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宙易)
글 수 47
“어이, 구출완료라면서?”
“네? 아, 네.”
걸오에게 통신기를 건네준 구조대원은 감히 함장과의 통신을 자기 마음대로 끊어버리는 이 소령의 행동에 황당해 하며 대답했다.
“그럼 더 이상 여기 있어봐야 소용없네. 난 튄다.
니네들도 끝나는 대로 빨리 빠져 나와.
레헤미 너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뭐하냐.”
방금 전만 해도 죽네사네 하던 걸오가 들것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자 주위의 사람들은 기가 막혀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 모우의 심기는 안전핀 날아간 뇌관상태. 거기다 걸오가 신경까지 긁어버렸으니 그 폭발이 어디로 튈지는 자명하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자리를 현명하다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걸오는 치두남의 조종석에 앉는 순간 다시금 모우와 대면하게 되었다.
-사출된 연료저장소에서 생환한 것 치고는 원기왕성하구나.
“아오.”
이번에는 작정을 한 듯 통신채널이 아니라 작전채널을 열어놨다. 이 채널은 오직 아이사타호에만 작동권한이 있어서 이쪽에선 마음대로 켜지도 끄지도 못한다.
“그 뭐냐. 작전채널을 이런 사담에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짐이 네놈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움직이는 자이더냐.
하기사 모우의 열정적인 성격은 걸오와 제루님을 가볍게 능가하지만 그 속은 지극히 냉정하며 공사구분에 있어선 어떠한 이견도 없다.
-무단으로 궤도기지에 난입한 이후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터이니
착함 즉시 함장실로 출두하라.
“예에.”
함장실, 이라면 또 ‘그건’가? 간만이긴 하지만 걸오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뒤틀린 내장과 꼬인 심사 덕분에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오의 뒤로는 만신창이가 된 담프사 궤도기지가 대기권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었다. 궤도기지는 그 크기 때문에 어떻게 진입하든 다 타지 않고 낙하하겠지만 그전에 아이사타호와 담프사 방어군에 의해 파괴될 테니 지표에 충돌해 대참사를 일으킬 염려는 없었다.
곧 걸오의 치두남은 아이사타호에 착함하였고 뒤이어 레헤미의 엘라-5도 활주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걸오는 치두남에서 내려 활주로를 밟고 나서야-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안 다음에야-부임한지 사흘 만에 소속이 바뀌었고 이전에 근무했던 기지는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덧붙여 잠시 후면 함장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니기미.”
궁시렁대는 걸오의 주변으로 미카와 도리볼들이 달려왔다. 부랴부랴 점프해서 돌아와보니 담프사 궤도기지는 박살이 난 상황이라 그들로서는 이만저만 궁금한 게 아닐 것이다.
“걸오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미카의 눈동자 셋이 똘망거리며 걸오에게 묻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뢰야. 역장필드에 부딪쳐야 보이는 흉악한 것들이 들이대는데 미치겠더라.”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자 새삼 이가 갈린다. 템의 신병기, 항모에서 사출기로 발사된 스텔스 어뢰에 맞서 걸오는 분투했지만 요격 때조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결국 궤도기지는 만신창이가 되어 담프사로 낙하하고 있었다.
“야이 병신아! 좀 제대로 안하고 뭐한 거야!”
도리볼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기지가 공격을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고 지금은 눈앞에서 추락하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어야 하자 애가 타서 소리쳤다.
“이 새끼야, 뭘 어쩌라고. 너라면 어떻게 했겠냐?
그 자식들은 역장 필드에 들어와야만 모습이 보인다고.”
“끄으응...”
도리볼은 간신히 분을 삭였지만 풍성한 구레나룻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소령님, 그렇다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테테루가 질문했지만 거기엔 걸오로서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끝났어. 남은 건 명령을 기다리는 거지.”
기지 방어군이 기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말은 최악이다. 공격부대가 실패한 경우와는 격이 다르다. 처벌은 둘째 치더라도 이제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다.
아이사타호로 피신해온 방어군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잃어버리게 된 터라 모두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미 몇몇은 울고 있었고 아예 활주로 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는 소리 중에는 ‘미루’란 단어도 간혹 섞여 걸오의 입맛을 쓰게 했다.
“담프사 궤도기지라...정들 틈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나.”
