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가 지릿하고 저리는 느낌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의 감각의 마비 그리고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감각 짧은 시간동안 너무 자주 매트릭스를 들락날락 거린탓인지 매트릭스에 접속되는 느낌이 이제는 아주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잠깐동안의 생각동안 내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나쁜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제 2의 사빅이 된다던가 또다시 내 몸과 내 의식을 사빅이 가지고 논다던가. 하지만 눈앞의 고통을 생각하다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배신감, 그리고 그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고 내가 분노에 파묻힐동안 나는 매트릭스 안에 들어와 있었다.

2.
내가 매트릭스안에서 눈을 뜬곳은 성당같은 곳이었다. 단 이 성당같은 장소의 제일 전면에는 루이스 밀러의 동상이 서있었고 그 루이스 밀러의 동상발치에는 하나의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제단을 등지고 루이스 밀러와 12명의 사빅 그리고 helper 71호가 서있었고 루이스 밀러 바로 앞에는 성당에서 성수를 담아놓는 석재로된 물그릇 같은게 놓여있었다.

나는 성당같은 건물에서 그들을 마주보고 중앙통로 같은곳에 서있었고 내가 서있는 중앙통로 양 옆으로는 예배용의자들이 줄지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예배용 의자에는 얼굴이 없는 인간형상의 ‘무언가’가 기도를 하는듯한 자세로 빼곡히 채워져서 앉아있었다.

3.
나는 생각하고 말하는 것 외에는 내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서오십시오 알렉스 헤니건씨. 아니 헤니건 선생님이라고 해야하나? 지금 당신이 들어온 이곳은 모든게 의문투성이 이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내가 초대한 최초의 사람이니 모든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를 드리지요. 어차피 당신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테니까.”

나는 어느새 루이스 밀러가 서있는 제단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사빅이 당신보다 윗사람인걸로 아는데 어떻게 사빅의 의식이 복제가 되었지?”

나는 스무고개를 하듯 한걸음 걸을때마다 질문을 시작했다.

“처음 질문부터 순진한 질문이군요. 만약 절대권력자가 드러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려면 어떤자리가 제일좋을까요? 그건 바로 제 2인자의 자리랍니다. 물론 2인자의 가면을 쓰고 힘을 휘두르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사빅은 공손한척하면서도 비웃듯이 내게 대답을 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무슨 ‘능력’이 있길래 사빅이 당신에게 복종을 하지?”

나는 발걸음을 멈추려고 했으나 마치 악몽처럼 내 발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흠....엄밀하게 말하자면 저도 ‘네오’랍니다. 그것도 일곱 번째 ‘네오’이지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곱 번째 프로토 타입 네오라고 할수 있지요. 만약 여섯 번째 ‘네오’가 지금처럼 영웅놀음에 빠지지 않고 순순히 매트릭스에 융합이 되었다면 저처럼 할일없는 ‘네오’가 등장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만약 일곱 번째 시온이 생기고 매트릭스가 일곱 번째 재설정이 되었다면 지금의 저를 데이터로 삼아서 일곱 번째 네오가 탄생했겠지요.”

뭐라고 할까? 마치 루이스밀러는 자신이 지혜로운 사제인양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듯한 말투로 놀라운 대답을 했다.

“지금의 이 12사도, 아니 12명의 사빅은 처음 인간으로서의 사빅에서 많이 개조가 된 의식체들입니다. 인간도 아니고 프로그램도 아닌 인간과 프로그램의 융화라고 할까요? 헤니건씨 같은 문외한에게 굳이 설명을 하자면 육체에도 사이보그라는 개념이 있듯이 의식도 그러한 개조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이 악몽에서 깨어나고 싶었으나 걸음을 움직일수록 더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모든 ‘프로토 타잎’ 네오들은 진짜 네오들처럼 매트릭스에서 구조되어서 시온으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는 경험을 한다는 겁니다. 일종의 프로토타잎 테스트 같다고 할까? 제가 어떻게 ‘네오’인지 알았냐구요? 실은 네오가 스미스를 제압했을때 그와 동시에 네오는 매트릭스의 메인프로그램을 장악했지요. 마치 바이러스가 하드를 장악하듯이. 하지만 매트릭스의 메인프로그램은 기계답계 자신의 백업 프로그램을 별도의 장소에 저장시켜놓았고 네오가 시스템을 장악했을때 백업 프로그램을 임시로 모든 매트릭스 시스템과의 접속을 단절시켜놓았지요. 그리고 인간들이 매트릭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닐때 우연한 기회에 어떤 인간이 백업프로그램과 접촉하게 되었고 실은 그 우연한 기회라는게 일곱 번째 프로토타잎 네오의 운명이자 의지였던 거지요”

루이스 밀러와 이야기하는 사이 나는 어느새 루이스 밀러의 코앞까지 와있었다.

