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력 115년. 04월 17일. 13시 30분. 켄타우로스 세컨드 뉴욕

"어서 오십시오. 국부."
"반갑네. 2년만에 자네 얼굴을 보는군."

'휘트 모어'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한 후 '찰스 헤스턴'은 싱긋 웃으
며 탁자 위에 놓인 주스를 마시면서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았나?"
"그들이 우리를 찾아 왔습니다."
"그들이라니?"
"지구에서 사절을 겸한 함대를 보냈습니다."
"그들이 왔단 말인가?"
"네. 그리고 함대의 주력을 이루는 쪽은 미해군이라고 합니다."
"..."
"NSC를 열어 보았지만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
구,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의 속내를  잘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아무
리 우리가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지만, 백년 이상이나  왕래가 없
어서 전혀 다른 가치관과 생활 양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서..."
"나의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얘기로군... 그 나라의  권력에 어느 정
도나마 근접해 있었던 나의 경험을..."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움을 주십시오."
"나는 전면에 나설 수가 없네."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이 나라를 세웠지만, 그  이전에 한 나라의 군인이었네. 조국
을 등진 내가 그들 앞에 대표로  나서서 협상에 임할 자격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없네. 게다가 나는 정치적으로 매우 미묘한  입장에 처
했네. 곧 있을 선거를 생각하면 정부의 문제에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는 걸 이해해주게."
"..."

그의 단호한 태도에 할 말을 잃은 대통령은 한 숨을 쉰 후 말하였
다.

"그러면 어떡해야 좋을지 조언이라도 해 주십시오."
"함대의 켄타우로스 강하를 허락하지 말고  대신 그들의 대표가 우
리 나라를 둘러보게 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란 말씀입니까?"
"최대한 그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이 나라의 힘을  한도껏 과장해서
라도 말이네. 인간이 아무리 문명과 지성을 발전시켜 왔어도 군사력
에 의존해 왔다는 걸 잊지 말게."

매우 뼈있는 말을 남긴 '찰스 헤스턴'은 곧 밖으로  나서려고 했고,
휘트 모어는 그에게 물었다.

"제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시면 무얼 하실 겁니까?"
"노예 제도를 폐지할 걸세."
"맙소사! 전쟁을 각오하시는 겁니까?"
"이 나라가 잘못되어 가는 걸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자네만큼은 내
선택을 이해해주게."

이제 백살이 훌쩍 넘었음에도 정정하기만  한 그는 기다리고 있던
차에 올라타기가 무섭게 대통령 관저를 떠났다.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탐사 함대

-여보게 거스, 각하께서는 어떻게든 그들과 조속히 협정을 맺고  싶
어하시네. 즉, 그들이 우리 태양계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막고 싶
어한다는 뜻이지.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된다면 우리 나라는  용감한
선조들에 의해 쓴 맛을 본 영국과 같은 꼴을 당할지도 모르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간해선 저들이 우리에게 협상할 의사
를 내비치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측 함대 차원에서의 제한적인
교류는 지속중입니다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감이 없지  않습니
다."
-저들이 아직도 협상할 의사를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문제가 참 복잡해지는군... 그러면 1주일 정도 더 기다리도록 하게.
만약 그때까지도 저들이 우리와 대화할 의사를 내비치지 않으면 그
대로 함대를 철수시키게.
"알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곧 윈도우가 닫히자 햄튼 제독은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겼다. 이
쪽에서 협상할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켄타우로스 연방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이쪽과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먼 길을  온 그들의 입장에선 쉽게 발
길을 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바로 그때  자동문이 열리
면서 장교 한 명이 들어와 해군식 경례를 한 후 말하였다.

"보고드립니다. 켄타우로스측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보냈습
니다."
"그 제안은 어떻게 되나?"
"주요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우리측에서 대표 십 여명을  뽑아 보내
면 그들에게 자국을 돌아보게 해주겠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름대로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셈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외교의 기본이지. 아마도 우리에게 자신들의 발전상을 보여주어 흑
심을 품지 않게 하겠다는 목적일걸세."
"우리는 저들과 싸우러 온 게 아니잖습니까?"
"그렇기야 하지. 하지만 지구에 있는 정치가들의 생각이란  워낙 변
덕스럽기 그지 없으니..."

곧 그들의 제안이 적힌 전문을 뒤적여본 햄튼 제독은 조용히 말하
였다.

"함장들을 소집하게."

연방력 115년. 04월 19일. 12시 20분. 켄타우로스 뉴햄프턴

"음, 이거 참 맛있는데? 루리, 한 번 먹어봐."
"저는 생각 없어요."