걸오의 눈앞에선 요 며칠간 몸 담았던 담프사 궤도기지가 여기저기 불꽃을 내뿜으며 낙하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후면 아이사타호의 포격과 담프사의 방어 시스템에 의해 완전히 파괴될 터였다. 대기권에 돌입할 때 완전 연소될 정도로 말이다.
걸오는 활주로 가장자리로 가서 그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갑자기 밀려든 현기증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무리가 심했나.”
당연한 일이지만 제아무리 날고기는 지구인이라고 해도 무리하면 피로하다. 게다가 그런 난리통을 쳤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그렇게 걸오가 휘청거리자 미카가 언제 따라왔는지 잽싸게 부축해주었다.
“걸오야, 너 왜 그래? 역시 아까 까불다 다쳤지?”
걸오와 함께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미카로서도 그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드문 편이었다. 언제나 활기에 차서 동료들을 격려하고 날뛰던 걸오가 이렇게 비실거릴 때는 대개 죽음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미사일이 치두남의 조종석에 직격했을 때, 생명유지장치가 날아간 좌석으로 일주일간 우주공간에서 부유했을 때, 그리고 모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작열하는 동력로 안으로 들어갔을 때 등등. 그 뒤에 돌아온 걸오는 언제나 놀라운 치유력으로 되살아나긴 했었지만 거의 식물인간으로 며칠을 보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단 훨씬 팔팔한 편이긴 하지만 아무튼 안 좋은 일이 일어났던 것은 분명했다.
“아고고. 고마워, 미카.”
“응~근데 걸오 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뢰를 추격하겠다고 쫓아갔다가 기지 안에서 튀어나오고 말이야.
아까 모우함장님이 화내시던데...”
“그거 말이야? 얼떨결에 분위기를 탄 거지, 뭐~. 나중에 함장실로 오라던데…흐유.”
“헤에, 그럼 미리 의무실 갈래?”
“됐어. 뭐 가봐야 나 같은 사람은 입장 불가일걸?”
그 말마따나 지금 아이사타호의 모든 의료시설은 걸오 따위의 환자가 올 곳이 아니었다.
-안돼, 지혈제를 더! 그리고 골 고착제와 재생제도!
“어서 붕대를 감아줘! 젠장, 붕대로는 더 이상 재생이 되지 않잖아.”
“끄아아아~”
지금 의무실에 누워있는 각양각색의 종족들은 하나같이 중상을 입고 저마다의 모성어로 신음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함 내의 인원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상황은 더욱 나빴다.
“이봐! 내 흉터를 보라구! 그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냐!
난 이래도 살아남았다고.”
저 옆에서 해병대원 한 명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흉터투성이 가슴팍을 걷어 올리고 있었지만 생체암석으로 이뤄진 스퀵테르인이 그리 말해 봐야 별 설득력이 없다.
“약간의 충격에 의한 가벼운 혼수 상태입니다. 곧 깨어나실 거요.”
아이사타호의 군의관은 기절해 있는 담프사 궤도기지 사령관의 상태를 살핀 뒤 옆에 앉아있는 레헤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레헤미는 아까 착륙하자마자 사령관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 이리로 달려온 것이다.
“예, 그런가요.”
레헤미는 지금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조그만 프실론인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프실론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인생을 바꾸어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만약 기지사령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레헤미는 모성에서 죽임을 당했을 터였다. 바로 자신의 동족과 가족들에게.
‘요물! 죽어라!’
‘멸망의 아이다. 산 채로 불태워버려!’
‘이 저주스러운 놈! 뒈져랏!’
아무리 잊으려 해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악몽의 시간들. 레헤미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사령관이 정신을 차렸다.
“으으음...”
“아버지!”
막 의식이 돌아온 기지 사령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일어나려 했다.
“으음, 여긴 어디지?”
“여긴 아이사타호 의무실입니다. 기지가 어뢰에 공격 당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부상을 당하신 거에요.”
일어나려는 것을 다시 눕히면서 한 레헤미의 대답에 사령관의 눈빛이 변했다.
“공격, 그렇지! 어뢰였지.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었니?”
공격 당한 때가 생각난 듯 사령관은 기지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레헤미로서는 이런 대답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기지는 지금 대기권으로 낙하하고 있습니다. 곧 폭파시킬 거구요.”
