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요즘도 여기 오시는 분 없겠죠.
프라임은 분명히 바싹 긴장해 있었다. 뭔가 분명히 달랐다. 늘상 있을 법한 사소한 사건들만으로도 도시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경제 체계는 들썩거렸고, 사람들은 한 번쯤 무언가 수상한 소리가 들리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PDA를 꺼내들어 뉴스 속보를 검색했다. 그러다간 늘상 있었던 갱들과의 총격전이니 작업 공사 운운하는 일임을 깨닫곤 종종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곤 했었지만…….
그 동안 ALERT라는 멋대가리 없는 이름을 단 애들이 TV에 나와서 정수장을 배경으로 하는 멋진 쇼도 보여주고, 무슨 물리학자니 생물학 전문가이니 하는 안경쟁이들이 역시 스튜디오에 서서 알아들을 수 없는 기술적 용어들을 벌레와 UFO 사진 위에 잔뜩 늘어놓고서는 연구는 해봐야겠지만 별 문제될 일이 아닐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UFO가 등장한지 일주일하고도 이틀, 도시는 천천히 정상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적어도 TV에선 그렇게 말했다.
오전 교대조 차례가 되어 출근한 레온 허드슨 경위는 막 피플 튜브에서 나와서 경찰서 건물로 들어서다가 내부가 난장판이 된 걸 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뭔가 긴급 사태라도 터진 듯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순찰차량들이 급발진으로 차고에서 튀어나가고 있었다. 허드슨 경위는 잠시 당혹해하다가 알고 있던 오퍼레이터 한 명이 마침 지나가기에 불러세워 물었다.
“뭔 일이야, 외계인이라도 또 쳐들어왔어?"
오퍼레이터는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허드슨 경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시간이 뭘 해결해주긴 해결해줘. 다 결국 헛소리일 수밖에 없는걸. 그래서 레온 허드슨 경위는 CCTV실에 미친 듯이 뛰어올라가 전임 담당자와 교대하고 눈앞의 CCTV 화면을 노려보며 앉아 있게 되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번째로 커피잔을 비우곤 일곱 번 이상 했을 게 틀림없는 질문을 오퍼레이터에게 다시 했다.
“상태는?”
“그대롭니다……걱정 마세요. 변화가 생기면 컴퓨터가 경보를 울릴 테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글쎄…….”
차원의 문. 딱히 멋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UFO가 등장했던 그날, 그리고 지금도 눈앞에서 돌고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묘사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었을 것이었다. 형상 인식 컴퓨터가 연결된 CCTV가 시내를 늘상 감시하고 있었다곤 했었지만, 어쨌건 그것을 처음 발견했던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길 가던 평범한 어느 누군가였다. 다만 누군지 정확히 알 도리는 없었다. 그 뒤로 몰려든 같은 내용의 수천 통의 신고 전화와 전자 우편과 개인 사설 통신과 심지언 외계인들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직접 찾아온 사람들까지 몰려 한때 업무 마비가 빚어질 정도였으니 그게 누구였는지 아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서야 컴퓨터의 우선순위는 하늘을 돌고 있는 구와 정사면체가 혼합된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 장면을 기록하고, 경보를 발령했다.
어쩌란 말이냐고. 이곳의 반인공지능 시스템은 애당초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위한 차원의 문 어쩌고 하는 걸 추적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그냥 교통사고나 총격전 같은 거 정도 잡고 차량 번호판이나 외우면 족할 물건인데……이런 건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때 당번일 건 또 뭐람. 경위는 빈 종이잔을 구기고 투덜거렸다.
어쨌건 CCTV 화면이 늘어선 멀티비전 한쪽 구석에 작은 막대그래프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전화 라인 사용율을 표시하는 그래프였다. 눈금이 꽤 높이까지 올라가 있는 걸로 미뤄 봐선 차원의 문이 나타난 뒤로 세 시간이 지난 아직도 수많은 허위 신고가 접수되고 있었고, 옆의 지령실에선 꽤나 속을 썩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번인 다른 오퍼레이터 한 명이 더 와서 다른 자리에 앉아 화재 신고니 교통사고니 총격전이니 하는 잡다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단지 허드슨 경위와 당번인 오퍼레이터 한 명은 그쪽에 대부분의 업무를 맡겨버리곤 지금 이 차원의 문이니 뭐니 하는 걸 전담해서 몇 시간째 감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업무량은 줄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바빴다.
경찰청 위쪽에서도 여전히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공식적 지시는 뭐가 나타나건, 무엇을 하려 들건, 일단 나타나서 눈꼽만큼이라도 수상한 일을 하려 들면 모든 화력을 대응해 총대응하라는 것이었다. 무슨 민간 단체인가 종교 단체인가에선 일단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해보자고 하는 주장을 했던 것 같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누가 뭐래도, CCTV 화면에도 차원의 문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차량들이 보일 정도로 미사일을 장착한 호버카와 장갑차량과 경찰 병력들이 주변에 몰려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는 게 그 좋은 근거였다.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최소한 전처럼 무방비하게 당할 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 무방비하게 당할 리는 없었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라면 또 모를까 인간이란 결코 멍청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외계인들보다는 인간이 더 큰 문제가 될지도 몰랐다. 46번 화면에서는 막 상점 유리창을 깨기 시작한 일군의 젊은이들이 경찰에 제지되는 모습이 비춰졌다가, 비번인 오퍼레이터가 짧게 지령을 내리곤 통신을 끊었다. 고작 하늘에 뭔가 나타났다고 대규모 폭동 따위가 일어날 성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입 안을 감도는 텁텁한 느낌에, 살짝 속이 쓰려오자 경위는 손 안에서 구겨진 종이잔을 다시 펼치곤 광고 문구를 읽었다. 무카페인 커피라면서? 좋아, 위궤양 따위 얼마든지 걸리라지. 허드슨 경위는 투덜거리곤 천천히 벽가에 놓여진 커피 테이블로 걸어가 여덟 잔째의 커피를 종이잔에 따랐다. 포트 주둥이에 남은 커피 방울이 잔을 타고 흘러내려 플라스틱 책상 위에 작은 갈색 얼룩을 남겼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시금 멀티비전에 떠오른 60여 개의 화면을 천천히 훑어나갈 뿐.
허드슨 경위가 막 여덟 번째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대다가, 차원의 문 너머로는 회색빛 흐릿한 뭔가가 보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화면이 표시하고 있던 하늘이 텅 비었다.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질렀다. 즉시 경위는 다음 순간에 벌어질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지만 화면에는 섬광도 UFO도 없었다. 마치 갈 곳을 잃은 개미떼마냥 요동치기 시작한 경찰 병력들이 있었을 뿐, UFO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위는 빠르게 외쳤다.
“없어진 건가? 그냥 포기한 걸까? 끝난 거야?”
순식간에 평정을 찾은 오퍼레이터가 건성으로 뭐라 대답하며 키보드를 마구 두드렸다. 경찰용 통신 네트워크는 알아먹을 수조차도 없는 대혼란 상황이었기에 무전기는 꺼버렸다. 믿을 건 자신의 눈 뿐. 검색 모드에 들어간 멀티비전은 5초 단위로 60개씩의 카메라 화면을 바꾸며 정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트들이 멀티비전 위를 채우며 이지러졌다가 합쳐졌다. 허드슨 경위는 눈을 어지럽히는 화면들을 정신없이 읽어 내렸다. 컴퓨터가 분석 중임을 알리는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있었지만 애당초 믿을 물건이 못 되었다. 이윽고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는데 허드슨 경위는 수화기를 들어올리곤 ‘나중에!’라고 외친 다음 다짜고짜 끊어버렸다. 아마 대체 UFO가 어디에 어쩌고 하는 첫 문절을 듣자마자였을 것이다.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사라진 것…….”
30초쯤 지나고 나서 오퍼레이터가 갑자기 말했다. 화면 너머로는 여전히 도시 전경만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고, 컴퓨터도 딱히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성 싶긴 했다. 그에 아랑곳없이 경위가 미친 듯이 화면을 훑고 있는데 갑자기 오퍼레이터가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겨, 경위님, 저거.”
분명 CCTV 화면에 별다른 것 따위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의 손 끝에선 멀티비전 구석의 작은 윈도우에서 막대그래프가 흔들리고 있었다. 신고용 라인 사용율을 의미하는 막대는 조금씩 움찔거리다 어느 순간 눈금 끝까지 올라가 100%에 도달했다. 빨간색 글씨가 사용량 폭주로 인한 라인 불통 상태임을 알렸다. 꼭 여섯 시간 전, 차원의 문이 처음 도시 상공에 나타났던 때 그랬던 것처럼. 이게 의미하는 건…….
허드슨 경위는 나지막이 말했다.
“왔군.”
2084년 3월 18일 토요일, 메가 프라임의 날씨는 그럭저럭 화창한 오전 열한 시 이십오 분. 미젤 경사가 그때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는 발사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었다.
하긴 굳이 누르지 않았더라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건 애당초 상황부터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차원의 문의 도시 반대편에 있는 공업 구역에서 그냥 단순한 초계 임무를 돌고 있었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의 호버카에도 비상시를 대비해 두 발의 화상추적식 공대공 미사일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무게가 늘어난 기체가 다소 둔하게 기동하는 걸 느끼면서, 그냥 자동조종으로 맞춰놓고 한적하기 그지없는 공장 주변이나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 무전망에 막 차원의 문이 사라졌느니 하는 말이 마구 흘러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일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곰곰이 무전 내용을 들으며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UFO가 떡하니 튀어나왔다.
뭐가 빛이 번쩍 했다던가 UFO 앞에 ‘죽어라 미젤!’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엉겁결에 조종간을 비틀었고, 호버카는 즉시 자동조종이 해제되면서 땅을 향해 돌진했다.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에야 겨우 기체 균형을 회복했는데 그러고 나자 현 고도가 딱 건물 사이에 호버카를 숨길 수 있을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냥 고도를 낮췄을 뿐인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미젤 경사는 지면에 닿을 듯한 고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건물 너머로 반쯤 보이는 UFO를 올려다보고 미친 듯이 헤드셋에 대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HQ! HQ! UFO다! UFO가 나타났다! 바로 앞에 있다! 아……여기는 H86이다! 현재 위치는……바로 UFO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아…….”
그리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 UFO가 자신을 눈치 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태껏 헤드셋 스위치를 송신이 아니라 수신 모드에 맞춰놓고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경찰 무전망을 듣느라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는데 미처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허공에 대고 그렇게 떠들어댄 걸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나니 좀 생각해볼 여유가 남았다.
생각해 보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기회는 모처럼 잡기 힘든 거 아닐까 싶었다. UFO는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뭔가를 찾는 듯 굴뚝과 나지막한 건물들로 가득찬 공업지구 상공을 느릿느릿하게 비행 중이었는데 건물 두 개를 사이에 두고 호버링 중인 자기의 존재는 모르는 성 싶었다. 무장도 하고 있었고, 선제 공격을 할 기회도 있었으며 지원 올 경찰 병력은 죄다 도시 반대편에 있을 테니 오는 데만도 꽤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미젤 경사의 평상시 지론은 결정을 내리는 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가끔씩 영웅이 되어 보는 것도 좋겠지.”
미젤 경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기관포 안전장치를 풀고 조종간에 붙은 다이얼을 돌려 발사속도를 최고치인 분당 3200발까지 올렸다. 그리고 기체를 몇 미터쯤 수직상승시키며 기수를 쳐들어 UFO의 아랫부분을 조준점에 확실히 잡아넣었다. UFO 아랫부분의 정가운데를 조준하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버카에 실려 있던 200발의 탄약을 모두 소모하는 데도 별로 오래 걸리진 않았다. 기관포탄 중 몇 발은 예광탄의 금빛 빛줄기를 그리며 UFO의 위를 살짝 넘어 날아올라갔다가 2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수증기를 뿜고 있던 공장 굴뚝에 구멍을 냈지만, 대부분은 정확히 명중했고 철갑소이탄의 화염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자잘한 파편들이 떨어져내리는 광경이 뚜렷이 보였다.
물론 그 정도 충격으로 격추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다음 순간 UFO는 진로를 바꾸어 달아나려는 듯 반대 방향으로 선회를 시작했다. 미젤 경사는 스로틀을 한껏 올려 호버카를 급상승시키면서 두 발의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했다. 거리는 불과 오십여 미터도 되지 않았기에 빗나갈 이유도 없었다. UFO가 한 번, 두 번 들썩하더니 가장자리에서 꽤 큰 조각이 떨어져내렸다. 깨져나간 새파란 색깔의 파편이 슬레이트로 지은 공장 건물들 위로 쏟아져 내리고, UFO는 균형을 잃고 돌면서 지면에 보기 좋게 처박혔다.
미젤 경사는 고도를 좀더 올려서 추락한 UFO를 제대로 확인했다. 추락한 곳은 무슨 집하장 같은 곳인 듯 갈색 상자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작업하고 있던 인부 몇 명이 작동 중인 로봇을 내버려두고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한편으론 철갑소이탄에 구멍이 숭숭 뚫린 UFO 안에서 뭐가 타는지는 몰라도 새카만 연기가 조금씩 흘러나왔고, 깨어진 시멘트 위로는 특유의 혈관 비슷한 것이 그려진 징그러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워낙 보기 흉해서 생각 같아서는 UFO가 가루가 되도록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탄약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징그러운 외계인 놈들 꼴 좋구나, 네놈들도 복수의 맛 좀 봐야지 하고 호버카의 좁은 콕핏이 떠나가도록 외치고선 헤드셋 스위치를 송신으로 바꾸었다. 자랑스럽게 단독 격추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는 걸 본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발사 버튼을 눌렀던 것을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후회했다.
