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재미있었어?”
영화 ‘시카고’를 보고 나오며 류가 조에게 물었다. 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멀티플렉스의 입구에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는 사람과 매점에서 팝콘과 콜라를 사려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상대방을 만나기 위해 핸드폰 폴더를 열고 부지런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둘은 사람이 드문 한가한 복도로 나와 앉았다.
“재미있었다는 사람이 왜 표정이 그래? 여자친구랑 싸운 거야?”
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류의 물음에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는 자신에게 놀란 조는 입을 열었다.
“싸우다니. 그렇지 않아.”
“그럼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해야지. 사실은 좀 아파. 그래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
“어디가 아파? 말해봐.”
조는 다쳤다, 라고 말하려다 아프다, 라고 말했다. 류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회색의 긴 니트 카디건의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고 긴 다리를 쭉 내밀며 말했다.
“그건 좀 말하긴 그래. 미안해.”
“흐음... 요즘 들어 표정이 어두워졌어, 너.”
“그런가?”
조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일, 아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만 할 수는 없어서 말이지. 그러려면 하기 싫은 다른 일들을 억지로 해야만 해. 하고 싶은 일에서 오는 만족감은 적지만 그나마 그걸 얻으려면 정말 하기 싫은 일인데도 티 안내고 해야 하니까... 신랑은 좀 어때?”
조는 며칠 전에도 직접 만난 사내의 안부를 그 아내에게 물었다.
“완전히 어린애야. 싱글벙글. 정부의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는 것 같은데 내막은 전혀 말하지 않지만 잘 풀리나봐.”
“그래, 다행이군.”
조는 이런 식으로 백유석의 연구의 진척 수준과 그의 만족도를 캐고 있는 자신이 싫어졌다.
“이상해. 작년까지만 해도 남편은 늘 죽상이고 너는 항상 즐거워보였는데 이젠 반대야. 넌 세상 고민을 다 가진 것처럼 어둡고 남편은 장난감을 새로 쥔 어린애처럼 마냥 즐겁고.”
나는 백유석에게 엄청난 장난감을 손에 쥐어준 것이군, 이라고 조는 되뇌며 물었다.
“아기는 잘 커?”
“응. 정말 예뻐. 이제 엄마라고도 하는 걸.”
“와, 대단한데.”
“정말 기뻐. 남들이 아기에게 엄마 소리 처음 듣고 행복했다고 말하면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정말이더라고. 흐뭇해. 이제 세 달만 있으면 돌이야.”
조는 류가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니 조는 회사 때문에 비롯되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조는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벌써 4학년인데 졸업하면 뭐할 거야?”
류는 조의 옆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물었다. 조는 류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나, 학교 그만 뒀어.”
류는 큰 눈을 토끼처럼 치켜뜨며 놀랐다.
“왜? 너 같은 사람이야 말로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재미없어서. 그리고 교수 아무나 되나?”
“너처럼 전공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어. 심지어 우리 학교에도 말야.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 말야. 그런데 그만 두다니. 의대라도 올 생각이야?”
“누구처럼?”
농담에 류는 쾌활하게 웃었고 조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학교 관두고 뭐하게? 네 성격에 그냥 집에서 놀고먹을 리는 없을 테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취직이 될 지도 몰라.”
“인턴을 하고 있구나. 조금 버티면 정규직이 되는 거야?”
“그런 셈이야. 배고프다. 우리 뭐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오늘은 대학중퇴자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하지.”
“대학중퇴 선배가 사주는 거야? 크림 스파게티 먹고 싶다. 어때?”
“크림 스파게티, 좋아.”
류는 쭉 뻗은 긴 다리를 접으며 일어섰다. 조는 아이를 낳아도 전혀 몸매가 변하지 않는 류에 감탄하며 뒤따랐다.
영화 ‘시카고’를 보고 나오며 류가 조에게 물었다. 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멀티플렉스의 입구에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는 사람과 매점에서 팝콘과 콜라를 사려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상대방을 만나기 위해 핸드폰 폴더를 열고 부지런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둘은 사람이 드문 한가한 복도로 나와 앉았다.
“재미있었다는 사람이 왜 표정이 그래? 여자친구랑 싸운 거야?”
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류의 물음에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는 자신에게 놀란 조는 입을 열었다.
“싸우다니. 그렇지 않아.”
“그럼 잘 지내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해야지. 사실은 좀 아파. 그래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
“어디가 아파? 말해봐.”
조는 다쳤다, 라고 말하려다 아프다, 라고 말했다. 류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회색의 긴 니트 카디건의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고 긴 다리를 쭉 내밀며 말했다.
“그건 좀 말하긴 그래. 미안해.”
“흐음... 요즘 들어 표정이 어두워졌어, 너.”
“그런가?”
조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일, 아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만 할 수는 없어서 말이지. 그러려면 하기 싫은 다른 일들을 억지로 해야만 해. 하고 싶은 일에서 오는 만족감은 적지만 그나마 그걸 얻으려면 정말 하기 싫은 일인데도 티 안내고 해야 하니까... 신랑은 좀 어때?”
조는 며칠 전에도 직접 만난 사내의 안부를 그 아내에게 물었다.
“완전히 어린애야. 싱글벙글. 정부의 프로젝트를 받아서 하는 것 같은데 내막은 전혀 말하지 않지만 잘 풀리나봐.”
“그래, 다행이군.”
조는 이런 식으로 백유석의 연구의 진척 수준과 그의 만족도를 캐고 있는 자신이 싫어졌다.
“이상해. 작년까지만 해도 남편은 늘 죽상이고 너는 항상 즐거워보였는데 이젠 반대야. 넌 세상 고민을 다 가진 것처럼 어둡고 남편은 장난감을 새로 쥔 어린애처럼 마냥 즐겁고.”
나는 백유석에게 엄청난 장난감을 손에 쥐어준 것이군, 이라고 조는 되뇌며 물었다.
“아기는 잘 커?”
“응. 정말 예뻐. 이제 엄마라고도 하는 걸.”
“와, 대단한데.”
“정말 기뻐. 남들이 아기에게 엄마 소리 처음 듣고 행복했다고 말하면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정말이더라고. 흐뭇해. 이제 세 달만 있으면 돌이야.”
조는 류가 자신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니 조는 회사 때문에 비롯되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조는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벌써 4학년인데 졸업하면 뭐할 거야?”
류는 조의 옆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물었다. 조는 류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나, 학교 그만 뒀어.”
류는 큰 눈을 토끼처럼 치켜뜨며 놀랐다.
“왜? 너 같은 사람이야 말로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그냥. 재미없어서. 그리고 교수 아무나 되나?”
“너처럼 전공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어. 심지어 우리 학교에도 말야.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 말야. 그런데 그만 두다니. 의대라도 올 생각이야?”
“누구처럼?”
농담에 류는 쾌활하게 웃었고 조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학교 관두고 뭐하게? 네 성격에 그냥 집에서 놀고먹을 리는 없을 테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취직이 될 지도 몰라.”
“인턴을 하고 있구나. 조금 버티면 정규직이 되는 거야?”
“그런 셈이야. 배고프다. 우리 뭐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오늘은 대학중퇴자의 취향을 존중하기로 하지.”
“대학중퇴 선배가 사주는 거야? 크림 스파게티 먹고 싶다. 어때?”
“크림 스파게티, 좋아.”
류는 쭉 뻗은 긴 다리를 접으며 일어섰다. 조는 아이를 낳아도 전혀 몸매가 변하지 않는 류에 감탄하며 뒤따랐다.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