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계 태세를 취하며 복도 끝의 양쪽으로 열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의 크기에 비해 엄청나게 넓은 공간은 온통 메탈릭 블루로 가득했는데 커다란 시험관이 수십 개가 좌우 대각선으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처음에 시험관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지만 뿌연 액체 너머에는 10개월도 되지 않은 듯한 태아에서 10살 쯤 된 소년과 20대 후반의 모습까지 다양한 연령 대의 남자들이 들어 있었다. 평범한 체구에 큰 눈, 작은 입... 그것은 모두 나였다. 나의 일생을 마치 주마등처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한 것이다.

“불쾌했나, 프로토?”

총탄이 작렬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 엎드려 피했다. 대 여섯의 시험관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박살나고 안에 있는 배양액과 유리 파편, 피와 살 조각 등이 어지럽게 사방으로 튀었다.

“나도 처음에 볼 때는 그랬지. 너도 예외는 아닐 거야.”

익숙한 내 목소리. 조였다. 철컥하는 재장전음과 함께 다시 머신건이 불꽃을 튀겼다. 나는 마구 달려 피했지만 왼팔에 맞았다. 한 발은 어깻죽지를 관통했고 다른 한 발은 손등에 박혔다. 나는 이를 악물었지만 비명을 참을 수는 없었다.

“호오, 가짜도 고통을 느끼나? 어차피 녹아 소멸할 텐데!”

녀석은 다시 총을 난사했지만 부서진 시험관 아래에서 나는 숨죽이고 있다 고개를 내밀고 권총을 발사했다. 녀석이 머리를 집어넣고 은폐하는 것이 보였다.

“가짜가 오리지널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모든 걸 엉망으로!”

“내가 널 만들었으니 너를 소멸시킬 권리도 있지. 나는 네 아버지야.”

“헛소리 하지 마! 나는 나일뿐, 아무도 자신의 아버지는 될 수 없어!”

“너는 인간이 아냐! 고깃덩어리일 뿐! 내가 원하는 대로 잘 해주었어. B4 계획의 증거들을 차례로 없애주었지. 백유석도, 류도, 강 팀장도, 제이도!”

“류도, 제이도 친구였잖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태연했나?”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프로토. 사람을 죽이고 태연했던 것은. 제이를 쏜 것이 누구였지?”

조는 비웃음을 잔뜩 섞어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번 정권은 대선필패야. 다음 정권에 아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B4 계획은 확실히 소멸시켜야 하지. 네가 증거를 하나하나 처리해주었어. 고마워. 난 이제 새 삶을 시작할 거야. 참, 여기자하고 재미 봐서 좋았나? 의외였어. 그런 재주도 있다니. 부러웠단 말이지.”

“그만해!”

나는 일어서서 권총을 마구 쏘아댔지만 조는 요리조리 피하면서 반대쪽 출구로 빠져 나갔다. 나는 다리를 절면서도 전력으로 문을 향해 달렸다. 문 앞에서 총소리가 들렸고 나는 다시 포복한 다음 기어서 문 앞에 닿을 수 있었다. 나는 일어나 문을 어깨로 밀치고 들어갔다. 밝은 백열등으로 방안은 눈이 부실 만큼 밝았다. 마치 제단처럼 밝고 투명한 공간이었다. 온통 새햐안 벽에는 티 하나 없었다. 갑자기 변한 광량 때문에 눈이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고 그 동안 나는 지향사격 자세를 취했지만 실은 무방비상태였다.

입구의 반대편 끝에서 조가 원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원의 얼굴은 이 방의 백열등 빛 보다 더욱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동안 원은 볼 살이 빠져 광대뼈가 드러났고 턱선은 날카로워져 나이 들어 보였다. 나는 이 광경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슬슬 이 신파극을 끝낼 때가 되었어. 내 손으로 시작했으니 내 손으로 끝낼 수밖에.”

“그녀를 놔줘! 그 여자는 네 여자잖아!”

“내 여자? 푸훗. 이제 두 개의 클론만 없애면 B4 계획은 소멸하게 되지. 네가 녹아내리는 순간 말야.”

나는 놀라서 조를 겨냥하며 물었다.

“그녀도 클론이란 말인가?”

“원이 어이 없이 죽은 다음 나는 원을 살리기 위해 B4 계획을 추진했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손에 넣었지. 그녀에게 모든 기술을 투입했어. 급속 성장시키는 했지만 소멸은 인간들과 동일하게 60년 후로 설정했지. 하지만 원의 클론은 클론이었을 뿐. 이 여자는 원이 아니었어. 아무리 노력해도 원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

“인간을 생성하고 말살하고... 그걸 네 마음대로 했단 말인가?”

“너나 이 여자는 인간이 아냐.”

원이 조를 보며 말했다.

“내가 클론이라도 좋아. 난 단지 사랑받고 싶었어. 하지만 너는 이유 없이 내게서 멀어졌어.”

그리고 원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를 회유하면 된다고... 저 남자는 곧 소멸할 것이라고 말해서 나는 저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 했지만 가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어.”

조가 총을 내게 겨누며 말했다.

“넌 원을 원했지? 원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했잖아. 그런데 여기자랑 잔 거는 또 뭐지? 류의 죽음에 왜 그리 슬퍼했지? 도대체 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도 난 원 밖에 없었어. 그 모든 추억들이 설령 내 것이 아니라 네 것이었다 해도 내겐 소중했어. 그게 있어서 버틸 수 있었어. 그런데... 원이 내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여자를 이 꼴로 만들면 안 되잖아? 총을 버려! 조용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원도 외쳤다.

“나를 사랑했다면 이 남자의 말을 들어.”

나는 원에게 물었다.

“내 이름은 뭐지?”

원이 망설였다.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분노하며 말했다.

“내가 가장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이 죽은 것도, 내 여자가 남의 여자였다는 것도 아냐. 그건 바로 내가 나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이지!”

나는 정확히 겨누고 총을 격발했다. 작지만 팽팽한 원의 가슴에 탄환이 정확히 박히면서 피가 솟았다. 원은 힘없이 눈을 감으며 앞으로 무너졌다. 조의 표정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나는 놓치지 않고 조의 미간을 맞췄다. 원은 이미 노랗게 녹아내리고 있었고 조의 뒤통수에서 터져나온 피가 새하얀 벽을 붉게 물들였다. 나는 권총으로 내 관자놀이를 겨누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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