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OD(트라이포드) - 글 : RhythmNation(mordenmania)
글 수 33
#63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뜻일까....난 어제 그녀가 지나가듯 한 말을 곰곰이 되씹으며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흥미롭다. 그녀 인형들 앞에 쪼그려앉고 인형들의 목에 이상한 문자를 조각칼로 새기며 주문을 외우면 문자가 붉게 빛난다. 하지만 문자를 새기고 주문을 외우는 속도로 보아 오늘 밤에나 완성될 듯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지 온 시선을 인형들에게만 집중한 채 식음을 전폐하고 저 작업만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시술을 계속할수록 그녀의 팔에 난 흉터도 점점 사라져갔다. 주문에 필요한 '제물'을 얻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낸 다음 '제물'을 얻어냈다. 시술에 소모되는 피만큼 흉터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 누군가 '시술실' 안에 들어왔다. 노라였다. 에니시엔은 노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누가 들어왔는지 의식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까 엘이 들어올 때만 해도 시술을 중단하고 나가달라고 부탁했었다. 반면 나는 들어와도 좋다고 시술 전에 말한 바 있고, 노라도 의외로 제지하지 않았다.
그때, 에니시엔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노라, 벤을 데리고 나가줄래? 중요한 부분이라서."
노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64
방에 돌아와보니 이네스도 없고 엘도 없었다. 난 두 사람을 찾으려고 했지만 노라가 나를 말렸다.
"두 사람은 출발 준비를 하러 떠났어요. 에니시엔 언니가 시술이 끝나는 즉시 출발할 생각이라고 해서."
"에니시엔이 걱정되는군요. 주술....이라고 말할 성질의 시술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 주술 때문에 피를 꽤 쏟았을 텐데."
"걱정은 저도 되지만,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따라줘야겠지요."
노라는 못을 박듯이 말을 붙였다.
"그리고 벤의 목적도 수원 청소 아닌가요? 이런 일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기 전에 끝내는 게 좋잖아요."
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보니 고스트와이즈라는 종족은 존경해야 마땅할 종족 같다. 에니시엔, 노라는 고스트와이즈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불상사를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에니시엔은 나 대신 화살도 맞았고 노라 역시 온갖 고초를 감수해야했다.
고스트와이즈 종족에 속하는 두 여자에게 칼루가 호수의 불행은 단순히 인간의 불상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발벗고 나섰다. 무슨 불상사와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 일에 이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선 것이다. 같은 인간들도 외면할지 모르는 일에......
"노라."
"왜 그러시죠?"
노라는 그 특유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창 밖에서 들어온 바람 때문에 잠시 찰랑거렸다.
"당신은......왜 이 일에 그렇게도 적극적인 것이지요? 당신도 할 일이 있잖아요."
노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은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저야 이미 콜린스 씨에게 말씀드렸다시피 제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도와드리는 것이지만....제가 도와드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나요?"
난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노라가 없었더라면 이 일은 보나마나 끔찍할 정도로 난해해졌을 것이다.
"아, 아뇨. 저에게는 노라가 반드시 필요해요."
"네. 그러면 된 거에요. 전 이네스와 이네스의 친구인 벤과 엘그리드 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난 어물거리며 그렇게 책임감을 강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삼켜버렸다. 내 말을 그녀가 어떻게 여길지 몰랐기 때문에.
노라는 호르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이네스 앞에서는 늘 죄인이에요. 23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차라리 이네스와 함께 달아나버리는 건데...."
"지나간 일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노라."
"그래도......전 이네스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고 싶어요. 그게 어머니가 된 저의 책임이고, 이네스를 방기한 제 죄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겠지요."
"노라......"
난 재빨리 이야기 주제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상처를 자극한 것이다.
"노라, 노라는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노라는 맥빠진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재차 질문한 다음에야 그녀는 내 질문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이네스의 행방에 대한 소식을 계속 접수하면서, 벤도 아는 제 임무를 마저 수행할 거에요. 전 벤과 계속 함께했으면 좋겠지만...."
노라는 다시 어물거리다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 정말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다. 좀 시원시원하게 말할 수 없나?
어물거리던 그녀가 말문을 다시 열었다.
"....저도 벤에게 정이 들었나봐요. 이런 걸 우정이라고 할지 아니면 어떤 감정인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노라...."
