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10.
유도를 처리하고 나서도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나와 다를 바 없는 회사의 부품이며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나서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살인에 대해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죄책감 따위와는 무관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고 그른지 고민해본 적도 없고 선인지 악인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뿐이다. 그런 것을 고민한다는 것은 어린애 같은 일이다.
처음부터 나는 이 찜찜함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제이와 함께 사진 찍혔으며, 진을 만났고 죽인 클론 때문이다. 아마 훈련소 시절 나의 DNA를 채취했을 것이다. 몇 번의 혈액 검사와 조직 검사, 유서 동봉을 위해 손발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뽑아 보관해두었다. 아버지나 회사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지만 나와 똑같은 얼굴과 체형에, 똑같은 목소리와 버릇까지 가진 인간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아버지를 처리하고 회사를 공중분해시켜도 클론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남들과 달랐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다 하는 온라인 게임 따위는 쳐다 본 적이 없다.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은 멀리 한다. 여자를 돈 주고 사지 않는다. 극장이나 식당에 혼자 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운동은 싫어하지만 걷기를 좋아한다. 쓸 데 없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유머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10대 초반부터 의식적으로 방향성을 설정하고 나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그것이 스물아홉의 나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와 동일한 인간, 아니 인간을 가장한 고깃덩어리가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내가 29년 동안 쌓아온 열매를 아무 노력 없이 가로챈 고깃덩어리.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놈은 소멸하는 순간 박 의원 집에서 본 녀석처럼 노랗게 녹아내릴 것이다. 내 눈 앞에서.
TV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당장에라도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질 것처럼 쌍심지를 세우고 핏대를 울리는 과장된 주말 사극이 무의미하게 흘러나왔다. 사극 속의 인물들은 이해력이 떨어지는지 같은 대사를 서로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저들이 서로의 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인의 소외감을 비유하여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드리워진 음울한 우수는 더욱 짙어졌다. 식탁 위에 걸린 벽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맘때면 항상 학원 일을 마친 원과 통화하곤 했다. 그것이 하루를 마치는 우리의 마지막 일과였다. 아이들 앞에서 목을 쓰느라 대학 시절보다 목소리 톤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고왔다. 아무리 회사의 힘든 일을 처리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면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와 나는 어긋나고 있었다. 아마도 돌이키기 힘들 것이다. 나를 쌀쌀맞게 대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나는 큰맘을 먹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두 개의 핸드폰은 모두 내 명의로 되어 내가 요금을 부담하고 있었다.
빠른 박자의 연결음이 통화중임을 불길하게 알렸다. 몇 달 전부터 그녀와는 자정에 통화하기 힘들었다. 설령 통화한다 하더라도 다른 전화가 걸려와 급하게 끊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녀와의 통화가 내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일지 몰라도 그녀는 나와의 통화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녀가 자정마다 통화하는 상대는 대체 누구일까.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류 일가 사건 이전이었다면 회사의 인트라넷에 접속해 알아보면 되었겠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이 번거롭지만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유도를 처리하고 나서도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나와 다를 바 없는 회사의 부품이며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나서도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살인에 대해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죄책감 따위와는 무관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옳고 그른지 고민해본 적도 없고 선인지 악인지도 고민하지 않았다. 선과 악은 종이 한 장 뿐이다. 그런 것을 고민한다는 것은 어린애 같은 일이다.
처음부터 나는 이 찜찜함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제이와 함께 사진 찍혔으며, 진을 만났고 죽인 클론 때문이다. 아마 훈련소 시절 나의 DNA를 채취했을 것이다. 몇 번의 혈액 검사와 조직 검사, 유서 동봉을 위해 손발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뽑아 보관해두었다. 아버지나 회사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지만 나와 똑같은 얼굴과 체형에, 똑같은 목소리와 버릇까지 가진 인간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설령 아버지를 처리하고 회사를 공중분해시켜도 클론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남들과 달랐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남들은 다 하는 온라인 게임 따위는 쳐다 본 적이 없다. 담배는 피우지 않고 술은 멀리 한다. 여자를 돈 주고 사지 않는다. 극장이나 식당에 혼자 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운동은 싫어하지만 걷기를 좋아한다. 쓸 데 없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유머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10대 초반부터 의식적으로 방향성을 설정하고 나를 꾸준히 만들어 왔다. 그것이 스물아홉의 나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와 동일한 인간, 아니 인간을 가장한 고깃덩어리가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있었다. 내가 29년 동안 쌓아온 열매를 아무 노력 없이 가로챈 고깃덩어리.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놈은 소멸하는 순간 박 의원 집에서 본 녀석처럼 노랗게 녹아내릴 것이다. 내 눈 앞에서.
TV에서는 모든 등장인물이 당장에라도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질 것처럼 쌍심지를 세우고 핏대를 울리는 과장된 주말 사극이 무의미하게 흘러나왔다. 사극 속의 인물들은 이해력이 떨어지는지 같은 대사를 서로 여러 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저들이 서로의 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현대인의 소외감을 비유하여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드리워진 음울한 우수는 더욱 짙어졌다. 식탁 위에 걸린 벽시계는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맘때면 항상 학원 일을 마친 원과 통화하곤 했다. 그것이 하루를 마치는 우리의 마지막 일과였다. 아이들 앞에서 목을 쓰느라 대학 시절보다 목소리 톤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는 고왔다. 아무리 회사의 힘든 일을 처리해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면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와 나는 어긋나고 있었다. 아마도 돌이키기 힘들 것이다. 나를 쌀쌀맞게 대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나는 큰맘을 먹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두 개의 핸드폰은 모두 내 명의로 되어 내가 요금을 부담하고 있었다.
빠른 박자의 연결음이 통화중임을 불길하게 알렸다. 몇 달 전부터 그녀와는 자정에 통화하기 힘들었다. 설령 통화한다 하더라도 다른 전화가 걸려와 급하게 끊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녀와의 통화가 내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일지 몰라도 그녀는 나와의 통화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녀가 자정마다 통화하는 상대는 대체 누구일까.
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류 일가 사건 이전이었다면 회사의 인트라넷에 접속해 알아보면 되었겠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이 번거롭지만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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