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다음 날 학교에서 조의 전공 수업은 5교시에 있었다. 오전에 학교에 도착해 도서관에서 카프카의 단편을 읽었지만 책의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변신’의 결말에서 그레고르가 죽는 것인지 사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건성으로 책장을 넘겼다. 점심시간에 도서관 맞은편의 본관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면서도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책장에도 식판에도 원의 작고 하얀 얼굴이 어른거렸다. 지독히도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는 것 같았다.
5교시가 시작되기 15분 전 조는 강의실에 먼저 도착했지만 원은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 자판을 바라보며 뒷자리에 원이 오는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 이었다. 조는 수업 시작 7분 전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 복도로 나왔을 때 갈색 이스트팩을 맨 원이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조는 부자연스럽지 않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원과 마주쳤다. 원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방긋 웃으며 조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는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답례했다. 화장실로 가는 조의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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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수요일 저녁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원에게 전화. 그냥 만나자는 이야기부터 꺼내면 다짜고짜일 것 같아서 학교생활, 영화, 드라마 등에 관련된 화제를 꺼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약속을 잡았다. 거절당하면 수습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첫 주에는 만나자는 약속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두세 번 그녀가 흔쾌히 응하면서 조도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토요일 정오에 만나 점심을 먹는다. 스파게티, 피자, 스테이크 등 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원이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식성이 까다로웠지만 그렇다고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조는 항상 메뉴를 두세 가지 쯤 원에게 말하고 고르게 했다. 하지만 고르는 데에도 한참이 걸리곤 했다.
점심을 먹고 인터넷에서 조가 예매해둔 표를 가지고 영화를 보러갔다. 주로 가는 극장은 명동의 중앙 시네마나 종로 2가의 시네 코아였다. 조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영화에 대해 원에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원은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어서 이야기가 끊기거나 침묵에 잠기면 조금 불안해했다. 조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침묵을 싫어하는 원을 위해 뭔가 끊임없이 화제를 끄집어내야 했고 때로는 썰렁한 농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의외로 너무 썰렁해서 꺼내기 민망한 말을 했는데 원이 체셔 고양이처럼 귀여운 송곳니와 새빨간 잇몸을 관능적으로 드러내고 웃어서 놀란 적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로 걸었다. 둘 모두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커피샵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백화점에서 윈도우 쇼핑을 즐겼다. 원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옷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조는 회사에서 번 돈으로 원이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을 사주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참았다. 조는 원색의 옷을 좋아했지만 원은 카키색이나 검정색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색상을 좋아했다.
저녁을 먹기 전 조는 원을 집으로 들여보내곤 했다. 저녁이나 술을 같이 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조는 스스로 타일렀다. 헤어질 때의 원의 표정에서 어떤 감정을 짚어내려 노력했지만 무표정 이외의 것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려웠다. 학교에서 서로 인사도 없이 모른 척하며, 주말에 만나도 손도 잡지 못한 채 몇 주의 주말이 그렇게 흘러갔다.
다시 수요일 저녁 조는 큰맘을 먹고 원에게 전화했다. 학교에서 오후에 보았던 원의 얼굴이 아른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애즈 롱 애즈 유 러브 미’가 한참동안 울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는 이제 끊어야 하나, 끊으면 언제 다시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음악이 끊겼다.
“아아, 나야.”
“예...”
예, 라고 말하는 원의 말꼬리는 처져 있었다. 조는 불안해졌다.
“저녁 먹었어?”
“예.”
“뭐 먹었어?”
“...그냥요”
“그냥이라니...?”
“그냥 늘 먹던 거 먹었어요.”
뭔가 물어보면서 화제를 풀어나갈 말들을 잔뜩 준비해놓았는데 초장부터 시큰둥한 원의 목소리에 조는 힘이 빠졌다.
“저...”
“예.”
원은 조의 말을 끊듯이 대답했다. 조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원은 재촉하듯 물었다.
“아, 아냐. 나중에 전화할게.”
조는 원의 시큰둥한 목소리를 더 들을까 두려워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오후의 해맑았던 표정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원의 냉대에 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는 한참동안 팔짱을 끼고 듀오백의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원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집에 있었다. 조는 제이에게 차를 가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보이며 황급히 나갔다. 제이는 다 알겠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초조한 기분을 억누르며 차를 몰았지만 몇 번 사고가 날 뻔했다. 그것도 접촉사고가 아니라 대형 사고로 말이다. 밤 9시가 넘어 차가 막힐 시간이 지난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도로가 정체되었다면 차를 버리고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조는 차에서 내려 심호흡을 했다. 마치 뛰어온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녀의 집으로 전화하자 직접 받았다.
