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구이 공작소(ROOKI1의 WORKSHOP) - 작가 : rooki1
글 수 185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낮이었다. 니엘과 리누는 숲 속에서 갑자기 마을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정말 마을이 있네요. 이렇게 숲 바깥과는 동떨어진 곳에……”
“일단 들어가볼까? 마을 파헤쳐진 무덤이나 걸어 다니는 시체가 없는 것을 보면 가도 괜찮은 것 같군.”
리누는 마을을 둘러싼 허술한 나무 방책 주위를 돌다 마침내 문을 찾았다. 문지기로 보이는 청년이 낡아빠진 화약총을 들고 마을의 문을 지키고 서있었다. 문지기 청년은 두 사람을 보자 따뜻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법사님을 찾아오신 분들인가요?”
“뭐, 저는 그냥 동행이고 볼 일은 이 애에게 있습니다만.”
그러자 문지기는 양팔을 활짝 별리며 두 사람을 문 안으로 몰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발했다. 얼굴 선도 가늘고 몸도 가늘었다. 눈매도 여우처럼 가늘다. 어쩐지 불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인상이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님의 손님은 우리의 손님이니까요. 제 이름은 히르케입니다. 두 사람 다 잘 지낼 수 있죠?”
싱글싱글 웃는 문지기 히르케에게 떠밀린 두 사람은 마을 안쪽의 풍경에 조금 놀랐다. 마법적인 조형물이나 버려진 유적 같은 것은 하나 없었다. 평범한 산속 마을일 뿐이다.
“흐음, 사령술의 흔적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마법도구나 마법생물 정도는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저도 마법사님의 마을이라면 뭔가 있을 줄 알았어요.”
나무 오두막에 매달린 말린 고기들, 장작들, 밝은 얼굴의 사람들.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이상한 것을 뽑는다면 호들갑 떠는 문지기 청년의 태도뿐이다. 소심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시끄럽다.
“저 쪽이 쉼터입니다. 여행자들이 묶어갈 수 있도록 만든 건물이죠. 방 하나를 하루 빌리는 데 2리스 밖에 안 합니다. 세끼 식사도 물론 제공되죠. 생필품을 사고 싶으시다면 저곳이 이 마을의 가게도 겸하니까 저 곳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두 사람은 히르케의 기세에 밀려 쉼터라는 이층 건물로 끌려갔다. 그들과 마주친 마을 사람들은 ‘마법사님을 뵈러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잘 왔네 잘 왔어.’ 같은 말을 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밝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이제 쉼터지기 생스가 마법사님에 대해 설명해 드릴 겁니다. 전 할 일이 있으니 가보겠어요. 꼭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문지기 청년은 두 사람을 쉼터에 집어넣고 사라졌다. 쉼터라는 곳은 그저 잡화점에 여관이 섞인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는데 대여섯 사람이 안에서 웃으며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니엘은 리누가 알려준대로 숙박부에 니엘 솔렌느라고 적어 넣었다.
“아아, 새로 온 사람이로군. 내가 생스야. 자네들도 마법사님을 뵈러 온 거겠지?”
리누가 숙박부에 그다지 달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솜씨로 라이너스 노이겔(Rinus Noigel)이라는 이름을 적고 있는 데 바에 앉아있는 투실투실한 쉼터주인이 두 사람을 불렀다. 리누는 손가락으로 니엘을 가리켰고 니엘은 황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쉼터 주인은 거칠어 보였다.
“좋아. 일단 이 마을에서 알아둘 것을 몇 개 설명해 주지. 이 마을은 보면 알겠지만 마법사님의 마을이야. 마법사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마법사님을 돕기 위해 만든 마을이지. 마법사님을 뵙고 싶다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때가 되며 마법사님이 부르실 테니까.”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새로운 얼굴들에 흥미를 느꼈는지 고개를 리누와 니엘쪽으로 돌렸다.