"벤하고 헤어지긴 싫지만 우린 인연이 다시 닿을 거라 믿고 싶어요. 그렇겠지요, 벤?"
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외로워하고 공허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고 위로할 마음을 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노라는 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 맺힌 저 자그마한 이슬은 눈물일까.
"제 검, 벤에게 드릴게요. 벤은 무기를 잃어버렸으니까 제 무기가 도움이 될 거에요. 당분간 그 단검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하셔도 좋을 거에요."
"노라...."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 믿고 싶어요. 제 검은 제 마음이기도 하니까 부디 받아주셔요."
"......"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벤......전 이네스를 고려해서 칼루가의 강신술사를 처리한 이후부터 대륙까지는 동행할 테지만 대륙에서 그녀가 잠든 시각에 몰래 빠져나갈 거에요. 이네스가 깨어 있으면 제가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 이네스에게 이 이야기는 알리지 말아주셔요.
이네스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엄마가 앞으로 할 일을......"
난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노라의 침묵은 내가 범접하기에는 깰 수 없는 결계 같은 것이었다. 난 결국 그녀를 만류하기를 포기하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몸 조심하셔요. 언젠가 다시 만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녀의 눈동자가 내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울고 싶어졌다.
#65
이틀 후, 우리는 강신술사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납골 묘지로 떠났다. 이번 이동도 남부 마을에서 납골 묘지로 가던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우리 일행은 상당히 수가 늘어나 있었다. 전투망치 부족의 족장인 로간 핫지스의 두 아들인 번과 클라이스가 우리와 동행한데다가 수많은 진흙인형이 앞서가고 있다.
이네스가 에니시엔에게 수많은 진흙인형 때문에 강신술사에게 자신들의 위치와 전략을 노출시킬지 모른다며 에니시엔은 이네스가 뭐라고 말하던 간단하게 무시해버렸다. 진흙인형에 특수한 시술을 추가하여 실체적인 존재를 갖지 못한 존재들, 이를테면 유령이나 정령들은 진흙인형을 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데드들은 거의 영적인 시야로 물체를 탐지하기 때문에 진흙인형 군단이 노출될 우려는 적었다.
지금 우리는 진흙인형을 앞서보낸 채 전투망치 부족의 두 전사이자 족장의 두 아들인 번과 클라이스의 안내를 받으며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로간 핫지스는 직접 그 강신술사를 제거할 수는 없었지만 그를 제거하려고 하는 우리는 반드시 도와줘야한다며 우리에게 두 전사를 내준 것이다. 두 명의 전사는 솔직히 많지 않은 수지만 로간 핫지스의 전투망치 부족은 인구가 적은데다가 현재 언데드의 내습에 언제나 노출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보면 두 명의 전사를 내준 것만 해도 그가 마음을 써준 일이라고 생각해야할지도 모른다.
난 이네스에게 지나가는 어조로 소곤거렸다.
"우리 일행에 에니시엔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야."
이네스도 동감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네스의 얼굴은 너무 밝아보였다. 나보다 세 살 연상인 그녀인데 가끔은 나보다 애 같은 면도 보인다. 이를테면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인식과 태도......
제기랄.
이네스는 대륙으로 돌아가면 어느 날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곁을 훌쩍 떠나는 걸 목격하게 될 것이다. 노라는 이미 나에게 그녀의 곁을 떠나 할 일이 있다고 말을 했었고, 분명히 실행에 옮길 것이다.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있지만 도무지 이네스에게 말해줄 수가 없다. 노라는 분명 나에게 이 이야기를 이네스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니까.
하지만....이네스에게 말을 해야할까......
아니다, 내가 이네스에게 알려주던 말던 노라는 분명 이네스의 곁을 떠날 것이다. 내가 뭔 짓을 하던 노라는 분명 떠나겠지. 내가 말을 해봐야 나와 노라 사이에 안 좋은 감정만 생길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이네스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생각해?"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린 절친한 친구잖아. 한번 말해봐."
"저, 정말 아니에요."
"흐응, 그래."
