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는 야릇한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기쁨과 흥분, 만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플랜트 완공 1년 반 만에 첫 번째 클론이 완성된 것이다. 기억을 이식시키는 길고도 지루한 작업이 남아 있었지만 육체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클론이 탄생된 것이었다. 그는 제작 초기부터 결정해둔 클론의 소멸 시기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훌륭한 것이었다고 자족했지만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었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첫 번째 클론이 완성되었지만 그와 더불어 회사의 자금도 바닥이 드러나고 있었다. 현장에서 뛰는 팀장과 요원들이 노력을 하고 백유석이 상용화 독점을 약속한 제약회사에 아무리 자금을 끌어와도 한계가 있었다. 조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면 하고 후회했지만 무의미한 것이었다.

유도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조는 말이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제이는 조가 오늘만큼은 클론의 완성에 대해 기쁨을 표현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북창동 사건 이후로 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조는 창밖을 응시하며 침묵을 지켰다. 유도 역시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과묵한 타입이었기 때문에 제이에게는 말상대가 없었다.

나이트 클럽에 도착하자 제이와 유도가 차례대로 조의 뒤를 따랐다. 입구에 있는 덩치들은 진작에 그를 알아보고 90도 각도로 숙여 자신의 보스와 동일한 수준의 예의를 표했고 그 중 중간보스 한 명이 안으로 세 명을 안내했다. 몸수색은 없었다. 조는 오늘 새하얀 정장을 입고 있었고 유도와 제이는 검정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던 권중호가 호들갑을 떨며 조를 맞아들였다.

“오, 아버지께서 몸소!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조는 이런 식의 권중호의 호들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중호는 눈 부분은 까맣고 그 아래쪽은 투명한 커다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조와 제이는 권중호가 권하는 소파에 앉았고 유도는 뒤에 부동자세로 섰다. 권중호도 자리에 앉아 가느다란 피네스에 불을 붙인 다음 맛있게 빨았다.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는데 세 명의 젊은 손님에 비해 자신의 연륜이 훨씬 더 무게감 있는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로만 들었던 공포의 대상이 왜소한 체구에 대학생처럼 섬세한 외모를 하고 있는 데에 더욱 얕잡아 보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잔인한 소문을 모두 잠시 잊게 된 것이다.

권중호는 자신의 클럽에서 가장 물 좋은 여자아이들을 불렀다. 하지만 조는 권중호의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거절했다. 뒤에 부하들을 잔뜩 세워둔 권중호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지만 조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갑시다.”

“좋습니다.”

권중호는 의외로 배짱이 강한 조의 행동에 불쾌감을 숨기며 말했다.

“회장님이 필요합니다. 회사를 위해서 말입니다. 앞으로 회장님 가족의 순익 중 절반을 넘겨주십시오.”

“절반이요? 너무 심하십니다. 그건 도저히 저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입니다. 이 애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 긴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저나 이 애들에게 무엇을 해주시는 겁니까?”

“해드리는 건 없습니다. 단지 할 일을 안 할 뿐입니다. 게다가 이미 2년 전에 회사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습니까? 그 때 이 친구가 한몫하기도 했고요.”

조는 시선을 제이에게 돌리며 말했다. 2년 전 팀장과 정, 제이는 조의 데스크 워크를 통해 한현철 일당을 처리하고 권중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한 바 있었다. 이 임무는 당시 아버지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강 팀장이 자의적으로 벌인 것이었는데 조가 당시의 일을 꺼낸 것이다. 조는 계속했다.

“우리가 할 일을 한다면 당신이나 뒤에 있는 비계 덩어리들은 구제역 예방을 위해 살처분되는 돼지 신세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조의 단호하고도 자극적인 말투에 중간 보스를 비롯한 깍두기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자 조의 뒤에 시립한 일당백의 사나이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속주머니에 양 손을 넣었다. 하지만 권중호가 눈짓으로 뒤를 말렸다. 조는 유도를 말리지 않았지만 유도는 눈치 빠르게 속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비계 덩어리들이 아무리 쪽수가 많아도 회사의 요원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계 덩어리들은 총이 없고 설령 러시아 똘마니들에게 권총을 구해온다고 해도 쏘아 본 적도 없을 테니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일 테고...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일개 조직이야 우습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권중호는 아버지의 위협이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요구 조건을 들어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참, 아버지께서 모르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아 있더군요. 얼굴을 바꾸기는 했지만. 원래 이 바닥이 좁지 않습니까?”

“강 팀장 말입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조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권중호가 직접 문 앞까지 배웅하겠다는 것을 사양한 조를 비롯한 세 사람은 다시 벤츠에 올랐다. 제이가 물었다.

“알고 있었어? 강 팀장...?”

“아니. 하지만 모른다고 하면 회사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지. 목에 나이프를 맞고도 살아 있었군. 아마 한현철이 살렸을 거야.”

“처리할까?”

“아니, 내버려둬. 이용가치가 있을 거야. 대신 끊임없이 감시하고 근황 알려줘.”

조는 제이에게 말한 다음 유도를 불렀다. 유도는 예, 하고 공손히 대답하며 웃어보였다.

“오늘 갔던 클럽의 지도를 만들어 둬. 언젠가 다시 와야 할 것 같아. 내가 됐든 아니든...”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