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심한 두통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드는 생각....여긴 어딜까? 천국, 혹은 지옥? 아마도 사후세계라는게 존재한다면 사후세계에서 바라보는 현재는 또다른 메트릭스 일것이다. 쳇 결국 죽거나 살거나 꿈에서 헤어나지는 못하는군....

벼라별 복잡한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죽은 것은 아닌가보다. 그렇다면 살기위해 다시한번 발버둥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주위를 더듬거렸다. 더듬거리면서 느껴지는 감촉은 손모양의 차가운 금속성 물체와 여러형태의 금속성 물체들이었다. 나는 다시 주머니를 더듬거려서 라이터를 찾았고 라이터를 켠순간 흠칫 놀랐다.

사람모양의 쇠덩어리들, 얼핏 보면 마네킨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인간형 로봇들의 잔재임을 알수 있었다. 여기도 구시대의 전쟁터였다. 내가 떨어진 웅덩이는 아마도 전쟁에서 부서진 로봇들이 버려진 곳 같았다.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간다?’ 나는 속으로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일단 로봇의 폐기물들을 벽면 한쪽으로 비스듬이 쌓아놓아서 어느정도 높이를 만든다음 가급적이면 갈고리 모양의 부속을 가져온 밧줄에 묶어서 위로 던지기로 했다. 운이 좋다면 아마도 도로의 갈라진 틈에라도 걸릴수 있으리라.

무너진 천장에서는 회색빛의 하늘이 조롱하듯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하늘이야 조롱하든 말든 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역시 메트릭스안에서 안락하던 생활이 그리운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이렇게 수십번씩 밧줄을 던지느니 차라리 환상이라도 편한게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말이다.

2.
밧줄을 몇 번을 던졌는지 기억도 안난다. 던지다 지치면 잠이들고 그러다 다시 던지기를 몇 번....팔이 저려옴을 느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번더 던졌고 다행이도 노력의 결실인지 던져진 밧줄이 허무하게 다시 내려오지는 않았다.

겨우겨우 도로위를 올라온다음 나는 발을 조심조심 디디면서 다시한번 도로의 갈라진 입구같은 틈으로 접근해갔고 무사히 도로의 갈라진 틈앞에 설수 있었다.

도로의 틈 앞에는 참호같은 것이 파여져 있었고 그 안에는 해골 밖에 안남은 두사람의 시체가 엉켜있었다.

‘인류의 마지막 전장, 알라와 그리스도가 한 마음이 되어 기계와 싸우다’

피로쓴 글씨가 참호 벽에 쓰여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신 타령이라니. 어쩌면 사제들이었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속으로 한번 웃고는 입구같이 생긴 도로틈으로 들어갔다.

3.
나는 죽은 유골이 걸치고 있던 옷들을 찢어서 근처 쇠막대에 칭칭 감은후 불을 붙였다.
기름이 없어서 불은 잘 안 붙었으나 겨우겨우 불을 붙이고 도로틈 안으로 들어가니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대 기계 전쟁 인류 통합군 중동지부 제 23 연대본부’

천을 감은 쇠막대에 붙은 불이 금방 꺼지려고 했으나 다행히도 기름통을 발견할수 있었고 일단 쇠막대의 불을 꺼트린후 여분의 천을 다시 쇠막대에 감고 손으로 기름통을 더듬어서 천을 기름에 적신후 다시 불을 붙였다.

사방이 산산히 부서진 해골천지였다. 메트릭스상에서 베트남 관광을 가보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킬링필드라는 것은 이러한 광경을 데이터로 만들었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쓸만한 것을 찾아서 도로 밑의 기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시체 더미 밑에서 랜턴과 전지를 찾았고, 기지 안내지도도 찾을수 있었다.

