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력 115년 04월 19일. 22시 00분. 켄타우로스 세네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는  이 시각에 짙은 구름
의 바다 위를 수 십대의  수송기가 지나고 있었다. 이들은 곧  10대
단위로 산개해 편대 대형을 유지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잘 듣도록. 야간 낙하 훈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지금 이 안에 타고 있는 너희들이 3개월에  걸친 훈련을
통해 충분한 실력을 쌓았다고 해도 시야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야
간 낙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러면 5분 뒤에
순서대로 낙하하라."

녹색 베레모를 착용한 교관의 지시에  따라 켄타우로스 육군 23공
수여단 소속 군인들은 자신들이  착용한 군장에 대한  마지막 안전
점검에 들어갔다. 사실 낙하산을 타고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일반인들의 생각엔 그리 위험해 보이지 않지만, 신속하게 적대
적인 지역에 낙하하고나서 지정된 장소에 집결해 행동하는 것을 철
칙으로 여기는 공수부대의 입장에선 고공에서의 낙하, 그  중에서도
야간 낙하는 적지  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얼마  후
C-121 스타리프터II 수송기의 후방 램프 도어가 개방되면서 차디찬
바람이 들어와 병사들의 피부에 닿았다. 안전띠를 맨 수송기 승무원
은 곧 자신이 착용한 헤드셋을 통해 낙하를 지시하였다.

"전원 낙하!"

곧 맨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시
작으로 켄타우로스 연방군의 정기적인 대규모 야간 낙하 훈련이 그
막을 올렸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규모가 엄청나군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지구의 침공에 대비해야 하니까요."
"걱정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충분한 근거에 입각해 그와 같은 우려를 하는 겁니다."
"충분한 근거라니요?"
"인류의 역사를 보면 무수히 나와 있죠. 정신적인 면에서 우리의 출
발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 식민지 종주국
이었던 영국과 전쟁을 치뤄야만 했었습니다. 이미 선례를 남긴 미국
은 자신의 동맹국들을  끌어들여서라도 우리를  징벌하려고 시도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들과 맞먹는 군사력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그리고 자칫 잘못해서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핵이 그
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나는 핵의 사용을 바라지 않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핵은 전쟁 억지의 도구이지 실제로 사용해선 안 됩니다. 적어도 미
소 양국이 냉전 때 보여준 인내심을 지니지 않은 국가들은 핵을 가
질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러한 목적으로 쓰여야  할 핵을 실전에서 썼습니
다."
"공교롭게도 그건 충분한 명분이  있는 일격이었죠. 일본의  가혹한
식민 통치를 받았거나 태평양전쟁 때 짓밟힌 수많은 국가들의 국민
들은 원폭 투하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자기들이  진짜 피해자라고 떠들고
다녔죠."
"지나가던 개가 보면 웃을 일이죠."

곧 고기동차에 타고 있던  장성과 그의 옆자리에  앉은 군수 회사
관계자는 예정 지역에 낙하한 후 이동을  시작한 공수부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도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다음에 있을 선거와 관련해서 말입니다만…."
"뭐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장군님과 달리 제가 생각하기엔 연방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내전
이 외부 세력과의 전면전보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최근 들어서 동부와 서부의 관계가 매우 험악해지고 있다는 걸 상
기하셔야 합니다. 곳곳에서 안 좋은 조짐이 감지되고 있어요."
"그건 저희쪽에서도 느끼고 있습니다만… 그다지 큰 문제로 확대되
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놓아선 안 됩니다. 재앙은 늘 우리가 방심하고 있을  때 찾
아 왔으니까요."

그의 말에 장군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후 운전에만 전념하였
다. 그런 가운데 그들의 머리  위로 한 대의 수직 이착륙  수송기가
지나갔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23시 00분. 켄타우로스 미네타

서부 지역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자리한 헌팅턴 호텔의
특실에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남성들이 원탁  주변에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황인과 백인이 대부분이었다.

"몽상가 헤스턴이 당선되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너무 성급하신 게 아닙니까?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강경한 정책은
펼 수 없습니다."
"헤스턴은 달라요. 그는  이 나라를 건국한  자입니다. 우리와 정면
대결을 펴도 망설일 것이 없어요."
"그러면 이대로 앉아서 당하자는 말입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노예 제국을 건설할 수  있소. 찐드기처럼
우릴 귀찮게하는 동부와 갈라서는 겁니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검은 테를 지닌 안경을 쓰고 있는  '트렌트 페니'의 입장에선 적당
한 선에서 참석자들에게 자중을  당부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러면
오늘 모임의 목적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 모임의 목적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
기 위해서입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건국자인  그가 나선 이상 우리
쪽의 입장을 지지하는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은 전
무합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안 됩니다."
"어째서입니까?"
"확실한 대답을 주시오."
"자, 모두 제 얘기를 잘 들으세요. 현재 집권중인 모어 대통령은 행
정적인 기반을 잘 구축한 인물입니다. 즉 자기 세력을  곳곳에 성공
적으로 심어 놓았다는 것이죠. 선거가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은 시
점에서 우리가 일을 저지르게 되면 도리어 공화당을 중심으로 모인
노예 해방파가 지닌 명분을 더 키워주게  되는 역효과를 부르게 됩
니다. 게다가 우린 준비도 채 끝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거사를 위
해선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뭡니까?"
"분위기를 조성해야죠.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언론  매체들을 가지
고 서부의 동부에 대한 감정을 나쁜 쪽으로 몰아야 합니다."
"언론을 지저분한 일에 동원하는 것엔 찬성할 수  없습니다. 후일을
생각해야죠."
"그렇다고 우리 입장을 숨기고 다닐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그만하세요.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로 입씨름을 하는 것은 여러 가
지로 비효율적입니다."
"일단 정리하기로 하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 확실한 이상 계
획은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가급적 동부가 우리와의 분리를  받아들
이기를 바라지만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것입니
다. 제정신이신 분이라면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실테지만  안타깝
게도 일이 커지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동부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
다."
"우리에게 가담하기로 약속한 주는 얼마나 됩니까?"
"모두 합해 21곳 입니다."
"그들 주지사들의 주방위군에 대한 장악력은?"
"절반은 확실히 믿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23시 20분. 켄타우로스 폴츠머