또 다른 UFO 한 대가 집하장 건물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고도를 올린 탓에 아주 보기 좋은 UFO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와중에도, 미젤 경사는 반사적으로 쓰로틀 레버에 급히 손을 뻗었지만 UFO가 더 빨랐다. 고온의 자줏빛 광선은 순식간에 호버카의 중앙 부분을 녹이고 일레륨 연료 탱크를 인화시켰다. 호버카의 비상 유닛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데이터 과부하로 인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긴급 코드의 일부분을 본부에 전송했다.
요란한 화염을 남기며 하늘에서 흩어진 호버카를 보며 집하장에서 뛰쳐나가던 인부들은 더욱 더 열심히 뛰었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인부들 중 하나는 PDA를 꺼내들 생각을 했지만 막상 전원이 켜지자 PDA는 접속 에러 메시지만을 띄워 올렸다. 당황해서 계속 재시도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경찰 네트워크는 다른 세 대의 UFO에 대한 신고 내용만으로도 이미 포화 상태였던 것이다.
거의 같은 시각. 에드워드는 동료들과 함께 ALERT 기지 안에 주차된 장갑차 안에서 무전기의 송화기를 붙들고 있는 보로닌을 열심히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장비는 죄다 챙긴 상태였고 그의 지시만 떨어지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고 - 물론 훈련을 제외하면 두 번째긴 하지만 - 어쨌거나 그럭저럭 익숙해진 일이긴 했다. 보로닌은 한참 무언가를 듣더니 장갑차의 앞쪽 해치에 대고 출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곤 조용히 대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한 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총 네 기의 UFO가 확인되었다고 하고.”
조용히 박수가 터져 나오려다가 다음 문장이 나오는 지점에서 멈췄다. 네 기? 넷? 당혹한 눈빛들이 오가자 에드워드는 뭔가 가슴 속에서 덜컥 하는 것을 느꼈다. 장갑차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는 충격이었겠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는 거구나. 드디어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거구나. 이전에 왔던 건 정찰기에 불과했구나. 이제 정말 우리 좇된 거구나. 기타 등등. 십여 초 뒤 보로닌은 무전기에서 뭔가 더 듣고는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아직은 지령실 쪽에서도 많이 뭔가 혼란스러운 성 싶다.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지만 UFO가 추락했고 탑승한 외계인들이 살아남아 UFO 안에서 저항하고 있다고 한다. 순찰대가 교전 중이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붙잡아줄 거다. 기동대 저격팀하고 호버카 등의 지원도 있을 거고, 일단 도주하지 못하게 제압한 다음에 가능하면 우리가 UFO 안으로 진입해서 싹 쓸어버리는…….”
에드워드가 들었던 건 거기까지였다. 물론 에드워드는 일주일 조금 더 전에 UFO 안에 돌입하려던 경찰 기동대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폭해서 박살이 난 UFO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았으니까. 그 뒤로는 도무지 긴장이 되어 떨려서 뭘 했는지, 뭘 하고 있었고 뭘 할 예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진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에드워드가 기억하는 건, 어느 순간 보로닌이 UFO가 하나 더 추락했다고 말했다는 거 하고 또 어느 순간엔 반대편에 있던 군터의 머리 위로 작은 빛줄기가 비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보라색 무언가가 머리 위를 스쳤다 싶었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는 강화플라스틱 장갑판이 주먹만한 구멍으로 녹아내려 짙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보로닌이 외쳤다.
“젠장! 하차! 모두 다 내려!”
그리고 에드워드 반대편에 있던 모두가 에드워드에게 밀어닥쳤다. 다른 대원들에게 밀려서 장갑차 뒷문 해치 밖으로 나동그라지다시피 했는데 누군가는 에드워드의 오른손을 밟았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비명을 질렀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한편으로 자기가 내렸던 장갑차는 여전히 앞을 향해 똑바로 달리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지붕이 불이 붙은 순찰차 한 대를 들이받고 멈췄다. 두 번째 보랏빛 광선이 날아와 정지한 장갑차의 앞쪽 부분을 관통하더니 광선들이 빗발처럼 퍼부어졌고 장갑차는 벌집이 되어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누군가 미친 듯이 뛰어와 에드워드를 잡아끌었는데 켈빈이었다.
광선줄기가 몇 번 더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켈빈에게 몇 초쯤 질질 끌려가다가 겨우 일어서서 같이 뛰었고 이윽고 몰골이 엉망진창이 된 다른 대원들이 고급 주택가의 낮은 담장 뒤로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보로닌이 모두 왔는지 머릿수를 확인했다. 세 명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그제서야 좀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켈빈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켈빈은 그냥 웃고 말았다.
주변은 엉망이었다. 지붕과 벽 일부가 날아간 주택에서 쏟아져 나온 집기들이 흩어져 있었고, 낮은 스카이라인 너머로 검은 연기가 솟고 있었는데 UFO가 추락한 방향인 성 싶었다. 멀리서 공중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듯 폭발음이 몇 번 울려퍼졌다. 있어야 할 경찰 저격수나 지원 나온 호버카 따윈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순찰차 서너 대가 장갑차 주변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문득 아는 사람이 타고 있었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순찰차 번호를 읽으려 들었지만 찌그러진 문짝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장갑차는 구멍이 뚫린 채로 불타서 플라스틱 장갑판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장갑차 안에서 불타고 있을 조종수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냥 얼굴 몇 번 본 게 전부였지만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싶었는데……아마 최초의 희생자겠지. 나중에 어떻게 누군가 시신을 수습해줄 것이다. 물론 그가 최초의 희생자란 건 사실이 아니었긴 했지만 에드워드로서는 그건 알 수 없었다. 근데 사라진 세 명은 어디로 간 걸까……마침내 알파 조원 세 명이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자 보로닌이 대원들에게 모이라고 한 뒤 상황을 정리했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통화량 폭주로 경찰 네트워크 서버가 다운된 성 싶다. 아군도 연락되지 않고, 다만 근거리 무전기는 작동되는 성 싶으니 일단 우리끼리 정보를 모으고 이 일을 대처해야 할 거다.”
그러고 보니 장거리 무전 채널은 진작부터 침묵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상황이면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을 텐데 조용하다는 건 그런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경찰 본부에 UFO가 처박히기라도 했던가……보로닌은 PDA를 켠 뒤 지도를 불러올리고 그 가운데에 UFO를 그린 뒤 주변 블럭에 점을 네 개 찍었다. 에드워드는 인상을 가볍게 찡그리고 바이저에 떠오른 지도를 응시했다.
“마지막 보고 내용은 놈들이 UFO를 떠나 어디론가 이동할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피격당한 곳이 이곳, UFO에서 남쪽으로 3블록 직선 거리다. 알파 조원들의 정찰 보고에 따르면 UFO 주변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걸 봤다고 하고, 그네들이 우리를 공격했다고 가정할 수 있을 듯 하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정찰을 실시한다.”
“정찰요?”
누군가가 되묻자 보로닌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별 거 아냐. 그냥 가서 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오면 된다.”
그러고 보니 보로닌은 화성 치안유지군 출신이라던 켈빈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할 만한 일이 아닌데. 애당초 경찰기동대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 받으며 확실한 작전 짜서 확실한 계획만 굴리던 부대 아니던가. 적들이 얼만지도 모르니까 일단 가서 확인하고 오라는 건 꽤 합리적인 이야기긴 했지만 한편으론 또 말이 안 되는 성 싶었다. 에드워드는 군터를 슬쩍 보았고 별로 표정이 밝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대원들은 미적거리며 조별로 흩어졌다. 에드워드도 군터와 켈빈을 따라 주택가를 걸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고급 주택가는 에드워드가 ALERT로 오기 전 클레어와 순찰 돌 때마다 나지막한 감탄사 하나쯤 띄워줄 만큼의 분위기는 자아내곤 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싸구려 피플 튜브 따윈 사용하지도 않기에 건물들은 하나같이 낮고 정갈했으며 도로는 넓었다. 아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랬을 것이다. 빗나간 미사일인지 UFO가 뭔가 강력한 무기를 쐈는지 장식이 달린 건물 지붕이 군데군데 녹아내리고, 추락해 엉망으로 부서진 호버카가 담을 뚫고 들어가 대리석 조각을 박살낸 게 눈에 띄었다. 꽤 비싼 돈을 들여 만들었을 잔디밭이 까맣게 불타 있었다. 아까운데.
한편으론 사람들이라곤 보이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게 죄다 어디 지하실에라도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나마 한낮의 이런 주택가에 무슨 사람들이 오갈 리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민간인 피해 같은 것도 고려 안 해도 될 테고. 저번 정수장 사건도 그렇고 이런 일을 할 때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는 건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싶었다.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몇 번의 폭발음을 배경 삼아 군터는 에드워드와 켈빈을 끌고 지그재그로 전진하다 마침내 어느 담장 너머에서 멈춰섰다. 묘하게도 벽엔 그을린 자국 하나 없는 게 눈에 띄었는데, 보로닌이 그려준 지도에 따르면 바로 벽 너머 다음 블록이 UFO가 추락한 지점이었다. 군터가 조심스럽게 발을 돋우어 벽 위로 고개를 내밀다가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냈다. 켈빈과 에드워드가 그 뒤를 따랐다.
UFO는 - 에드워드는 문득 UFO가 전에 보았던 것처럼 원반형이었지만 크기가 좀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상하게도 별로 부서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부서졌다면 아마 UFO가 추락한 충격파로 무너져 내리고 부서진 도로나 건물들이 더 심했을 것이었다. 문이 열린,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망가진 호버트럭 한 대가 UFO가 처박힌 옆 주택들 사이에 서 있었고 주변으로 푸른 넝마조각 같은 것들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시력을 좀 더 돋우어 자세히 보자 넝마 조각엔 뭉툭한 팔다리가 달려 있었고 갈퀴 모양의 손끝엔 뭔가 길쭉한 걸 가지고 있는 성 싶었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닐 듯 했다. 군터는 조용히 숫자를 헤아린 뒤 무전망에 대고 길게 보고했다.
“찰리입니다. 키가 2미터쯤 되어 보이는 매우 험악하고 푸르딩딩하게 생긴 녀석들이 10마리 정도 UFO 주변에 몰려있는 성 싶습니다.”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에드워드와 캘빈은 계속 숨을 죽이고 UFO 주변을 지켜보았다. 넝마들은 그냥 그렇게 주변에서 한들거리고 있는 성 싶었다. 아니, UFO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뭔가를 주워올리고 뭔가 하고 있는 듯 싶었다고 할까……한동안 침묵이 이어지자 군터가 무전망에 대고 보로닌에게 물었다.
“이젠 어떻게 합니까?”
[알파와 브라보는 12마리, 델타는 13마리라고 했는데 그나마 그게 좀 나은 소식인 성 싶군. 위치는 우리가 유리하니 한 번 시험해 봐야지. 적당히 쏴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일단 후퇴해라. 모두 사격 준비.]
군터가 멍하니 되물었다.
“아……그래도 됩니까?”
[굳이 원한다면 총 대신 주먹을 써도 좋다.]
군터는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내키지 않게 준비 신호를 보냈다. 왠지 저 넝마들은 무지 강력해서 총으로 쏴도 안 죽을 것처럼 생겼다는 표정을 얼굴에 역력히 지으면서긴 했다. 어쨌건 각자 간격을 두고 사격지점을 잡아 벽 너머로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고 신중히 조준했다. 거의 동시에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UFO를 반포위한 다른 지점에서도 총성이 울려퍼졌다. 에드워드는 제일 가까이 있는 넝마를 향해 기관단총을 두 발씩 쏘았는데 거리가 멀지 않은 탓에 정확히 명중했다. 외계인은 조금 움찔하는 성 싶더니 천천히 몸을 돌리며 손에 든 것을 들어올렸다. 젠장.
쩌엉 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에드워드 옆으로 2미터쯤 떨어진 곳의 벽 귀퉁이가 큼지막하게 떨어져나갔다. 깨져나간 콘크리트 사이로 붉게 달아오른 철근 조각이 보였다. 썅, 더럽게 강력하네. 플라즈마나 뭐 그런 광학병기인가 보지? 하지만 무슨 강력한 무기건 간에 맞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짧게 중얼거리면서도 열심히 대여섯 발쯤 더 쏘았다. 죄다 명중한 성 싶으면서도 별다른 피해는 주지 못하는 게 명백해지자 마침내 켈빈이 투덜거렸다.
“아, 젠장, 왜 우리가 가진 무기는 매번 제대로 안 먹히는 거야?”
“우린 경찰이잖아.”
