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요즘도 여기 오시는 분 없겠죠.
X-COM : Apocalypse란 게임의 팬픽입니다. 구상하고 이쯤까지 썼던 건 이 게임에 미치도록 빠져있었던 무렵이었으니 고등학교 때 물건일 겁니다. 그 뒤로 딴에는 단편이니 중편이니 뭐니 쓴다고 낑낑거려 봤지만, 제대로 되지도 않은 글솜씨로 완전 창작 설정에 플롯라인 가지고 몇 년을 낑낑대며 골치 썩이느니 차라리 남의 물건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잘 아시겠지만, 팬픽은 원작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그 한계가 명확한 장르입니다. (저처럼 원작의 창의적 재해석이나 플롯을 꼬는 것 따위하곤 별로 친하지 않은 녀석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무엇보다도 글 솜씨가 없으면 거기에 맞는 수준 낮은 글이라도 써야 하고, 군대는 언제 갈지 모르는데 뭐라도 써놓는 게 낫겠고……그런 김에 쓰던 거나 마무리 지어야죠.
……고로 힙지님은 각성하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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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0년, 사이도니아와 심해저의 외계인 기지가 파괴되고 인류는 영원하리라 생각되는 평화를 누리기 시작했다. 무려 두 차례나 되는 외계인의 침략을 거뜬히 막아낸 인류는 이제 그들 앞을 가로막을 상대는 그 누구도 없으리라 생각하며 자축연을 들었다. 그리고 40년, 그 동안 인류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외계인들보다 더욱 더 대단한 적이었던, 바로 그들 자신을.
비록 성공적으로 막아냈긴 했지만, 두 차례의 외계인 침공이 인류 사회에 준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전 세기부터 불거졌던 각종 문제점들이 점차 심각해졌다. 인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는데 반해 지나친 환경오염과 지나친 폭력. 삶의 질은 극도로 저하되었다. 이윽고 변두리 지역에는 군데군데 비거주구역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를 떠나 화성과 달과 보다 더 먼 행성으로 떠나가는 가운데 인류는 지구 최후의 희망을 건 실험적 자급자족 밀폐도시, 메가 프라임(Mega-prime)를 건설했다.
몇 년이 지나자, 지구상에 남아있게 된 인류는 구 문명의 대도시 잔재 위에 건설된 돔형 실험도시에 갇혀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에 남은 것은 오직 끝도 없는 황무지 뿐. 한때 초록별로 극찬 받던 지구는 이미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들만큼 황폐화된 상태였다.
그래도 밀폐된 어항 속에서의 삶과 같은 생활은 꽤나 풍족하고 평화로운 것처럼 생각되기 쉬웠다. 범죄도 사회 문제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실험도시에 들어선 사람들은 구 문명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에 차 있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점진적으로 사회 내부 구조를 갉아먹는 갱들의 등장과, 폭력 사건, 신흥 사이비 종교의 등장, 각종 소요 사태, 빈민 발생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갑작스럽게 생겨난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경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한 채 14년째의 봄을 맞고 있었다.
2084년 3월 7일 화요일. 오전 7시 정각.
"정규 시스템 검사 시간. 1구역 검사를 준비합니다."
[알았음. TV 채널 온라인. 점검 바람.]
[점검. 전 채널 송신 중.]
오퍼레이터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화면에 고가도로의 전경이 나타났다. 막 출근해서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입가에 가져다 든 메가폴 폐쇄회로 담당, 레온 허드슨 경위는 화면을 쳐다보며 커피를 머금고 웅얼거렸다.
"날씨 좋군. 오늘도 상쾌한 아침이야."
"라저. 채널 온라인. 섹터 1부터 검사 시작하겠다……흐린데요, 뭘."
동영상 전송을 시작시켜 놓은 오퍼레이터가 지나가듯 대답했다. 교통 상황 안내용으로 나갈 화면이나 전송시키는 것이 사실상 아침의 교통과 업무의 전부였다. 프라임의 교통 통제 컴퓨터 덕분에, 가끔씩 숙취가 덜 풀린 누군가가 수동 조작으로 가로수를 들이받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교통 체증보다 더 큰 문제점은 없는 정도였으니까. 교통 체증만은 컴퓨터 통제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난 몇 개월 동안은 이곳의 업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이곳저곳에서 총격전이나 전투가 벌어지는 횟수가 늘었고, 가끔씩은 공중전도, 그래봤자 정말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전투기가 회피기동을 펼쳐대는 것이라기보단 호버카 몇 대간의 총격전에 불과할 정도였지만, 도시 곳곳에 심어진 2천 7백여 개의 카메라에 포착되곤 했었다. 어차피 메가폴은 군 조직도 아니었기에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직접 화면을 전송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 또한 그들 담당의 일로 추가되었다. 덕분에 뭔지 모를 중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잖아. 허드슨 경위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는 속으로 변명했다.
"섹터 2에서 진행 중……."
언제나처럼 오퍼레이터가 정규 업무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계속해나가는 것을 종이컵을 입에 문 상태로 흘려듣던 허드슨 경위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들의 행렬 사이를 언제나처럼 멍한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 화면에서 시선을 멈춰 세웠다.
"잠깐, 저거 좀 확대해 봐."
"이거요?"
오퍼레이터는 화면 하나를 메인 스크린에 띄워 올렸다. 고배율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화면이 도트를 남기며 확대되었다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도로 근처에 차를 세운 한 남자의 모습이 역시 실시간으로 전송되자 컴퓨터가 재빨리 상황을 분석해 지시를 내렸고, 순찰대의 무전이 이어졌다.
[확인 중이다. HQ. H8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거동수상자. 무기를 은닉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경위는 종이컵을 콘솔 위에 내려놓고 말을 끊었다.
"아니, 1224번에 포착된 저놈. 좌측으로 30도 패닝시켜서……위로 조금 더 올려 봐. 보이나?"
다시 화면에 도트가 가득 찼다가 하나의 물체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오퍼레이터는 살짝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메인 스크린 가득히 나타난 기하학적 모양의 물체를 바라보았다. 반투명한 구형의 물질 속에서 느린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정사면체. 화면이 더 줌 인 되면서 설핏 스쳐 지나가는 차량의 실루엣은 그 물체의 크기가 십여 미터는 더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컴퓨터가 분석을 시도했고, 잠시 주춤거리더니 정보 부족이라는 결과를 내놓고는 정지했다. 경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저게 뭐 같나?"
"알아봐야죠. 섹터 1-0-0-1B에 가까이 있는 순찰대는 연락 바란다."
[미확인 물체 발견. 조사 바람. H21 확인.]
"대기 요망. 미확인 물체 출현. H21, H43 이동 바람. 전 유닛 경계태세."
[알고 있다. 여기는 H21. 육안 관측. 현재 거리 약 200. 접근 중.]
오퍼레이터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메인 스크린에 겹쳐진 레이더 윈도우에서 H21이란 부호가 붙은 점이 미확인 물체 방향으로 움직이고, 다른 점들이 움직이는 속도도 다소 증가되었다. 경사가 그 정사면체가 회전하는 속도 또한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그 탓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컴퓨터가 바쁘게 정보를 표시하는 너머로 갑자기 화면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굉음과 함께 폭발하듯 번쩍였다. 화면이 일순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밝아지자 곧 안전장치가 켜지면서 차광 모드로 바뀌었고, 놀란 오퍼레이터가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이미 그 구형 물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경위가 당황해서 외쳤다.
"……뭐야? 잠깐, 방금 무언가가……."
경위가 소리 지르는 너머로 오퍼레이터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헤드셋에 대고 외치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크기에서부터 색깔까지 잡다한 정보들을 화면에 죽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재차 정보 부족을 표시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경위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허공에 뜬 보랏빛의 원반형 물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원반형의 물체, 정확히 말하면 '원반'이라는 그 단어에 대해 마음속으로 액센트를 주고 있었다. 과거, 인류가 겪었던 두 차례의 전쟁. 역사책에서 읽혔고, 인류가 이 돔 도시에 갇혀 살게 된 원인. 비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경위는 심호흡을 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비상 걸고, 남는 거 다 긁어모아서 그쪽으로 돌린다. 필요하면 무기 사용 허가도 내리고."
오퍼레이터는 반문 한 마디 없이 그 지시를 따랐다. 무전채널이 더욱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HQ. 여기는 H21. 미확인 비행 물체, 3-0-7. 현 속도 120으로 남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목표물을 확인했나?"
[여기는 H43. 육안으로 보인다. 다음 지시는?]
"잠깐 기다리도록. 우리는 아직 목표물을 확인하지……."
[HQ, 응답바람. 여기는 H21. 47번 위에서 정지했다. 바로 아래에서……목표물의……광선…….]
오퍼레이터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잡음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너머로, 무언가 전혀 새로운, 그럴 리가 없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었다. 원반형의 물체 아래에서 보라색의 빛줄기가 뻗어져 나왔고, 그것이 닿는 곳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 아래에선 화염에 휩싸인 차량들이 고가도로 위에서 한데 엉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연기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무전 채널에서 말들이 터져 나왔다.
[H21! 공격받고 있다. 공격받고 있다! 공격…….]
[……여기는 H43. 현 상황이 보이는가? 현 상황을 확인해주기 바란다! HQ!]
[H21! H21! 응답하라! 젠장! 응답 없음!]
[……HQ, 들리는가? 지시를 내려주기 바란다! 지금 공격받고 있다! 공겨……바…….]
비명을 늘어놓던 무전기가 갑작스레 잡음에 휩싸였고, CCTV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제서야 말없이 서있던 허드슨 경위는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젠장! 이딴 건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야!"
날씨는 흐렸지만 그렇다고 춥지는 않았다. 메가 프라임. 지구의 모든 화석연료를 다 태워먹은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이루어낸 지구온난화에서도 살아남은 이곳의 돔 안은 그래도 정상적인 사계절을 따르고 있었고, 그 덕분에 도시의 전경은 활기찰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도로가 출근길 차량으로 붐비는 시간임에도, 한적한 자동화된 공장지대 한복판이기에 교통량이 거의 없는 도로 위로 P26이란 인식번호를 단 순찰차 한 대가 통과하고 있었다. 중량, 그리고 중장갑. 200마력짜리 하이브리드 수소-전기 로터리 엔진에 철갑탄을 막을 수 있는 1센티미터 두께의 방탄판과 방탄유리의 조합은 상자처럼 각진 형태의 강인한 사륜구동 순찰차를 만들어냈다. 어찌 보면 군대에서나 사용할법한 이런 차량이 지금 이 도시 위를 오가야만 했었던 건, 결국은 극도로 나빠진 도시의 치안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긴급사태. 전 AA 유닛. 섹터 1-0-0-1B. 24-1 블록으로 출동.]
"여기는 P26. 알겠다. 이스트 베르너 에버뉴의 중간쯤이로군. 또 CA 상황인가?"
[아니다. 상황 31. 대공병장을 준비하도록. 이후 좌표는 무전으로 실시간 수정하겠다. 이상.]
"……맙소사."
무전기의 리시버를 손에 든 채 운전석의 에드워드 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CA란 소리가 나오자마자 조수석에 앉아 항법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던, 그래서 마지막 통신 내용을 듣지 못했던 클레어 크로셋이 의아한 눈초리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멍청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사이렌의 스위치를 올리고 수동조작으로 전환한 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마찰하면서 요란한 파열음을 냈고, 클레어는 가속도 때문에 의자에 몸이 착 달라붙는 것을 느끼면서 물었다.
"뭐라고 했기에?"
"코드 31……이게 걸리다니."
"……맙소사. 큰 거 터졌나 본데."
클레어가 멍청히 중얼거렸고, 순찰차는 경광등 빛을 번쩍이면서 공장지대를 빠져나가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멀리 건물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H21과 H43번 경찰 호버카가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선제공격에 격추된 후, 그 다음으로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근처의 경찰서에서 긴급 발진한 H14와 H15의 2대의 경찰 호버카였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었지만, 이미 그 동안 UFO는 고가도로를 몇 조각으로 절단해놓고, 근처의 상가 지붕들을 하나씩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두 대의 호버카는 선제공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파일럿들은 한껏 긴장하면서 동시에 기도했고,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발사!]
약 200미터 거리에서 흥분한 파일럿의 목소리와 함께 호버카에 장착된 20mm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분당 3600발의 발사속도로 수백 발의 20mm 소이유탄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UFO를 향해 날아들었고, 컴퓨터 사격 통제 장치의 지휘에 따라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했으며, 충격신관이 분말소이제를 점화시켜 불꽃을 휘황하게 튕겨올렸다. 그러나 그 직후 UFO는 여유 있게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나머지 소이유탄들을 완벽하게 피해버렸고 빗나간 기관포탄들은 그대로 상가 내부에 들이박혔다. 상가 건물은 화력의 집중에 폭발을 일으키며 그대로 폭삭 내려앉은 반면, 수십 발은 더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UFO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동해 반대편 건물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져갔다.
[젠장! 이빨도 안 박힌다!]
[여기는 H14. 중화기 지원이나 철갑탄이 필요하다. 현재 목표는 웨스트 베르너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두 대의 호버카는 조심스럽게 UFO가 사라져간 반대편 건물 쪽을 쫓아 진행해갔다. 1천만 명짜리 돔형 도시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이 도시 자체는 실험도시였던 만큼 기존 방식의 고층 건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눈 닿는 곳은 주로 십수 층 정도의 납작하고 독특한 설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적어도 건축가들은 동화 속의 도시라도 만들려고 했었던 것 같아보였다. 더군다나 주상복합지역이라면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나지막하고 화려한 색상의 상가 건물 위에서 조심스럽게 선회하면서 아래를 주시했지만 목표물은 보이지 않았다.
[목표물은 시계 범위 안에 있다. CCTV 카메라에 보이지 않지만 그 주변을 빠져나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오버.]
[H24, H25, H26, H27, 도착까지 1분 30초. 조금만 기다려라.]
[카피. 어쩔 수 없다. 지원 올 때까지 흩어져서 찾자.]