“그래도 헤니건씨는 나에게 감사해야할걸요? 저는 사빅처럼 악취미가 아니라서 의식 복사, 개조 장소를 뇌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인체실험실이 아닌 이런 엄숙한 예배당으로 꾸몄으니까요. 어때요? 분위기가 훨씬 편하지 않나요? 어차피 매트릭스상에서는 모든게 보이기 나름이니까.”

말을 마친 루이스 밀러는 자신의 앞에놓인 돌로된 물그릇에 손을 담궜다 뺀후 가까운 예배용 의자로 걸음을 옮겼다. 루이스 밀러가 발걸음을 옮기자 마자 예배당 같은 장소에는 엄숙한 오르간 연주가 울려퍼졌다.

루이스밀러가 물이 묻은손으로 가까운 예배용 의자에 앉아있는 마네킹 같은 얼굴없는‘무언가’의 머리에 손을 얹자 그 ‘무언가’는 점점 얼굴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막 얼굴이 생기기 시작한 그 ‘무언가’를 보고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무언가’는 ‘헬렌’으로 변해있던 것이다.

4.
“어때요? 훌륭하지 않나요? 바로 이게 여섯 번째 네오가 갖지 못한 재능이랍니다.”

나는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마 욕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분노는 잠깐뿐이었고 곧이어 루이스밀러가 나를 어떻게 할까하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만들어진’ 헬렌은 멍하니 앞만 쳐다보고있었다. 잠시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동안 helper 71호를 노려보았고 helper 71호는 그런 나의 시선을 애써피하면서 울음을 참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빅은 나를 관찰하듯이 바라보더니 농담조로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이런 우리의 영웅께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다니. 두려움에다가 원망까지? 이거 너무 실망이군요. 사빅의 실험실까지 날려버리신 영웅께서 이 무슨 약한 모습입니까? 자기 주변의 대상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기 시작할때부터 그 대상과의 관계가 시작된다는거 모르나요? 그리고 그 관계의 시작에서부터 의지의 교류가 시작되는것이고, 게다가 이 의지의 교류라는 것은 결코 일방적일 수 만은 없지요. 결론적으로 당신은 결코 ‘떠밀려서만’ 여기까지 올수는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당신이 ‘헬렌’과 그리고 이 ‘프로그램’과의 관계를 선택했기 때문에 영광스럽게 저에게 선택될 상황까지 오게 된거라는 거지요”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을했다.

“나를 어떻게 할거지?”

5.
“아주 재미있게 갖고 놀 생각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정신적인 환경에 약한지 연구도 할겸 말이지요. 선생님의 의식은 개조되지 않은체로 복제가 되어서 이런저런 실험조건에 투여되겠지요. 물론 helper 71호에 대한 철저한 배신감과 함께 말입니다. 하하하하”

루이스 밀러는 마치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웃었다.

helper 71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삐리릭 삐리릭”

어디서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helper 71호는 자신의 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는 짧게 대답을 하고는 핸드폰을 끊었다.

루이스 밀러는 한참 나를 바라보다 다시 helper 71를 흘끗 바라보면서 이야기 했다.

“‘네오’ 인가보군”

helper 71호는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했다.

“네”

6.
루이스 밀러는 helper 71호에게 다가서면서 물어보았다.

“‘네오’가 뭐라고 하던가?”

“루이스 밀러씨와 알렉스 헤니건씨가 같이 있느냐고만 물었읍니다.”

helper 71호는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했다.

“아무리 헬렌의 흔적이 남아있어도 인간처럼 거짓말하는 건 남겨지지 못했나보군. 네오가 이곳의 위치를 알고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면 여전히 바쁜다는 이야기란 말이겠지. 아마도 메트릭스의 메인프로그램과 싸우고 있을거야. 천하의 네오라도 두명의 적수와 동시에 싸우는건 무리일거야. 그런데 도대체 네오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하급’프로그램에게 기대를 거는지 몰라”

루이스 밀러가 helper 71의 어깨에 손을 얹자 helper 71가 점점 사빅으로 변해가기 시작했고 helper 71는 울먹이면서 애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선 선생 선생니임 .........”

helper 71의 말한마디에 나는 모든걸 느낄수 있었다. 미안함, 애정, 두려움, 서글픔 등을 말이다. 나는 너무나 격한 감정들에 휩싸여서 오히려 반대로 모든 감정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듯 했다.

이젠 도저히 무언가를 느낄 엄두가 안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