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요즘 들어 자네가 원하는 게 늘어나는군.”
노인은 수화기 너머 혀를 차면서 말했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싫어합니다만 처치가 궁한 것은 사실입니다.”
“자네가 나서서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다 있군.”
“사람이 아닙니다.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다.”
놈이 원과 만나기라도 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클론을 하나 없앤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네. 자네가 더 유명해질 수도 있어. 회사에서는 자네의 신분을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것인지 고려 중일 텐데 자네가 너무 나서면 곤란해질 수 있지.”
“어차피 곤란해지는 것은 저 혼자일 뿐입니다. 영감님이 곤란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제가 이용 가치가 있다면 이번 일을 도와주십시오.”
“자네 요즘 말이 과격해졌어. 표현을 아끼던 사람이... 증오하지 말게. 증오하면 피곤해져. 피곤하면 빨리 늙지.”
“영감님처럼 말입니까?”
내가 쏘아 붙이자 노인은 허허, 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알겠다며 자료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상암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노인은 나와 달리 스포츠 관람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주머니에 진의 라이터를 넣고 권총, 나이프와 함께 신나 병 두 개를 쌕에 챙겼다. 노인에게 자료를 받자마자 녀석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어 아파트 단지의 대다수의 집들의 불은 꺼져 있었다. 나는 이미 낮과 밤의 시간 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올림픽 대교를 건너 올림픽 대로를 탔다. 강변 북로로 가면 다리를 건널 필요가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지만 도로가 좁고 커브가 잦아 밤에 드라이브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두 번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쾌적함이라는 측면에서 올림픽 대로가 나았다. 올림픽 대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성수 대교를 거쳐 동호 대교로 향하는 커브를 돌 때 강 건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옥수동 일대의 재개발 아파트촌에서 오종종하게 불빛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니, 그보다 쿵, 하는 소리가 먼저였다. 자미로콰이를 들으며 넋 놓고 운전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나를 노린 것은 흰색 소나타였다. 녀석은 왼편에서 운전석을 향해 차의 머리를 들이민 것이었다. 에어백이 터져 얼굴로 밀려들자 나는 잠시 시야를 잃었다. 그 사이 두 번째 충격이 엄습했다. 허리와 왼쪽 다리에 뻐근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나는 왼손으로 핸들을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재킷 속주머니에서 재빨리 나이프를 꺼내 에어백을 찢었다. 풍선이 찢어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중앙 분리대에 있던 녀석은 다시 내 차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다 다칠까봐 나이프를 뒷좌석으로 던진 다음, 핸들을 양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꺾어서 맞부딪히며 상대를 보았다. 선팅 때문에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낯익은 체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찾아온 클론이었다. 만일 누군가 앞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일란성 쌍둥이가 카 체이싱을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녀석은 다시 한번 내 차의 운전석을 향했지만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거의 멈추다시피 한 다음 녀석의 꽁무니를 잡았다. 나를 향해 돌진하던 녀석의 소나타는 목표물을 상실한 채 차선 두 개를 넘어와 가드레일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나타의 왼쪽 뒤를 들이받았다. 소나타는 거친 마찰음을 내며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 가드레일을 들이 받고는 경사면에서 한 바퀴 돌아 한강 시민 공원에 처박혔다.
나는 거칠게 차를 세운 다음 쌕을 메고 권총을 꺼내 놈을 향해 돌진했다. 녀석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이미 차에서 나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경사면을 내려가며 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굴렀다. 녀석은 세 번 연사했지만 다행히 맞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하며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나는 녀석의 하체를 향해 두 발을 쏘았다. 그 중 한 방이 녀석의 오른 무릎에 적중했다. 녀석은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다시 한발을 발사해 녀석의 권총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녀석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왼손으로 나이프를 던졌는데 그것은 내 오른쪽 옆구리 살을 찢었다. 박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이프를 사용하는 솜씨도 나와 똑같이 훌륭했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총을 발사했다. 나를 나이프로 노린 대로 갚아주기 위해 녀석의 오른쪽 옆구리를 맞췄다. 녀석은 쓰러졌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날 죽여라.”
녀석의 목소리는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기묘함을 선사했다. 언젠가 원과 함께 벚꽃을 보러 여의도에 나가 캠코더로 촬영한 6mm 테잎을 TV에 연결해 보았을 때와 같은 어색한 느낌이었다. 녀석이 나와 지나치게 닮았다는 사실에 움찔했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나는 신나 병을 꺼내 녀석의 머리 위에 부었다.
“넌 죽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거야. 죽음은 생명체에게만 해당되거든. 하지만 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잖아.”
“아버지가...”
나는 녀석의 입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와 이빨 몇 개가 부러지면서 녀석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놈의 아버지 타령은 그만해! 이젠 지겨워!”
나는 할리 데이비슨 로고가 새겨진 진의 라이터를 꺼내 녀석의 머리에 불을 붙였다.
“안심해. 넌 죽는 게 아니라 녹아 없어질 뿐이니. 이건 그녀 몫이다.”
녀석은 안간힘을 다해 말하려 했다.
“우린... 같은... 프로...”
녀석은 어떤 단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짐승이 울부짖는 듯 우우거리는 비명과 함께 불에 이지러지며 녀석이 녹아내렸다. 살고기 굽는 냄새가 아니라 흡사 플라스틱을 녹이는 것 같은 화학 약품이 타는 역한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순간에는 내가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녀석이 노란 액체로 완전히 녹아내리는 데에는 컵라면이 다 익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노인은 수화기 너머 혀를 차면서 말했다.
“스스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싫어합니다만 처치가 궁한 것은 사실입니다.”
