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우리 구면이던가요?”
제이의 경과가 좋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다리를 절게 될 거라고 말한 30대 중반의 훤칠한 호남형의 의사는 상황 설명이 끝나자 조에게 물었다. 조의 옆에 선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예의 그 미소를 되찾았다.
조는 결혼식장에서 이 의사를 본 적이 있다. 자기보다 더 키가 큰 친구가 결혼하던 날, 그 옆에선 신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당신 아내를 먼저 알았고 그녀와 친구 사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는 수술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서 백유석을 처음 봤을 때 이미 알아봤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 방침을 세웠다. 조는 사람을 대할 때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어디까지 친해질 것인가 미리 선을 긋고 행동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아무 대화도 하지 못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조는 백유석과 공적인 대화 이외에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이가 수술을 받는 동안 유도가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가 승인하지 않은 클로닝 계획을 제안했던 것이 백유석이며 순수한 학문적 열정에 사로잡힌 의사로서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없이 회사 밖에서 회사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팀장의 하극상에 참여한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거짓말이나 살인 따위와는 거리가 먼 워커홀릭의 지적인 젊은 교수라는 인상에 조도 아버지의 죽음과 백유석은 무관한 것이라 판단했다. 제이도 백유석을 믿기에 집도의로서 선택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선생을 오늘 처음 만나는 겁니다.”
조의 대답에 백유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는 듯 했지만 기억 속에서 조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옮겨야겠습니다.”
“환자를 말입니까?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무리하면 쇼크가 올 수도 있습니다. 안정이 필수적입니다.”
“안정도 목숨이 붙어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의 사무적이고 냉정한 태도에 백유석은 할 말이 없었다. 조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회사의 사정상 제이를 노릴 자가 나타날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조는 유도에게 구급차가 아닌 일반 승합차로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백유석은 조와 유도가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보였다. 유도가 아직도 전신 마취 상태에 있는 제이를 데리고 나가자 조는 한시름 놓았다. 새벽에 불려 나와 응급 수술을 한 백유석은 긴장이 풀리는 듯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 말했다.
“이제 회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조는 생각에 잠겼지만 앞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류를 만난 오후까지 평온했던 하루가 단박에 반전되면서 숨 가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조는 빨리 원룸으로 돌아가 샤워하고 자고 싶었다. 원의 품도 그리웠다.
“사실 저는 이런 수술은 취미나 다름없는 것이고...”
“알고 있습니다. 백 선생은 복제 전문이시죠.”
“예, 바로 그렇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해 성공하지 못한 클로닝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회사에서 단기적이며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승인만 내려주시면...”
“내겐 결정권이 없습니다.”
“클로닝은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일란성 쌍둥이를 만드는 과정에 단지 인간의 의지가 작용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배아에서 곧바로 성인으로 급속 성장시키는 개발법 실현의 목전에 왔습니다. 이제 실험체만 주어지면...”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조는 냉랭하게 백유석에게 대답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조는 한숨도 못잔 채 간밤을 꼬박 새웠다. 조는 긴장을 늦추고 길게 하품했다. 몇 시간만의 하품인가. 오전 수업은 이미 글렀고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원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했다.
“무슨 일이야? 어젯밤에도 통화가 안 되고 오늘 수업도 안 오고.”
“전화로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어. 다 말해줄게. 수업 끝나면 우리 집으로 올래?”
“알았어.”
원의 대답을 듣자 조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제이의 경과가 좋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안타깝게도 다리를 절게 될 거라고 말한 30대 중반의 훤칠한 호남형의 의사는 상황 설명이 끝나자 조에게 물었다. 조의 옆에 선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예의 그 미소를 되찾았다.
조는 결혼식장에서 이 의사를 본 적이 있다. 자기보다 더 키가 큰 친구가 결혼하던 날, 그 옆에선 신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당신 아내를 먼저 알았고 그녀와 친구 사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 같았다. 조는 수술이 시작되기 전 복도에서 백유석을 처음 봤을 때 이미 알아봤고 어떻게 대할 것인지 방침을 세웠다. 조는 사람을 대할 때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그리고 어디까지 친해질 것인가 미리 선을 긋고 행동했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아무 대화도 하지 못한 두 사람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조는 백유석과 공적인 대화 이외에는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제이가 수술을 받는 동안 유도가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가 승인하지 않은 클로닝 계획을 제안했던 것이 백유석이며 순수한 학문적 열정에 사로잡힌 의사로서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없이 회사 밖에서 회사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팀장의 하극상에 참여한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거짓말이나 살인 따위와는 거리가 먼 워커홀릭의 지적인 젊은 교수라는 인상에 조도 아버지의 죽음과 백유석은 무관한 것이라 판단했다. 제이도 백유석을 믿기에 집도의로서 선택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선생을 오늘 처음 만나는 겁니다.”
조의 대답에 백유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는 듯 했지만 기억 속에서 조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옮겨야겠습니다.”
“환자를 말입니까?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무리하면 쇼크가 올 수도 있습니다. 안정이 필수적입니다.”
“안정도 목숨이 붙어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의 사무적이고 냉정한 태도에 백유석은 할 말이 없었다. 조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회사의 사정상 제이를 노릴 자가 나타날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었다. 조는 유도에게 구급차가 아닌 일반 승합차로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백유석은 조와 유도가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보였다. 유도가 아직도 전신 마취 상태에 있는 제이를 데리고 나가자 조는 한시름 놓았다. 새벽에 불려 나와 응급 수술을 한 백유석은 긴장이 풀리는 듯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 말했다.
“이제 회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조는 생각에 잠겼지만 앞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류를 만난 오후까지 평온했던 하루가 단박에 반전되면서 숨 가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조는 빨리 원룸으로 돌아가 샤워하고 자고 싶었다. 원의 품도 그리웠다.
“사실 저는 이런 수술은 취미나 다름없는 것이고...”
“알고 있습니다. 백 선생은 복제 전문이시죠.”
“예, 바로 그렇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시도해 성공하지 못한 클로닝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 있습니다. 회사에서 단기적이며 가시적인 성과를 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승인만 내려주시면...”
“내겐 결정권이 없습니다.”
“클로닝은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일란성 쌍둥이를 만드는 과정에 단지 인간의 의지가 작용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배아에서 곧바로 성인으로 급속 성장시키는 개발법 실현의 목전에 왔습니다. 이제 실험체만 주어지면...”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조는 냉랭하게 백유석에게 대답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조는 한숨도 못잔 채 간밤을 꼬박 새웠다. 조는 긴장을 늦추고 길게 하품했다. 몇 시간만의 하품인가. 오전 수업은 이미 글렀고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원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했다.
“무슨 일이야? 어젯밤에도 통화가 안 되고 오늘 수업도 안 오고.”
“전화로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어. 다 말해줄게. 수업 끝나면 우리 집으로 올래?”
“알았어.”
원의 대답을 듣자 조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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