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요즘도 여기 오시는 분 없겠죠.
네드리의 낙서장 - 작가 : 네드리(nedlee)
글 수 65
전술과 별로 친하지 않은 에드워드가 생각하기에도 애당초 아무 문제는 없어 보였다. 성형작약탄을 문고리에서 터뜨림과 동시에 브리처가 램으로 문을 부숴 열고, 포인트부터 차례대로 들어가 세 명이 45도 각도로 갈라지면서 방 전체를 시야에 확보하고 표적을 제압한다. 로봇의 능력은 일반 인간의 것을 상회하는 것이었지만 애당초 훈련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었기 때문에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돌입 또한 교과서적이고 평이하며 단순했기에 문제될 이유는 역시 없었고, 그래서 실행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성형작약탄이 자물쇠에 손바닥만한 구멍을 뚫고 나자 켈빈이 휘두른 공압식 램(pneumatic door-ram)은 플라스틱 합판으로 만들어진 얄팍한 문을 경첩째 뒤로 날려보내는 위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소총을 사방에 휘두르며 돌입. 에드워드는 포인트맨을 맡은 군터에 이어 방에 두 번째로 들어섰고, 덕분에 두 번째로 죽었다.
문간을 넘어서서 몇 걸음 걸어 들어가기도 전에 무언가가 문 뒤쪽에서 뛰어나오는 걸 설핏 보긴 했다. 훈련의 결과로서 반사적으로 반응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긴 했지만 한참은 늦은 뒤였다. 반응 속도에서 너무 차이가 많이 났다. 채 손쓸 겨를도 없이 꽤 강한, 둔탁한 충격이 가슴에 한 번, 그리고 두 번째 충격으로 투명한 바이저가 샛노랗게 물들었다. 덕분에 앞이 안 보여 비틀거리는데 누군가가 - 아마 덩달아 쓰러지게 된 군터나 켈빈이겠지만 - 에드워드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고, 에드워드는 보기 좋게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찰리 조, 에드워드 진, 군터 슐츠, 2명 사망. 켈빈 라이트, 1명 전투불능.]
알아, 나 귀 안 먹었으니 안 말해줘도 돼. 판정 컴퓨터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헤드셋으로 들으며 에드워드는 가볍게 투덜거리곤 누운 자세 그대로 바이저를 손으로 문질렀다. 7밀리 시뮤니션(Simmunition)의 노란 수성 물감이 바이저에서 신경질적으로 닦여져 나가고, 플라스틱 합판만으로 지어진 실내전투 훈련용 킬하우스의 천장이 올려다 보였다. 에드워드는 몸을 일으켜 바로 앉고 싶었지만 훈련에 방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말해서 훈련에 혹시 방해가 되지 않도록 2분 가량은 차가운 바닥에 멍청히 누워 시체 흉내를 내고 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천장의 삭막하기 그지없는 회색빛 합판 따위나 보면서.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천장만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로봇이 있었으니까.
어느샌가 여자가 천장을 배경으로 에드워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시야에 불쑥 들어온 여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려는데 거의 동시에 아직 잡고 있던 자신의 소총이 품에서 빠져나갔다. 그대로 있었더라면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이었지만, 에드워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면서 엉겁결에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는 소총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그 결과로서 소총의 총열덮개를 잡아 들어올리던 여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여자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노란 물감이 묻은 바이저를 사이에 두고 에드워드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다……여자가 몸을 숙이고 있었는지라 에드워드로선 얼굴을 상당히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여자의 눈은 사람과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건 광학 센서였고 그저 밋밋한 색상의 커다란 검은색 점에 불과했다. 그런 눈이 달린 얼굴이 무감정과 냉철함 사이의 표정 어딘가에서 이상하게 균형을 잡고 에드워드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에선 짧게나마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기도 할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여자가 자신에게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를테면, '시체'가 자기에게 소총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확인사살을 시도한다거나……하긴 실제 전투 상황도 아닌 훈련일 뿐인데 누가 그러겠느냐만은.
하지만 그 생각 덕에 에드워드는 손잡이를 꽉 쥐고 있던 손을 늦췄고, 여자는 그 틈을 타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빠르게 총을 잡아채 들어올리곤 에드워드의 어깨에 걸려 있던 3점식 총끈까지 간단히 분리해냈다. 에드워드는 정신을 차리고 소총 손잡이를 잡아채려 했지만 한참 늦은 후였다. 여자는 에드워드에게서 수거한 것과 원래 갖고 있던 것까지 소총 두 자루를 들고는 순식간에 방을 나서고 있었다.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서.
여자. 갈색에 가까울 정도의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가 노출된 손이며 얼굴이며, 잘 봐줘야 평범하다고밖에 부를 수 없는 체격에, 어쩐지 입고 있는 커버올 방식의 암청색 전투복 위로 드리워진 검은 전술조끼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가냘파 보이는 이미지였지만 에드워드는 그건 겉모습일 뿐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전투에 관해선 아마 괴물쯤은 될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괴물. 추적하는 입장에서 기습의 이점을 살려 밀고 들어갔는데도 오히려 역으로 아군을 간단히 제압해버렸다. 아군은 24명이고 여자는 혼자였지만 오히려 당하는 건 아군이었다. 무슨 영화 주인공인 것도 아니고……지금쯤은 아마 다음 희생양을 찾고 있겠지. 브라보에 이어 우리 찰리까지 당해버렸으니 다음은 델타 조가 당할 차롄가, 아님 에코나, 아님 알파나……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데……왜 하필 내 총을 가져간 거야?"
2분 뒤 에드워드는 대강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사망'했던 동료들과 함께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동료들은 죄다 신형 소총을 어깨에 걸쳐두고 있는데 자신만 빈손이니 뭔가 허전했다. 켈빈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간단하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했다.
"너만 한 발도 못 쏴보고 죽었잖아. 그러니 한 발이라도 더 들어가 있던 네 총을 챙긴 거지."
"에이, 설마."
"군터가 처음에 더블 탭(Double-tap)으로 두 번 쏘고 나도 방아쇠는 한 번 당겨봤어. 죄다 빗나갔지만."
"그래도, 아무리 로봇이라도 그런 세세한 것까지 판단한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거잖아."
에드워드의 말에 켈빈은 코웃음을 쳤다.
"무서운 거 맞아."
에드워드로서는 어쩐지 단호한 말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닫고 잠시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려다가 자신이 문득 검은동자만 있던 여자의 눈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재수 없는 생각은 왜 한담.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렸다. 다른 무엇보다 몸의 고통이 먼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에드워드는 바이저를 닦아내느라 물감투성이가 된 검은색 전술장갑을 벗어서 역시 물감 자국이 남은 조끼 주머니에 대충 구겨넣고는, 왠지 뻐근해오는 목을 주물렀다. 다 신형 소총 탓이었다.
새로 지급된 마섹제 M31 자동소총은 군용이었고 지금껏 써오던 간단한 오픈 볼트 방식의 M4 기관단총과는 많이 달랐다. 총열 아래의 36발들이 나선형 탄창에 들어가는 손가락만한 플레쉐트(flechette) 탄약은 이중 소진탄피 방식이었고, 전자식 격발장치로 점화되었으므로 필요에 따라서 탄피 중 하나만 격발시킬 수도 있었다. 두 개의 탄피를 동시에 격발시키면 총구초속이 초속 5백 미터까지 올라가므로 야전에서 높은 관통력과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 개만 격발시키면 다른 하나를 목표물에 충돌할 때 폭발하도록 설정해 근접전에서 대단한 저지력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저출력 장약을 채우고 다른 하나는 물감과 비닐 껍데기를 채운 뒤 탄두를 빼버리면 훈련용 물감탄인 시뮤니션이 되는 것이다……최소한 간밤에 읽었던 관리 교범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하긴 군용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반동조차도 이전의 제식 기관단총과는 뭔가 다를 정도였다. 훈련탄조차도 이렇게 은근슬쩍 아픈걸.
그나마 에드워드에게 다행이었던 건 다쳤던 손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갑을 벗은 왼손은 벌써 맨들맨들한 새살이 돋아 오른 후였다. 꽤 심하게 데였는데도 붕대 풀고 멀쩡해지는데 채 사흘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 할 수 없는 거고, 산 사람은 또 살아야지. 살아서 치료받고, 멀쩡해지면 새로운 무기 지급 받고, 죽도록 훈련받아야지.
그래서 에드워드들이 죽도록 훈련받는 킬하우스는, 겉보기엔 조금 부실해 보일지 몰라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계단, 이중문, 통로 사이의 방, 난간, 개방형 공간……다양한 실내전 상황을 재현하기 위한 공간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연결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전자 태그를 이용하는 감응 센서가 줄을 지어 설치되어 아군의 움직임을 정확히 기록하고 반인공지능 시스템이 결과를 판정했다.
에드워드가 있던 순찰대에선 훈련용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화면 하나 비춰놓는 게 전부였는데 기동대는 근접전투 훈련용으로 꽤 근사한 시설을 지어놓은 것이다. 사실 이 킬하우스 자체는 기동대가 쓰는 물건이었긴 했다. 허나 ALERT 기지 내엔 시뮬레이터보다 더 좋은 훈련 시설을 둘 데가 없었고, 시뮬레이터는 어디까지나 시뮬레이터였다. 어쩌겠는가, 기동대 시설을 빌려서 써야지.