H15를 반대편으로 보내고, 혼자 남게 된 H14의 파일럿은 혀를 차며 스캐너를 켜고 기체를 느리게 선회시켰다. 머릿속으로는 소이탄의 불꽃을 요란하게 튕겨내던 UFO의 모습이 스쳐가고 있었고, 파일럿으로서는 이 호버카의 무기로선 피해를 입히지 못할 거란 사실에 등이 뻣뻣히 굳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긴 했다. 조종간을 쥔 손가락을 쥐었다 펴고,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린 뒤 주변 환경에 시선을 집중했다. 여전히 주변은 거대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지만, 다행히도 요란한 폭발 덕분에 사람들은 대피한 듯 한산해 보였다. 지난 얼마간 갱들과의 전쟁이 요란했던 덕택에 시민들 또한 대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분명히 근처에 UFO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아무리 못 잡아도 십수 미터는 될 그 거대한 덩치가 도심지에 숨어 있을 만한 곳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숨어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지원이 도착해 또다른 구역을 맡아 비행하는 모습이 지도 화면에 떠오르고, 블록 끝부분에 도달했을 때 화려한 차림의 젊은 여자 두 명이 종종걸음으로 한산한 인도 위를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파일럿은 혀를 다시 차고는 외부 스피커로 대피령을 두 번 반복해서 방송했다. 여자들이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으로 향하는 모습에 그럭저럭 만족한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버카가 위로 튕겨올랐다.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안전벨트가 자신을 꼭 옥죄는 걸 느끼며 파일럿은 급히 아래쪽을 살폈다. 차 주변으로 보랏빛 원반이 넓게 퍼져나온 모습이 보였다.
제기랄, 아래쪽에서……착륙해 있다가 들이받기라도 한 건가? 급히 추진기를 가동시켜 앞쪽으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했지만, 다음 순간 UFO는 튕기듯 놀라운 가속도로 급하강했고 받치고 있던 것이 사라져버린 호버카는 연직 투상 궤도에 따라 낙하하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무섭게 다가오자 파일럿은 급히 역분사하여 기체를 제어하려 시도했고, 간신히 움직임이 자유로워지자 기체를 뒤집어 UFO를 정조준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아래를 봄과 거의 동시에 UFO가 상상 밖의 가속도로 급상승하면서 호버카 지붕을 다시 들이박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P26번 순찰차는 사이렌 소리를 길게 끌며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운전석을 기어올라가 천장의 해치를 열었다. 시속 70km라는, 러시아워의 시내에서 내긴 확실히 무리가 따르는 속도가 주는 바람이 거칠게 불어닥쳤지만, 맞바람을 받으면서도 그는 억지로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차 지붕 위에 장착되어 있던 원통 중 하나를 들어올려 뚜껑을 열었다. 이걸 사용할 날이 오다니. 에드워드는 중얼거리며 원통에서 GLM 발사기를 꺼내어 전동식 발사대에 얹고는 고정 볼트를 죄었다. 두 번째 원통에는 GLM 발사체가 들어 있었고, 에드워드는 발사기에 발사체를 꽂은 다음 스위치를 올렸다. 전기 모터의 소음이 귓전에 울렸다.
"앞길이 막혔어!"
안전장치를 뽑은 뒤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발사기의 조종장치와 씨름하던 에드워드는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클레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였다. 갑작스런 교전으로 인한 교통 통제로 멈춰선 승용차들이 차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헤드셋을 잡고 무전 채널을 바꾸었다.
[현재 24-3에서 25-7 방향으로 이동 중. 브락턴 스트리트로 집결지를 변경하…….]
"다음 코너에서 우회전! 우회전해!"
조수석에서 보조 컨트롤러인 조이스틱으로 운전하고 있던 클레어 경사는 급히 스틱을 돌렸다. 역시 그리 익숙하다 볼 수 없는 조종장치였지만, 찢어지는 파열음을 내면서도 순찰차는 교차로 모퉁이를 부드럽게 돌아 옆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에드워드는 몇몇 동료 순찰차들이 대공병장을 완비한 상태로 삼각대형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훈련대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쩐지 에드워드는 그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에 살짝 몸을 떨었다. 대공화망을 구성중인 순찰차 한가운데에 클레어가 차를 세우자 에드워드는 발사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안전핀이 뽑힌 일회용 냉각팩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적외선 시커를 냉각시켰고, 곧이어 쌍안식 조준 장치가 선명한 영상을 표시했다.
[여기는 P31. 현재 4대가 브락턴 스트리트 3/4 지점에서 대기 중이다. 이쪽으로 유도하도록.]
[H15. 알겠다. 800미터 지점에서 그쪽으로 가고 있다.]
시커 냉각이 끝나자 에드워드는 조준기에 눈을 가져다 댄 상태로 긴장해서는 대기했다. 이 도시가 아무리 난장판이라지만 이젠 경찰이 지대공 미사일까지 운용하다니. 이걸 쓸 날이 오다니. 이 GLM(Ground Launched Missile)식의 SAM 발사기는 차량장착형 전동식이긴 했지만, 사정거리나 파괴력 면에서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모델이었다. 시가 안에서 탄두 중량이 십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대형 MANPAD 같은 걸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GLM이 상대해야 할 적 또한 소형 호버카 정도였으니 별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게 교육 시간에 강사가 가르쳐준 결론이었고, 에드워드는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손바닥에 배어드는 땀을 바지자락에 한 번 문질러 버리고는 다시 트리거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통합 디스플레이가 호버카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음을 표시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목표물은 미확인 비행 물체라는 것이다. 반복한다, 목표물은 미확인 비행 물체다. 그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본부에서의 무전 메시지가 날아들었고, 에드워드는 목표물이 나타날 방향인 병원 건물 위쪽에 발사기를 겨냥한 채로, 잠시 아연해서는 메시지를 들었다. 유난히 강조해 말하는 '미확인 비행 물체'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는 느낌이 들기가 무섭게, 조준장치 너머로 원반형의 물체가 건물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온 원반형 물체 뒤를 호버카들이 쫓았다. 20mm 기관포가 연이어 발사되고, 공대공 로켓탄두가 날아들었다. 로켓탄 하나에 명중당한 UFO가 비틀거리다 광선을 내쏘았고 호버카 한 대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지상의 순찰차 4대에 탄 모두가 멍청한 표정으로 '미확인 비행 물체'와 호버카가 벌이는 격전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UFO가 호버카 한 대를 격추시키고 나머지 여섯 대의 기관포와 로켓탄 세례를 받으며 건너편 도로로 빠져나갈 때까지, 지상에 있던 대원들은 그 누구도 미처 발사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로 멍청히 있었다. 본부에서 급히 발사 지시를 내렸지만, 대원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언지 상기해냈을 무렵에는 호버카건 UFO건 전부 다가 건너편의 월 스트리트로 빠져나간 뒤였다. 에드워드는 아무 것도 없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즉시 헤드셋을 잡고는 외쳤다.
"뭐해! 쫓아가자!"
UFO를 추격하던 호버카 파일럿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100년 전이었다면 대전차병기로도 사용 가능했고, 그보다 100년 더 전이었다면 대함병기로도 쓰였을 20mm 기관포는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재니터(Janitor) 공대공 로켓탄도 별 차이가 없었다. 사실상 재니터는 2차 세계대전 때나 썼을 법한 2.75인치 대공 로켓이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보통은 대지상 타격용으로 아주 드물게 장착되었던 걸 비상 상태라고 달고 떴던 것이다. 전적으로 호버카와의 전투를 상정해놓고 설치된 무장이었기에 지금과 같이 UFO와 맞닥뜨린다는 지극히 해괴망칙한 상황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한 대가 광선에 맞더니 그 자리에서 폭발했고, 호버카들은 급격히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가 선회한 다음 기체를 정렬시켜 재돌입해 공격을 개시했다. 광선 줄기 몇 개가 더 날아와 다른 호버카의 측면을 새까맣게 태워먹었고, 비명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두 번째 대공화망이다! 발사 경고! 발사 경고!]
[썅! 몰아붙여! 저거 맞게 만들어야 돼!]
어처구니없게 동료들이 나가떨어지는 희생을 그나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건 반격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발사 경고 메시지와 함께 지상의 건물 사이에서 네 개의 연기 다발이 솟아올랐고, UFO가 움찔거리더니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탄두중량이 5kg을 넘어서는 저 대공미사일은 겉보기에 재니터 로켓보단 몇 배는 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회피를 위해 꺾어지른 듯한 날카로운 선회를 가하는 UFO를 향해 호버카들이 필사적으로 덤벼들어 기관포로 견제를 가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미사일은 목표를 잃고 허공에서 산산이 흩어져나갔지만 충돌할 듯 덤벼드는 호버카 대열을 피해 급기동의 방향을 바꾼 덕분에 UFO는 남은 두 발을 고스란히 얻어맞았다. 폭약의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UFO를 향해 길게 기총 사격이 이어졌고, UFO는 몇 번 광선줄기를 휘두르다가 무서운 속도로 내빼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건 간에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 호버카들이 슬슬 UFO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고, UFO는 그 반면에 어딘가 손상을 입은 것처럼 다소 둔한 기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호버카들은 적당히 그것의 후방을 잡아 연발 사격을 쉽게 가할 수 있었다. 처음에 도착했던 호버카들과는 달리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그들은 보다 본격적인 철갑탄을 가지고 올 수 있었고, 명중탄이 잇달아 생겨나자 확대 화면에서 UFO 표면에 총알구멍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며 파일럿들은 쾌재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세는 서서히 역전되고 있었다.
맞바람이 한층 거세게 온몸을 치고 지나가자 에드워드는 방탄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도로 주변 풍경이 무서운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HMD에 나타나는 UFO의 위치는 아직 한 블록 정도는 떨어져 있었으나, 그나마도 지속적으로 이동 중이었으니 거기 도착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뭐라 말하려 하다가 바람 소리 덕분에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에드워드는 차 안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조금 더 밟아 봐!"
"정말 이건 미친 짓이야!"
빠아아앙- 클레어가 불만스럽게 외쳐대는 와중에도 경적소리를 요란하게 남기며 차량 한 대가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순찰차는 도로 반대편 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브락턴 스트리트에서 빠져나와 딱 두 번 교차로를 지났을 뿐인데 UFO의 공격을 받아 추락한 경찰 호버카가 길을 가로막은 덕분에 차들이 가득 엉겨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에드워드는 반대편 차선으로 뛰어들자고 외쳤다. 클레어는 주춤했지만 에드워드가 재촉하자 자기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역주행을 시작했는데, 에드워드는 그 순간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 순찰차들은 단 한 대도 자신들이 택한 길을 따르지 않고 주저없이 우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젠장,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미 들어와 버렸는데.
앞쪽에서 튀어나온 초록색의 수송 트럭 한 대가 빙글 돌더니 여섯 줄의 스키드 마크를 길게 남기며 순찰차 바로 앞에서 정지했고, 클레어는 급회전을 해서 그것을 겨우 피했다. 에드워드는 그 바람에 해치에 강하게 부딪혀서는 아픈 표정을 지었다가 속으로 욕설을 주워삼기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교통 제어 요청을 했잖아!"
하지만 모든 것이 처리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었다. 그들이 교차로에 들어서고,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요청을 시작한 것은 교차로에 들어서고도 몇 초가 지난 후였다. 그리고 그 요청을 말로 전달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 상황을 판단하고 오퍼레이터가 비상 버튼을 누르는데 또 몇 초가 걸렸고, 교통 통제 컴퓨터가 상황을 판단하고 비상 모드로 들어서는 데에도, 자동차들이 통제 컴퓨터의 지시에 의해 긴급 브레이크가 걸려 멈춰서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20초 이상은 걸리는 과정이었고, 그 사이에 순찰차는 이미 다음 블록까지 진행하기엔 넉넉했다.
몇 대의 승용차가 역주해오는 순찰차를 발견하고 급정지하곤 했지만, 어쨌거나 다음 블록쯤에서 에드워드는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UFO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삑삑거리는 IRIR(InfraRed Image Recognition : 열상인식) 센서의 락온 신호음이 에드워드의 귀에 들려왔고, 클레어가 급브레이크를 잡자 에드워드는 호버카들과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UFO 정중앙에 조준장치의 조준점을 정확히 맞추면서 발사 버튼을 한 번, 아니 한 발로는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서 두 번을 눌렀다. 순찰차가 반동으로 휘청거리고, 불꽃의 꼬리를 단 미사일 두 발이 앞으로 뻗어져 나가며 자욱한 연막이 퍼져나갔다. 에드워드는 훈련한 내용을 잊지 않고 헤드셋을 붙잡고 외쳤다.
"발사 경고! P26 GLM 둘!"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호버카 편대가 뒤로 물러섰다. 에드워드는 조준경을 UFO 위에 겹치고는 배율을 높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UFO는 호버카 10여 대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었고, GLM은 목표물에 지시된 레이저 조준기의 신호를 감지해서 정확히 날아들고 있었다. 이게 명중한다면 아마도…….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순간 UFO는 잠시 주춤거리는 듯 보이더니 갑자기 무서운 가속도로 에드워드 정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클레어가 당황하면서 조이스틱을 틀어 순찰차를 급히 반대 방향으로 돌렸지만, UFO가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았다. 대신 머리 위를 가로질러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호버카들이 그 뒤를 쫓아 머리 위를 가로질러갔지만, 애초에 소형인데다가 호버카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급선회의 융통성이 떨어지는 GLM은 두 발 다가 고스란히 똑바로 날아가고만 있었다. 에드워드로서는 다소 미련이 남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과감히 GLM을 포기하고 즉시 아래쪽에 대고 추격하자고 외쳤다.