“보다시피 이 마을 사람들 모두 되살림을 받은 사람과 되살림을 부탁 드린 사람뿐이지. 저기 플로드도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되었고 로젯은 아들 덕분에 되살아났지. 여기 랑드르는 바로 그저께 친구를 되살려 냈어. 랑드르 옆에 서 있는 녀석이 바로 그 친구인 시사로지. 나도 마차에 깔렸던 형이 다시 멀쩡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지. 방랑끼가 있는 형 놈은 마을을 나갔지만.”
이름이 불린 남자들이 리누와 니엘에게 웃으며 잔을 흔들어 보였다.
“말썽만 부리지 않으면 너네 들이 뭘 하든 상관없어. 단, 이건 절대로 건들지마.”
생스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반짝거리는 구슬 같은 게 공중에 떠있다. 구슬에는 파리 날개 같은 것이 달려 붕붕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되살림을 부탁한 사람에게는 마법사님께서 이런 벌레를 붙여주셔. 마법사님께서는 만약 그 사람을 또 잃고 싶다면 마음대로 건들라고 하시더군. 함부로 이걸 건드렸다간……”
생스는 손가락으로 목을 그었다.
“……무슨 일을 당해도 너희는 아무런 할말 없는 거야. 알았어? 앙?”
그의 흉흉한 눈빛에 니엘과 침을 꿀꺽 삼켰다. 옆의 리누는 황급히 목을 끄덕이고 있었다. 생스는 한동안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좋았어! 너네 정말 마음에 드는군. 마법사님의 마을에 잘 왔다! 하하하!”
갑자기 생스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리누와 니엘은 놀라서 흠칫 뒤로 물러났다. 생스가 리누와 니엘이 앉은 이런저런 음식들을 꺼냈다.
“좋아, 마음껏 먹으라고 신참들, 자네들도 마법사님을 보게 될 테니 축하해 줘야지!”
니엘이 어리둥절해 하는 동안 리누는 재빨리 상황을 눈치챘다. 재빨리 자리에 앉은 리누는 음식을 입에 처넣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 다가가 같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이 마을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래 이 마을은 존재하지 않았고 이 숲도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숲이었다. 어느 날 한 젊은 마법사가 이 숲의 괴물을 퇴치하고 이 곳에 정착했다. 한동안은 마법사만 혼자서 조촐히 오두막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마법사는 우연히 마법사의 집에 온 몇 명의 여행자들에게 되살림의 기적을 주었고, 그들은 마법사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이 곳에서 살며 마법사를 돕기로 했다. 곧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결국 마을은 십 몇 년 만에 이렇게 커졌다.
“이상하군요.”
리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소문이 엄청났을 텐데 전 이 애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어째서 이곳이 이렇게 조용한 겁니까?”
로젯이라고 불린 길쭉한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사님은 이 마을에서 되살림의 기적을 받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조건을 걸었어. 이 마을에 대한 사실은 딱 한 사람에게만 말할 것. 그리고 자신의 고향과는 정반대편의 마을에서 정착할 것. 이 조건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대가를 받아야 해. 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소중한 사람이 두 번째로 죽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니엘과 리누는 동시에 똑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리누의 옆에 있던 랑드르라는 청년이 맥주잔을 잔을 테이블에 퉁퉁 두드렸다. 그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젠장, 시사로 녀석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한 데, 다시 고향을 밟을 수 없다니 너무 하잖아? 난 고향을 벗어난 게 이번이 처음이야. 그런데 나보고 다른 곳에 정착하라고? 이건 너무하잖아!”
시사로라고 한 친구가 랑드르를 말렸다.
“그만해 랑드르, 마법사님도 분명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신 걸 거야. 그 분을 비난하면 안 돼. 그 분은 내 생명의 은인이야.”
랑드르는 커다랗게 소리치는 건 그만 두었지만 입으로 웅얼거리는 건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싸해진 테이블 분위기에 사람들은 흐지부지 헤어져 버렸다.
리누와 니엘은 마을 구경도 나갈 겸 산책을 나갔다. 붉은 코트는 벗어두고 평상복인듯한 검은셔츠를 입은 리누 점점 아름다운 보라색으로 녹아 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니엘에게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을이라고 이야기했다. 친절한 사람들과 밝은 분위기. 그다지 폐쇄적인 마을 같지가 않다. 농사나 사냥 같은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왜일까요? 어느 마을이나 문젯거리는 하나씩 있던데.”