대원들은 그대로 복도를 걸어나가서 킬하우스 옆에 세워진 관제실까지 간 뒤 보로닌에게 경례를 붙였다. 보로닌은 경례를 무시하고 한동안 PDA와 모니터 화면 위로 광펜을 끄적거리고만 있었다. 에드워드는 어깨 너머로 화면을 넘겨다보았고 막 델타 조원들이 여자와 조우해 소총 두 자루의 탄막에 얻어맞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잘 싸우네. 그 총 중 하나가 자기 것이라는 게 막연한 죄책감마저 생길 정도로. 그쯤 되어서야 보로닌이 질문을 했다. 여전히 전술 디스플레이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였다.
"좋아. 디브리핑에서 이야기해야할 주제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왜 순식간에 전멸당했지?"
조원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나서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찰리 조장인 군터에게 맡기기로 했고, 군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서서 말했다.
"순발력 문제였습니다. 실내전에선 빠른 판단력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로봇이 더 빨리 판단하고 더 빨리, 정확하게 쏘니까……."
보로닌은 쥐고 있던 광펜을 허공에 대고 저어서 군터의 말을 자른 뒤 꽤 정확하게 짚어서 말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들이 생각을 잘못한 거야. 어차피 이 실내전 상황은 자네들보단 로봇에게 유리하고, 그런 쪽으로 몰고 가면 자네들은 질 수밖에 없어. 게다가 기습을 목적으로 하고 돌입했으니까 오히려 당할 수밖에 없지. 기습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빠르게 대응할 수 없는 적에게 쓰는 거야. 일반적인 대테러 전술이 전투 상황에도 항상 쓰이는 건 아니란 점을 상기하도록.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문 열고 아무 데나 총부터 갈기는 게 나았을 거야."
"옛, 다음 기회엔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잊지 마. 만약에 귀관들을 쓰러뜨린 게 로봇 따위가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진짜 외계 괴물이었으면 다음 기회 따윈 없어."
"예."
이번엔 조원 세 명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에드워드가 다시 곁눈질로 넘겨다보니 전술 화면에서는 막 델타 조원들이 전멸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보로닌은 그제서야 시선을 들더니 말했다.
"물론 이번엔 다음 기회가 있다. 훈련 끝나고 휴식 후 한 번 더 해볼 계획이니 조원들끼리 전술에 대해서 한 번 토의해봐."
보로닌은 시선을 내리려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서 대원들을 둘러보곤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 물감 좀 닦고."
에드워드는 시뮤니션의 가장 큰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뮤니션이 사용하는 수성 물감은 잘 지워지긴 했지만 조끼와 옷 틈새에 스며든 건 아무리 수성이라 해도 그리 간단히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티슈로 좀 문질러 보다가 나중에 세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냥 놔두었다. 어차피 다음 훈련에서는 다른 색깔의 물감을 쓸 예정이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그냥 좀 노란색으로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입고 싸우게 되는 것뿐.
헬멧의 바이저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세 명의 찰리 조원들이 킬하우스 밖에 나란히 앉아서 바이저를 공들여 닦는 동안 사망한 델타 조원들이 킬하우스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죄다 헬멧에 노오란 물감 장식을 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게 딱 얼마 전의 에드워드 조원들하고 똑같은 분위기였다. 하나같이 바이저를 맞은 건 여자 사격실력이 좋은 탓이었다. 헬멧으로 방호되지 않는 부분을 정확히 노려 맞췄다는 의미였으니까……아무튼 이 여자는 괴물 수준이라니까. 에드워드는 델타 조원 중에 혹여 자기처럼 총을 뺏긴 사람이 없나 싶어 잘 살펴보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없었다. 왠지 실망스럽게도.
그리고……예상대로 훈련은 실패로 끝났다. 여자가 알파 조원들의 최후 저지선을 돌파한 뒤 킬하우스 밖으로 성공적으로 빠져 나온 것이다. 훈련 시나리오대로라면 정체불명의 싸움 잘하는 외계인이 정체불명의 목적을 갖고 도시에 침투한 뒤, 신고를 받고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ALERT 대원들의 절반을 죽이고 도주해 도시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두 번째로 UFO가 나타났던 날 메가폴 기동대원들이 추락한 UFO에서 나온 외계인들에게 당해버렸던 것처럼. 이로 인해 도시의 평화엔 심각한 위협이 주어질 것이며……기타 등등.
하지만 글쎄다. 에드워드는 그 시나리오에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비록 UFO에서 나온 외계인들 중 하나만 잡고 다른 하나는 놓쳐버렸긴 했지만, 4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때 도주한 외계인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현재 파악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외계인들은 지구 환경에 제대로 적응 못하고 얼마 못 가 다들 죽어버릴 거라고 했고. 무엇보다 이런 외계 괴물이 등장했다면 굳이 대원들을 투입시켜 위험을 감수하느니 건물째로 폭파해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었다. 건물 주변에는 순찰차량과 호버카가 진을 치고 있다가 튀어나오는 수상쩍은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줄 테고…….
아무튼 이 훈련 시나리오를 짠 건 갑자기 나타난 무슨 자문역인가 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새로 들어온 충원 인원들과 함께 소행성 치안대의 견장을 단 나이든 여자가 하나 왔었는데, 자신을 자문역이라 소개한 뒤 외계인들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모르고 따라서 별별 상황에 다 대비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며 하나의 싸움 잘하는 개체를 다수의 ALERT 대원들이 상대해내야 하는 이 시나리오를 멋대로 지어내 소개하고 보로닌을 꼬셔서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충원이 있은 덕에 ALERT 대원들의 숫자는 12명에서 24명으로 두 배나 늘어 있었고 3명짜리 8개 조가 편성되어 있었지만, 새로 편성된 지 하루도 안 되는 탓에 팀웍은 어색했고 킬하우스의 전체 면적을 제대로 커버하기엔 뭔가 부족한 감이 있었다. 대원들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여자는 꽤 만만찮은 적수였고 어쨌거나 두 번째 훈련에선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훈련을 하기 앞서서 에드워드는 자신에게도 문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총을 여자에게서 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훈련 중에 주워간 총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대원들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대원들도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혼자서 24명의 훈련받은 전투요원들 중 절반을 제거하고 도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게 진짜 사람이라고 해도 그닥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었다.
휴식 시간 동안 대원들은 음료수를 조금 마시면서 시설 옆의 공터에 앉아서 쉬고 있었고, 여자는 조금 더 킬하우스에 가까운 곳에 혼자 떨어져서 서 있었다. 대원들 중 몇몇은 가끔 약간의 호기심과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여자 쪽을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웃으며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곤 했다. 에드워드도 훔쳐보다시피 여자 쪽을 바라보니 여자는 조금 우울한 듯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리는 게 눈에 띄었다. 퍽 자연스러워 보이는 동작이었다지만……글쎄다.
사실 그리 어려울 것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그냥 가서 자기 총 달라고 하면 되는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기묘한 거부감이 에드워드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인간과 조금 다른 존재라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잠시 자신의 손에서 힘이 빠진 틈을 정확히 포착해 소총을 낚아채면서도, 여전히 미동 하나 없이, 홍채가 없는 커다란 눈동자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내려다보던 이미지는 간단히 잊어버릴만한 것은 못 되었다. 불쾌하다거나 이질감을 느꼈다거나 싫었다거나, 겁났다거나, 혹은 그냥 인간이라긴 뭣한 존재에 대한 편견이라거나, 뭐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편히 맞대면하긴 뭔가 꺼림칙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에드워드로서도 슬럼 순찰을 돌다가 로봇 몇 개쯤 본 적이 있었지만 실상 맞대면해본 일은 없었다. 하긴 애당초 로봇 쪽에서 경찰은 피하는 편이었다. 애당초 경찰과 만나서 좋을 것도 없었다. 아니, 아예 될 수 있는 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편이었다고 부르는 게 좋았다. 훈련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걸 맞대면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면 에드워드로서 제대로 된 맞대면은 오히려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 자문역이라는 소행성대 출신 여자와 함께 한창 작전 검토 중인 보로닌을 통한다면야 여자를 대면하지 않고도 총을 돌려 받을 수 있었겠지만, 바쁜 상관에게 굳이 그런 걸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동료들에게 부탁하기도 역시 뭣했다. 로봇 따위 겁난다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있으니까. 창고엔 예비용 소총이 있을 테지만 그걸 구해서 쓰려면 역시 상관이나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맞닥뜨려야만 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동료들에겐 그냥 좀 볼일이 있다고 둘러대곤 일어섰다. 공포도 아니고 불안감도 아닌 조금 기묘한 긴장과 기대의 중간쯤 되는 감정을 느끼면서 여자에 접근했다. 여자는 별 생각 없이 판자로 지어진 킬하우스나 바라보는 듯 했지만 거의 10미터 남짓 다가갔을 때부터 기척을 느낀 듯 에드워드를 돌아보고 있었다. 청음 센서 성능도 좋군. 에드워드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꽤 가까이, 하지만 결코 너무 가까이까지 다가가지 않은 뒤, 꽤 뻣뻣한 말투로 최소한도의 단어만 써서 말했다.
"돌려줘요."
내가 초등학생이냐, 이런 식으로 말하게. 에드워드는 짧게 자신의 언어 구사 능력을 후회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긴장하고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어쩌나. 여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소총 총구를 에드워드의 배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문자 그대로 '총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 특유의 새까만 눈을 에드워드의 얼굴 바로 앞까지 가져다댄 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똑바로 노려보면서 총을 쥐어주지도 않았다. 호버카 공장의 공업용 로봇처럼 상박을 90도 회전시킨 뒤 팔꿈치 전체를 180도 돌려 총을 건네주는 기계적 움직임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런 것들이야 그 순간 에드워드의 머릿속을 스쳐갔던 온갖 잡생각들의 일부였을 뿐이고……실제론, 에드워드의 돌려달란 말을 듣고서 여자는 천천히 웃었다.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가도록 살포시, 정밀한 전자공학과 기계공학 및 생명공학의 합작물이란 걸 에드워드로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부드럽게, 퍽이나 자연스럽게, 뭔가 부끄럽기라도 한 듯이, 진짜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 누군지를 잊어버려서……미안해요."