순찰차는 이제 반 바퀴 돌아서 정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블록에 이르렀을 때 이전에 우회로를 택했던 순찰차들과 조우할 수 있었고, 세 블록 정도를 더 추격하자 스카이라인이 낮은 제2시가지로 나올 수 있었다. UFO와의 거리는 GLM의 최대사정거리인 1킬로미터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낮은 스카이라인 덕분에 확실히 조준이 가능한 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스카이라인이 낮았기 때문에 사방에서 지원 나온 호버카들이 쉽게 UFO를 찾아 몰려들고 있었다. UFO로서는 이 도시의 지리에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저질렀던 실수였을 것이다. 낮은 스카이라인 한편에서 특이하게 생긴 구형 물체가 발견되었다는 무전 메시지가 오갔는데, 처음에 UFO가 튀어나왔던 물체와 일치한다는 연락이 이어졌기에 누구나 그 UFO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탈출.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한껏 풀이 죽은 듯 비틀거리며 기동하는 UFO를 향해 이제는 기가 산 호버카들이 바로 코앞까지 새까맣게 몰려들어 부딪힐 듯 급선회하면서 공격을 펼쳐댔다.
에드워드는 마지막 남은 1발을 발사했고 다른 순찰차의 것까지 합쳐 도합 18발의 GLM이 UFO를 향해 치솟았다. 호버카들이 물러서는 사이 UFO는 호를 그리며 11발을 떼어냈고, 그 11발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오르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자폭신관을 가동시켜 허공에서 터져나갔지만 나머지 7발은 에누리없이 들어박혔다. 거의 기동성을 잃고 직선으로 움직이는 UFO를 향해 30여 대의 경찰 호버카가 기관포 잔탄을 죄다 퍼부어 댔고 결국 UFO는 크게 한 바퀴 뱅 돌더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낮은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본부에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여기는 HQ, 격추. 목표물 격추 확인.]
"됐어!"
에드워드 진 경장은 순찰차 천장을 내리치며 외쳤다.
"메가폴이 출동했지만 교전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목격자들의 제보에 의하면 다수의 사상자가……. 속보입니다. UFO는 제2시가지에 추락했다고 합니다. 근처의 운전자 여러분께서는 즉시 대피하여 주시고 주민 여러분들은 외출을 금하시기 바랍니다. 시내에는 제1급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있으며……딸깍."
프란츠 가우딘 시의원은 PDA의 스위치를 내리고 항법 장치를 켰다. 차량에 자동 운전 장치가 달려 있지 않았던 시절부터 차를 몰아왔던 그는 항상 직접 수동 조작으로 차를 주차시키는 것을 버릇으로 삼곤 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공무용 세단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하주차장 안으로 차를 성공적으로 집어넣는지를 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는 시의회 건물 앞 산책로를 종종걸음으로 가로질러 나갔다. 아직 출근시간까지 30여 분이 남아 있는 의회 앞은 한산했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바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온 것일까?
제2차 외계인 전쟁을 실제로 체험했었던 가우딘 의원은, 그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온몸에서 돋아오는 소름을 느꼈다. 외계인들의 복수, 혹은 역습. 그에게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TV에서 UFO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마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터였지만 그는 아침을 거른 공복감조차 잊은 채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음 순간 들려온 나지막한, 하지만 은근히 날카로운 소리를 채 듣지 못할 뻔했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 체험 세대였다. 그것도 청년 때 전투원의 일원으로서 직접 2차 대외계인 전쟁에 참가했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엎드렸고 다음 순간 거친 폭발음이 들렸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그 폭발은 크지 않았고, 그에게 날아든 것은 파편도 먼지구름도 아닌 소리뿐이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가우딘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는 의회 건물의 돔형 지붕이 보였다. 놀란 표정의 경비원들이 모여들었지만 생각보다 큰 폭발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가우딘 의원은 일어서서 엉망이 된 양복 윗도리를 털면서 나지막하게 자신의 감상을 피력했다.
"……전쟁이군."
메가 프라임시의 제2시가지 41번로 주변은 그리 번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차량 통행량도 적었고, 지상 보행로는 거의 폐쇄된 지 오래였다. 건물들의 11층들을 연결하는 피플 튜브만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나마도 자주 쓰이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그날 시속 50km의 속도로 피플 튜브 내부에서 반중력 장치에 몸을 맡긴 채 41번가를 스쳐 지나갔던 몇몇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체가 연막을 끌며 저고도로 추락해 내려왔고,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피플 튜브 바로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충격파로 튜브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소리를 내며 유리창에 금이 그어져 나갔다. 바로 옆으로 지나쳐간 호버카들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천우신조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플 튜브를 빗겨간 UFO는 6차선 도로에 깊은 흠집을 남기며 미끄러져 나갔고, 병원 건물을 거의 들이받다시피 하며 멈춰 섰다. 나이팅게일 타워(Nightingale tower) 병원 앞은 조그마한 소공원으로 가꾸어져 있었고, 전동식 휠체어에 의지한 몇몇 환자들이 봄날의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던 가운데 갑자기 지축을 울리며 추락한 UFO는 사람들을 공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었다. 물론, 경찰 작전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비명을 지르며 작전 지역에서 벗어나 주는 것이 더 편한 쪽이었다.
이동이 자유로운 호버카들은 일찌감치 주변에 자리를 선점하고 UFO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가장 빨리 도착한 메가폴의 지상 병력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에드워드들을 포함한 순찰차 4대였다. 에드워드는 순찰차 천장에 거치된 중기관총을 돌려 UFO에 겨누었고, 조수석의 클레어도 기관단총을 꺼내들었다.
[여기는 P31. 목표물을 확보했다. 대기하겠다.]
[카피. 기동대가 출동했으니 잠깐만 기다려라.]
일단은 지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8명으로 접근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순찰차가 3방향에서 반포위하고 - 고작 3대로 그러기엔 UFO가 조금 큰 감이 있긴 했지만 - 기다리는 동안 자욱한 먼지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자 에드워드는 비로소 UFO를 자세히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반적으로는 무언가 지구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혈관을 연상시키는 기괴하게 얽힌 보랏빛 무늬들에, 확실히 금속이 아닌 듯한, 오히려 무슨 동물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연주황색의 판들이 UFO 전체에 얽혀 있었다. 동체 전체에 걸쳐 20mm 포탄으로 인해 생긴 구멍들이 숭숭 나 있었고 GLM이 폭발하면서 부서진 부분도 보였지만, 에드워드에겐 그것이 UFO에 원래 있었던 땀구멍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혹시 저것이 무슨 징그러운 생명체처럼 꿈틀거리지나 않을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에드워드는 기관총의 장전손잡이를 당겼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안겨드는 차가운 방아쇠의 단단한 압력이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UFO를 정조준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에드……확신은 없지만, 오른쪽에 입구 비슷한 것이 보이는데?"
1분쯤 후 클레어의 말에 에드워드의 기관총 총구는 즉시 오른쪽으로 돌았다. 가늠쇠와 가늠자 너머로 확실히 문 같은 직사각형 두 개가 서로 맞닿은 모양이 보였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손잡이도 경첩도 무엇도 없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저건 지구의 것이 아니니까. 에드워드는 천천히 총구를 제자리로 되돌렸다.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다.
그 후로도 경찰 기동대원들과 추가적인 순찰차들이 도착하기까지는 2분 가량을 더 기다려야 했다. 클레어와 에드워드에겐 그 2분이 두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일단 더 많은 순찰차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통제하고, 무엇보다 묵직한 느낌의 울프하운드(Wolfhound) 장갑차가 14명의 기동대원을 태우고 UFO 앞에 멈춰서고 나자 일단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없어진 셈이었다. 상공에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구급 호버카와 경찰 호버카들까지 몇 대씩 선회하고 있었다.
[기동대 정위치. 순찰차들은 조금 더 수고해주기 바란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침인데도 꽤나 피곤하게 느껴졌다. 에드워드는 무전기를 끄고 해치를 통해 운전석으로 내려갔다. 간담을 졸이던 클레어도 몸의 긴장을 풀어버린 채 조수석에 몸을 푹 파묻었다.
"후우. 멋진 아침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명령인데 엄호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다른 순찰차들이 여전히 UFO를 반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에드워드는 살짝 고민했다.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만 있어도 괜찮을까? 일단 저 세포 덩어리 같은 느낌의 UFO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상공에 호버카까지 떠 있는 마당에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있기로 했다. 클레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약실을 비우고는 기관단총의 안전장치를 잠갔다. 그리고 솔직한 개인적 느낌으로는, 왠지 이 순찰차 천장에 장착된 기관총 따위론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기정당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운전석 좌석을 20도 가량 뒤로 기울여버리고 몸을 푸욱 기대었다. 앞쪽의 정경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순찰차의 앞유리창 가득 보이는 것은 UFO였다. UFO. 그래, 정말 UFO. 또 그 외계인들인 건가?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 황폐한 지구에서 대체 무엇을 원했기에 이렇게 돌아온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아무리 봐도 이것은 그저 정찰차량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단 한 대를 가지고 지구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골빈 녀석들은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하기 위해 이것을 보내온 것일까? 무슨 의도로? 앞으로 도대체 어떤 일이?
무전기에서는 여전히 UFO에 관련된 소식, 그리고 UFO가 빠져 나왔던 정체불명의 구형 물체에 대한 메시지가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무전상에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긴 했지만, 결국 UFO를 오랜 시간 내버려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 했다. 장갑차의 40밀리 유탄발사기가 UFO를 조준한 가운데 윈드실드 너머로 기관단총을 든 기동대원들이 조심스럽게 클레어가 입구라 지적한 곳으로 전진하는 것이 보였다. 대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 앞에 다가서자 놀랍게도 문이 저절로 열렸다.
"거봐, 입구랬잖아."
클레어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미소지었지만, 에드워드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입구가 있다면, 그 안에 들어있을 누군가도 있다는 뜻이 된다. M4 기관단총 총신 아래에 장착된 택티컬 라이트를 어두운 내부에 몇 번 비춰보던 대원이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한 발을 내딛었고, 그 뒤를 이어 하나씩 하나씩 기동대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지막 대원까지 들어서고 나자 문은 저절로 닫혔다.
기분 나쁘게도, 왠지 에드워드의 머릿속에선 클래식 영화 채널에서 종종 볼 수 있던 구세기의 공포 영화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유령의 저택에 들어서면 저절로 닫혀 버리고는 다시는 열리지 않던 그런 거대한 출입문. 그걸 지켜보던 클레어조차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릴 정도였다……왠지 기분이 이상하다고.
당장 에드워드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후진으로 넣었다. 본부로 돌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UFO와의 거리를 띄워야겠다는 의도였다. 그것은 감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문이 다시 열렸다. 그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기동대원들이 아니었다.
폭발이 터져 나왔다. 주황색 화염이 넘실거리며 문 밖으로 토해져 나왔고, UFO 동체가 쩌억 쩍 갈라지며 사방으로 튕겨올랐다. 에드워드가 미처 가속 페달을 밟기 전임에도 순찰차는 폭발의 충격으로 뒤로 몇 센티쯤 밀려나며 앞유리가 금이 가 휘어들어왔지만, 방탄재질이라 깨지진 않았다. 날아든 수십 센티미터 크기의 파편 몇 개가 차 지붕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뒤쪽 건물에 처박혔고, 자잘한 조각들은 차 보닛과 앞유리에 부딪혀 튕겨났다. 화염은 문 밖 도로에 선명한 그을린 자국을 남기고는 순식간에 대기 중으로 산산이 흩어져버리며 입구 주변에 자욱한 연막을 형성했다. 이상스럽게 짙은 연막이었는데, 그것은 그 자리에 선 모두에게 묘한 기분과 생각을 안겨주었다.
[여기는 VC1, 기동대원 응답바람! 여기는 VC1, 기동대원 응답바람! 아무나 응답해! 여기는……. 빌어먹을, 기동대원 전원 사망! 반복한다, 전원 생명신호 소실, 전원 사망! 보이는 건 모두 쏴버려!]
장갑차에 타고 있을 지휘관의 급박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다. 에드워드는 반사적으로 십여 미터쯤 급후진했다가 겨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제법 높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던 호버카들이 20밀리 기관포구를 번뜩이며 급하강하며 입구 근처로까지 내려왔다. 조수석의 클레어가 정신을 차려 다시 기관단총을 집어들고 안전장치를 풀었을 때, 에드워드는 서둘러 해치 위로 올라가 기관총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연막 속에서 무언가 아른거린다 싶을 즈음, 묵직한 소음과 함께 기관총이 탄피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사격 명령은 필요 없었다. 뭔가 보인다 싶기 무섭게 호버카 네 대가 무차별 사격을 개시했고, 에드워드와 다른 대원들도 거기에 동참하여 닥치는 대로 쏘아댔다. 장갑차가 유탄을 퍼부어대자 자욱한 연막 속에서도 파편과 불꽃이 뚜렷이 보일 정도였다. 약 10여 초간 이어진 집중 사격이 완전히 UFO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나자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졌는데, 그리고 나서도 호버카 두어 대는 몇 초간 더 포탄을 퍼부었다. 에드워드 또한 몇십 발쯤 더 쏘아댄 뒤 방아쇠에 최대한 압력을 가하며 수상쩍은 것이 혹 드러난다면 언제라도 쏠 준비를 하고는 폭연에 가려진 UFO 주변을 주시했다.
"드디어 놈들이 나오려나 봐."
클레어가 무전기에 대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모습일까? 문득 에드워드는 그 사실이 궁금해졌다. 어떤 놈들일까. 1, 2차 전쟁 때와는 확연히 다른 UFO를 타고, 이렇게 도심지 한복판을 헤저은 놈들은. 지난 80년 동안 UFO란 단어는 완전히 외계인의 비행체를 뜻하는 말로 의미가 굳어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만화에서처럼 미래에서 날아온 우리의 후손이라거나 어떤 미친 천재 과학자가 세계 정복을 위해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란 보장은 없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 외계인이란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이곳엔 없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났다. 세 번이라고 못할 건 무언가.
