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년 01월 04일. 18시 00분. 한국 강화도 국제공항

-뉴욕행 록히드 마틴 소속 대기권외 여객기는 10분 후에 이륙해 주
십시오.
-앵커리지발 델타항공894기가 5분 뒤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상하이발 오스트레일리아항공345기가 곧 착륙할 예정입니다.

대합실에서 각 항공기의 이착륙 관련 정보가 방송되는 가운데 VIP
룸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단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휴즈 회장과 그의 수행원들이었다.  물론 미나토는 휴즈 회장  바로
옆에 서서 걷고 있었다.

"미나토, 꼭 가고 싶은가?"
"네. 회장님."
"매우 위험한 항해인데도?"
"위험은 늘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동료들을 소중히 여기다니... 왜 늦게  결혼했는지 이해
가 되는군."
"회장님..."
"하하하.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게."

휴즈 회장은 씨익 웃은 후 마악 날아오르기 시작한 아시아나 항공
의 초음속 여객기를 바라보았다.  대형 여객기는 20세기 중반  이후
급속도로 실용화되었지만, 소리의 벽을 넘어 날 수 있는  기종의 일
반화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와 영국이 공동 개발하고 보유
한 최고 시속 마하2를 자랑하는 여객기 콩코드가  있었다지만, 콩코
드는 기체 가격만 해도 엄청난데다 운용  유지비도 매우 높아서 승
객 1인당 탑승료가 매우 비쌌다. 그 때문에 콩코드가 정원을 채우고
운항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고, 그로 인해 30년을 채 못 넘기고 퇴역
해야만 했었다. 그러던 것이 21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기술, 비용상
의 문제가 해결되어 초음속 여객기는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사실 휴즈 회장 일행이 이곳에 온 이유는 여객기와 관계된 것이었
다. 바로 한국의 두 민간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록히드 마
틴의 신형 대기권외 여객기 DC-20을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이전 형
식과 비교해 50퍼센트 이상 승객 수용능력이 향상되고 에너지 효율
도 많이 좋아진 기체여서 계약 체결  여부에 대한 경영진의 예상은
매우 낙관적이었고, 그 예상대로 회장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투
자한 협상을 벌여 십 여대의 기체를  판매하는데 성공해 지금 미국
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한항공에서 DC-20을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한 때가
언제지?"
"한 달 후입니다."
"그럭저럭 괜찮군."
"공장 근로자들은 지금도 바쁘다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아 그랬었지. 그러면 두 달 이후에 추가 급여를 지급하도록 조치하
게."
"네. 회장님."

2205년 01월 04일. 09시 30분. 미국 워싱턴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장군님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렇게 부르시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예비역일 뿐입니다. 160살이
나 먹은 늙은이란 말입니다."
"지금도 정정하시잖습니까?"
"겉보기엔 그렇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답니다."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3사단의 지휘관이었던 헤스턴 소장의 전임자
였던 '패트릭 텍스' 예비역 대장과 마주한 스키너 대통령은 매우 무
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조만간 있을 켄타우로스를
목적지로 삼은 함대의 출항때문이었다. 3사단의 생존자들과  그들을
따라나선 월면 독립파 지지 민간인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을 때 그는  크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성
연합과의 전쟁이 끝난 뒤 태양계의 질서  재편과 그에 따른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발생한 대립의 기운으로 온 인류가 불안해하는 판국
에 또다른 불안 요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입니다만, 이번에 계획된 탐사 함대가 지닌
목적이 무엇인지는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네. 짐작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전부터 그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하
고 있었습니다."
"3사단의 마지막 사단장인 헤스턴 소장이  장군님의 후배라고 들었
는데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찰스는 전형적인 군인입니다. 예컨데  전쟁은 가급적 피해야  하지
만, 피할 수 없다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고를 가졌죠. 지금도
그 점은 변함이 없을 겁니다."
"내가 지금도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의 선택입니다. 그는 월면 독
립파와 함께 행동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텐데도
왜 위험을 각오하고 그대로  태양계 밖으로 뛰쳐나가는  걸 택했던
걸까요?"
"아마도 그의 심정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북미로 향
했던 청교도들과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조국으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확신한 순간 그에게는 그것이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메이플라워는 이제는 모순으로  통하지 않습니까?  자유를 찾으러
왔다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매
우 큽니다."
"두렵기만 합니다.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실수를  저지른 것
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마다 내 전임자들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은 비관할 때가 아닙니다.  영국은 이민자들을 억압하려  했지
만, 우리는 그 이후로 그들과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과 만나 얘기해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텍스 대장의 말에 스키너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하였다.