"누나,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아마도 다른 농장에 팔려가겠지…."
"나 아직도 모르겠어. 주인 나리가 왜 우리를 팔았는지…."
"나도 들은 얘기지만 주인님의 사정이 어렵다고 했어.  그래서 돈을
마련하려고 우릴 팔은 걸지도 몰라."

수 십명의 노예들이 가두어진 창고 안에서 아직 앳된 남동생을 품
에 안은 소녀는 작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달을 바라보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동생에겐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동생에게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으며 안심시키는  것 뿐이라는 생각
에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오늘 들어온 놈들은 아주 조용하군."
"제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자기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번 대통령 선거 말인데…."
"공화당 후보로 나올 분 말인가?"
"보나마나 노예제 폐지를 외칠텐데 어떡하지?"
"뭐가 걱정되는 거라도 있나?"
"우리 직장 말이야."
"나도 그게 걱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예제 폐지에는  반대하지
않네."
"어째서?"
"젊었을 때 겪은 일인데, 처음  출근하던 날에 봐선 안 될  걸 보고
말았지. 어린 남매가 강제로  헤어지는 걸 보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어. 노예 제도라는 건 결국엔 사라져야 해."

창고 밖에서 노예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 배치된 두 경비원은 어깨
에 소총을 맨 상태에서  담소를 나눈 후 약속이라도  한 듯 담배를
문 후 서로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만약에 동부와 서부가 노예 문제로  서로 싸우기로 작정한다면 어
떻게 될까?"
"큰 아들이 대학에서  정치학과 군사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운좋게
빨리 끝나면 3개월이고 양쪽 모두 싸우다  일이 꼬이게 되면 2년은
족히 걸린다고 했어."

심각한 얘기를 나누기 시작한 두  사람은 갑자기 졸려움을 느끼고
는 잠시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수면 가스는 역시 효과가 좋군."
"시작하자. 최대한 빨리 끝내자고."

검은 복면을 쓰고 소총을 휴대한  일단의 청년들이 숨어있는 장소
에서 뛰어나와 창고의 보안  장치를 해제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
두텁기 그지 없던 대형 출입문이 열렸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소리쳤다.

"안심하십시오! '자유의 아들'이 여러분을  구하러 왔습니다! 신속하
고 안전한 탈출을 위해서  저희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아이들과
노약자들을 우리가 준비한 차량에 먼저 태우겠습니다."

수 십명의 노예들이 자유를  향한 도주의 첫  발을 내딛은 가운데
폴츠머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국장 '러셀  가르도'는 깊은 잠에 빠
져 있었다. 그러던 그의 귀에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특별히 주문
한 20세기 중반풍의 외양을  지닌 전화기라 소리가  매우 시끄럽긴
했지만, 그는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였다.

"여보세요?"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노예 시장의 창고 하나가 뚫렸습니다.
"인명 피해는?"
-경비원 두 명이 수면 가스를 마시는 바람에  기절한 것 외엔 전무
합니다.
"그러면 이제 자네가 얘기하려는 진짜 문제는 노예들의 탈출이로군.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규정대로 조치했나?"
-물론입니다. 현재 시내 곳곳의 검문 검색을 강화하고 있고 공중 감
시도 배로 늘렸습니다.
"가급적이면 빨리 해결하게. 폴츠머가 속한 웨벨 주 바로 옆엔 노예
금지주의 선봉인 핌블이 있어. 그걸 잊지마."
-알겠습니다.
"노예들에 관한 문제는 내가 오늘  아침에 시장님께 직접 보고하겠
네. 이만 끊기로 하지."
-편히 주무십시오.
"수고하게."

곧 수화기를 내린 그는 침대로 돌아왔고, 그를 기다리던 아내가 물
음을 던졌다.

"대체 무슨 일이죠?"
"별 일 아니야. 노예들이 창고에서 도망쳤대."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 별의 원주민들은 극단적인 처우에  시달리지 않는 한 사람들을
해치지 않아. 내 비록 이곳 폴츠머의 경찰국장이라지만 그들이 핌블
로 무사히 도망갈 수 있기를 빌고 싶어."
"여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어서 세상이 바
뀌어야만 하는데…."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