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요즘도 여기 오시는 분 없겠죠.
네드리의 낙서장 - 작가 : 네드리(nedlee)
글 수 65
언젠가 그는 자기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구식 14인치 TV에서 나오던 은하철도 999에선 자손을 낳음으로서 영원히 이어지는 피 어쩌고 같은 이야기를 해댔지만 그는 철이보다는 기계별에 찾아가 영생을 얻은 사람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것이 현실화된 적은 없지만, 일단 사람들은 진나라를 통일하고 납이 한가득 든 장생약을 먹건 폐암 말기 상황에서 온몸의 혈액을 뽑아내고 액화질소에 몸을 담그건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좋은 이야기 소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죽지 않는다는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가 있긴 했다. 삼천갑자를 살았던 동방삭이 그랬듯 가명을 써서 저승사자(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를 속여넘기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과학 잡지에서 유전자 조작 어쩌고로 미래에 가능하게 될 것이란 말을 했던 것처럼, 결코 늙어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총에 맞거나, 차에 치이거나, 불에 타거나 해서는 얼마든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아무리 자르고 불태워도 새로운 사지가 잘려나간 자리에서 불쑥 솟아난다거나 순식간에 상처가 아문다는 것을 (그러나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리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우스처럼 어떤 무기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물론 아킬레우스는 스틱스강에 미처 담그지 못한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았지만. 그냥 발을 한 번 더 강물에 담갔으면 될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영화에서처럼 몸이 박살나 가루가 되고 심장이 정지해도 무조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의 경우에는 그들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여느 여름, 친구들과 함께 여행간 한산한 해수욕장에서 그는 밤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생각보다 바닥이 깊으며, 자신이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았다. 그는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렸지만 팔다리가 제대로 균형을 맞추어 움직이지 않은 탓에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 믿었던 친구들은 모래사장 위에서 취해 널브러져 있었다. 폐에 물이 차고서부터는 그는 숨이 막혀오는 고통을 느끼며 물 속으로 가라앉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바다 바닥을 긁으며 10분을 보냈다. 그는 처음엔 죽기 전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나 뭐 그런 게 적용되어 자신이 느끼는 시간이 지극히 늘어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고통을 없애줄 죽음을 기다렸지만, 그 다음엔 자신이 죽음에 이른 뇌가 분비한 엔돌핀 호르몬에 의해 환각을 느끼거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마저 그리 합리적 설명이 되지 못하자 그는 산소를 갈구하는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바닥을 걸어서 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지금껏 들이마신 물을 요란히 토해냈고, 자신이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걸어나왔다는 사실에 그나마 마신 술과 안주까지 깔끔하게 토해냈다.
당연하게도, 그는 의혹을 느꼈다. 하지만 시계를 눈 옆에 달고 다니지 않는 한 그가 얼마만큼 물 속에서 지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지독하게 이성적인 인간이라 믿었던 그는 그저 다량의 알코올과 공포가 빚어낸 착각일 거라 믿고 싶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싶어 대야에 물을 붓고 고개를 담갔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막혀왔고 이미 물에 빠진 적이 있던 그는 겁에 질려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로서 그는 그것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두 번째 당혹스런 사건은 며칠 뒤 집 근처의 미장원에서 있었다. 최근 들어 이상하게도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그는 기분전환 겸 미장원에 들러 머리손질을 부탁했고 미용사는 껌을 씹으며 가벼운 커트를 위해 그의 머리를 잡고 가위를 눌렀다. 이상하게도 가위가 들어가지 않았고 그는 거울에 비치는 약간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미용사는 짜증을 내다 있는 힘껏 가위의 양손잡이를 움켜잡았고 그 결과로서 가위의 중앙부분이 부러졌다.
미용사는 당황했지만 그 또한 당황했다. 물에 빠졌던 일까지 떠오르자 그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결국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더럭 난 그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가까운 병원을 찾았지만 대기실 벤치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이루어진 검진에서, 간호사는 그의 팔이나 사지 어떤 곳에도 채혈용 주사바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해했고 커다란 방사선 기계 앞에서 찍은 X레이 사진은 그의 몸이 납으로 이루어져 있기라도 한 듯 그의 몸 위가 온통 새하얀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몰라 멍청히 서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다 그는 병원에서 뛰쳐나왔다.