"그들과 평화를 공유할 수 있다면 일시적일지라도 태양계의 안전은
보장받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에서만이라도 더 이상의 전쟁은  일어
나지 말아야 합니다."

2205년 01월 07일. 10시 00분. 미국 뉴욕

언론을 통해 오늘이 탐사 함대가 출발할 날이라는 소식을 들은 뉴
욕 시민들은 출항하게 될 함대의 모습을 보기 좋은 여러 장소에 운
집해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UN본부 앞에 마련된  단상
에 오른 '버나드 에롤'  UN사무총장은 단상 앞으로  모여든 언론사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주위
를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사실 UN사무총장은 이번에 출항하는 함대
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각국의  이해에 따
라 함대에 참가한 군 관계자들은 형식적으론 UN의 간판 아래 모였
을지언정 인류의 공영과 단결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슬로건엔 관심도
없었거니와 필요 이상으로 협조할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총장이 확실하게 광대 노릇을 해주는군."
"UN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미국도 참 야비하군요."
"피차 일반이야. 통합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 연합체를
좋아할 선진국은 어디에 없네."

일반석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곳에 마련된 귀빈석에 앉아  있는 '한
신수' 제독은 옆자리에 앉은 부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팔짱을 끼었
다. 얼마 후 케빈과 루리가 그를 찾아왔고, 루리가 제독을 불렀다.

"아버지."
"루리, 오랜만이구나."
"폐를 끼쳐서 미안해요. 아버지. 토머스를 맡겨서..."
"괜찮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바엔 차라리 가족이 돌봐주는 게 낫단
다. 아무 일 없다면 반년 후에 돌아올 수 있겠지?"
"네. 장인 어른."
"사위, 언제나 조심해야  하네. 그들 이후로  태양계 너머로 항해를
시도한 이는 전무했다네. 안전한 항해에 필요한 자료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야."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보낸 무인 탐사선이 보내
준 자료를 토대로 더듬어 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루트는 위험해. 그들이  탐사선을 발견하자마자 공격했다는  걸
잊어선 절대로 안돼."

그렇게 말한 후 제독은 단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간이 되자 총장
은 잠시 헛기침을 한 후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분, 예전에 공표한 대로 UN의 깃발 아래 모인 12개국 해군으
로 구성된 켄타우로스 탐사함대가 오늘 출항하게 되었습니다.  러시
아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나왔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지구는 푸르다'라고. 그가 말한
대로 지구는 푸르른 별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태양계 안에서 그러한 별은 오직 우리 지구 뿐이라는 사
실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인류가 우주에  뛰어든지 1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인류는 태양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인류가  지
금 누리는 풍요에 만족해버려 더 이상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
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군가가  그 흐름을 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깨기 위해 오늘 이 함대가 출항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렸고,  총장은 곧
바로 물을 마신 후 단상에 오른 탐사 함대의 주요 인사들을 지칭하
였다.

-오늘부로 미지의 세계로 떠날 용감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십시
오!

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와 환호를 보내었고, 총장은 만족스러
운 표정을 지은 후 말하였다.

"우리 모두 그들이 새로운 별을 찾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
기를 기원합시다."

이렇게 해서 연설이 끝난 후 UN상비군의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
고, 탐사 함대에 속한 인사들은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헬기에
올라타 출항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함대로 향하였다.

"안녕하세요."

루리가 V사인을 하면서 나데시코-B의 함교 안으로 들어오자 근무
자 전원이 환호성을 질렀다.

"루리루리, 정말 오랜만이야."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와 루리에게 한  마디씩 건네는 가운데 케빈
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뒤에서 이를 지켜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케빈,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세요?"
"계급은 신경쓰지 말고 마음 놓고 얘기해요."
"함장님, 지금은 근무중입니다. 사적인 대화는 피해야 합니다."
"아내인 나한테도 말을 놓으면 안 되나요?"
"비록 소속군은 다를지라도 함장님은 엄연히 저의 상관입니다. 근무
시간엔 당연히 하대해선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승조원들에게도 마
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서로에게 반말을 하면서  부부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루리
는 군인으로서의 남편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편하다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결론내린
루리는 싱긋 웃으며 말하였다.

"좋아요. 중위,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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