“여보세요...”
“당장 나와. 나 여기 있어. 지난 번 거기.”
원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조는 딱히 할 일도 없고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기분도 아니어서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고 차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득 주변이 밝아지고 있다는 느낌에 고개를 드니 달이 분화구가 훤히 보일 정도로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죽기 전에 저 달에 가볼 수 있을까. 1961년 케네디는 10년 뒤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켰지만 그 뒤로 인류의 달 탐사는 정체되었는데 말야...’
“선배, 이런 사람이었어요?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조는 원의 목소리에 놀라 시선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렸다. 원은 원망스런 표정으로 조를 바라보았지만 조의 강렬한 눈빛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달빛에 반사된 원의 얼굴과 눈, 코, 입의 윤곽이 도드라져 보였다.
“다 알잖아?”
“예?”
“난 널 사랑해.”
원은 입을 다문 채 입 속으로 혀를 굴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를 애써 외면했다.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정말... 너무 갑작스러워요. 이렇게 성급하신 분 아니잖아요? 냉정하신 분이...”
“사랑을 이성으로 할 수 있어?
“술자리에서도 말씀하셨다면서요? 아니라고... 그래서 저는 부담 없이 선배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마시기 싫은 술도 마셨지. 연극이었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어. 거기에는 이성을 사용했지.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우린 벌써 많이 친해졌잖아?”
“...저는 그렇게 빨리 누군가와 친해질 수 없어요.”
조는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은 다음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원은 조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며 조를 바라보았다. 조는 오른손으로 옥스퍼드 셔츠의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내밀었다.
“이거! 바로 이거야. 난 강의실에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으면서도 이걸로 원의 얼굴을 보곤 했어. 큰 눈. 넓은 이마. 귀여운 광대뼈... ‘그렇게 빨리’가 아냐. 난 이미 원을 6개월 동안이나 지켜봤어.”
“......”
“사실 난 수업은 전혀 듣지 않았어. 왜냐하면 원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
원은 조의 속사포 같은 고백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조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가 그녀의 작고 마른 몸을 와락 안았다. 갑자기 안긴 원은 처음에는 몸에 힘을 주었지만 조가 자신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이내 긴장을 풀고 가만히 안겼다. 원의 은은한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가늘지만 굴곡이 있는 그녀의 몸을 안고 심장의 고동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동안 조는 그렇게 있었다.
5교시가 시작되기 15분 전 조는 강의실에 먼저 도착했지만 원은 없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 자판을 바라보며 뒷자리에 원이 오는 것을 확인했지만 아직 이었다. 조는 수업 시작 7분 전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나 복도로 나왔을 때 갈색 이스트팩을 맨 원이 반대편에서 오고 있었다. 조는 부자연스럽지 않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원과 마주쳤다. 원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방긋 웃으며 조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는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답례했다. 화장실로 가는 조의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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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수요일 저녁에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원에게 전화. 그냥 만나자는 이야기부터 꺼내면 다짜고짜일 것 같아서 학교생활, 영화, 드라마 등에 관련된 화제를 꺼내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약속을 잡았다. 거절당하면 수습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첫 주에는 만나자는 약속을 꺼내기 힘들었지만 두세 번 그녀가 흔쾌히 응하면서 조도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토요일 정오에 만나 점심을 먹는다. 스파게티, 피자, 스테이크 등 주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했다. 원이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식성이 까다로웠지만 그렇다고 무언가가 먹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조는 항상 메뉴를 두세 가지 쯤 원에게 말하고 고르게 했다. 하지만 고르는 데에도 한참이 걸리곤 했다.
점심을 먹고 인터넷에서 조가 예매해둔 표를 가지고 영화를 보러갔다. 주로 가는 극장은 명동의 중앙 시네마나 종로 2가의 시네 코아였다. 조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영화에 대해 원에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원은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어서 이야기가 끊기거나 침묵에 잠기면 조금 불안해했다. 조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침묵을 싫어하는 원을 위해 뭔가 끊임없이 화제를 끄집어내야 했고 때로는 썰렁한 농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의외로 너무 썰렁해서 꺼내기 민망한 말을 했는데 원이 체셔 고양이처럼 귀여운 송곳니와 새빨간 잇몸을 관능적으로 드러내고 웃어서 놀란 적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로 걸었다. 둘 모두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커피샵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백화점에서 윈도우 쇼핑을 즐겼다. 원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옷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조는 회사에서 번 돈으로 원이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을 사주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참았다. 조는 원색의 옷을 좋아했지만 원은 카키색이나 검정색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색상을 좋아했다.