그럼 도대체 놈들은 어떤 모습일까. 역사 시간에 배웠던 외계인들의 기괴한 모습을 떠올리며 에드워드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외계 지적 생명체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존재했었지만, 지난 전쟁에서 보아온 외계인들은 기체 생명체도, 규소질 생명체도, 집단 군체도 아닌 그저 흔해빠진 비행접시에 흔해빠진 광선총을 들고 설치는 흔해빠진 휴머노이드였을 뿐이었다. 덕분에 신인동형론주의자들은 기세를 올렸었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는 동안 연막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때 문득 옆에서 터져 나온 기관총 총성에 클레어가 놀라 비명을 질러댔고, 에드워드도 당황하며 십여 발 가량 쏘았지만 다행히도 날아간 총탄은 몇 개의 보랏빛 젤리 같이 생긴 물체를 튕겨올렸을 뿐이었다. 마치 깨진 수박처럼 중앙부가 갈라져 하늘을 보고 있는 그슬린 UFO 주변으로는, 온통 시커멓게 그을리고 유탄의 폭발에 포장이 온통 깨져나간 도로에 눌어붙어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보랏빛 살점이 흩어져 있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제일 큰 조각이라고 해 봐야 팔뚝만큼이나 할까.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고, 매캐한 단백질 타는 냄새까지 풍겨오자 에드워드는 맥이 탁 풀려 기관총에 얹어놓았던 손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렸다.
이벨린 화이트는 자기 동료와 함께 쓰는 연구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들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램프에 불이 들어와 있었으니까. 데미안 가이슬러, 당연히 같은 연구실을 쓰는 그 해괴망측한 녀석일 것이었지만.
몇 개의 직영 대학과 교육 기관, 그리고 거기에 딸린 부속 연구 기관을 운영하고 시 전체의 교육을 담당하는 라이프트리사(Lifetree社). 도시계획에 의해 분할된 주거 구역과 상업 구역 사이의 완충 지대에 위치한 이 회사 본부 건물에는 지하 연구 시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은 그래도 프라임 전체에서 유일무이한 엘리트 지식인들의 집합체이다 보니 연구 시설 또한 꽤나 의욕에 불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밤새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고, 덕분에 시차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곤 했다. 다만, 어디서나 그렇듯 가끔 예외적인 인물은 반드시 있었다. 데미안처럼. 이벨린은 결국 고민을 때려치우고 그냥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시각은 오전 10시를 살짝 넘기고 있었다. 원래 라이프트리가 요구하는 출근 시각은 꽤 빠른 편이었고, 이벨린도 나름대로 성실한 편이라 지각 같은 건 손에 꼽을 정도였긴 했다. 하지만 워낙 아침에 요란한 사건이 터져 버렸고, 그 뒤로도 교통 차단이니 현장 정리니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곳이 통제되었던 탓에 일찍 오려야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데미안이 살고 있는 원룸도 어차피 자기 집만큼 먼 곳임을 감안해볼 때 미리 아침에 와 있었을 리는 없었고, 남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역시나 데미안은 불이 꺼져 어둠침침한 연구실 한편에 스탠드 하나를 켜 놓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또 이 친구 밤새었나 보군. 이벨린은 혀를 차며 데미안을 살짝 흔들었다.
"일어나, 지금 아주 난리가 났어."
데미안은 그저 비척거리다가 이벨린이 세 번째, 그리고 좀 많이 세게 흔들었을 무렵 겨우 정신을 차리더니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마구 엉켜서 새집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아는 척을 했다. 저 머리 감은지 몇 주일쯤 되었을까. 여하튼 남자들이란. 이벨린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금 혀를 차며 자신의 PDA를 꺼내들었다.
"또 밤샜지? 덕분에 이 난리가 났는데도 모르고 늦잠이나 자고 말이야. 이거 좀 봐."
PDA 화면에선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의 VOD(Video On Demand)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미안을 PDA 바로 앞까지 얼굴을 가져다댔다가 문득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는 안경을 벗더니 지저분한 가운 옷자락에 슥슥 문질러 닦고 다시 쓴 후 헤드라인을 천천히 읽었다.
"외계인……재침공?"
"그래, 놈들이 또 왔대."
"또?"
데미안은 다시 머리를 벅벅 긁다가 PDA의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가져다댔고 (덕분에 이벨린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잽싸게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PDA 터치스크린에 남아 있는 희미한 하얀 가루들을 닦아야 했다.) 연구실 중앙에 설치된 입체 영상 투사장치가 위잉 하는 냉각 팬 소리를 내며 PDA로부터 적외선으로 전송 받은 뉴스 영상을 띄워 올렸다. 리포터가 어지럽게 말을 쏟아대는 뒷배경으로 새까맣게 불탄 UFO와 폭발 자국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간략한 상황 요약과 정보들이 화면에 나열된 뒤 VOD 메뉴가 떠올랐다.
데미안은 화면에 떠오른 항목들을 잠시 보다가 외계 생명체 관련 자료를 보려고 선택했다. 데미안이 한참 동안 화면에 보이고 있는 불탄 살점 조각들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또다시 손수건을 꺼내어 터치스크린에 묻은 하얀 가루들을 닦아야 했던 이벨린이 살짝 짜증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관심은 좀 있는가 본데……그 항목은 나도 진작에 봐두긴 했어. 어차피 화면으로 보는 거라서 도움은 안 될 거야. 더군다나 어차피 우리 같은 햇병아리완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래봐야 이제 겨우 학위 올라간 초짜 연구원인데 뭘 더 바라니."
이벨린이 말하거나 말거나 데미안은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인스턴트 식품 깡통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위쪽에 설치된 스위치를 뽑았다. 핫팩이 안에 들어 있는 고형 식품을 데우는 동안 인스턴트 커피도 하나 뜯었는데, 실수로 봉지를 살짝 기울이는 바람에 몇 방울이 가운에 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이미 거기 커피 자국이 있었던 터라 별 티도 안 날 정도였고, 데미안은 별 거 아니라는 듯 휴지 한 장을 뽑아다 대강 문지른 뒤 휴지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말을 이었다.
"아침은 먹었어?"
"먹었어. 제발 부탁인데, 좀 제대로 된 것 좀 먹고 살아라. 마르모트라도 하나 구해다 이 인스턴트 식품을 1년간 먹인 뒤에 어떻게 되는지 확인이라도 해봐야 되겠니?"
"귀찮아. 게다가 왜 불쌍한 마르모트를 희생시키냐. 과학 발전을 위해선 이 몸의 건강 하나 불살라도 상관없다고. 그리고 말인데, 이번 건은 우리 쪽에, 우리 햇병아리 그룹에 떨어질 공산이 높아."
소위 햇병아리 그룹, 어떤 연구조건 간에 어느 정도 연륜 있는 사람이 장을 맡고 그 아래로 없는 사람이 적당히 조합되어 편성되는 게 당연하긴 했지만, 그 정도의 차이란 게 분명히 있긴 했다. 덕분에 이쪽 생물학 분과 F조로 분류되는 연구 그룹은 그런 별명을 얻게 되었다.
"어째서?"
이벨린이 인상을 찌푸리자 데미안은 귀엽다는 건지 슬쩍 웃었다.
"돈이 안 되는 일이잖아. 우리 라이프트리도 겉으로는 교육단체 운운하며 광고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업 이미지 광고라고. 어차피 좀 연륜 있으신 분들은 죄다 비싼 일 맡으시느라고 바쁘실 테니까."
"억지야.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외계인이라고. 무엇보다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한 건데 우리 같은 애들에게 맡긴다고 그래. 게다가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된다는 건 과학자들에게 있어선……."
"야야, 세상이 열정과 호기심만으로 돌아가는 줄 알아? 적어도 이 도시를 돌리는 건 젊음이 아닌 늙음이고, 열정이 아닌 돈이라고. 이 도시의 모든 시설은 이익단체야. 눈앞의 이익을 쫓아 달리기 바쁘지. 더군다나 이쪽 햇병아리 그룹은 한가하고, 젊어서 창의력도 뛰어나다는 헛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더욱 안성맞춤이라고."
이벨린에겐 그럼 여기서 근무하는 우린 어떠냐는 질문이 문득 목가까지 올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곧 삼켜버렸다. 그저 석연찮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밖에. 데미안은 호주머니를 한참 뒤적이더니 잡다한 휴지조각과 구겨진 메모지, 몽당연필, 빈 담뱃갑, 종이 클립 등등 각종 잡동사니들 가운데 겨우 자신의 PDA를 찾아내고는, PDA의 프론트 슬롯에 꽂혀 있는 현금 카드를 뽑아 흔들어 보였다.
"좋아, 못 믿겠으면 내기할래? 10달러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으음. 이벨린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으며 주저했다. 저 녀석, 이상하게 확신을 갖고 말하면 뭔가 거부하기가 힘들어진단 말이야. 꽤 오랫동안 파트너였는데도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어떤 인간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때 갑작스레 PDA가 비프음을 몇 번 발했고, 이벨린은 그것을 집어들어 화면을 잠시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말대로 호출이야. F조 전체 다, 지금 당장 오라는군. 정말 우리 쪽에 맡기려나 본데."
그 말을 하고 나자 이벨린은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기 안 걸길 잘했군. 하지만 그 기분은 데미안이 그것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헝클어진 머리에 커피 자국이 남은 가운 그대로, 한 손에는 여전히 인스턴트 깡통을 손에 든 상태 그대로 문손잡이를 막 잡아 열고 나가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싹 날아가 버렸다. 데미안은 이벨린이 째려보자 멍청히 있다가 말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호출이라면서, 얼른 가야지. 그나저나 조금만 늦게 연락했었다면 10달러는 공짜로 버는 건데……."
"이건 파트너로서 진지하게 부탁하는 건데, 연구실 안에선 몰라도 어디 갈 일 있거든 머리부터 감고, 옷도 좀 새 걸로 갈아입어! 소장님을 그 꼴로 만나려고 그래!"
이벨린이 그날 모임에 15분 지각한 것을 데미안 탓으로 돌린 것은 전혀 잘못된 행동이 아니었다.
아침의 교전이 종료되고, 9시경에 이르러 시의원들이 출근하기 무섭게 시작되었던 논쟁은 점심 무렵에 이르러서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시의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리석 바닥 장식재 위에서는 아직도 2명의 시의원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전 피어스 의원님의 태도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요. 명명백백한 상황 아닙니까? 이건 외계인의 재침공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이 의결 사안에 대해 반대하십니까?"
메가 프라임 시 전체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초월주의(Extropian)당 당수인 프란츠 가우딘 의원이 열을 올려가며 떠들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이미 60. 평균수명의 2/3을 보내고, 2040년경의 2차 외계인 전쟁을 젊어서 직접 체험한 세대치곤 아직 꽤나 정정한 편이었다.
"가우딘 의원님의 의견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선 현 사태를 조금 더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UFO가 출현해 도시를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명확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공격해 왔는지조차도요. 이 상황에서 엑스컴의 부활을 논하는 건 무리입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그런 여력이 없고요. 갱들에 맞서 메가폴 병력 증원시키는 것만 해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야당이라 할 수 있는 기술진보(Technocrat)당의 배지를 양복 윗주머니에 매달고 있는 안드레아 피어스 의원이 점잖게 신중론을 제시했다.
"여력이 없다는 것은 솔직히 조금 과장된 말이시겠죠. 여력은 만들면 되는 겁니다. 게다가 의원님의 말씀대로, 메가폴에겐 갱들이란 지상과제가 있기에, 지금의 이 외계인이란 적에 대해 대항할 또 다른 부대가 필요한 거고, 그게 엑스컴이 되는 겁니다."
"우린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정말이지 없습니다. 그나마 격추시켰던 UFO에서조차 내부 구조를 폭파시켜 건질 수 있었던 것이 없었으니까요. 기껏해야 기관포에 난자당한 외계인들의 시체 정도죠. 그들이 언제 또 나타날지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긴 무리입니다. 차라리 그 병력으로 메가폴을 증원시키는 게 더 유동적인 대처 방안이 되겠죠."
가우딘 의원은 천천히 숫자가 빼곡히 인쇄된 종이를 들어 보였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침 뉴스 보셨습니까? 고작해야 호버카 3대가 격추되고, 기동대원 14명이 전원 사망하고, 장갑차 하나, 순찰차 3대, 민간 차량 17대, 민간인 사상자가 40명이죠. 건물 두 채가 완파되었고요. 물론 이 건물 옥상에 명중한 GLM도 있었죠. 재산 피해는 아직 정산도 다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메가폴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부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상 어떤 경찰이 대공미사일과 기관포가 장착된 호버카를 운영하죠? 역사상 어떤 경찰이 도시 상공에 나타난 UFO를 격추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까? 지금만 해도 이 도시에는 충분한 과잉 화력입니다. 거기에 또다른 무언가를 추가시킨다는 건……."
"……그래서 또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완벽히 다르고 제한적인 임무만을 수행 가능한 부대가 새롭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이름에 대해선……."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자 원탁에 둘러앉은 13명의 의원 중 한 명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말인즉슨 다 옳은 말이다. 단지, 그 중 어느 게 더 도움이 될지가 문제였지. 피어스 의원도 그렇게 느꼈는지 잠시 입을
네드리의 낙서장 - 작가 : 네드리(nedlee)
글 수 65
X-COM : Apocalypse란 게임의 팬픽입니다. 구상하고 이쯤까지 썼던 건 이 게임에 미치도록 빠져있었던 무렵이었으니 고등학교 때 물건일 겁니다. 그 뒤로 딴에는 단편이니 중편이니 뭐니 쓴다고 낑낑거려 봤지만, 제대로 되지도 않은 글솜씨로 완전 창작 설정에 플롯라인 가지고 몇 년을 낑낑대며 골치 썩이느니 차라리 남의 물건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잘 아시겠지만, 팬픽은 원작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그 한계가 명확한 장르입니다. (저처럼 원작의 창의적 재해석이나 플롯을 꼬는 것 따위하곤 별로 친하지 않은 녀석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요. 무엇보다도 글 솜씨가 없으면 거기에 맞는 수준 낮은 글이라도 써야 하고, 군대는 언제 갈지 모르는데 뭐라도 써놓는 게 낫겠고……그런 김에 쓰던 거나 마무리 지어야죠.