케빈이 권하는 음식을 애써 사양한 루리는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흥미 이상의 관심을  보이지 않
는 것과 비교해 그녀는 이 나라를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생각
이 굴뚝 같았다. 굴곡진 곳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대평원에
자리한 농경지들과 그 위에서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수많은 농기
계들은 이 나라가 식량과 관련해선 그  생산력이 매우 높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수송기는 공업화가 완료된 지점
상공에 이르렀고 안내를 맡은 켄타우로스 공군 장교가 목에 힘주어
말하였다.

"여러분 아래에 있는 도시가 바로  켄타우로스 항공 산업의 중심지
인 뉴햄프턴 입니다. 곧 인근 공항에 착륙할 것이니 모두 안전 벨트
를 매주시기 바랍니다."

안전벨트 착용 당부를 겸한 그의 설명이 끝나고 20여 분의 시간이
지난 후 수송기는 뉴햄프턴 공군 기지의 활주로에 착륙했다. 수송기
에서 내린 시찰단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지구와 비교해 크게 낯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켄타우로스 공군이
대절한 버스에 올라탄 그들이 향한 곳은  항공기 생산이 마악 진행
중인 어느 공장의 생산 라인이었다.

"여러분이 보시는 것은 우리군의 신형 폭격기 '하이퍼 소어'의 생산
라인입니다. 단순 공정의  10퍼센트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항공기 생산도 지구 각국과 큰 차이가 없군요."
"자동화 라인에 맡기기엔 항공기는 워낙 민감한 장비이기 때문입니
다."

곧 장교는 시찰단을 밖으로 안내해 주었고, 그들은 이내 입을 다물
지 못하였다.

공장과 인접한 항공기 주기장에 무려  수 백대에 이르는 폭격기들
이 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저렇게 폭격기를 많이 생산하는 거요?"
"우리 나라의 전체 면적이 그쪽  태양계의 목성과 비슷하기 때문입
니다. 그만큼 배치시켜 둬야 할 곳이 많습니다."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장교의 대답에 함장  한 명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주위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지구와 크게 다른 것이 없군..."

공장 견학이 끝난 후 시찰단에 속한 이들은 성대한 점심을 대접받
았다. 그들 앞에 있는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은 지구에선 큰 돈을 줘
야 겨우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세상에, 음식도 크게 바뀐 것이 없군요?"
"하하하, 너무 놀라실만도 하실 겁니다. 사실, 우리는 생태계 보호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경제 활동에  필요한 만큼 켄타우로스의
자연 환경을 지구처럼 바꿔놓았습니다."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국에 대해  설명한 공군 장교는 어딘가로
부터 연락을 받자 모두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저는 급한 일 때문에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제가 돌아
올 때까지 TV를 보시면서 무료함을 달래시기 바랍니다."

장교는 그렇게 말한 후 방에서 나갔고, 방에 남은 시찰단은  TV를
보거나 체스를 두는 등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TV
채널을 돌리면서 무얼 방송하나 확인하던 누군가가 의문에 빠진 표
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오락이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나오는데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
은 나오질 않고 있어."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들이 단단히 준비를 해둔 모양이군."
"분명히 우리에게 감추고 싶은 게 있을 겁니다."
"좋아, 그러면 누가 TV를 다룰 줄 아는 사람 없나?"
"제가 한 번 손을 보겠습니다."
"자네만 믿겠네."

시찰단에 속해 동행하고 있는 한국 해군의 기술  사관 한 명이 곧
TV에 몇가지 장난을 친 후에야 모든 채널이 개방되었다. 그리고 얼
마 안 있어 그들은 시사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채널을  확인했고, 이
내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시청자 여러분, CTN의 '바넷 질'입니다. 멤퍼스의 헬버튼에서 원주
민 노예들이 자신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농장 관리인을  살해한 후
바로 옆에 있는 노예금지주로 탈출하려다  멤퍼스 주방위군에 의해
전원 사살당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 상공에 와 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현재 멤퍼스 주방위군은 사살당한 노예들의 시신을 불도
저로 포탄 폭발에 의해 생긴 구덩이에  밀어넣어 매장하고 있는 중
입니다. 아, 이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여기자가 자신이 타고 있는 헬기가  갑자기 급선회를 하자 물음을
던지자 조종사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멤퍼스 주방위군 전투기가 우리에게 퇴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빨
리 나가야 해요.
-말도 안 되요! 우리에겐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구요! 그까
짓 경고는 무시하세요.
-전투기의 레이더가 우릴 조준한 마당에 어쩌란 말입니까? 일 나기
전에 저는 조종사 권한으로 현장 상공을 이탈해야만 합니다.
-이봐요!

곧 화면이 끊어졌고, 스튜디오가  나오면서 아나운서를 맡은  흑인
남자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시청자 여러분, 죄송하지만 돌발 사태로 인해 더 이상 현장 상황을
내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저게 대체 어찌된 일인가?"
"그, 글쎄요... 저로서는..."
"우리에겐 이곳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네. 빨리 방법을 찾
아야겠어."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