그래서 그는 확인을 해보길 원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자기 집 안방에서, 자신의 손목을 식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식칼은 동맥을 끊고 피부 조직 깊숙이 박히는 대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에서 빠져나와 위로 튕겨올랐다. 반사신경이 튕겨오른 식칼을 피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오히려 가만히 서 있었고, 튕겨올랐다가 아래로 도로 떨어져내린 식칼은 그의 어깨에 내리꽂혔지만 조금도 박히지 못한 채로 미끄러져 바닥에 박혔다. 그리고 그는 가스레인지에 손을 집어넣고 불을 켜보기도 했으며 220볼트 콘센트에 쇠젓가락 두 개를 꽂아보기도 했고,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힘껏 내리쳐보기도 했다.
그 결과로서 그는 정전된 방 구석에서 검게 그을음이 남은 손에 부러진 망치자루를 손에 쥐고 생각에 잠겼다. 건강검진 결과는 미심쩍긴 했지만 그는 살아 있었고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자라지 않는 듯 했지만 그는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간지럼을 탈 수도 있었고 배설도 가능했다. 꿈도 꾸었고 말도 할 수 있었으며 구구단도 외울 수 있었고 살결을 꼬집을 수도 있었으며 TV를 볼 수도 있었다. 그는 정상이었다. 단지 그 무엇도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어떤 것도 상처를 입힐 수 없는 걸까?
그래서 그는 번잡한 팔차선 도로의 육교 위로 올라간 뒤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쉽게도 우연히 그때 그곳을 지나치게 된 불운한 운전자가 자기 앞에 떨어지는 사람을 발견하고 재빨리 핸들을 꺾어 옆으로 차를 돌려버린 덕분에 영화와 같은 정면충돌은 되지 못했지만, 수 센티미터 두께의 자동차 문짝 측면이 크게 찌그러뜨린 그 충격에서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운전자가 얼른 뛰어내려 뒤를 돌아봤을 때 그는 일어서서는 인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운전자는 경악하다 못해 졸도할 지경이었다. 예상대로 정말 차에 치여 뼈 몇 군데가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아파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대형 트레일러가 도로 한복판에서 인도를 향해 걸어가는 그를 두 번째로 치어 십여 미터 가량 앞으로 날려보냈을 때 그의 미소는 귀까지 찢어질 듯한 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트레일러 뒤로 연쇄 추돌이 벌어졌고, 마침내 LP가스를 사용하는 택시가 후면충돌로 인해 폭발하면서 그는 불붙은 트럭 파편들과 함께 인도까지 튕겨나가 상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물론 그는 곧 불타고 찢어진 옷자락에 묻은 유리조각을 털어 내며, 사고의 굉음만 아니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홀끗 돌아볼 만한 광소를 터트리며 현장에서 멀쩡히 걸어나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자신했다. 대단한 실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능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늘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으레 흔히 그러듯이, 자신의 폭력적인 본능을 드러냈다. 어떤 수를 써도 죽지 않는다면 그에게 있어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겠느냐고. 자신이 죽지 않는 한 하고 싶은 걸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그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허울좋은 망상이었다.
그 길로 바로 집에 들러 자신을 시험하는데 사용했던 식칼 한 자루를 들고 나온 그는 목표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서 근처 군부대에서 경계를 서던 세 명의 군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다짜고짜 그 칼로 가장 가까이 있던 한 병사의 배를 찔렀다. 만용이었다.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기습에 끄르륵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그 병사가 쓰러지고, 그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써 피투성이가 된 그가 지독하게 당황해서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한 다른 병사에게 또다시 칼을 꽂아 넣고, 다시 눈을 희번덕이며 마지막 남은 목표를 노릴 때쯤. 마지막 남은 이등병이 겁에 질려서는 소총에 실탄을 꽂아 넣고는 역시 다짜고짜 쏴버렸던 것이다.