……고로 힙지님은 각성하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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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0년, 사이도니아와 심해저의 외계인 기지가 파괴되고 인류는 영원하리라 생각되는 평화를 누리기 시작했다. 무려 두 차례나 되는 외계인의 침략을 거뜬히 막아낸 인류는 이제 그들 앞을 가로막을 상대는 그 누구도 없으리라 생각하며 자축연을 들었다. 그리고 40년, 그 동안 인류는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외계인들보다 더욱 더 대단한 적이었던, 바로 그들 자신을.
비록 성공적으로 막아냈긴 했지만, 두 차례의 외계인 침공이 인류 사회에 준 타격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전 세기부터 불거졌던 각종 문제점들이 점차 심각해졌다. 인구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는데 반해 지나친 환경오염과 지나친 폭력. 삶의 질은 극도로 저하되었다. 이윽고 변두리 지역에는 군데군데 비거주구역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를 떠나 화성과 달과 보다 더 먼 행성으로 떠나가는 가운데 인류는 지구 최후의 희망을 건 실험적 자급자족 밀폐도시, 메가 프라임(Mega-prime)를 건설했다.
몇 년이 지나자, 지구상에 남아있게 된 인류는 구 문명의 대도시 잔재 위에 건설된 돔형 실험도시에 갇혀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에 남은 것은 오직 끝도 없는 황무지 뿐. 한때 초록별로 극찬 받던 지구는 이미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들만큼 황폐화된 상태였다.
그래도 밀폐된 어항 속에서의 삶과 같은 생활은 꽤나 풍족하고 평화로운 것처럼 생각되기 쉬웠다. 범죄도 사회 문제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실험도시에 들어선 사람들은 구 문명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에 차 있었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점진적으로 사회 내부 구조를 갉아먹는 갱들의 등장과, 폭력 사건, 신흥 사이비 종교의 등장, 각종 소요 사태, 빈민 발생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갑작스럽게 생겨난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경찰은 수사에 나섰지만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한 채 14년째의 봄을 맞고 있었다.
2084년 3월 7일 화요일. 오전 7시 정각.
"정규 시스템 검사 시간. 1구역 검사를 준비합니다."
[알았음. TV 채널 온라인. 점검 바람.]
[점검. 전 채널 송신 중.]
오퍼레이터가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자 화면에 고가도로의 전경이 나타났다. 막 출근해서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입가에 가져다 든 메가폴 폐쇄회로 담당, 레온 허드슨 경위는 화면을 쳐다보며 커피를 머금고 웅얼거렸다.
"날씨 좋군. 오늘도 상쾌한 아침이야."
"라저. 채널 온라인. 섹터 1부터 검사 시작하겠다……흐린데요, 뭘."
동영상 전송을 시작시켜 놓은 오퍼레이터가 지나가듯 대답했다. 교통 상황 안내용으로 나갈 화면이나 전송시키는 것이 사실상 아침의 교통과 업무의 전부였다. 프라임의 교통 통제 컴퓨터 덕분에, 가끔씩 숙취가 덜 풀린 누군가가 수동 조작으로 가로수를 들이받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교통 체증보다 더 큰 문제점은 없는 정도였으니까. 교통 체증만은 컴퓨터 통제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지난 몇 개월 동안은 이곳의 업무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이곳저곳에서 총격전이나 전투가 벌어지는 횟수가 늘었고, 가끔씩은 공중전도, 그래봤자 정말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전투기가 회피기동을 펼쳐대는 것이라기보단 호버카 몇 대간의 총격전에 불과할 정도였지만, 도시 곳곳에 심어진 2천 7백여 개의 카메라에 포착되곤 했었다. 어차피 메가폴은 군 조직도 아니었기에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직접 화면을 전송하고 지시를 내리는 것 또한 그들 담당의 일로 추가되었다. 덕분에 뭔지 모를 중압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잖아. 허드슨 경위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는 속으로 변명했다.
"섹터 2에서 진행 중……."
언제나처럼 오퍼레이터가 정규 업무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계속해나가는 것을 종이컵을 입에 문 상태로 흘려듣던 허드슨 경위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들의 행렬 사이를 언제나처럼 멍한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한 화면에서 시선을 멈춰 세웠다.
"잠깐, 저거 좀 확대해 봐."
"이거요?"
오퍼레이터는 화면 하나를 메인 스크린에 띄워 올렸다. 고배율의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화면이 도트를 남기며 확대되었다가 서서히 선명해졌다. 도로 근처에 차를 세운 한 남자의 모습이 역시 실시간으로 전송되자 컴퓨터가 재빨리 상황을 분석해 지시를 내렸고, 순찰대의 무전이 이어졌다.
[확인 중이다. HQ. H8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거동수상자. 무기를 은닉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경위는 종이컵을 콘솔 위에 내려놓고 말을 끊었다.
"아니, 1224번에 포착된 저놈. 좌측으로 30도 패닝시켜서……위로 조금 더 올려 봐. 보이나?"
다시 화면에 도트가 가득 찼다가 하나의 물체가 희미하게 드러났다. 오퍼레이터는 살짝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메인 스크린 가득히 나타난 기하학적 모양의 물체를 바라보았다. 반투명한 구형의 물질 속에서 느린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정사면체. 화면이 더 줌 인 되면서 설핏 스쳐 지나가는 차량의 실루엣은 그 물체의 크기가 십여 미터는 더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컴퓨터가 분석을 시도했고, 잠시 주춤거리더니 정보 부족이라는 결과를 내놓고는 정지했다. 경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저게 뭐 같나?"
"알아봐야죠. 섹터 1-0-0-1B에 가까이 있는 순찰대는 연락 바란다."
[미확인 물체 발견. 조사 바람. H21 확인.]
"대기 요망. 미확인 물체 출현. H21, H43 이동 바람. 전 유닛 경계태세."
[알고 있다. 여기는 H21. 육안 관측. 현재 거리 약 200. 접근 중.]
오퍼레이터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메인 스크린에 겹쳐진 레이더 윈도우에서 H21이란 부호가 붙은 점이 미확인 물체 방향으로 움직이고, 다른 점들이 움직이는 속도도 다소 증가되었다. 경사가 그 정사면체가 회전하는 속도 또한 증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그 탓인지 아니면 정말인지 고민하기 시작할 무렵, 컴퓨터가 바쁘게 정보를 표시하는 너머로 갑자기 화면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굉음과 함께 폭발하듯 번쩍였다. 화면이 일순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로 밝아지자 곧 안전장치가 켜지면서 차광 모드로 바뀌었고, 놀란 오퍼레이터가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이미 그 구형 물체는 사라지고 없었다. 경위가 당황해서 외쳤다.
"……뭐야? 잠깐, 방금 무언가가……."
경위가 소리 지르는 너머로 오퍼레이터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헤드셋에 대고 외치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크기에서부터 색깔까지 잡다한 정보들을 화면에 죽 늘어놓았지만 결국은 재차 정보 부족을 표시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경위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허공에 뜬 보랏빛의 원반형 물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원반형의 물체, 정확히 말하면 '원반'이라는 그 단어에 대해 마음속으로 액센트를 주고 있었다. 과거, 인류가 겪었던 두 차례의 전쟁. 역사책에서 읽혔고, 인류가 이 돔 도시에 갇혀 살게 된 원인. 비록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경위는 심호흡을 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비상 걸고, 남는 거 다 긁어모아서 그쪽으로 돌린다. 필요하면 무기 사용 허가도 내리고."
오퍼레이터는 반문 한 마디 없이 그 지시를 따랐다. 무전채널이 더욱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HQ. 여기는 H21. 미확인 비행 물체, 3-0-7. 현 속도 120으로 남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목표물을 확인했나?"
[여기는 H43. 육안으로 보인다. 다음 지시는?]
"잠깐 기다리도록. 우리는 아직 목표물을 확인하지……."
[HQ, 응답바람. 여기는 H21. 47번 위에서 정지했다. 바로 아래에서……목표물의……광선…….]
오퍼레이터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잡음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너머로, 무언가 전혀 새로운, 그럴 리가 없는 광경이 나타나고 있었다. 원반형의 물체 아래에서 보라색의 빛줄기가 뻗어져 나왔고, 그것이 닿는 곳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그 아래에선 화염에 휩싸인 차량들이 고가도로 위에서 한데 엉켜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고 연기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무전 채널에서 말들이 터져 나왔다.
[H21! 공격받고 있다. 공격받고 있다! 공격…….]
[……여기는 H43. 현 상황이 보이는가? 현 상황을 확인해주기 바란다! HQ!]
[H21! H21! 응답하라! 젠장! 응답 없음!]
[……HQ, 들리는가? 지시를 내려주기 바란다! 지금 공격받고 있다! 공겨……바…….]
비명을 늘어놓던 무전기가 갑작스레 잡음에 휩싸였고, CCTV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그제서야 말없이 서있던 허드슨 경위는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젠장! 이딴 건 우리가 담당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야!"
날씨는 흐렸지만 그렇다고 춥지는 않았다. 메가 프라임. 지구의 모든 화석연료를 다 태워먹은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이루어낸 지구온난화에서도 살아남은 이곳의 돔 안은 그래도 정상적인 사계절을 따르고 있었고, 그 덕분에 도시의 전경은 활기찰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도로가 출근길 차량으로 붐비는 시간임에도, 한적한 자동화된 공장지대 한복판이기에 교통량이 거의 없는 도로 위로 P26이란 인식번호를 단 순찰차 한 대가 통과하고 있었다. 중량, 그리고 중장갑. 200마력짜리 하이브리드 수소-전기 로터리 엔진에 철갑탄을 막을 수 있는 1센티미터 두께의 방탄판과 방탄유리의 조합은 상자처럼 각진 형태의 강인한 사륜구동 순찰차를 만들어냈다. 어찌 보면 군대에서나 사용할법한 이런 차량이 지금 이 도시 위를 오가야만 했었던 건, 결국은 극도로 나빠진 도시의 치안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긴급사태. 전 AA 유닛. 섹터 1-0-0-1B. 24-1 블록으로 출동.]
"여기는 P26. 알겠다. 이스트 베르너 에버뉴의 중간쯤이로군. 또 CA 상황인가?"
[아니다. 상황 31. 대공병장을 준비하도록. 이후 좌표는 무전으로 실시간 수정하겠다. 이상.]
"……맙소사."
무전기의 리시버를 손에 든 채 운전석의 에드워드 진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CA란 소리가 나오자마자 조수석에 앉아 항법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던, 그래서 마지막 통신 내용을 듣지 못했던 클레어 크로셋이 의아한 눈초리로 에드워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멍청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사이렌의 스위치를 올리고 수동조작으로 전환한 뒤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타이어가 아스팔트와 마찰하면서 요란한 파열음을 냈고, 클레어는 가속도 때문에 의자에 몸이 착 달라붙는 것을 느끼면서 물었다.
"뭐라고 했기에?"
"코드 31……이게 걸리다니."
"……맙소사. 큰 거 터졌나 본데."
클레어가 멍청히 중얼거렸고, 순찰차는 경광등 빛을 번쩍이면서 공장지대를 빠져나가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멀리 건물들 사이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H21과 H43번 경찰 호버카가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선제공격에 격추된 후, 그 다음으로 현장에 도착한 것은 근처의 경찰서에서 긴급 발진한 H14와 H15의 2대의 경찰 호버카였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었지만, 이미 그 동안 UFO는 고가도로를 몇 조각으로 절단해놓고, 근처의 상가 지붕들을 하나씩 날려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두 대의 호버카는 선제공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파일럿들은 한껏 긴장하면서 동시에 기도했고, 발사 스위치를 눌렀다.
[발사!]
약 200미터 거리에서 흥분한 파일럿의 목소리와 함께 호버카에 장착된 20mm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분당 3600발의 발사속도로 수백 발의 20mm 소이유탄들이 하늘을 가로질러 UFO를 향해 날아들었고, 컴퓨터 사격 통제 장치의 지휘에 따라 정확히 목표물에 명중했으며, 충격신관이 분말소이제를 점화시켜 불꽃을 휘황하게 튕겨올렸다. 그러나 그 직후 UFO는 여유 있게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나머지 소이유탄들을 완벽하게 피해버렸고 빗나간 기관포탄들은 그대로 상가 내부에 들이박혔다. 상가 건물은 화력의 집중에 폭발을 일으키며 그대로 폭삭 내려앉은 반면, 수십 발은 더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UFO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동해 반대편 건물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져갔다.
[젠장! 이빨도 안 박힌다!]
[여기는 H14. 중화기 지원이나 철갑탄이 필요하다. 현재 목표는 웨스트 베르너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두 대의 호버카는 조심스럽게 UFO가 사라져간 반대편 건물 쪽을 쫓아 진행해갔다. 1천만 명짜리 돔형 도시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이 도시 자체는 실험도시였던 만큼 기존 방식의 고층 건물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눈 닿는 곳은 주로 십수 층 정도의 납작하고 독특한 설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적어도 건축가들은 동화 속의 도시라도 만들려고 했었던 것 같아보였다. 더군다나 주상복합지역이라면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나지막하고 화려한 색상의 상가 건물 위에서 조심스럽게 선회하면서 아래를 주시했지만 목표물은 보이지 않았다.
[목표물은 시계 범위 안에 있다. CCTV 카메라에 보이지 않지만 그 주변을 빠져나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이상은 알 수 없다. 오버.]
[H24, H25, H26, H27, 도착까지 1분 30초. 조금만 기다려라.]
[카피. 어쩔 수 없다. 지원 올 때까지 흩어져서 찾자.]