에드워드로서는 그랬기에 더 소름이 끼쳤다. 인간적인 감정이 뭔가 결여되어 있으리라 믿었던 존재에게서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았으니까. 아까 훈련 때 받았던 인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이질감에 이은 또다른 이질감. 잊어버렸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물론 그렇다고 에드워드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건 아니었다. 그런 행동과는 뭔가 다른 감정이었으니까.
여자가 정말 기계적이고 무감정적으로 행동했더라면 에드워드는 별 감흥을 받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허나 오히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기괴한 물건이라도 보는 듯 눈을 내리깔고는, 그저 자기 총을 낚아챘다. - 개머리판에 이름을 써놓은 건 참 다행스런 행동이었다. 만약 여자의 총을 낚아챘다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졌을 테니까. - 여자는 뭐라 조금 더 말하려다가 에드워드의 반응에 실망한 것처럼 표정을 굳히곤 에드워드를 잠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여전히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건만……에드워드는 몸을 돌리고 대원들에게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어느샌가 다른 대원들도 에드워드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다른 대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돌아와서는 켈빈의 옆자리에 앉았다. 켈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척 하며 그냥 음료수 통만을 건넸고 에드워드는 입술만 살짝 적셨다. 여자에게서 느꼈던 이질감은 예의 뭔지 모를 초조함을 제공했다. 잊어버렸다고? 잊어버려서 미안했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게 가끔 더 무서울 때가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저런 여자를……저런 걸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아니 무엇보다도, 왜 난 저걸 여자라고 지칭하고 있지? 에드워드로서는 머리가 복잡해졌고,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먼저 뭐라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별로 내색하려 들진 않았지만 입을 열자 말끝이 살짝 떨리는 게 자기로서도 느껴졌다.
"저런……음……저런 로봇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어. 요즘은 생산도 못하잖아."
켈빈은 그 말을 듣더니 히죽 웃었다……에드워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냉소?
"슬럼에선 아직도 불법으로 아주 조금씩 제조한다던데. 여전히 세상에 죽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범죄에 써먹기도 좋고. 원칙적으론 그런 거 못하게 되어있다지만 원칙은 원칙일 뿐이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에드워드의 대답은 조금 불편했다. 켈빈의 말투는 묘하게 공격적이었으므로.
"순찰대 적에 주워들은 이야긴데 인신매매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전에 강력계 쪽에서 이야기 들어봤는데 갱단이 슬럼 주민들 납치해서 만든다는 소문도 있더라고. 비싼 가격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대. 부유층 일부가 페티시스트 장난감으로 쓴다나. 그쪽으로 팔린 숫자도 꽤 된다고 하고. 슬럼에서조차도 비슷한 수요가 있고."
에드워드는 다시, 조금은 조심스럽게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까의 기억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터라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짧게 고민했지만 어쨌건 입을 열자 말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그러니까……뭐랄까, 처음에 보기엔 어색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여. 진짜 사람 같달까……."
"예뻐 보이라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당연히 예뻐야지. 아님 불량품인 거고."
켈빈은 간단히 대답해서 에드워드를 맥빠지게 했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에드워드가 침묵하는 사이 켈빈은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래봤자……그래봤자지."
짧은 휴식 이후 두 번째 훈련이 있었다. 여전히 시나리오는 같았고, 여자는 보로닌과 간단한 토론을 하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대원들은 보로닌 없이 작전을 다시 짜야 했다. - 보로닌을 제외한 것도 자문역이라는 사람의 아이디어였다. 그것도 두 번째 UFO 출현 때 메가폴 통신 네트워크가 다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지휘관 없이도 한 번쯤 해봐야 하네 마네 하면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 대원들은 조장을 중심으로 약간의 토론을 거친 끝에 편성을 3명 1조가 아닌 6명 1조로 바꾸고 보다 출구 위주의 동선 중심으로 작전 계획을 바꾸었다. 3명 1조는 기동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편제였지만 좁은 실내에서의 기동성과 화력을 선택하는 타협안인지라 분명 공세적인 의미였다. 한 번에 이동하는 대원수를 늘리고 보다 방어적으로 움직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훈련 시작에 앞서 구호에 가까운 간단한 응원도 오갔다. 저런 것 따위에 당할 거냐. 당할 게 없어서 저런 로봇 따위에게 당할 거냐. 외계인들에게 뜨거운 맛 보여주기 위해서 훈련 좀 제대로 해보자. 잘해보자. 그리고 에드워드는 시뮤니션에 맞은 탓에 아직도 뻐근한 목을 좀 꺾어보고는 군터의 뒤를 따라 킬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한 건, 6명 1조는 분명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정해진 편제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기회는 있었고 필요하다면 대원들은 언제든지 갈라져서 별도로 움직일 수는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알파, 브라보, 찰리……의 3명 1조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단지 두 조가 짝을 지어서 가까이서 움직인다는 개념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방어적으로 각 조간의 거리를 짧게 유지하기로 한 것이라면 확실히 더 좋은 선택이었다.
시작 이후 몇 분간은 수색 패턴으로 전개되었지만 별다른 교전 없이 조용했다. 처음으로 당한 건 호텔-인디아를 합쳐서 만든 4조였다. 4조는 네 개의 커다란 방 사이에 있는 십자로를 통과하기 앞서서 규정대로 좌우를 살피긴 했다. 두 명의 조장이 조심스럽게 십자로 좌우 통로에 무언가 없는지 확인했고,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스네이크 대형으로 줄을 지어 십자로를 빠르게 통과하려 들었다.
그리고 그때 여자가 그 십자로 좌측의 또다른 십자로에서 튀어나왔다. 청각 면에서 아무 보조장비 없는 인간보다 우월했으니 기습이 가능했던 건 그쪽이었기에. 여자는 대원들이 쓰는 것과 동일한 M31 소총을 견착하고 무표정하게 걸어나와, 십자로를 통과 중이던 아군의 정가운데를 정확히 공격했다. 네 발의 사격은 지독하게 정확했고, 불과 2초도 지나지 않아 대열 중앙에 있던 두 명의 대원이 전투불능 판정을 받게 되었다. 중간을 절단당한 4조는 당황하면서도 가까운 통로로 뛰어들며 무전을 통해 다른 아군들을 불러들였다.
4조의 대응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었다. 대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대비를 한 상태였다. 최초의 기습 이후 상황은 짧은 대치국면으로 이어졌고, 4조에 남은 네 명의 대원 중 두 명이 응사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두 명은 빠르게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십자 사격의 기회를 노렸다. 이에 추가해서 찰리-델타의 2조가 2차 저지선을 위해 4조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동안 4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에코-폭스트롯의 3조가 여자가 있던 교차로 방향으로 이동했다. 에코와 폭스트롯으로 각각 세 명씩 나뉘어 교차로 왼쪽과 아래쪽의 두 방향에서 밀고 들어간 것이다. 알파-브라보의 1조는 예비로서 대기 중이었다. 이로서 십자로의 세 방향에서 대원들이 밀고 들어가 여자를 포위하는 형상이 되었다. 전술 PDA와 지도는 빠르게 작전을 구현하기에 꽤 유용한 도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전거리가 먼 야전 상황이었다면 이런 포위는 분명 유리했겠지만, 공간적으로 좁고 전투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실내전에선 약간의 타이밍만 맞지 않아도 포위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포위를 하려 드는 쪽보다 포위당하는 쪽이 전투 능력이 우월했다면 더욱 그랬다. 여자는 한 곳에 머물려 하지 않았고, 10초간의 추가 사격으로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끌려 하는 4조의 남은 대원 두 명을 다 제거하고는 그쪽으로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그때쯤에는 4조를 공격할 때 여자가 있었던 교차로의 세 방향에서 밀고 들어온 대원들이 여자의 뒤에서 총질을 해대고 있었지만 명중탄은 없었고, 여자는 옆길로 빠져들어 대원들의 사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미리 2차 저지를 위해 4조 뒤쪽으로 돌아갔던 2조가 버티고 있었다. 찰리-델타의 2조는 거의 거리를 두지 않고 나뉘어 3명씩 길을 막고 있었고, 4조가 여자를 놓쳤다고 무전기에 대고 외치는 순간 교차로 쪽을 향해 같이 공세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결국 여자는 거의 2조와 코앞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자가 모퉁이를 돌아 튀어나오는 순간 2조원들은 불과 10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3명씩 두 줄로 좁은 복도를 이동하고 있었으며, 예의 우수한 순발력으로 인해 사격을 개시한 건 여자가 더 빨랐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좁은 복도에서 여섯 명의 대원을 동시에 맞춘다는 건 불가능했다. 대열 앞의 세 명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물감탄에 범벅이 되는 동안 뒤에 있던 대원 세 명은 앞에 있던 - 이미 '사망'한 - 아군의 틈새로 소총 총구를 쑤셔넣고 무작정 쏘았다.
