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레스토랑의 샐러드 바에서 원은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인기 있는 연어와 새우를 얼마나 담아야 할지를 서서 고민하고 있었다. 뒤에 줄을 늘어선 사람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원은 연어와 새우를 조금만 담은 다음 조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돌아오며 속으로 후회했다. 더 담았어야 했다고.

“왜 조금 담아서 그런 거야? 내가 지금 더 가져올까?”

“아니, 그냥... 됐어.”

원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망설임을 숨기지 못했다. 조가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당장 일어난 조는 성큼성큼 걸어가 줄을 선 다음 연어와 새우를 집어 왔다. 하지만 줄이 길었기 때문에 조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 걸렸고 테이블 위의 수프는 식어버렸다. 원은 짜증스러웠다.

“내가 됐다고 했잖아.”

“모자랐잖아. 연어하고 새우.”

“됐다면 된 거지. 왜 이렇게 사람 말을 안 들어. 봐, 수프가 다 식었잖아.”

조는 원의 새하얀 얼굴을 무심코 바라보며 상처나 흉터가 남지 않아 안도하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어? 수프가 식어버렸다고.”

“수프는 또 가져오면 돼.”

아직도 조와 원은 포크를 들지 않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남기면 안 되잖아. 남들 눈치도 보이고...”

“괜찮아. 식은 건 내가 먹을게. 내가 잘못 했어.”

“말로만 맨날 잘못했다고 그러고. 결국 나아지는 건 없다니까.”

조는 오랜만의 자리에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원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2년 5개월만이라고 실토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플랜트에서 배양중인 자신의 클론의 프로토타입 때문에 온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원은 지금 함께 식사하는 남자가, 권력의 그림자에서 가장 잔혹한 일을 태연히 자행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학원 일은 재미있어?”

“재미는 무슨? 이제 금방 1학기 중간고사야. 만나기도 힘들어 진다고.”

원이 미리부터 김새는 말을 해댔지만 조는 꾹 참으며 식은 수프를 숟가락으로 퍼서 입 속에 넣었다.

“그럴 바에는 그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나 혼자 벌어서도 충분해. 그러니 우리...”

“결혼 같은 말은 꺼내지도 마.”

원은 단호했다. 조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져 새우 껍데기를 포크로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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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돌아가자 조는 창문을 모두 열어젖혔다. 에어컨을 틀기는 했지만 원과 섹스할 때에는 이상하리만치 더웠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후텁지근한 습기가 밀려들어 조의 기분은 더 우울해졌다.
조와 섹스하게 된 지 몇 달이나 지났지만 원은 좀처럼 즐기지 못했다. 조의 페니스가 질 속으로 들어올 때 젖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뻑뻑한 이물감 외에는 그 어떤 쾌감도 느끼지 못했다. 원이 젖는 것은 마치 입 속에 억지로 넣어진 커다란 고깃덩어리 때문에 본능적으로 침이 흐르는 불쾌한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원이 거부하는 날도 생겼고 그런 날은 조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반대로 조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때에는 원의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원은 섹스 없이도 얼마든지 사귀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원은 섹스를 원하는 조를 납득할 수 없었고, 조는 그런 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원이 돌아간 다음에 침대의 머리카락과 음모를 정리한 조는 찬물로 샤워를 하며 더위를 식히려 애썼다. 류는 백유석과 문제없이 잘 지내기에 결혼해서 딸까지 낳은 것일까?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는 하지만 류에게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근 들어 그늘이 드리워지는 조의 표정 때문인지 류는 조를 어려워하기 시작했고 조 역시 그런 류에게서 조금씩 거리감을 느꼈다. 어차피 류는 남의 여자였다.

아내를 잃기 전에 제이는 어땠을까? 하지만 제이에게 죽은 아내가 살아있을 때 어땠느냐고 묻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조가 아버지가 된 이후 제이는 조의 친구가 아니라 부하와 같은 역할을 자임했다. 제이와 유도를 제외한다면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조직 구성 상 회사에 관해 의논할 수 있는 상대는 없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 충직한 집행자에 머물고자 하는 유도를 생각하면 회사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제이 밖에 없는 셈이었다. 꾸준히 강 팀장의 동선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것도 제이의 몫이었다. 조는 강 팀장이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내버려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제이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또래의 스물여덟 살의 남자들이 가지는 고민을 조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원은, 이렇게까지 섹스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 다른 여자를 알아보라고 했다. 그래도 눈감아 주겠다고 했다. 박 의원이나 권중호와의 술자리가 있어도 결코 여자를 건드리기는커녕 옆에 앉히지도 않았다. 여자는 돈 주고 사지 않는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조의 신념을 생각하면 원의 이런 말은 대단히 모욕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오늘도 기분이 엉망이 된 것이었다. 조는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어떻게든 기분을 바꿔보려 노력했다. 그는 플랜트에서 완성 단계에 도달한 자신의 클론이 떠올랐다. 이제 기억을 이식하는 작업도 마무리되어 실전에 투입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백유석의 의견이 있었다. 착착 진행되어가는 B4 계획만이 조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는 부츠컷 진과 헐렁한 노란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다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꺼내 플랜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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