그 말을 하고 군터가 재빨리 위치를 옮겼고 에드워드도 그 뒤를 따랐다. 효과가 없는 걸로 판명난 이상 또 다른 넝마가 관심을 표현하기 전에 물러서는 게 상책이었다. 돌아갈 때는 올 때와 약간 다른 경로를 골랐다. 넝마의 속도는 꽤 느려 보이긴 했지만 혹여 쫓아오기라도 할까봐 얕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잘 꾸며진 정원을 가로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쫓아오지는 않을까 몇 번쯤 뒤를 확인하고 매복해서 안 오는가 지켜보기도 한 번쯤 해야 했다. 보로닌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건 보로닌은 각자가 위치를 옮긴 것을 확인했다. 에드워드가 자리 잡은 곳은 보로닌의 알파 조가 있는 곳의 반대편 골목에서 조금 더 UFO에 가까운 곳이었고, 다른 조원들도 근처에서 UFO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이제는 살짝 가물가물한 UFO 주변을 바라보다가 보로닌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보로닌이 잠깐 생각하는 듯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게 보였다. 에드워드는 보로닌이 아까 타고 오다가 부서진 장갑차를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켈빈, 에드워드, 순찰대 출신이라고 했지? 저 순찰차에 달린 기관총 쓸 수 있나?]
장갑차가 들이받은 세 대의 순찰차가 거의 바로 뒤에 있는 게 보였다. 그새 우리가 이것밖에 이동 안 했던가 싶어질 정도로. 켈빈이 에드워드보다 먼저 대답했다.
“아마 쓸 수 있을 겁니다.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그럼 기관총을 떼어서 사격할 수 있나?]
에드워드는 잠시 자신이 멍청이가 된 게 아닌가 싶어졌다. 왜 저리 간단한 문장이 이해하기 힘들까. 켈빈이 당혹해해하며 대답했다.
“그런 거 해본 적 없습니다만…….”
[할 수 있다 없다로 대답해. 저것마저 못 쓰면 우리에겐 마땅한 무기도 없는 거야. 순찰차에서 떼어낸 상태로 쏠 수 있나? 손잡이가…….]
그제서야 에드워드는 겨우 경찰학교에서 배웠던 관리 교범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 옛, 쓸 수 있습니다. 분리한 다음에 총열덮개 잡고 쓸 수 있을 겁니다.”
[탄약은? 연사 능력은?]
“일반적으로 100발짜리 탄통 네 개 싣고 다닙니다. 한 번에 다 쏠 정돈 됩니다.”
보로닌은 알았다고 말조차 하지 않고 작전 이야기로 넘어갔다.
[각자 세열수류탄을 가지고 있으니 투척할 때 기관총을 엄호용으로 쓸 수 있을 거다. 투척조에게 수류탄 몰아주고, 놈들도 반격하겠지만 우리가 선제공격으로 제압한다. 화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선 이 3블록의 거리 동안 기관총 사격 거리를 확보해 주어야 한다. 목적은 놈들을 일단 제압하는 거다. 전멸이 아냐. 상황이 이래도 언젠간 추가 지원이 올 테고 언젠간 아군이 올 테니 그 전에 놈들이 다른 짓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놈들 머릿수를 줄이는 게 제일 좋지.]
보로닌이 아까 에드워드들이 보았던 망그러진 호버트럭을 바이저 화면의 지도에 표시했다.
[수류탄 투척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거다. 호버카 연료탱크를 인화시킬 수 있어도 좋을 테고. 가능한 화력은 모두 써야 하니까. 질문 받겠다.]
보로닌이 말을 마치고 나자 대원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치 보는 듯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지다 찰리 조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자살돌격 같습니다. 우리 정도 병력으론 그냥 놈들 동태만 관찰하면서 지원을 기다리는 게 좋을 성 싶은데요.]
[하, 자네들 경찰 아니었나? 다들 생각보다 자기 목숨에 깐깐한 녀석들인가 싶어지는데.]
에드워드는 보로닌을 쏘아보았지만 보로닌은 에드워드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말만 이어나갈 뿐.
[아무리 프라임 특성상 경찰도 사설 업체라고 해도, 어쨌건 정식 경찰 제복 입고 도시 지킨다고 잰체하던 게 자네들 아닌가? 만에 하나 놈들이 이 조용한 주택지에서 돌발행동이라도 보이면 누가 뭘 어떻게 책임질 거지? 시시껄렁한 변명 따위 필요 없으니 자네들 겉모양새가 반이라도 맞다면 나가서 싸워. 최소한 난 그럴 테니까.]
그리고 무전 채널엔 두 번째 침묵이 이어졌다. 내키지 않을지언정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할 말이 없었으므로. 보로닌은 노골적으로 대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에드워드는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하지만 뭘 위해서 자극한다는 걸까. 투지?
그래서 투지에 불타는 켈빈이 이를 악물고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렸다. 장갑차가 공격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UFO와 일직선상에 있는 곳이었는지라 UFO 주변 외계인들의 사선에 그대로 노출되는 장소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극히 간단한 방법이 쓰였다. 3개 조가 다른 장소에서 외계인들에게 열심히 총질을 하면 외계인들이 그들에게도 총질을 열심히 해줄 테고 그새 에드워드들의 찰리 조가 열심히 길을 가로질러 뛰어서 순찰차에 도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켈빈은 천천히 이어지는 기관단총 소리를 박자에 맞춰 세다가 일제 사격이 시작되고 몇 초쯤 지나고 나서 욕설을 마구 퍼부으며 뛰기 시작했다. 대여섯 발 제대로 맞춰도 꿈쩍도 안하는 넝마조각들에게 그렇게 쏴대서 효과가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에 내고 싶진 않았다. 어쨌건 먹히긴 먹혔다. 42구경 권총탄 사용하는 물건이 파괴력이래봤자 얼마나 있겠는가만은 최소한 총소리만큼은 외계인들의 신경을 쓰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물론 외계인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였지만.
켈빈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에드워드는 왜 자신이 순찰대 출신이었고 왜 순찰차 기관총 분리법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ALERT에 들어와서 이렇게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것 따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뛰긴 뛰어야 했다. 아군의 엄호사격에 대응하는 광선줄기가 멀리 골목들 사이로 희미하게 스쳐지나갔지만 켈빈을 향해선 한 발도 날아온 게 없었다.
그리고 한 순간,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다가 외계인들의 광선무기의 날카로운 굉음이 이에 맞춰 몇 번 울리고 나면 아군이 위치를 바꾸는 동안 총성이 잦아들었다. 외계인들은 한방에 아군을 죽일 수 있었지만 아군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대원들로선 적당히 쏘다가 도망치고 다시 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론상으론 각 조가 교대로 사격하므로 사격에 빈틈이 없어야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협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켈빈이 무사히 길을 건너 첫 번째 순찰차 옆에 몸을 던져 엎드리자마자 에드워드는 박자를 열심히 세었고, 그렇게 잠깐 세다가 대체 박자라던가 제대로 짜여진 엄호사격 같은 게 존재하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아무 총소리나 울려 퍼지자마자 허겁지겁 뛰게 되었다. 도로 한복판에 그어진 노란 중앙선을 밟았을 무렵 아군의 사격이 아무 이유 없이 멈췄고, 완벽한 정적이 찾아드는 시점에서야 그 선택을 후회했다. 그래도 뛰는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망그러진 순찰차 옆으로 몸을 날리고 바닥을 긁으며 순찰차 문에 헬멧 쓴 머리를 가볍게 부딪쳤다. 광선은 날아오지 않았다. 켈빈은 에드워드에게 히죽 웃고는 길 반대편에 남은 군터에게 건너오라고 손을 들어 보였다.
엄호사격은 분명 하고 있긴 했지만 이제 총성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보로닌은 아군을 어떻게 모아 공격을 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긴 했다. 그래봤자 외계인들의 광선 소리가 아군을 압도하고 있었는지라 어떻게 하진 못하는 성 싶었다. 그러니 우리도 목숨 걸고 4차선 도로를 건너온 값어치를 해야지. 켈빈이 투덜거리면서 일어서 찌그러진 지붕 위의 기관총 총신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도와줘!”
에드워드도 따라서 일어섰는데,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군터가 길은 안 건너오고 UFO 방향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UFO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파란 무언가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보였다. 넝마 한 놈쯤이 조금 가까운 곳에 있나 보구나. 외계인들의 사선에 노출되었겠네. 젠장. 에드워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거의 동시에 푸른빛 광선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엄청난 고열임을 상징하듯 후끈 하는 열기가 밀어닥치고, 무시무시한 높은 소음은 온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였다. 두 번째 사격도 빗나갈까? 아님 세 번째는? 켈빈은 순찰차 천장의 기관총 고정대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다 안 떨어지자 소리를 지르며 기관단총 개머리판으로 고정핀을 세 번 연달아 내리찍었다.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개머리판은 세 번째 가격에서 휘어버렸다. 에드워드도 일어서서 기관총 손잡이를 붙들고 기관총 총구를 UFO 쪽으로 회전시켜 외계인을 쏴버리려 했다. 순찰차의 휘어진 지붕 덕에 사격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켈빈이 고함을 지르며 휘어진 개머리판을 동원해 네 번째로 고정핀을 찍으려는 사이 에드워드는 기관단총 총구를 핀에 가져다대고 방아쇠를 당겼고 둘 중 어느 것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기관총은 옆으로 미끄러지며 빠져나왔다. 고정대가 휘고 깨져나간 핀 조각이 튀어올랐다. 기관총 손잡이는 켈빈보다는 에드워드에게 가까웠다.
[[B]] “어엎드으려어어억!”[[/B]]
에드워드는 목청껏 외치면서 기관총 손잡이를 붙들고 방아쇠를 깊게 눌렀다. 조준할 시간은 없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조준기 사이로 뭔가가 보였고 냅다 갈겨버렸다. 그리고 기관총 소염기에서 터져나온 발사화염 덕에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외계인들의 광선무기가 몇 발 더 날아왔으며 명중한 광선 덕에 순찰차 지붕이 반쯤 뜯겨나갔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방아쇠를 누르고 있었고 지독한 반동이 느껴졌는데, 그건 그만큼 강력한 탄종을 사용한다는 것이었기에 좋은 뜻이었다. 하마터면 총을 놓칠 뻔했지만 꽉 붙잡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켈빈은……켈빈은?
이미 순찰차는 이전에도 교전을 몇 번 치러 탄약을 소모했던 듯 기관총 탄통은 일이 초만에 비어버렸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기관총 약실 위로, 그리고 부서져나간 순찰차 지붕 너머로 멀리, 아스팔트 바닥에 벌집이 되어 누워있는 외계인이 보였다. 켈빈은 찌그러진 순찰차 보닛 위에 엎드려 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 그렇게 크게 외치지 마. 아니면 헤드셋 끄고 외치던가.”
어쨌건 재장전이 급했다. 순찰차에 실려 있던 예비탄통은 녹아내린 순찰차 유리창 안에 손을 넣어 조수석에서 꺼낼 수 있었다. 에드워드로서야 핸들 위에 놓인 시체에 손이 닿지 않게 살짝 주저해야 했지만 한가한 행동이었다. 외계인들은 이제 에드워드 쪽 방향으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는 화력의 집중이었으므로. 덕분에 에드워드는 새 탄통으로 갈아 끼우자마자 조금 멀리 있는 UFO와 그 주변에 가뭇하게 보이는 외계인 넝마조각들에게 사격을 실시해야 했으며 탄통을 세 개밖에 못 찾은 덕에 삼점사로 맞춰놓고 쏴야 했다. 한편 외계인들은 그들의 광선 무기로 삼점사를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단발만 해도 너무 세니까.
그동안 켈빈은 두 번째 순찰차까지 뛰어가서 기관총을 떼어냈다. 군터는 광선에 가슴팍을 태워먹을 뻔한 위기를 두 번 넘기곤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와서 켈빈이 건네주는 기관총을 건네받았다. 광선이 몇 번 더 날아왔지만 그리 정확하진 않았다. 그 사격의 결과물로 뒤집어져 있던 세 번째 순찰차 트렁크에서 해치를 관통하는 구멍이 뚫렸고 켈빈은 녹아내린 고정대에서 기관총을 간단히 떼어냈다.
에드워드는 심호흡을 해가며 조금씩 쏘아보았지만 외계인들은 비교적 여유 있게 사격을 조금씩 가하면서 UFO 주변의 파편들 뒤로 천천히 이동했다. 거리가 먼데다 엄폐물도 있으니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입맛을 다셨다. 이놈들 봐라. 당황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에드워드들의 기관총 사격과 아군의 기관단총 사격에 응사하면서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갈 뿐.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엄호사격을 하는 기관단총에 꽤 과도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넝마 두엇은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아군 또한 적들의 화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광선무기에 맞은 성도 싶었지만 혼란스런 상황에서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최소한 외계인들은 예닐곱 마리는 더 있었고 모두 광선총을 갖고 있었다. 군터와 켈빈도 사격을 개시했지만 탄약도 그리 많지 않은 기관총 세 정 따위로 화력을 맞먹으려 드는 건 힘들었다. 빈발하는 놈들의 사격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망할 놈들, 망할 외계인들, 망할 기관총……총성이 난잡하게 이어지고 외계인들의 광선무기 소리도 하늘을 메웠다. 화력전으론 어차피 이길 수 없다. 그럼 이길 방법은 있긴 한 걸까.
갑작스레 분대 무전망에 대고 보로닌이 외쳤다.
“찰리 교차 전진! 두 명이 쏘고 한 명씩 전진한다! 나머지 대원들도 준비하고 돌격!”