H15를 반대편으로 보내고, 혼자 남게 된 H14의 파일럿은 혀를 차며 스캐너를 켜고 기체를 느리게 선회시켰다. 머릿속으로는 소이탄의 불꽃을 요란하게 튕겨내던 UFO의 모습이 스쳐가고 있었고, 파일럿으로서는 이 호버카의 무기로선 피해를 입히지 못할 거란 사실에 등이 뻣뻣히 굳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긴 했다. 조종간을 쥔 손가락을 쥐었다 펴고,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린 뒤 주변 환경에 시선을 집중했다. 여전히 주변은 거대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지만, 다행히도 요란한 폭발 덕분에 사람들은 대피한 듯 한산해 보였다. 지난 얼마간 갱들과의 전쟁이 요란했던 덕택에 시민들 또한 대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분명히 근처에 UFO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 아무리 못 잡아도 십수 미터는 될 그 거대한 덩치가 도심지에 숨어 있을 만한 곳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숨어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지원이 도착해 또다른 구역을 맡아 비행하는 모습이 지도 화면에 떠오르고, 블록 끝부분에 도달했을 때 화려한 차림의 젊은 여자 두 명이 종종걸음으로 한산한 인도 위를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파일럿은 혀를 다시 차고는 외부 스피커로 대피령을 두 번 반복해서 방송했다. 여자들이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으로 향하는 모습에 그럭저럭 만족한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호버카가 위로 튕겨올랐다.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안전벨트가 자신을 꼭 옥죄는 걸 느끼며 파일럿은 급히 아래쪽을 살폈다. 차 주변으로 보랏빛 원반이 넓게 퍼져나온 모습이 보였다.
제기랄, 아래쪽에서……착륙해 있다가 들이받기라도 한 건가? 급히 추진기를 가동시켜 앞쪽으로 빠져나가려고 시도했지만, 다음 순간 UFO는 튕기듯 놀라운 가속도로 급하강했고 받치고 있던 것이 사라져버린 호버카는 연직 투상 궤도에 따라 낙하하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무섭게 다가오자 파일럿은 급히 역분사하여 기체를 제어하려 시도했고, 간신히 움직임이 자유로워지자 기체를 뒤집어 UFO를 정조준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아래를 봄과 거의 동시에 UFO가 상상 밖의 가속도로 급상승하면서 호버카 지붕을 다시 들이박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P26번 순찰차는 사이렌 소리를 길게 끌며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운전석을 기어올라가 천장의 해치를 열었다. 시속 70km라는, 러시아워의 시내에서 내긴 확실히 무리가 따르는 속도가 주는 바람이 거칠게 불어닥쳤지만, 맞바람을 받으면서도 그는 억지로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고는 차 지붕 위에 장착되어 있던 원통 중 하나를 들어올려 뚜껑을 열었다. 이걸 사용할 날이 오다니. 에드워드는 중얼거리며 원통에서 GLM 발사기를 꺼내어 전동식 발사대에 얹고는 고정 볼트를 죄었다. 두 번째 원통에는 GLM 발사체가 들어 있었고, 에드워드는 발사기에 발사체를 꽂은 다음 스위치를 올렸다. 전기 모터의 소음이 귓전에 울렸다.
"앞길이 막혔어!"
안전장치를 뽑은 뒤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발사기의 조종장치와 씨름하던 에드워드는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클레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였다. 갑작스런 교전으로 인한 교통 통제로 멈춰선 승용차들이 차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헤드셋을 잡고 무전 채널을 바꾸었다.
[현재 24-3에서 25-7 방향으로 이동 중. 브락턴 스트리트로 집결지를 변경하…….]
"다음 코너에서 우회전! 우회전해!"
조수석에서 보조 컨트롤러인 조이스틱으로 운전하고 있던 클레어 경사는 급히 스틱을 돌렸다. 역시 그리 익숙하다 볼 수 없는 조종장치였지만, 찢어지는 파열음을 내면서도 순찰차는 교차로 모퉁이를 부드럽게 돌아 옆 골목으로 접어들었고, 에드워드는 몇몇 동료 순찰차들이 대공병장을 완비한 상태로 삼각대형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훈련대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쩐지 에드워드는 그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에 살짝 몸을 떨었다. 대공화망을 구성중인 순찰차 한가운데에 클레어가 차를 세우자 에드워드는 발사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안전핀이 뽑힌 일회용 냉각팩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적외선 시커를 냉각시켰고, 곧이어 쌍안식 조준 장치가 선명한 영상을 표시했다.
[여기는 P31. 현재 4대가 브락턴 스트리트 3/4 지점에서 대기 중이다. 이쪽으로 유도하도록.]
[H15. 알겠다. 800미터 지점에서 그쪽으로 가고 있다.]
시커 냉각이 끝나자 에드워드는 조준기에 눈을 가져다 댄 상태로 긴장해서는 대기했다. 이 도시가 아무리 난장판이라지만 이젠 경찰이 지대공 미사일까지 운용하다니. 이걸 쓸 날이 오다니. 이 GLM(Ground Launched Missile)식의 SAM 발사기는 차량장착형 전동식이긴 했지만, 사정거리나 파괴력 면에서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모델이었다. 시가 안에서 탄두 중량이 십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대형 MANPAD 같은 걸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 GLM이 상대해야 할 적 또한 소형 호버카 정도였으니 별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게 교육 시간에 강사가 가르쳐준 결론이었고, 에드워드는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손바닥에 배어드는 땀을 바지자락에 한 번 문질러 버리고는 다시 트리거에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통합 디스플레이가 호버카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음을 표시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목표물은 미확인 비행 물체라는 것이다. 반복한다, 목표물은 미확인 비행 물체다. 그 점을 유의하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본부에서의 무전 메시지가 날아들었고, 에드워드는 목표물이 나타날 방향인 병원 건물 위쪽에 발사기를 겨냥한 채로, 잠시 아연해서는 메시지를 들었다. 유난히 강조해 말하는 '미확인 비행 물체'란 말이 귀에 거슬린다는 느낌이 들기가 무섭게, 조준장치 너머로 원반형의 물체가 건물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온 원반형 물체 뒤를 호버카들이 쫓았다. 20mm 기관포가 연이어 발사되고, 공대공 로켓탄두가 날아들었다. 로켓탄 하나에 명중당한 UFO가 비틀거리다 광선을 내쏘았고 호버카 한 대가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지상의 순찰차 4대에 탄 모두가 멍청한 표정으로 '미확인 비행 물체'와 호버카가 벌이는 격전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UFO가 호버카 한 대를 격추시키고 나머지 여섯 대의 기관포와 로켓탄 세례를 받으며 건너편 도로로 빠져나갈 때까지, 지상에 있던 대원들은 그 누구도 미처 발사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로 멍청히 있었다. 본부에서 급히 발사 지시를 내렸지만, 대원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언지 상기해냈을 무렵에는 호버카건 UFO건 전부 다가 건너편의 월 스트리트로 빠져나간 뒤였다. 에드워드는 아무 것도 없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즉시 헤드셋을 잡고는 외쳤다.
"뭐해! 쫓아가자!"
UFO를 추격하던 호버카 파일럿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100년 전이었다면 대전차병기로도 사용 가능했고, 그보다 100년 더 전이었다면 대함병기로도 쓰였을 20mm 기관포는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재니터(Janitor) 공대공 로켓탄도 별 차이가 없었다. 사실상 재니터는 2차 세계대전 때나 썼을 법한 2.75인치 대공 로켓이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보통은 대지상 타격용으로 아주 드물게 장착되었던 걸 비상 상태라고 달고 떴던 것이다. 전적으로 호버카와의 전투를 상정해놓고 설치된 무장이었기에 지금과 같이 UFO와 맞닥뜨린다는 지극히 해괴망칙한 상황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한 대가 광선에 맞더니 그 자리에서 폭발했고, 호버카들은 급격히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가 선회한 다음 기체를 정렬시켜 재돌입해 공격을 개시했다. 광선 줄기 몇 개가 더 날아와 다른 호버카의 측면을 새까맣게 태워먹었고, 비명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두 번째 대공화망이다! 발사 경고! 발사 경고!]
[썅! 몰아붙여! 저거 맞게 만들어야 돼!]
어처구니없게 동료들이 나가떨어지는 희생을 그나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건 반격이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발사 경고 메시지와 함께 지상의 건물 사이에서 네 개의 연기 다발이 솟아올랐고, UFO가 움찔거리더니 급선회하기 시작했다. 탄두중량이 5kg을 넘어서는 저 대공미사일은 겉보기에 재니터 로켓보단 몇 배는 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회피를 위해 꺾어지른 듯한 날카로운 선회를 가하는 UFO를 향해 호버카들이 필사적으로 덤벼들어 기관포로 견제를 가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미사일은 목표를 잃고 허공에서 산산이 흩어져나갔지만 충돌할 듯 덤벼드는 호버카 대열을 피해 급기동의 방향을 바꾼 덕분에 UFO는 남은 두 발을 고스란히 얻어맞았다. 폭약의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UFO를 향해 길게 기총 사격이 이어졌고, UFO는 몇 번 광선줄기를 휘두르다가 무서운 속도로 내빼기 시작했다.
도시 곳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었건 간에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 호버카들이 슬슬 UFO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고, UFO는 그 반면에 어딘가 손상을 입은 것처럼 다소 둔한 기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호버카들은 적당히 그것의 후방을 잡아 연발 사격을 쉽게 가할 수 있었다. 처음에 도착했던 호버카들과는 달리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그들은 보다 본격적인 철갑탄을 가지고 올 수 있었고, 명중탄이 잇달아 생겨나자 확대 화면에서 UFO 표면에 총알구멍이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며 파일럿들은 쾌재를 부르기 시작했다. 대세는 서서히 역전되고 있었다.
맞바람이 한층 거세게 온몸을 치고 지나가자 에드워드는 방탄헬멧의 바이저를 내렸다. 도로 주변 풍경이 무서운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HMD에 나타나는 UFO의 위치는 아직 한 블록 정도는 떨어져 있었으나, 그나마도 지속적으로 이동 중이었으니 거기 도착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뭐라 말하려 하다가 바람 소리 덕분에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에드워드는 차 안에 대고 고함을 질렀다.
"조금 더 밟아 봐!"
"정말 이건 미친 짓이야!"
빠아아앙- 클레어가 불만스럽게 외쳐대는 와중에도 경적소리를 요란하게 남기며 차량 한 대가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순찰차는 도로 반대편 차선을 달리고 있었다. 브락턴 스트리트에서 빠져나와 딱 두 번 교차로를 지났을 뿐인데 UFO의 공격을 받아 추락한 경찰 호버카가 길을 가로막은 덕분에 차들이 가득 엉겨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에드워드는 반대편 차선으로 뛰어들자고 외쳤다. 클레어는 주춤했지만 에드워드가 재촉하자 자기도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역주행을 시작했는데, 에드워드는 그 순간 실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 순찰차들은 단 한 대도 자신들이 택한 길을 따르지 않고 주저없이 우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젠장,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이미 들어와 버렸는데.
앞쪽에서 튀어나온 초록색의 수송 트럭 한 대가 빙글 돌더니 여섯 줄의 스키드 마크를 길게 남기며 순찰차 바로 앞에서 정지했고, 클레어는 급회전을 해서 그것을 겨우 피했다. 에드워드는 그 바람에 해치에 강하게 부딪혀서는 아픈 표정을 지었다가 속으로 욕설을 주워삼기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교통 제어 요청을 했잖아!"
하지만 모든 것이 처리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었다. 그들이 교차로에 들어서고, 길이 막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요청을 시작한 것은 교차로에 들어서고도 몇 초가 지난 후였다. 그리고 그 요청을 말로 전달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 상황을 판단하고 오퍼레이터가 비상 버튼을 누르는데 또 몇 초가 걸렸고, 교통 통제 컴퓨터가 상황을 판단하고 비상 모드로 들어서는 데에도, 자동차들이 통제 컴퓨터의 지시에 의해 긴급 브레이크가 걸려 멈춰서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결론적으로 최소한 20초 이상은 걸리는 과정이었고, 그 사이에 순찰차는 이미 다음 블록까지 진행하기엔 넉넉했다.
몇 대의 승용차가 역주해오는 순찰차를 발견하고 급정지하곤 했지만, 어쨌거나 다음 블록쯤에서 에드워드는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UFO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삑삑거리는 IRIR(InfraRed Image Recognition : 열상인식) 센서의 락온 신호음이 에드워드의 귀에 들려왔고, 클레어가 급브레이크를 잡자 에드워드는 호버카들과 공중전을 벌이고 있는 UFO 정중앙에 조준장치의 조준점을 정확히 맞추면서 발사 버튼을 한 번, 아니 한 발로는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아서 두 번을 눌렀다. 순찰차가 반동으로 휘청거리고, 불꽃의 꼬리를 단 미사일 두 발이 앞으로 뻗어져 나가며 자욱한 연막이 퍼져나갔다. 에드워드는 훈련한 내용을 잊지 않고 헤드셋을 붙잡고 외쳤다.
"발사 경고! P26 GLM 둘!"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호버카 편대가 뒤로 물러섰다. 에드워드는 조준경을 UFO 위에 겹치고는 배율을 높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UFO는 호버카 10여 대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었고, GLM은 목표물에 지시된 레이저 조준기의 신호를 감지해서 정확히 날아들고 있었다. 이게 명중한다면 아마도…….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순간 UFO는 잠시 주춤거리는 듯 보이더니 갑자기 무서운 가속도로 에드워드 정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클레어가 당황하면서 조이스틱을 틀어 순찰차를 급히 반대 방향으로 돌렸지만, UFO가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았다. 대신 머리 위를 가로질러 굉장한 소리를 내면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호버카들이 그 뒤를 쫓아 머리 위를 가로질러갔지만, 애초에 소형인데다가 호버카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급선회의 융통성이 떨어지는 GLM은 두 발 다가 고스란히 똑바로 날아가고만 있었다. 에드워드로서는 다소 미련이 남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과감히 GLM을 포기하고 즉시 아래쪽에 대고 추격하자고 외쳤다.