물론 어떤 무기를 쓰건 그는 죽지 않았다. 다만 군용 소총탄의 대단한 위력에 그저 뒤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체는 멀쩡했기에 그는 꾸물거리며 일어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더욱 당황했고, 혼자 남았기에 더욱 겁에 질렸던 이등병은 절차건 뭐건 소총을 연발로 맞추고 탄창 하나를 깔끔하게 비웠다. 근거리에서 사격한 탄환은 한 발도 에누리 없이 그의 몸을 강타했고, 여전히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지만 반동에 의해 뒤로 넘어지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다치건 다치지 않았건 그는 정상이었고, 그의 압각신경은 정상이었으며 그 결과로 인해 그는 지독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고, 그 동안 이등병은 미친 듯이 그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침착을 회복해 고통을 무시하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훈련지에서 울려퍼진 요란한 총성을 듣고 다른 군인들이 달려오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는 죽지 않을지언정 슈퍼맨이 아닌지라 사람 여럿이 달라붙으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여러 사람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던 그는 살인죄로 경찰서에 이송되었다. 조사과정에서 그가 실탄 사격을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그는 곧 실험의 대상으로 돌변했다. 매스컴이 개입되었다면 아마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도 희한한 존재인 데다가 두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카메라 플래시와 붐 마이크에 둘러싸이는 대신 어두운 지하실에서 취조대에 묶이게 되었으며 두꺼운 마스크를 두른 의사들은 그에게 천연두와 에이즈 바이러스를 먹였고(바늘이 꽂히지 않았으므로 주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사량의 방사능을 쪼였으며 공업용 프레스에 밀어넣었고 백열하는 산소 용접기를 들이댔다.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을 때 그는 어쩌다 그가 이런 존재가 되었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실험당하고, 어떤 고문을 당하고 괴로움을 겪어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은 결국 자신의 신체적 이상을 알리기 위한 신경계의 전기적 신호에 불과했고, 그것은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고통에 어이없이 굴복함으로서 자신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머릿속 깊은 곳에 끓어오르는 분노로서 간직하고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고 고문을 하고 회유하고, 그 어떤 방법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실망한 그들은 나중에 혹시 뭔가 밝혀질 지 모르는 기회를 노리며 그를 감옥에 처넣었다. 어차피 그는 살인자였고, 그를 사형시키기는커녕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이상 그에게 내릴 수 있는 처벌은 무기징역밖에는 없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정상적인 신진대사를 하는 그가 늙어죽는지 아닌지는 그들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저 어딘가의 극비 파일에 그 존재만이 기록된 채 격리된 독방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두 차례 있었고 당선된 대통령이 늘상 휘두르곤 하는 솜방망이 개혁이 있었으며 파일은 잘못 위치가 기록된 구석진 캐비닛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그는 감옥에서 탈출했다. 감독관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에겐 영화에서처럼 탈출을 위한 쇠톱이나 모종삽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철조망과 4층 높이의 건물은 아무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 자신이 도구였다. 단순히 조금 날카로울 뿐인 송곳니조차도, 절대 파괴시킬 수 없고 절대 날이 무디어지지도 않았기에 충분히 훌륭한 절단도구였다. 지독하게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늙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이빨과 손톱만으로 벽을 갈아서 부수고 탈출했다.
7년이 지난 후였다. 그 동안 뼈아픈 고통으로 치른 대가는 비쌌기에 그는 신중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심지어는 졸림도, 그 어떤 욕구조차도 단지 그 고통만을 참아낼 수 있다면 그에겐 어떠한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정말 아무런 필요조차도 없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래봤자 지하철역에 드러누운 노숙자 신세가 고작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존재가 수배전단으로 붙을 만한 것도 아니었긴 했지만 이미 그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법적으론 죽은 존재였고, 그가 국내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은행을 털었다. 싸구려 화약총을 휘둘러대며 만원짜리 지폐로 가득한 자루를 집어들고 창구를 나섰을 때, 뉴스의 흑백 CCTV 화면에 나오듯이 용감한 여직원이 그의 몸에 대고 전기충격기를 눌렀지만 그는 기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 돈을 금괴로 바꾸고 미국행 밀항선을 탔다. 선실에 밀항자를 가득 실은 채 어선으로 위장하고 태평양에서 다른 밀항선과 접촉하려던 배는 해양경찰의 추격을 받아 멈춰섰다. 그는 겁에 질렸다. 만약 잡히게 된다면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질 것이었고, 이미 법적으로 죽은데다가 은행강도까지 저질렀던 이상 전까지 겪었던 일들을 반복해서 모두 겪은 다음 풀려날 날을 기약하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힐 것이었다. 분명 그가 처음에 탈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감독관들이 무책임했기 때문이었고 그가 갇혀있던 시설이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두 번째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지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머리 위를 선회하는 경찰 헬기를 배경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여전히 수영을 할 줄 몰랐다. 