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연대기 - 작가 : magegarden
글 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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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 7/12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요한이 통신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건물 벽을 들이받고 뒤집어진 사막색 장갑차가 짙은 그림자를 길 위에 던지고 있었다.
바퀴 개수를 세며 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열 여섯 개의 바퀴중 다섯 개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도 않고 남은 한 개의 바퀴도 부서져서 외피 안쪽의 철심이 다 드러나 있었다. 펌프가 작동하는 소리가 끈질기게 청음장치 속에서 속살거렸다.
지석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석 혼자 뒤처져서 걷다보니 먼저 가버린 모양이었다.
지석은 걸음을 재촉해서 좁은 골목을 돌아나갔다. 바위산 위에서는 잘 보이던 둥근 회당의 지붕이 마을로 내려오자 사라져 버렸다. 물을 담기 위해 백팩에서 분리해가지고 온 접절식 수통이 무릎 근처에서 건들거렸다.
흙포대처럼 겹겹이 쌓인 시체를 넘어서 지석은 달빛속으로 걸어나갔다. 방향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인터컴에서 접속상태를 체크하는 짤깍 소리가 났다.
지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가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 그것도 시체가 산더미처럼 들어찬 이런 마을 한복판에서 정체모를 상대와 마주친다는 건 가슴이 싸하게 식는 일이다.
"요한?"
대답이 없다. 지석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요한인가?"
조금 늦게 응답이 왔다.
"예. 요한입니다."
요한은 지석에게 발소리를 죽여 다가왔다.
"요한."
"조용히."
요한은 지석의 팔을 잡고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왜. 무슨 일인데?"
요한은 갑자기 라디오를 켰다.
"요한. 지금 뭐하는 거야. 왜 라디오를.......적이라도 있나?"
작은 창으로 달빛이 새어들어와 지저분한 바닥에 형틀모양의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요한의 왼손이 불확실한 무언가를 가리키듯 허공을 가로질러 자신의 명치께에서 멈추었다. 한숨을 내쉬며 요한은 가슴의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망설였습니다. 계속 말하려고 했지만..."
요한은 불안한 눈초리로 지석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석의 불안감은 점점 더 증폭되었다.
"류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류사?"
요한의 얼굴이 섬세하게 뒤틀렸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류사는. 그 자는 위험합니다."
"요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조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
지석은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조장님이 고지로 돌진한 뒤에 저는 계속 엄호사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말을 멈추고 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젯밤의 일을 말하고 있다는 걸 지석은 금방 깨달았다.
"조장님도 보셨겠지만 처음에 류사는 완전히 노출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방도 안맞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무슨 말이야?"
"놈에겐 뭔가가 있는 겁니다. 저 낙오병이라는 작자가 총을 쐈을 때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것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자신부터 엎드렸습니다."
"그건......"
요한은 한손으로 벽을 짚었다.
"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맙소사. 네. 조장님이 맞습니다. 어이없는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놈은 알고있었습니다. 류사는 원래 그런 놈입니다. 일단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지석은 요한을 제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장님이 뛰어나가기 전에 메다산은 어디 있었습니까? 엎드려 있는 류사를 구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전부터 그를 잘 알고있지만 메다산은 뭐랄까, 좀 우둔한 녀석입니다. 함께 작전중인 동료가 위험에 빠진걸 보고 정신없이 뛰어든겁니다."
"요한."
"그런데 류사는 메다산이 가까이 오자 메다산을 밀어내고 잽싸게 자기가 방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패는 한 사람 이상이 들어가기 힘드니까요. 그리고 메다산이 총을 맞은 겁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조장님."
요한의 크게 벌린 눈속에서 지석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지석은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류사는 이미 오래전에 총살당했어야 하는 작자입니다. 그는 광십자군의....."
"그만둬. 요한."
요한은 입을 다물고 방안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불쑥 중얼거렸다.
"뭘 그만두란 말입니까. 조장님이 뭘 압니까? 이 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대해서."
가슴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부글부글 끌어올랐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적이 대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텅빈 사막? 아니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저 우주?"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총살이라도 시킬까?"