순찰차는 이제 반 바퀴 돌아서 정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블록에 이르렀을 때 이전에 우회로를 택했던 순찰차들과 조우할 수 있었고, 세 블록 정도를 더 추격하자 스카이라인이 낮은 제2시가지로 나올 수 있었다. UFO와의 거리는 GLM의 최대사정거리인 1킬로미터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낮은 스카이라인 덕분에 확실히 조준이 가능한 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스카이라인이 낮았기 때문에 사방에서 지원 나온 호버카들이 쉽게 UFO를 찾아 몰려들고 있었다. UFO로서는 이 도시의 지리에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저질렀던 실수였을 것이다. 낮은 스카이라인 한편에서 특이하게 생긴 구형 물체가 발견되었다는 무전 메시지가 오갔는데, 처음에 UFO가 튀어나왔던 물체와 일치한다는 연락이 이어졌기에 누구나 그 UFO의 목적을 알 수 있었다. 탈출.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한껏 풀이 죽은 듯 비틀거리며 기동하는 UFO를 향해 이제는 기가 산 호버카들이 바로 코앞까지 새까맣게 몰려들어 부딪힐 듯 급선회하면서 공격을 펼쳐댔다.
에드워드는 마지막 남은 1발을 발사했고 다른 순찰차의 것까지 합쳐 도합 18발의 GLM이 UFO를 향해 치솟았다. 호버카들이 물러서는 사이 UFO는 호를 그리며 11발을 떼어냈고, 그 11발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오르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자폭신관을 가동시켜 허공에서 터져나갔지만 나머지 7발은 에누리없이 들어박혔다. 거의 기동성을 잃고 직선으로 움직이는 UFO를 향해 30여 대의 경찰 호버카가 기관포 잔탄을 죄다 퍼부어 댔고 결국 UFO는 크게 한 바퀴 뱅 돌더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낮은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본부에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여기는 HQ, 격추. 목표물 격추 확인.]
"됐어!"
에드워드 진 경장은 순찰차 천장을 내리치며 외쳤다.
"메가폴이 출동했지만 교전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목격자들의 제보에 의하면 다수의 사상자가……. 속보입니다. UFO는 제2시가지에 추락했다고 합니다. 근처의 운전자 여러분께서는 즉시 대피하여 주시고 주민 여러분들은 외출을 금하시기 바랍니다. 시내에는 제1급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있으며……딸깍."
프란츠 가우딘 시의원은 PDA의 스위치를 내리고 항법 장치를 켰다. 차량에 자동 운전 장치가 달려 있지 않았던 시절부터 차를 몰아왔던 그는 항상 직접 수동 조작으로 차를 주차시키는 것을 버릇으로 삼곤 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공무용 세단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하주차장 안으로 차를 성공적으로 집어넣는지를 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는 시의회 건물 앞 산책로를 종종걸음으로 가로질러 나갔다. 아직 출근시간까지 30여 분이 남아 있는 의회 앞은 한산했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바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온 것일까?
제2차 외계인 전쟁을 실제로 체험했었던 가우딘 의원은, 그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온몸에서 돋아오는 소름을 느꼈다. 외계인들의 복수, 혹은 역습. 그에게는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TV에서 UFO에 대한 뉴스가 나오자마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온 터였지만 그는 아침을 거른 공복감조차 잊은 채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음 순간 들려온 나지막한, 하지만 은근히 날카로운 소리를 채 듣지 못할 뻔했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 체험 세대였다. 그것도 청년 때 전투원의 일원으로서 직접 2차 대외계인 전쟁에 참가했었던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엎드렸고 다음 순간 거친 폭발음이 들렸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그 폭발은 크지 않았고, 그에게 날아든 것은 파편도 먼지구름도 아닌 소리뿐이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가우딘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는 의회 건물의 돔형 지붕이 보였다. 놀란 표정의 경비원들이 모여들었지만 생각보다 큰 폭발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대충 상황을 짐작한 가우딘 의원은 일어서서 엉망이 된 양복 윗도리를 털면서 나지막하게 자신의 감상을 피력했다.
"……전쟁이군."
메가 프라임시의 제2시가지 41번로 주변은 그리 번화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차량 통행량도 적었고, 지상 보행로는 거의 폐쇄된 지 오래였다. 건물들의 11층들을 연결하는 피플 튜브만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그나마도 자주 쓰이지도 않았다.
그랬기에 그날 시속 50km의 속도로 피플 튜브 내부에서 반중력 장치에 몸을 맡긴 채 41번가를 스쳐 지나갔던 몇몇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물체가 연막을 끌며 저고도로 추락해 내려왔고,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피플 튜브 바로 아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충격파로 튜브 전체가 크게 흔들리고 소리를 내며 유리창에 금이 그어져 나갔다. 바로 옆으로 지나쳐간 호버카들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천우신조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플 튜브를 빗겨간 UFO는 6차선 도로에 깊은 흠집을 남기며 미끄러져 나갔고, 병원 건물을 거의 들이받다시피 하며 멈춰 섰다. 나이팅게일 타워(Nightingale tower) 병원 앞은 조그마한 소공원으로 가꾸어져 있었고, 전동식 휠체어에 의지한 몇몇 환자들이 봄날의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었던 가운데 갑자기 지축을 울리며 추락한 UFO는 사람들을 공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었다. 물론, 경찰 작전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비명을 지르며 작전 지역에서 벗어나 주는 것이 더 편한 쪽이었다.
이동이 자유로운 호버카들은 일찌감치 주변에 자리를 선점하고 UFO를 포위하고 있었지만, 거기에 가장 빨리 도착한 메가폴의 지상 병력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에드워드들을 포함한 순찰차 4대였다. 에드워드는 순찰차 천장에 거치된 중기관총을 돌려 UFO에 겨누었고, 조수석의 클레어도 기관단총을 꺼내들었다.
[여기는 P31. 목표물을 확보했다. 대기하겠다.]
[카피. 기동대가 출동했으니 잠깐만 기다려라.]
일단은 지원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고작 8명으로 접근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순찰차가 3방향에서 반포위하고 - 고작 3대로 그러기엔 UFO가 조금 큰 감이 있긴 했지만 - 기다리는 동안 자욱한 먼지구름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자 에드워드는 비로소 UFO를 자세히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반적으로는 무언가 지구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혈관을 연상시키는 기괴하게 얽힌 보랏빛 무늬들에, 확실히 금속이 아닌 듯한, 오히려 무슨 동물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연주황색의 판들이 UFO 전체에 얽혀 있었다. 동체 전체에 걸쳐 20mm 포탄으로 인해 생긴 구멍들이 숭숭 나 있었고 GLM이 폭발하면서 부서진 부분도 보였지만, 에드워드에겐 그것이 UFO에 원래 있었던 땀구멍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혹시 저것이 무슨 징그러운 생명체처럼 꿈틀거리지나 않을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에드워드는 기관총의 장전손잡이를 당겼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안겨드는 차가운 방아쇠의 단단한 압력이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에드워드는 UFO를 정조준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에드……확신은 없지만, 오른쪽에 입구 비슷한 것이 보이는데?"
1분쯤 후 클레어의 말에 에드워드의 기관총 총구는 즉시 오른쪽으로 돌았다. 가늠쇠와 가늠자 너머로 확실히 문 같은 직사각형 두 개가 서로 맞닿은 모양이 보였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손잡이도 경첩도 무엇도 없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저건 지구의 것이 아니니까. 에드워드는 천천히 총구를 제자리로 되돌렸다.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보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다.
그 후로도 경찰 기동대원들과 추가적인 순찰차들이 도착하기까지는 2분 가량을 더 기다려야 했다. 클레어와 에드워드에겐 그 2분이 두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일단 더 많은 순찰차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통제하고, 무엇보다 묵직한 느낌의 울프하운드(Wolfhound) 장갑차가 14명의 기동대원을 태우고 UFO 앞에 멈춰서고 나자 일단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없어진 셈이었다. 상공에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구급 호버카와 경찰 호버카들까지 몇 대씩 선회하고 있었다.
[기동대 정위치. 순찰차들은 조금 더 수고해주기 바란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아침인데도 꽤나 피곤하게 느껴졌다. 에드워드는 무전기를 끄고 해치를 통해 운전석으로 내려갔다. 간담을 졸이던 클레어도 몸의 긴장을 풀어버린 채 조수석에 몸을 푹 파묻었다.
"후우. 멋진 아침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명령인데 엄호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다른 순찰차들이 여전히 UFO를 반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에드워드는 살짝 고민했다.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만 있어도 괜찮을까? 일단 저 세포 덩어리 같은 느낌의 UFO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상공에 호버카까지 떠 있는 마당에 무슨 상관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있기로 했다. 클레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약실을 비우고는 기관단총의 안전장치를 잠갔다. 그리고 솔직한 개인적 느낌으로는, 왠지 이 순찰차 천장에 장착된 기관총 따위론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기정당화일지도 모르겠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운전석 좌석을 20도 가량 뒤로 기울여버리고 몸을 푸욱 기대었다. 앞쪽의 정경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순찰차의 앞유리창 가득 보이는 것은 UFO였다. UFO. 그래, 정말 UFO. 또 그 외계인들인 건가?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이 황폐한 지구에서 대체 무엇을 원했기에 이렇게 돌아온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아무리 봐도 이것은 그저 정찰차량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단 한 대를 가지고 지구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골빈 녀석들은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하기 위해 이것을 보내온 것일까? 무슨 의도로? 앞으로 도대체 어떤 일이?
무전기에서는 여전히 UFO에 관련된 소식, 그리고 UFO가 빠져 나왔던 정체불명의 구형 물체에 대한 메시지가 정신없이 오가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들어가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무전상에서 약간의 논쟁이 있었긴 했지만, 결국 UFO를 오랜 시간 내버려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데 초점이 맞춰진 듯 했다. 장갑차의 40밀리 유탄발사기가 UFO를 조준한 가운데 윈드실드 너머로 기관단총을 든 기동대원들이 조심스럽게 클레어가 입구라 지적한 곳으로 전진하는 것이 보였다. 대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 앞에 다가서자 놀랍게도 문이 저절로 열렸다.
"거봐, 입구랬잖아."
클레어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미소지었지만, 에드워드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입구가 있다면, 그 안에 들어있을 누군가도 있다는 뜻이 된다. M4 기관단총 총신 아래에 장착된 택티컬 라이트를 어두운 내부에 몇 번 비춰보던 대원이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한 발을 내딛었고, 그 뒤를 이어 하나씩 하나씩 기동대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지막 대원까지 들어서고 나자 문은 저절로 닫혔다.
기분 나쁘게도, 왠지 에드워드의 머릿속에선 클래식 영화 채널에서 종종 볼 수 있던 구세기의 공포 영화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유령의 저택에 들어서면 저절로 닫혀 버리고는 다시는 열리지 않던 그런 거대한 출입문. 그걸 지켜보던 클레어조차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릴 정도였다……왠지 기분이 이상하다고.
당장 에드워드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고 기어를 후진으로 넣었다. 본부로 돌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UFO와의 거리를 띄워야겠다는 의도였다. 그것은 감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문이 다시 열렸다. 그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기동대원들이 아니었다.
폭발이 터져 나왔다. 주황색 화염이 넘실거리며 문 밖으로 토해져 나왔고, UFO 동체가 쩌억 쩍 갈라지며 사방으로 튕겨올랐다. 에드워드가 미처 가속 페달을 밟기 전임에도 순찰차는 폭발의 충격으로 뒤로 몇 센티쯤 밀려나며 앞유리가 금이 가 휘어들어왔지만, 방탄재질이라 깨지진 않았다. 날아든 수십 센티미터 크기의 파편 몇 개가 차 지붕을 아슬아슬하게 넘어 뒤쪽 건물에 처박혔고, 자잘한 조각들은 차 보닛과 앞유리에 부딪혀 튕겨났다. 화염은 문 밖 도로에 선명한 그을린 자국을 남기고는 순식간에 대기 중으로 산산이 흩어져버리며 입구 주변에 자욱한 연막을 형성했다. 이상스럽게 짙은 연막이었는데, 그것은 그 자리에 선 모두에게 묘한 기분과 생각을 안겨주었다.
[여기는 VC1, 기동대원 응답바람! 여기는 VC1, 기동대원 응답바람! 아무나 응답해! 여기는……. 빌어먹을, 기동대원 전원 사망! 반복한다, 전원 생명신호 소실, 전원 사망! 보이는 건 모두 쏴버려!]
장갑차에 타고 있을 지휘관의 급박한 목소리가 헤드셋을 울렸다. 에드워드는 반사적으로 십여 미터쯤 급후진했다가 겨우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제법 높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던 호버카들이 20밀리 기관포구를 번뜩이며 급하강하며 입구 근처로까지 내려왔다. 조수석의 클레어가 정신을 차려 다시 기관단총을 집어들고 안전장치를 풀었을 때, 에드워드는 서둘러 해치 위로 올라가 기관총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연막 속에서 무언가 아른거린다 싶을 즈음, 묵직한 소음과 함께 기관총이 탄피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사격 명령은 필요 없었다. 뭔가 보인다 싶기 무섭게 호버카 네 대가 무차별 사격을 개시했고, 에드워드와 다른 대원들도 거기에 동참하여 닥치는 대로 쏘아댔다. 장갑차가 유탄을 퍼부어대자 자욱한 연막 속에서도 파편과 불꽃이 뚜렷이 보일 정도였다. 약 10여 초간 이어진 집중 사격이 완전히 UFO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나자 사격 중지 명령이 떨어졌는데, 그리고 나서도 호버카 두어 대는 몇 초간 더 포탄을 퍼부었다. 에드워드 또한 몇십 발쯤 더 쏘아댄 뒤 방아쇠에 최대한 압력을 가하며 수상쩍은 것이 혹 드러난다면 언제라도 쏠 준비를 하고는 폭연에 가려진 UFO 주변을 주시했다.
"드디어 놈들이 나오려나 봐."