탈옥 이후에 수영이나 배우러 다니기엔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수면에 떠오를까 했지만 그래서야 또 잡힐 것이었다. 그는 죽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날 수도 없었고 물 밖에 대기 중인 건장한 경찰관들을 때려눕힐 수도 없었다. 그는 가라앉기로 결심했고, 폐 가득 들어찬 물로 인해 그는 비중이 물보다 근소하게 무거운 존재가 되었으며 거기에 은행을 턴 돈을 바꾸었던 금괴의 무게까지 더해지자 그는 순식간에 바다 밑까지 가라앉았다. 아가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바다에 빠진 그날 그랬던 것처럼 물론 그는 죽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비교적 여유 있게 물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그날 그랬던 것처럼 바닥을 걸어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주변이 검게 물들어갈 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밖은 대낮이었지만 태양빛은 불과 십수 미터만 바다 속으로 들어와도 그 효용을 잃었고, 50미터 정도 가라앉고 나자 주변은 온통 어둡고 기괴한, 암울하게 뒤틀린 색깔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곳이 되었다. 그는 겁에 질려 금괴를 내던지고 필사적으로 수면을 향해 헤엄쳤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수영을 할 줄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의 평균 수심은 4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자포자기에 가까운 끝없는 침강 끝에 마침내 해저면에 닿았을 때 깊이는 1킬로미터에 육박했다. 주변엔 빛이라곤 거의 찾기 힘들었으며 엄청난 수압 덕분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필사적으로 헤엄친 탓에 그는 자신이 탄 배가 어느 방향에서 왔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선택도 없었기에 그는 무작정 방향을 잡아 어둠 속을 더듬으며, 비틀거리고 비틀거리며 걸었고, 또 걸었다. 무언가를 기어올랐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고 무언가에서 굴러떨어졌으며, 무언가에 기대어 잠들었고 잠이 깨면 또 어둠 속을 무작정 헤매며 걸었다. 촉각 이외에 그가 느낄 수 있었던 건 결코 끝나지 않을, 산소를 갈구하는 온몸의 고통과 입 안을 가득 채운 바닷물의 지독하게 차가운 짠맛뿐이었지만, 그나마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무뎌져갔다. 그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목록을 만들어 되새기고 또 되새겼고 살아온 날들을 되새겼고 온갖 잡다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끝내는 바닷가에서 술에 취해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던 친구들을 저주했고 자신을 잡아가뒀던 정부기관을 저주했고 바다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던 때의 자신을 저주했고 어째서 자신이 죽지 않는가를 저주했지만 역시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무뎌져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는 출발지점에서 고작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해구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깊은 바다 속에도 산이 있었고 계곡이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긴 방랑의 결과로서 그는 시간을 알지 못했고 공간을 알지 못했고 빛을 알지 못한 채 방대한 바다 속을 무의미하게, 기계적으로 헤매었다.
두 달째 되던 날, 이미 제대로 생각조차 하기 힘든 상태로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그는 생소한 무언가를 느꼈다. 고작 두 달 동안 느끼지 않았다고 해서 생소하다고 판정하기엔 너무 가혹한 것일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는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뜨거움이었고, 빛이었고, 진동이었다. 격렬한 충격파와 열류가 그를 뒤덮었으며 그의 눈은 두 달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빛에 반응하지 못하고 질끈 감기었다.
그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감정은 오직 두려움이란 단순한 것으로 가득 차올랐고 그는 미친 듯이, 방향조차 알지 못한 채 그것에게서 도망쳤다. 비록 달려서 도망친다는 것이 막대한 수압에 의해 제자리에서 그저 팔다리를 볼썽사납게 놀리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도망쳤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근소했다.
해저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어마어마한 열류를 뿜어내며 식어갔다. 순간적으로 차가운 바닷물과 만난 용암은 표면이 식어 급격히 굳다가, 열팽창에 의해 표면 일부가 깨지며 다시 뜨거운 용암이 흘러나오고 굳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그를 덮쳤다. 한순간 그는 어마어마한 열기를 느꼈고 무언가가 온몸을 뒤덮어 자신을 넘어뜨리는 걸 느꼈지만 그것이 고통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고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가 그 시도를 그만둘 때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을 뒤덮은 현무암의 관 안에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머리로, 공허한 두 눈을 통해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그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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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굉장히 많지만 문체 연습 겸 이틀만에 대충 마무리짓고 치웁니다. 더 써봤자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같은 소재로 세 개째 글을 쓰는군요. 내가 불사에 그렇게 집착했었나.
