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조는 제이와 고급 일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벽지와 문뿐만 아니라 다다미와 코타츠도 완벽하게 일본식으로 구현된 방이었다. 4인실이라 방은 작았지만 아늑했고 한쪽 벽에는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새하얀 얼굴의 여인이 그려진 우키요에가 걸려 있었다. 조와 제이는 그날 가장 신선하고 비싼 복어회에 따뜻한 사케를 곁들여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최근 둘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다. 원래 입이 무거웠던 조가 더욱 말 수가 적어졌을 뿐만 아니라 평소 지껄이는 편이었던 제이도 쾌활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먼저 입을 여는 것은 제이였다. 커다란 회접시를 가져온 기모노 차림의 웨이트리스가 각 접시에 회를 덜어주고 나가자 제이는 자신의 병을 직접 사기잔에 따라 쭉 들이키고는 말했다.

“한 접시에 몇 십 만 원짜리 회라... 이거 반 년 전에는 꿈도 못 꾸던 거군.”

“넌 어릴 적부터 유복했잖아. 이런 데에는 익숙하지 않아?”

“돈이야 늘 있었지만... 가족끼리 식사를 같이 하는 일은 드물었으니. 노인네는 늘 바빠서 집에도 잘 안 들어왔어.”

죽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자 조는 화제를 이어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고는 입을 다물었다. 제이도 더 이상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도리어 조에게 부담이 될까봐 자제했다.

“생각보다...”

제이는 조에게 건배를 제의하며 말했다. 다시 한 잔을 마신 제이가 말을 이었다.

“회사가 빨리 안정되었어. 박 의원을 비롯해 여당에서는 20대 중반의 새 아버지에 대해 상당한 불안을 느낀 것이 사실이었겠지. 하지만 아무 문제없이 회사는 잘 굴러가고 있으니...”

“다 너나 유도 덕분이야.”

조는 제이와 유도에게 공을 돌렸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 인사치례 같았다. 조가 아버지가 된 이후 제이는 팀장이 되었다. 친구에서 상하관계가 된 것이다. 제이는 조가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함과 신중함은 원래부터 조의 덕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조의 눈에서는 냉혹함과 잔인함, 집요함이 비쳤다.

“네가 순식간에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야. 본보기를 잘 보인 셈이지. 사라진 자들을 위해 명복을 빌어야 하지 않을까? 솔로조, 맥클러스키, 타탈리아, 바르지니...”

제이는 킥킥거렸고 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이는 나무젓가락으로 복어회를 한 점 집어 눈앞으로 올리고는 말했다.

“어지간해서 회를 잘 치지 않으면 복어는 먹을 수 없는데 말야. 맹독이 들어있단 말이지. 잘 쓰면 좋지만 독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거 알아? 회사도 말야...”

“그만해.”

조는 제이의 말허리를 자른 다음 사케 잔을 쳐들어 깨끗이 비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지금 회사를 그만두기라도 하라는 거야?”

“그런 건 아냐.”

“우리가 지금 회사에서 손을 떼면 너희 아버지와 강 팀장, 정과 같은 꼴로 전락해버릴 거야. 죽고 싶지 않으면 말에서 뛰어내리면 안돼.”

“그러다 엄청난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부딪칠 수도 있지. 그래도 죽어.”

“죽는 건 두렵지 않아. 난 B4 계획의 완성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어.”

“공적인 계획에 사적인 감정을 뒤섞다니 너답지 않아.”

“원래 인간은 하나의 행동을 할 때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성취하기 위해서 하는 법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널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알면 그만 해!”

조는 단호하게 제이의 말을 막았다. 제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다 시 한 잔을 마시고 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다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조는 벽에 걸린 우키요에의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심경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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