클레어가 무전기에 대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떤 모습일까? 문득 에드워드는 그 사실이 궁금해졌다. 어떤 놈들일까. 1, 2차 전쟁 때와는 확연히 다른 UFO를 타고, 이렇게 도심지 한복판을 헤저은 놈들은. 지난 80년 동안 UFO란 단어는 완전히 외계인의 비행체를 뜻하는 말로 의미가 굳어져 버렸지만, 그렇다고 만화에서처럼 미래에서 날아온 우리의 후손이라거나 어떤 미친 천재 과학자가 세계 정복을 위해 만들어낸 물건이 아니란 보장은 없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눈앞에 나타난 것이 외계인이란 사실을 의심할 사람은 이곳엔 없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두 번이나 만났다. 세 번이라고 못할 건 무언가.
그럼 도대체 놈들은 어떤 모습일까. 역사 시간에 배웠던 외계인들의 기괴한 모습을 떠올리며 에드워드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외계 지적 생명체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존재했었지만, 지난 전쟁에서 보아온 외계인들은 기체 생명체도, 규소질 생명체도, 집단 군체도 아닌 그저 흔해빠진 비행접시에 흔해빠진 광선총을 들고 설치는 흔해빠진 휴머노이드였을 뿐이었다. 덕분에 신인동형론주의자들은 기세를 올렸었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을 달래는 동안 연막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그때 문득 옆에서 터져 나온 기관총 총성에 클레어가 놀라 비명을 질러댔고, 에드워드도 당황하며 십여 발 가량 쏘았지만 다행히도 날아간 총탄은 몇 개의 보랏빛 젤리 같이 생긴 물체를 튕겨올렸을 뿐이었다. 마치 깨진 수박처럼 중앙부가 갈라져 하늘을 보고 있는 그슬린 UFO 주변으로는, 온통 시커멓게 그을리고 유탄의 폭발에 포장이 온통 깨져나간 도로에 눌어붙어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보랏빛 살점이 흩어져 있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 제일 큰 조각이라고 해 봐야 팔뚝만큼이나 할까.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고, 매캐한 단백질 타는 냄새까지 풍겨오자 에드워드는 맥이 탁 풀려 기관총에 얹어놓았던 손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렸다.
이벨린 화이트는 자기 동료와 함께 쓰는 연구실 앞에 서서 문을 두들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잠깐 고민했다.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램프에 불이 들어와 있었으니까. 데미안 가이슬러, 당연히 같은 연구실을 쓰는 그 해괴망측한 녀석일 것이었지만.
몇 개의 직영 대학과 교육 기관, 그리고 거기에 딸린 부속 연구 기관을 운영하고 시 전체의 교육을 담당하는 라이프트리사(Lifetree社). 도시계획에 의해 분할된 주거 구역과 상업 구역 사이의 완충 지대에 위치한 이 회사 본부 건물에는 지하 연구 시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이곳은 그래도 프라임 전체에서 유일무이한 엘리트 지식인들의 집합체이다 보니 연구 시설 또한 꽤나 의욕에 불타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밤새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고, 덕분에 시차 적응에 실패한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띄곤 했다. 다만, 어디서나 그렇듯 가끔 예외적인 인물은 반드시 있었다. 데미안처럼. 이벨린은 결국 고민을 때려치우고 그냥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섰다.
시각은 오전 10시를 살짝 넘기고 있었다. 원래 라이프트리가 요구하는 출근 시각은 꽤 빠른 편이었고, 이벨린도 나름대로 성실한 편이라 지각 같은 건 손에 꼽을 정도였긴 했다. 하지만 워낙 아침에 요란한 사건이 터져 버렸고, 그 뒤로도 교통 차단이니 현장 정리니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곳이 통제되었던 탓에 일찍 오려야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데미안이 살고 있는 원룸도 어차피 자기 집만큼 먼 곳임을 감안해볼 때 미리 아침에 와 있었을 리는 없었고, 남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역시나 데미안은 불이 꺼져 어둠침침한 연구실 한편에 스탠드 하나를 켜 놓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또 이 친구 밤새었나 보군. 이벨린은 혀를 차며 데미안을 살짝 흔들었다.
"일어나, 지금 아주 난리가 났어."
데미안은 그저 비척거리다가 이벨린이 세 번째, 그리고 좀 많이 세게 흔들었을 무렵 겨우 정신을 차리더니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마구 엉켜서 새집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 머리를 긁적이며 겨우 아는 척을 했다. 저 머리 감은지 몇 주일쯤 되었을까. 여하튼 남자들이란. 이벨린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금 혀를 차며 자신의 PDA를 꺼내들었다.
"또 밤샜지? 덕분에 이 난리가 났는데도 모르고 늦잠이나 자고 말이야. 이거 좀 봐."
PDA 화면에선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의 VOD(Video On Demand)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데미안을 PDA 바로 앞까지 얼굴을 가져다댔다가 문득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는 안경을 벗더니 지저분한 가운 옷자락에 슥슥 문질러 닦고 다시 쓴 후 헤드라인을 천천히 읽었다.
"외계인……재침공?"
"그래, 놈들이 또 왔대."
"또?"
데미안은 다시 머리를 벅벅 긁다가 PDA의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가져다댔고 (덕분에 이벨린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잽싸게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PDA 터치스크린에 남아 있는 희미한 하얀 가루들을 닦아야 했다.) 연구실 중앙에 설치된 입체 영상 투사장치가 위잉 하는 냉각 팬 소리를 내며 PDA로부터 적외선으로 전송 받은 뉴스 영상을 띄워 올렸다. 리포터가 어지럽게 말을 쏟아대는 뒷배경으로 새까맣게 불탄 UFO와 폭발 자국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간략한 상황 요약과 정보들이 화면에 나열된 뒤 VOD 메뉴가 떠올랐다.
데미안은 화면에 떠오른 항목들을 잠시 보다가 외계 생명체 관련 자료를 보려고 선택했다. 데미안이 한참 동안 화면에 보이고 있는 불탄 살점 조각들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또다시 손수건을 꺼내어 터치스크린에 묻은 하얀 가루들을 닦아야 했던 이벨린이 살짝 짜증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관심은 좀 있는가 본데……그 항목은 나도 진작에 봐두긴 했어. 어차피 화면으로 보는 거라서 도움은 안 될 거야. 더군다나 어차피 우리 같은 햇병아리완 상관없는 일이잖아. 그래봐야 이제 겨우 학위 올라간 초짜 연구원인데 뭘 더 바라니."
이벨린이 말하거나 말거나 데미안은 구석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인스턴트 식품 깡통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위쪽에 설치된 스위치를 뽑았다. 핫팩이 안에 들어 있는 고형 식품을 데우는 동안 인스턴트 커피도 하나 뜯었는데, 실수로 봉지를 살짝 기울이는 바람에 몇 방울이 가운에 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이미 거기 커피 자국이 있었던 터라 별 티도 안 날 정도였고, 데미안은 별 거 아니라는 듯 휴지 한 장을 뽑아다 대강 문지른 뒤 휴지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말을 이었다.
"아침은 먹었어?"
"먹었어. 제발 부탁인데, 좀 제대로 된 것 좀 먹고 살아라. 마르모트라도 하나 구해다 이 인스턴트 식품을 1년간 먹인 뒤에 어떻게 되는지 확인이라도 해봐야 되겠니?"
"귀찮아. 게다가 왜 불쌍한 마르모트를 희생시키냐. 과학 발전을 위해선 이 몸의 건강 하나 불살라도 상관없다고. 그리고 말인데, 이번 건은 우리 쪽에, 우리 햇병아리 그룹에 떨어질 공산이 높아."
소위 햇병아리 그룹, 어떤 연구조건 간에 어느 정도 연륜 있는 사람이 장을 맡고 그 아래로 없는 사람이 적당히 조합되어 편성되는 게 당연하긴 했지만, 그 정도의 차이란 게 분명히 있긴 했다. 덕분에 이쪽 생물학 분과 F조로 분류되는 연구 그룹은 그런 별명을 얻게 되었다.
"어째서?"
이벨린이 인상을 찌푸리자 데미안은 귀엽다는 건지 슬쩍 웃었다.
"돈이 안 되는 일이잖아. 우리 라이프트리도 겉으로는 교육단체 운운하며 광고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업 이미지 광고라고. 어차피 좀 연륜 있으신 분들은 죄다 비싼 일 맡으시느라고 바쁘실 테니까."
"억지야.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외계인이라고. 무엇보다 이 일이 얼마나 중대한 건데 우리 같은 애들에게 맡긴다고 그래. 게다가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된다는 건 과학자들에게 있어선……."
"야야, 세상이 열정과 호기심만으로 돌아가는 줄 알아? 적어도 이 도시를 돌리는 건 젊음이 아닌 늙음이고, 열정이 아닌 돈이라고. 이 도시의 모든 시설은 이익단체야. 눈앞의 이익을 쫓아 달리기 바쁘지. 더군다나 이쪽 햇병아리 그룹은 한가하고, 젊어서 창의력도 뛰어나다는 헛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더욱 안성맞춤이라고."
이벨린에겐 그럼 여기서 근무하는 우린 어떠냐는 질문이 문득 목가까지 올라오는 게 느껴졌지만 곧 삼켜버렸다. 그저 석연찮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밖에. 데미안은 호주머니를 한참 뒤적이더니 잡다한 휴지조각과 구겨진 메모지, 몽당연필, 빈 담뱃갑, 종이 클립 등등 각종 잡동사니들 가운데 겨우 자신의 PDA를 찾아내고는, PDA의 프론트 슬롯에 꽂혀 있는 현금 카드를 뽑아 흔들어 보였다.
"좋아, 못 믿겠으면 내기할래? 10달러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으음. 이벨린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으며 주저했다. 저 녀석, 이상하게 확신을 갖고 말하면 뭔가 거부하기가 힘들어진단 말이야. 꽤 오랫동안 파트너였는데도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어떤 인간인지 이해가 안 갔다. 그때 갑작스레 PDA가 비프음을 몇 번 발했고, 이벨린은 그것을 집어들어 화면을 잠시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말대로 호출이야. F조 전체 다, 지금 당장 오라는군. 정말 우리 쪽에 맡기려나 본데."
그 말을 하고 나자 이벨린은 왠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기 안 걸길 잘했군. 하지만 그 기분은 데미안이 그것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헝클어진 머리에 커피 자국이 남은 가운 그대로, 한 손에는 여전히 인스턴트 깡통을 손에 든 상태 그대로 문손잡이를 막 잡아 열고 나가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싹 날아가 버렸다. 데미안은 이벨린이 째려보자 멍청히 있다가 말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 호출이라면서, 얼른 가야지. 그나저나 조금만 늦게 연락했었다면 10달러는 공짜로 버는 건데……."
"이건 파트너로서 진지하게 부탁하는 건데, 연구실 안에선 몰라도 어디 갈 일 있거든 머리부터 감고, 옷도 좀 새 걸로 갈아입어! 소장님을 그 꼴로 만나려고 그래!"
이벨린이 그날 모임에 15분 지각한 것을 데미안 탓으로 돌린 것은 전혀 잘못된 행동이 아니었다.
아침의 교전이 종료되고, 9시경에 이르러 시의원들이 출근하기 무섭게 시작되었던 논쟁은 점심 무렵에 이르러서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시의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리석 바닥 장식재 위에서는 아직도 2명의 시의원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전 피어스 의원님의 태도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요. 명명백백한 상황 아닙니까? 이건 외계인의 재침공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이 의결 사안에 대해 반대하십니까?"
메가 프라임 시 전체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초월주의(Extropian)당 당수인 프란츠 가우딘 의원이 열을 올려가며 떠들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이미 60. 평균수명의 2/3을 보내고, 2040년경의 2차 외계인 전쟁을 젊어서 직접 체험한 세대치곤 아직 꽤나 정정한 편이었다.
"가우딘 의원님의 의견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선 현 사태를 조금 더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UFO가 출현해 도시를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명확한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공격해 왔는지조차도요. 이 상황에서 엑스컴의 부활을 논하는 건 무리입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그런 여력이 없고요. 갱들에 맞서 메가폴 병력 증원시키는 것만 해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만."
야당이라 할 수 있는 기술진보(Technocrat)당의 배지를 양복 윗주머니에 매달고 있는 안드레아 피어스 의원이 점잖게 신중론을 제시했다.
"여력이 없다는 것은 솔직히 조금 과장된 말이시겠죠. 여력은 만들면 되는 겁니다. 게다가 의원님의 말씀대로, 메가폴에겐 갱들이란 지상과제가 있기에, 지금의 이 외계인이란 적에 대해 대항할 또 다른 부대가 필요한 거고, 그게 엑스컴이 되는 겁니다."
"우린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정말이지 없습니다. 그나마 격추시켰던 UFO에서조차 내부 구조를 폭파시켜 건질 수 있었던 것이 없었으니까요. 기껏해야 기관포에 난자당한 외계인들의 시체 정도죠. 그들이 언제 또 나타날지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긴 무리입니다. 차라리 그 병력으로 메가폴을 증원시키는 게 더 유동적인 대처 방안이 되겠죠."
가우딘 의원은 천천히 숫자가 빼곡히 인쇄된 종이를 들어 보였다.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침 뉴스 보셨습니까? 고작해야 호버카 3대가 격추되고, 기동대원 14명이 전원 사망하고, 장갑차 하나, 순찰차 3대, 민간 차량 17대, 민간인 사상자가 40명이죠. 건물 두 채가 완파되었고요. 물론 이 건물 옥상에 명중한 GLM도 있었죠. 재산 피해는 아직 정산도 다 못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메가폴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부대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상 어떤 경찰이 대공미사일과 기관포가 장착된 호버카를 운영하죠? 역사상 어떤 경찰이 도시 상공에 나타난 UFO를 격추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까? 지금만 해도 이 도시에는 충분한 과잉 화력입니다. 거기에 또다른 무언가를 추가시킨다는 건……."
"……그래서 또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완벽히 다르고 제한적인 임무만을 수행 가능한 부대가 새롭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이름에 대해선……."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자 원탁에 둘러앉은 13명의 의원 중 한 명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말인즉슨 다 옳은 말이다. 단지, 그 중 어느 게 더 도움이 될지가 문제였지. 피어스 의원도 그렇게 느꼈는지 잠시 입을
Our last, best hope for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