어쨌건 우리 모두 수영을 반드시 배웁시다. -_-
어렸을 적부터 그가 죽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구식 14인치 TV에서 나오던 은하철도 999에선 자손을 낳음으로서 영원히 이어지는 피 어쩌고 같은 이야기를 해댔지만 그는 철이보다는 기계별에 찾아가 영생을 얻은 사람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것이 현실화된 적은 없지만, 일단 사람들은 진나라를 통일하고 납이 한가득 든 장생약을 먹건 폐암 말기 상황에서 온몸의 혈액을 뽑아내고 액화질소에 몸을 담그건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좋은 이야기 소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죽지 않는다는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가 있긴 했다. 삼천갑자를 살았던 동방삭이 그랬듯 가명을 써서 저승사자(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를 속여넘기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과학 잡지에서 유전자 조작 어쩌고로 미래에 가능하게 될 것이란 말을 했던 것처럼, 결코 늙어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총에 맞거나, 차에 치이거나, 불에 타거나 해서는 얼마든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일본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아무리 자르고 불태워도 새로운 사지가 잘려나간 자리에서 불쑥 솟아난다거나 순식간에 상처가 아문다는 것을 (그러나 핵폭탄이라도 떨어뜨리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는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우스처럼 어떤 무기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물론 아킬레우스는 스틱스강에 미처 담그지 못한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았지만. 그냥 발을 한 번 더 강물에 담갔으면 될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영화에서처럼 몸이 박살나 가루가 되고 심장이 정지해도 무조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의 경우에는 그들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여느 여름, 친구들과 함께 여행간 한산한 해수욕장에서 그는 밤술에 취해 충동적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생각보다 바닥이 깊으며, 자신이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았다. 그는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렸지만 팔다리가 제대로 균형을 맞추어 움직이지 않은 탓에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 믿었던 친구들은 모래사장 위에서 취해 널브러져 있었다. 폐에 물이 차고서부터는 그는 숨이 막혀오는 고통을 느끼며 물 속으로 가라앉아,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바다 바닥을 긁으며 10분을 보냈다. 그는 처음엔 죽기 전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나 뭐 그런 게 적용되어 자신이 느끼는 시간이 지극히 늘어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고통을 없애줄 죽음을 기다렸지만, 그 다음엔 자신이 죽음에 이른 뇌가 분비한 엔돌핀 호르몬에 의해 환각을 느끼거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마저 그리 합리적 설명이 되지 못하자 그는 산소를 갈구하는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바닥을 걸어서 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바닥에 지금껏 들이마신 물을 요란히 토해냈고, 자신이 물 속에서 숨을 안 쉬고 걸어나왔다는 사실에 그나마 마신 술과 안주까지 깔끔하게 토해냈다.
당연하게도, 그는 의혹을 느꼈다. 하지만 시계를 눈 옆에 달고 다니지 않는 한 그가 얼마만큼 물 속에서 지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지독하게 이성적인 인간이라 믿었던 그는 그저 다량의 알코올과 공포가 빚어낸 착각일 거라 믿고 싶었고,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싶어 대야에 물을 붓고 고개를 담갔지만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막혀왔고 이미 물에 빠진 적이 있던 그는 겁에 질려 황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로서 그는 그것이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 노력했다.
두 번째 당혹스런 사건은 며칠 뒤 집 근처의 미장원에서 있었다. 최근 들어 이상하게도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그는 기분전환 겸 미장원에 들러 머리손질을 부탁했고 미용사는 껌을 씹으며 가벼운 커트를 위해 그의 머리를 잡고 가위를 눌렀다. 이상하게도 가위가 들어가지 않았고 그는 거울에 비치는 약간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미용사는 짜증을 내다 있는 힘껏 가위의 양손잡이를 움켜잡았고 그 결과로서 가위의 중앙부분이 부러졌다.
미용사는 당황했지만 그 또한 당황했다. 물에 빠졌던 일까지 떠오르자 그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결국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더럭 난 그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가까운 병원을 찾았지만 대기실 벤치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이루어진 검진에서, 간호사는 그의 팔이나 사지 어떤 곳에도 채혈용 주사바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해했고 커다란 방사선 기계 앞에서 찍은 X레이 사진은 그의 몸이 납으로 이루어져 있기라도 한 듯 그의 몸 위가 온통 새하얀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몰라 멍청히 서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다 그는 병원에서 뛰쳐나왔다.
그래서 그는 확인을 해보길 원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자기 집 안방에서, 자신의 손목을 식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식칼은 동맥을 끊고 피부 조직 깊숙이 박히는 대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에서 빠져나와 위로 튕겨올랐다. 반사신경이 튕겨오른 식칼을 피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오히려 가만히 서 있었고, 튕겨올랐다가 아래로 도로 떨어져내린 식칼은 그의 어깨에 내리꽂혔지만 조금도 박히지 못한 채로 미끄러져 바닥에 박혔다. 그리고 그는 가스레인지에 손을 집어넣고 불을 켜보기도 했으며 220볼트 콘센트에 쇠젓가락 두 개를 꽂아보기도 했고,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힘껏 내리쳐보기도 했다.