"예. 그게 좋겠군요."
"요한. 그건 말이 안돼. 대체 갑자기 왜 이러나? 요한."
"조장님. 쉽게 설명해드리죠. 저 밖의 시체들이 뭘 뜻하는지 전 알 것 같습니다. 조장님은 알고 계십니까?"
문 밖에서 갑자기 모래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뜨거운 시선이 지석의 얼굴에서 멀어졌다.
지석은 청음장치를 귓가로 가져갔다. 요한은 벽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문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렇죠. 요한 부조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요. 예. 잘 들었습니다."
지석은 총구를 들어올렸다.
"류사?"
"예. 조장님. 조장님은 어떻습니까. 조장님의 의견이 궁금하군요."
분명히 류사의 목소리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전 그저 살고 싶을 뿐이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서 세상이 바뀌는 걸 보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게 나쁜가요? 나쁜 겁니까?"
"조장님. 류사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저 자는....."
"조용히 해. 요한."
청음센서에 발자국 소리가 계속 가까워지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발소리는 문앞에서 멈추었다.
"류사."
"예. 조장님."
"들어와라."
"그 안이 재판정입니까? 네, 잘 알고있습니다. 어차피 전쟁인거죠. 이 전쟁이 다 망가뜨렸습니다."
요한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방금 안전장치를 푼 사람은 누굽니까. 부조장? 요한? 너냐?"
"길게 말하지 말고 들어와라. 류사."
"조장님. 화낼 필요 없습니다. 조장님. 화 내지 마십시오. 일단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저 배신자의 말만 듣지 말고.."
요한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류사의 음성은 적개심에 가득 차 있었고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낮고 음울했다.
"요한, 그 때 너를 먼저 죽였어야 했어. 내 실수였다. 요한. 그래. 이 외딴 마을을 찾아들어온 건 어쩌면 잘한 일인지도 모르지. 이 외딴 마을에 함께 기어들어오게 된 것이 하필이면 너라니!"
어둠속에서 지석은 요한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요한의 눈길이 천천히 지석을 향했다가 다시 문쪽으로 돌아갔다.
"조장님?"
류사의 억눌린 것 같은 음성. 요한은 문을 와락 잡아당겼다. 달빛. 요한의 총이 실밥 튿어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건물 밖의 달빛속으로 총알들이 날아갔다. 류사는 문앞에 없었다. 지석은 몸을 옆으로 날렸다. 류사의 총탄이 날아와 지석의 뒤를 쫓았다. 청음센서 가득 밀려오는 쇳소리에 지석은 알몸으로 던져진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 파편이 튀었다. 총탄이 벽을 따라 달리며 흉터를 남겼다.
"류사!"
지석은 테이블을 자빠뜨리고 바닥을 가로질러 재빨리 주방으로 몸을 숨겼다.
덧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개를 꺾어 집안에 비쳐든 달빛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류사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달빛 한가운데 수류탄이 뱅글뱅글 돌고있었다.
"윽!"
지석은 주방의 벽 뒤에 바싹 붙어서 이를 악물었다.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류사! 이 새끼!"
주방의 벽이 넘어지면서 지석을 덮쳤다.
지석은 무너져내리는 모래와 돌들을 헤치고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옷고름 사이로 모래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친 새끼들."
지석은 웅크린 자세로 청음센서를 귀에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미친 새끼들."
인터컴을 켜고 지석은 잠시 망설였다. 함부로 끼어들면 자신에게 총을 쏴댈 것이다. 지석은 웅크린 채 무너져내린 지붕 밖의 별들을 쳐다보았다.
"이건 미친 짓이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둘 다 총살시키겠다!"
응답이 없었다.
"대체 이유가 뭐야! 요하안!"
지석은 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둘 중 하나를 쏘아야 한다면 어느 쪽일까. 이런 건 좀 어려운 선택이다. 산수로는 풀기 힘든. 그래 산수로는 풀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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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을 조심하십시오."
요한이 통신기에 대고 중얼거렸다.
마을은 여전히 조용했다.
