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8.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술은 잔뜩 마시고도 음주운전을 해 집까지 온 사람처럼, 나는 비를 잔뜩 맞고 이촌역에 들러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그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의 쓰라림이었다.
집에 온 다음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잠이 들었지만 오래지 않아 깨어났다. 자꾸 입속에서 뭔가 건들거렸기 때문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엄지와 검지를 입속으로 집어넣고 오른쪽 아래 어금니를 잡았다. 부러지지 않고 깨끗이 빠졌다.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면대에 떨어뜨렸지만 이건 하수구로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크다. 나는 어금니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거울을 보았다. 샌드백처럼 얻어맞은 얼굴에서 살색은 눈에 띄지 않았고 온통 가을 단풍처럼 붉으락푸르락했다. 군데군데 검정색도 보였다. 관절이나 근육뿐만 아니라 뼈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류가 죽었기 때문이다. 이미 제이에게 부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블랙 진 왼쪽 주머니 위에 불룩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을 넣어 꺼내보니 할리 데이비슨 로고가 새겨진 라이터였다. 화장실에 엉거주춤 선 채 나는 한참동안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라이터로 위로 입에서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
신호가 가자 제발 받아줘, 제발, 을 되뇌었다. 마치 영겁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나는 이승과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45초가 지나자 그녀가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야...”
“......”
“하고 싶은 말이 있어.”
“......”
“듣고 있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 듣고 있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전화로는 안 되겠어. 만나고 싶어. 오늘 당장.”
어금니가 부러지고 입 안 여기저기가 터진 나의 발음은 부정확했다.
“대낮부터 술 마셨나 본데 난 할 말 없어. 들을 말도 없어.”
“제발. 나 미치겠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러니...”
뚝. 매몰차게 전화는 끊겼다. 뚜뚜, 하고 길게 울리는 통화종료음만이 나를 비웃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일기와 지금은 멈춘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4년 전 나는 저 시계로 원의 얼굴을 비춰 보며 사랑에 빠졌는데 지금은 그것이 실재했던 일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노인에게 전화했다.
“전화 보안 됩니까?”
“자네 것보다 내 것이 더 좋은 걸세. 요즘 이 늙은이를 자주 찾는 군”
“아버지를 죽이고 회사를 손에 넣기를 원하시는 거 아닙니까?”
“자네답지 않게 단도직입적이군.”
“왜 회사에 집착하십니까?”
“그럼 왜 자네는 복수에 집착하지?”
“복수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도나 제 대역은 미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도나 대역도 저와 다름없이 대상을 처리하는 데 불과했을 겁니다.”
“대역이 아닐세. 클론이지.”
“그게 뭐든 상관없습니다. 여하튼 없애야 합니다. 유도와 대역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야 B4 계획의 본질을 알고 아버지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자를 죽인 건...”
“유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군, 그래. 유도는 사람을 죽일 때 칼을 사용하지 않아. 그 놈은 온몸이 무기지. 총이 아니면 굳이 손에 뭔가를 들 필요가 없어.”
“그럼 여기자를 죽인 건...”
“자네 클론일세. 자네가 사용하는 칼과 똑같은 모델이지 않나?”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진의 가슴에 꽂힌 나이프는 유감스럽게도 내가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유도는 자네를 다시 찾아올 거야. 하지만 놈에겐 약점이 있지. 그리고 자네 유명해질 걸세.”
노인은 전화를 끊었다. 노인의 말의 의미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도리어 홀가분해졌다. 물론 머리맡에 권총을 두기는 했지만 나는 곤히 잠들었다. 정신적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그보다 육체적 고통과 피로가 지나쳤다. 두 사람이 연달아 죽었지만 내 뇌는 활동을 정지했다. 나는 뇌가 돌아가지 않으면 몸도 움직일 수 없는 타입이다.
내가 유명해진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비록 온몸이 쑤시고 아팠고 물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입안 곳곳이 터졌지만, 이미 귀띔을 들은 터라 마음은 편안했다.
[[I]]“... 신문의 여기자 진 모씨가 어제 자신의 원룸에서 참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정치부에 근무하는 진 모씨는 어제 자신의 직장인 신문사에 결근하겠다고 전화한 뒤 오늘 새벽 흉기에 살해당한 채 자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같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료 이 모씨는 어제 저녁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 진 모씨를 이상히 여겨 진 모씨 집을 찾았는데 현관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흉기에 찔린 진 모씨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수사 중인 경찰은 라이터 한 개 이외에는 도난품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짐작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I]]
공중파 뉴스부터 신문사 홈피까지 진의 죽음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포털은 남자 관계와 성폭행에서부터 정치적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덧글로 고인을 모독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는 타이레놀 두 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라이터가 없어진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경찰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다. 회사가 뒤에 있다. 이제 나는 회사와 싸운다.
다음 날은 더 가관이었다. 드디어 범인의 CCTV 화면이 공개된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동영상은 아니고 캡쳐 컷이었는데 해상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옷차림은 내가 진의 죽음을 확인했던 당시와 같았다. 워싱 블랙 진에 흰색 라운드 티, 붉은 색 점퍼. 하지만 사진 속의 남자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모자를 쓰고 가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사내는 노인이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팀의 검정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몽타주나 얼굴 사진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내 클론을 만들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테니.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술은 잔뜩 마시고도 음주운전을 해 집까지 온 사람처럼, 나는 비를 잔뜩 맞고 이촌역에 들러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그것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의 쓰라림이었다.