돌격? 이 상황에서? 반문조차 나올 여력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못 들은 것 마냥 이제는 녹아내린 구멍이 차체의 절반쯤은 차지하는 순찰차 뒤로 몸을 잠시 숨겼다가 다음 탄통을 끼워 넣는 일에 몰두했다. 기관총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약실에선 짙은 회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장전손잡이는 다소 뻑뻑하게 당겨지며 약실에 새 탄약을 밀어 넣었다. 보로닌이 다시 외쳤다.
“뛰어! 안 그러면 후퇴할 거야? 뛰어!”
주춤, 마지막 문장의 강세에 에드워드는 마치 뛰쳐나갈 것처럼 다리를 떨었다. 뭔가 반사 신경을 자극한 것 같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보로닌이 있는 힘껏 외쳤다.
[[B]] “뛰엇!”[[/B]]
귀가 아팠다. 반사 신경을 자극했다는 건 아마 단순한 과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터가 뛰었고 캘빈이 뛰었고 에드워드가 뛰었다. 에드워드는 이를 있는 힘껏 악물었다. 애당초 잡아들고 다니라고 만들어지지 않은 총열덮개가 지속적인 사격으로 인해 달아올라서 왼손에 낀 장갑을 태우고 화상을 입히고 있었다. 기관총은 애당초 차량탑재용이라 별도 손잡이도 없었기에 손으로 잡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럽게 무거웠다.
미친 듯이 UFO를 향해 뛰어가 바닥에 엎드려 기관총을 내려놓고 쏴댔다. 흐릿한 초점의 가늠쇠와 가늠자 너머로는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덜컹덜컹덜컹, 개머리판의 격렬한 반동이 어깨뼈를 두들겨대며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발사화염은 앞이 흐릿해질 정도로 눈부셨다. 엄폐물이니 잔탄수니 과열이니 신경 쓸 수 없었다. 후끈한 바람이 밀려오면 그제서야 외계인들이 자기를 노리고 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얼마 안 가 잊어버렸다. 보로닌이 뛰라고 하면 뛰었고 서라고 하면 섰으며 쏘라고 하면 쐈고 말라고 하면 말았다. 누군가가 앞으로 뛰어가 엎드리면 그 뒤를 쫓아가 뛰어서 엎드리고 냅다 긁었다. 모든 건 반사적이었다.
가끔씩 이성의 끈이 반사신경 사이로 희미하게 고개를 쳐들 때면, 단편적인 사고가 외계인들의 위치를 향해 조준점을 수정했고 희미한 장면들을 단속적으로 기억에 남기곤 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한 광선무기의 발사음과, 비틀거리는 넝마들과 그 옆에서 대조적으로 제대로 서서 자신을 향해 쏴대는 넝마들.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였던 듯한 요란한 고함 소리.
에드워드는 아마 한 마리 정도는 죽였으리라고 생각했다. 그저 깨져나간 UFO 조각 위로 파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가 총을 쏘자 아래로 쑥 꺼져버린 게 전부였지만 아마 맞추긴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숨어버렸던 건지도 몰랐지만 어쨌건 그랬다 싶었다. 어차피 거치해서 쏴야 하는 기관총을 대충 손으로 받쳐 들고 쏴대는 것이니만치 점사건 연사건 맞을 것 같지도 않고 UFO 주변에 피어오르는 연기로 봐서 탄착군도 개판이었지만 그래도 그랬을 거다 싶었다. 그냥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UFO를 향해 반쯤 전진한 시점에서 에드워드는 문득 방아쇠를 당겨도 총이 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어째서인지 몰라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겨우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하고 마지막 탄통을 밀어 넣었다. 나가지 않았다. 탄통은 비어 있었다. 이미 다 썼던 걸 아무 생각 없이 챙겨들었던지 뭘 헷갈렸던 건지 몰라도 비어 있었다. 기관총을 내버리고, 등 뒤에서 총끈으로 매달려 있는 기관단총을 돌려들고 UFO 주변에 아무렇게나 쏘아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UFO 바로 옆 골목에서 기관단총을 덜렁이는 아군들이 뛰쳐나와 수류탄을 투척했고 폭발이 일어나 파란 살점들과 수류탄 파편과 금속 조각이 날렸으며 무언가가 연쇄 폭발했는지 폭염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폭발의 색깔은 희한하게도 보랏빛이었는데, 에드워드는 문득 자기 눈의 색감이 발사화염으로 인해 손상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에드워드는 기관단총 탄창이 비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도 새 탄창으로 갈아 끼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총성은 멎어 있었다. 끝났나. 파편이 흩어진 UFO 주변에는 아무 것도 서 있지 않았다. 멍청히 빈 총을 들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노려보고 있는 자신이 문득 멍청하게 생각되었다. 다 끝났나.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긴 했지만, 군터는 꽤 멀리 뒤에 있었고 켈빈도 자기보다 십여 미터는 뒤쳐져 있었다. 혼자 마구잡이로 뛰쳐나갔던 것 같았다. 좀 어렵게 어렵게 일어선 켈빈이 UFO 방향을 가리켰다. 에드워드는 애써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몸을 바로세웠다. 대원들은 비틀거리며 UFO 주변에 모여든 다른 대원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타버린 장갑의 왼손과 개머리판 반동을 흡수했던 오른쪽 어깨와 엎드릴 때마다 바닥에 부딪혔던 무릎과 기관총 무게를 지탱했던 팔과, 온몸이 다 아팠다. 덕분에 에드워드는 힘겹게 비척이며 걸어야 했고 눈앞이 어질거리는 탓에 매 걸음마다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좀비라도 되면 이런 기분일까.
겨우 도착해서 UFO 주변에 집결한 대원들을 대충 세어보니 9명으로 줄어 있었다. 누군가가 죽었나. 아마 죽었나보지. 에드워드는 브라보 조와 델타 조에서 몇 명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는데 누군지는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브라보 조장을 위시해서 몇몇은 가까운 곳에서 광선이 스치고 지나간 듯 옷에 그을린 자국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누가 죽었던 거지. 정말 좀비라도 되어서 뇌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걸까.
보로닌이 운을 떼었다. 기관단총을 받쳐 든 채로 현실과 괴리된 듯한 무심한 말투로.
“알파는 장비 챙기고 브라보는 쓸만한 차량 없나 찾아봐라. 델타는 확인사살하고. 아군 시체나 외계인들은 내버려둬. 5분 안에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UFO가 한 대 더 추락했다고 했는데 여전히 경찰 본부와는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지원도 없고. 그러니 우리가 가서 확인해봐야지.”
그 말이 에드워드를 짧게나마 현실로 끌어내렸다. 현실을 인지하고 감정을 부여하고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발끈했다. 온몸이 쑤시는 것도 간단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아니 누구라도 발끈하지 않을 수 없을 성 싶었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로닌의 알파 조원들도 그랬고 군터도 그랬고 켈빈도 그랬다. 지친 목소리로 내뱉건 안 뱉건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못합니다, 너무합니다, 아군 시체 정도는 수습합시다, 내버려 둡시다……그리고 뭔지 모를 힘이 몸에서 생겨나는 걸 느끼며 에드워드는 입을 열었다.
“정말……너무하십니다. 솔직히 지쳤습니다……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생각해보니 아마 목이 쉰 것 같았다. 그에 상관없이 보로닌은 앞으로 나선 에드워드를 빤히 바라보다가, 헬멧의 투명한 바이저를 올리고 오른손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핏발이 선 흰자위가 더러워진 장갑 손가락에 스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에드워드는 보로닌도 목이 쉬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자기 입장에서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서 에드워드는 침묵했고 보로닌은 생각을 바꾸었다. 순찰차에서 소화기를 꺼내어 장갑차의 불을 끄고, 상체가 새까맣게 타버린 브라보 조와 델타 조 대원의 잔해를 모아 차 안에 놓는 동안 누군가는 조용히 눈물도 흘렸다. 에드워드는 울지 않았다. 일 주일 반을 같이 지냈던 사람이었는데도 여전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다른 조원들이 다 죽고 혼자 남은 델타 조원은 보이는 외계인들마다, 안 그래도 넝마 같은 몸을 더 넝마처럼 만들려고 하는 듯 마구 걷어차고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아댔다. 녹색 피가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녹색일지언정 놈들도 피를 흘렸다. 그리고 놈들의 시퍼런 넝마 같은 몸에도 머리가 있긴 했다. 희한하게도 징그럽고 동그란 큰 눈 두 개와 울퉁불퉁한 이빨이 달린 입도 있었다.
혹여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두 놈쯤 살아서 그 눈을 조금씩 움직이고 입을 벌려대면 보로닌은 외계인 주변에 떨어져 있는 광선무기를 겨냥해 총을 쏘았다. 그러면 보랏빛 섬광이 터지며 주변을 불태워버렸다. 수류탄이 유폭시킨 게 호버카 연료탱크라기보다는 놈들의 무기였던 모양이었다. 수류탄 투척조는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알파 조원들은 빈 기관총 탄통만 몇 개 주워올렸다 바닥에 던져버렸다. 타버린 장갑차 안에서는 건질만한 건 없었지만 순찰차에는 예비용 기관탄총 탄창이 꽤 더 있었긴 했다. 에드워드와 브라보 조원들은 다리가 조금 덜 후들거릴 때까지 UFO 주변에 앉아 총을 꼬나들고 경계하는 척 하면서 그냥 멍청히 있었다. 에드워드는……여전히 별로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 싶었다. 눈앞에 현실의 증거는 수도 없이 널려 있는데도, 뻔히 보고 듣고 있는데도 현실과 괴리된 듯한 느낌. 현실적인 건 여전히 어깨가 뻐근했고 온몸이 쑤셨다는 것뿐이었다. 정말로 좀비가 되기라도 한 건가.
브라보 조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블록 너머에서 쓸만한 9인승 승합차를 찾아냈다. 보로닌이 PDA를 차 문에 연결하고 버튼을 누르자 공무용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차를 ‘징발’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아군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공중전은 진작 끝난 듯 주변은 침묵하기만 했고 인적이라곤 없는 성 싶었다. 무전도 먹히지 않았다. 전화를 포함한 민간 네트워크조차도 작동하지 않았다. 민간인들은 여전히 집 안에 숨어있는 듯 싶었다.
보로닌이 PDA의 지도를 봐가며 UFO가 추락했다는 지점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에드워드는 그저 멍청히 징발된 차 문 안에 기대어 흔들리는 창 밖을 보았다. UFO가 추락했다는 공업지구도 에드워드들이 있었던 장소와 상황이 비슷한 성 싶었다. 역시나 별 인적 없는 공장들 사이로 망가진 작업용 비인간형 로봇들과 뭔가 전자 제품이 들어 있던 상자들이 집하장에 널려 있었고, UFO가 추락한 지점에서 솟는 검은 연기조차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었다.
에드워드는 전투하차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멍청히 기관단총을 꺼내려 했는데, 의외로 보로닌이 별 말 없이 차를 세웠다. 집하장 주변에 메가폴 순찰차들이 기관총 총구를 하늘에 세워 올린 채로 멈춰서 있었다. UFO는 중앙 부분이 함몰되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고, UFO 바로 앞에는 어쩐지 친숙한 모양의 장갑차가 양쪽에 그려놓은 기동대 마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멈춰서 있었다. 그 주변으론 기동대의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일부가 흩어져 있었다. 광선총에 불타버렸기에 피는 한 방울도 없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외계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작업용 로봇조차도 움직이지 않는 적막감. 그야말로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는 게, 그리고 UFO 안의 외계인들은 어딘가로 떠나버렸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에드워드는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무수한 생각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눈을 감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었다. 화상을 입은 왼손은 여전히 아팠다.
2084년 3월 18일 토요일 오후 한 시 이십 분, 메가폴 기술자들이 긴급 소집되어 다운된 네트워크 서버를 복구하고 민간 사업체들이 통신을 회복시키는 데는 1시간 반이 조금 더 걸렸다. 그리고 프라임 거의 전 구역에 걸쳐 일어난 외계인과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는 데에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
----------------------------------
요즘 창작란이 갑자기 불타는군요. 제가 연재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데 갑자기 다들 왜 이러시나. -_- 어쨌건 이로서 비축분 끝입니다. 5일 간격의 연재를 시도해왔지만 다음 분량은 다소 기약 없을 듯. (게다가, 어차피 계절학기 마치면 부산 내려갈 테고 인터넷도 못할 테니…….)
네드리의 낙서장 - 작가 : 네드리(nedlee)
글 수 65
프라임은 분명히 바싹 긴장해 있었다. 뭔가 분명히 달랐다. 늘상 있을 법한 사소한 사건들만으로도 도시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경제 체계는 들썩거렸고, 사람들은 한 번쯤 무언가 수상한 소리가 들리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질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PDA를 꺼내들어 뉴스 속보를 검색했다. 그러다간 늘상 있었던 갱들과의 총격전이니 작업 공사 운운하는 일임을 깨닫곤 종종걸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곤 했었지만…….
