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구이 공작소(ROOKI1의 WORKSHOP) - 작가 : rooki1
글 수 185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야산 어딘가의 텐트 속에 누워있었다. 하늘은 이미 땅거미가 져서 어두워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내가 집에 들어온 뒤 그 몇 시간 동안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전혀 기억 나지 않았다.
가슴이 시려온다. 정말 떡 같은 기분이랄까.
하지만 언제나 익숙한 기분이다. 내게는 기쁨보다는 아픔이 오히려 익숙한 감정이니까. 제기랄, 내가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게 언제적 이야기냔 말야?
몸을 뒤척거렸다.
“너무..아파…”
내 짧은 19년을 되 돌이켜보았다. 내 인생에서 아파하지 않았던 적은 얼마나 되는걸까?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6살 때까지는 그럭저럭 이렇게 속앓이 하지 않고 제대로 살아왔던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에 아이큐 테스트에서 IQ가 180이상으로 나왔던 오빠와는 달리 ‘겨우’ 134가 나와서 부모가 내게 실망하기 시작할 때 까지는.
초등학교 때, 내 부모는 각종 각종 경시대회를 휩쓸고 온갖 상이라는 상은 다 먹어치우던 오빠의 매니저 노릇을 하느라 달랑 부반장 한 번 해보고 개근상이나 몇 번 받아보던 나 따위에는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내 동생 수정이가 웬 주말 쇼 프로에서 유치원생 독서광 천재소녀로 출연한 이 후에는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간단히 말하자면 거의 양이라도 되는 마냥 애를 방목하는 수준정도로 심각했다. 내게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 따위는 없었다. 있다면 그건 석영이 오빠하고 수정이 에게나 있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에는 친구들 덕분에 1년쯤은 참아볼 만 했다. 하지만 그 때, 그나마 가족 중에서 나를 관심과 사랑으로 대해주던 두 사람은 나를 떠났다.
오빠는 태평양을 건넜다.
할머니는 황천을 건넜다.
할머니가 떠난 그 날, 나는 가출했다. 이제 우리 집에서 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집에 돌아온 건 일주일 뒤였다. 저금통 하나 깨고 출발한 무모하기 그지없는 짓이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때 날 혼냈던 것은 미국행을 앞둔 오빠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홍당무를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별다른 기억이랄 것도 없다. 수능을 잘 치루면 내 부모도 조금은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멍청한 생각 때문에, 난 친구들을 포기했다. 단지 나도 좀 바라봐 줬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의 대가 치고는 너무 큰 대가였다.
그래서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수능 492점이라는 세자리 숫자였다. 남들이 보면 배 아플 숫자겠지. 하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아냐, 결국 내 가족은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 이건 누군가 따뜻한 가족을 준다면 얼마든지 내던질 수도 있는 그런 숫자일 뿐이야.
옛날 생각을 하다 보니 볼에서 물방울 하나가 흘러 떨어져 내려갔다. 아마도 슬픔…이겠지.
난 텐트에 걸린 랜턴의 불을 끄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졸음이 쏟아져 오기 시작했다.
삼치구이
탱커즈의 세계에 살고 있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