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6.
세련되면서도 심플한 기타 사운드. 평범하지만 호소력 짙은 보컬. ‘베이스 볼 베어’의 ‘하이 컬러 타임즈’를 반복 재생시키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마이너에 속하는 이 밴드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린다 린다 린다’에서였다. 학교 축제에서 ‘블루 하트’의 노래를 커버곡으로 부르는 여학생 4인조 밴드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히 그린 영화로 국내 개봉 당시 홍보는 보컬을 맡았던 배두나에 초점이 맞춰졌다. 객관적으로 볼 때 넷 중 가장 예쁜 것은 기타를 쳤던 카시이 유우였고 ‘배틀 로얄’에도 출연했던 마에다 아키도 눈에 익은 배우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극중의 베이시스트 노조미에 끌렸다. 뚱한 표정과 과묵한 이미지. 객관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귀여웠다. 그녀는 바로 ‘베이스 볼 베어’의 베이시스트 세키네 시오리였다.
배두나가 부른 ‘린다 린다 린다’ 때문에 OST CD를 구입했지만 듣다보니 ‘베이스 볼 베어’의 ‘사요나라 노스탤지어’가 더 좋았다. 영화 삽입곡이었지만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아 네 번이나 반복 감상한 끝에 마에다 아키가 크레페를 만드는 교실 장면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인한 바로 그 곡. 들릴 듯 말 듯한 세키네 시오리의 허밍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아마존 재팬에서 ‘베이스 볼 베어’의 앨범 두 장을 DHL로 주문했다.
경쾌하면서도 상큼한 사운드. 10대 시절부터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아니, 10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운전을 할 때에도 소니의 헤드 유닛에 걸고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지금 방안에서 그들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헤드폰을 낀 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베이스 볼 베어’의 음악이 경쾌하지도 상큼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 음악이라도 듣고 있었다.
-----------------------------------------------------------------------------
핸드폰은 꺼놓았고 노트북과 랩탑의 전원도 켜지 않았다. 한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아니 먹기는 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현관문의 디지털 도어록에 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며칠 전까지는 정확한 번호였다. 열리지 않자 손잡이를 몇 차례 돌린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며칠 동안... 연락도 되지 않고...”
내가 알았던 여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것은 디지털 도어록의 번호와 달리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운 목소리.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전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성우에 도전할 것을 어떨지 진지하게 제안한 적도 있었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이 문 좀 열어봐.”
그녀는 옆집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목소리를 낮추려 애썼다. 절박해도 망신은 당하지 않겠다는 남 눈치 보기는 여전했다. 그래, 나는 몇 년 동안 저런 모습이 싫었다. 인간이 나락으로 구르거나 추한 꼴이 되는 것은 순간이 아닌가. 대한민국 1%가 내 총 앞에서 고깃덩어리로 변해갈 때마다 인생무상을 절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원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이 문 좀... 제발! 이야기 좀 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1분 정도 문 밖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긴 한 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하이힐을 옮겼다. 다른 남자에게 위안을 얻고 있으면서 왜 내게 온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뭐야, 이런 꼴? 네게 어울리지 않아.”
바뀐 디지털 도어록의 번호를 정확하게 맞추고 들어온 이 사내. 나는 곁에 둔 리볼버를 현관문을 향해 겨눴지만 쏠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디지털 도어록의 문을 여는 것쯤은 나나 제이에게는 우스운 것이다.
“무슨 말부터 하지... 간단히 말하자면 다 잘 해결되었어. 아버지는 그간의 공을 인정해 이번 일을 불문에 붙이기로 했어.”
아버지? 그간의 공?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집안에 있었던 며칠 동안 나는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았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인터넷과 TV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도 접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 항명한 네 잘못은 크지. 사실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는데 말야. 하지만 내가 입도 벙긋하기 전에 아버지는 널 이해한다고 했어. 그러니 이번 일은 잊고 휴가나 다녀와. 몰디브 어때?”
이번 일을 잊어? 휴가? 몰디브? 나 자신도 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데 아버지는 나를 이해한다고?
“말할 기분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 일에서 다반사 아냐? 사람 죽는 건? 단지 네가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뿐이지. 하지만 그동안 자네가 죽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좀 알겠지?”
그냥 ‘아는’ 사람인가? 류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이었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않은 것 같군. 피자 사왔다. 네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야.”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맥주는 있네? 피자 식기 전에 같이 먹어. 뒷머리가 많이 자랐군. 나쁘지 않아. 어울리는 걸. 하지만 면도 좀 해. 수염은 어울리지 않아.”
현관문을 나서며 제이는 덧붙였다.
“참, 앞으로 쓸 데 없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아.”