그 결과로서 그는 정전된 방 구석에서 검게 그을음이 남은 손에 부러진 망치자루를 손에 쥐고 생각에 잠겼다. 건강검진 결과는 미심쩍긴 했지만 그는 살아 있었고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은 자라지 않는 듯 했지만 그는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간지럼을 탈 수도 있었고 배설도 가능했다. 꿈도 꾸었고 말도 할 수 있었으며 구구단도 외울 수 있었고 살결을 꼬집을 수도 있었으며 TV를 볼 수도 있었다. 그는 정상이었다. 단지 그 무엇도 그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 어떤 것도 상처를 입힐 수 없는 걸까?
그래서 그는 번잡한 팔차선 도로의 육교 위로 올라간 뒤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쉽게도 우연히 그때 그곳을 지나치게 된 불운한 운전자가 자기 앞에 떨어지는 사람을 발견하고 재빨리 핸들을 꺾어 옆으로 차를 돌려버린 덕분에 영화와 같은 정면충돌은 되지 못했지만, 수 센티미터 두께의 자동차 문짝 측면이 크게 찌그러뜨린 그 충격에서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운전자가 얼른 뛰어내려 뒤를 돌아봤을 때 그는 일어서서는 인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운전자는 경악하다 못해 졸도할 지경이었다. 예상대로 정말 차에 치여 뼈 몇 군데가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아파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대형 트레일러가 도로 한복판에서 인도를 향해 걸어가는 그를 두 번째로 치어 십여 미터 가량 앞으로 날려보냈을 때 그의 미소는 귀까지 찢어질 듯한 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트레일러 뒤로 연쇄 추돌이 벌어졌고, 마침내 LP가스를 사용하는 택시가 후면충돌로 인해 폭발하면서 그는 불붙은 트럭 파편들과 함께 인도까지 튕겨나가 상점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물론 그는 곧 불타고 찢어진 옷자락에 묻은 유리조각을 털어 내며, 사고의 굉음만 아니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홀끗 돌아볼 만한 광소를 터트리며 현장에서 멀쩡히 걸어나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자신했다. 대단한 실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능력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늘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으레 흔히 그러듯이, 자신의 폭력적인 본능을 드러냈다. 어떤 수를 써도 죽지 않는다면 그에게 있어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겠느냐고. 자신이 죽지 않는 한 하고 싶은 걸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그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허울좋은 망상이었다.
그 길로 바로 집에 들러 자신을 시험하는데 사용했던 식칼 한 자루를 들고 나온 그는 목표를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서 근처 군부대에서 경계를 서던 세 명의 군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다짜고짜 그 칼로 가장 가까이 있던 한 병사의 배를 찔렀다. 만용이었다.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기습에 끄르륵거리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그 병사가 쓰러지고, 그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써 피투성이가 된 그가 지독하게 당황해서 어떤 반응조차 보이지 못한 다른 병사에게 또다시 칼을 꽂아 넣고, 다시 눈을 희번덕이며 마지막 남은 목표를 노릴 때쯤. 마지막 남은 이등병이 겁에 질려서는 소총에 실탄을 꽂아 넣고는 역시 다짜고짜 쏴버렸던 것이다.
물론 어떤 무기를 쓰건 그는 죽지 않았다. 다만 군용 소총탄의 대단한 위력에 그저 뒤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신체는 멀쩡했기에 그는 꾸물거리며 일어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더욱 당황했고, 혼자 남았기에 더욱 겁에 질렸던 이등병은 절차건 뭐건 소총을 연발로 맞추고 탄창 하나를 깔끔하게 비웠다. 근거리에서 사격한 탄환은 한 발도 에누리 없이 그의 몸을 강타했고, 여전히 그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지만 반동에 의해 뒤로 넘어지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다치건 다치지 않았건 그는 정상이었고, 그의 압각신경은 정상이었으며 그 결과로 인해 그는 지독한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고, 그 동안 이등병은 미친 듯이 그를 개머리판으로 내리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침착을 회복해 고통을 무시하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훈련지에서 울려퍼진 요란한 총성을 듣고 다른 군인들이 달려오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그는 죽지 않을지언정 슈퍼맨이 아닌지라 사람 여럿이 달라붙으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여러 사람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던 그는 살인죄로 경찰서에 이송되었다. 조사과정에서 그가 실탄 사격을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로 인해 그는 곧 실험의 대상으로 돌변했다. 매스컴이 개입되었다면 아마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도 희한한 존재인 데다가 두 명의 사람을 죽였다. 그는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카메라 플래시와 붐 마이크에 둘러싸이는 대신 어두운 지하실에서 취조대에 묶이게 되었으며 두꺼운 마스크를 두른 의사들은 그에게 천연두와 에이즈 바이러스를 먹였고(바늘이 꽂히지 않았으므로 주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사량의 방사능을 쪼였으며 공업용 프레스에 밀어넣었고 백열하는 산소 용접기를 들이댔다.