저녁을 먹기 전 조는 원을 집으로 들여보내곤 했다. 저녁이나 술을 같이 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조는 스스로 타일렀다. 헤어질 때의 원의 표정에서 어떤 감정을 짚어내려 노력했지만 무표정 이외의 것을 찾아내기는 매우 어려웠다. 학교에서 서로 인사도 없이 모른 척하며, 주말에 만나도 손도 잡지 못한 채 몇 주의 주말이 그렇게 흘러갔다.
다시 수요일 저녁 조는 큰맘을 먹고 원에게 전화했다. 학교에서 오후에 보았던 원의 얼굴이 아른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애즈 롱 애즈 유 러브 미’가 한참동안 울렸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조는 이제 끊어야 하나, 끊으면 언제 다시 하나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음악이 끊겼다.
“아아, 나야.”
“예...”
예, 라고 말하는 원의 말꼬리는 처져 있었다. 조는 불안해졌다.
“저녁 먹었어?”
“예.”
“뭐 먹었어?”
“...그냥요”
“그냥이라니...?”
“그냥 늘 먹던 거 먹었어요.”
뭔가 물어보면서 화제를 풀어나갈 말들을 잔뜩 준비해놓았는데 초장부터 시큰둥한 원의 목소리에 조는 힘이 빠졌다.
“저...”
“예.”
원은 조의 말을 끊듯이 대답했다. 조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원은 재촉하듯 물었다.
“아, 아냐. 나중에 전화할게.”
조는 원의 시큰둥한 목소리를 더 들을까 두려워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오후의 해맑았던 표정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원의 냉대에 조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조는 한참동안 팔짱을 끼고 듀오백의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 원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집에 있었다. 조는 제이에게 차를 가지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보이며 황급히 나갔다. 제이는 다 알겠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초조한 기분을 억누르며 차를 몰았지만 몇 번 사고가 날 뻔했다. 그것도 접촉사고가 아니라 대형 사고로 말이다. 밤 9시가 넘어 차가 막힐 시간이 지난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도로가 정체되었다면 차를 버리고 뛰쳐나갔을지도 모른다.
조는 차에서 내려 심호흡을 했다. 마치 뛰어온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녀의 집으로 전화하자 직접 받았다.
“여보세요...”
“당장 나와. 나 여기 있어. 지난 번 거기.”
원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조는 딱히 할 일도 없고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기분도 아니어서 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고 차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문득 주변이 밝아지고 있다는 느낌에 고개를 드니 달이 분화구가 훤히 보일 정도로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죽기 전에 저 달에 가볼 수 있을까. 1961년 케네디는 10년 뒤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약속을 지켰지만 그 뒤로 인류의 달 탐사는 정체되었는데 말야...’
“선배, 이런 사람이었어요?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조는 원의 목소리에 놀라 시선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렸다. 원은 원망스런 표정으로 조를 바라보았지만 조의 강렬한 눈빛에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달빛에 반사된 원의 얼굴과 눈, 코, 입의 윤곽이 도드라져 보였다.
“다 알잖아?”
“예?”
“난 널 사랑해.”
원은 입을 다문 채 입 속으로 혀를 굴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를 애써 외면했다.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정말... 너무 갑작스러워요. 이렇게 성급하신 분 아니잖아요? 냉정하신 분이...”
“사랑을 이성으로 할 수 있어?
“술자리에서도 말씀하셨다면서요? 아니라고... 그래서 저는 부담 없이 선배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마시기 싫은 술도 마셨지. 연극이었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어. 거기에는 이성을 사용했지. 하지만 지난 몇 주 동안 우린 벌써 많이 친해졌잖아?”
“...저는 그렇게 빨리 누군가와 친해질 수 없어요.”
조는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은 다음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원은 조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며 조를 바라보았다. 조는 오른손으로 옥스퍼드 셔츠의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내밀었다.
“이거! 바로 이거야. 난 강의실에서 항상 맨 앞자리에 앉으면서도 이걸로 원의 얼굴을 보곤 했어. 큰 눈. 넓은 이마. 귀여운 광대뼈... ‘그렇게 빨리’가 아냐. 난 이미 원을 6개월 동안이나 지켜봤어.”
“......”
“사실 난 수업은 전혀 듣지 않았어. 왜냐하면 원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
원은 조의 속사포 같은 고백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조는 그녀에게 성큼 다가가 그녀의 작고 마른 몸을 와락 안았다. 갑자기 안긴 원은 처음에는 몸에 힘을 주었지만 조가 자신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이내 긴장을 풀고 가만히 안겼다. 원의 은은한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가늘지만 굴곡이 있는 그녀의 몸을 안고 심장의 고동이 진정될 때까지 한참동안 조는 그렇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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