집에 온 다음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잠이 들었지만 오래지 않아 깨어났다. 자꾸 입속에서 뭔가 건들거렸기 때문이다. 화장실로 들어가 엄지와 검지를 입속으로 집어넣고 오른쪽 아래 어금니를 잡았다. 부러지지 않고 깨끗이 빠졌다.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세면대에 떨어뜨렸지만 이건 하수구로 빠져나가기에는 너무 크다. 나는 어금니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거울을 보았다. 샌드백처럼 얻어맞은 얼굴에서 살색은 눈에 띄지 않았고 온통 가을 단풍처럼 붉으락푸르락했다. 군데군데 검정색도 보였다. 관절이나 근육뿐만 아니라 뼈에도 이상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류가 죽었기 때문이다. 이미 제이에게 부탁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블랙 진 왼쪽 주머니 위에 불룩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을 넣어 꺼내보니 할리 데이비슨 로고가 새겨진 라이터였다. 화장실에 엉거주춤 선 채 나는 한참동안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라이터로 위로 입에서 흘러나온 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
신호가 가자 제발 받아줘, 제발, 을 되뇌었다. 마치 영겁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나는 이승과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45초가 지나자 그녀가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나야...”
“......”
“하고 싶은 말이 있어.”
“......”
“듣고 있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 듣고 있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전화로는 안 되겠어. 만나고 싶어. 오늘 당장.”
어금니가 부러지고 입 안 여기저기가 터진 나의 발음은 부정확했다.
“대낮부터 술 마셨나 본데 난 할 말 없어. 들을 말도 없어.”
“제발. 나 미치겠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러니...”
뚝. 매몰차게 전화는 끊겼다. 뚜뚜, 하고 길게 울리는 통화종료음만이 나를 비웃었다. 나는 책상 서랍을 열어 일기와 지금은 멈춘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4년 전 나는 저 시계로 원의 얼굴을 비춰 보며 사랑에 빠졌는데 지금은 그것이 실재했던 일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곧바로 노인에게 전화했다.
“전화 보안 됩니까?”
“자네 것보다 내 것이 더 좋은 걸세. 요즘 이 늙은이를 자주 찾는 군”
“아버지를 죽이고 회사를 손에 넣기를 원하시는 거 아닙니까?”
“자네답지 않게 단도직입적이군.”
“왜 회사에 집착하십니까?”
“그럼 왜 자네는 복수에 집착하지?”
“복수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도나 제 대역은 미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도나 대역도 저와 다름없이 대상을 처리하는 데 불과했을 겁니다.”
“대역이 아닐세. 클론이지.”
“그게 뭐든 상관없습니다. 여하튼 없애야 합니다. 유도와 대역의 시체를 밟고 넘어서야 B4 계획의 본질을 알고 아버지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자를 죽인 건...”
“유도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조금 머리가 돌아가는군, 그래. 유도는 사람을 죽일 때 칼을 사용하지 않아. 그 놈은 온몸이 무기지. 총이 아니면 굳이 손에 뭔가를 들 필요가 없어.”
“그럼 여기자를 죽인 건...”
“자네 클론일세. 자네가 사용하는 칼과 똑같은 모델이지 않나?”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진의 가슴에 꽂힌 나이프는 유감스럽게도 내가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유도는 자네를 다시 찾아올 거야. 하지만 놈에겐 약점이 있지. 그리고 자네 유명해질 걸세.”
노인은 전화를 끊었다. 노인의 말의 의미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상황이 나빠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도리어 홀가분해졌다. 물론 머리맡에 권총을 두기는 했지만 나는 곤히 잠들었다. 정신적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그보다 육체적 고통과 피로가 지나쳤다. 두 사람이 연달아 죽었지만 내 뇌는 활동을 정지했다. 나는 뇌가 돌아가지 않으면 몸도 움직일 수 없는 타입이다.
내가 유명해진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비록 온몸이 쑤시고 아팠고 물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입안 곳곳이 터졌지만, 이미 귀띔을 들은 터라 마음은 편안했다.
[[I]]“... 신문의 여기자 진 모씨가 어제 자신의 원룸에서 참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정치부에 근무하는 진 모씨는 어제 자신의 직장인 신문사에 결근하겠다고 전화한 뒤 오늘 새벽 흉기에 살해당한 채 자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같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동료 이 모씨는 어제 저녁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 진 모씨를 이상히 여겨 진 모씨 집을 찾았는데 현관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서 흉기에 찔린 진 모씨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수사 중인 경찰은 라이터 한 개 이외에는 도난품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짐작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I]]
공중파 뉴스부터 신문사 홈피까지 진의 죽음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포털은 남자 관계와 성폭행에서부터 정치적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덧글로 고인을 모독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는 타이레놀 두 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라이터가 없어진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경찰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다. 회사가 뒤에 있다. 이제 나는 회사와 싸운다.
다음 날은 더 가관이었다. 드디어 범인의 CCTV 화면이 공개된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동영상은 아니고 캡쳐 컷이었는데 해상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옷차림은 내가 진의 죽음을 확인했던 당시와 같았다. 워싱 블랙 진에 흰색 라운드 티, 붉은 색 점퍼. 하지만 사진 속의 남자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모자를 쓰고 가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사내는 노인이 좋아하는 국내 프로야구팀의 검정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몽타주나 얼굴 사진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내 클론을 만들어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테니.
안녕하십니까? SF 소설을 즐겨 읽고 습작으로 쓰고 있는 연재할 곳을 찾아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