그 동안 ALERT라는 멋대가리 없는 이름을 단 애들이 TV에 나와서 정수장을 배경으로 하는 멋진 쇼도 보여주고, 무슨 물리학자니 생물학 전문가이니 하는 안경쟁이들이 역시 스튜디오에 서서 알아들을 수 없는 기술적 용어들을 벌레와 UFO 사진 위에 잔뜩 늘어놓고서는 연구는 해봐야겠지만 별 문제될 일이 아닐 거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UFO가 등장한지 일주일하고도 이틀, 도시는 천천히 정상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간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적어도 TV에선 그렇게 말했다.
오전 교대조 차례가 되어 출근한 레온 허드슨 경위는 막 피플 튜브에서 나와서 경찰서 건물로 들어서다가 내부가 난장판이 된 걸 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뭔가 긴급 사태라도 터진 듯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순찰차량들이 급발진으로 차고에서 튀어나가고 있었다. 허드슨 경위는 잠시 당혹해하다가 알고 있던 오퍼레이터 한 명이 마침 지나가기에 불러세워 물었다.
“뭔 일이야, 외계인이라도 또 쳐들어왔어?"
오퍼레이터는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허드슨 경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아셨어요?”
시간이 뭘 해결해주긴 해결해줘. 다 결국 헛소리일 수밖에 없는걸. 그래서 레온 허드슨 경위는 CCTV실에 미친 듯이 뛰어올라가 전임 담당자와 교대하고 눈앞의 CCTV 화면을 노려보며 앉아 있게 되었다. 두 시간 동안 일곱 번째로 커피잔을 비우곤 일곱 번 이상 했을 게 틀림없는 질문을 오퍼레이터에게 다시 했다.
“상태는?”
“그대롭니다……걱정 마세요. 변화가 생기면 컴퓨터가 경보를 울릴 테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글쎄…….”
차원의 문. 딱히 멋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UFO가 등장했던 그날, 그리고 지금도 눈앞에서 돌고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묘사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었을 것이었다. 형상 인식 컴퓨터가 연결된 CCTV가 시내를 늘상 감시하고 있었다곤 했었지만, 어쨌건 그것을 처음 발견했던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길 가던 평범한 어느 누군가였다. 다만 누군지 정확히 알 도리는 없었다. 그 뒤로 몰려든 같은 내용의 수천 통의 신고 전화와 전자 우편과 개인 사설 통신과 심지언 외계인들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직접 찾아온 사람들까지 몰려 한때 업무 마비가 빚어질 정도였으니 그게 누구였는지 아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서야 컴퓨터의 우선순위는 하늘을 돌고 있는 구와 정사면체가 혼합된 무언가를 인식하고, 그 장면을 기록하고, 경보를 발령했다.
어쩌란 말이냐고. 이곳의 반인공지능 시스템은 애당초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위한 차원의 문 어쩌고 하는 걸 추적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그냥 교통사고나 총격전 같은 거 정도 잡고 차량 번호판이나 외우면 족할 물건인데……이런 건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때 당번일 건 또 뭐람. 경위는 빈 종이잔을 구기고 투덜거렸다.
어쨌건 CCTV 화면이 늘어선 멀티비전 한쪽 구석에 작은 막대그래프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전화 라인 사용율을 표시하는 그래프였다. 눈금이 꽤 높이까지 올라가 있는 걸로 미뤄 봐선 차원의 문이 나타난 뒤로 세 시간이 지난 아직도 수많은 허위 신고가 접수되고 있었고, 옆의 지령실에선 꽤나 속을 썩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번인 다른 오퍼레이터 한 명이 더 와서 다른 자리에 앉아 화재 신고니 교통사고니 총격전이니 하는 잡다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단지 허드슨 경위와 당번인 오퍼레이터 한 명은 그쪽에 대부분의 업무를 맡겨버리곤 지금 이 차원의 문이니 뭐니 하는 걸 전담해서 몇 시간째 감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업무량은 줄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바빴다.
경찰청 위쪽에서도 여전히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공식적 지시는 뭐가 나타나건, 무엇을 하려 들건, 일단 나타나서 눈꼽만큼이라도 수상한 일을 하려 들면 모든 화력을 대응해 총대응하라는 것이었다. 무슨 민간 단체인가 종교 단체인가에선 일단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해보자고 하는 주장을 했던 것 같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누가 뭐래도, CCTV 화면에도 차원의 문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차량들이 보일 정도로 미사일을 장착한 호버카와 장갑차량과 경찰 병력들이 주변에 몰려 방어진을 치고 있었다는 게 그 좋은 근거였다.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최소한 전처럼 무방비하게 당할 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 무방비하게 당할 리는 없었다. 너무 똑똑해서 탈이라면 또 모를까 인간이란 결코 멍청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외계인들보다는 인간이 더 큰 문제가 될지도 몰랐다. 46번 화면에서는 막 상점 유리창을 깨기 시작한 일군의 젊은이들이 경찰에 제지되는 모습이 비춰졌다가, 비번인 오퍼레이터가 짧게 지령을 내리곤 통신을 끊었다. 고작 하늘에 뭔가 나타났다고 대규모 폭동 따위가 일어날 성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입 안을 감도는 텁텁한 느낌에, 살짝 속이 쓰려오자 경위는 손 안에서 구겨진 종이잔을 다시 펼치곤 광고 문구를 읽었다. 무카페인 커피라면서? 좋아, 위궤양 따위 얼마든지 걸리라지. 허드슨 경위는 투덜거리곤 천천히 벽가에 놓여진 커피 테이블로 걸어가 여덟 잔째의 커피를 종이잔에 따랐다. 포트 주둥이에 남은 커피 방울이 잔을 타고 흘러내려 플라스틱 책상 위에 작은 갈색 얼룩을 남겼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시금 멀티비전에 떠오른 60여 개의 화면을 천천히 훑어나갈 뿐.
허드슨 경위가 막 여덟 번째 커피잔을 입에 가져다대다가, 차원의 문 너머로는 회색빛 흐릿한 뭔가가 보이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음 순간 화면이 표시하고 있던 하늘이 텅 비었다.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질렀다. 즉시 경위는 다음 순간에 벌어질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지만 화면에는 섬광도 UFO도 없었다. 마치 갈 곳을 잃은 개미떼마냥 요동치기 시작한 경찰 병력들이 있었을 뿐, UFO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위는 빠르게 외쳤다.
“없어진 건가? 그냥 포기한 걸까? 끝난 거야?”
순식간에 평정을 찾은 오퍼레이터가 건성으로 뭐라 대답하며 키보드를 마구 두드렸다. 경찰용 통신 네트워크는 알아먹을 수조차도 없는 대혼란 상황이었기에 무전기는 꺼버렸다. 믿을 건 자신의 눈 뿐. 검색 모드에 들어간 멀티비전은 5초 단위로 60개씩의 카메라 화면을 바꾸며 정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트들이 멀티비전 위를 채우며 이지러졌다가 합쳐졌다. 허드슨 경위는 눈을 어지럽히는 화면들을 정신없이 읽어 내렸다. 컴퓨터가 분석 중임을 알리는 경고등이 깜빡거리고 있었지만 애당초 믿을 물건이 못 되었다. 이윽고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는데 허드슨 경위는 수화기를 들어올리곤 ‘나중에!’라고 외친 다음 다짜고짜 끊어버렸다. 아마 대체 UFO가 어디에 어쩌고 하는 첫 문절을 듣자마자였을 것이다.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사라진 것…….”
30초쯤 지나고 나서 오퍼레이터가 갑자기 말했다. 화면 너머로는 여전히 도시 전경만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고, 컴퓨터도 딱히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성 싶긴 했다. 그에 아랑곳없이 경위가 미친 듯이 화면을 훑고 있는데 갑자기 오퍼레이터가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겨, 경위님, 저거.”
분명 CCTV 화면에 별다른 것 따위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의 손 끝에선 멀티비전 구석의 작은 윈도우에서 막대그래프가 흔들리고 있었다. 신고용 라인 사용율을 의미하는 막대는 조금씩 움찔거리다 어느 순간 눈금 끝까지 올라가 100%에 도달했다. 빨간색 글씨가 사용량 폭주로 인한 라인 불통 상태임을 알렸다. 꼭 여섯 시간 전, 차원의 문이 처음 도시 상공에 나타났던 때 그랬던 것처럼. 이게 의미하는 건…….
허드슨 경위는 나지막이 말했다.
“왔군.”
2084년 3월 18일 토요일, 메가 프라임의 날씨는 그럭저럭 화창한 오전 열한 시 이십오 분. 미젤 경사가 그때 저지른 일생일대의 실수는 발사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었다.
하긴 굳이 누르지 않았더라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건 애당초 상황부터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차원의 문의 도시 반대편에 있는 공업 구역에서 그냥 단순한 초계 임무를 돌고 있었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의 호버카에도 비상시를 대비해 두 발의 화상추적식 공대공 미사일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무게가 늘어난 기체가 다소 둔하게 기동하는 걸 느끼면서, 그냥 자동조종으로 맞춰놓고 한적하기 그지없는 공장 주변이나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 무전망에 막 차원의 문이 사라졌느니 하는 말이 마구 흘러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일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곰곰이 무전 내용을 들으며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UFO가 떡하니 튀어나왔다.
뭐가 빛이 번쩍 했다던가 UFO 앞에 ‘죽어라 미젤!’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당황한 나머지 엉겁결에 조종간을 비틀었고, 호버카는 즉시 자동조종이 해제되면서 땅을 향해 돌진했다.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에야 겨우 기체 균형을 회복했는데 그러고 나자 현 고도가 딱 건물 사이에 호버카를 숨길 수 있을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냥 고도를 낮췄을 뿐인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미젤 경사는 지면에 닿을 듯한 고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건물 너머로 반쯤 보이는 UFO를 올려다보고 미친 듯이 헤드셋에 대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HQ! HQ! UFO다! UFO가 나타났다! 바로 앞에 있다! 아……여기는 H86이다! 현재 위치는……바로 UFO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아…….”
그리고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 UFO가 자신을 눈치 챈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태껏 헤드셋 스위치를 송신이 아니라 수신 모드에 맞춰놓고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도. 경찰 무전망을 듣느라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는데 미처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허공에 대고 그렇게 떠들어댄 걸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나니 좀 생각해볼 여유가 남았다.
생각해 보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런 기회는 모처럼 잡기 힘든 거 아닐까 싶었다. UFO는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뭔가를 찾는 듯 굴뚝과 나지막한 건물들로 가득찬 공업지구 상공을 느릿느릿하게 비행 중이었는데 건물 두 개를 사이에 두고 호버링 중인 자기의 존재는 모르는 성 싶었다. 무장도 하고 있었고, 선제 공격을 할 기회도 있었으며 지원 올 경찰 병력은 죄다 도시 반대편에 있을 테니 오는 데만도 꽤 걸릴 것이었다. 그리고 미젤 경사의 평상시 지론은 결정을 내리는 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가끔씩 영웅이 되어 보는 것도 좋겠지.”
미젤 경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기관포 안전장치를 풀고 조종간에 붙은 다이얼을 돌려 발사속도를 최고치인 분당 3200발까지 올렸다. 그리고 기체를 몇 미터쯤 수직상승시키며 기수를 쳐들어 UFO의 아랫부분을 조준점에 확실히 잡아넣었다. UFO 아랫부분의 정가운데를 조준하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버카에 실려 있던 200발의 탄약을 모두 소모하는 데도 별로 오래 걸리진 않았다. 기관포탄 중 몇 발은 예광탄의 금빛 빛줄기를 그리며 UFO의 위를 살짝 넘어 날아올라갔다가 2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수증기를 뿜고 있던 공장 굴뚝에 구멍을 냈지만, 대부분은 정확히 명중했고 철갑소이탄의 화염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자잘한 파편들이 떨어져내리는 광경이 뚜렷이 보였다.
물론 그 정도 충격으로 격추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다음 순간 UFO는 진로를 바꾸어 달아나려는 듯 반대 방향으로 선회를 시작했다. 미젤 경사는 스로틀을 한껏 올려 호버카를 급상승시키면서 두 발의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했다. 거리는 불과 오십여 미터도 되지 않았기에 빗나갈 이유도 없었다. UFO가 한 번, 두 번 들썩하더니 가장자리에서 꽤 큰 조각이 떨어져내렸다. 깨져나간 새파란 색깔의 파편이 슬레이트로 지은 공장 건물들 위로 쏟아져 내리고, UFO는 균형을 잃고 돌면서 지면에 보기 좋게 처박혔다.
미젤 경사는 고도를 좀더 올려서 추락한 UFO를 제대로 확인했다. 추락한 곳은 무슨 집하장 같은 곳인 듯 갈색 상자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작업하고 있던 인부 몇 명이 작동 중인 로봇을 내버려두고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한편으론 철갑소이탄에 구멍이 숭숭 뚫린 UFO 안에서 뭐가 타는지는 몰라도 새카만 연기가 조금씩 흘러나왔고, 깨어진 시멘트 위로는 특유의 혈관 비슷한 것이 그려진 징그러운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모습이 워낙 보기 흉해서 생각 같아서는 UFO가 가루가 되도록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탄약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징그러운 외계인 놈들 꼴 좋구나, 네놈들도 복수의 맛 좀 봐야지 하고 호버카의 좁은 콕핏이 떠나가도록 외치고선 헤드셋 스위치를 송신으로 바꾸었다. 자랑스럽게 단독 격추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는 걸 본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발사 버튼을 눌렀던 것을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후회했다.
