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구이 공작소(ROOKI1의 WORKSHOP) - 작가 : rook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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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사는 코트의 깃을 세우며 황색 언덕을 바라보았다. 이 커다란 황무지는 바람을 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 닥친다. 반면에 바람이 뜸해지는 여름이 되면 이곳의 열기는 장난이 아닐 거다. 리누는 경험상 이런 곳이 얼마나 인간에게 불친절한지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다지 살만한 곳은 아니다.
리누와 멀리 보이는 지평선까지는 보이는 생물이라고는 말라 비틀어진 풀 쪼가리 정도다. 하다못해 도마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리누는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끔찍한 곳이군.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 소리와 뒤에서 울려 퍼지는 기계소리뿐. 3일은커녕 3분만 봐도 질려 나가떨어질 풍경이다. 리누는 뒤로 돌아서 거대한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6층 건물만한 금속 구조물은 녹슬지 않는 귀한 금속으로 이루어졌고, 리누의 기계로 된 하인들이 달라붙어 무언가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이 구조물이 아니었다면 리누는 이런 끔찍한 곳에 붙고 싶다는 생각은 이 황무지의 먼지 한 조각만큼도 없었을 게다.
“리누 씨, 경치는 어떻습니까?”
리누의 뒤에 있던 남자가 물었다. 두꺼운 스웨터를 입은 깡마른 사내는 안경을 고쳐 쓰며 저 멀리서 느릿느릿 리누에게 걸어왔다. 그 남자의 눈가는 잔주름으로 가득 했고, 금발이었을 머리카락은 이미 반쯤은 하얀색으로 뒤덮여있었다.
“광활하군요.
거짓말을 하기 싫은 리누는 이 끔찍한 장소를 나타내는 표현 중에서 그나마 긍정적으로 들리는 단어를 찾아내 대답했다. 안경을 쓴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왼손에 들린 파이프에서 담배연기 한 모금을 빨아내고 리누의 옆에 섰다.
“리누 씨에게는 정말 거듭해서 감사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런 큰 일을 맡아주시다니.”
“뤼게오 박사님, 제게 그런 말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야말로 이런 대단한 곳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리누와 박사는 기계 유적을 올려다 보았다. 수많은 금속 부품과 기계덩어리로 이루어진 유적은 셀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견뎠지만 그다지 상한 곳이 없다. 비도 거의 오지 않는 이 지역 특유의 날씨 때문이다.
“독특한 유적입니다. 고대 양식의 기계문명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이렇게 커다란 유적은 보기 드물지요. 기계사의 땅 자이프니츠에 이 곳의 이야기를 전하면 조사하러 온 기계사들이 평원을 가득 채워버리겠죠. 이런 곳을 볼 수 있다니 오히려 저에게 영광입니다.”
리누는 뿌듯한 얼굴로 구조물을 바라보았다. 이런 표정은 평소의 리누에게는 굉장히 드문 표정이었다. 항상 지루한 듯 뚱한 얼굴이 보통이니까.
“이 속도로 일이 진행된다면 아마 3일 이내로 일이 끝날 것 같습니다. 유적의 보존 상태도 아주 좋은 데다가 이렇게 설계도까지 있으니 더욱 다행이군요. 별다른 일만 없다면야 금방 끝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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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누는 탁자 위에 놓인 커다란 설계도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군데군데 찢긴 곳이 있지만 비교적 양호한 상태다. 물론 이것은 복사본일 뿐이고 진본들은 오두막의 수납장에 귀하게 모셔져 있다. 뤼게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되었다고 말했다. 리누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 보았다. 기계들이 일하는 소리를 빼면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당연히 불빛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리누 씨, 제가 질문 하나 하지요.”
박사가 양 손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머그를 들고 왔다. 리누는 머그에 담긴 뜨거운 시럽을 바라보았다. 이 곳에서 음식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 음식은 모조리 저장식이다. 이 시럽도 분말 시럽인 게 틀림없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리누 씨는 이 땅이 어떤 곳인지 짐작했을 겁니다. 리누 씨가 본 이 땅은 어떤 모습입니까?”
리누는 말없이 머그잔이 식기만을 기다렸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도시라고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특대형 누더기 조각이라면 모르겠지만. 거리는 온통 경이로울 정도로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데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은 열을 지어 돌아다니는 군인들뿐. 심지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나라가 세 나라와 동시에 전쟁을 벌인다고 한다.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답이 무엇일지 알고 있는 박사는 쓸쓸한 얼굴로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외지인이죠. 다른 나라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를 수없이 많은 땅을 여행하다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시설의 존재만 확인하려고 왔습니다만, 이 나라의 사정을 알고는 이 시설 근처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가 무엇을 말할 지는 짐작이 갔지만 리누는 말없이 시럽만 목으로 넘겼다.