건물 벽을 들이받고 뒤집어진 사막색 장갑차가 짙은 그림자를 길 위에 던지고 있었다.
바퀴 개수를 세며 지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열 여섯 개의 바퀴중 다섯 개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도 않고 남은 한 개의 바퀴도 부서져서 외피 안쪽의 철심이 다 드러나 있었다. 펌프가 작동하는 소리가 끈질기게 청음장치 속에서 속살거렸다.
지석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석 혼자 뒤처져서 걷다보니 먼저 가버린 모양이었다.
지석은 걸음을 재촉해서 좁은 골목을 돌아나갔다. 바위산 위에서는 잘 보이던 둥근 회당의 지붕이 마을로 내려오자 사라져 버렸다. 물을 담기 위해 백팩에서 분리해가지고 온 접절식 수통이 무릎 근처에서 건들거렸다.
흙포대처럼 겹겹이 쌓인 시체를 넘어서 지석은 달빛속으로 걸어나갔다. 방향감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인터컴에서 접속상태를 체크하는 짤깍 소리가 났다.
지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뭔가가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 그것도 시체가 산더미처럼 들어찬 이런 마을 한복판에서 정체모를 상대와 마주친다는 건 가슴이 싸하게 식는 일이다.
"요한?"
대답이 없다. 지석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요한인가?"
조금 늦게 응답이 왔다.
"예. 요한입니다."
요한은 지석에게 발소리를 죽여 다가왔다.
"요한."
"조용히."
요한은 지석의 팔을 잡고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왜. 무슨 일인데?"
요한은 갑자기 라디오를 켰다.
"요한. 지금 뭐하는 거야. 왜 라디오를.......적이라도 있나?"
작은 창으로 달빛이 새어들어와 지저분한 바닥에 형틀모양의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요한의 왼손이 불확실한 무언가를 가리키듯 허공을 가로질러 자신의 명치께에서 멈추었다. 한숨을 내쉬며 요한은 가슴의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망설였습니다. 계속 말하려고 했지만..."
요한은 불안한 눈초리로 지석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지석의 불안감은 점점 더 증폭되었다.
"류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류사?"
요한의 얼굴이 섬세하게 뒤틀렸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류사는. 그 자는 위험합니다."
"요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조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
지석은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조장님이 고지로 돌진한 뒤에 저는 계속 엄호사격을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말을 멈추고 지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젯밤의 일을 말하고 있다는 걸 지석은 금방 깨달았다.
"조장님도 보셨겠지만 처음에 류사는 완전히 노출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방도 안맞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겠습니까?"
"무슨 말이야?"
"놈에겐 뭔가가 있는 겁니다. 저 낙오병이라는 작자가 총을 쐈을 때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것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경고도 없이 자신부터 엎드렸습니다."
"그건......"
요한은 한손으로 벽을 짚었다.
"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맙소사. 네. 조장님이 맞습니다. 어이없는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놈은 알고있었습니다. 류사는 원래 그런 놈입니다. 일단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지석은 요한을 제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지 않은 느낌이 밀려오고 있었다.
"조장님이 뛰어나가기 전에 메다산은 어디 있었습니까? 엎드려 있는 류사를 구하기 위해 방패를 들고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전부터 그를 잘 알고있지만 메다산은 뭐랄까, 좀 우둔한 녀석입니다. 함께 작전중인 동료가 위험에 빠진걸 보고 정신없이 뛰어든겁니다."
"요한."
"그런데 류사는 메다산이 가까이 오자 메다산을 밀어내고 잽싸게 자기가 방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방패는 한 사람 이상이 들어가기 힘드니까요. 그리고 메다산이 총을 맞은 겁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조장님."
요한의 크게 벌린 눈속에서 지석은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지석은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류사는 이미 오래전에 총살당했어야 하는 작자입니다. 그는 광십자군의....."
"그만둬. 요한."
요한은 입을 다물고 방안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불쑥 중얼거렸다.
"뭘 그만두란 말입니까. 조장님이 뭘 압니까? 이 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 대해서."