근접전이라 할지라도 목표물에 대한 조준사격은 중요했으며 훈련받은 대원들에겐 신속하고 확실한 제압을 위해 단발 사격이 애용되긴 했다. 게다가 한창 이동하던 중인지라 대원들의 급작사격 명중률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지만 일 대 다수인 이 상황은 약간 달랐다. 대원들은 소총의 방아쇠를 끝까지 당겼고, 방아쇠 압력을 감지해 고속 자동 모드로 바뀐 3정의 소총은 2초만에 총 108발을 쏘아 탄창을 완전히 비웠다. 그 중 14발이 제대로 여자에게 명중했다.
불행히도 에드워드는 앞쪽에 서 있던 세 명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날 들어 두 번째로 바닥에 누워 욱신거리는 가슴팍을 느끼며 판정 컴퓨터의 무미건조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이제는 첫 번째 훈련과 구별하기 위해서 노란색이 아닌 빨간색 물감을 썼긴 했지만, 시뮤니션에 맞은 가슴에 저릿한 통증과 함께 기시감을 느끼는 건 결코 단순한 착각만은 아닐 터였다. 다만 첫 번째와 다른 건 그나마 2조원 중 절반이 죽고 사살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바이저 밑에서 어찌되었건 해냈긴 해냈다고 살짝 쓴웃음을 웃다가, 문득 컴퓨터의 말을 듣고는 잠시 경직했다.
"……9분 34초만에 표적 사살로 인한 작전 성공. 찰리 조의 에드워드 진, 군터 슐츠, 2명 사망. 델타 조의 칼릴 지브란, 유하, 콜린 헤스켈, 3명 사망. 에코 조의……."
간단히 말해서 2조에서는 켈빈 빼고 다 죽었다는 뜻이었다. 분명히 자기를 포함해서 앞쪽에 서 있던 세 명만 총에 맞았는데……그럴 리가 없잖은가. 당혹한 에드워드는 바이저를 대충 닦아내고는 일어섰다. 의아한 눈빛을 교환하는 조원들을 둘러보며 어떻게 된 건지 항의하려고 입을 여는데 제일 뒤쪽에 서 있던 켈빈이 소총 탄창을 만지작거리며 냉정하게 말했다.
"실탄이었다면 관통했을 거야."
그리고 에드워드는 자기가 멍청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중에 있었던 디브리핑에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판정 컴퓨터는 제일 뒤에 서있던 켈빈을 제외하고 2조가 전멸했다고 판정했다. 시뮤니션이었기에 앞쪽 대원들만 맞았지 실탄을 썼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격발 즉시 약실 내에서 두 개의 탄피를 동시에 터뜨리는 관통력 증대 모드로 설정된 플레쉐트가 앞에 있던 대원을 관통한 뒤 그 뒤의 대원들도 살상했으리란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조원 6명 모두가 다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 때문이었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여자는 자세를 조금 낮추고 있었고, 대원들의 머리 부분을 쏘기 위해서 총구를 위로 조금 치켜들었다. 만약 총구가 수평 방향이었다면, 초속 5백 미터의 플레쉐트는 앞쪽에 있던 두 명의 대원을 일렬로 관통한 후 세 번째 대원에 박혀서 멈추고 2조는 전멸한 것으로 판정이 났을 것이다. 확실히, 6명 1조로 뭉쳐서 움직인 건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가 자세를 낮추었던 탓에, 플레쉐트는 두 번째 대원 - 에드워드 - 를 관통한 후 켈빈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천장에 명중한 것으로 탄도 계산 결과가 나왔다. 이미 죽은 대원이 반격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뒤쪽에 있던 세 명의 대원들 중에는 켈빈만 살아서 총을 쏘았던 것으로 가정되었고, 켈빈이 쏜 36발 중 명중한 것으로 판정된 탄은 단 두 발에 불과했다. 어쨌건 훈련은 성공으로 간주되었지만, 거의 운이 좋아서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런 운이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이 실내전 훈련 상황이 여자에게 유리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쳐도 실제로 총 들고 맞닥뜨렸다면 대원들이 살아남기가 불가능하다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순간대응능력과 사격관제능력과 그런 잡다한 몇 가지 우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훈련받은 대원들을 이렇게 유린해버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에드워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기 소총을 챙겨들고 있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붉은 물감자국이 된 채, 여자에게 명중하지 않은 나머지 94발의 시뮤니션에 맞아 붉은색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뒷벽을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척 기괴하다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광경이었고 에드워드는 다시금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켈빈이 다른 대원들을 헤치고 여자 쪽으로 걸어나갔다. 에드워드가 켈빈이 단단히 인상을 굳히고 있는 걸 보았다. 고작 2주 가량 같이 지냈을 뿐이지만……그래도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설핏 머리를 스쳤다. 여자는 켈빈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다소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뭐라고 말하려는 듯 했다. 켈빈은 아랑곳없이 바로 앞까지 걸어나가 여자를 내려다보고 뭐라 작게 중얼거렸다. 에드워드는 켈빈이 괴물이 어쩌고 라고 말하는 부분을 얼핏 들었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제대로 듣진 못했다.
켈빈은 소총을 치켜들고 여자의 이마에 한 발을 쏘았다. 여자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퍼억, 시뮤니션의 비닐 탄두가 터지며 새빨간 물감이 튀어올랐다. 피? 물감은 피라기엔 너무 원색적이었지만 오히려 그 자극적 색상에서 그런 걸 떠올리게 되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한 번 더. 두 발째. 켈빈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고 여자는 그 충격으로 뒤쪽으로 무너져내렸다. 시뮤니션이라 해도 그 충격력만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에드워드도 어느 정도 체험한 바 있지만, 보호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근접거리에서 잘못 맞으면 멍 정도는 깊게 들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그런 걸 지근거리에서 쏘면…….
"왜 그래? 갑자기 왜?"
순전히 충동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뛰쳐나가 켈빈을 제지한 건 에드워드였다. 하지만 켈빈은 말없이 에드워드의 손을 뿌리치곤 한 발을 더 쏘았다. 여자는 물감칠이 된 채로 얼굴을 감싸안고서 바닥에 엎드려 조금씩 떨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뒤늦게 켈빈의 소총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켈빈은 에드워드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아무 미련이 없다는 듯 넘겨주었다. 에드워드는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소총만을 받아들고 아무 말을 못했다. 대체 왜 그런 거야? 그런 에드워드를 구해준 것은 이 광경을 관제실에서 카메라로 보고 있었을 보로닌이었다. 다소 흥분한 보로닌의 무전 메시지가 헤드셋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켈빈, 켈빈 라이트. 무슨 짓인가. 켈빈! 대답해!"
켈빈은 인상을 잔뜩 굳히고 있다가, 마침내 으르렁거리다시피 대답했다.
"확인사살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켈빈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서 조금 목소리의 톤을 낮추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위험한 외계생명체고 소총 한두 발에 무력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한두 발에 무력화되었다 하더라도 위협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2조의 생존자로서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저건 어차피 고통도 못 느끼는 물건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보로닌은 한참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나리엘은 자네 동료야."
"저것의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켈빈이 한껏 톤을 낮추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무전기를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보로닌은 천천히 말했다.
"켈빈 라이트, 나중에 이야기 좀 하지."
"예. 알겠습니다."
켈빈은 잠시 보로닌이 뭐라고 더 말하길 기다렸다. 보로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켈빈은 헬멧을 벗고는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표정은 꽤 무덤덤하게 바뀌어 있었다.
"에드워드, 방금 가져간 내 총 좀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켈빈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지만, 에드워드는 침묵했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켈빈은 잠시 에드워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싱긋 웃고는 돌아서서 복도를 걸어나갔다. 에드워드는 다른 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원들은 혐오감과 두려움이 반쯤 섞인 눈으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총을 돌려 받으며 에드워드가 그랬던 것처럼.
짧은 침묵이 지나고, 2조 대원들은 하나둘 여자에게 등을 돌리고 켈빈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어나갔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씩. 마지막으로 남은 군터는 여자를 한 번 보았다가 에드워드를 짧게 바라보고는 역시 등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는 여자와 에드워드 둘만이 남았다. 에드워드는 짧게 생각에 잠기고,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여자는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에드워드는 아직도 엎드려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손을 뻗어 여자의 등에 가져다댔다. 여자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고, 충격과 슬픔으로 물든 여자의 얼굴은 시뮤니션에 맞은 탓에 엉망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망가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조금 놀랐거나 당황했거나 그런 것뿐일 터였다. 그저 시뻘건 물감이 온 사방에 흩어져 있을 뿐.
여자는 굉장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비틀거리다 몸을 바로 세워 일어서려 했지만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색 시뮤니션 물감이 사방에 흩어진 벽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여자의 소총이 떨어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걸 주워 여자에게 쥐어주었다. 여자는 주저앉은 채로 자기 손에 들어온, 물감투성이인 소총을 내려다보았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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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구닥다리 컴퓨터를 드디어 고쳤습니다. 그냥 램 접촉불량이대요. 고로 하나 써서 올립니다.
글솜씨는……뭐, 여전히 좌절스럽군요. 그래도 써야죠. 이 실력으로 5일 연재가 가능할까…….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성형작약탄이 자물쇠에 손바닥만한 구멍을 뚫고 나자 켈빈이 휘두른 공압식 램(pneumatic door-ram)은 플라스틱 합판으로 만들어진 얄팍한 문을 경첩째 뒤로 날려보내는 위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소총을 사방에 휘두르며 돌입. 에드워드는 포인트맨을 맡은 군터에 이어 방에 두 번째로 들어섰고, 덕분에 두 번째로 죽었다.