또 다른 UFO 한 대가 집하장 건물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고도를 올린 탓에 아주 보기 좋은 UFO의 목표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와중에도, 미젤 경사는 반사적으로 쓰로틀 레버에 급히 손을 뻗었지만 UFO가 더 빨랐다. 고온의 자줏빛 광선은 순식간에 호버카의 중앙 부분을 녹이고 일레륨 연료 탱크를 인화시켰다. 호버카의 비상 유닛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데이터 과부하로 인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긴급 코드의 일부분을 본부에 전송했다.
요란한 화염을 남기며 하늘에서 흩어진 호버카를 보며 집하장에서 뛰쳐나가던 인부들은 더욱 더 열심히 뛰었다. 그나마 그 와중에도 인부들 중 하나는 PDA를 꺼내들 생각을 했지만 막상 전원이 켜지자 PDA는 접속 에러 메시지만을 띄워 올렸다. 당황해서 계속 재시도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빈약하기 그지없는 경찰 네트워크는 다른 세 대의 UFO에 대한 신고 내용만으로도 이미 포화 상태였던 것이다.
거의 같은 시각. 에드워드는 동료들과 함께 ALERT 기지 안에 주차된 장갑차 안에서 무전기의 송화기를 붙들고 있는 보로닌을 열심히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장비는 죄다 챙긴 상태였고 그의 지시만 떨어지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경험을 해 보는 것도 벌써 여섯 번째고 - 물론 훈련을 제외하면 두 번째긴 하지만 - 어쨌거나 그럭저럭 익숙해진 일이긴 했다. 보로닌은 한참 무언가를 듣더니 장갑차의 앞쪽 해치에 대고 출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곤 조용히 대원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한 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총 네 기의 UFO가 확인되었다고 하고.”
조용히 박수가 터져 나오려다가 다음 문장이 나오는 지점에서 멈췄다. 네 기? 넷? 당혹한 눈빛들이 오가자 에드워드는 뭔가 가슴 속에서 덜컥 하는 것을 느꼈다. 장갑차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는 충격이었겠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는 거구나. 드디어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는 거구나. 이전에 왔던 건 정찰기에 불과했구나. 이제 정말 우리 좇된 거구나. 기타 등등. 십여 초 뒤 보로닌은 무전기에서 뭔가 더 듣고는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아직은 지령실 쪽에서도 많이 뭔가 혼란스러운 성 싶다. 자세한 정보는 모르겠지만 UFO가 추락했고 탑승한 외계인들이 살아남아 UFO 안에서 저항하고 있다고 한다. 순찰대가 교전 중이고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붙잡아줄 거다. 기동대 저격팀하고 호버카 등의 지원도 있을 거고, 일단 도주하지 못하게 제압한 다음에 가능하면 우리가 UFO 안으로 진입해서 싹 쓸어버리는…….”
에드워드가 들었던 건 거기까지였다. 물론 에드워드는 일주일 조금 더 전에 UFO 안에 돌입하려던 경찰 기동대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폭해서 박살이 난 UFO의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았으니까. 그 뒤로는 도무지 긴장이 되어 떨려서 뭘 했는지, 뭘 하고 있었고 뭘 할 예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진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으로 에드워드가 기억하는 건, 어느 순간 보로닌이 UFO가 하나 더 추락했다고 말했다는 거 하고 또 어느 순간엔 반대편에 있던 군터의 머리 위로 작은 빛줄기가 비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보라색 무언가가 머리 위를 스쳤다 싶었는데 어느새 그 자리에는 강화플라스틱 장갑판이 주먹만한 구멍으로 녹아내려 짙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보로닌이 외쳤다.
“젠장! 하차! 모두 다 내려!”
그리고 에드워드 반대편에 있던 모두가 에드워드에게 밀어닥쳤다. 다른 대원들에게 밀려서 장갑차 뒷문 해치 밖으로 나동그라지다시피 했는데 누군가는 에드워드의 오른손을 밟았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비명을 질렀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한편으로 자기가 내렸던 장갑차는 여전히 앞을 향해 똑바로 달리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지붕이 불이 붙은 순찰차 한 대를 들이받고 멈췄다. 두 번째 보랏빛 광선이 날아와 정지한 장갑차의 앞쪽 부분을 관통하더니 광선들이 빗발처럼 퍼부어졌고 장갑차는 벌집이 되어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누군가 미친 듯이 뛰어와 에드워드를 잡아끌었는데 켈빈이었다.
광선줄기가 몇 번 더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켈빈에게 몇 초쯤 질질 끌려가다가 겨우 일어서서 같이 뛰었고 이윽고 몰골이 엉망진창이 된 다른 대원들이 고급 주택가의 낮은 담장 뒤로 모여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보로닌이 모두 왔는지 머릿수를 확인했다. 세 명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그제서야 좀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켈빈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켈빈은 그냥 웃고 말았다.
주변은 엉망이었다. 지붕과 벽 일부가 날아간 주택에서 쏟아져 나온 집기들이 흩어져 있었고, 낮은 스카이라인 너머로 검은 연기가 솟고 있었는데 UFO가 추락한 방향인 성 싶었다. 멀리서 공중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듯 폭발음이 몇 번 울려퍼졌다. 있어야 할 경찰 저격수나 지원 나온 호버카 따윈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순찰차 서너 대가 장갑차 주변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문득 아는 사람이 타고 있었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 순찰차 번호를 읽으려 들었지만 찌그러진 문짝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장갑차는 구멍이 뚫린 채로 불타서 플라스틱 장갑판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장갑차 안에서 불타고 있을 조종수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냥 얼굴 몇 번 본 게 전부였지만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싶었는데……아마 최초의 희생자겠지. 나중에 어떻게 누군가 시신을 수습해줄 것이다. 물론 그가 최초의 희생자란 건 사실이 아니었긴 했지만 에드워드로서는 그건 알 수 없었다. 근데 사라진 세 명은 어디로 간 걸까……마침내 알파 조원 세 명이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자 보로닌이 대원들에게 모이라고 한 뒤 상황을 정리했다.
“모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통화량 폭주로 경찰 네트워크 서버가 다운된 성 싶다. 아군도 연락되지 않고, 다만 근거리 무전기는 작동되는 성 싶으니 일단 우리끼리 정보를 모으고 이 일을 대처해야 할 거다.”
그러고 보니 장거리 무전 채널은 진작부터 침묵하고 있었다. 아마 이런 상황이면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을 텐데 조용하다는 건 그런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면 경찰 본부에 UFO가 처박히기라도 했던가……보로닌은 PDA를 켠 뒤 지도를 불러올리고 그 가운데에 UFO를 그린 뒤 주변 블럭에 점을 네 개 찍었다. 에드워드는 인상을 가볍게 찡그리고 바이저에 떠오른 지도를 응시했다.
“마지막 보고 내용은 놈들이 UFO를 떠나 어디론가 이동할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피격당한 곳이 이곳, UFO에서 남쪽으로 3블록 직선 거리다. 알파 조원들의 정찰 보고에 따르면 UFO 주변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는 걸 봤다고 하고, 그네들이 우리를 공격했다고 가정할 수 있을 듯 하다. 아직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정찰을 실시한다.”
“정찰요?”
누군가가 되묻자 보로닌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별 거 아냐. 그냥 가서 놈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오면 된다.”
그러고 보니 보로닌은 화성 치안유지군 출신이라던 켈빈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할 만한 일이 아닌데. 애당초 경찰기동대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다 받으며 확실한 작전 짜서 확실한 계획만 굴리던 부대 아니던가. 적들이 얼만지도 모르니까 일단 가서 확인하고 오라는 건 꽤 합리적인 이야기긴 했지만 한편으론 또 말이 안 되는 성 싶었다. 에드워드는 군터를 슬쩍 보았고 별로 표정이 밝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기에 대원들은 미적거리며 조별로 흩어졌다. 에드워드도 군터와 켈빈을 따라 주택가를 걸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고급 주택가는 에드워드가 ALERT로 오기 전 클레어와 순찰 돌 때마다 나지막한 감탄사 하나쯤 띄워줄 만큼의 분위기는 자아내곤 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중교통수단으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싸구려 피플 튜브 따윈 사용하지도 않기에 건물들은 하나같이 낮고 정갈했으며 도로는 넓었다. 아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랬을 것이다. 빗나간 미사일인지 UFO가 뭔가 강력한 무기를 쐈는지 장식이 달린 건물 지붕이 군데군데 녹아내리고, 추락해 엉망으로 부서진 호버카가 담을 뚫고 들어가 대리석 조각을 박살낸 게 눈에 띄었다. 꽤 비싼 돈을 들여 만들었을 잔디밭이 까맣게 불타 있었다. 아까운데.
한편으론 사람들이라곤 보이지도 않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게 죄다 어디 지하실에라도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그나마 한낮의 이런 주택가에 무슨 사람들이 오갈 리도 없으니 상대적으로 민간인 피해 같은 것도 고려 안 해도 될 테고. 저번 정수장 사건도 그렇고 이런 일을 할 때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는 건 무척 다행스런 일이다 싶었다.
하늘에서 울려퍼지는 몇 번의 폭발음을 배경 삼아 군터는 에드워드와 켈빈을 끌고 지그재그로 전진하다 마침내 어느 담장 너머에서 멈춰섰다. 묘하게도 벽엔 그을린 자국 하나 없는 게 눈에 띄었는데, 보로닌이 그려준 지도에 따르면 바로 벽 너머 다음 블록이 UFO가 추락한 지점이었다. 군터가 조심스럽게 발을 돋우어 벽 위로 고개를 내밀다가 나지막한 신음 소리를 냈다. 켈빈과 에드워드가 그 뒤를 따랐다.
UFO는 - 에드워드는 문득 UFO가 전에 보았던 것처럼 원반형이었지만 크기가 좀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이상하게도 별로 부서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부서졌다면 아마 UFO가 추락한 충격파로 무너져 내리고 부서진 도로나 건물들이 더 심했을 것이었다. 문이 열린,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망가진 호버트럭 한 대가 UFO가 처박힌 옆 주택들 사이에 서 있었고 주변으로 푸른 넝마조각 같은 것들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드워드가 시력을 좀 더 돋우어 자세히 보자 넝마 조각엔 뭉툭한 팔다리가 달려 있었고 갈퀴 모양의 손끝엔 뭔가 길쭉한 걸 가지고 있는 성 싶었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닐 듯 했다. 군터는 조용히 숫자를 헤아린 뒤 무전망에 대고 길게 보고했다.
“찰리입니다. 키가 2미터쯤 되어 보이는 매우 험악하고 푸르딩딩하게 생긴 녀석들이 10마리 정도 UFO 주변에 몰려있는 성 싶습니다.”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에드워드와 캘빈은 계속 숨을 죽이고 UFO 주변을 지켜보았다. 넝마들은 그냥 그렇게 주변에서 한들거리고 있는 성 싶었다. 아니, UFO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뭔가를 주워올리고 뭔가 하고 있는 듯 싶었다고 할까……한동안 침묵이 이어지자 군터가 무전망에 대고 보로닌에게 물었다.
“이젠 어떻게 합니까?”
[알파와 브라보는 12마리, 델타는 13마리라고 했는데 그나마 그게 좀 나은 소식인 성 싶군. 위치는 우리가 유리하니 한 번 시험해 봐야지. 적당히 쏴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일단 후퇴해라. 모두 사격 준비.]
군터가 멍하니 되물었다.
“아……그래도 됩니까?”
[굳이 원한다면 총 대신 주먹을 써도 좋다.]
군터는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내키지 않게 준비 신호를 보냈다. 왠지 저 넝마들은 무지 강력해서 총으로 쏴도 안 죽을 것처럼 생겼다는 표정을 얼굴에 역력히 지으면서긴 했다. 어쨌건 각자 간격을 두고 사격지점을 잡아 벽 너머로 조심스럽게 몸을 내밀고 신중히 조준했다. 거의 동시에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UFO를 반포위한 다른 지점에서도 총성이 울려퍼졌다. 에드워드는 제일 가까이 있는 넝마를 향해 기관단총을 두 발씩 쏘았는데 거리가 멀지 않은 탓에 정확히 명중했다. 외계인은 조금 움찔하는 성 싶더니 천천히 몸을 돌리며 손에 든 것을 들어올렸다. 젠장.
쩌엉 하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에드워드 옆으로 2미터쯤 떨어진 곳의 벽 귀퉁이가 큼지막하게 떨어져나갔다. 깨져나간 콘크리트 사이로 붉게 달아오른 철근 조각이 보였다. 썅, 더럽게 강력하네. 플라즈마나 뭐 그런 광학병기인가 보지? 하지만 무슨 강력한 무기건 간에 맞추지 못하면 소용없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짧게 중얼거리면서도 열심히 대여섯 발쯤 더 쏘았다. 죄다 명중한 성 싶으면서도 별다른 피해는 주지 못하는 게 명백해지자 마침내 켈빈이 투덜거렸다.
“아, 젠장, 왜 우리가 가진 무기는 매번 제대로 안 먹히는 거야?”
“우린 경찰이잖아.”