“자네가 나서서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다 있군.”
“사람이 아닙니다. 고깃덩어리일 뿐입니다.”
놈이 원과 만나기라도 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클론을 하나 없앤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네. 자네가 더 유명해질 수도 있어. 회사에서는 자네의 신분을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것인지 고려 중일 텐데 자네가 너무 나서면 곤란해질 수 있지.”
“어차피 곤란해지는 것은 저 혼자일 뿐입니다. 영감님이 곤란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제가 이용 가치가 있다면 이번 일을 도와주십시오.”
“자네 요즘 말이 과격해졌어. 표현을 아끼던 사람이... 증오하지 말게. 증오하면 피곤해져. 피곤하면 빨리 늙지.”
“영감님처럼 말입니까?”
내가 쏘아 붙이자 노인은 허허, 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알겠다며 자료를 주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상암의 월드컵 경기장으로 나오라고 했다. 노인은 나와 달리 스포츠 관람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주머니에 진의 라이터를 넣고 권총, 나이프와 함께 신나 병 두 개를 쌕에 챙겼다. 노인에게 자료를 받자마자 녀석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현관문을 잠그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자정이 넘어 아파트 단지의 대다수의 집들의 불은 꺼져 있었다. 나는 이미 낮과 밤의 시간 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올림픽 대교를 건너 올림픽 대로를 탔다. 강변 북로로 가면 다리를 건널 필요가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지만 도로가 좁고 커브가 잦아 밤에 드라이브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두 번 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쾌적함이라는 측면에서 올림픽 대로가 나았다. 올림픽 대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성수 대교를 거쳐 동호 대교로 향하는 커브를 돌 때 강 건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옥수동 일대의 재개발 아파트촌에서 오종종하게 불빛이 새어나왔다. 갑자기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니, 그보다 쿵, 하는 소리가 먼저였다. 자미로콰이를 들으며 넋 놓고 운전하고 있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나를 노린 것은 흰색 소나타였다. 녀석은 왼편에서 운전석을 향해 차의 머리를 들이민 것이었다. 에어백이 터져 얼굴로 밀려들자 나는 잠시 시야를 잃었다. 그 사이 두 번째 충격이 엄습했다. 허리와 왼쪽 다리에 뻐근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나는 왼손으로 핸들을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재킷 속주머니에서 재빨리 나이프를 꺼내 에어백을 찢었다. 풍선이 찢어지자 요란한 소리가 났다.
중앙 분리대에 있던 녀석은 다시 내 차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다 다칠까봐 나이프를 뒷좌석으로 던진 다음, 핸들을 양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꺾어서 맞부딪히며 상대를 보았다. 선팅 때문에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낯익은 체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찾아온 클론이었다. 만일 누군가 앞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일란성 쌍둥이가 카 체이싱을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녀석은 다시 한번 내 차의 운전석을 향했지만 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거의 멈추다시피 한 다음 녀석의 꽁무니를 잡았다. 나를 향해 돌진하던 녀석의 소나타는 목표물을 상실한 채 차선 두 개를 넘어와 가드레일과 부딪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나타의 왼쪽 뒤를 들이받았다. 소나타는 거친 마찰음을 내며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 가드레일을 들이 받고는 경사면에서 한 바퀴 돌아 한강 시민 공원에 처박혔다.
나는 거칠게 차를 세운 다음 쌕을 메고 권총을 꺼내 놈을 향해 돌진했다. 녀석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이미 차에서 나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경사면을 내려가며 나는 총탄을 피하기 위해 앞으로 굴렀다. 녀석은 세 번 연사했지만 다행히 맞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하며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나는 녀석의 하체를 향해 두 발을 쏘았다. 그 중 한 방이 녀석의 오른 무릎에 적중했다. 녀석은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나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다시 한발을 발사해 녀석의 권총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녀석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왼손으로 나이프를 던졌는데 그것은 내 오른쪽 옆구리 살을 찢었다. 박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나이프를 사용하는 솜씨도 나와 똑같이 훌륭했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총을 발사했다. 나를 나이프로 노린 대로 갚아주기 위해 녀석의 오른쪽 옆구리를 맞췄다. 녀석은 쓰러졌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날 죽여라.”
녀석의 목소리는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기묘함을 선사했다. 언젠가 원과 함께 벚꽃을 보러 여의도에 나가 캠코더로 촬영한 6mm 테잎을 TV에 연결해 보았을 때와 같은 어색한 느낌이었다. 녀석이 나와 지나치게 닮았다는 사실에 움찔했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나는 신나 병을 꺼내 녀석의 머리 위에 부었다.
“넌 죽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거야. 죽음은 생명체에게만 해당되거든. 하지만 너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잖아.”
“아버지가...”
나는 녀석의 입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둔탁한 소리와 이빨 몇 개가 부러지면서 녀석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그놈의 아버지 타령은 그만해! 이젠 지겨워!”
나는 할리 데이비슨 로고가 새겨진 진의 라이터를 꺼내 녀석의 머리에 불을 붙였다.
“안심해. 넌 죽는 게 아니라 녹아 없어질 뿐이니. 이건 그녀 몫이다.”
녀석은 안간힘을 다해 말하려 했다.
“우린... 같은... 프로...”
녀석은 어떤 단어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짐승이 울부짖는 듯 우우거리는 비명과 함께 불에 이지러지며 녀석이 녹아내렸다. 살고기 굽는 냄새가 아니라 흡사 플라스틱을 녹이는 것 같은 화학 약품이 타는 역한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순간에는 내가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녀석이 노란 액체로 완전히 녹아내리는 데에는 컵라면이 다 익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