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END - 작가 : 레가드(kasi)
글 수 80
다음 날 정오 쯤 원과 나는 샐러드 바가 유명한 역삼동의 레스토랑에 앉아있었다. 원은 어젯밤 전화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기분을 맞춰주려는 듯 상냥한 어투로 이것저것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했다. 학원의 내신 대비 기간이나 시험의 적중률, 마음에 들거나 혹은 들지 않는 학생과 동료 강사들에 대해서 말이다. 내게는 먼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그때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이 온몸을 떨었다. 재킷에서 꺼내 액정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플립을 아래로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나갔다. 원의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내 등 뒤에 꽂히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치고는 낮은 목소리. 상대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묵했다.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기사의 이름만 보고는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아, 여자분인지 몰랐습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친근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나를 먼저 보여주는 편이 나았다.
“어제 보내드린...”
“예. 저는 진이라고 합니다. 뵈었으면 합니다.”
왠지 이 여자는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싫어할 것 같았다. 시간과 장소를 여기자가 정하고는 전화는 간단히 끊었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대화였다.
“누구야? 누군데 그렇게 표정이 밝아졌어?”
자리로 돌아온 내게 힐난하듯 원이 말했다. 아마 내 얼굴이 전화 통화 이후 밝아졌나 보다.
“여자야?”
“일 때문이야... 아, 아까 학원 국어 선생 이야기하다 말았지?”
“말 돌리지 마. 여자였어?”
“일 때문이라니까. 쉬는 날까지 일 때문에 전화를 받아야 하는 내 처지를 좀 이해해줘.”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날 선 목소리로 닦아세웠다. 만족스런 대답을 듣기 전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매번 왜 같은 대답을 해야만 하지? 그리고 그 외에는 나는 해줄 말이 없는 데 말야.”
“난 오늘 오후에 출근해서 수업해야 하는데도 이렇게 나왔어? 그런데 이러기야?”
“나야말로 하고 싶은 말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기껏 이러기야?
“요즘 다른 여자 만나는 거야? 그 의사?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아, 알았어. 오늘 우리 누가 만나자고 했는지 이제 생각나네. 나 갈게. 간다구!”
나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빠른 걸음걸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원의 옆을 스쳤을 때 그녀의 당혹스런 표정을 보았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나간다는 사실보다 내가 나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당혹스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친구인 나보다,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녀의 성격에 더욱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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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원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핸드폰에 신경 쓰고 있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번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마 원의 전화가 온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화를 낼 것이다. 투정을 부리고 싶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원이 뭔가를 잘못했다기보다 내가 화를 낼 대상이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원에게 전화해 사과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심하게 화를 낼 것이기에 전화하지 않았다. 마음 한 편으로는, 이미 4년 동안이나 이랬는데 헤어지기야 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도 강했다.
나는 플립을 아래로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나갔다. 원의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내 등 뒤에 꽂히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치고는 낮은 목소리. 상대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묵했다.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물론 기사의 이름만 보고는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아, 여자분인지 몰랐습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친근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나를 먼저 보여주는 편이 나았다.
“어제 보내드린...”
“예. 저는 진이라고 합니다. 뵈었으면 합니다.”
왠지 이 여자는 자신의 낮은 목소리를 싫어할 것 같았다. 시간과 장소를 여기자가 정하고는 전화는 간단히 끊었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대화였다.
“누구야? 누군데 그렇게 표정이 밝아졌어?”
자리로 돌아온 내게 힐난하듯 원이 말했다. 아마 내 얼굴이 전화 통화 이후 밝아졌나 보다.
“여자야?”
“일 때문이야... 아, 아까 학원 국어 선생 이야기하다 말았지?”
“말 돌리지 마. 여자였어?”
“일 때문이라니까. 쉬는 날까지 일 때문에 전화를 받아야 하는 내 처지를 좀 이해해줘.”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날 선 목소리로 닦아세웠다. 만족스런 대답을 듣기 전까지 물러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매번 왜 같은 대답을 해야만 하지? 그리고 그 외에는 나는 해줄 말이 없는 데 말야.”
“난 오늘 오후에 출근해서 수업해야 하는데도 이렇게 나왔어? 그런데 이러기야?”
“나야말로 하고 싶은 말이야. 오랜만에 만나서 기껏 이러기야?
“요즘 다른 여자 만나는 거야? 그 의사?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아, 알았어. 오늘 우리 누가 만나자고 했는지 이제 생각나네. 나 갈게. 간다구!”
나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빠른 걸음걸이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원의 옆을 스쳤을 때 그녀의 당혹스런 표정을 보았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나간다는 사실보다 내가 나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당혹스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친구인 나보다,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녀의 성격에 더욱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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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원의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핸드폰에 신경 쓰고 있었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번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아마 원의 전화가 온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에게 여전히 화를 낼 것이다. 투정을 부리고 싶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원이 뭔가를 잘못했다기보다 내가 화를 낼 대상이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원에게 전화해 사과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심하게 화를 낼 것이기에 전화하지 않았다. 마음 한 편으로는, 이미 4년 동안이나 이랬는데 헤어지기야 하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도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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