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OD(트라이포드) - 글 : RhythmNation(mordenmania)
글 수 33
#68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수면에서부터 15피트 정도의 높이를 지닌 거대한 가재였다. 집게발이 내 몸통보다 더 큰 걸 보니 가재 괴물이라는 생각조차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에, 에....에니시엔! 저게 대체 뭐에요?"
"몰라서 묻어? 네가 수면에 돌을 던져서 루체 호수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거지!"
"그, 그렇......"
괴물은 마치 거인이 기둥을 휘두르는 것처럼 나에게 그 거대한 집게발을 휘둘렀다. 난 무심결에 노라가 준 쇼트 소드를 뽑아들었다. 이크! 이 칼로 저걸 막는다고?
"으아악!"
쿵!
....내가 아직 살아있나? 그냥 다리와 팔이 좀 아픈 것말고는 없네? 그 괴물의 집게발은?
그 괴물의 집게발이 내 눈에 다시 들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내 앞에 저 섬뜩한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에니시엔!"
저 괴물의 살기등등한 모습 앞에 얼어버린 날 껴안은 채 넘어진 사람은 다름아닌 에니시엔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나보다 더 일찍 몸을 일으켰고, 나도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받아랏!"
이네스가 괴물에게 무언가를 던진 게 보였다. 그녀가 무기로 사용하는 단검이었다. 뭐, 뭐하는 짓이지?
쨍!
역시나 저 단검이 기사의 갑옷 같은 괴물의 껍질을 뚫을 리가 만무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네스!"
탱, 탱!
난 언제 괴물이 날 내리찍을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뒤를 돌아봐버렸다. 노라와 엘이 각각 단검을 던지고 활을 쏜 것이다. 두 사람이 던지고 쏜 무기는 그 괴물에게 바로 날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그 괴물은 노라가 투척한 단도를 보고 기겁하더니 괴성을 지르며 앞발을 휘둘렀다.
"키야아악!"
텅! 푹!
"캬아악!"
괴물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노라의 단검은 놀랍게도 괴물의 집게발에 고스란히 꽂혀버렸고 엘의 화살은 괴물의 오른쪽 눈을 꿰뚫었다.
괴물이 비척거리는 사이 이네스가 괴물에게 약병을 던졌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연기가 사방으로 번졌다. 연기가 퍼지면서 괴물이 몸부림치는 사이 에니시엔이 얼른 말했다.
"뛰어!"
"예에?"
"그러면 저 놈하고 싸울래? 뛰어!"
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노라의 검을 든 채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른 일행들이 등을 돌리는 걸 보고 얼른 뒤돌아 달려갔다. 뒤에서 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숲쪽으로!"
#69
툭.
"어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뒤를 돌아보니 이네스가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신전에서 누가 널 잡아가기라도 하던?"
"간간히 소집이라는 명목으로 잡아가더군요."
"흐응....사실 열흘 뒤에 호프 제사장께서 널 보자고 하셨어."
방금 전까지 나는 섬에서 나온 이후를 회상하고 있었다. 참....일전에 놀 동굴에 쳐들어간 건 섬에서 겪은 일에 비하면 쉬운 임무였다. 언데드 군대와도 싸워보고 거인과도 싸워보고 에니시엔과 만나고 가재처럼 생긴 호수 괴물에 싸워보기도 하고......멧돼지에 받혀보기도 했지. 제기랄.
노라는 의외로 신전에 온 다음에 훌쩍 떠나버렸다. 아마 저번에 그 호수 괴물과 싸운 게 그녀를 망설이게 한 것이 틀림없다.
"이네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어머니는....잘하실 거야. 그리고 내 곁에 돌아오시겠지. 응, 꼭 돌아오실 거야."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태연자약했지만 창에 살풋 비친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슬퍼하지 말아요. 이네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저것뿐이다.
"슬퍼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도 내가 주저앉아 우는 걸 바라시진 않을 테니까. 아참."
이네스는 잠시 날 바라보며 어물거렸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건 분명한데....속 시원하게 말해버리지. 이네스도 좀 소심해진 감이 있긴 있어. 물론 내가 그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면 사람은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생물이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늘 복잡하고 끝장나지 않는 이상 늘 미완성 형태인 건 인간이 변하는 생물이라 그런 게 아닐까. 뭐, 고스트와이즈도 인간과 같은 조상을 지녔고, 많이 비슷하기도 하니까 굳이 예외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네스는 잠시 후 말문을 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켁."
이네스가 어물거리는 사이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난 반사적으로 밖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주 반갑고 낯익은 얼굴이었다. 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 밀러 형!"
"반갑다. 네가 돌아온 첫 날 먼 발치에서만 보고 직접 찾아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구나."
"응. 여기 와서 앉아."