가슴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부글부글 끌어올랐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적이 대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텅빈 사막? 아니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저 우주?"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총살이라도 시킬까?"
"예. 그게 좋겠군요."
"요한. 그건 말이 안돼. 대체 갑자기 왜 이러나? 요한."
"조장님. 쉽게 설명해드리죠. 저 밖의 시체들이 뭘 뜻하는지 전 알 것 같습니다. 조장님은 알고 계십니까?"
문 밖에서 갑자기 모래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뜨거운 시선이 지석의 얼굴에서 멀어졌다.
지석은 청음장치를 귓가로 가져갔다. 요한은 벽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문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렇죠. 요한 부조장.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군요. 예. 잘 들었습니다."
지석은 총구를 들어올렸다.
"류사?"
"예. 조장님. 조장님은 어떻습니까. 조장님의 의견이 궁금하군요."
분명히 류사의 목소리였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전 그저 살고 싶을 뿐이고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서 세상이 바뀌는 걸 보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게 나쁜가요? 나쁜 겁니까?"
"조장님. 류사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저 자는....."
"조용히 해. 요한."
청음센서에 발자국 소리가 계속 가까워지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발소리는 문앞에서 멈추었다.
"류사."
"예. 조장님."
"들어와라."
"그 안이 재판정입니까? 네, 잘 알고있습니다. 어차피 전쟁인거죠. 이 전쟁이 다 망가뜨렸습니다."
요한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방금 안전장치를 푼 사람은 누굽니까. 부조장? 요한? 너냐?"
"길게 말하지 말고 들어와라. 류사."
"조장님. 화낼 필요 없습니다. 조장님. 화 내지 마십시오. 일단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저 배신자의 말만 듣지 말고.."
요한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류사의 음성은 적개심에 가득 차 있었고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낮고 음울했다.
"요한, 그 때 너를 먼저 죽였어야 했어. 내 실수였다. 요한. 그래. 이 외딴 마을을 찾아들어온 건 어쩌면 잘한 일인지도 모르지. 이 외딴 마을에 함께 기어들어오게 된 것이 하필이면 너라니!"
어둠속에서 지석은 요한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요한의 눈길이 천천히 지석을 향했다가 다시 문쪽으로 돌아갔다.
"조장님?"
류사의 억눌린 것 같은 음성. 요한은 문을 와락 잡아당겼다. 달빛. 요한의 총이 실밥 튿어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건물 밖의 달빛속으로 총알들이 날아갔다. 류사는 문앞에 없었다. 지석은 몸을 옆으로 날렸다. 류사의 총탄이 날아와 지석의 뒤를 쫓았다. 청음센서 가득 밀려오는 쇳소리에 지석은 알몸으로 던져진 것 같은 한기를 느꼈다. 파편이 튀었다. 총탄이 벽을 따라 달리며 흉터를 남겼다.
"류사!"
지석은 테이블을 자빠뜨리고 바닥을 가로질러 재빨리 주방으로 몸을 숨겼다.
덧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개를 꺾어 집안에 비쳐든 달빛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류사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달빛 한가운데 수류탄이 뱅글뱅글 돌고있었다.
"윽!"
지석은 주방의 벽 뒤에 바싹 붙어서 이를 악물었다.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건물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류사! 이 새끼!"
주방의 벽이 넘어지면서 지석을 덮쳤다.
지석은 무너져내리는 모래와 돌들을 헤치고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옷고름 사이로 모래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친 새끼들."
지석은 웅크린 자세로 청음센서를 귀에 가져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미친 새끼들."
인터컴을 켜고 지석은 잠시 망설였다. 함부로 끼어들면 자신에게 총을 쏴댈 것이다. 지석은 웅크린 채 무너져내린 지붕 밖의 별들을 쳐다보았다.
"이건 미친 짓이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둘 다 총살시키겠다!"
응답이 없었다.
"대체 이유가 뭐야! 요하안!"
지석은 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둘 중 하나를 쏘아야 한다면 어느 쪽일까. 이런 건 좀 어려운 선택이다. 산수로는 풀기 힘든. 그래 산수로는 풀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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