“안돼!”
레헤미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사령관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아버지!”
“안돼! 기지가 낙하하면 안돼! 그러면...그러면...!”
프실론인 사령관은 일어나기 위해 왜소한 체격으로 몸부림쳤으나 레헤미가 그를 진정시키려 붙잡았다.
“아버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적의 어뢰는...”
“그게 아냐! 지금 당장 모우 함장을 만나게 해다오!
그리고 본성의 방어부대 사령관에게도 어서 연락을! 긴급이다!”
의무실에 울려 퍼진 사령관의 절규에 황급히 군의관이 달려왔고 곧 아이사타호와의 통신채널이 열렸다.
-무슨 일입니까? 기지사령관. 몸은 좀 어떻…
“함장, 지금 당장 기지 폭파를 중지시키세요!
안 그러면...아아, 여긴 보안 때문에 더 이상 얘기를 못하겠습니다. 제가 그리로 가죠.”
모우의 영상이 뜨자마자 기지사령관은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소리쳤다.
-아니? 중지라고요?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폭파시키면 안됩니다.
그리고 기지를 대기권으로 낙하시켜도 안됩니다.
기지에는...으흣.”
거기까지 말하던 프실론인 기지 사령관은 무리한 행동을 한 탓에 비틀거렸고 옆에서 레헤미가 그를 부축했다.
-아니 괜찮소이까?
“으, 이런 것은 문제가...아니라.”
사령관의 필사적인 모습을 본 레헤미는 즉시 그를 안아 들고 고속복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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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성실연재를 하기로 했거늘…
그나저나 1부가 이제야 거진 끝나가는군요.
2, 3부에 수정을 할 게 적다면 연재속도가 올라갈까나…
“네? 아, 네.”
걸오에게 통신기를 건네준 구조대원은 감히 함장과의 통신을 자기 마음대로 끊어버리는 이 소령의 행동에 황당해 하며 대답했다.
“그럼 더 이상 여기 있어봐야 소용없네. 난 튄다.
니네들도 끝나는 대로 빨리 빠져 나와.
레헤미 너 아까부터 계속 멍하니 뭐하냐.”
방금 전만 해도 죽네사네 하던 걸오가 들것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자 주위의 사람들은 기가 막혀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 모우의 심기는 안전핀 날아간 뇌관상태. 거기다 걸오가 신경까지 긁어버렸으니 그 폭발이 어디로 튈지는 자명하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자리를 현명하다 하겠지만…
불행하게도 걸오는 치두남의 조종석에 앉는 순간 다시금 모우와 대면하게 되었다.
-사출된 연료저장소에서 생환한 것 치고는 원기왕성하구나.
“아오.”
이번에는 작정을 한 듯 통신채널이 아니라 작전채널을 열어놨다. 이 채널은 오직 아이사타호에만 작동권한이 있어서 이쪽에선 마음대로 켜지도 끄지도 못한다.
“그 뭐냐. 작전채널을 이런 사담에 사용해도 되는 겁니까?”
-짐이 네놈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움직이는 자이더냐.
하기사 모우의 열정적인 성격은 걸오와 제루님을 가볍게 능가하지만 그 속은 지극히 냉정하며 공사구분에 있어선 어떠한 이견도 없다.
-무단으로 궤도기지에 난입한 이후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터이니
착함 즉시 함장실로 출두하라.
“예에.”
함장실, 이라면 또 ‘그건’가? 간만이긴 하지만 걸오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뒤틀린 내장과 꼬인 심사 덕분에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오의 뒤로는 만신창이가 된 담프사 궤도기지가 대기권으로 서서히 진입하고 있었다. 궤도기지는 그 크기 때문에 어떻게 진입하든 다 타지 않고 낙하하겠지만 그전에 아이사타호와 담프사 방어군에 의해 파괴될 테니 지표에 충돌해 대참사를 일으킬 염려는 없었다.
곧 걸오의 치두남은 아이사타호에 착함하였고 뒤이어 레헤미의 엘라-5도 활주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걸오는 치두남에서 내려 활주로를 밟고 나서야-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안 다음에야-부임한지 사흘 만에 소속이 바뀌었고 이전에 근무했던 기지는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덧붙여 잠시 후면 함장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니기미.”