이네스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날 바라봤을 뿐이었다.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무슨 뜻일까....난 어제 그녀가 지나가듯 한 말을 곰곰이 되씹으며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흥미롭다. 그녀 인형들 앞에 쪼그려앉고 인형들의 목에 이상한 문자를 조각칼로 새기며 주문을 외우면 문자가 붉게 빛난다. 하지만 문자를 새기고 주문을 외우는 속도로 보아 오늘 밤에나 완성될 듯하다.
그녀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지 온 시선을 인형들에게만 집중한 채 식음을 전폐하고 저 작업만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시술을 계속할수록 그녀의 팔에 난 흉터도 점점 사라져갔다. 주문에 필요한 '제물'을 얻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낸 다음 '제물'을 얻어냈다. 시술에 소모되는 피만큼 흉터가 사라지는 듯했다.
그때, 누군가 '시술실' 안에 들어왔다. 노라였다. 에니시엔은 노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누가 들어왔는지 의식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까 엘이 들어올 때만 해도 시술을 중단하고 나가달라고 부탁했었다. 반면 나는 들어와도 좋다고 시술 전에 말한 바 있고, 노라도 의외로 제지하지 않았다.
그때, 에니시엔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노라, 벤을 데리고 나가줄래? 중요한 부분이라서."
노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64
방에 돌아와보니 이네스도 없고 엘도 없었다. 난 두 사람을 찾으려고 했지만 노라가 나를 말렸다.
"두 사람은 출발 준비를 하러 떠났어요. 에니시엔 언니가 시술이 끝나는 즉시 출발할 생각이라고 해서."
"에니시엔이 걱정되는군요. 주술....이라고 말할 성질의 시술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 주술 때문에 피를 꽤 쏟았을 텐데."
"걱정은 저도 되지만,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으니....따라줘야겠지요."
노라는 못을 박듯이 말을 붙였다.
"그리고 벤의 목적도 수원 청소 아닌가요? 이런 일은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기 전에 끝내는 게 좋잖아요."
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보니 고스트와이즈라는 종족은 존경해야 마땅할 종족 같다. 에니시엔, 노라는 고스트와이즈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불상사를 결코 지나치지 않았다. 에니시엔은 나 대신 화살도 맞았고 노라 역시 온갖 고초를 감수해야했다.
고스트와이즈 종족에 속하는 두 여자에게 칼루가 호수의 불행은 단순히 인간의 불상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발벗고 나섰다. 무슨 불상사와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이 일에 이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선 것이다. 같은 인간들도 외면할지 모르는 일에......
"노라."
"왜 그러시죠?"
노라는 그 특유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창 밖에서 들어온 바람 때문에 잠시 찰랑거렸다.
"당신은......왜 이 일에 그렇게도 적극적인 것이지요? 당신도 할 일이 있잖아요."
노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은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말했다.
"저야 이미 콜린스 씨에게 말씀드렸다시피 제 나름대로 목적이 있어서 도와드리는 것이지만....제가 도와드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나요?"
난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노라가 없었더라면 이 일은 보나마나 끔찍할 정도로 난해해졌을 것이다.
"아, 아뇨. 저에게는 노라가 반드시 필요해요."
"네. 그러면 된 거에요. 전 이네스와 이네스의 친구인 벤과 엘그리드 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
난 어물거리며 그렇게 책임감을 강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다가 말을 삼켜버렸다. 내 말을 그녀가 어떻게 여길지 몰랐기 때문에.
노라는 호르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이네스 앞에서는 늘 죄인이에요. 23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차라리 이네스와 함께 달아나버리는 건데...."
"지나간 일을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 노라."
"그래도......전 이네스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고 싶어요. 그게 어머니가 된 저의 책임이고, 이네스를 방기한 제 죄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겠지요."
"노라......"
난 재빨리 이야기 주제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난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상처를 자극한 것이다.
"노라, 노라는 이 일이 끝나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요?"
노라는 맥빠진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재차 질문한 다음에야 그녀는 내 질문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이네스의 행방에 대한 소식을 계속 접수하면서, 벤도 아는 제 임무를 마저 수행할 거에요. 전 벤과 계속 함께했으면 좋겠지만...."
노라는 다시 어물거리다가 이내 얼굴을 붉혔다. 정말 수줍음이 많은 아가씨다. 좀 시원시원하게 말할 수 없나?
어물거리던 그녀가 말문을 다시 열었다.