마침내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확인되었을 때 그는 어쩌다 그가 이런 존재가 되었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실험당하고, 어떤 고문을 당하고 괴로움을 겪어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은 결국 자신의 신체적 이상을 알리기 위한 신경계의 전기적 신호에 불과했고, 그것은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하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고통에 어이없이 굴복함으로서 자신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머릿속 깊은 곳에 끓어오르는 분노로서 간직하고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다.
윽박지르고 고문을 하고 회유하고, 그 어떤 방법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실망한 그들은 나중에 혹시 뭔가 밝혀질 지 모르는 기회를 노리며 그를 감옥에 처넣었다. 어차피 그는 살인자였고, 그를 사형시키기는커녕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이상 그에게 내릴 수 있는 처벌은 무기징역밖에는 없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정상적인 신진대사를 하는 그가 늙어죽는지 아닌지는 그들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저 어딘가의 극비 파일에 그 존재만이 기록된 채 격리된 독방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두 차례 있었고 당선된 대통령이 늘상 휘두르곤 하는 솜방망이 개혁이 있었으며 파일은 잘못 위치가 기록된 구석진 캐비닛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그는 감옥에서 탈출했다. 감독관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에겐 영화에서처럼 탈출을 위한 쇠톱이나 모종삽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철조망과 4층 높이의 건물은 아무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 자신이 도구였다. 단순히 조금 날카로울 뿐인 송곳니조차도, 절대 파괴시킬 수 없고 절대 날이 무디어지지도 않았기에 충분히 훌륭한 절단도구였다. 지독하게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늙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이빨과 손톱만으로 벽을 갈아서 부수고 탈출했다.
7년이 지난 후였다. 그 동안 뼈아픈 고통으로 치른 대가는 비쌌기에 그는 신중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심지어는 졸림도, 그 어떤 욕구조차도 단지 그 고통만을 참아낼 수 있다면 그에겐 어떠한 문제가 되지 않았기에, 정말 아무런 필요조차도 없이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래봤자 지하철역에 드러누운 노숙자 신세가 고작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존재가 수배전단으로 붙을 만한 것도 아니었긴 했지만 이미 그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법적으론 죽은 존재였고, 그가 국내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은행을 털었다. 싸구려 화약총을 휘둘러대며 만원짜리 지폐로 가득한 자루를 집어들고 창구를 나섰을 때, 뉴스의 흑백 CCTV 화면에 나오듯이 용감한 여직원이 그의 몸에 대고 전기충격기를 눌렀지만 그는 기절하지 않았다.
