁이라고는 해도.. 저런 아이들까지.."
갑자기 무거워진 그녀의 대답에,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바다를 바라보던 레미아라고 불린 초록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도 입에 물고있던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빼며 얼굴에서 천천히 미소를 지웠다. 그녀는 그대로 바다를 응시하면서 귀찮다는듯이 내뱉았다.
"하아.. 몰라, 나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그러나 퉁명스러운 레미아의 대답이 여성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절대로 안될걸. 우리가 여기에 게이트를 열지 않으면 열데가 없어. 이 근방은 이쪽 세계와 우리 세계를 잇는 통로중에서도 몇 안되는 '안정 구역'이니까."
레미아는 그렇게 말한 직후, 갑자기 뒤로 홱 돌아섰다. 그리고 그녀는 차책감과 고민에 잔뜩 휩싸인 표정을짓고 있는 흑발 여성을 노려다 보았다. 두사람의 눈이 서로의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했다. 상대방의 맑디맑은, 그러나 단호한 의지가 담긴듯한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한참동안 주시하던 흑발여성이 결국엔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있던 음료수 캔을 강하게 움켜 쥐었고 놀랍게도 아직 미개봉 상태로 있던 캔은 너무도 간단하게 터져나가며 내용물을 사방에 흩뿌렸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건가요.."
자신보다 외견상 나이는 많아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보다 터무니없이 어린 여인을 가만히 응시하던 레미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무언의 긍정을. 그리고, 흑발 여성은 무언의 부정을.
"이번 '일'은 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한것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저 아이들에겐 이번 '일'은 너무 가혹해요!"
더 나은 미래? 레미아가 코웃음 쳤다.
"더 나은 미래는 없어. 게이트가 열리면 조만간 여기는 전장이 될거고 지옥이 돼. 저 아이들. 그리고 저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다가오는 더 나은 미래따윈 없어. 오직 지옥만이 있을뿐. 저 아이들의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저 세대의 아이들은 오히려 여기서 죽는게 더 편할지도 몰라."
레미아의 그 말 이후로, 그녀들은 한동안 말없이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해는 어느덧 기울기 시작했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하교할때까지 둘은 말없이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흑발 여성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죽어도 좋은 미래따윈 없어요."
"응?"
"아무리 힘들어도, 어려워도, 죽고싶어도,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뿐이에요. 죽음이 안식이라고요? 더 편할거라고요? 저 아이들도 자기들의 꿈이있어요, 바람이 있다구요. 저 아이들은 절대로 살아야해요. 비록 자신의 꿈은 이루게 될수 없을지 모르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라도요. 그러니까 전.."
"에리엘.. 너 설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작게 입을 벌린채 놀란 표정을 짓는 레미아의 에메랄드색 눈동자를 '에리엘'이라 불린 흑발 여성이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 여기 남습니다. 곧 아무것도 모르고 전장이 되어버릴 이 섬사람들을 지킬수 있는건 우리들뿐입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전쟁에 휘말려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사람따윈 만들지 않아요. 레미아가 싫다면 저 혼자라도 여기 남겠습니다. 그리고 여길 지켜보이겠어요. 전쟁을 불러올 제 행동에 대한 사죄를 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저 아이들에게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결의에 찬 흑색 눈동자를 잠시 주시하던 레미아도 놀란 표정을 지우고 잠시 무표정해졌다가 오른쪽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 역시 너 답구나.. 뭐, 그것도 좋겠지? 어차피, 그분은 우리보고 게이트를 열라고 하셨지 그 이후의 지시는 내리시지 않으셨으니까. 좋아, 나도 남지. 어쨌든 나도 좀 마음에 걸렸으니까."
그녀의 대답에 에리엘의 표정이 눈에띄게 밝아졌다.
"레미아..."
"근데..."
그러나, 희미하게 미소를 짓던 레미아의 표정이 급작스럽게 돌변하기 시작했다. 뭔가 흐뭇해보이던 미소는 점점 더 사악한 미소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런 그녀의 표정에 에리엘은 뭣인가 잘못되었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
"음.. 방금 네 대사말야. 죽음 어쩌고 미래 어쩌고 주절주절 한것. 그거 천 칠백년 전에 '그 녀석'이 너 달랠때 쓴 그거 아냐?"
"아... 네."
"흐음...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설마 설마 했는데 '케이렌' 녀석이 한 말이 맞네. 너랑 그녀석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거. 근데 뭔가 어울리지 않는데? 촐싹거리는데다가 덜렁이. 제멋대로는 기본이고 양심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랑 뻔뻔스러운 녀석이랑 네가 연인 사이라.... 흐음.."
