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으로 돌아와 오른쪽 옆구리를 소독했다. 양손뿐만 아니라 온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기에 상처를 소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알콜을 묻힌 솜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마시며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류가 살아있었다면 마음 편히 치료받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다. 류를 더 깊이 생각하면 마음만 아플 뿐이다. 나는 무언가 다른 생각으로 화제를 전환하고 싶었지만 상처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말없이 치료해주던 류가 더욱 그리워졌다. 나는 세면대 앞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참는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렸다. 혼자서 상처를 치료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외로움이 폐부 깊숙이 사무쳤다.

한참을 그 자세로 있으며 고통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몇 분이 흐르고 고통이 가라앉자 나는 거친 숨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반창고와 붕대로 상처를 감쌌다. 부엌의 선반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위스키를 꺼내 벌컥거렸다. 위스키의 뜨거운 열기가 식도를 타고 코와 입을 자극했다. 나는 양말과 바지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다음 기어가듯이 침대에 들어갔다.

단잠을 잤다. 최근 나를 괴롭히던 악몽 따위는커녕 아예 꿈조차 꾸지 않은 것이다. 눈곱이 낀 오른쪽 눈을 비비며 침대 협탁 위의 카시오 알람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넘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붕대와 반창고를 벗기고 상처를 보니 부기가 가라 앉아 있었다. 다행히 덧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욱신거리는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잠을 잘 자서인지 몸이 가벼웠다. 나는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동안 허기를 느꼈다. 화장실에서 나와 콘프레이크를 우유에 말아서 벌컥거리며 마셨다. 우유 째 곤프레이크를 마시며 게걸스럽게 씹었기 때문에 숟가락도 필요 없었다. 콘프레이크는 허기를 채우기는커녕 더욱 자극했다. 나는 계란과 햄을 꺼내 프라이팬에 익혔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식욕을 돋우었다. 마른 빵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밥을 새로 짓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선반에 둔 즉석조리용 밥을 꺼내 전자렌지에 익힌 다음 즉석 컵라면까지 곁들여 햄에그와 함께 먹었다. 마구 위 속으로 집어넣으며 숨이 막혀 학학거렸다.

클론을 말살한 쾌감은 과도한 식욕으로 이어졌다. 나는 회사일을 하면서 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어떤 윤리적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단지 직업이기에 묵묵히 행했을 뿐이다. 유도는 경우가 달랐는데, 류를 죽였기 때문에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이 때문에 생존본능이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클론은 처음부터 없애고 싶었다. 녀석이 진을 죽인 것보다, 진 앞에서 나인 양 행동했고, 나와 모든 점에서 똑같다는 점이 더욱 불쾌했다. 아마 원이 녀석을 만났어도 녀석과 나를 구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클론을 없앤 것은 회사 일을 시작한 이래 가장 통렬한 사건이었다. 이건 살인이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것이다. 클론에게는 인격이 없으니 파리 한 마리를 잡은 것과 같다.

하지만 배를 채우고 다시 낮잠을 잔 다음 일어났을 때에는 몇 시간 전에 만끽했던 쾌감은 사라지고 찜찜함 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찬물로 얼굴을 씻은 다음 서재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본능적인 찜찜함은 항상 불길한 예감으로 이어졌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아떨어졌다. 나는 모니터 위에 놓인 노인이 건네준 홈런 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닿지 않는 생각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췄다. 찜찜함의 원인은 분명 회사일 것이다. 클론을 하나 없앴을 뿐 회사는 아직 건재하다. 그리고 회사는 나를 노릴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일기와 이제는 멈춘 손목시계 위에 놓인 사진을 꺼냈다. 클론과 제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당연히 사진은 처음 노인이 주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른쪽에는 어제 소멸한 클론이 흰색 정장과 선글라스 차림으로 정면을 보고 있었고 왼쪽에는 제이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내가 데커드였다면 이 사진을 PC에 연결해 말로 명령을 내려가며 이리저리 확대해볼 텐데. 그러면 아마 분명히 희미하게 찍힌 구석을 확대할 테고, 결정적인 단서를 얻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2019년이 되지 않았고 여기는 LA도 아니다. 서울은 일본 자본에 잠식당하지도 않았다. 클론은 리플리컨트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르지만.

흐릿한 주변부를 뚫어져라 보았지만 단서는 없었다. 나는 사진을 책상 위에 내던지고는 열린 서랍 위로 일기와 손목시계를 보았다. 4년 전 원을 마음에 두기 시작했을 때 저 손목시계로 그녀를 훔쳐보고 일기에 기록하며 행복해했었다. 원... 원이라고?

다시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클론의 흰색 정장을 뒷받침한 것은 짙은 파란색에 빨간 기하하적 무늬가 있는 니트 넥타이였다. 나는 단 하나 밖에 제작되지 않은 이 넥타이의 실물을 본 적이 있다. 인사동의 디자이너 샾에서 원이 샀을 때였다. 그날 원은 나와 점심을 같이 했지만 넥타이를 사고는 그대로 가버렸다. 아마 집에 간 것이 아니라 넥타이를 선물하기 위해 녀석을 만나러 갔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섰다. 분노인지 충격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이 나를 농락했다.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