문간을 넘어서서 몇 걸음 걸어 들어가기도 전에 무언가가 문 뒤쪽에서 뛰어나오는 걸 설핏 보긴 했다. 훈련의 결과로서 반사적으로 반응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긴 했지만 한참은 늦은 뒤였다. 반응 속도에서 너무 차이가 많이 났다. 채 손쓸 겨를도 없이 꽤 강한, 둔탁한 충격이 가슴에 한 번, 그리고 두 번째 충격으로 투명한 바이저가 샛노랗게 물들었다. 덕분에 앞이 안 보여 비틀거리는데 누군가가 - 아마 덩달아 쓰러지게 된 군터나 켈빈이겠지만 - 에드워드의 어깨를 강하게 밀쳤고, 에드워드는 보기 좋게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찰리 조, 에드워드 진, 군터 슐츠, 2명 사망. 켈빈 라이트, 1명 전투불능.]
알아, 나 귀 안 먹었으니 안 말해줘도 돼. 판정 컴퓨터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헤드셋으로 들으며 에드워드는 가볍게 투덜거리곤 누운 자세 그대로 바이저를 손으로 문질렀다. 7밀리 시뮤니션(Simmunition)의 노란 수성 물감이 바이저에서 신경질적으로 닦여져 나가고, 플라스틱 합판만으로 지어진 실내전투 훈련용 킬하우스의 천장이 올려다 보였다. 에드워드는 몸을 일으켜 바로 앉고 싶었지만 훈련에 방해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말해서 훈련에 혹시 방해가 되지 않도록 2분 가량은 차가운 바닥에 멍청히 누워 시체 흉내를 내고 있어야 했다는 뜻이었다. 천장의 삭막하기 그지없는 회색빛 합판 따위나 보면서.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천장만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로봇이 있었으니까.
어느샌가 여자가 천장을 배경으로 에드워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시야에 불쑥 들어온 여자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려는데 거의 동시에 아직 잡고 있던 자신의 소총이 품에서 빠져나갔다. 그대로 있었더라면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이었지만, 에드워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면서 엉겁결에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는 소총 손잡이를 꽉 붙들었다. 그 결과로서 소총의 총열덮개를 잡아 들어올리던 여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여자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노란 물감이 묻은 바이저를 사이에 두고 에드워드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친다……여자가 몸을 숙이고 있었는지라 에드워드로선 얼굴을 상당히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여자의 눈은 사람과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그 안에 자리잡고 있는 건 광학 센서였고 그저 밋밋한 색상의 커다란 검은색 점에 불과했다. 그런 눈이 달린 얼굴이 무감정과 냉철함 사이의 표정 어딘가에서 이상하게 균형을 잡고 에드워드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에선 짧게나마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기도 할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여자가 자신에게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를테면, '시체'가 자기에게 소총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확인사살을 시도한다거나……하긴 실제 전투 상황도 아닌 훈련일 뿐인데 누가 그러겠느냐만은.
하지만 그 생각 덕에 에드워드는 손잡이를 꽉 쥐고 있던 손을 늦췄고, 여자는 그 틈을 타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빠르게 총을 잡아채 들어올리곤 에드워드의 어깨에 걸려 있던 3점식 총끈까지 간단히 분리해냈다. 에드워드는 정신을 차리고 소총 손잡이를 잡아채려 했지만 한참 늦은 후였다. 여자는 에드워드에게서 수거한 것과 원래 갖고 있던 것까지 소총 두 자루를 들고는 순식간에 방을 나서고 있었다.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서.
여자. 갈색에 가까울 정도의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가 노출된 손이며 얼굴이며, 잘 봐줘야 평범하다고밖에 부를 수 없는 체격에, 어쩐지 입고 있는 커버올 방식의 암청색 전투복 위로 드리워진 검은 전술조끼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가냘파 보이는 이미지였지만 에드워드는 그건 겉모습일 뿐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자는 전투에 관해선 아마 괴물쯤은 될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괴물. 추적하는 입장에서 기습의 이점을 살려 밀고 들어갔는데도 오히려 역으로 아군을 간단히 제압해버렸다. 아군은 24명이고 여자는 혼자였지만 오히려 당하는 건 아군이었다. 무슨 영화 주인공인 것도 아니고……지금쯤은 아마 다음 희생양을 찾고 있겠지. 브라보에 이어 우리 찰리까지 당해버렸으니 다음은 델타 조가 당할 차롄가, 아님 에코나, 아님 알파나……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데……왜 하필 내 총을 가져간 거야?"
2분 뒤 에드워드는 대강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사망'했던 동료들과 함께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동료들은 죄다 신형 소총을 어깨에 걸쳐두고 있는데 자신만 빈손이니 뭔가 허전했다. 켈빈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간단하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공했다.
"너만 한 발도 못 쏴보고 죽었잖아. 그러니 한 발이라도 더 들어가 있던 네 총을 챙긴 거지."
"에이, 설마."
"군터가 처음에 더블 탭(Double-tap)으로 두 번 쏘고 나도 방아쇠는 한 번 당겨봤어. 죄다 빗나갔지만."
"그래도, 아무리 로봇이라도 그런 세세한 것까지 판단한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거잖아."
에드워드의 말에 켈빈은 코웃음을 쳤다.
"무서운 거 맞아."
에드워드로서는 어쩐지 단호한 말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입을 닫고 잠시 그 말에 대해 생각해보려다가 자신이 문득 검은동자만 있던 여자의 눈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재수 없는 생각은 왜 한담. 생각을 다른 데로 돌렸다. 다른 무엇보다 몸의 고통이 먼저 자극으로 다가왔다. 에드워드는 바이저를 닦아내느라 물감투성이가 된 검은색 전술장갑을 벗어서 역시 물감 자국이 남은 조끼 주머니에 대충 구겨넣고는, 왠지 뻐근해오는 목을 주물렀다. 다 신형 소총 탓이었다.
새로 지급된 마섹제 M31 자동소총은 군용이었고 지금껏 써오던 간단한 오픈 볼트 방식의 M4 기관단총과는 많이 달랐다. 총열 아래의 36발들이 나선형 탄창에 들어가는 손가락만한 플레쉐트(flechette) 탄약은 이중 소진탄피 방식이었고, 전자식 격발장치로 점화되었으므로 필요에 따라서 탄피 중 하나만 격발시킬 수도 있었다. 두 개의 탄피를 동시에 격발시키면 총구초속이 초속 5백 미터까지 올라가므로 야전에서 높은 관통력과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 개만 격발시키면 다른 하나를 목표물에 충돌할 때 폭발하도록 설정해 근접전에서 대단한 저지력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는 저출력 장약을 채우고 다른 하나는 물감과 비닐 껍데기를 채운 뒤 탄두를 빼버리면 훈련용 물감탄인 시뮤니션이 되는 것이다……최소한 간밤에 읽었던 관리 교범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하긴 군용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반동조차도 이전의 제식 기관단총과는 뭔가 다를 정도였다. 훈련탄조차도 이렇게 은근슬쩍 아픈걸.
그나마 에드워드에게 다행이었던 건 다쳤던 손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갑을 벗은 왼손은 벌써 맨들맨들한 새살이 돋아 오른 후였다. 꽤 심하게 데였는데도 붕대 풀고 멀쩡해지는데 채 사흘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 죽은 사람은 죽었으니 할 수 없는 거고, 산 사람은 또 살아야지. 살아서 치료받고, 멀쩡해지면 새로운 무기 지급 받고, 죽도록 훈련받아야지.
그래서 에드워드들이 죽도록 훈련받는 킬하우스는, 겉보기엔 조금 부실해 보일지 몰라도 있을 건 다 있었다. 계단, 이중문, 통로 사이의 방, 난간, 개방형 공간……다양한 실내전 상황을 재현하기 위한 공간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줄지어 연결되어 있었고, 천장에는 전자 태그를 이용하는 감응 센서가 줄을 지어 설치되어 아군의 움직임을 정확히 기록하고 반인공지능 시스템이 결과를 판정했다.
에드워드가 있던 순찰대에선 훈련용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화면 하나 비춰놓는 게 전부였는데 기동대는 근접전투 훈련용으로 꽤 근사한 시설을 지어놓은 것이다. 사실 이 킬하우스 자체는 기동대가 쓰는 물건이었긴 했다. 허나 ALERT 기지 내엔 시뮬레이터보다 더 좋은 훈련 시설을 둘 데가 없었고, 시뮬레이터는 어디까지나 시뮬레이터였다. 어쩌겠는가, 기동대 시설을 빌려서 써야지.
대원들은 그대로 복도를 걸어나가서 킬하우스 옆에 세워진 관제실까지 간 뒤 보로닌에게 경례를 붙였다. 보로닌은 경례를 무시하고 한동안 PDA와 모니터 화면 위로 광펜을 끄적거리고만 있었다. 에드워드는 어깨 너머로 화면을 넘겨다보았고 막 델타 조원들이 여자와 조우해 소총 두 자루의 탄막에 얻어맞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잘 싸우네. 그 총 중 하나가 자기 것이라는 게 막연한 죄책감마저 생길 정도로. 그쯤 되어서야 보로닌이 질문을 했다. 여전히 전술 디스플레이를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떼지 않은 상태였다.
"좋아. 디브리핑에서 이야기해야할 주제지만, 어떻게 생각하나? 왜 순식간에 전멸당했지?"
조원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나서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찰리 조장인 군터에게 맡기기로 했고, 군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서서 말했다.
"순발력 문제였습니다. 실내전에선 빠른 판단력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않습니까. 로봇이 더 빨리 판단하고 더 빨리, 정확하게 쏘니까……."