그 말을 하고 군터가 재빨리 위치를 옮겼고 에드워드도 그 뒤를 따랐다. 효과가 없는 걸로 판명난 이상 또 다른 넝마가 관심을 표현하기 전에 물러서는 게 상책이었다. 돌아갈 때는 올 때와 약간 다른 경로를 골랐다. 넝마의 속도는 꽤 느려 보이긴 했지만 혹여 쫓아오기라도 할까봐 얕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잘 꾸며진 정원을 가로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쫓아오지는 않을까 몇 번쯤 뒤를 확인하고 매복해서 안 오는가 지켜보기도 한 번쯤 해야 했다. 보로닌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건 보로닌은 각자가 위치를 옮긴 것을 확인했다. 에드워드가 자리 잡은 곳은 보로닌의 알파 조가 있는 곳의 반대편 골목에서 조금 더 UFO에 가까운 곳이었고, 다른 조원들도 근처에서 UFO를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이제는 살짝 가물가물한 UFO 주변을 바라보다가 보로닌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보로닌이 잠깐 생각하는 듯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게 보였다. 에드워드는 보로닌이 아까 타고 오다가 부서진 장갑차를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켈빈, 에드워드, 순찰대 출신이라고 했지? 저 순찰차에 달린 기관총 쓸 수 있나?]
장갑차가 들이받은 세 대의 순찰차가 거의 바로 뒤에 있는 게 보였다. 그새 우리가 이것밖에 이동 안 했던가 싶어질 정도로. 켈빈이 에드워드보다 먼저 대답했다.
“아마 쓸 수 있을 겁니다.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그럼 기관총을 떼어서 사격할 수 있나?]
에드워드는 잠시 자신이 멍청이가 된 게 아닌가 싶어졌다. 왜 저리 간단한 문장이 이해하기 힘들까. 켈빈이 당혹해해하며 대답했다.
“그런 거 해본 적 없습니다만…….”
[할 수 있다 없다로 대답해. 저것마저 못 쓰면 우리에겐 마땅한 무기도 없는 거야. 순찰차에서 떼어낸 상태로 쏠 수 있나? 손잡이가…….]
그제서야 에드워드는 겨우 경찰학교에서 배웠던 관리 교범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 옛, 쓸 수 있습니다. 분리한 다음에 총열덮개 잡고 쓸 수 있을 겁니다.”
[탄약은? 연사 능력은?]
“일반적으로 100발짜리 탄통 네 개 싣고 다닙니다. 한 번에 다 쏠 정돈 됩니다.”
보로닌은 알았다고 말조차 하지 않고 작전 이야기로 넘어갔다.
[각자 세열수류탄을 가지고 있으니 투척할 때 기관총을 엄호용으로 쓸 수 있을 거다. 투척조에게 수류탄 몰아주고, 놈들도 반격하겠지만 우리가 선제공격으로 제압한다. 화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선 이 3블록의 거리 동안 기관총 사격 거리를 확보해 주어야 한다. 목적은 놈들을 일단 제압하는 거다. 전멸이 아냐. 상황이 이래도 언젠간 추가 지원이 올 테고 언젠간 아군이 올 테니 그 전에 놈들이 다른 짓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놈들 머릿수를 줄이는 게 제일 좋지.]
보로닌이 아까 에드워드들이 보았던 망그러진 호버트럭을 바이저 화면의 지도에 표시했다.
[수류탄 투척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거다. 호버카 연료탱크를 인화시킬 수 있어도 좋을 테고. 가능한 화력은 모두 써야 하니까. 질문 받겠다.]
보로닌이 말을 마치고 나자 대원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치 보는 듯한 침묵이 한동안 이어지다 찰리 조의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자살돌격 같습니다. 우리 정도 병력으론 그냥 놈들 동태만 관찰하면서 지원을 기다리는 게 좋을 성 싶은데요.]
[하, 자네들 경찰 아니었나? 다들 생각보다 자기 목숨에 깐깐한 녀석들인가 싶어지는데.]
에드워드는 보로닌을 쏘아보았지만 보로닌은 에드워드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말만 이어나갈 뿐.
[아무리 프라임 특성상 경찰도 사설 업체라고 해도, 어쨌건 정식 경찰 제복 입고 도시 지킨다고 잰체하던 게 자네들 아닌가? 만에 하나 놈들이 이 조용한 주택지에서 돌발행동이라도 보이면 누가 뭘 어떻게 책임질 거지? 시시껄렁한 변명 따위 필요 없으니 자네들 겉모양새가 반이라도 맞다면 나가서 싸워. 최소한 난 그럴 테니까.]
그리고 무전 채널엔 두 번째 침묵이 이어졌다. 내키지 않을지언정 동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할 말이 없었으므로. 보로닌은 노골적으로 대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었다……에드워드는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하지만 뭘 위해서 자극한다는 걸까. 투지?
그래서 투지에 불타는 켈빈이 이를 악물고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렸다. 장갑차가 공격당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지만, UFO와 일직선상에 있는 곳이었는지라 UFO 주변 외계인들의 사선에 그대로 노출되는 장소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극히 간단한 방법이 쓰였다. 3개 조가 다른 장소에서 외계인들에게 열심히 총질을 하면 외계인들이 그들에게도 총질을 열심히 해줄 테고 그새 에드워드들의 찰리 조가 열심히 길을 가로질러 뛰어서 순찰차에 도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켈빈은 천천히 이어지는 기관단총 소리를 박자에 맞춰 세다가 일제 사격이 시작되고 몇 초쯤 지나고 나서 욕설을 마구 퍼부으며 뛰기 시작했다. 대여섯 발 제대로 맞춰도 꿈쩍도 안하는 넝마조각들에게 그렇게 쏴대서 효과가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에 내고 싶진 않았다. 어쨌건 먹히긴 먹혔다. 42구경 권총탄 사용하는 물건이 파괴력이래봤자 얼마나 있겠는가만은 최소한 총소리만큼은 외계인들의 신경을 쓰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물론 외계인들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가정 하의 이야기였지만.
켈빈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뛸 준비를 하고 있었던 에드워드는 왜 자신이 순찰대 출신이었고 왜 순찰차 기관총 분리법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ALERT에 들어와서 이렇게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것 따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뛰긴 뛰어야 했다. 아군의 엄호사격에 대응하는 광선줄기가 멀리 골목들 사이로 희미하게 스쳐지나갔지만 켈빈을 향해선 한 발도 날아온 게 없었다.
그리고 한 순간, 총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다가 외계인들의 광선무기의 날카로운 굉음이 이에 맞춰 몇 번 울리고 나면 아군이 위치를 바꾸는 동안 총성이 잦아들었다. 외계인들은 한방에 아군을 죽일 수 있었지만 아군은 그럴 수 없었다. 그러니 대원들로선 적당히 쏘다가 도망치고 다시 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론상으론 각 조가 교대로 사격하므로 사격에 빈틈이 없어야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협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켈빈이 무사히 길을 건너 첫 번째 순찰차 옆에 몸을 던져 엎드리자마자 에드워드는 박자를 열심히 세었고, 그렇게 잠깐 세다가 대체 박자라던가 제대로 짜여진 엄호사격 같은 게 존재하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아무 총소리나 울려 퍼지자마자 허겁지겁 뛰게 되었다. 도로 한복판에 그어진 노란 중앙선을 밟았을 무렵 아군의 사격이 아무 이유 없이 멈췄고, 완벽한 정적이 찾아드는 시점에서야 그 선택을 후회했다. 그래도 뛰는 수밖에 없었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 망그러진 순찰차 옆으로 몸을 날리고 바닥을 긁으며 순찰차 문에 헬멧 쓴 머리를 가볍게 부딪쳤다. 광선은 날아오지 않았다. 켈빈은 에드워드에게 히죽 웃고는 길 반대편에 남은 군터에게 건너오라고 손을 들어 보였다.
엄호사격은 분명 하고 있긴 했지만 이제 총성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보로닌은 아군을 어떻게 모아 공격을 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긴 했다. 그래봤자 외계인들의 광선 소리가 아군을 압도하고 있었는지라 어떻게 하진 못하는 성 싶었다. 그러니 우리도 목숨 걸고 4차선 도로를 건너온 값어치를 해야지. 켈빈이 투덜거리면서 일어서 찌그러진 지붕 위의 기관총 총신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도와줘!”
에드워드도 따라서 일어섰는데,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군터가 길은 안 건너오고 UFO 방향을 향해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UFO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파란 무언가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보였다. 넝마 한 놈쯤이 조금 가까운 곳에 있나 보구나. 외계인들의 사선에 노출되었겠네. 젠장. 에드워드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들이 스쳤다.
거의 동시에 푸른빛 광선이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엄청난 고열임을 상징하듯 후끈 하는 열기가 밀어닥치고, 무시무시한 높은 소음은 온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였다. 두 번째 사격도 빗나갈까? 아님 세 번째는? 켈빈은 순찰차 천장의 기관총 고정대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다 안 떨어지자 소리를 지르며 기관단총 개머리판으로 고정핀을 세 번 연달아 내리찍었다. 굵은 철사로 만들어진 개머리판은 세 번째 가격에서 휘어버렸다. 에드워드도 일어서서 기관총 손잡이를 붙들고 기관총 총구를 UFO 쪽으로 회전시켜 외계인을 쏴버리려 했다. 순찰차의 휘어진 지붕 덕에 사격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켈빈이 고함을 지르며 휘어진 개머리판을 동원해 네 번째로 고정핀을 찍으려는 사이 에드워드는 기관단총 총구를 핀에 가져다대고 방아쇠를 당겼고 둘 중 어느 것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기관총은 옆으로 미끄러지며 빠져나왔다. 고정대가 휘고 깨져나간 핀 조각이 튀어올랐다. 기관총 손잡이는 켈빈보다는 에드워드에게 가까웠다.
[[B]] “어엎드으려어어억!”[[/B]]
에드워드는 목청껏 외치면서 기관총 손잡이를 붙들고 방아쇠를 깊게 눌렀다. 조준할 시간은 없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조준기 사이로 뭔가가 보였고 냅다 갈겨버렸다. 그리고 기관총 소염기에서 터져나온 발사화염 덕에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외계인들의 광선무기가 몇 발 더 날아왔으며 명중한 광선 덕에 순찰차 지붕이 반쯤 뜯겨나갔다. 에드워드는 여전히 방아쇠를 누르고 있었고 지독한 반동이 느껴졌는데, 그건 그만큼 강력한 탄종을 사용한다는 것이었기에 좋은 뜻이었다. 하마터면 총을 놓칠 뻔했지만 꽉 붙잡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켈빈은……켈빈은?
이미 순찰차는 이전에도 교전을 몇 번 치러 탄약을 소모했던 듯 기관총 탄통은 일이 초만에 비어버렸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기관총 약실 위로, 그리고 부서져나간 순찰차 지붕 너머로 멀리, 아스팔트 바닥에 벌집이 되어 누워있는 외계인이 보였다. 켈빈은 찌그러진 순찰차 보닛 위에 엎드려 있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 그렇게 크게 외치지 마. 아니면 헤드셋 끄고 외치던가.”
어쨌건 재장전이 급했다. 순찰차에 실려 있던 예비탄통은 녹아내린 순찰차 유리창 안에 손을 넣어 조수석에서 꺼낼 수 있었다. 에드워드로서야 핸들 위에 놓인 시체에 손이 닿지 않게 살짝 주저해야 했지만 한가한 행동이었다. 외계인들은 이제 에드워드 쪽 방향으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는 화력의 집중이었으므로. 덕분에 에드워드는 새 탄통으로 갈아 끼우자마자 조금 멀리 있는 UFO와 그 주변에 가뭇하게 보이는 외계인 넝마조각들에게 사격을 실시해야 했으며 탄통을 세 개밖에 못 찾은 덕에 삼점사로 맞춰놓고 쏴야 했다. 한편 외계인들은 그들의 광선 무기로 삼점사를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단발만 해도 너무 세니까.
그동안 켈빈은 두 번째 순찰차까지 뛰어가서 기관총을 떼어냈다. 군터는 광선에 가슴팍을 태워먹을 뻔한 위기를 두 번 넘기곤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와서 켈빈이 건네주는 기관총을 건네받았다. 광선이 몇 번 더 날아왔지만 그리 정확하진 않았다. 그 사격의 결과물로 뒤집어져 있던 세 번째 순찰차 트렁크에서 해치를 관통하는 구멍이 뚫렸고 켈빈은 녹아내린 고정대에서 기관총을 간단히 떼어냈다.
에드워드는 심호흡을 해가며 조금씩 쏘아보았지만 외계인들은 비교적 여유 있게 사격을 조금씩 가하면서 UFO 주변의 파편들 뒤로 천천히 이동했다. 거리가 먼데다 엄폐물도 있으니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입맛을 다셨다. 이놈들 봐라. 당황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에드워드들의 기관총 사격과 아군의 기관단총 사격에 응사하면서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갈 뿐.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엄호사격을 하는 기관단총에 꽤 과도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넝마 두엇은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아군 또한 적들의 화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는 광선무기에 맞은 성도 싶었지만 혼란스런 상황에서 제대로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최소한 외계인들은 예닐곱 마리는 더 있었고 모두 광선총을 갖고 있었다. 군터와 켈빈도 사격을 개시했지만 탄약도 그리 많지 않은 기관총 세 정 따위로 화력을 맞먹으려 드는 건 힘들었다. 빈발하는 놈들의 사격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망할 놈들, 망할 외계인들, 망할 기관총……총성이 난잡하게 이어지고 외계인들의 광선무기 소리도 하늘을 메웠다. 화력전으론 어차피 이길 수 없다. 그럼 이길 방법은 있긴 한 걸까.