궁시렁대는 걸오의 주변으로 미카와 도리볼들이 달려왔다. 부랴부랴 점프해서 돌아와보니 담프사 궤도기지는 박살이 난 상황이라 그들로서는 이만저만 궁금한 게 아닐 것이다.
“걸오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미카의 눈동자 셋이 똘망거리며 걸오에게 묻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어뢰야. 역장필드에 부딪쳐야 보이는 흉악한 것들이 들이대는데 미치겠더라.”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자 새삼 이가 갈린다. 템의 신병기, 항모에서 사출기로 발사된 스텔스 어뢰에 맞서 걸오는 분투했지만 요격 때조차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결국 궤도기지는 만신창이가 되어 담프사로 낙하하고 있었다.
“야이 병신아! 좀 제대로 안하고 뭐한 거야!”
도리볼은 자신이 없는 사이에 기지가 공격을 치명적인 공격을 받았고 지금은 눈앞에서 추락하는 것을 뻔히 보고만 있어야 하자 애가 타서 소리쳤다.
“이 새끼야, 뭘 어쩌라고. 너라면 어떻게 했겠냐?
그 자식들은 역장 필드에 들어와야만 모습이 보인다고.”
“끄으응...”
도리볼은 간신히 분을 삭였지만 풍성한 구레나룻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소령님, 그렇다면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때까지 조용히 있던 테테루가 질문했지만 거기엔 걸오로서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끝났어. 남은 건 명령을 기다리는 거지.”
기지 방어군이 기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말은 최악이다. 공격부대가 실패한 경우와는 격이 다르다. 처벌은 둘째 치더라도 이제 그들에겐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이다.
아이사타호로 피신해온 방어군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잃어버리게 된 터라 모두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미 몇몇은 울고 있었고 아예 활주로 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놈도 있었다. 그리고 전우의 죽음에 슬퍼하는 소리 중에는 ‘미루’란 단어도 간혹 섞여 걸오의 입맛을 쓰게 했다.
“담프사 궤도기지라...정들 틈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나.”
걸오의 눈앞에선 요 며칠간 몸 담았던 담프사 궤도기지가 여기저기 불꽃을 내뿜으며 낙하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후면 아이사타호의 포격과 담프사의 방어 시스템에 의해 완전히 파괴될 터였다. 대기권에 돌입할 때 완전 연소될 정도로 말이다.
걸오는 활주로 가장자리로 가서 그 모습을 조금 더 지켜보다가 갑자기 밀려든 현기증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무리가 심했나.”
당연한 일이지만 제아무리 날고기는 지구인이라고 해도 무리하면 피로하다. 게다가 그런 난리통을 쳤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그렇게 걸오가 휘청거리자 미카가 언제 따라왔는지 잽싸게 부축해주었다.
“걸오야, 너 왜 그래? 역시 아까 까불다 다쳤지?”
걸오와 함께 수많은 전투를 치러온 미카로서도 그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드문 편이었다. 언제나 활기에 차서 동료들을 격려하고 날뛰던 걸오가 이렇게 비실거릴 때는 대개 죽음에서 돌아왔을 때였다.
미사일이 치두남의 조종석에 직격했을 때, 생명유지장치가 날아간 좌석으로 일주일간 우주공간에서 부유했을 때, 그리고 모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작열하는 동력로 안으로 들어갔을 때 등등. 그 뒤에 돌아온 걸오는 언제나 놀라운 치유력으로 되살아나긴 했었지만 거의 식물인간으로 며칠을 보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단 훨씬 팔팔한 편이긴 하지만 아무튼 안 좋은 일이 일어났던 것은 분명했다.
“아고고. 고마워, 미카.”
“응~근데 걸오 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뢰를 추격하겠다고 쫓아갔다가 기지 안에서 튀어나오고 말이야.
아까 모우함장님이 화내시던데...”
“그거 말이야? 얼떨결에 분위기를 탄 거지, 뭐~. 나중에 함장실로 오라던데…흐유.”
“헤에, 그럼 미리 의무실 갈래?”
“됐어. 뭐 가봐야 나 같은 사람은 입장 불가일걸?”
그 말마따나 지금 아이사타호의 모든 의료시설은 걸오 따위의 환자가 올 곳이 아니었다.