보로닌은 쥐고 있던 광펜을 허공에 대고 저어서 군터의 말을 자른 뒤 꽤 정확하게 짚어서 말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들이 생각을 잘못한 거야. 어차피 이 실내전 상황은 자네들보단 로봇에게 유리하고, 그런 쪽으로 몰고 가면 자네들은 질 수밖에 없어. 게다가 기습을 목적으로 하고 돌입했으니까 오히려 당할 수밖에 없지. 기습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빠르게 대응할 수 없는 적에게 쓰는 거야. 일반적인 대테러 전술이 전투 상황에도 항상 쓰이는 건 아니란 점을 상기하도록. 그렇게 하느니 차라리 문 열고 아무 데나 총부터 갈기는 게 나았을 거야."
"옛, 다음 기회엔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잊지 마. 만약에 귀관들을 쓰러뜨린 게 로봇 따위가 아니라 그에 버금가는 진짜 외계 괴물이었으면 다음 기회 따윈 없어."
"예."
이번엔 조원 세 명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에드워드가 다시 곁눈질로 넘겨다보니 전술 화면에서는 막 델타 조원들이 전멸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보로닌은 그제서야 시선을 들더니 말했다.
"물론 이번엔 다음 기회가 있다. 훈련 끝나고 휴식 후 한 번 더 해볼 계획이니 조원들끼리 전술에 대해서 한 번 토의해봐."
보로닌은 시선을 내리려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서 대원들을 둘러보곤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 물감 좀 닦고."
에드워드는 시뮤니션의 가장 큰 단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뮤니션이 사용하는 수성 물감은 잘 지워지긴 했지만 조끼와 옷 틈새에 스며든 건 아무리 수성이라 해도 그리 간단히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에드워드는 티슈로 좀 문질러 보다가 나중에 세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냥 놔두었다. 어차피 다음 훈련에서는 다른 색깔의 물감을 쓸 예정이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그냥 좀 노란색으로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을 입고 싸우게 되는 것뿐.
헬멧의 바이저는 조금 다른 문제였다. 세 명의 찰리 조원들이 킬하우스 밖에 나란히 앉아서 바이저를 공들여 닦는 동안 사망한 델타 조원들이 킬하우스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죄다 헬멧에 노오란 물감 장식을 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게 딱 얼마 전의 에드워드 조원들하고 똑같은 분위기였다. 하나같이 바이저를 맞은 건 여자 사격실력이 좋은 탓이었다. 헬멧으로 방호되지 않는 부분을 정확히 노려 맞췄다는 의미였으니까……아무튼 이 여자는 괴물 수준이라니까. 에드워드는 델타 조원 중에 혹여 자기처럼 총을 뺏긴 사람이 없나 싶어 잘 살펴보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없었다. 왠지 실망스럽게도.
그리고……예상대로 훈련은 실패로 끝났다. 여자가 알파 조원들의 최후 저지선을 돌파한 뒤 킬하우스 밖으로 성공적으로 빠져 나온 것이다. 훈련 시나리오대로라면 정체불명의 싸움 잘하는 외계인이 정체불명의 목적을 갖고 도시에 침투한 뒤, 신고를 받고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 ALERT 대원들의 절반을 죽이고 도주해 도시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두 번째로 UFO가 나타났던 날 메가폴 기동대원들이 추락한 UFO에서 나온 외계인들에게 당해버렸던 것처럼. 이로 인해 도시의 평화엔 심각한 위협이 주어질 것이며……기타 등등.
하지만 글쎄다. 에드워드는 그 시나리오에 약간의 의문을 가졌다. 비록 UFO에서 나온 외계인들 중 하나만 잡고 다른 하나는 놓쳐버렸긴 했지만, 4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때 도주한 외계인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현재 파악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외계인들은 지구 환경에 제대로 적응 못하고 얼마 못 가 다들 죽어버릴 거라고 했고. 무엇보다 이런 외계 괴물이 등장했다면 굳이 대원들을 투입시켜 위험을 감수하느니 건물째로 폭파해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었다. 건물 주변에는 순찰차량과 호버카가 진을 치고 있다가 튀어나오는 수상쩍은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줄 테고…….
아무튼 이 훈련 시나리오를 짠 건 갑자기 나타난 무슨 자문역인가 하는 사람이었다. 어제 새로 들어온 충원 인원들과 함께 소행성 치안대의 견장을 단 나이든 여자가 하나 왔었는데, 자신을 자문역이라 소개한 뒤 외계인들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모르고 따라서 별별 상황에 다 대비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며 하나의 싸움 잘하는 개체를 다수의 ALERT 대원들이 상대해내야 하는 이 시나리오를 멋대로 지어내 소개하고 보로닌을 꼬셔서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보기 좋게 실패했다.
충원이 있은 덕에 ALERT 대원들의 숫자는 12명에서 24명으로 두 배나 늘어 있었고 3명짜리 8개 조가 편성되어 있었지만, 새로 편성된 지 하루도 안 되는 탓에 팀웍은 어색했고 킬하우스의 전체 면적을 제대로 커버하기엔 뭔가 부족한 감이 있었다. 대원들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여자는 꽤 만만찮은 적수였고 어쨌거나 두 번째 훈련에선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훈련을 하기 앞서서 에드워드는 자신에게도 문제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총을 여자에게서 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훈련 중에 주워간 총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대원들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대원들도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혼자서 24명의 훈련받은 전투요원들 중 절반을 제거하고 도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게 진짜 사람이라고 해도 그닥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었다.
휴식 시간 동안 대원들은 음료수를 조금 마시면서 시설 옆의 공터에 앉아서 쉬고 있었고, 여자는 조금 더 킬하우스에 가까운 곳에 혼자 떨어져서 서 있었다. 대원들 중 몇몇은 가끔 약간의 호기심과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여자 쪽을 잠깐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웃으며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곤 했다. 에드워드도 훔쳐보다시피 여자 쪽을 바라보니 여자는 조금 우울한 듯한 표정으로 대원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을 돌리는 게 눈에 띄었다. 퍽 자연스러워 보이는 동작이었다지만……글쎄다.
사실 그리 어려울 것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그냥 가서 자기 총 달라고 하면 되는 문제였지만, 무엇보다도 기묘한 거부감이 에드워드의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었다. 인간과 조금 다른 존재라는 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잠시 자신의 손에서 힘이 빠진 틈을 정확히 포착해 소총을 낚아채면서도, 여전히 미동 하나 없이, 홍채가 없는 커다란 눈동자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자신을 내려다보던 이미지는 간단히 잊어버릴만한 것은 못 되었다. 불쾌하다거나 이질감을 느꼈다거나 싫었다거나, 겁났다거나, 혹은 그냥 인간이라긴 뭣한 존재에 대한 편견이라거나, 뭐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편히 맞대면하긴 뭔가 꺼림칙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에드워드로서도 슬럼 순찰을 돌다가 로봇 몇 개쯤 본 적이 있었지만 실상 맞대면해본 일은 없었다. 하긴 애당초 로봇 쪽에서 경찰은 피하는 편이었다. 애당초 경찰과 만나서 좋을 것도 없었다. 아니, 아예 될 수 있는 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편이었다고 부르는 게 좋았다. 훈련에서 서로 총을 겨누는 걸 맞대면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면 에드워드로서 제대로 된 맞대면은 오히려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 자문역이라는 소행성대 출신 여자와 함께 한창 작전 검토 중인 보로닌을 통한다면야 여자를 대면하지 않고도 총을 돌려 받을 수 있었겠지만, 바쁜 상관에게 굳이 그런 걸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동료들에게 부탁하기도 역시 뭣했다. 로봇 따위 겁난다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있으니까. 창고엔 예비용 소총이 있을 테지만 그걸 구해서 쓰려면 역시 상관이나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맞닥뜨려야만 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동료들에겐 그냥 좀 볼일이 있다고 둘러대곤 일어섰다. 공포도 아니고 불안감도 아닌 조금 기묘한 긴장과 기대의 중간쯤 되는 감정을 느끼면서 여자에 접근했다. 여자는 별 생각 없이 판자로 지어진 킬하우스나 바라보는 듯 했지만 거의 10미터 남짓 다가갔을 때부터 기척을 느낀 듯 에드워드를 돌아보고 있었다. 청음 센서 성능도 좋군. 에드워드는 시선을 피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꽤 가까이, 하지만 결코 너무 가까이까지 다가가지 않은 뒤, 꽤 뻣뻣한 말투로 최소한도의 단어만 써서 말했다.
"돌려줘요."
내가 초등학생이냐, 이런 식으로 말하게. 에드워드는 짧게 자신의 언어 구사 능력을 후회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긴장하고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어쩌나. 여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소총 총구를 에드워드의 배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문자 그대로 '총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 특유의 새까만 눈을 에드워드의 얼굴 바로 앞까지 가져다댄 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똑바로 노려보면서 총을 쥐어주지도 않았다. 호버카 공장의 공업용 로봇처럼 상박을 90도 회전시킨 뒤 팔꿈치 전체를 180도 돌려 총을 건네주는 기계적 움직임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이런 것들이야 그 순간 에드워드의 머릿속을 스쳐갔던 온갖 잡생각들의 일부였을 뿐이고……실제론, 에드워드의 돌려달란 말을 듣고서 여자는 천천히 웃었다. 입꼬리가 가볍게 올라가도록 살포시, 정밀한 전자공학과 기계공학 및 생명공학의 합작물이란 걸 에드워드로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나 부드럽게, 퍽이나 자연스럽게, 뭔가 부끄럽기라도 한 듯이, 진짜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아, 누군지를 잊어버려서……미안해요."