갑작스레 분대 무전망에 대고 보로닌이 외쳤다.
“찰리 교차 전진! 두 명이 쏘고 한 명씩 전진한다! 나머지 대원들도 준비하고 돌격!”
돌격? 이 상황에서? 반문조차 나올 여력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못 들은 것 마냥 이제는 녹아내린 구멍이 차체의 절반쯤은 차지하는 순찰차 뒤로 몸을 잠시 숨겼다가 다음 탄통을 끼워 넣는 일에 몰두했다. 기관총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약실에선 짙은 회색 연기가 흘러나왔다. 장전손잡이는 다소 뻑뻑하게 당겨지며 약실에 새 탄약을 밀어 넣었다. 보로닌이 다시 외쳤다.
“뛰어! 안 그러면 후퇴할 거야? 뛰어!”
주춤, 마지막 문장의 강세에 에드워드는 마치 뛰쳐나갈 것처럼 다리를 떨었다. 뭔가 반사 신경을 자극한 것 같았다고 하면 과장일까. 보로닌이 있는 힘껏 외쳤다.
[[B]] “뛰엇!”[[/B]]
귀가 아팠다. 반사 신경을 자극했다는 건 아마 단순한 과장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터가 뛰었고 캘빈이 뛰었고 에드워드가 뛰었다. 에드워드는 이를 있는 힘껏 악물었다. 애당초 잡아들고 다니라고 만들어지지 않은 총열덮개가 지속적인 사격으로 인해 달아올라서 왼손에 낀 장갑을 태우고 화상을 입히고 있었다. 기관총은 애당초 차량탑재용이라 별도 손잡이도 없었기에 손으로 잡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럽게 무거웠다.
미친 듯이 UFO를 향해 뛰어가 바닥에 엎드려 기관총을 내려놓고 쏴댔다. 흐릿한 초점의 가늠쇠와 가늠자 너머로는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덜컹덜컹덜컹, 개머리판의 격렬한 반동이 어깨뼈를 두들겨대며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발사화염은 앞이 흐릿해질 정도로 눈부셨다. 엄폐물이니 잔탄수니 과열이니 신경 쓸 수 없었다. 후끈한 바람이 밀려오면 그제서야 외계인들이 자기를 노리고 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얼마 안 가 잊어버렸다. 보로닌이 뛰라고 하면 뛰었고 서라고 하면 섰으며 쏘라고 하면 쐈고 말라고 하면 말았다. 누군가가 앞으로 뛰어가 엎드리면 그 뒤를 쫓아가 뛰어서 엎드리고 냅다 긁었다. 모든 건 반사적이었다.
가끔씩 이성의 끈이 반사신경 사이로 희미하게 고개를 쳐들 때면, 단편적인 사고가 외계인들의 위치를 향해 조준점을 수정했고 희미한 장면들을 단속적으로 기억에 남기곤 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듯한 광선무기의 발사음과, 비틀거리는 넝마들과 그 옆에서 대조적으로 제대로 서서 자신을 향해 쏴대는 넝마들. 아마도 자신의 목소리였던 듯한 요란한 고함 소리.
에드워드는 아마 한 마리 정도는 죽였으리라고 생각했다. 그저 깨져나간 UFO 조각 위로 파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가 총을 쏘자 아래로 쑥 꺼져버린 게 전부였지만 아마 맞추긴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숨어버렸던 건지도 몰랐지만 어쨌건 그랬다 싶었다. 어차피 거치해서 쏴야 하는 기관총을 대충 손으로 받쳐 들고 쏴대는 것이니만치 점사건 연사건 맞을 것 같지도 않고 UFO 주변에 피어오르는 연기로 봐서 탄착군도 개판이었지만 그래도 그랬을 거다 싶었다. 그냥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UFO를 향해 반쯤 전진한 시점에서 에드워드는 문득 방아쇠를 당겨도 총이 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어째서인지 몰라 잠시 멈칫거렸다. 그리고 겨우 어떻게 된 건지 생각하고 마지막 탄통을 밀어 넣었다. 나가지 않았다. 탄통은 비어 있었다. 이미 다 썼던 걸 아무 생각 없이 챙겨들었던지 뭘 헷갈렸던 건지 몰라도 비어 있었다. 기관총을 내버리고, 등 뒤에서 총끈으로 매달려 있는 기관단총을 돌려들고 UFO 주변에 아무렇게나 쏘아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UFO 바로 옆 골목에서 기관단총을 덜렁이는 아군들이 뛰쳐나와 수류탄을 투척했고 폭발이 일어나 파란 살점들과 수류탄 파편과 금속 조각이 날렸으며 무언가가 연쇄 폭발했는지 폭염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폭발의 색깔은 희한하게도 보랏빛이었는데, 에드워드는 문득 자기 눈의 색감이 발사화염으로 인해 손상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에드워드는 기관단총 탄창이 비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도 새 탄창으로 갈아 끼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총성은 멎어 있었다. 끝났나. 파편이 흩어진 UFO 주변에는 아무 것도 서 있지 않았다. 멍청히 빈 총을 들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을 노려보고 있는 자신이 문득 멍청하게 생각되었다. 다 끝났나. 왠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긴 했지만, 군터는 꽤 멀리 뒤에 있었고 켈빈도 자기보다 십여 미터는 뒤쳐져 있었다. 혼자 마구잡이로 뛰쳐나갔던 것 같았다. 좀 어렵게 어렵게 일어선 켈빈이 UFO 방향을 가리켰다. 에드워드는 애써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움직여 몸을 바로세웠다. 대원들은 비틀거리며 UFO 주변에 모여든 다른 대원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타버린 장갑의 왼손과 개머리판 반동을 흡수했던 오른쪽 어깨와 엎드릴 때마다 바닥에 부딪혔던 무릎과 기관총 무게를 지탱했던 팔과, 온몸이 다 아팠다. 덕분에 에드워드는 힘겹게 비척이며 걸어야 했고 눈앞이 어질거리는 탓에 매 걸음마다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좀비라도 되면 이런 기분일까.
겨우 도착해서 UFO 주변에 집결한 대원들을 대충 세어보니 9명으로 줄어 있었다. 누군가가 죽었나. 아마 죽었나보지. 에드워드는 브라보 조와 델타 조에서 몇 명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는데 누군지는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브라보 조장을 위시해서 몇몇은 가까운 곳에서 광선이 스치고 지나간 듯 옷에 그을린 자국도 남아 있었다. 그런데 누가 죽었던 거지. 정말 좀비라도 되어서 뇌가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걸까.
보로닌이 운을 떼었다. 기관단총을 받쳐 든 채로 현실과 괴리된 듯한 무심한 말투로.
“알파는 장비 챙기고 브라보는 쓸만한 차량 없나 찾아봐라. 델타는 확인사살하고. 아군 시체나 외계인들은 내버려둬. 5분 안에 다음 지점으로 이동한다. UFO가 한 대 더 추락했다고 했는데 여전히 경찰 본부와는 연락이 안 되고 있다. 지원도 없고. 그러니 우리가 가서 확인해봐야지.”
그 말이 에드워드를 짧게나마 현실로 끌어내렸다. 현실을 인지하고 감정을 부여하고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발끈했다. 온몸이 쑤시는 것도 간단히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아니 누구라도 발끈하지 않을 수 없을 성 싶었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로닌의 알파 조원들도 그랬고 군터도 그랬고 켈빈도 그랬다. 지친 목소리로 내뱉건 안 뱉건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못합니다, 너무합니다, 아군 시체 정도는 수습합시다, 내버려 둡시다……그리고 뭔지 모를 힘이 몸에서 생겨나는 걸 느끼며 에드워드는 입을 열었다.
“정말……너무하십니다. 솔직히 지쳤습니다……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생각해보니 아마 목이 쉰 것 같았다. 그에 상관없이 보로닌은 앞으로 나선 에드워드를 빤히 바라보다가, 헬멧의 투명한 바이저를 올리고 오른손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핏발이 선 흰자위가 더러워진 장갑 손가락에 스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에드워드는 보로닌도 목이 쉬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자기 입장에서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서 에드워드는 침묵했고 보로닌은 생각을 바꾸었다. 순찰차에서 소화기를 꺼내어 장갑차의 불을 끄고, 상체가 새까맣게 타버린 브라보 조와 델타 조 대원의 잔해를 모아 차 안에 놓는 동안 누군가는 조용히 눈물도 흘렸다. 에드워드는 울지 않았다. 일 주일 반을 같이 지냈던 사람이었는데도 여전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다른 조원들이 다 죽고 혼자 남은 델타 조원은 보이는 외계인들마다, 안 그래도 넝마 같은 몸을 더 넝마처럼 만들려고 하는 듯 마구 걷어차고 머리에 대고 총을 쏘아댔다. 녹색 피가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녹색일지언정 놈들도 피를 흘렸다. 그리고 놈들의 시퍼런 넝마 같은 몸에도 머리가 있긴 했다. 희한하게도 징그럽고 동그란 큰 눈 두 개와 울퉁불퉁한 이빨이 달린 입도 있었다.
혹여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두 놈쯤 살아서 그 눈을 조금씩 움직이고 입을 벌려대면 보로닌은 외계인 주변에 떨어져 있는 광선무기를 겨냥해 총을 쏘았다. 그러면 보랏빛 섬광이 터지며 주변을 불태워버렸다. 수류탄이 유폭시킨 게 호버카 연료탱크라기보다는 놈들의 무기였던 모양이었다. 수류탄 투척조는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알파 조원들은 빈 기관총 탄통만 몇 개 주워올렸다 바닥에 던져버렸다. 타버린 장갑차 안에서는 건질만한 건 없었지만 순찰차에는 예비용 기관탄총 탄창이 꽤 더 있었긴 했다. 에드워드와 브라보 조원들은 다리가 조금 덜 후들거릴 때까지 UFO 주변에 앉아 총을 꼬나들고 경계하는 척 하면서 그냥 멍청히 있었다. 에드워드는……여전히 별로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 싶었다. 눈앞에 현실의 증거는 수도 없이 널려 있는데도, 뻔히 보고 듣고 있는데도 현실과 괴리된 듯한 느낌. 현실적인 건 여전히 어깨가 뻐근했고 온몸이 쑤셨다는 것뿐이었다. 정말로 좀비가 되기라도 한 건가.
브라보 조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블록 너머에서 쓸만한 9인승 승합차를 찾아냈다. 보로닌이 PDA를 차 문에 연결하고 버튼을 누르자 공무용 프로그램이 가동되어 차를 ‘징발’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아군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공중전은 진작 끝난 듯 주변은 침묵하기만 했고 인적이라곤 없는 성 싶었다. 무전도 먹히지 않았다. 전화를 포함한 민간 네트워크조차도 작동하지 않았다. 민간인들은 여전히 집 안에 숨어있는 듯 싶었다.
보로닌이 PDA의 지도를 봐가며 UFO가 추락했다는 지점으로 차를 몰고 가는 동안 에드워드는 그저 멍청히 징발된 차 문 안에 기대어 흔들리는 창 밖을 보았다. UFO가 추락했다는 공업지구도 에드워드들이 있었던 장소와 상황이 비슷한 성 싶었다. 역시나 별 인적 없는 공장들 사이로 망가진 작업용 비인간형 로봇들과 뭔가 전자 제품이 들어 있던 상자들이 집하장에 널려 있었고, UFO가 추락한 지점에서 솟는 검은 연기조차도 뭔가 비슷한 느낌이었다.
에드워드는 전투하차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하면서 멍청히 기관단총을 꺼내려 했는데, 의외로 보로닌이 별 말 없이 차를 세웠다. 집하장 주변에 메가폴 순찰차들이 기관총 총구를 하늘에 세워 올린 채로 멈춰서 있었다. UFO는 중앙 부분이 함몰되어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고, UFO 바로 앞에는 어쩐지 친숙한 모양의 장갑차가 양쪽에 그려놓은 기동대 마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멈춰서 있었다. 그 주변으론 기동대의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의 일부가 흩어져 있었다. 광선총에 불타버렸기에 피는 한 방울도 없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외계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작업용 로봇조차도 움직이지 않는 적막감. 그야말로 아무도 살아있지 않다는 게, 그리고 UFO 안의 외계인들은 어딘가로 떠나버렸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에드워드는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무수한 생각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눈을 감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었다. 화상을 입은 왼손은 여전히 아팠다.
2084년 3월 18일 토요일 오후 한 시 이십 분, 메가폴 기술자들이 긴급 소집되어 다운된 네트워크 서버를 복구하고 민간 사업체들이 통신을 회복시키는 데는 1시간 반이 조금 더 걸렸다. 그리고 프라임 거의 전 구역에 걸쳐 일어난 외계인과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는 데에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 걸렸다…….
----------------------------------
요즘 창작란이 갑자기 불타는군요. 제가 연재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데 갑자기 다들 왜 이러시나. -_- 어쨌건 이로서 비축분 끝입니다. 5일 간격의 연재를 시도해왔지만 다음 분량은 다소 기약 없을 듯. (게다가, 어차피 계절학기 마치면 부산 내려갈 테고 인터넷도 못할 테니…….)
Our last, best hope for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