“이 땅은 메마른 황무지입니다. 작물을 심어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요. 그렇다고 다른 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군부는 언제나 전쟁과 침략으로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방책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희망이라고는 이 시설뿐인 것이지요.”
박사는 주머니에서 종이를 펼쳤다. 옛 비문을 탁본한 종이다. 박사의 얼굴은 온화한 열망으로 들떠있다. 박사가 이 시설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짓는 이 표정은 리누에게도 익숙했다.
“이 시설이 가동된다면 이 땅에도 희망이 보일 겁니다. 사실 이 시설은 단순한 공장이 아닙니다. 자동적으로 원료를 채굴하는 광산이기도 하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리누도 이미 설계도를 보고 바로 알아차린 사실이다.
“무엇을 만드는 공장인지는 훼손이 심해서 잘 알기 힘들지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팔 수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이 전쟁만 생각하는 국가도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령 쓸모 없는 물건이어도 광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겠죠.”
박사는 종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 동안 리누는 말없이 시럽을 반 넘게 들이켰다.
“전 이 곳을 바꿀 겁니다. 이 시설을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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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누는 코트의 단추를 목까지 다 잠그고 난 뒤에야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어느새 수리는 다 끝나있었고, 리누의 기계들은 리누가 몰고 온 태엽으로 움직이는 트럭 안으로 알아서 차곡차곡 들어갔다. 박사는 어느새 일어나 시설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별이 지지 않은 꼭두새벽이었지만 어린아이처럼 벌개진 박사의 얄팍한 뺨을 보니 꽤 이른 시간부터 깨어 있던 모양이다. 추위가 아니라 흥분 때문에 벌개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박사님, 수리는 이걸로 끝났습니다. 직접 기계를 가동해 보시겠습니까?”
박사는 목이 매이는 듯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누는 박사를 트럭에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트럭은 황무지에서 꽤 빠르게 움직였지만 시설이 워낙 큰지라 5분을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누는 박사를 데리고 제어부로 보이는 시설로 들어갔다.
“일단 이것을 당기면 가동이 시작됩니다. 옆에 있는 것을 당기면 가동을 멈추지요. 나머지 사용법 같은 건 여기 제가 써둔 매뉴얼을 보시면 됩니다. 워낙 기계의 목적이 단순해서 딱히 쓸 일은 없겠지만.”
리누도 평소답지 않게 조금은 흥분한 얼굴이었다. 그닥 태도는 변한 것이 없지만 평소에 비하면 몸놀림이 훨씬 시원시원하다. 리누가 건네준 매뉴얼은 사실 리누가 이니라 기계 쓴 것이긴 하지만 박사는 그런 사소한 사실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박사는 지금 기계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박사는 눈을 감고 레버를 힘차게 당겼다. 박사가 레버를 당기자마자 거대한 시설이 잠에서 깨어나는 커다란 진동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커다란 소음과 진동이 황무지를 메웠다. 리누가 박사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일단 기계가 가동했으니 완성품은 저쪽에서 나올 겁니다. 미리 채굴해둔 광물이 있을 테니 금방 나오겠죠.”
박사는 리누가 걸어가는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이런 마르고 긴 체형에서 연상되는 휘청거리는 걸음이 아니라 목표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강하고 힘찬 걸음이다. 두 사람은 금새 상품의 출구에 다다랐다. 이제 잠시 후면 기계가 다시 깨어난 뒤 만들어내는 첫 상품이 등장할 것이다. 박사는 두 손을 비볐다.
“뭐가 나올 것 같습니까? 농기계? 차량? 생활용품?”
“글쎄요. 설계도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큰 시설에 걸 맞는 것이 나오겠지요.”
이윽고 기계가 완성품을 토해낼 준비를 했다. 기대로 가득 찬 박사는 배출구 바로 앞에서 무엇이 나올지 기다리고 있다. 시설의 출고용 기계팔이 최초의 상품을 들어 옮겼다. 박사와 리누는 숨을 죽여 이 기계의 첫 완성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금속으로 된 길쭉한 기계다. 앞 부분에는 가는 금속관이 달려있고 뒤에는 손가락에 걸 수 있는 레버와 어깨에 대도록 돌출된 판이 있다.
박사는, 그리고 리누까지 아연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무엇에 쓰는지는 두 사람 다 잘 알고 있었다.
“총이군요.”
리누의 힘없는 목소리를 신호로 기계팔들이 ‘상품’들을 마구마구 쌓아놓기 시작했다. 총으로 시작해서 탄창과 대포, 전차가 마구마구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박사와 리누의 앞은 수많은 무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박사는 황망한 얼굴로 리누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 어쩌죠?”
리누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삼치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