밀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다른 용무가 있나?
밀러가 말문을 열었다.
"사서부에서 널 찾는다. 오늘 4시까지 오래. 지금 시간은 2시 20분이지."
"사서부요?"
"응. 네가 없는 사이 난 사서 쪽으로 직위 이전했거든. 그래서 내가 널 찾으러 온 거지."
하퍼 사회는 부서간의 유동성이 철저한 사회라 어제만 해도 대륙을 종횡으로 횡단하며 하퍼에 유용한 정보를 수집해오던 정보부 소속의 하퍼가 오늘은 자료와 통계, 정보 등을 정리하고 모아두는 사서부로 가는 건 하퍼 사회에서는 자연스럽다못해 당연스러운 일이다. 저런 일에 좌천 같은 의미가 전혀 없는 건 물론이다. 나도 열흘 뒤에는 무슨 부서로 옮겨질지 모른다. 아직은 가장 많은 하퍼가 소속된 '수색부' 소속이었지만.
난 고개를 끄덕이고서 이네스에게 말했다.
"저 사서부를 좀 다녀올게요. 당신 방에 돌아가세요. 용무 끝나고 제가 거기로 갈게요."
"아냐. 에니시엔 언니 방에서 만나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네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번엔 밀러에게 말했다.
"먼저 가서 기별을 전해주세요. 저도 따라갈 테니."
밀러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70
난 신전 복도에서 느긋하게 걸으며 사서부로 가고 있었다. 전혀 급한 일이 아닌데다가(하퍼들은 급한 일을 전달할 경우 꼭 급전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아직 많다. 느긋하게 걸어가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빨리 나온 이유 중 하나는....그냥 나오고 싶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난 무심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반긴 건 뜻밖에도 주머니 속에서 잠자던 은화였다. 난 은화를 끄집어내고서 은화를 몇 차례 튕겨보았다. 밀러가 간간히 하던 짓을 따라해봤을 뿐인데 의외로 잘 되었다.
툭.
한눈 파는 사이 누군가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에니시엔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서 튕겨지던 은화는......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와 에니시엔은 서로를 반사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날 물끄러미 뒤돌아보며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그랬다.
에니시엔은 이윽고 은화로 시선을 돌렸고, 나도 사서부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멀어져갔다.
그녀가 점점 멀어지면서 은화 생각이 났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수면에서부터 15피트 정도의 높이를 지닌 거대한 가재였다. 집게발이 내 몸통보다 더 큰 걸 보니 가재 괴물이라는 생각조차 머리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에, 에....에니시엔! 저게 대체 뭐에요?"
"몰라서 묻어? 네가 수면에 돌을 던져서 루체 호수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거지!"
"그, 그렇......"
괴물은 마치 거인이 기둥을 휘두르는 것처럼 나에게 그 거대한 집게발을 휘둘렀다. 난 무심결에 노라가 준 쇼트 소드를 뽑아들었다. 이크! 이 칼로 저걸 막는다고?
"으아악!"
쿵!
....내가 아직 살아있나? 그냥 다리와 팔이 좀 아픈 것말고는 없네? 그 괴물의 집게발은?
그 괴물의 집게발이 내 눈에 다시 들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내 앞에 저 섬뜩한 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에니시엔!"
저 괴물의 살기등등한 모습 앞에 얼어버린 날 껴안은 채 넘어진 사람은 다름아닌 에니시엔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나보다 더 일찍 몸을 일으켰고, 나도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받아랏!"
이네스가 괴물에게 무언가를 던진 게 보였다. 그녀가 무기로 사용하는 단검이었다. 뭐, 뭐하는 짓이지?
쨍!
역시나 저 단검이 기사의 갑옷 같은 괴물의 껍질을 뚫을 리가 만무했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네스!"
탱, 탱!
난 언제 괴물이 날 내리찍을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뒤를 돌아봐버렸다. 노라와 엘이 각각 단검을 던지고 활을 쏜 것이다. 두 사람이 던지고 쏜 무기는 그 괴물에게 바로 날아갔다. 그런데 의외로 그 괴물은 노라가 투척한 단도를 보고 기겁하더니 괴성을 지르며 앞발을 휘둘렀다.
"키야아악!"
텅! 푹!
"캬아악!"
괴물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노라의 단검은 놀랍게도 괴물의 집게발에 고스란히 꽂혀버렸고 엘의 화살은 괴물의 오른쪽 눈을 꿰뚫었다.
괴물이 비척거리는 사이 이네스가 괴물에게 약병을 던졌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연기가 사방으로 번졌다. 연기가 퍼지면서 괴물이 몸부림치는 사이 에니시엔이 얼른 말했다.
"뛰어!"
"예에?"