“되살아나 보는 게 사람들에게는 좋은 경험일지도 몰라. 되살린 사람이나 되살아난 사람이나 세상을 다르게 보이겠지.
이야기를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마을 근처의 숲으로 들어갔다. 빽빽한 활엽수들 덕분에 거의 원시림에 가까운 마을 바깥 숲과는 달리 이 근처의 숲은 그럭저럭 다닐 만 했다. 조금씩 어두워져 가는 숲 속을 걷던 둘은 한 여자가 그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오신 분들인가 보군요? 안녕하세요?”
많아 봐야 서른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간편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부드럽고 산뜻하다. 긴 아마 빛 머리를 찰랑이며 리누와 니엘에게 다가온 그녀는 한쪽 팔에 바구니를 메고 있었다. 리누는 여자의 옷소매가 초록 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이 여자의 바구니에는 약초가 가득 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당신도 이 마을에 사시는 건가요?”
리누가 묻자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눈빛은 부드럽고 맑았다. 천성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주기를 좋아하는 성격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의 일이라면 기꺼이 도울 것도 분명하다.
“네, 제 이름은 실드라스에요. 여러분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어요?”
리누와 니엘은 여자에게 이름을 말해주었다. 자신을 실드라스라고 말한 여자는 다시 싱긋 웃는다. 그러더니 둘에게 혹시 바깥에서는 어떤 재미있는 소식이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는 오랫동안 이 마을을 떠난 적이 없거든요. 이 마을은 바깥 소식에 둔한 편이라 외지 사람들이 들어 올 때 마다 묻지 않으면 바깥에 큰 전쟁이 터져도 아무도 모를 거에요.”
리누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자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쪽 대지에 새로운 결절이 발견되어 또 다른 땅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소리의 공명현상을 제어하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마법 학파가 등장했다는 것, 저 먼 곳에 있는 공작령이 결절을 사이에 두고 다른 땅과 전쟁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같이 여자는 물론 니엘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결절, 결절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저는 잘 상상이 안가요.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요?”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기 전인 아주 오래 전에는 하나로 뭉쳐져 있던 거대한 세상이 수많은 프래그월드(Fragworld)로 쪼개진 뒤로부터 사람들은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세상과 세상사이의 결절을 통과해야 했다. 리누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그다지 신기하지 않습니다. 빈 공간에 창문처럼 거대한 틈이 있어서 그 안으로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고 있죠. 말 그대로 다른 세상으로의 문이랄까요?”
“이미 충분히 신기해 보이는데요? 여름의 별이 가득한 밤하늘아래에서 결절을 바라보면 그 뒤로는 밝은 햇살이 비치는 땅이 보이면 얼마나 멋지겠어요?”
실드라스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리누가 대답했다..
“그런 결절을 넘으면 시차 때문에 고생하죠. 겨울인 세상과 여름인 세상을 넘나드는 것은 감기 걸리기 딱 좋고요.”
“리누 씨, 재미없어요.”
니엘이 리누에게 톡 쏘아붙이자 실드라스는 잠시 입을 가리고 키득거린 뒤 이제 짙은 남색을 가득 머금은 늦여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날이 어두워졌네요? 두 분 모두 그만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건 제 선물이니까 받아가세요.”
실드라스가 준 것은 바구니 한 켠에서 꺼낸 커다란 빵과자였다. 실드라스는 빨리 먹어야 맛있을 거라고 하고 숲길 속으로 사라졌다. 리누는 빵과자를 반 쪽 뜯어서 니엘에게 준 뒤 입을 열었다.
“무지 순진하고 맹한 여자네. 결혼은 했을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피곤하겠어.”
“그런데 그거 알아요? 리누 씨 되게 재미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결절을 넘으면 시차 때문에 고생하죠.’라니, 진짜 깬다.”
“시끄러.”
뭉실뭉실한 빵과자를 씹으며 리누가 말했다.
삼치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