그는 그 돈을 금괴로 바꾸고 미국행 밀항선을 탔다. 선실에 밀항자를 가득 실은 채 어선으로 위장하고 태평양에서 다른 밀항선과 접촉하려던 배는 해양경찰의 추격을 받아 멈춰섰다. 그는 겁에 질렸다. 만약 잡히게 된다면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내질 것이었고, 이미 법적으로 죽은데다가 은행강도까지 저질렀던 이상 전까지 겪었던 일들을 반복해서 모두 겪은 다음 풀려날 날을 기약하지 못한 채 감옥에 갇힐 것이었다. 분명 그가 처음에 탈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감독관들이 무책임했기 때문이었고 그가 갇혀있던 시설이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두 번째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지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머리 위를 선회하는 경찰 헬기를 배경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여전히 수영을 할 줄 몰랐다. 탈옥 이후에 수영이나 배우러 다니기엔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수면에 떠오를까 했지만 그래서야 또 잡힐 것이었다. 그는 죽지는 않았지만 하늘을 날 수도 없었고 물 밖에 대기 중인 건장한 경찰관들을 때려눕힐 수도 없었다. 그는 가라앉기로 결심했고, 폐 가득 들어찬 물로 인해 그는 비중이 물보다 근소하게 무거운 존재가 되었으며 거기에 은행을 턴 돈을 바꾸었던 금괴의 무게까지 더해지자 그는 순식간에 바다 밑까지 가라앉았다. 아가미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바다에 빠진 그날 그랬던 것처럼 물론 그는 죽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비교적 여유 있게 물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그날 그랬던 것처럼 바닥을 걸어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주변이 검게 물들어갈 때도 그럴 수는 없었다. 밖은 대낮이었지만 태양빛은 불과 십수 미터만 바다 속으로 들어와도 그 효용을 잃었고, 50미터 정도 가라앉고 나자 주변은 온통 어둡고 기괴한, 암울하게 뒤틀린 색깔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곳이 되었다. 그는 겁에 질려 금괴를 내던지고 필사적으로 수면을 향해 헤엄쳤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수영을 할 줄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태평양의 평균 수심은 4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는 알지 못했지만 자포자기에 가까운 끝없는 침강 끝에 마침내 해저면에 닿았을 때 깊이는 1킬로미터에 육박했다. 주변엔 빛이라곤 거의 찾기 힘들었으며 엄청난 수압 덕분에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필사적으로 헤엄친 탓에 그는 자신이 탄 배가 어느 방향에서 왔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선택도 없었기에 그는 무작정 방향을 잡아 어둠 속을 더듬으며, 비틀거리고 비틀거리며 걸었고, 또 걸었다. 무언가를 기어올랐고,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고 무언가에서 굴러떨어졌으며, 무언가에 기대어 잠들었고 잠이 깨면 또 어둠 속을 무작정 헤매며 걸었다. 촉각 이외에 그가 느낄 수 있었던 건 결코 끝나지 않을, 산소를 갈구하는 온몸의 고통과 입 안을 가득 채운 바닷물의 지독하게 차가운 짠맛뿐이었지만, 그나마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무뎌져갔다. 그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목록을 만들어 되새기고 또 되새겼고 살아온 날들을 되새겼고 온갖 잡다한 기억들을 되새기며 끝내는 바닷가에서 술에 취해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던 친구들을 저주했고 자신을 잡아가뒀던 정부기관을 저주했고 바다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던 때의 자신을 저주했고 어째서 자신이 죽지 않는가를 저주했지만 역시 그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무뎌져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그는 출발지점에서 고작 2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해구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깊은 바다 속에도 산이 있었고 계곡이 있었지만 어둠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긴 방랑의 결과로서 그는 시간을 알지 못했고 공간을 알지 못했고 빛을 알지 못한 채 방대한 바다 속을 무의미하게, 기계적으로 헤매었다.
두 달째 되던 날, 이미 제대로 생각조차 하기 힘든 상태로 허우적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그는 생소한 무언가를 느꼈다. 고작 두 달 동안 느끼지 않았다고 해서 생소하다고 판정하기엔 너무 가혹한 것일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는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것은 뜨거움이었고, 빛이었고, 진동이었다. 격렬한 충격파와 열류가 그를 뒤덮었으며 그의 눈은 두 달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빛에 반응하지 못하고 질끈 감기었다.
그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감정은 오직 두려움이란 단순한 것으로 가득 차올랐고 그는 미친 듯이, 방향조차 알지 못한 채 그것에게서 도망쳤다. 비록 달려서 도망친다는 것이 막대한 수압에 의해 제자리에서 그저 팔다리를 볼썽사납게 놀리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는 도망쳤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았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의 차이는 근소했다.
해저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어마어마한 열류를 뿜어내며 식어갔다. 순간적으로 차가운 바닷물과 만난 용암은 표면이 식어 급격히 굳다가, 열팽창에 의해 표면 일부가 깨지며 다시 뜨거운 용암이 흘러나오고 굳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그를 덮쳤다. 한순간 그는 어마어마한 열기를 느꼈고 무언가가 온몸을 뒤덮어 자신을 넘어뜨리는 걸 느꼈지만 그것이 고통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고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가 그 시도를 그만둘 때까지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신을 뒤덮은 현무암의 관 안에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머리로, 공허한 두 눈을 통해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면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그는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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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이 굉장히 많지만 문체 연습 겸 이틀만에 대충 마무리짓고 치웁니다. 더 써봤자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같은 소재로 세 개째 글을 쓰는군요. 내가 불사에 그렇게 집착했었나.
어쨌건 우리 모두 수영을 반드시 배웁시다. -_-
Our last, best hope for peace.
(개인적으로는, 저 바닷속에서 걸어나왔을 때가 핵전쟁이 끝난 만년후의 지구이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