에드워드로서는 그랬기에 더 소름이 끼쳤다. 인간적인 감정이 뭔가 결여되어 있으리라 믿었던 존재에게서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았으니까. 아까 훈련 때 받았던 인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으니까. 이질감에 이은 또다른 이질감. 잊어버렸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물론 그렇다고 에드워드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건 아니었다. 그런 행동과는 뭔가 다른 감정이었으니까.
여자가 정말 기계적이고 무감정적으로 행동했더라면 에드워드는 별 감흥을 받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허나 오히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기괴한 물건이라도 보는 듯 눈을 내리깔고는, 그저 자기 총을 낚아챘다. - 개머리판에 이름을 써놓은 건 참 다행스런 행동이었다. 만약 여자의 총을 낚아챘다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졌을 테니까. - 여자는 뭐라 조금 더 말하려다가 에드워드의 반응에 실망한 것처럼 표정을 굳히곤 에드워드를 잠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여전히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건만……에드워드는 몸을 돌리고 대원들에게 돌아왔다.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어느샌가 다른 대원들도 에드워드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다른 대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돌아와서는 켈빈의 옆자리에 앉았다. 켈빈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척 하며 그냥 음료수 통만을 건넸고 에드워드는 입술만 살짝 적셨다. 여자에게서 느꼈던 이질감은 예의 뭔지 모를 초조함을 제공했다. 잊어버렸다고? 잊어버려서 미안했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게 가끔 더 무서울 때가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저런 여자를……저런 걸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아니 무엇보다도, 왜 난 저걸 여자라고 지칭하고 있지? 에드워드로서는 머리가 복잡해졌고,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기에 먼저 뭐라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별로 내색하려 들진 않았지만 입을 열자 말끝이 살짝 떨리는 게 자기로서도 느껴졌다.
"저런……음……저런 로봇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겠어. 요즘은 생산도 못하잖아."
켈빈은 그 말을 듣더니 히죽 웃었다……에드워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냉소?
"슬럼에선 아직도 불법으로 아주 조금씩 제조한다던데. 여전히 세상에 죽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범죄에 써먹기도 좋고. 원칙적으론 그런 거 못하게 되어있다지만 원칙은 원칙일 뿐이잖아?"
"그럴 수도 있겠지."
에드워드의 대답은 조금 불편했다. 켈빈의 말투는 묘하게 공격적이었으므로.
"순찰대 적에 주워들은 이야긴데 인신매매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전에 강력계 쪽에서 이야기 들어봤는데 갱단이 슬럼 주민들 납치해서 만든다는 소문도 있더라고. 비싼 가격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대. 부유층 일부가 페티시스트 장난감으로 쓴다나. 그쪽으로 팔린 숫자도 꽤 된다고 하고. 슬럼에서조차도 비슷한 수요가 있고."
에드워드는 다시, 조금은 조심스럽게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아까의 기억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터라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짧게 고민했지만 어쨌건 입을 열자 말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그러니까……뭐랄까, 처음에 보기엔 어색했는데 지금은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여. 진짜 사람 같달까……."
"예뻐 보이라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당연히 예뻐야지. 아님 불량품인 거고."
켈빈은 간단히 대답해서 에드워드를 맥빠지게 했다.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에드워드가 침묵하는 사이 켈빈은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래봤자……그래봤자지."
짧은 휴식 이후 두 번째 훈련이 있었다. 여전히 시나리오는 같았고, 여자는 보로닌과 간단한 토론을 하는 수준에서 그쳤지만 대원들은 보로닌 없이 작전을 다시 짜야 했다. - 보로닌을 제외한 것도 자문역이라는 사람의 아이디어였다. 그것도 두 번째 UFO 출현 때 메가폴 통신 네트워크가 다운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지휘관 없이도 한 번쯤 해봐야 하네 마네 하면서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 대원들은 조장을 중심으로 약간의 토론을 거친 끝에 편성을 3명 1조가 아닌 6명 1조로 바꾸고 보다 출구 위주의 동선 중심으로 작전 계획을 바꾸었다. 3명 1조는 기동대에서 흔히 사용하는 편제였지만 좁은 실내에서의 기동성과 화력을 선택하는 타협안인지라 분명 공세적인 의미였다. 한 번에 이동하는 대원수를 늘리고 보다 방어적으로 움직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훈련 시작에 앞서 구호에 가까운 간단한 응원도 오갔다. 저런 것 따위에 당할 거냐. 당할 게 없어서 저런 로봇 따위에게 당할 거냐. 외계인들에게 뜨거운 맛 보여주기 위해서 훈련 좀 제대로 해보자. 잘해보자. 그리고 에드워드는 시뮤니션에 맞은 탓에 아직도 뻐근한 목을 좀 꺾어보고는 군터의 뒤를 따라 킬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한 건, 6명 1조는 분명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는 거였다. 정해진 편제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기회는 있었고 필요하다면 대원들은 언제든지 갈라져서 별도로 움직일 수는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알파, 브라보, 찰리……의 3명 1조 시스템은 그대로 두고 단지 두 조가 짝을 지어서 가까이서 움직인다는 개념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방어적으로 각 조간의 거리를 짧게 유지하기로 한 것이라면 확실히 더 좋은 선택이었다.
시작 이후 몇 분간은 수색 패턴으로 전개되었지만 별다른 교전 없이 조용했다. 처음으로 당한 건 호텔-인디아를 합쳐서 만든 4조였다. 4조는 네 개의 커다란 방 사이에 있는 십자로를 통과하기 앞서서 규정대로 좌우를 살피긴 했다. 두 명의 조장이 조심스럽게 십자로 좌우 통로에 무언가 없는지 확인했고,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스네이크 대형으로 줄을 지어 십자로를 빠르게 통과하려 들었다.
그리고 그때 여자가 그 십자로 좌측의 또다른 십자로에서 튀어나왔다. 청각 면에서 아무 보조장비 없는 인간보다 우월했으니 기습이 가능했던 건 그쪽이었기에. 여자는 대원들이 쓰는 것과 동일한 M31 소총을 견착하고 무표정하게 걸어나와, 십자로를 통과 중이던 아군의 정가운데를 정확히 공격했다. 네 발의 사격은 지독하게 정확했고, 불과 2초도 지나지 않아 대열 중앙에 있던 두 명의 대원이 전투불능 판정을 받게 되었다. 중간을 절단당한 4조는 당황하면서도 가까운 통로로 뛰어들며 무전을 통해 다른 아군들을 불러들였다.
4조의 대응은 비교적 정확한 것이었다. 대원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대비를 한 상태였다. 최초의 기습 이후 상황은 짧은 대치국면으로 이어졌고, 4조에 남은 네 명의 대원 중 두 명이 응사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다른 두 명은 빠르게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십자 사격의 기회를 노렸다. 이에 추가해서 찰리-델타의 2조가 2차 저지선을 위해 4조의 뒤쪽으로 돌아가는 동안 4조에 가장 가까이 있던 에코-폭스트롯의 3조가 여자가 있던 교차로 방향으로 이동했다. 에코와 폭스트롯으로 각각 세 명씩 나뉘어 교차로 왼쪽과 아래쪽의 두 방향에서 밀고 들어간 것이다. 알파-브라보의 1조는 예비로서 대기 중이었다. 이로서 십자로의 세 방향에서 대원들이 밀고 들어가 여자를 포위하는 형상이 되었다. 전술 PDA와 지도는 빠르게 작전을 구현하기에 꽤 유용한 도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전거리가 먼 야전 상황이었다면 이런 포위는 분명 유리했겠지만, 공간적으로 좁고 전투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실내전에선 약간의 타이밍만 맞지 않아도 포위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포위를 하려 드는 쪽보다 포위당하는 쪽이 전투 능력이 우월했다면 더욱 그랬다. 여자는 한 곳에 머물려 하지 않았고, 10초간의 추가 사격으로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끌려 하는 4조의 남은 대원 두 명을 다 제거하고는 그쪽으로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그때쯤에는 4조를 공격할 때 여자가 있었던 교차로의 세 방향에서 밀고 들어온 대원들이 여자의 뒤에서 총질을 해대고 있었지만 명중탄은 없었고, 여자는 옆길로 빠져들어 대원들의 사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미리 2차 저지를 위해 4조 뒤쪽으로 돌아갔던 2조가 버티고 있었다. 찰리-델타의 2조는 거의 거리를 두지 않고 나뉘어 3명씩 길을 막고 있었고, 4조가 여자를 놓쳤다고 무전기에 대고 외치는 순간 교차로 쪽을 향해 같이 공세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결국 여자는 거의 2조와 코앞에서 맞닥뜨리게 되었다. 여자가 모퉁이를 돌아 튀어나오는 순간 2조원들은 불과 10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3명씩 두 줄로 좁은 복도를 이동하고 있었으며, 예의 우수한 순발력으로 인해 사격을 개시한 건 여자가 더 빨랐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좁은 복도에서 여섯 명의 대원을 동시에 맞춘다는 건 불가능했다. 대열 앞의 세 명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물감탄에 범벅이 되는 동안 뒤에 있던 대원 세 명은 앞에 있던 - 이미 '사망'한 - 아군의 틈새로 소총 총구를 쑤셔넣고 무작정 쏘았다.