-안돼, 지혈제를 더! 그리고 골 고착제와 재생제도!
“어서 붕대를 감아줘! 젠장, 붕대로는 더 이상 재생이 되지 않잖아.”
“끄아아아~”
지금 의무실에 누워있는 각양각색의 종족들은 하나같이 중상을 입고 저마다의 모성어로 신음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함 내의 인원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상황은 더욱 나빴다.
“이봐! 내 흉터를 보라구! 그정도 상처는 상처도 아냐!
난 이래도 살아남았다고.”
저 옆에서 해병대원 한 명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흉터투성이 가슴팍을 걷어 올리고 있었지만 생체암석으로 이뤄진 스퀵테르인이 그리 말해 봐야 별 설득력이 없다.
“약간의 충격에 의한 가벼운 혼수 상태입니다. 곧 깨어나실 거요.”
아이사타호의 군의관은 기절해 있는 담프사 궤도기지 사령관의 상태를 살핀 뒤 옆에 앉아있는 레헤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레헤미는 아까 착륙하자마자 사령관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 이리로 달려온 것이다.
“예, 그런가요.”
레헤미는 지금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조그만 프실론인을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프실론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인생을 바꾸어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만약 기지사령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레헤미는 모성에서 죽임을 당했을 터였다. 바로 자신의 동족과 가족들에게.
‘요물! 죽어라!’
‘멸망의 아이다. 산 채로 불태워버려!’
‘이 저주스러운 놈! 뒈져랏!’
아무리 잊으려 해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악몽의 시간들. 레헤미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사령관이 정신을 차렸다.
“으으음...”
“아버지!”
막 의식이 돌아온 기지 사령관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일어나려 했다.
“으음, 여긴 어디지?”
“여긴 아이사타호 의무실입니다. 기지가 어뢰에 공격 당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부상을 당하신 거에요.”
일어나려는 것을 다시 눕히면서 한 레헤미의 대답에 사령관의 눈빛이 변했다.
“공격, 그렇지! 어뢰였지. 지금 상황은 어떻게 되었니?”
공격 당한 때가 생각난 듯 사령관은 기지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레헤미로서는 이런 대답 밖에 할 수가 없었다.
“기지는 지금 대기권으로 낙하하고 있습니다. 곧 폭파시킬 거구요.”
“안돼!”
레헤미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사령관은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아버지!”
“안돼! 기지가 낙하하면 안돼! 그러면...그러면...!”
프실론인 사령관은 일어나기 위해 왜소한 체격으로 몸부림쳤으나 레헤미가 그를 진정시키려 붙잡았다.
“아버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적의 어뢰는...”
“그게 아냐! 지금 당장 모우 함장을 만나게 해다오!
그리고 본성의 방어부대 사령관에게도 어서 연락을! 긴급이다!”
의무실에 울려 퍼진 사령관의 절규에 황급히 군의관이 달려왔고 곧 아이사타호와의 통신채널이 열렸다.
-무슨 일입니까? 기지사령관. 몸은 좀 어떻…
“함장, 지금 당장 기지 폭파를 중지시키세요!
안 그러면...아아, 여긴 보안 때문에 더 이상 얘기를 못하겠습니다. 제가 그리로 가죠.”
모우의 영상이 뜨자마자 기지사령관은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소리쳤다.
-아니? 중지라고요? 그러면...
“무슨 일이 있어도 폭파시키면 안됩니다.
그리고 기지를 대기권으로 낙하시켜도 안됩니다.
기지에는...으흣.”
거기까지 말하던 프실론인 기지 사령관은 무리한 행동을 한 탓에 비틀거렸고 옆에서 레헤미가 그를 부축했다.
-아니 괜찮소이까?
“으, 이런 것은 문제가...아니라.”
사령관의 필사적인 모습을 본 레헤미는 즉시 그를 안아 들고 고속복도로 향했다.
--------------
새해에는 성실연재를 하기로 했거늘…
그나저나 1부가 이제야 거진 끝나가는군요.
2, 3부에 수정을 할 게 적다면 연재속도가 올라갈까나…
언제 올라올지도 모르는 주역의 연재속도에 이런 절단마공을 섞어서 쓰신다면 이미 이것은
무림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