이미 눈앞의 여성이 안중에서 없어진 레미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심결에 중얼거린 그 한마디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하는 저녁노을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알아볼 정도로 에리엘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재빨리 양손을 들어 강하게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건...!"
"강한 부정은 오히려 강한 긍정을 뜻하지. 아니, 그것보다 빈약한 증거를 가지고 억지 결론을 도출해냈는데도 별다른 변명조차 못하고 어색한 부정만을 하는걸 보니... 오홍, 역시나. '세노베르' 녀석이 알면 좋아라 하겠는데?"
"레.. 레미아? 이제 그만 일이나 하죠? 네?"
얼굴 가득 짖궂은 미소를 띄고 있는 레미아를 바라본 에리엘은 더이상 변명할 방법이 없다는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실실거리며 웃고있는 레미아의 등을 억지로 떠다 밀면서 교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레미아는 반 강제로 떠다 밀리면서도 에리엘에게 짖궂은 농담을 계속해서 던졌다.
*
같은 시각. 민간 부두와는 정확하게 섬 반대편 해안에 자리잡은 가네다 중공업 항공우주산업 연구소 한쪽에 자리잡은 헬기착륙장을 향해 해상자위대 소속의 수송헬기 두대가 헬기 특유의 요란스러운 엔진음을 내며 내려앉고 있었다. 헬기들이 착륙하는 모습을 지상에서 바라보는 연구소 직원 복장의 60대 후반의 남자는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비서를 향해 말했다.
"드디어 높은분께서도 납시는구만... 그리고, 역사적인 실험이 드디어 시작되는군..우리의 이름은 전 일본, 아니 전 세계에 크게 알려질거야."
비서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만을 조아렸다. 헬기가 완전히 바닥에 내려앉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십여명의 경호원들이 먼저 내리며 대형을 취했고 뒤이어서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비대한몸집의 노인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노인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연구소 관계자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3년만이군. 카와카미 박사. 아니, 카와카미 연구소장."
'카와카미'라 불린 연구소 직원복장의 60대 남자가 눈앞에 서 있는 비대한 몸집의 노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리대신 각하의 임기 내에 완성할수 있었던것을 무한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끌끌끌. 성대가 노화된 노인의 입에서 힘겨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연구소 건물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미 10년이 자났네. 만일 내 임기내에 완성되지 않았다면, 정부가 이런 외딴섬에 수천억 엔을 부어서 이 연구소를 설립한것 자체가 의미 없지 않나. 미국도, 러시아도 아직 연구를 완성하지 못했다고 들었네. 멍청한 조센징 놈들은 아예 '그것'이 자기네 땅에 묻혀 있는줄도 모르더군. 끌끌. 이번 연구성과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성공한거야. 자네의 노고에 감사하고 있어. 이로써 우리 일본이 이계로 가는 첫번째 발판을 마련한거네. 클클클."
"자, 그러면 어서 가시죠. 각하께서 도착하시는대로 두번째 실험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카와카미의 말을 들으며 노인인 다시 한번 클클거리는 예의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천천히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두께만 1미터가 넘는 거대한 철문을 3개나 통과한뒤, 미로같이 짜여진 꼬불꼬불한 복도를 걸어나가자 그 끝에는 엘리베이터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컸고 카와카미와 그의 비서, '총리'라고 불린 노인과 그의 수행원과 경호원 5명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지하 3층까지 내려가서 멈추었고, 문이 여리자 그들앞에 펼쳐진것은 거대한 지하 공터와 그 공터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지름 10미터정도의 거대한 금속제 링이었다.
"클클... '스타게이트'랑 모양이 비슷한것 같군."
총리의 말에 카와카미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스타게이트'는 그저 영화일뿐이죠. 저건 실물입니다. 아, 드디어 시작하는군요. 이 역사적인 광경. 꼭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하 공터에는 거대한 스피커를 통해 통제실 직원이 읆는 나지막한 카운트만이 울려퍼졌다.
-제 3번 동력파이프, 정상접속. 전력공급 이상 없음.
지하공터를 비추던 형광등의 불빛이 꺼지고, 대신 붉은색 경고등이 들어오면서 사방이 붉게 물들었다. 노인은 힘들게 걸음을 옮기며 통제실 안으로 들어갔고 통제실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거대한 금속 링을 바라보았다.
-'천국의 문' 기동 시작. 게이트 생성까지 앞으로 3분30초. 보안군은 게이트 앞으로.