"....저도 벤에게 정이 들었나봐요. 이런 걸 우정이라고 할지 아니면 어떤 감정인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노라...."
"벤하고 헤어지긴 싫지만 우린 인연이 다시 닿을 거라 믿고 싶어요. 그렇겠지요, 벤?"
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외로워하고 공허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고 위로할 마음을 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노라는 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 맺힌 저 자그마한 이슬은 눈물일까.
"제 검, 벤에게 드릴게요. 벤은 무기를 잃어버렸으니까 제 무기가 도움이 될 거에요. 당분간 그 단검에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하셔도 좋을 거에요."
"노라...."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 믿고 싶어요. 제 검은 제 마음이기도 하니까 부디 받아주셔요."
"......"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벤......전 이네스를 고려해서 칼루가의 강신술사를 처리한 이후부터 대륙까지는 동행할 테지만 대륙에서 그녀가 잠든 시각에 몰래 빠져나갈 거에요. 이네스가 깨어 있으면 제가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에요. 그러니 이네스에게 이 이야기는 알리지 말아주셔요.
이네스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엄마가 앞으로 할 일을......"
난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노라의 침묵은 내가 범접하기에는 깰 수 없는 결계 같은 것이었다. 난 결국 그녀를 만류하기를 포기하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몸 조심하셔요. 언젠가 다시 만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녀의 눈동자가 내 눈을 들여다보는 순간, 울고 싶어졌다.
#65
이틀 후, 우리는 강신술사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납골 묘지로 떠났다. 이번 이동도 남부 마을에서 납골 묘지로 가던 때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지만 우리 일행은 상당히 수가 늘어나 있었다. 전투망치 부족의 족장인 로간 핫지스의 두 아들인 번과 클라이스가 우리와 동행한데다가 수많은 진흙인형이 앞서가고 있다.
이네스가 에니시엔에게 수많은 진흙인형 때문에 강신술사에게 자신들의 위치와 전략을 노출시킬지 모른다며 에니시엔은 이네스가 뭐라고 말하던 간단하게 무시해버렸다. 진흙인형에 특수한 시술을 추가하여 실체적인 존재를 갖지 못한 존재들, 이를테면 유령이나 정령들은 진흙인형을 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데드들은 거의 영적인 시야로 물체를 탐지하기 때문에 진흙인형 군단이 노출될 우려는 적었다.
지금 우리는 진흙인형을 앞서보낸 채 전투망치 부족의 두 전사이자 족장의 두 아들인 번과 클라이스의 안내를 받으며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로간 핫지스는 직접 그 강신술사를 제거할 수는 없었지만 그를 제거하려고 하는 우리는 반드시 도와줘야한다며 우리에게 두 전사를 내준 것이다. 두 명의 전사는 솔직히 많지 않은 수지만 로간 핫지스의 전투망치 부족은 인구가 적은데다가 현재 언데드의 내습에 언제나 노출되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보면 두 명의 전사를 내준 것만 해도 그가 마음을 써준 일이라고 생각해야할지도 모른다.
난 이네스에게 지나가는 어조로 소곤거렸다.
"우리 일행에 에니시엔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야."
이네스도 동감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네스의 얼굴은 너무 밝아보였다. 나보다 세 살 연상인 그녀인데 가끔은 나보다 애 같은 면도 보인다. 이를테면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인식과 태도......
제기랄.
이네스는 대륙으로 돌아가면 어느 날 자신의 엄마가 자신의 곁을 훌쩍 떠나는 걸 목격하게 될 것이다. 노라는 이미 나에게 그녀의 곁을 떠나 할 일이 있다고 말을 했었고, 분명히 실행에 옮길 것이다.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있지만 도무지 이네스에게 말해줄 수가 없다. 노라는 분명 나에게 이 이야기를 이네스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니까.
하지만....이네스에게 말을 해야할까......
아니다, 내가 이네스에게 알려주던 말던 노라는 분명 이네스의 곁을 떠날 것이다. 내가 뭔 짓을 하던 노라는 분명 떠나겠지. 내가 말을 해봐야 나와 노라 사이에 안 좋은 감정만 생길 것이다.
하지만......하지만......
이네스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생각해?"
"아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린 절친한 친구잖아. 한번 말해봐."
"저, 정말 아니에요."
"흐응, 그래."
이네스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날 바라봤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