"그러면 저 놈하고 싸울래? 뛰어!"
난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노라의 검을 든 채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른 일행들이 등을 돌리는 걸 보고 얼른 뒤돌아 달려갔다. 뒤에서 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숲쪽으로!"
#69
툭.
"어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뒤를 돌아보니 이네스가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신전에서 누가 널 잡아가기라도 하던?"
"간간히 소집이라는 명목으로 잡아가더군요."
"흐응....사실 열흘 뒤에 호프 제사장께서 널 보자고 하셨어."
방금 전까지 나는 섬에서 나온 이후를 회상하고 있었다. 참....일전에 놀 동굴에 쳐들어간 건 섬에서 겪은 일에 비하면 쉬운 임무였다. 언데드 군대와도 싸워보고 거인과도 싸워보고 에니시엔과 만나고 가재처럼 생긴 호수 괴물에 싸워보기도 하고......멧돼지에 받혀보기도 했지. 제기랄.
노라는 의외로 신전에 온 다음에 훌쩍 떠나버렸다. 아마 저번에 그 호수 괴물과 싸운 게 그녀를 망설이게 한 것이 틀림없다.
"이네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어머니는....잘하실 거야. 그리고 내 곁에 돌아오시겠지. 응, 꼭 돌아오실 거야."
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태연자약했지만 창에 살풋 비친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슬퍼하지 말아요. 이네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저것뿐이다.
"슬퍼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도 내가 주저앉아 우는 걸 바라시진 않을 테니까. 아참."
이네스는 잠시 날 바라보며 어물거렸다.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건 분명한데....속 시원하게 말해버리지. 이네스도 좀 소심해진 감이 있긴 있어. 물론 내가 그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러고보면 사람은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생물이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늘 복잡하고 끝장나지 않는 이상 늘 미완성 형태인 건 인간이 변하는 생물이라 그런 게 아닐까. 뭐, 고스트와이즈도 인간과 같은 조상을 지녔고, 많이 비슷하기도 하니까 굳이 예외로 분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네스는 잠시 후 말문을 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켁."
이네스가 어물거리는 사이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난 반사적으로 밖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와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주 반갑고 낯익은 얼굴이었다. 난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말했다.
"아, 밀러 형!"
"반갑다. 네가 돌아온 첫 날 먼 발치에서만 보고 직접 찾아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구나."
"응. 여기 와서 앉아."
밀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다른 용무가 있나?
밀러가 말문을 열었다.
"사서부에서 널 찾는다. 오늘 4시까지 오래. 지금 시간은 2시 20분이지."
"사서부요?"
"응. 네가 없는 사이 난 사서 쪽으로 직위 이전했거든. 그래서 내가 널 찾으러 온 거지."
하퍼 사회는 부서간의 유동성이 철저한 사회라 어제만 해도 대륙을 종횡으로 횡단하며 하퍼에 유용한 정보를 수집해오던 정보부 소속의 하퍼가 오늘은 자료와 통계, 정보 등을 정리하고 모아두는 사서부로 가는 건 하퍼 사회에서는 자연스럽다못해 당연스러운 일이다. 저런 일에 좌천 같은 의미가 전혀 없는 건 물론이다. 나도 열흘 뒤에는 무슨 부서로 옮겨질지 모른다. 아직은 가장 많은 하퍼가 소속된 '수색부' 소속이었지만.
난 고개를 끄덕이고서 이네스에게 말했다.
"저 사서부를 좀 다녀올게요. 당신 방에 돌아가세요. 용무 끝나고 제가 거기로 갈게요."
"아냐. 에니시엔 언니 방에서 만나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네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번엔 밀러에게 말했다.
"먼저 가서 기별을 전해주세요. 저도 따라갈 테니."
밀러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70
난 신전 복도에서 느긋하게 걸으며 사서부로 가고 있었다. 전혀 급한 일이 아닌데다가(하퍼들은 급한 일을 전달할 경우 꼭 급전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아직 많다. 느긋하게 걸어가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빨리 나온 이유 중 하나는....그냥 나오고 싶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난 무심결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반긴 건 뜻밖에도 주머니 속에서 잠자던 은화였다. 난 은화를 끄집어내고서 은화를 몇 차례 튕겨보았다. 밀러가 간간히 하던 짓을 따라해봤을 뿐인데 의외로 잘 되었다.
툭.
한눈 파는 사이 누군가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에니시엔이었다. 그리고 내 손에서 튕겨지던 은화는......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와 에니시엔은 서로를 반사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날 물끄러미 뒤돌아보며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그랬다.
에니시엔은 이윽고 은화로 시선을 돌렸고, 나도 사서부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상기해냈다. 우리는 서로 그렇게 멀어져갔다.
그녀가 점점 멀어지면서 은화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