그에 맞추어 자위대의 제식소총인 89식 자동소총과 화염방사기로 무장한 20여명의 보안군이 금속 링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열을 갖춘 그들은 곧 무릎쏴 자세로 게이트를 겨냥했다.
"보안군은 왜..?"
총리가 자신을 돌아보며 물음을 던지자 카와카미는 곧바로 대답 대신 통제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던 브리핑 자료를 들고오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총리는 말없이 그 책자를 받아서 펼쳤고 페이지를 몇장 넘기자 그의 눈이 커졌다.
"이...이게 뭔가?"
"우리가 '엘프'로 명명한 이계생명체입니다. 보시다시피 외관은 사진에서 확인하실수 있듯 길고 뾰족한 귀를 제외하면 인간 여성과 외형이나 체형이 거의 동일합니다만 이상하게도 이들에겐 성기 자체가 없는것뿐 아니라 남,녀의 구별 자체가 아예 없는듯 합니다."
-상황 알파 발동. 게이트 발동시작. 완전 개방까지는 앞으로 2분10초.
통제실 직원의 알림에 맞추어 잠시 숨을 가다듬고 탁자에 놓인 생수병을 들어 잠시 목을 축인 카와카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또한 이들은 생긴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포악하며 육식을 즐기는듯이 보였습니다. 1개월 전에 실행했던 지난 1차 게이트 실험때 약 4개체가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건너왔으며 이들은 건너오자마자 무방비상태의 우리 연구소 직원 1명을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서 자신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뒤늦게 출동안 보안군 역시 놀랍도록 민첩한 이들의 움직임에 3명이나 사망했습니다. 반격에 나선 보안군의 사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총탄을 맞고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듯 계속해서 공격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엘프 2개체가 게이트를 다시 건너가 자신들의 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상황 베타 발동. 게이트 발동 진척률 35%. 완전개방까지 앞으로 1분 5초.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됐나?"
"하나는 집중사격으로 사살했고 나머지 하나는 포획에 성공했습니다. 다리부위에 집중사격을 가하여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하여 쓰러트린후 전기톱으로 양 팔까지 절단시켜서 지금은 특수 연구실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녀석이라서요."
총리가 의혹가득한 눈초리로 카와카미를 바라보았다.
"팔다리를 전부 잘랐는데도 위험하다니..?"
"그게.. 말입니다. 절단 직후부터 엘프의 신체 절단부위에서 급속한 세포분열과정이 일어나더니 잘렸던 신체부위가 재생되는것을 확인했기때문입니다. 1차실험으로부터 7일이 지났을때 엘프의 팔다리는 완벽하게 재생되었습니다."
"그런 말도 안돼는..!!"
-게이트 개방 완료. 코드 레드 발동. 전 보안군은 경계를 늦추지 말라.
*
"이봐, 히라이 왜 또 기다린거냐?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랬잖아. 벌써 어두워졌어."
짐짓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의 피가 섞여있다는 증거인 밝은 금발머리를 등허리께까지 자연스럽게 기른 순진한 인상의 소녀가 배시시 웃었다.
"으응. 어차피 나도 학생회 일 때문에 일곱시에 학교를 나왔으니까... 와타루 혼자 청소하는걸 봐버렸는걸. 같이 가주는게 와타루쪽에서도 더 좋지 않아?"
"전혀."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혀 학생주임인 타카요시의 집중관리를 받고있는 와타루는 늘 그렇듯 오늘도 역시 말도안돼는 학생주임의 꼬투리 잡기에 걸려들어 방과후에도 무려 네시간이나 붙잡혀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녹초가 되어 교문을 나섰고 300개가 넘는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그를 반기는것은 자신의 12년지기 소꿉친구.
지금 시간은 벌써 오후 여덟시. 하늘은 점점 어둠에 물들어가고 있었고 가로등 역시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시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고만 있는 히라이를 바라보던 와타루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긴, 너 혼자 보내는것도 찜찜하긴 마찬가지구나. 날도 어두워지는데 어디서 또 넘어질라."
그 말 한마디에 히라이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아앗. 너무해!"
"됐으니까 이만 가볼까?"
둘은 천천히 학교로 오르는 계단 앞에 난 차도를 따라 마을 방향으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학교는 마을과는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기때문에 이정도 속도로 걸어간다면 30분은 족히 걸릴것이고 그동안은 응석받이(?)인 자신의 소꿉친구를 상대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와타루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쩌다 이런 녀석하고 이웃이 됐는지.."