근접전이라 할지라도 목표물에 대한 조준사격은 중요했으며 훈련받은 대원들에겐 신속하고 확실한 제압을 위해 단발 사격이 애용되긴 했다. 게다가 한창 이동하던 중인지라 대원들의 급작사격 명중률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지만 일 대 다수인 이 상황은 약간 달랐다. 대원들은 소총의 방아쇠를 끝까지 당겼고, 방아쇠 압력을 감지해 고속 자동 모드로 바뀐 3정의 소총은 2초만에 총 108발을 쏘아 탄창을 완전히 비웠다. 그 중 14발이 제대로 여자에게 명중했다.
불행히도 에드워드는 앞쪽에 서 있던 세 명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날 들어 두 번째로 바닥에 누워 욱신거리는 가슴팍을 느끼며 판정 컴퓨터의 무미건조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이제는 첫 번째 훈련과 구별하기 위해서 노란색이 아닌 빨간색 물감을 썼긴 했지만, 시뮤니션에 맞은 가슴에 저릿한 통증과 함께 기시감을 느끼는 건 결코 단순한 착각만은 아닐 터였다. 다만 첫 번째와 다른 건 그나마 2조원 중 절반이 죽고 사살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바이저 밑에서 어찌되었건 해냈긴 해냈다고 살짝 쓴웃음을 웃다가, 문득 컴퓨터의 말을 듣고는 잠시 경직했다.
"……9분 34초만에 표적 사살로 인한 작전 성공. 찰리 조의 에드워드 진, 군터 슐츠, 2명 사망. 델타 조의 칼릴 지브란, 유하, 콜린 헤스켈, 3명 사망. 에코 조의……."
간단히 말해서 2조에서는 켈빈 빼고 다 죽었다는 뜻이었다. 분명히 자기를 포함해서 앞쪽에 서 있던 세 명만 총에 맞았는데……그럴 리가 없잖은가. 당혹한 에드워드는 바이저를 대충 닦아내고는 일어섰다. 의아한 눈빛을 교환하는 조원들을 둘러보며 어떻게 된 건지 항의하려고 입을 여는데 제일 뒤쪽에 서 있던 켈빈이 소총 탄창을 만지작거리며 냉정하게 말했다.
"실탄이었다면 관통했을 거야."
그리고 에드워드는 자기가 멍청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중에 있었던 디브리핑에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판정 컴퓨터는 제일 뒤에 서있던 켈빈을 제외하고 2조가 전멸했다고 판정했다. 시뮤니션이었기에 앞쪽 대원들만 맞았지 실탄을 썼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격발 즉시 약실 내에서 두 개의 탄피를 동시에 터뜨리는 관통력 증대 모드로 설정된 플레쉐트가 앞에 있던 대원을 관통한 뒤 그 뒤의 대원들도 살상했으리란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조원 6명 모두가 다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 때문이었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여자는 자세를 조금 낮추고 있었고, 대원들의 머리 부분을 쏘기 위해서 총구를 위로 조금 치켜들었다. 만약 총구가 수평 방향이었다면, 초속 5백 미터의 플레쉐트는 앞쪽에 있던 두 명의 대원을 일렬로 관통한 후 세 번째 대원에 박혀서 멈추고 2조는 전멸한 것으로 판정이 났을 것이다. 확실히, 6명 1조로 뭉쳐서 움직인 건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자가 자세를 낮추었던 탓에, 플레쉐트는 두 번째 대원 - 에드워드 - 를 관통한 후 켈빈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천장에 명중한 것으로 탄도 계산 결과가 나왔다. 이미 죽은 대원이 반격할 수 있을 리는 없으니 뒤쪽에 있던 세 명의 대원들 중에는 켈빈만 살아서 총을 쏘았던 것으로 가정되었고, 켈빈이 쏜 36발 중 명중한 것으로 판정된 탄은 단 두 발에 불과했다. 어쨌건 훈련은 성공으로 간주되었지만, 거의 운이 좋아서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고 실제로는 이런 운이 따라주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이 실내전 훈련 상황이 여자에게 유리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쳐도 실제로 총 들고 맞닥뜨렸다면 대원들이 살아남기가 불가능하다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순간대응능력과 사격관제능력과 그런 잡다한 몇 가지 우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훈련받은 대원들을 이렇게 유린해버린다는 게 가당키나 한 건가? 에드워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기 소총을 챙겨들고 있었다.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붉은 물감자국이 된 채, 여자에게 명중하지 않은 나머지 94발의 시뮤니션에 맞아 붉은색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뒷벽을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무척 기괴하다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광경이었고 에드워드는 다시금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켈빈이 다른 대원들을 헤치고 여자 쪽으로 걸어나갔다. 에드워드가 켈빈이 단단히 인상을 굳히고 있는 걸 보았다. 고작 2주 가량 같이 지냈을 뿐이지만……그래도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설핏 머리를 스쳤다. 여자는 켈빈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다소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뭐라고 말하려는 듯 했다. 켈빈은 아랑곳없이 바로 앞까지 걸어나가 여자를 내려다보고 뭐라 작게 중얼거렸다. 에드워드는 켈빈이 괴물이 어쩌고 라고 말하는 부분을 얼핏 들었지만 그 다음에 일어난 일 때문에 제대로 듣진 못했다.
켈빈은 소총을 치켜들고 여자의 이마에 한 발을 쏘았다. 여자는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다.
퍼억, 시뮤니션의 비닐 탄두가 터지며 새빨간 물감이 튀어올랐다. 피? 물감은 피라기엔 너무 원색적이었지만 오히려 그 자극적 색상에서 그런 걸 떠올리게 되는 걸지도 몰랐다. 그리고 한 번 더. 두 발째. 켈빈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고 여자는 그 충격으로 뒤쪽으로 무너져내렸다. 시뮤니션이라 해도 그 충격력만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에드워드도 어느 정도 체험한 바 있지만, 보호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근접거리에서 잘못 맞으면 멍 정도는 깊게 들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물건이었다. 그런 걸 지근거리에서 쏘면…….
"왜 그래? 갑자기 왜?"
순전히 충동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뛰쳐나가 켈빈을 제지한 건 에드워드였다. 하지만 켈빈은 말없이 에드워드의 손을 뿌리치곤 한 발을 더 쏘았다. 여자는 물감칠이 된 채로 얼굴을 감싸안고서 바닥에 엎드려 조금씩 떨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뒤늦게 켈빈의 소총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켈빈은 에드워드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아무 미련이 없다는 듯 넘겨주었다. 에드워드는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소총만을 받아들고 아무 말을 못했다. 대체 왜 그런 거야? 그런 에드워드를 구해준 것은 이 광경을 관제실에서 카메라로 보고 있었을 보로닌이었다. 다소 흥분한 보로닌의 무전 메시지가 헤드셋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켈빈, 켈빈 라이트. 무슨 짓인가. 켈빈! 대답해!"
켈빈은 인상을 잔뜩 굳히고 있다가, 마침내 으르렁거리다시피 대답했다.
"확인사살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켈빈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서 조금 목소리의 톤을 낮추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위험한 외계생명체고 소총 한두 발에 무력화되지는 않을 겁니다. 한두 발에 무력화되었다 하더라도 위협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2조의 생존자로서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저건 어차피 고통도 못 느끼는 물건입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보로닌은 한참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나리엘은 자네 동료야."
"저것의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켈빈이 한껏 톤을 낮추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게 무전기를 통해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보로닌은 천천히 말했다.
"켈빈 라이트, 나중에 이야기 좀 하지."
"예. 알겠습니다."
켈빈은 잠시 보로닌이 뭐라고 더 말하길 기다렸다. 보로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켈빈은 헬멧을 벗고는 에드워드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표정은 꽤 무덤덤하게 바뀌어 있었다.
"에드워드, 방금 가져간 내 총 좀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켈빈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했지만, 에드워드는 침묵했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켈빈은 잠시 에드워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싱긋 웃고는 돌아서서 복도를 걸어나갔다. 에드워드는 다른 대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원들은 혐오감과 두려움이 반쯤 섞인 눈으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총을 돌려 받으며 에드워드가 그랬던 것처럼.
짧은 침묵이 지나고, 2조 대원들은 하나둘 여자에게 등을 돌리고 켈빈의 뒤를 따라 복도를 걸어나갔다.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씩. 마지막으로 남은 군터는 여자를 한 번 보았다가 에드워드를 짧게 바라보고는 역시 등을 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복도에는 여자와 에드워드 둘만이 남았다. 에드워드는 짧게 생각에 잠기고,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여자는 가만히 있었다.
잠시 뒤 에드워드는 아직도 엎드려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손을 뻗어 여자의 등에 가져다댔다. 여자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고, 충격과 슬픔으로 물든 여자의 얼굴은 시뮤니션에 맞은 탓에 엉망이었지만 그렇다고 어디 망가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조금 놀랐거나 당황했거나 그런 것뿐일 터였다. 그저 시뻘건 물감이 온 사방에 흩어져 있을 뿐.
여자는 굉장히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에드워드를 올려다보았다. 조금 비틀거리다 몸을 바로 세워 일어서려 했지만 에드워드는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색 시뮤니션 물감이 사방에 흩어진 벽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여자의 소총이 떨어져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걸 주워 여자에게 쥐어주었다. 여자는 주저앉은 채로 자기 손에 들어온, 물감투성이인 소총을 내려다보았다.
에드워드는 천천히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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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구닥다리 컴퓨터를 드디어 고쳤습니다. 그냥 램 접촉불량이대요. 고로 하나 써서 올립니다.
글솜씨는……뭐, 여전히 좌절스럽군요. 그래도 써야죠. 이 실력으로 5일 연재가 가능할까…….
Our last, best hope for peace.
연재 속도좀 팍팍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