기지 안내지도에는 비상발전기의 위치와 메트릭스 접속장치의 위치가 나와있었고 무기고의 위치도 나와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기고부터 찾아보았으나 대부분의 총기는 녹슬어 있었고 탄약도 제대로 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전쟁통에 탄약을 다 소모하고 기계와 백병전을 벌이다 다들 죽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어쩐다? 군용 비상식량도 조금 찾아놓았고, 기지 구조도 확인했고, 랜턴도 확보했으나, 여기서 영원히 살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람보처럼 무기를 여기서 몇 개 찾아서 들고 가서 ’머리갖고 장난치지 말아라‘라고 말해봤자 정신병자 취급받을거고’

전지약을 아끼기 위해 랜턴을 꺼둔체 한참동안 생각을 했지만 답이 안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메트릭스에나 접촉을 해서 죽을때까지 돌아다녀봐야겠다. 도대체 메트릭스 안이 어떻게 변했는지 구경도 하고’

나는 일단 의무실에 가서 밀봉된 증류수를 가져와서 메트릭스 접속장치의 접속부위를 세척했다. 남아 있는 기름으로 비상발전기를 가동시키고 접속장치에 전원을 넣은뒤 의자에 앉았다.

잠시 정신이 멍해지더니 주위가 환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다시 내가 지내던 도시 한복판에 서있었다. 단지 다른점이라고는 차들과 사람들이 전혀 없다는 것 뿐
4.
“알렉스씨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텅빈 도로 한쪽에서 ‘의사’가 여유있는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말을 할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장난인지 파악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머리 갖고 장난치는 건가요?”

솔직히 지금상황에서 내가할수 있는 질문은 이 한가지 밖에 없었다. 말이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굉장히 절망적인 심정이었고  ‘의사’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도 제가 원해서 남의 ‘머리’를 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의뢰인’의 협박때문이지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당신이 보복당할것이 두려워서 나한테 신고해달라는 이야기 인가요?”

의사는 표정의 변화없이 나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지요, 하지만 알렉스씨에게 선택은 둘중에 하나였읍니다. 그대로 앉아서 의식개조를 당하느냐 아니면 탈출을 해서 시온정부에 신고해서 ‘의뢰인’을 잡고 영웅이 되느냐 이지요, 게다가 아마도 시온정부에 영웅 대접을 받으면 알렉스씨가 원하는 데이터 저장소에 알렉스씨가 원하는 형태의 생활을 메트릭스상에서 하실수도 있으실겁니다. 물론 가끔씩 현실상에서도 생활을 하셔야겠지만...”

의사는 살짝 양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을 이었다.

“만약 알렉스씨가 저에게 협조해주시지 않으신다면 저는 별수 없이 ‘의뢰인’에게 알렉스씨의 일을 알릴 수밖에 없읍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면 ‘의뢰인’이 저에게 협박했던게 알렉스씨에게는 실제로 일어나겠지요? 바로 ‘1종 부적응자’ 처리가 되는 것 말입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대답을 했다.

“결국 당신도 나에게 협박을 하는거군요, 난 남의 머리가 어떻게 되는 말든 내머리 하나 간수하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결국은 협박에 못이겨서 영웅행세를 해야한다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군요, 알았어요, ‘1종 부적응자’ 처리가 뭔지는 몰라도 누구나 두려워한다는건 사실이니까. 자 어떻게 해주면 되는건가요?”

의사는 금새 표정을 바꾸고는 나에게 종이쪽지와 비디오 테잎을 하나 건네주었다.

“당신이 잘 아는 뉴욕의 주소입니다. 아마도 이 근처의 작은 방송국으로 나타날텐데, 거기 서 헬퍼(helper) 프로그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헬퍼(helper) 프로그램에게 가서 ’비 인간적 행위‘를 고발한다고 말하고 이 테잎을 건네주면 됩니다.”

나는 엉겁결에 테잎을 받았으나 꼭해야할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내 질문을 눈치 챘는지 내가 묻기도 전에 대답을 했다.

“헬렌양의 편지는 진짜 입니다. 물론 헬렌양의 본체와 함께 발견되었지요. 하지만 아직까지 헬렌양과 관련해서 ‘네오’를 본사람은 없읍니다. 혹시 저를 ‘네오’로 오해하실수도 있겠지만 저는 힘없는 하수인일 뿐입니다. 아마 제가 ‘네오’였다면 당신을 이런식으로 협박할 필요도 없겠지요”