"응?"
그의 혼잣말에 세걸음 정도 뒤쳐져 걷던 히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타루를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생각만 하려던 것을 무심코 입밖에 내버린 와타루가 당황하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에엑?"
갑자기 멍청하게 커진 그의 눈동자를 본 히라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와타루? 왜그래?"
그러나 이미 반쯤 얼이 빠진 와타루는 멍청하게 히라이의 뒤를 가르킬뿐 제대로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뒤를 돌아본 히라이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눈부신 금발을 엉덩이께까지 자연스럽게 내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엄청난 미인이 히라이의 바로 뒤에서 묘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의 양쪽 귀는 인간이라고 볼수 없을정도로 길고 뾰족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던 와타루가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았다.
"엘....프? 데라타니 말이 진짜였던거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얼굴에 튄 붉은색의 비릿한 액체. 그리고 앞에 있는 소꿉친구의 배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온 피묻은 손. 그리고 히라이의 배에 손을 박은채로 잔혹한 웃음을 짓고있는 엘프.
"어.... 어라......?"
힘없는 히라이의 의문 가득섞인 말. 그리고 그 직후 그녀의 입을 통해 피분수가 솟구쳤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개구리처럼 파르르 떨기시작하는 소꿉친구의 목덜미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져다 대는 엘프의 얼굴. 그와 동시에 와타루는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끊어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새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쇠파이프는 와타루의 손에 들어가 그대로 무기가 되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있는 힘껏 히라이의 목을 물어뜯으려던 엘프의 머리통을 내려치자 엘프는 결코 인간이 낼수있는 소리가 아닌 괴상하면서도 끔찍한 괴성을 지르며 히라이의 몸에 박고 있던 오른손을 빼며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뒤로 펄쩍 뛰어 수풀속으로 사라졌다. 엘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와타루는 미친듯이 히라이에게 달려들었다.
"야!! 히라이! 안돼! 죽지 마!!"
와타루는 썩은 나무토막처럼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소녀를 품에 안았다. 오른쪽 등부분에 큼지막하게 뚫린 상처를 통해 붉은 액체가 용솟음치듯이 철철 흘러나와 바닥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이미 동공이 풀려버린 그녀의 작은 몸뚱이는 아직 가쁜 숨을 쉬며 가느다란 생명의 실을 이어주고는 있었지만 가망이 없어보였다.
"..타..루.. 도ㅁ....쳐"
파들파들 떨리는 그녀의 입이 힘겹게 달싹거렸다.
"안돼!! 싫어! 널 두곤 못가!! 아니 안가!! 죽지마! 살수있......어...?"
오른쪽 등이 불에 덴듯 화끈거렸다. 와타루는 멍한 눈초리로 천천히 위를 올려다 보았다. 어느샌가 다가온 엘프가 예의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미 한번 히라이의 피로 물들었던 오른손을 자신의 등에 박아넣고 있었다. 그 직후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핏물이 울컥울컷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 으.. 아아아"
등을 뚫고 오른쪽 가슴으로 관통한 엘프의 손을 따라 그의 피가 솟구쳐 나오며 무릎에 뉘여져 있던 소녀의 몸을 다시한번 붉게 물들였다. 자신의 무릎에 뉘여진채로 계속해서 핏물을 토해내는 히라이의 모습이 다시한번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어처구니 없게 죽는건가. 아무것도 모른채로 이상한 여자에게 죽는건가... 이런건 싫어.
"아아아아아아아악!!"
와타루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내는, 발악적인 비명과 동시에 무엇인가 둥그런것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와타루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잔혹한 미소, 뾰족한 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부조리하게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그러나 그 얼굴은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었다. 방금 전까지 목 아래에 달려있던 몸통이 없어졌기 때문에.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간다. 이대로 죽는구나.... 와타루는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힘을 쥐어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머리가 달아난 엘프의 몸뚱이와 3미터는 족히 넘을듯한 거대한 창.
그리고 그 창을 든 채로 강한 바닷바람에 자신의 검은색 긴 머리칼을 맡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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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ㅁ;)//
흠냐... 원래 와타루&히라이 콤비는 엘프(라고 쓰면서 '[[fcolor=#ffff00]][[B]]델컨[[/B]][[/FONT]]'이라 읽는다) 등장용 1회성 엑스트라 캐릭터였는데 이번 장면을 쓰다보니 묘하게 정이 붙어버렸군요.
이 둘의 생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emot=23]]
게이츠 Ver. 2.0 작업중....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