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다음 날 아침 유효기간이 지난 마른 빵과 밋밋한 우유를 대충 밀어 넣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어두워지고 두꺼워졌다. 표정도 우중충해보였다. 단지 계절과 무관하게 여자들의 스커트 길이만 여전히 짧을 뿐이었다. 혹시 TV에 공개된 CCTV 화면 속의 내 클론을 기억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없었다. 역시 도시에서는 타인의 삶에 무관심하다.
을지로 입구 역에 내려 보신각을 향해 걸었다. 인공 조경의 산물인 청계천의 산책로에는 오전이어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신호 체계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 이동통신사의 서비스 센터에 들어갔다.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입구에 서서 무슨 서비스를 원하느냐며 과장된 친절을 보였다. 나는 통화 내역 조회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번호표를 뽑아주더니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정수기에서 찬물을 두 모금 마시자 내 차례가 돌아왔다.
검정색 뿔테 안경을 끼고 이마를 훤히 드러낸, 유니폼 차림의 여직원이 일어나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더니 다시 용건을 묻는다. 통화 내역 조회를 원한다고 하자 여직원은 양식 기재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양식을 기입하고 내 본명이 적힌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 트레이에 얹었다. 여직원은 둘을 살피더니 키보드를 두들기며 LCD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뭔가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단순히 친구와 통화하기 위해 자정에 내 전화를 끊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대학 때부터 친구가 거의 없었다. 참혹한 결과를 예상하며 여직원 앞에 놓인 내 주민등록증을 보았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내 사진은 내가 봐도 부자연스러워 나 같지 않았다. 저 사진을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클론에게도 주민등록증이 있을까. 녀석은 어떤 이름으로 행세하는 것일까. 내 이름으로? 주민등록증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까?
“죄송합니다만 문자 메시지 내역 조회는 불가능합니다.”
여직원이 말이 클론에 대한 내 상념을 중단시켰다.
“통화 내역을 종이로 출력해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직원은 안경을 왼쪽 검지손가락으로 치켜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프린터 쪽으로 등을 돌렸다. 잠시 후 그녀는 몇 장의 종이를 스태플러로 찍어 두 손으로 내밀고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고객님, 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쥐고 대리점을 나왔다.
나는 복원된 광교 위에서 청계 3가 방면을 보며 통화 내역서를 확인해보았다. 군데군데 내 전화번호도 보였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핸드폰 번호 하나로 통화 내역이 집중되어 있었다. 주로 원의 발신 보다는 수신이 더 많았다. 그녀는 내가 전화 요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의심할까봐 자신이 거는 것을 최소화하고 주로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 핸드폰의 열자리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시켰다. 이름을 입력해야 했다.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스미스’라고 정했다. 기분이 내키면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명동에 나가 포크 커틀릿을 먹을까 싶었지만 통화 내역을 확인한 이후에는 만사가 귀찮아졌다. 나는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 속에서 내내 이 전화번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통화 내역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목이 타서 물을 마셨지만 식욕은 동하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쳤지만 낮잠을 자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찜찜함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스미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동안 신호가 갔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음을 정리할 때마다 듣곤 했던, 칼 리히터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럴 때 화근이라는 말을 쓸 것이다.
을지로 입구 역에 내려 보신각을 향해 걸었다. 인공 조경의 산물인 청계천의 산책로에는 오전이어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신호 체계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 이동통신사의 서비스 센터에 들어갔다. 정장을 입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입구에 서서 무슨 서비스를 원하느냐며 과장된 친절을 보였다. 나는 통화 내역 조회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번호표를 뽑아주더니 잠시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정수기에서 찬물을 두 모금 마시자 내 차례가 돌아왔다.
검정색 뿔테 안경을 끼고 이마를 훤히 드러낸, 유니폼 차림의 여직원이 일어나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더니 다시 용건을 묻는다. 통화 내역 조회를 원한다고 하자 여직원은 양식 기재와 신분증을 요구했다. 양식을 기입하고 내 본명이 적힌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 트레이에 얹었다. 여직원은 둘을 살피더니 키보드를 두들기며 LCD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뭔가 걸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단순히 친구와 통화하기 위해 자정에 내 전화를 끊을 리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대학 때부터 친구가 거의 없었다. 참혹한 결과를 예상하며 여직원 앞에 놓인 내 주민등록증을 보았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 내 사진은 내가 봐도 부자연스러워 나 같지 않았다. 저 사진을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나였다. 그렇다면 클론에게도 주민등록증이 있을까. 녀석은 어떤 이름으로 행세하는 것일까. 내 이름으로? 주민등록증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까?
“죄송합니다만 문자 메시지 내역 조회는 불가능합니다.”
여직원이 말이 클론에 대한 내 상념을 중단시켰다.
“통화 내역을 종이로 출력해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직원은 안경을 왼쪽 검지손가락으로 치켜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프린터 쪽으로 등을 돌렸다. 잠시 후 그녀는 몇 장의 종이를 스태플러로 찍어 두 손으로 내밀고는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고객님, 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쥐고 대리점을 나왔다.
나는 복원된 광교 위에서 청계 3가 방면을 보며 통화 내역서를 확인해보았다. 군데군데 내 전화번호도 보였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핸드폰 번호 하나로 통화 내역이 집중되어 있었다. 주로 원의 발신 보다는 수신이 더 많았다. 그녀는 내가 전화 요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의심할까봐 자신이 거는 것을 최소화하고 주로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그 핸드폰의 열자리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시켰다. 이름을 입력해야 했다.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스미스’라고 정했다. 기분이 내키면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명동에 나가 포크 커틀릿을 먹을까 싶었지만 통화 내역을 확인한 이후에는 만사가 귀찮아졌다. 나는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하철 속에서 내내 이 전화번호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통화 내역을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목이 타서 물을 마셨지만 식욕은 동하지 않았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쳤지만 낮잠을 자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찜찜함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스미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동안 신호가 갔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마음을 정리할 때마다 듣곤 했던, 칼 리히터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럴 때 화근이라는 말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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