세련되면서도 심플한 기타 사운드. 평범하지만 호소력 짙은 보컬. ‘베이스 볼 베어’의 ‘하이 컬러 타임즈’를 반복 재생시키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마이너에 속하는 이 밴드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린다 린다 린다’에서였다. 학교 축제에서 ‘블루 하트’의 노래를 커버곡으로 부르는 여학생 4인조 밴드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담담히 그린 영화로 국내 개봉 당시 홍보는 보컬을 맡았던 배두나에 초점이 맞춰졌다. 객관적으로 볼 때 넷 중 가장 예쁜 것은 기타를 쳤던 카시이 유우였고 ‘배틀 로얄’에도 출연했던 마에다 아키도 눈에 익은 배우였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극중의 베이시스트 노조미에 끌렸다. 뚱한 표정과 과묵한 이미지. 객관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귀여웠다. 그녀는 바로 ‘베이스 볼 베어’의 베이시스트 세키네 시오리였다.
배두나가 부른 ‘린다 린다 린다’ 때문에 OST CD를 구입했지만 듣다보니 ‘베이스 볼 베어’의 ‘사요나라 노스탤지어’가 더 좋았다. 영화 삽입곡이었지만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아 네 번이나 반복 감상한 끝에 마에다 아키가 크레페를 만드는 교실 장면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인한 바로 그 곡. 들릴 듯 말 듯한 세키네 시오리의 허밍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아마존 재팬에서 ‘베이스 볼 베어’의 앨범 두 장을 DHL로 주문했다.
경쾌하면서도 상큼한 사운드. 10대 시절부터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다니 놀랍다. 아니, 10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까. 운전을 할 때에도 소니의 헤드 유닛에 걸고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지금 방안에서 그들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헤드폰을 낀 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베이스 볼 베어’의 음악이 경쾌하지도 상큼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 음악이라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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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꺼놓았고 노트북과 랩탑의 전원도 켜지 않았다. 한동안 무엇을 먹었는지, 아니 먹기는 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현관문의 디지털 도어록에 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며칠 전까지는 정확한 번호였다. 열리지 않자 손잡이를 몇 차례 돌린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며칠 동안... 연락도 되지 않고...”
내가 알았던 여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것은 디지털 도어록의 번호와 달리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운 목소리.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전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성우에 도전할 것을 어떨지 진지하게 제안한 적도 있었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이 문 좀 열어봐.”
그녀는 옆집에서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목소리를 낮추려 애썼다. 절박해도 망신은 당하지 않겠다는 남 눈치 보기는 여전했다. 그래, 나는 몇 년 동안 저런 모습이 싫었다. 인간이 나락으로 구르거나 추한 꼴이 되는 것은 순간이 아닌가. 대한민국 1%가 내 총 앞에서 고깃덩어리로 변해갈 때마다 인생무상을 절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원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이 문 좀... 제발! 이야기 좀 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1분 정도 문 밖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긴 한 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하이힐을 옮겼다. 다른 남자에게 위안을 얻고 있으면서 왜 내게 온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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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런 꼴? 네게 어울리지 않아.”
바뀐 디지털 도어록의 번호를 정확하게 맞추고 들어온 이 사내. 나는 곁에 둔 리볼버를 현관문을 향해 겨눴지만 쏠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디지털 도어록의 문을 여는 것쯤은 나나 제이에게는 우스운 것이다.
“무슨 말부터 하지... 간단히 말하자면 다 잘 해결되었어. 아버지는 그간의 공을 인정해 이번 일을 불문에 붙이기로 했어.”
아버지? 그간의 공?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다. 집안에 있었던 며칠 동안 나는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았고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인터넷과 TV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도 접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 항명한 네 잘못은 크지. 사실 어떻게 아버지를 설득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는데 말야. 하지만 내가 입도 벙긋하기 전에 아버지는 널 이해한다고 했어. 그러니 이번 일은 잊고 휴가나 다녀와. 몰디브 어때?”
이번 일을 잊어? 휴가? 몰디브? 나 자신도 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데 아버지는 나를 이해한다고?
“말할 기분이 아니라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 일에서 다반사 아냐? 사람 죽는 건? 단지 네가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뿐이지. 하지만 그동안 자네가 죽인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좀 알겠지?”
그냥 ‘아는’ 사람인가? 류를 처음 만난 건 7년 전이었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않은 것 같군. 피자 사왔다. 네가 좋아하는 포테이토 피자야.”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맥주는 있네? 피자 식기 전에 같이 먹어. 뒷머리가 많이 자랐군. 나쁘지 않아. 어울리는 걸. 하지만 면도 좀 해. 수염은 어울리지 않아.”
현관문을 나서며 제이는 덧붙였다.
“참, 앞으로 쓸 데 없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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